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신학적, 교회적 이해
심창섭(총신대 신대원교수)
I. 들어가는 글
통일이란 여러 개체가 하나로 합쳐지는 의미가 있지만 보다 서로 다른 개체들이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는 화해의 의미도 있다. 개체의 연합을 통한 물리적인 통일이 이루어진다 해도 서로간의 불협화음속에서 화해의 질서와 평화가 공존하지 아니한다면 통일은 명목상의 연합에 불과 할 것이다. 고로 진정한 통일은 형식적인 연합과 내적인 화해와 질서의 회복에서 이루어진다. 기독교는 신학적으로 이런 통일론을 도출해 낼 수 있는가? 특히 민족간의 통일에 대한 성경적. 교회적인 비젼이 있는가? 이스라엘이야말로 자신들의 신앙문제 때문에 역사적으로 고대 근동지역에서 가장 배타적인 민족이었는데 이런 구약의 역사에서 화해와 조화라는 창조질서 개념의 평화이론을 이끌어 낼 수 있겠는가? 신약에서 도대체 통일에 대한 성경적인 열쇠나 언급에 대한 이론을 찾아 낼 수 있겠는가? 우리는 통속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성육하심 자체가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해의 사역을 위함이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발트 같은 경우는 기독론적 해석에서 통일의 이론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근원적인 신학적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의 도식은 진부한 신학적인 논리를 기초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공감대와 현장감의 결여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본고를 통해서는 이런 신학적인 도식으로 배제하지는 않지만 역사신학적인 입장에서 통일에 대한 성경신학적인 이론에 대해 서술하려고 한다. 구약에 있어서 통일문제, 신약에 있어서 통일문제, 그리고 교회사적인 조명이 있을 것이다.
II. 구약에서의 통일문제
1. 민족의식의 생성과 선민사상
도대체 하나님께서 민족의 존재에 대한 정당한 성경적인 근거를 주었는가? 오늘날 민족간의 전쟁이 사실은 세계평화와 질서를 파괴하는 주범인데 하나님이 민족을 허락하셨는가? 아니면 사람들이 만든 생존보존의 방편인가? 세계평화주의의 민족주의에 대한 배타의식이 성경적이 아닌가? 만약 민족의 존재를 하나님께서 창조질서의 보전 차원에서 허락하였다면 민족주의와 세계평화 그리고 동족간의 통일과는 무슨 연관이 있는가? 구약은 민족의 존재와 타민족 그리고 동족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원리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민족이란 개념은 백성(Laos)이라는 말속에 함의된 구약성경에서만 478번 이상 나타난다. 즉 이 용어는 이스라엘 백성이나 이스라엘 민족(nation) 혹은 하나님의 백성(people of God)이라는 용어로 구약 전편에 걸쳐 동의어적인 의미로 표현된다.(Zondervan Pictorial Encylopedia of the Bible, Zondervan, 1976, P. 375)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민족은 주변의 타민족들에 비해 신에 의해 선택되었다는 선민사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이런 사고는 민족사상으로 발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종교적 선민사상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사상은 창세기부터 시작된다. 노아의 후손들인 셈, 함, 야벹은 이미 민족적 성경을 띤 종족그룹으로 발전하였고 노아의 12대 손인 아브라함의 소명을 계기로 선민적 민족의식이 민족건설의 근간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건국이념을 바탕으로 하였기에 이들은 자신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성경도 이 사실을 자증하고 있다. "내기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창 12:2) 이 약속은 바로 이삭과 야곱을 거쳐 전승될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적 민족의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민족의식과 선민사상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가 이방 나라들과의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 속에서 더욱 강하게 무르익게 되어 종국에는 그것의 극대치를 이루어 내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출애굽과 같은 험한 역사의 질곡을 극복한 이스라엘 민족의 고백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특히 당시 지도자였던 모세가 애급왕 바로에게 내 걸었던 "내 백성을 가게 하라"(출애 8:1)는 슬로건은 바로 민족의식의 표현 그 자체였다. 이 후 모세의 오경 속에 나타나는 성경의 주제는 바로 이러한 선민사상과 민족의식을 통한 이스라엘 민족 형성사와 구원사로 집약되어 있다. 이것을 족장시대와 예언자들의 시대로 나누어 연구해 볼 수 있다.
