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예비학교 제 1 일 - 기독 청년의 결혼관
박진경/ 기독학술교육연구소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두 사람의 사랑으로 이루는 행복한 삶을 그립니다. 특히 예수 믿는 청년들은 결혼 전에 그들의 결혼 생활을 꿈꾸며 "그리스도가 주인되시는 아름다운 가정"을 마음에 그려봅니다.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쌍이 결혼한 후에 그들이 그리던 삶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갑니다. 최근 우리 주변의 상황들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서 항상 행복한 결혼생활이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닌 듯합니다.
1. 결혼 - 미지의 세계, 달콤한 꿈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결혼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여러분들 대부분은 여러분의 부모가 결혼하여 이룬 가정 속에서 자랐지만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것은 사실상 결혼의 외적인 부분들이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영역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미지의 세계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젊은이들은 propose를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연애 기간을 달콤하게 보내지만 결혼은 그보다 더 좋은 것이라는 기대 속에 결혼을 합니다. 때로 결혼이 늦어지는 청년들은 조바심을 내면서 배우자가 될 사람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혼의 젊은이들이 결혼에 대하여 가지는 관심은 결혼생활 자체라기보다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 이성으로 인한 흥분 혹은 알 수 없는 그리움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남편과 저도 마찬가지여서 제 남편의 말을 빌면 우리는 그 때 더 이상 떨어져 있을 수 없어서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식장에서 저는 많은 사람 앞에서 신부 노릇을 해야했기 때문에 부끄러워서 눈을 들어 남편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지만 제 남편이 얼마나 좋아했었는지는 상상만해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신혼여행을 가면서 열차 안에서 저희들은 이제는 공공연하게 둘만의 시간과 세계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정말 좋아했습니다.
저희들이 신혼여행을 가서 제일 먼저 새롭게 시도한 일은 "여보, 당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그렇게 부를 때마다 우리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야릇한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결혼한다는 사실은 달콤한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이혼
그런데 그 꿈이 얼마나 갑니까? 요즘은 서양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부부들 사이에 이혼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혼이 급증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혼 자체가 우리에게 친근한 사회적 환경이 되었다는 사실도 들 수 있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살다 보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전 세대의 부부들은 그 어려움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했던 반면 요즘 세대의 젊은 부부들은 문제를 받아들이거나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남들도 많이 하는 이혼이기 때문인지 이혼을 어렵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힘든 과정 보다는 이혼이라는 것이 훨씬 쉬운 대안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혼한 사람의 말을 빌면 '이혼은 모든 문제의 종결이 아니라 절망의 시작'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결혼 생활에서의 갈등과 낙심을 이혼으로 해결하는 것은 최악의 방법입니다. 더구나 이혼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문제를 덮어두고 참기만 하는 것도 좋은 해결책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결혼한 부부에게 원하시는 축복된 삶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통계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이혼률은 이미 10쌍 중 1쌍을 넘어섰습니다. 1981년에는 407,064쌍이 결혼하고 24,278쌍이 이혼한 것으로 집계된 데 비해, 1991년에는 416,393쌍이 결혼하고 49,458쌍이 이혼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처럼 이혼율은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이혼의 풍속도도 바뀌어 예전에는 부부로서 더이상 참지 못해 이혼을 하면서도 서로 자녀양육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했던 반면, 요즘은 서로가 자녀를 떠맡지 않으려고 한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일이 있습니다.
3. 전통적 결혼관과 현대의 결혼관의 차이
이러한 변화는 근본적으로 결혼관의 변화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결혼은 인간 사회를 지탱시켜 주는 가장 기본적인 제도로 인식되었었습니다. 그래서 결혼한 사람이 결혼이라는 제도 밖으로 나가는 것, 곧 이혼하는 것은 사회의 기본적인 도덕을 부정하는 것이 되므로 비록 결혼 생활이 원만하지 못한 부부라고 하더라도 이혼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혼을 제도로서 이해하기보다는 어떤 개인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기 성취 혹은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하나의 단계로서 이해합니다. 현대는 과거에 비해 개인을 강조하는 사회이며 이러한 변화는 결혼관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결과 결혼에 있어서 중요한 촛점은 개인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권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결혼이 인간 사회를 지탱시키는 중요한 제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개인의 행복을 저해하거나 자기 성취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더이상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묶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현대인들의 사고입니다.
