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예비학교 제2일 - 행복한 결혼을 위한 준비
결혼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복되게 살기 위해 친히 제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셨던대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이 당면한 실제적인 문제들을 몇 가지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1. 신앙 안에서만 결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성경에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지만 사실 교회 안에는 여자들의 수에 비해 남자들의 수가 턱없이 모자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믿는 자매가 모두 믿는 형제와 결혼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표면적으로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씀을 하신 하나님께서 이 사실에 대해 책임을 지시리라고 믿습니다.
그 실례로 제가 결혼하기 전 다니던 교회에서 저와 같은 학번의 남자와 여자의 비율은 3:7이었습니다. 그런데 7명의 여자들 중 믿지 않는 남자와 결혼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남자들도 믿는 여자와 결혼했는데 다만 남자 한 사람만 소식을 모르고 지냅니다. 여자 7명 중 3명이 교역자와 결혼하였습니다. 그 중 두 친구는 자기보다 세상적인 학력이 못미치는 사람과 결혼하였습니다. 본인은 세상에서 인정해 주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자신의 남편으로 섬길 남편은 흔히 세상에서 남들과의 경쟁에서 떳떳하게 내놓을 만한 대학이 아닌 지방신학교를 졸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모두 다 행복한 가운데 가정 생활을 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한 친구는 오랫동안 결혼을 하지 않고 지냈는데 불과 몇 년 전에 믿음 안에서 어떤 분을 만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표면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남자와 여자의 수로 인해서 저 역시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지만 주변의 이런 실제적인 예들은 우리의 우려를 덮어줍니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바로 사람의 눈에는 수가 맞지 않는 듯이 보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수가 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자매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염려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 편의 눈으로 배우자를 고르려고 하기 보다는 세속적인 가치 기준으로 배우자를 고르려고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말한 저의 친구들이 모두 배우자로서 자기보다 세상의 학력 수준이 높은 사람들만 찾으려고 했다면 신앙 안에서 결혼하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신의 세속적인 기준은 몰래 감추고 표면적으로만 신앙을 결혼 조건으로 내세우는 듯이 다른 사람과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혹시 여러분은 신앙 인격보다 학벌이나 인물, 외모, 경제적 여건, 가정 형편, 성장 배경, 습관 등의 다른 이유 때문에 신앙이 맞는 사람을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은 어느 하나도 손해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결혼을 하는 것이야말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이 신앙 안에서 결혼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결혼 후에 깨달아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고 불신 남편이라도 하나님의 원리에 따라 남편을 섬긴다면 하나님께서는 결국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잘못된 방법으로 하나님의 계획에 관여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은 수고와 고생으로 "험악한 세월(창47:9)"을 보냈다는 사실은 기억해야 합니다.
2. 어떤 유형의 사람이 가장 이상적일까?
어떤 사람이 결혼을 하고 나서 보니 자기의 배우자는 자기와 잘 맞는 사람이 아닌데 결혼을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이왕에 결혼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배필로 믿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관심을 가지시는 하나님께서 그 분의 자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결혼에 관여하지 않으셨을 리가 없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께 순복하며 결혼 생활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배우자를 용납하고 싶을 때, 혹은 용납하고 싶은 부분만 용납하고,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배우자가 자기에게 맞추기까지 잔소리하고 바가지를 긁거나 억눌러서라도 맞추려고 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이 고칠 때까지는 본인이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고친 후에는 상대방이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원리를 따라 자의적으로 고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아주 잘 맞는 쌍인데도 본인들이 그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내는 수도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을 참고로 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잘 맞는 사람이 만난다면, 다른 표현을 빌면 서로가 잘 맞는 짝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짝은 어떤 유형의 사람일까요? 저의 경험으로 미루어 그것을 한 마디로 대답한다면 "성격이나 기질은 반대면서 가치관이나 신앙의 유형, 그리고 취향은 비슷한 사람"을 찾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이런 짝은 서로 다른 면에서는 서로를 보충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돕는 배필이 될 수 있고, 서로 같은 면에서는 관심과 가치를 두는 대상과 유형이 같기 때문에 서로를 격려하며 교제할 수 있기 때문에 돕는 배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일단 하나님께서 결혼을 허락하신 사람에 대해서는 똑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서로 다르다고 생각되는 점이 있으면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보완함으로써 돕는 배필이 되도록 힘쓰고, 비슷한 점이 있으면 그로 인하여 또 서로를 격려함으로써 돕는 배필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혹 어려움을 통하여 우리의 성숙의 열매들로 인한 기쁨이 더해질지도 모릅니다.