1). 족장시대
아브라함의 후손들로서 고대 이스라엘 민족을 영도한 대표적인 족장들 중 이삭, 야곱, 요셉의 대(generation)에서는 민족의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아니한다. 이스라엘의 민족의식이 역사적 현실로 가시화 된 사건은 역시 출애굽의 사건이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사역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구원의 역사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출애굽의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족의식이 극에 달 할 뿐 아니라 이 시련의 고비를 넘어 서면서 이스라엘은 국가로서의 토대를 구축하며 한층 더 성숙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의 압제는 모세라는 민족투사를 만들어 냈고 모세는 민족의 요청에 응하여 400년간의 식민지 생활을 청산하기 위한 해방운동을 주도하게된다. 그리고 민족 형성의 기초법안을 만들어 선민으로서의 지켜야 할 규례들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레위기에서는 백성들의 종교 생활에 필요한 구체적인 종교법들(제사법이나 절기법 등)을 제정하여 종교국가로서의 모든 형태를 다 갖추어 민족의 정체성(solidarity)이라고 볼 수 있다. 이룩한다. 정말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모든 민족 형성사와 국법 그리고 종교법과 생활법들을 신세대들에게 빈틈없이 교육시키면서 그들의 민족정신과 선민의식을 계승시킨다는 점이다. 우선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자손들에게 민족의 벼 아픈 과거와 역사를 가르치고(신 1:6-4:43), 율법과 계명을 반복해서 환기시키며(신4:44-26:17), 이스라엘 민족의 언약사상을 주입시켜 선민과 민족의식에 대한 확실한 교육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선민사상과 민족의식을 전승시키기 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족의식 교육은 아래와 같은 성경구절 가운데서 극명하게 들어난다.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 을 듣게 할지니,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안에 우거하는 타국인들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로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강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 지니라"(신 31:11-13)
여기서 말하는 율법교육과 애호와 하나님 경외사상은 곧 바로 이스라엘의 선민사상과 민족의식의 근간을 이루게 하였으며, 모든 지파의 장로들과 지도자들이 이러한 교육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족정신을 생성케하고 뿌리내리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선민사상을 바탕으로 한 민족정신은 곧 여호수아에게로 전승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정착을 위한 7족속들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더욱 가시화 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을 진입할 때 그는 모세를 통해 전승되어온 민족의 교훈을 그대로 전수하여 가르치고 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여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여 1:7-8)
그후 노쇠한 여호수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민족재건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 하였을 때 다시 이러한 계약의 유산을 후대에 그대로 전승시킨다.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여 23:6) 물론 우리는 시나이 반도에서 맺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과의 계약들을 이스라엘의 정치적 국가건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선민사상의 징표로 보는 것이 전통적인 해석임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해석과 더불어 이 계약의 의미를 민족의식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어쨌든 선민으로서의 민족의식에 대한 고조는 여호수아 이후에도 이스라엘 민족에게 줄기차게 전승되었고,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건들 가운데서 계속 이러한 사조가 연속되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나안 땅이 비록 여호수아에 의해 거의 정복되었다고 해도 사사시대에 이곳의 중요 요새는 여전히 미 점령지로 잔여 세력들이 남아 있어 완전한 정복을 위한 마무리 전쟁이 지속되었다. 이 전쟁을 통해서도 이스라엘의 근본 사상인 선민사상이 이스라엘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으며, 이것은 곧 민족의식으로 승화되어 갔다. 이 사상을 제정일치 시대에 더욱 만개하여 신정국을 통해서도 이스라엘 민족의 민족 공동체 정신을 끌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선민적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은 사울, 다윗, 솔로몬 왕으로 이어지면서 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다윗은 임종시에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은 바로 모세와 맺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이요 민족정신이었다. 그리고 율법 준수야말로 민족의 흥망 성쇠를 좌우하는 시금석과 같은 것이었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 2:2-3)