과거의 결혼 제도 속에서는 부부가 서로에게 의무감을 가진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남편은 권위주의적인 태도로 아내를 대했으며 아내와 남편은 서로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결혼하며, 가정에서의 역할도 대화를 통해 서로의 편의대로 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동등한 권리가 인정되기 때문에 결혼 생활이 더 행복할 듯도 한데 현대에 와서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계약적 관계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계약적 관계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부부가 상호 간에 사회적, 경제적으로 대등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결혼 관계에서 계약적 권리를 찾으려고 합니다. 결혼을 계약 관계로 이해하는 젊은이들은 결혼상대자를 정할 때 외적인 조건들을 중시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내와 남편이 각각 자신의 삶의 50%씩을 투자하여 결혼이 성립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회적인 제도로서의 결혼이나 자아 성취의 한 방편으로서의 결혼은 결코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오늘날 10%를 훨씬 웃도는 이혼률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만 사실 법적인 이혼을 하지 않더라도 별거를 하는 사람들이나 자녀들과 사회를 의식해서 마지 못해 억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포함한다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부부 관계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복을 누리지 못하고 지내는 것입니다.
4. 성경적 결혼관
그러므로 결혼은 단지 사회 제도나 혹은 자아 성취의 방법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결혼을 '관계'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결혼으로 말미암아 두 사람은 특별한 방법으로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결혼은 양쪽이 모두 100%를 투자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결혼은 남편과 아내가 둘 다 자신의 100%를 드려야 하는 관계입니다. 이것은 계약의 관계가 아니라 언약의 관계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이 새로운 관계에 의해 두 사람은 공동운명체가 되는 것입니다. 즉 결혼한 두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공동체적 동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약적 관계는 계약적 관계와 다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적 관계는 은혜로 주어지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결혼을 계약적 관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혼 생활에 있어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데 관심이 있지만, 사실 결혼은 권리를 가진 관계가 아니라 책임을 수반한 관계입니다. 결혼에서 권리를 찾으려고 하는 부부는 결코 참된 사랑의 의미를 알 수 없고 따라서 행복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결혼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언약적 관계임을 아는 부부는 자신의 권리를 기꺼이 포기함으로써 상대방을 섬기는 가운데 참된 사랑의 의미를 이해하며 결혼 밖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행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때때로 어려움을 겪고 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결혼을 가리켜 '금이 간 항아리를 두 사람이 들고 가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결혼이 언약적 관계임을 깨닫는 부부들은 어려움의 때를 함께 대처해 나갑니다. 아내가 당하는 슬픔이나 마음의 상처는 아내의 것만이 아닙니다. 남편이 당하는 스트레스나 고통은 남편의 것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혼자 헤쳐나가야 할 인생길에 동반자가 있음을 감사하는 가정입니다. 첫째는 동반자를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요, 둘째는 동반자가 되어 준 아내나 남편에게 대한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소위 propose라고 하는 것은 '인생을 살아 가는 데 있어 저는 당신의 동반자가 되고 싶습니다. 당신도 저의 동반자가 되어 주시겠습니까?'라는 요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propose를 하는 순간은 엄숙한 순간입니다.
