목회학

[스크랩] 한국 교회, 어디로 가야 하는가?

수호천사1 2011. 3. 31. 12:25

한국 교회,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한국교회 리더십은 성경적 지향성을 가지고 있는가?.


서  언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교회의 실상에 대한 문제점의 뿌리인 신학과 설교의 문제점을 검토하면서 대안을 모색해 왔다. 이제 부터는 좀 더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먼저 교회를 이끌어 가는 리더십의 문제점이다. 교회 역시 하나의 체제 혹은 조직이며 거기에는 체제를 인도해 가는 지도자가 있기 마련이다. 사실상 모든 조직의 건전성은 리더십의 문제로 환원될 만큼 지도자의 역할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한국교회의 미래는 한국교회를 구체적으로 이끌어 가는 지도자의 진정한 비전과 성경적 리더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리더십이란 일반적으로 정의한다면 “조직의 공동의 목적을 성취해 가는데 있어서 모든 조직구성원들을 참여하게 하고 통합하도록 이끄는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교회에 적용한다면 교회 구성원으로 하여금 공동의 목적인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외하는 일을 위하여 진리 말씀의 토대위에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과연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진정한 교회로서 성장해 가도록 리더십이 발휘되고 있는가?

문제점의 세 가지 지표


우리는 한국교회에 만연된 리더십의 문제점을 검토함에 있어서 몇 가지 지표를 언급할 수 있다.

첫째, 도대체 교회가 어떤 성격과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그에 합당한 리더십의 본질은 무엇이냐 ?
둘째, 교회의 지도자는 세상의 지도자와는 어떤 점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다른가 ?
셋째, 어떤 풍토가 지도자의 양성과 성숙에 장애요인이 되는가 이다.
  
  첫째, 교회의 근본 존재이유와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교회 리더십의 문제점이다.

교회의 근본 존재이유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올바른 교회 리더십의 성격이 규정된 것이다. 한국교회 리더십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 점이 분명하게 확인 되지 않음으로 말미암는다.

  교회라는 신령한 조직은 근본적으로 인간적 계획과 도모에 의한 것이 아니다. 교회는 창세전 하나님의 예정에 의한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역의 산물이다. 즉 교회란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시작되고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전적인 통치아래 존재하는 신령한 모임이다. 그래서 교회의 목적인 하나님의 무궁한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교회란 세상에서의 인간적 집회와는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상이하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이점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너무도 부족하다. 이로 인하여 한국교회를 이끌어 가는 리더십은 성경적 지향성으로부터 빗나가 있다. 교회의 진정하고도 유일한 지도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이점을 오해 할 때 교회의 지도자는 자신이 마치 교회를 주관 하여 이끌어 간다고 착각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진정한 교회의 지도자였던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성도들의 믿음을 주관하는 자가 아니라 성도들의 믿음의 기쁨을 돕는 자 라고 분명히 밝혔다.(고후1: 24) 이점에서 교회는 인간 지도자의 이상에 의해서 이끌어 지는 모임이 될 수 없다. 교회의 존재이유와 지향할 이념은 창세전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하나님이 부여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우시는 진정한 지도자는 그 부여된 목적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

   오늘날 무성하게 논의되는 교회의 리더십에 관한 문제제기와 방향 모색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이런 교회의 신적 기원과 신령한 의미에 대한 논의가 부재하거나, 거론한다 하더라도 매우 미미하게 언급할 뿐이다. 그렇게 되면 교회 지도자의 정체성은 혼돈과 방향상실을 겪게 된다. 요컨대 교회의 리더십에 대한 올바른 논의는 교회의 신적 기원과 목적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이해하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둘째, 세속적인 조직의 리더와 방불한 태도와 가치 지향성의 문제점이다.

외형적으로 보아 교회의 지도자와 세상의 지도자는 비슷해 보일 수 있다. 즉 지도 받는 사람들에게 모종의 영향력을 끼침으로서 특정의 목적을 향해 구성원들을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 지도자의 지도이념이 어디로부터 오느냐가 결정적인 분기점이다. 이것이 세상의 지도자와는 근원에서 다른 것이다. 교회의 지도이념과 비전은 오직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로부터 말미암는다. “진리를 알지니 너희가 자유케 되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성경 진리를 추구하는 지도자는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분 만이 모든 성도가 추구할 목표라는 사실에 그의 모든 지도 이념이 뿌리내려야 한다.

  진리의 가치를 떠난 일체의 지도 이념은 실상 교회를 건전하게 세워 갈수 없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지도자는 스스로가 그리스도의 진리에 사로잡힌바 되어 죄로부터 진정한 자유함을 얻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새로운 인생이 된 것이다. 이점이 세상의 지도자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대속 제물로 드려짐으로 성도로 하여금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고 땅에 오셨다. 즉 그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 리더십의 영원한 본이다. 교회의 인간 지도자는 바로 이런 복음적 구속의 진리를 온몸으로 담지하고 그리스도의 본을 좇아 성도를 섬기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과연 이점이 한국교회에 분명한가? 교계의 현실은 이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한 교단을 책임지고 교단을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총회장이 마치 권력의 자리, 혹은 명예직으로 오해되는 현실이다. 심지어 총회장 선거가 금권선거의 양상을 띠고 있다. 그래서 어떤 큰 교단은 그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제비뽑기의 궁여지책을 쓰기도 한다. 이쯤 되면 진리를 중심으로 하고 성도를 섬기는 거룩한 직분의 의미는 이미 퇴색된 것이다. 왜 총회장이 되고 노회장이 되는 것인가? 그것은 총회, 혹은 노회를 진리 반석위에 세워 가기 위함이다. 그 자리는 세속적인 의미의 권력 혹은 명예의 자리가 아니다.

