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료

[스크랩] 마틴 루터의 1517년 위텐버그 대자보 전문

수호천사1 2010. 1. 8. 20:07

마틴루터가 1517년에 위텐버그의 교회문에 메달은 95개 조항



1. 우리 주님과 주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길 “회개하라(마 4:17)”고 하셨다.

    주님은 신자들의 모든 삶이 회개의 삶이시기를 원하셨다.
2. 이것은 고백성사같이 성직자들에 의해 베풀어지는 고백과 만족으로 이해될 수 없다.
3. 그러나 또한 단지 내적 회개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내적 회개는 육체의 다양한 형태의 고행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가치없는 것이다.
4.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자기를 미워하는 행위인 내적 회개의 날 동안 죄의 형벌은 여전히 남아있다.
5. 교황은 자기 권위나 정경에 의해 부과된 형벌을 제외하고는 형벌을 감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


6. 하나님께서 죄를 감하셨다고 선언하시고 나타내 주시거나,

    그의 심판을 보류함으로 죄를 감하실 때만 교황은 죄를 감할 수 있다.

    만일 이런 경우들에 한해 죄를 감할 수 있는 그의 권위가 무시된다면 죄는 여전히 용서받지 못한채로 있을 것이다.
7. 하나님께서는 모든 경우에서 자기를 낮추고 교황과 사제들에게 복종할 때 그의 죄를 감하신다.
8. 속죄법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부과되며 교회법 자체에 따라 죽은 사람에게는 부과되지 않는다.
9. 그러므로 성령은 교황이 자신의 교령에 죽음과 불가피성의 예외 문구를 만드는 한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친절을 베푸신다.
10. 죽은자의 대해 연옥의 정경적 형벌을 보존하는 사제들은 무식하고도 사악하게 행동한다.

11. 연옥 형벌에 대한 정경적 형벌을 변형시키는 독초는 분명 주교들이 잠들 때 심겨진다.
12. 전에는 정경적 형벌이 사죄 후가 아닌 이전에 회개의 시험으로 부과되었다.
13. 죽은 자들은 죽음에 의해 모든 형벌에서 놓이며, 정경의 율법에 따라 이미 죽었고 모든 형벌에서 놓일 권리를 얻게 된다.
14. 죽은 자에 대한 불완전한 경건과 사랑은 반드시 거대한 두려움을 가져온다. 사랑이 적을 수록 두려움이 커진다.
15. 이런 두려움은 그 자체로 연옥의 형벌을 만들어 내기에 족하다. 그것은 절망의 두려움에 근접한 것이기 때문이다.


16.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은 절망과 두려움, 그리고 구원의 보장과 같은 차이이다.
17. 연옥의 영혼들에게 두려움은 줄어들고 사랑이 커지는 듯하다.
18. 더 나아가  연옥의 영혼이 사랑 속에 성장할 수 없을 만큼 공로의 외곽에 있다는 것이

      이성이나 성경에 의해 입증되지는 않은 것 같다.
19. 또한 우리가 전적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연옥의 영혼들이 모두는 아니라도

      그들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고 보장받고있는 것 같지는 않다.
20. 그러므로 교황이 “모든 형벌의 전적 탕감”이란 말을 사용할 때

      그 말은 “모든 형벌”이 아닌 교황 자신에 의해 부과된 형벌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21. 그러므로 사람이 모든 형벌에서 면죄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거나

      교황의 면죄부를 통해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22. 사실 교황은 연옥의 영혼들이 생애동안 갚아야하는 형벌에 대해 정경의 법에 따라 어떤 형벌도 감할 수 없다.
23.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벌의 감해짐이 누구에게든지 부여된다면 틀림없이

      그것은 가장 완벽하고 극소수의 사람에게 부여될 것이다.
24.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필시 무분별하게 소리만 높은 형벌의 면제에 대한 약속에 속고있는 것이다.
25. 교황이 연옥에 대해 가지고 있는 능력이란 일반 주교나 교구목사가 자기 교구에서 가진 특수한 형태의 능력과 다름이 없다.


26. 교황이 가지고 있지도 않은 권력의 키가 아니라 중보기도에 의해 연옥의 영혼들의 형벌을 감해준다면

      그것은 아주 옳은 일이다.
27. “돈이 돈궤에 떨어지는 순간 연옥의 영혼이 벌떡 일어나 날아간다”고 그들은 인간적 교리를 가르친다.
28. 돈이 돈궤에 떨어질 때 욕심과 탐욕이 자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교회가 중재할 때 그 결과는 오직 하나님 한분의 손에 달려있다.
29. 연옥의 모든 영혼이 구속받기를 원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전설에 관련하여 성 세베리누스와 성 파스칼을 예외로 둔다.
30. 아무도 자신의 완벽한 회개를 자신할 수 없고 충분한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31. 면죄부를 사는 자가 실제로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뉘우치기는 희박하다. 정말 희박하다.
32. 면죄부를 가지고 있으므로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자들은 그들을 가르친 자와 함께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이다.
33. 교황의 용서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것에 의해 사람이 하나님과 화해가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받드시 경계해야한다.
34. 왜냐하면 면죄부의 은혜는 사람이 세운 성례전적 만족의 형벌과만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35. 연옥으로부터 영혼을 사거나 회개의 특권을 사려는 사람에 대해

      회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가르치는 자들은 비기독교적 교리를 전하는 것이다.