인간에게 있는 많은 제도들이 인간의 지혜로부터 나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결혼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입니다. 결혼을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셨다는 사실은 결혼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단지 사회제도나 개인의 삶의 만족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영적 차원이 있는 하나님의 설계입니다. "부부는 둘이 아니라 하나"(마 19:6)라는 선언은 인간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때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셔서 서로가 서로를 돕는 배필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둘의 관계는 인간에게 있어서 다른 모든 관계보다 우선하는 것입니다. 둘이 합하여 하나가 된다고 하는 것은 단지 육체적인 측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서적 혹은 심리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며 경제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고 생각하는 것이나 가치관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야 하며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된다는 말은 둘이 완전히 같은 동일체가 된다는 말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가지는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의 완벽한 교제와 친밀성으로 인해 서로를 마치 자기 자신처럼 이해할 수 있으며 서로를 포용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5. 결혼의 의미
결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관계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결혼은 어떤 한 순간, 즉 결혼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이루는 삶의 계속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결혼과 결혼식을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결혼식은 하나의 형식이며 결혼식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많은 것들은 겉치레에 불과합니다. 결혼식은 단지 결혼으로 들어가는 문에 불과합니다. 결혼의 진정한 의미는 둘이 하나가 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둘이 함께 살아가는 연륜이 더해감에 따라 그들의 관계와 사랑이 깊어지는 것이며 더욱 더 완벽한 결혼에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 뿐 아니라 사랑을 주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있어서 사랑을 어떤 형태로든 표현할 수 있을 때 삶은 더 풍요로와지고 그런 삶속에서 의미와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결혼은 바로 이런 두 가지 욕구가 잘 결합될 수 있는 이상적인 관계입니다.
행복은 결혼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특별한 복입니다. 사람이 결혼을 하지 않고서도 인생을 보람되게 살 수 있고 기쁨과 즐거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감은 결혼을 통해서만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다른 사람들과 삶의 많은 부분을 나누는 공동체들이 있긴 하지만 어떤 공동체 안에서의 교제도 부부간의 친밀감을 따라갈 만한 것은 없습니다. 결혼식장의 서약 내용대로 부부는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기쁠 때나 병들었을 때나 건강할 때나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기까지 인생의 동반자로서 삶의 희노애락을 나누며 사는 특별한 관계입니다.
6. 부부 관계 - 연합
성경은 이러한 부부의 관계를 연합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 2:18과 2:24-25)
첫째로, 부모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부모를 떠난다는 말의 의미는 공간적 독립이라기보다 심리적 독립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혼한 후 분가하여 살림을 따로 사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혹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이라고 해도 남편과 아내의 연합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부모 밑에서 자란 두 사람은 결혼을 통해 공식적으로 부모로부터 독립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도 자기의 부모를 떠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부모로부터 떠나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부의 연합을 위해서입니다. 저는 부부가 연합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일 어떤 여자가 결혼을 하고도 남편과 대화하는 시간보다 친정 어머니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더 많다면 그것은 남편과의 연합에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남자가 결혼한 후에도 어떤 문제를 아내와 의논하기 전에 먼저 자기 부모와 의논한다면 그것은 아직 부모를 떠나지 못한 태도이며 그러한 태도는 아내와의 연합을 방해합니다. 결혼 생활에 있어서 두 사람의 연합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연합이란 부부가 공동체적 동반자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부부는 둘 사이에 숨김 없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벌거벗은 관계란 둘 사이에 가리운 것이 없는 관계를 말합니다. 벌거벗은 관계를 가로 막는 것은 자존심입니다. 그러므로 부부 간에 의사소통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존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부족하고 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존재라는 사실을 남편이나 아내에게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부족함을 상대방에게 고백할수록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는 여러분을 사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입장을 바꾸어 여러 분의 남편이나 아내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여러 분에게 고백할 때 여러 분 중에 누구도 그로 인해 상대방을 멸시하게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둘 사이에 숨김 없는 관계를 가지기 위해 대화는 필수적입니다. 대화는 서로 간에 생기는 감정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혼에 있어서 부딪치는 실제적인 다른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필수적입니다. 