  진리의 이념을 떠난 교회의 직분은 가장 부패하기 쉬운 자리가 된다. 중세의 타락이 이를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중세 교회가 진리에서 떠나게 되자 교회의 지도자집단은 거대한 권력집단으로 둔갑했고, 중세 교회는 실상 교회의 본질로부터 빗나갔다. 한국교회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셋째, 한국교회는 차세대 리더십 양성의 시스템이 매우 빈곤하거나 병들어 있어 보인다.

한국교회, 차세대 리더십 양성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가?


이 점은 위의 두 문제점으로부터 파생되는 문제점이다. 병든 지도자는 결코 건강한 차세대 지도자를 양성하기 어렵다. 교회의 지도자는 홀로 세워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지도자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 사람이 어떤 풍토와 양육 시스템 속에 있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양상을 지니게 된다.  


  집안의 한 아이가 어떤 부모의 양육 방식 속에 자라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성장 가능성이 결정지어 지듯이 차세대 리더십의 형성과 양성 역시 그러하다. 한국교회는 이 점에서 매우 염려스런 수준에 와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성장에는 교회 지도자의 진리에의 헌신과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한 세대만을 풍미하다가 사라지는 단체가 아니다. 진리를 보수하고 전승하는 교회의 책무는 세대를 이어가야 한다. 이일을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는가? 그것은 바로 이전 세대의 리더십에서 차세대 리더십의 계승으로부터 말미암는다. 이는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는 가장 중차대한 일이다. 
 
  한국교회는 이일을 전심으로 준비하며 실행하고 있는가? 이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지도자는 하루아침에 양성되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 양성은 매우 장기간에 걸친 작업이다. 그리고 엄격하지만 진정한 격려가 존재하는 풍토 속에서 배태되고 양성되는 것이다.
  
  한국교회 신학교의 현실을 보면 이는 지도자 양성 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피상적이다. 신학교 내에 진리에 입각한 인격의 교류와 감화는 사라지고 대중 교육 시스템 속에 잡다한 신학이론의 전달 장소로 점차 퇴락되고 있다. 이런 지도자 양성 코스에서 과연 한국교회의 미래를 낙관 할수 있는가!

  개교회 안에서의 차세대 지도자 양성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지도자가 진리에 확고하고 진리를 다음세대에 전승해야 한다는 확고부동한 신앙을 가지지 못하게 되면, 그 지도자는 현실에 안주하게 되며, 자신의 지도력이 다음세대로 계승되는 것을 오히려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자기중심적인 정책과 보신책을 추구하게 된다. 이로부터 교회의 성장 동력은 퇴색하며 따라서 차세대 지도자의 발굴, 양성, 지원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는다. 이는 미래로 향한 교회 성숙의 결정적인 장애가 된다.  
    
4.2 문제의 원인


  첫째, 신학교육의 내용과 시스템이다.

 

위에서도 잠깐 지적한대로 한국교회 신학교는 근본적인 치유의 대상이다. 한국의 신학교는 서구신학 시스템의 모방적인 도입이다. 서구신학의 내용에 대한 비판적인 반성은 여기저기서 들여온다. 또한 서구신학의 이론주의적 교육 시스템으로서는 차세대 지도자 양성의 기약 할 수가 없다.

  이미 서구교회에서도 문제성이 있는 것으로 판정이 나고 있는 서구신학의 내용과 교육 시스템을 근원적으로 혁파하는 신학교육의 혁명적 변화가 요청되고 있다. 서구신학과 시스템은 일정 부분 한국교회 형성에 도움이 되었지만 필연코 극복의 대상인 셈이다.

둘째, 지도자의 빗나간 의식이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21세기에 자신이 다음세대를 위한 밑거름이라는 의식이 부족해 보인다. 인생을 참으로 자유케 하는 진리의 계승보다는 온갖 불건전한 보상심리가 작동하고 교회가 사유화된다.

교회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요 자신은 그 나라의 한 백성으로 섬기는 존재라는 사실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교회 지도자는 세속의 지도자 빰칠 정도의 타락한 정치 수완을 발휘하고 따라서 교회가 점차 세속화 되어 간다. 한 지도자의 빗나간 의식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깊고도 크다.

셋째, 성도들의 무지와 맹목성이다.

 

지도자가 성도들을 올바르게 이끌기도 하지만 역으로 말해 지도자는 지도자를 따르는 성도들의 의식과 수준에 의해 형성되기도 한다. 좋은 남편이 좋은 아내를 만들어가듯, 좋은 아내의 아내됨이 부족한 남편을 남편답게 만든다. 이처럼 교회의 지도자는 어떤 성도들과 함께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그 성숙도가 판가름 난다.

  부족한 지도자를 인내해주고, 자칫하면 빠져드는 지도자의 독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할 줄 아는 지혜로운 성도들이야 말로 성숙한 지도자를 형성시키는 바탕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교회 성도들은 이런 팔로워십(followship)을 실행하고 있는가? 성도들의 맹목적인 추종과 무지는 지도자의 독단을 강화하고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게 하는 원인제공이 된다. 맹목적인 추종처럼 불행한 교회조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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