36. 진정한 회개를 하는 모든 크리스찬들은 면죄부 없이도 모든 죄와 형벌을 탕감받을 권리를 갖고있다.
37. 산자든 죽은자든 진정한 크리스찬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든 축복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것은 면죄부가 아닌 하나님에 의해 부여된다.
38.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의 사죄와 축복은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이미 6항에서 말했듯이 신적 사죄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39. 면죄부의 혜택과 회개의 필요성을 사람들에게 동시에 말하기란 학식있는 신학자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40. 진정으로 회개하는 크리스찬은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을 구하고 기꺼이 받고자 한다.

      그러나 면죄부의 혜택은 형벌을 완화하며 형벌 받기를 싫어하게 한다. 적어도 그것은 형벌을 싫어할 기회를 제공한다.


41. 교황의 면죄부는 조심스럽게 가르쳐져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다른 사랑의 선행들을 더 좋아하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42. 크리스찬들은 교황의 의도가 면죄부를 사는 것을 자선의 행동에 비교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한다.
43. 크리스찬들이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땅을 나누어 주는 것이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훨씬 좋은 행동임을 알아야한다.
44.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의 행위에 의해서 성장하며 그로인해 사람이 보다 사람다워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단지 형벌로부터 달아나게 하는 면죄부에 의해서 사람다워질 수 없다.
45. 크리스찬들은 가난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면서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부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임을 알아야한다.


46. 크리스찬들은 자신들이 충분히 필요한 만큼 가지기 전에는 가족들의 필요를 위해 충분히 비축해야 하며

      결코 면죄부 따위에 허비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47. 크리스찬들은 면죄부를 사는 것은 자신들의 자유선택에 의함이지 강요에 의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48. 크리스찬들은 교황이 면죄를 베푸는데 있어 돈보다 헌신적인 헌신적인 기도를 원하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49. 크리스찬들은 자신들이 신앙을 면죄부에 두지 않고 오히려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잃는 것을 매우 두렵게 여기게 될 때만 교황의 면죄부가 유용한 것임을 알아야한다.
50. 크리스찬들은 만일 교황이 면죄부를 가르치는 자들의 부당행위를 알았더라면 그는 바실리카의 성 베드로 성당이

      양들의 살과 뼈로 세워지는 것보다 오히려 타서 재가 되는 것을 더 선택했을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한다.


51. 크리스찬들은 교황이 바실리카의 성 베드로 성당을 팔더라도 자기 돈을 들여서

      면죄부의 속임수 돈을 위한 사냥꾼에게 주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52. 아무리 면죄부 판매자나 교황이 자신들의 영혼을 보증으로 내세운다 하더라도

      면죄부에 의한 구원을 믿는 것은 헛된 것이다.
53. 면죄부의 가르침을 위해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막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교황의 적이다.
54. 말씀 보다 면죄부에 헌신된 설교와 시간들 속에서 이미 하나님의 말씀은 상처를 입고 있다.
55. 틀림없이 교황은 무의미한 면죄부가 하나의 종, 한 줄의 행렬,

      그리고 한 번의 예식으로 기념된다면 복음은 그보다 백갑절 더한 것으로 기념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56. 교황의 면죄부는 교회의 진정한 보배로부터 나왔을텐데 그것은 크리스찬들에게 충분히 논의되지도 알려지지도 않았다.
57. 면죄부가 현세적 보배가 아님이 분명한 것은

      많은 면죄부 판매자들이 그것들을 무상으로 베포하지 않고 많은 돈을 거둬들인다.
58. 또한 그것은 그리스도나 성도의 공로가 아닌 것이 교황이 없이도

      그 글들은 언제나 내적 사람에게 은혜로 작용하고 외적 사람에게는 십자가와 죽음과 지옥으로 작용한다.
59. 성 로랜스는 교회의 가난한 사람들이 그 교회의 보배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단지 자기시대의 말을 사용하여 말한 것이다.
60. 크게 생각하지 않고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로로 주어진 교회의 열쇠가 보배라고 말할 수 있다.


61. 따라서 교황의 권력은 그 자신에 의한 헝벌의 감소와 사건의 보존에 대해 그것 자체로 충분함이 분명하다.
62. 교회의 진정한 보배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가장 거룩한 복음이다.
63. 그러나 이 보배는 밉쌀스러워서 먼저된 자를 나중되게 만든다.(마 20:16)
64. 반면에 면죄부의 보배는 매우 마음에 드는 것이로 나중된 자를 먼저되게 한다.
65. 그러므로 복음의 보배가 이전에는 부자를 낚는 그물이었다.