아무리 오랜 기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두 사람이 결혼할 때 상대방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둘이는 이미 이십년이 넘는 세월을 다른 부모 밑에서,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결혼한 후 한참 동안 서로를 알고 적응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신혼의 어떤 자매가 저에게 와서 자신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하소연했습니다. 그것은 결혼하고 남편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미리부터 알고 있었다면 충격이 없었을 텐데 막상 결혼하고 알게 되니 속은 듯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빚은 대부분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데이트 자금 혹은 결혼 예물과 전세금 등으로 생긴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 남편이 자신의 경제 사정을 결혼 전에 보다 솔직하게 자매에게 말해주었다면 그들은 보다 지혜롭게 결혼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할 수 있는대로 지금부터 자기의 생각과 감정들 뿐 아니라 실제적인 삶의 여러가지 문제들을 배우자가 될 사람들과 함께 많이 나누시길 권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형제는 가정의 경제 사정이 아주 어려운 자매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들 부부는 신랑의 부모가 신부에게 해주는 패물비를 절약하여 신부 집에서 신랑 집에 드리는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저는 이 부부가 아주 지혜로운 방법으로 결혼을 준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결혼 전부터 어느 한 쪽의 어려움을 둘이 함께 해결해야 할 일로 생각했다는 점에서 칭찬을 해 주고 싶습니다. 이런 일들은 서로 간의 충분한 대화와 신뢰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로, 부부는 서로 돕는 배필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느 한 쪽만을 위한 일방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돕는 배필로서 두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인간은 깨어지기 쉬운 연약한 그릇들입니다. 부부는 서로 가까이 있을 뿐 아니라 상호 간에 특별한 사랑을 기대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보다 서로에게 더 상처받기 쉽습니다. '돕는 배필'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 두 사람이 역할을 분담하여 맡은 일을 하면서 서로를 돕고 위로하며 격려하라는 뜻이지 어떤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종속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두 사람은 서로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돕는 배필이 된다는 것은 남편이나 아내가 상심했을 때 위로해 주고 지쳤을 때 격려해주고 약점이나 모자라는 점이 있을 때 그것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배우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벌거벗은 듯이 드러내 놓더라도 상대방에게 비난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사는 일은 정말 신나는 일입니다. 결점과 약점이 있는 남편이기에, 또는 아내이기에 여러 분들이 아내로서, 혹은 남편으로서 존재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매사에 완벽한 남편이나 아내와 사는 것보다 사실은 여러분의 결혼 생활을 더 즐겁고 보람있게 해 줄 것입니다. 저는 가끔 제 남편에게 "여보! 저처럼 집안 정리도 잘 못하는 아내를 사랑해 줘서 고마워요." 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남편은 "그게 바로 당신의 매력이야."하고 말하며 저를 꼭 안아 줍니다.
결혼 생활에서 행복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할 때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들은 이 사실을 잊고 지내지요. 그래서 돕는 배필이 되기 보다는 자기의 기준에 맞게 배우자를 길들이고 고치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부부 싸움은 이런 데서 제일 많이 생깁니다. 배우자가 가지고 있는 눈에 거슬리는 습관들을 자기 기준에 맞게 고치고 길들이려고 하면 할수록 다툼만 생길 뿐입니다. 결혼하기 전 20년 이상 가지고 있던 버릇을 고치는 것은 쉽지 않지요. 그리고 반드시 자기가 가진 취향만 옳은 것이라고 볼수도 없습니다. 또 대부분은 아주 사소한 것이어서 행복한 부부 관계를 해칠만큼 중대하지도 않은 것들인데 많은 부부들이 그런 사소한 것들을 너무나 중요한 행복과 바꾸려고 합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어쩌면 사소한 결점들을 용납해 주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 약점과 결점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들추어 내고 잔소리하고 비난하기 보다는 덮어주고 오히려 그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려고 노력한다면 서로에게 정말 귀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치약을 중간부터 쓸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끝에서부터 알뜰하게 시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간부터 쓴 사람도 나중에는 끝까지 다 눌러 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옷걸이를 안쪽에서 걸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바깥 쪽에서 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그리스도가 주인되시는 가정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일들을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정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두 사람이 문제에 부딪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것은 첫째로 인생의 다반사가 문제의 연속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고, 둘째로 결혼은 20여년 이상 30년 가까이 서로 다른 환경 가운데서 살아온 두 인격의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부는 어떤 면에서든지 다른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혼 전에는 서로의 다른 점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때로는 그것들이 상대방에 대한 매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결혼하고 나면 그것에서부터 문제가 생겨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봅시다. 