이스라엘 민족은 사실 한 세대가 지나가고 신세대의 장이 열릴 때마다 율법과 계명의 준수를 강조하고, 민족의 정기를 확고하게 하는데 그 중심은 역시 신앙이었다. 결국 이스라엘이 족장시대와 왕정시대를 거쳐오면서 외세의 침략 속에서 살아 남는 것은 선민사상을 통한 민족의식이 강하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남북 왕국으로 분할되어 내분이 일어나고 정치. 사회적 부패가 심화되었을 때 수많은 예언자들에 의해 민족 정신이 고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바벨론 포로기를 전후하여 이들은 민족개혁의 의지를 앞세워 부패한 민족의 구원을 위해 소리지른다. 이들의 민족 구원의 정신도 역시 선민 사상의 신앙과 민족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2). 예언자들의 시대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계약과 율법을 준수하지 않기 때문에 민족의 분열과 멸망과 파멸을 자초하고 있다고 부르짖고 있다. 그리고 종국에는 민족 상실의 위험성까지도 염려하고 있다. 예언자들의 이러한 민족상실의 위험에 대한 염려는 바벨론 포로시대를 전후하여 심화되었다. 이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얼마나 자신의 민족의 장래에 대해 염려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곧 민족 사랑과 연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신앙과 민족사랑은 이들에게 전혀 갈등이 되지 아니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스라엘이 남북왕국으로 나누어 졌을 때 이미 분단의 아픔에 대해 통분하고 있었다. 이는 민족에 대한 애정이 신앙으로 나타남을 볼 수 있다. 통한의 세월을 바라보면서 예언자들의 민족에 대한 외침은 앗수리아에 의해 사마리아가 점령되었을 때(BC 722) 심화되었고, BC 582년 남왕국인 유다가 점령되었을 때는 더욱 결렬해졌다. 선민들의 불경건한 죄악으로 인해 상실된 민족에 대한 아픔의 설화가 바로 예언서들의 역사적인 사건들이다. 그러나 일단 강대국에 의해 포로 생활에 접어들게 되자 이스라엘의 민족혼은 더욱 활기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민족을 보존하기 위해 타민족간의 국제결혼이나 피의 혼혈을 법으로 제정하여 금지하면서 민족회복과 독립에 대한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예언들을 줄기차게 선포하여 실의에 찬 백성들을 일 깨운다. 에스겔 선지자는 신앙과 민족의식과의 영원한 연대감을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계약의 영원성에 호소하였고, 이것은 바로 선민신앙을 기초로 한 민족주의의 전형이었다.
예언자들은 극한의 어두운 세월 속에 처해 있으면서도 민족의 멸망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것은 자신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불변의 계약 사상으로 귀결시킨다. 이들은 언젠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이 가능하며, 이러한 민족신앙은 호세야, 이사야, 아못, 그리고 스바냐 등의 예언서들의 주제로 등장한다. 그리고 구체적 제시로는 민족회복을 위해 다윗 계통의 통치자가 나타날 것까지도 조명하면서 정말 극적이고 환상적인 민족 회복의 드라마를 구가하고 있다. 바벨론 포로시대의 이러한 유대 민족정신은 페르샤와의 합병상태에서도 줄기차게 꿈틀거리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에스더 왕비의 이야기다. 에스더는 하만이라는 왕에 의해 유대민족의 몰살 계획이 진행되고 있을 때 목숨을 걸고 왕 앞에 나간다. 민족을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 는 비장한 각오와 신앙의 용기로 나선 에스더의 행동과 민족정신은 곧 기독교인의 민족의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소위 주변의 강대국들이었던 에집트, 앗수리아, 바벨론, 페르샤와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의 지배를 역사적으로 차례로 지배받으면서도 끝까지 민족을 보존하고 살아 남았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신앙인들의 민족정신 때문이었고, 이것은 그들의 투철한 선민사상이었다. 선민사상은 곧 신앙에서 나온 것이었다.
선민사상을 기초로 한 민족정신은 유대 중간사 시대에 마카비 왕가 등을 통해 강하게 표출된다. 이는 곧 그들의 민족 독립운동으로 집약되고 승계된다. 사실 선민 사상과 민족정신이라는 두개의 축이 없었으면 이스라엘 민족은 존속의 가능성이 불투명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역사 속에서 줄기차게 형성되어온 이스라엘 민족의 민족정신을 성경의 구속사적 해석이라는 대 전제 속에서 약화시켜 왔다고 볼 수 있다. 구약 성경은 이런 면에서 종교적인 경전이기 이전에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서이며, 민족의 구원과 번영을 위한 투쟁의 경험과 고백 그리고 사건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민족의 주체세력으로 하나님이 등장하고 인간의 신앙이 반응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민족정신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선민사상은 그것의 실체였다.
