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스크랩] 각 선교대회에 나타난 선교의 개념

수호천사1 2009. 11. 8. 21:56

각 선교대회에 나타난 선교의 개념

 

 

Ⅰ. 들어가는 말

 

1910년 에딘버러 대회를 기점으로 선교에 관한 교회의 일치와 연합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에딘버러 대회는 상설위원회를 두었고 이는 1921년 국제 선교사협회(IMC)결성되고 정보센터로써 국내선교와 기독교 연합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였다. 그리고 국제선교사협회는 1928년 예루살렘대회, 1938년 마드라스대회, 1947년 휘트비대회, 1952년 윌링겐대회 1958년 가나대회를 이어 오면서 선교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1961년 국제선교사협회와 WCC 연합하여 하나의 대회(WCC)로 되었고 1968년에는 멕시코에서 세계선교와 복음전도위원회(CWME)대회가 있었다. 그리고 이후 WCC와 CWME는 계속적으로 대회를 열어가면서 선교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는데 에큐메니칼 진영은 전통적으로 인식되어 온 선교에 대한 개념에 대하여 재해석을 하게 되면서 상당한 논란을 가져오고 혼돈스러운 모습을 나타냈다.

 

이에 복음주의 선교단체가 에큐메니칼 진영에 반대하여 결성되었는데, 1966년 베를린대회가 그것이다. 이후 복음주의 진영은 복음주의 선교신학을 만들고 본래의 선교적 사명을 지키고 WCC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자 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의 주장에 차이가 드러나는데 그것은 용어들에 대한 문제이었고 신학적 해석의 차이였다. 이에 본 소논고는 양진영의 선교 신학적 차이를 비교하여 선교에 관한 이해를 깊이하고 오늘날의 선교 그리고 21세기의 선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살피고자 한다.

 

Ⅱ. 선교에 관한 논쟁

 

1. 에큐메니칼의 선교에 대한 해석

 

1) 에딘버러대회(1910)

 

기독교 세계에서 비기독교 세계로 선교가 진행하는 운동으로 보았고 그것의 미래는 낙관적이라는 믿음이 이 대회를 특정지었다.

 

2) 예루살렘대회(1928)

 

1928년 예루살렘대회의 배경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절대적 가치에 대한 회의와 물질주의의 등장으로 에딘버러의 확신과 선교적 비전은 희생되었다.” 에딘버러대회와 예루살렘대회 사이에는 세계1차대전과 러시아혁명(1917)이 일어났고 이로 인하여 에딘버러의 확신과 자신감은 깨어져 버린 것이었다.

 

예루살렘대회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영적 차원에서 벗어나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관계와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하는 인식과 함께 종합적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접근이 요청된 대회였다. 즉, 선교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직무로부터 출발하였고, 이는 선교사는 이 세계에서 하나님 나라의 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에딘버러와 달리 예루살렘은 복음의 사회적 차원에 분명한 관심을 두었고, 이러한 관심은 단지 값싼 ‘사회복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참된 결과라는 것이 분명히 밝혔다. 그러므로 선교부들이 보건 교육 및 일반 영역에서 한 일은 선교에 ‘도움을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참 선교였다고 보았다.

 

3) 탐바람(1938)

 

1938년의 마드라스 회의의 주요문제는 ‘선교는 어디서부터?’라는 것이었다.

 

4) 윗트비대회(1947)

 

교회의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향하여 방향이 잡혀 있었다. 그리고 윗트비의 영향으로 사도의 신학이 화란 선교 신학에서 전개되게 하였는데, 이것은 교회중심의 선교라는 탐바람의 특징을 더하여 선교중심의 교회라는 개념을 등장시켰다.

 

5) 윌링겐대회(1952)

 

윌링겐의 주제는 ‘교회의 선교적 의무’였다.

이 대회에서 선교신학의 출발점은 교회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서 발견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선교는 교회론에 근거해서는 안되고 기독론에서 그 기초를 찾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윌링겐은 특별히 선교의 근거로 삼위일체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삼위일체 교리에다 선교의 근거를 잡아매려는 것이, 처음으로 윌링겐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하튼슈타인이 이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만이 선교의 주체자임을 확신하는 의미에서였다. 우리의 선교를 위한 주도권을 그것이 교회의 선교이든 선교적 교회이든지 간에 하나님만이 가지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 주관함 안에서만 선교는 진정으로 선교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

 

호켄다이크는 “흩어지는 교회”라는 논문에서 ‘교회는 선교의 한 기능이다’라고 말함으로써 탐바람을 뒤집었다. 그의 의하면 선교의 중심은 세계지 교회가 아니다. 온 세계가 하나님의 중심을 차지한다. 그에 의하면 전통선교의 문제는 첫째, 교파중심의 선교, 둘째, 개인구원위주의 교회개척선교로서 빈약하고 폐쇄적인 선교의 모습이라고 비판하면서 세계의 교회화와 전도는 동일하지 않고 오히려 최악의 적이 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교회화가 선교의 목표가 아니고 샬롬 이었다.