적극적이고 성격이 활달하고 부지런한 여자가 매사에 여유있고 사려깊은 남자와 데이트를 하면서 자기들은 정말 잘 조화되는 한 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완벽한 짝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혼 여행을 다녀 온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여자는 남편과 함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고 하루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남편에게 부시시한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 찬물에 세수를 하고 단정한 차림으로 남편을 깨웠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피곤하다며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식사 준비를 해 좋고 다시 남편을 깨웠습니다. 아침 출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이 여유있는 남편은 5분만 더 누워있겠다면서 다시 이불을 뒤집어 쓰는 것입니다. 이 아내의 답답하고 절망스러운 마음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이런 남편과 함께 인생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라는 성의 차이 말고도 성격이나 기질의 차이, 가정 배경의 차이, 능력의 차이, 흥미의 차이 등 결혼한 부부가 부딪히는 차이점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남자들은 일에 관심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고 여자들은 사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서로가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쓸쓸하고 비참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차이점들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줄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을 보아야 합니다. 서로 다른 점을 가진 두 사람이 협력하면 삶이 더 풍요해지고 깊이가 더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할 때 상대방을 인정해주고 서로가 도움을 받으며 고마운 마음으로 대한다면 둘은 진정한 의미의 돕는 배필이 될 것입니다.
저는 김수지 교수님과 김인수 교수님의 결혼 이야기를 듣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김인수 교수님께서 김수지 교수님께 자기와 결혼하기로 마음을 정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당신은 제가 도와 줄 일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하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자매들에게 결혼상대자로 어떤 사람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그리스도인, 비그리스도인을 막론하고 자기만을 사랑해 줄 사람이라고 서슴없이 대답하는 것을 보곤 합니다. 이 둘 사이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요. 그 차이는 얼마있지 않아 그들의 결혼 생활의 질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저는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어떤 사람을 배우자로 정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질문하면 "평생 기쁜 마음으로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옛날에 어떤 왕자가 한 여자에게 해가 지는 들판에 서서 황혼을 바라보며 결혼을 청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저와 결혼하면 저의 사랑과 제가 가진 모든 부와 저의 성에 속한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 될 것입니다.-라고. 여자는 결혼을 승락했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후 그 여자가 알게 된 것은 성안에 먼지가 쌓여 있는 많은 방들과 복도와 창문들은 모두 자기가 쓸고 닦고 꾸며야 하며 성에 사는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할 뿐 아니라 수시로 찾아오는 많은 방문객들을 대접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결혼하는 젊은이들 중 많은 남자들은 왕자와 같은 마음으로 여자들은 신데렐라나 공주와 같은 기대감을 가지고 결혼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결혼은 꿈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옵니다. 그들이 시작한 결혼 생활을 위해 하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깨끗이 정돈되어 있는 궁전 같은 방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합니다. 그런데 사랑을 받으려고 결혼합니까? 주려고 결혼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고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생기는 문제의 많은 부분은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고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이기심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혼 생활은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성장의 한계에 서 있게 됩니다. 개인적인 영성의 한계는 물론 부부 간의 관계도 더 발전적으로 풍성하게 성장하지 못합니다. 이기심으로 가득찬 사람은 비록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비그리스도인과 마찬가지로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사랑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기심을 극복한 사람은 결혼이 연애의 무덤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이 비밀을 아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결혼은 언약적인 축복을 경험하는 문이 됩니다.
네째로, 이 모든 일들에 있어서 부부는 믿음 안에서 연합해야 합니다.
신앙은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주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들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결혼은 하나의 커다란 모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험을 떠나는 사람은 그것이 지니고 있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대로 가득차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보화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보화들은 서로가 나눔으로써 얻어질 수 있습니다. 슬픔과 기쁨, 소유, 건강과 질병, 희망과 실망 혹은 좌절, 실패와 성공, 스트레스 등 삶의 모든 측면들을 나눔으로써 슬픔 가운데서도, 질병 가운데서도, 실망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견디기 힘든 짐을 지고서도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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