3)구약의 민족사상의 특징과 유대주의의 한계
지금까지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가 계약사상을 바탕으로 선민신앙과 민족의식으로 점철된 특수민족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고찰해 보았다. 그러면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의 배타적 민족주의와 세계평화 혹은 세계와의 통일이념과의 만남이 가능한 것인가? 이들의 배타성은 민족적 민주주의나 국수주의의 원형(prototype)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갖게 된다. 사실 이스라엘의 유일신과는 철저하게 다신론이나 복수주의를 배격하는 것처럼 보이며, 동시에 이 유일 신관이 이들의 민족주의를 잉태시킨 근본인 것처럼 보인다. 다원주의를 배격하고 유일신만을 주장하는 이들의 독선적인 민족주의는 구약 전편에 걸쳐 주류를 이룬다. 모세오경으로부터 선지서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두개의 영역 즉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 나라들로 나누며 이스라엘 민족만이 하나님의 분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모든 피조세계를 지배하는 신으로 규정되고 다른 신들은 전혀 인정치 아니한다.
이방 나라로 선교사로 파송되었던 요나까지도 유일신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요나 자신은 하나님의 독선적인 통치권을 강하게 선포한다. 레위기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민족들을 모든 이방민족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한 정결법까지 제정할 정도로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형성하고 있다(레 20:24,26). 바로 이 사상이 후대에 바벨론 강가에서 야훼에게 충성하였던 레위지파의 한 시인에게 승계된다(시 137:4). 특이한 것은 이방 나라의 왕이었던 나만 자신도 이스라엘의 민족사상이 얼마나 강했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왕하 5:15ff) 그리고 룻기에서도 이방 여인이었던 룻이 나오미에게 "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고 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다"라는 고백을 통해 전혀 불 타협의 이스라엘 민족 신앙 즉 유일신관을 암시하고 있다. 이후에도 이스라엘 역사는 이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전통과 배타적인 민족의식 혹은 인종차별적인 독선 대한 선조들의 행적과 논쟁들로 가득차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배타적인 유일신관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사고가 바벨론 포로시대 이후에 점점 새롭게 형성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그들의 종말론 사상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 포로를 통해 미래의 민족에 대한 새로운 비젼을 갖게 되며 이 비젼속에 이방인들의 구원과 신의 우주적인 통치를 시사하고 있다. 바로 이 종말 사상 속에 이스라엘의 미래의 회복은 물론이고 우주의 회복에 대한 예언자적인 청사진이 묘사되며, 하나님의 지식이 땅에 가득하며, 모든 이에게 계시되며, 모든 우상이 근절되고, 모든 민족이 야훼에게로 귀의 할 것이라는 세계 박애론적인 파나로마가 전개된다.
Kaufman은 이 점에 대해 "예언자들의 종말사상은 야훼의 우주적인 왕권에 대한 비젼속에서 절정에 도달한다"고 표현 할 정도이다. 동시에 그는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보편주의(universalism)는 이스라엘의 초기 토라 그룹에선 분명하게 나타나지 아니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우주적인 민족적 유일신론(cosmic-national monotheism)이라 표현한다. 즉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지만 그는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여 이스라엘 민족만 그를 섬길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토라에서 말하는 종말론적 비젼은 결국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성경이 결여된 이스라엘 민족중심의 선민사상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바벨론 포로시기 이후에 발달된 종말론의 광의적인 적용에 대한 결단을 피하고 있다. 그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보편적 통치와 모든 민족의 하나님에로의 귀의와 이스라엘 중심의 민족주의 사상사이의 긴장이나 갈등의 여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두개가 묘하게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엮어져 오고 있음을 말하려 한다.(Yehezkel Kaufman, The Religion of Israel,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5, p. 132)