3. 결혼 전에 데이트는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될 수 있으면 두 사람이 가까와지기 전에 상대방을 멀리서 바라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 대 일 데이트를 하기에 앞서서 어떤 단체 안에서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나 기회를 많이 가지면 이상적입니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일단 사랑에 빠지게 되면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있는 눈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심지어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객관적 단계의 사귐은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성공적인 결혼의 배경과 토대를 이루는 사귐이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같은 단체 안에서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소개로 결혼 상대자가 될만한 사람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 상대방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나 활동 정보 등을 먼저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정은 대상이 제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단 한 사람의 대상만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정 자체만으로는 결혼으로 가는 단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이러한 우정이 깊어져서 둘 만의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결과 결혼하게 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그(그녀)가 혹시 "그(그녀)"인가 하여 데이트를 하는 것은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입니다. 그러한 데이트는 한 번으로 끝날 수도 있고 오랫 동안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남자와 데이트를 했다고 하여 반드시 그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데이트, 즉 적어도 단체의 만남이 아닌 어떤 사람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하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신중해야 합니다. 단지 일회적인 즐거움을 위해 데이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데이트를 하는 동안 서로의 우정이나 사귐이 사랑으로 발전하면 두 사람은 결혼을 생각하게 되고 어떤 한 쪽의 청혼으로 결혼을 약속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주 만날 구실을 만들어서 만나고 싶어합니다. 결국 두 사람이 더 이상 떨어져 다른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을 때 두 사람은 결혼해야만 하는 거지요.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알기 위한 사귐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두 사람이 그저 무작정 만나기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게 되면 곧 감정에만 몰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이 함께 영적 성장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그룹에 함께 참여하거나 또는 의미와 목적을 가진 만남들을 가꾸어 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소외당한 이웃, 불우한 이웃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고 함께 봉사할 수 있는 기관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 있는 근본적인 죄성, 그 중에서 특별히 이기심 때문에 사람들은 결혼한 후에 종종 자기 둘만의 시간과 자기 가정의 행복에만 관심을 집중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 부부는 자기 가정 뿐 아니라 이웃과 다른 가정을 섬기는 삼의 반려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사랑의 수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부부는 하나님께서 자기 가정에 주신 축복을 누릴 뿐 아니라 이웃과 다른 가정을 위하여 사랑의 수고를 할 줄 아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만 머물러 있을 때 우리의 영성은 sine 곡선을 그릴 뿐 좀처럼 성장하지 않지만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과 우리의 삶을 나눌 때 우리의 영성은 하나님을 향하여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나는 장소는 하나님게서 기뻐하실 만한 밝고 건전한 공간을 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둡고 밀폐된 공간이나 세속적인 문화로 가득찬 환경 속에 오래 머무는 것은 젊은이들의 영성을 어둡게 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사랑에 빠지게 합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그로 인해 비록 외적인 행위로 표현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성적인 흥분으로 인한 가슴의 두근거림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데이트하는 과정에서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성적인 흥분과 쾌락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현실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신체적인 접촉을 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용덕 간사님의 말씀을 빌면 "미혼 남녀 사이의 신체적 접촉은 섣부른 에로스를 유발시키는 도화선이 되며, 특히 데이트 중의 신체적 접촉은 '갈 데까지 가버릴'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겐 자제력이라는 것이 있지만 이 점에서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드뭅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그 사람은 예외일 것이라구요? 교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그 사람을 너무 신뢰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결혼의 울타리를 벗어난 성관계는 간음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에 바로 사랑에 빠진 젊은이들이 원하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사람이 처녀 여자를 범했거든 반드시 그 여자를 자기 아내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출 22:16). 그러니까 꼭 결혼할 사람에게는 그것이 허락되었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글쎄요. 혹시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원래 의도하신 방법이 아닙니다. 야곱은 라헬을 자기 아내로 삼기로 마음에 결정하고 또 장인인 라반에게 허락을 받고서도 결혼식이라는 특별한 예식을 하고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기 전에 7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성급한 결정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결혼 전체에 있어서 결혼식이 가지는 역할은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결혼식 자체의 중요한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혼인을 귀히 여기라(히 13:4)"는 하나님의 말씀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4. 결혼의 시기는 언제가 적절한가?