66. 면죄부의 보배는 현재 부자를 낚는 그물이다.
67. 선동자들이 가장 큰 은혜라고 소리 높이는 면죄부는 실제로 모금을 증진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68.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의 경건에 비해서 실제로 전혀 무의미한 것이다.
69. 주교와 교구목사들은 교황의 면죄부 판매위원들을 존경해야할 의무를 가졌다.
70. 그러나 이들은 더욱 그들이 교황의 명령을 제쳐두고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도록 하기위해

      자신들의 눈과 귀를 긴장시켜야할 의무가 있다.


71. 교황의 면죄부에 관계해 진리에 어긋나게 말하는 사람은 파문과 저주를 받아야 한다.
72. 그러나 면죄부 전파자의 권리와 욕망에 대해 자신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73. 교황이 면죄부를 판매하는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모든 행위데 대해 정당하게 진노하듯이
74. 더욱이 교황은 거룩한 진리에 해를 가하는 구실로서 면죄부를 사용하는 자들에 대해 진노하고자 한다.
75. 교황의 면죄부가 위대한 것으로 여겨져서 누가 불가능한 일을 행했거나

      하나님의 모성을 파괴했더라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76. 우리는 반대로 죄가 관계된 한 지극히 경미한 죄라도 교황의 면죄부가 제거할 수 없다고 말한다.
77. 심지어 성 베드로가 현재의 교황이라해도 더 큰 은혜를 부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성 베드로와 교황에 대해 참람한 것이다.
78. 반대로 우리는 현재의 교황이나 어떤 교황이라도 자기 뜻대로 더 큰 은혜,

      즉 복음과 영적 능력, 병고치는 은사등을 가졌다고 말한다. 고전 12:28에 쓰여있는 것처럼.
79. 교황의 갑옷과 면죄부 전파자에 의해 치장된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동일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자는 참람한 자이다.
80. 주교나 교구목사, 그리고 신학자들이라도 이런 말이 사람들 가운데 전파되도록 허용하는 자들은

      그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81. 이 면죄부의 가르침은 학자라도 비방이나 무지한 사람들의 불평의 질문으로부터

      교황이 받아 마땅한 존경심을 지키기가 어려울 것이다.
82. 무지한 자들의 질문들이란

      “어찌하여 교황은 교회를 짓는데 쓰이는 보잘 것 없는 돈을 위해 무한정한 영혼을 구할 수 있다면,

       거룩함과 영혼의 긴박한 요구를 위해서는 연옥을 비울 수 없는가?”

      “전자의 이유가 사소한 것이라면 후자의 이유는 가장 정당한 것일텐데”
83. 또한 “어째서 죽은자들을 위한 장례들이 줄을 이으며 그들로부터 거둬들인 기부금을 돌려주지 않는가?

      구원받은 사람들을 위한 기도는 그릇된 것이 아닌가?”
84. 또한 “경건하고 사랑스런 영혼들을 오직 사랑을 위해 연옥에서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경건한 자와 원수들이 하나님의 친구인 경건한 영혼을 연옥에서 나오게 하는 돈에 관심을 두는 것이

      하나님과 교황의 새로운 경건이란 말인가?”
85. 또한 “어찌하여 오래전에 폐기되어 사장된 사실들과 사용하지도 않는

      속죄법이 지금 그들이 여전히 살아있고 효력이 있는 것처럼 연옥의 승인에 의해 만족되는가?”


86. 또한 “어찌하여 가장 부유한 사람들 보다 훨씬 더 돈이 많은 교황이

      자기 자신의 돈으로 성 베드로 성당을 짓지 않고 가난한 신자들의 돈으로 짓는가?”
87. 또한 “왜 교황은 자신들의 공적으로 이미 감하거나 축복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부여하는가?”
88. 또한 “사람들이 이런 경감과 축복을 모든 신자들에게 하루에 백번씩 부여한다면

      교황이 단 한번만이라도 할때 이보다 교회에 더 큰 축복이 어디있겠는가?
89. 왜냐하면 교황은 자신의 면죄부를 통하여 돈보다 영혼들의 구원을 더 바라는데.“

      ”왜 교황은 이미 면죄와 용서의 동일한 효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러한 것을 주려하는가?“
90. 이런 무지한 자들의 날카로운 논쟁을 적절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단지 힘으로 억누르려 하는 것은 교회와 사람들을 원수들의 조롱에 노출시키는 것이고 크리스찬들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다.


91. 그러므로 면죄부가 교황의 올바른 정신과 의도에 의해서 전파된다면

      이러한 모든 의심들은 기꺼이 해결될 것이고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92.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 6:14)라고 외친 선지자들을 치워버리라.
93. 그리고 “십자가, 십자가 하나 십자가가 없도다”하는 선지자들은 복이 있으리라.
94. 크리스찬들은 형벌과 죽음과 지옥을 통해서 그들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따르도록 훈계받아야 한다.
95. 그리하여 거짓된 평화의 보장이 아닌 많은 고난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감을 확신하게 하라.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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