그러나 이스라엘의 선민사상과 민족의식은 사실 우주적인 민족주의 사관에서 민족주의적인 보편주의로 발전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우주적인 성격의 종말론이었다. 구체적인 성경의 예를 들면 이점이 더욱 명확해 질 것이다. 우선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함께 이방 나라의 회복을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면서(이 45:18-25; 49:1-26; 56:1-8; 60:1-22; 65:1-16) 결국은 민족과 민족간의 화합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그리고 자연과 자연과의 화합 차원까지 확장된 우주적인 하나님의 통치와 박해 사상을 천명하고 있다.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가 선포하는 종말론적인 우주 박애주의 사상은 정말 구체적이고 완전한 회복을 시사하고 있다. 육체의 질고가 고쳐지고(이 29:18; 32:3-4), 죽음이 사라지며(이 25:8), 사람과 동물 사이에 영원한 평화가 이루어지고(이2:4; 9:4; 시 46:10), 모든 부정과 죄악이 소멸되며(스13:1; 이 60:21), 종국에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하게 된다. 이러한 범 세계적인 박애 정신이 민족주의를 토대로 발달 되어오면서 이스라엘은 포로 이후에 이러한 왕국을 건설할 메시야를 정치적으로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예언자들의 이러한 민족주의적 범 세계 박애정신은 유대주의에 의해 잠식되거나 오도되어 예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제로 이방 민족들과의 평화와 관계 개선보다는 여전히 자기 중심적인 신관과 아집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민족사상은 그들의 종교적 의식과 결부되어 극히 배타적인 이웃관을 가진 독선적 종교 집단화의 현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것의 일례가 복음서에 나타난 강도 만난 자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자기 중심적인 신관에서 여러 가지 외식적인 규레들이 만들어졌고, 이방인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고 형식적인 겸례들로 인위적인 장벽을 높이 쌓았던 것이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선민사상의 한계였고, 그리고 그것은 바로 예언자들이 보여준 우주적 신관과 박애 정신적인 세계화를 상실한, 국수주의적 민족정신에로의 전락이라 규정지을 수 있다. 예수는 이러한 한계에 도전하면서 민족주의적 보편적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므로 유대주의적 민족주의의 한계를 뛰어 넘어 세계화와 통일에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III. 예수의 민족주의와 통일론
예수의 민족의식은 바로 민족주의적 보편주의이다. 이 보편주의의 우산아래 예수의 통일이론이 존재한다. 예수는 우선 극단적인 유대주의의 왜곡된 민족적 민족주의에 반하여 이사야가 말하는 메시야적 왕국 건설 즉 우주적인 하나님의 나라(cosmic Kingdom of God) 건설을 역사 속에 이루려고 했다. 이러한 메시야 왕국의 건설에 대한 소망은 전술한 바와 같이 유다와 다윗 왕조의 멸망 이후에 두드러지게 묘사되며 바벨론 이후에 더욱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이때 묘사되는 메시야의 과업은 역사 속에 이스라엘의 회복과 이방의 회복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것은 민족주의와 세계평화주의 그리고 통일주의가 만남과 연관성을 의미한다. 고로 예수의 민족사상은 이러한 메시야 사상과의 관계에서만 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왜곡되고 독단적 민족주의에 빠져있던 유대주의를 반대하고 나선다. 예수는 인류전체를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우주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질서 회복이 인간에게 궁극적인 평화와 질서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이러한 세계질서의 기초는 한 나라의 평화와 민족의 통일이 없이는 가능하지 안다고 본다. 그는 국가를 한나라의 정치적 질서의 주체세력으로서 인정하고 있다. 그는 분명히 가이사에게 충성하면서 하나님에게도 충성하라고 했으며, 두 체제를 긴장과 갈등의 관계로 보지 아니한다. 그는 국가를 사회의 최종적인 형태로는 보지 아니하며, 국가중심의 민족주의는 세계와 이웃 중심의 종말론적 보편주의나 박애주의에로 진전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그의 민족통일론과 세계평화정신의 실제적인 성경의 예를 통해 이러한 그의 사상을 보다 진솔하게 규명해 볼 필요가 있다.