요즘에는 과거에 비해 결혼하는 연령이 늦어졌습니다. 아마 신체적으로는 이팔청춘의 나이가 적절한지도 모르지요. 그런 시기에 자연스럽게 결혼할 수 있던 시절에는 사춘기라는 말이 없었답니다. 그러니까 사춘기의 성적 불만족으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도 생기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러나 결혼이라는 것이 사회제도이기 때문에 사회문화적 환경과 무관할 수가 없어서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인 교육이 끝나고 부모의 도움 없이 생계를 영위할 수 있는 연령이 되어야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사회문화적 환경보다도 더 결혼의 시기를 늦추는 것을 봅니다. 공부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박사 학위를 끝내고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 외 많은 사람들이 일단 돈을 벌고 나서 결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아직 결혼할 상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학업(보통 사람 이상의 기간을 요하는)이나 직장 때문에 아예 결혼을 삶의 우선 순위에서 밀어붙이고 젊음의 때를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돕는 배필의 도움을 받으며 더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직장 생활을 한다면 얼마다 더 좋은 일입니까? 결혼은 부부가 즐거운 일, 힘든 일, 모든 것을 100% 함께 나누는 관계이기 때문에 어떤 일로 인해 결혼을 뒤로 미루는 것은 계산을 잘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결혼을 서두르거나 성급한 결정을 내리라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결혼은 신중해야 합니다. 두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결혼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에 있어서 두 사람이 좋아서 결정하면 언제든지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결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결혼할 당사자들이지만 부모님이나 주위 사람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그분들이 여러분을 사랑하는 분들이며 먼저 결혼 생활을 시작한 인생의 선배이기 때문입니다. 제 남편의 표현을 빌면 결혼은 비가역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이전에 미리 예행 연습을 하고 결혼 생활을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연숩도, 반품도, A/S도 안되는 것이 배우자입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반대하시는 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확신있는 청년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그 분들이 동의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5.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고도 행복할 수 있는가?
세속적인 가치관으로써는 결코 행복한 결혼 관계가 보장될 수 없습니다. 현대의 결혼에 세속적인 태도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은 여성 운동이 사회 곳곳에서 확대되고 있는데 그 여파는 가정에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사실 과거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당연시되었던 남자의 권위주의적인 태도는 배격되어야 합니다. 여성 운동은 그동안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들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대했던 데 대한 반발로서 일어난 운동이며 그 근본에는 남성과 동등한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서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지나쳐서 또 하나의 극단을 낳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여성 운동은 인격 존중의 정신을 일깨워주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인정함으로써 조화롭고 화평한 상태를 이루도록 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요즘의 여성 운동은 가히 투쟁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부부는 서로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섬김으로써, 다시 말해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봉사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먼저 주장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돕는 배필이 될 수 없습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계획 가운데 제정하신 것이므로 그 분의 원리를 따라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이므로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총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그 분을 거역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햇빛과 비를 주십니다. 또 부지런히 씨를 뿌리고 가꾸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누구라도 열매를 거두는 기쁨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며 은총입니다. 마찬가지로 결혼 생활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계획과 방법대로 둘이 하나가 되어 서로를 돕는 배필로서 살면 그리스도인이든 그렇지 않든 행복을 누리고 사는 반면,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은 영적 차원의 결합으로부터 오는 복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엡 5:22-23)"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남성 우월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지만 이 말씀은 남편이 아내에 대해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말씀입니다. 오히려 성경의 근본적인 가르침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엡 5:21)"하는 것입니다. 다만 엡 5:22-23의 말씀은 남자와 여자의 심적 생리를 가장 잘 아시는 창조주 하나님게서 가정의 질서와 참된 사랑의 방법을 가르쳐주시기 위한 말씀입니다.
6.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여자는 어떤 점에서 남자를 돕는 배필이 될 수 있는가?