요한 복음 4장에 나오는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과의 만남의 사건은 신약에서 주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이 해석은 유대인의 역사적인 정황을 통해서 우리가 의도하는 해석을 할 수가 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 당시 극히 불편한 관계였다. 즉 유대민족은 남북이 양분되어 있었다. "이방인이나 로마인들과는 상종할 지은 정 사마리아인들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것이 유대인들의 입장이었다. 두개의 집단은 반목질시의 골이 깊이 형성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었다. 북왕국에 속에 있던 사마리아지역은 주전 722년경에 앗수리아에 의해 강제로 혼열 민족화 되어 민족의 순수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들은 북왕국사람들은 앗수리아에 끌려가기도 했으며 앗수리아가 정책적으로 이방인들을 사마리아에 이주시켜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이 강제로 결혼을 하게 하는 등 민족 말살 정책을 폈던 것이다. 그 뒤에 남왕국의 유대인들은 582년에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잡혀가 70년간의 포로 생활을 했으나 그들의 혈통을 유지하면서 유대인들의 순수성을 나름대로 보전하였다. 예레미아 시대에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남왕국 중심의 유대주의를 계승하였다. 그래서 남왕국을 중으로 한 유대인들은 사마이라인들을 잡종이라 취급하고 예루살렘 성전예배와 재건의 참여에 반대하였다. 연합을 거절당한 사마리아인들은 할 수 없이 그림신산을 중심으로 그들의 예배처소를 마련하고 야곱의 전통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반목의 골은 점점 깊어갔다. 그런데 더욱더 분단된 양체제간의 벽을 굳게 만든 사건이 발생하였다. 주전 128년경에 힐카누스라는 유대 장군이 군대를 거느리고 그림신산의 성전을 공격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이에 분개한 사마리아인들은 죽은 자들의 시체를 꺼내어 그 재들을 예루살렘 성전에 부리면서 난동을 부렸다. 이런 역사적인 반목을 통해 예수님 당시 이 두지역은 가장 치열한 동족 상전의 냉전을 치루고 있었다. 유인들은 갈릴리의 곡창지대에서 양식을 구입하고 갈릴리 호수의 어물들을 구하려 갈 때 지름길인 사마리라지역을 통과하기를 피하고 요단강 동쪽지역을 우회하여 갈릴리에 왕래하고 하였다. 이런 극단적인 대립구조 속에 빠져 있는 가장 치열한 동족 상전의 냉전을 치루고 있었다. 이를 간파한 그리스도는 새로운 방안을 내놓으셨다. 그것은 두 지역간의 오랜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고 평화적인 공존을 이루는 민족통일의 이데올로기였다. 양자간에 가지고 있던 정치적,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공동체로 태어나는 방안을 예수님은 이렇게 하셨다. "그림심산에서도 예배하지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예배하지 말고 이제는 신령과 진정으로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왔다" 지난 700년간 지속되어온 조각난 유대민족을 하나로 연합하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이 선포는 인류를 향한 메시야 왕국의 보편주의적인 성격을 나타내며 조각된 민족공동체의 회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는 사마리아의 굳은 고집과 유대인들의 경직된 우월주의를 청산할 것을 요구한다. 모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기적인 방어적 아성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새로운 장을 여는 메세지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유대민족의 통일만을 예수는 유일한 평화의 수단이라고 보지 아니한다. 그는 민족주의를 뛰어 넘어서 우주적인고 보편적인 평화주의와 세계화에로 전진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유대민족의 통일만을 지상의 과제로만 생각하고 이웃과의 평화를 파괴한다면 종국에는 민족공동체의 평화와 통일도 보전될 수 없을 시사한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는 절대로 자신이 유대인임을 거부하거나 멸시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예루살렘의 파괴의 멸망에 대해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민족의 역사와 동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유대인들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민족주의는 질타한다. 이에 반하여 예수는 소외당한 이방땅(두로와 시돈 등)의 민중과 함께 먹고 마시고 천국복음을 전하므로 가난하고 불쌍한 동족들에 대한 사랑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는 민족적 민족주의에 빠지거나 폄하지 아니하면서도 자신의 동족의 사랑의 불길을 세계적인 메시야 왕국의 보편적인 박애사상으로 몰아붙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이것은 바울사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은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기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전세계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기를 소원하고 있다.
예수는 민족이 통일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민족이 서 있는 자리를 귀중하게 여긴다. 아니 그는 민족 안에서 살며, 민족 안의 버림받은 자들을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는 민족애의 투철함을 자신의 삶과 말씀을 통해 투영한다. 동시에 이러한 예수의 동족사랑은 인류의 사랑과 구별하지 아니하므로 그는 유대주의적 독선적인 민족주의를 깨고 세계주의로 나아감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친모에게 "누가 나의 어머니며 형제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나의 형제요 부모"라고 선포하였다. 예수가 가르친 민족통일론은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민주의와는 결별하고 세계 평화에의 길로 풀러 나가야 한다는 인류 공생의 대 원칙이었다. 이와 같이 기독교의 가르침을 구약의 가르침 속에서도 예수의 가르침 속에서도 본질적으로 독선적인 민족내의 분파주의를 지양하고 있으며 동시에 민족주의를 세계평화주의로 동화시키면서 조화를 이루는 패러다임을 볼 수 있다. 예수는 민족의 통일 없이는 세계의 평화가 존재할 수 없고 세계의 평화 없이 민족의 평화와 통일이 보전될 수 없음을 간파했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곧 한 민족의 통일 세계의 평화에도 기여한다는 대 원칙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IV. 민족통일의 교회적인 이해
교회론적으로 볼 때 교회의 에큐메니즘은 바로 민족공동체의 통일이나 인류의 평화를 위한 원리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것은 복음의 본질로도 해석될 수 있다. 예수님은 분명히 온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하나님의 구속과 사랑을 전달하기 위해 오셨다. 그의 대상은 특정한 지역이나 인종에 국한 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모두 자신의 무리임을 확인하였다. 혈연이나 학연 그리고 인종의 벽을 넘어 통일과 화합의 평화를 염원하였다.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태 12:48, 50).
예수는 또한 전통적인 유대주의의 독선을 뛰어 넘어 이방인들을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영접하여 이방인들과의 담을 무너뜨리셨다. 그는 갈릴리의 변방 이방 지역인 두로와 시돈에서 사역하였으며 가나안 여인의 병든 딸을 고쳐 주신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가나안 여인은 이 지역의 원주민이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상종해 주지 아니하는 사실을 이 여인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병든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절박한 안타까움은 인간이 쌓아 놓았던 벽을 뛰어 넘는다. 그런데 예수의 반응은 이외로 냉담하였다. 아니 완고한 유대주의의 독선을 견지하고 있었다.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하였다.(마태 15:24) 예수는 전형적인 유대인들의 이방인들에 대한 태도를 노출시켰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26) 여인의 지혜로운 간청은 지속되었고 마침내 예수는 유대주의의 배타성을 포기하고 복음 안에서 치유와 일치의 화합을 이루어 내신다. 나중에 그의 십자가의 죽음은 곧 온 인류를 위한 속죄함 그리고 그를 통한 평화와 화합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 정신은 곧 예수의 제자들과 바울에게 그대로 전승되어 전 세계에 선포되었던 것이다. 바울은 특히 이방인들의 사도로 불리울 정도로 복음 안에서 모든 족속을 그리스도의 나라로 끌어 드리지 공생공존의 아름다운 이론들을 전개하였다. 대표적인 그의 말을 인용한다면 갈라디아서 3장 26절과 28절이다. "너회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너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지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이와 같이 예수의 가르침에 기초를 둔 교회는 본질적으로 통일과 화합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이를 카톨릭시즘(catholicism)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교회론적으로 볼 때 민족통일은 창조질서의 자연법칙이요 순리이다. 교회는 인간의 분리나 분쟁을 원치 아니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교회공동체의 다툼을 개탄해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머리로 하여 하나로 뭉쳐야 함을 주장한다. 성도들은 교회의 지체들이기 때문에 성도간의 갈라섬이나 투쟁은 비 복음적이며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찢는 행위라고 하였다. 그는 복음은 인간이 가진 모든 차별을 넘어 믿음 안에서 하나요 평등함을 강조하였다.
사도들과 교부들은 비록 시공간은 달리하여 교회가 흩어져 있지만 여전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의 교회임을 주장한다.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에베소, 그리고 로마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회는 하나의 교회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에큐메니즘이었다. 이점에 대해 대표적인 이론을 내세운 교부는 키프리안(Cyperian)이었다. 그는 교회의 통일을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오직 하나의 교회가 존재한다. 그것의 열매에 의하여 다수의 교회로 존재케 된다. 마치 그것은 하나의 빛밖에는 없지만은 태양의 많은 광선이 있듯이, 그리고 하나의 나무둥치가 있지만 많은 가지가 있듯이, 또 하나의 셈의 원천에서 많은 물줄기다 형성되는 것과도 같다...이와 같이 많은 가지와 지류들이 형성되어 있지만 원천적인 일치(source unity)는 보존된다. 태양의 본체에서 광선이 분리되어 발산하지만 빛의 일치성은 나누어지지 아니한다. 나무로부터 가지가 꺾여지면 부러진 가지는 소생치 못하는 원리와 같다. 물줄기가 샘물로부터 끊어지면 말라버리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한 하나님의 빛에 의하여 조명되어지고 그것의 햇살을 온 지상에 보낸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곳을 비추더라도 하나의 빛임에는 틀림없다."