이것은 사람마다 능력이나 소질이 다르고 성격적 특성 등이 다르기 때문에 꼭 어떤 점에서 여자가 남자를 도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어폐가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어떤 여자는 남편을 지적인 면에서 돕는 배필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여자는 경제적으로 남편을 도울 수 있고, 어떤 여자는 남편의 손과 발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 아내는 여자이기 때문에 결혼에서 남자인 남편을 도울 수 있는 특별한 부분이 있습니다. 가장 쉬운 예는 자녀를 출산하는 일입니다. 결혼한 부부에게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복 중에 자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자녀는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로서 얻어지는 것이지만 신체적으로는 여자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자녀를 얻는 데 있어서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아이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일을 비롯하여 여자가 대부분의 일을 담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수유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분의 설계 가운데 여자로 하여금 그러한 일들을 하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도움이 없이는 남자가 자녀를 보는 기쁨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때로 자신의 사회적 성취를 뒤로 하고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책임을 감당함으로써 남자를 돕는 배필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자녀의 양육에 남자의 몫이 없다는 것도 아니고,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결혼 최대의 의미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여자는 남자와 성적으로 차별되어서는 안되지만 기능적인 차이는 인정해야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여자는 일반적으로 남자보다 섬세한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대부분 일에 몰두하여 인생의 다른 측면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가지고 인간 관계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면에서 가정과 사회에서 남편을 돕는 배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여자가 남성에 비해 영적으로 민감하다는 사실에도 적용됩니다. 어쩌면 신앙도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인 폴 투르니에는 남성과 여성의 일반적인 특성을 객관적인 관계와 인격적인 관계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이 두 가지 관계 유형은 결코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7. 결혼 예물은 얼마나 준비해야 할까?
결혼을 계약적 관계로 이해하는 사람들 중에는 흔히 혼수로 인새 발생하곤 합니다. 남자들 중에는 가끔 나는 의대를 졸업했으니까, 고시에 합격했으니까, 혹은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니까 아파트, 승용차는 등 돈이나 물건으로 혼수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혼수를 요구하는 사람은 비록 요구한 혼수를 받았다고 해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많은 혼수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불만족해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일수록 더 혼수시비로 문제를 일으킵니다.
혼수로 인해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 없이 아직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혼수를 문제삼는 부모님께는 바른 예물관을 가지고 공손히 의견을 말씀드리는 것이 옳겠지요.
행복한 결혼을 위한 준비는 결코 예물이나 혼수가 아닙니다. 결혼에서 최대의 혼수는 바로 배우자 자신인 것입니다. 혼수시비는 배우자 자신의 인격에 대한 모독이며, 나아가 배우자를 길러 주신 상대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배은망덕한 행위이고, 결혼은 언약적 관계에서 계약적 관계로 격하시키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결혼을 위하여 정말로 중요한 준비는 상대방을 자신의 인격 속에 포용할 수 있는 인격적 성숙과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자신을 순복시키는 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무엇보다도 섬김의 훈련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 섬김의 대상으로서 먼저 손꼽아야 할 사람은 각 사람의 배우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돕는 배필로서 두 사람을 부르신 것입니다. 두 사람은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서로 귀히 여겨야 합니다.(벧전 3:7)
하나님께서는 결혼을 통해 두 사람이 완벽한 교제로 인한 완벽한 친밀감을 가지시기 원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신 부부 간의 연합입니다. 이 연합으로 말미암아 부부는 상대방을 통해 지속적인 기쁨과 자신의 인격적 성숙을 경험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결혼은 인격을 부요하게 하며 폭 넓은 성품을 갖추어 줍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참된 그리스도인이 결혼을 하게 되면 영적으로 깨닫는 범위가 넓어집니다."(케퍼 & 위리엄즈, <그리스도인이 결혼을 앞두고>, 생명의 말씀사) 그것은 결혼은 허물 많고 연약한 두 남녀가 이십 수 년간 전혀 다른 가정 환경 가운데서 자라서 하나를 이루는 과정이기 때문이며 그 가운데서 경험하는 축복과 성숙은 단련된 보석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꿈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나 비그리스도인들에게나 결혼은 현실이지만, 그러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현실입니다. 결혼을 앞둔 여러분들이 가정을 위해 준비할 것은 그리스도가 주인되시는 가정에 대한 꿈을 나누는 것과 이기심을 버리고 서로를 섬기는 훈련입니다. 그리고 그런 섬김의 실천자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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