이와 같이 교회는 원초적으로 보편성과 에큐메니즘의 원리 위에 세워진 공동체이기 때문에 민족공동체의 화합과 인류의 평화를 지향하는데 기여한다. 서양사를 통해 기독교가 공헌한 인류문명의 발달과 문화의 창달을 통해서도 이점을 간파할 수 있다. 서양의 야만족들은 기독교 신앙을 접하므로 점점 개화되기 시작하였다.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평화를 위한 역사적인 경험을 얻게 된다. 앵글로 색슨족의 개종, 콘스탄틴 대제의 제국의 통일론(pax romana), 그리고 사를 대제의 프랑크 왕국의 유럽의 통일(pax christiana)은 좋은 역사적 실례이다. 비록 인간의 잔인성이 인류역사에 평화와 통일을 저해하는 역사적 실례들을 많이 만들어 냈지만 교회는 본질적으로 인류의 평화와 민족 공동체의 화합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교회의 본문인 인류의 영혼의 구속 사업은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배제할 수 가 없다.
16세기에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칼빈도 교회의 에큐메니즘을 교회론의 본질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는 로마카톨릭교회를 부인한 것이 아니라 카톨릭교회의 부패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결코 분파주의거나 분리주의적인 개념으로 종교개혁을 시도하지 아니했던 맬랑톤을 통하여 마틴 루터와의 연합을 위한 교제를 추구하였으며 자신에게 최대의 적이었던 추기경 사돌레토와도 대화를 통해 카톨릭교회와의 화합을 시도하였다.
칼빈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교회의 일치를 전제하는 것으로 보았다. 한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 있는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몸과 영혼 하나로 연합되어 있는 것을 "Catholic" 혹은 "Universal"이라고 불렀다. 이런 의미에서 칼빈은 두 개나 세 개의 교회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다른 교회를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찢지 아니하고는 불가능하다고 하였다.(강요.4.1.2-3)
칼빈은 자신의 주변에서 이미 그리스도의 교회가 나누어져 있는 아픔을 겪었다. 칼빈은 교제와 일치의 부족으로 인해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행위는 바로 우리시대의 최대의 악한 일이라고 하였다. 그는 총대감독 크레머(Archbishop Crammer)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개혁파에 속해 있는 모든 이들은 함께 모여 신학적인 이해를 증진시키고 신앙을 표현하기 위해 공동된 틀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는 크레머에게 "교회 맴버는 갈라졌고...몸은 피흘리고 있다"고 하였다. 칼빈은 자기의 적이였던 로마 카톨릭의 추기경 사도렛(Cardinal Sadolet)에게 "그리스도는 우리를 우리의 현재의 분산에서 불러내어 그의 몸의 교제로 연합하실 것이다. 그래서 그의 한 말씀(Word)과 한 영(Spirit)을 통해 우리는 한 마음과 한 영혼으로 연합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칼빈의 입장을 분석해 보면 칼빈은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와도 분리할 수 없는 입장을 견지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칼빈은 분명히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마음을 같이 하고 살아있는 교제를 나누게 된다면 그들은 그들의 교리적인 차이점은 축소될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물론 칼빈의 연합은 진리와 참된 교리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서로의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갈라 버리는 행위는 칼빈에게 용납되지 아니했다. 칼빈은 의견이 서로 다른 사람들은 만나서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신의 당대 사람들처럼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회의(conference)를 피하는 것은 빛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의견을 덜 교환할수록 더 위험한 교리주의(dogmatism)에 빠진다고 하였다.
V. 결론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신정적인 사고가 강했으며 특히 여호와의 독점의식이 심화되어 지배적인 민족주의로 발달해 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메시야 사상 속에서 이러한 독선적인 민족사관은 이웃과 세계에 대한 보편주의적인 인류에로 발전해 갔다. 예수는 세상에 오셔서 인류의 모든 죄를 구속하는 속죄의 은혜로 인해 독선과 배타성을 극복하고 복음 안에서 민족의 통일은 물론이고 세계 평화와 화합의 이념을 구현하였다. 초대교회는 성육신한 그리스도안에 형성된 연합과 공동체를 구성하였다. 그 공동체는 동족간의 갈등과 인종, 문화의 차이점을 넘어 인류공영의 역사를 이룩하는 것이다. 민족의 통일은 바로 이와 같은 복음과 교회의 기본원리 안에서 이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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