 

호켄다이크는 샬롬의 선교에 대하여 첫째, 샬롬의 선포로서 Kerygma, 둘째, 샬롬을 가진 사람들의 Koinonia, 셋째, 샬롬을 가진 표지로써 Diakonia 즉, K,K,D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윌링겐 대회 이후의 시기에는 하나님의 선교의 개념이 점차로 그 의미를 달리하게 되었다. 이 변화된 개념은 교회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이 세계 안에서의 하나님의 감추어진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 되었고, 또한 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러한 개념의 전환은 역사와 구원역사에 대한 관계성의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6) 가나대회(1958)

 

가나대회는 1948년 조작된 세계선교협의회(WCC)와 국제선교협의회(IMC)의 통합을 준비하기 위해서 모인 대회였다.

 

2. W.C.C의 선교에 대한 해석

 

1) 뉴델리대회(1961)

 

뉴델리 대회는 세계선교협의회와 국제선교협의회가 합하여진 대회였고, 이것은 세계선교협의회의 한 분과 위원회와 세계선교와 전도분과 위원회(CWME)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러한 계기에서 선교의 목적은 ‘온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 끝까지 선포하여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2년 후 세계선교와 전도분과 위원회(CWME)의 첫 대회가 멕시코시티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서 선교가 교회의 본질이라면 선교는 서구를 포함하여 어디에나 적용되는 것이다. 즉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그 상황 속에서 선교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선교는 더 이상 이교도들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교도들은 아주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교회가 선교하는 터전을 포기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단점으로는 교회가 항상 선교적 위치에 있다는 당연한 견해는 어떤 특정한 배경에서는 매우 근시안적으로 즉 자기 교회의 가까운 곳만 보게 한다는 문제를 가진다.

 

2) 웁살라대회(1968)

 

웁살라 대회의 선교의 목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간성형성(New Huminity), 회복, 창조”였다. 이는 비인간화에 대한 현상을 극복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이때 사회정의에 대한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제기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선교의 개념 문제가 양극화되었다.

 

A.Glasser는 세속화된 복음으로 교회의 선교를 사회 정치적 행동주의로 축소시켰다라고 웁살라를 비판하였다.

 

3) 나이로비(1975)

 

나이로비대회에서 선교란 “the whole church bringing the whole gospel to the whole person in the whole world”라고 정의했다. 즉 holistic Mission의 개념이 등장하였다. 이 대회에서 에큐메니칼 진영이 약화되었다.

 

이 대회에서 등장한 ‘Whole Gospel’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나라와 선포, 죄와 용서, 하나님의 은총의 제공,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회개에로의 초청, 하나님 교회의 친교에로의 모음,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과 행위를 증거하라는 명령,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를 위한 노력에 동참하는 책임, 인간의 온전성을 저해하는 일체를 배격하는 책임 그리고 그것들의 수용에 의한 헌신이다.

 

‘Whole Person’은 복음이 말하는 인간의 필요가 충족된 인간을 의미하고, ‘Whole World’는 모든 사람, 인종 대륙 사회, 지리, 문화 개념을 포함한다. ‘Whole Church’는 교회의 모든 자산 자원 인력 재정..등을 뜻한다. 그래서 총력을 다하여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여 ‘Whole person’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이로비는 복음주의로 돌아온 대회였다.

 

4) 방콕대회(1973)

 

CWME 방콕대회는 “오늘의 세계에 있어서 구원”(Salvation day)이라는 주제로 열렸는데, 이 주제는 교회와 세계의 긴장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유감스럽게도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에서 공통적인 분모를 찾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1974년 로잔대회(Lausanne) 이후에 “복음주의”(Evangelikalen)의 강력한 집단이 형성되고 그들 자신의 길을 걷게 되었다.

 

5) 멜로른대회(1980)

 

1980년 멜버른(Melbourne)협의회는 “통전적 선교”(holistic mission) 개념으로 특징 지워진다.

이 대회는 기도와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성찬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세계의 정치적, 사회적 위기가 또한 교회에도 관계있다는 것과, 불의와 착취가 교회로 하여금 복음(Gute Nachricht)은 특히 가난한 자들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보여주었다.

 

6) 산 안토니오대회(1989)

 

1989년 미국의 산 안토니오(San Antonio)협의회는 “후기 세속화 시대”(nac h-sakularen Ara)의 선교를 모색하였다.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이 60년대 자기 견해를 수정하여 “세속 사회의 신화”를 비판한 것에 동의하는 산 안토니오 협의회는 세속 산업 문화의 위기에서 선교의 새로운 신뢰성을 추구하는 문제를 다루며, 창조의 보전을 위한 선교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3. 복음주의의 선교에 대한 해석

 

복음주의는 1910년 에딘버러대회 때부터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다가 1917년 교단 소속이 아닌 선교회(faith mission)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1917년 3월 13일 IFMA(The Interdenomiational Foreign Mission Associat ion)를 창설하여 에큐메니칼적인 선교신학과 활동을 견제해 왔다.

 

1) 베를린대회(1966)

 

이 대회는 빌리그레이함과 칼 헨리의 중심으로 주도되었고, 보수적 입장을 취하는 교회와 선교회들의 최초의 주목할 만한 선교대회였다. 이 대회의 주제는 “한 인종, 한 복음, 한 임무”였다. 이 대회는 한 인종(One race)이라는 말로 모든 인종적 편견과 장애를 그리스도 안에서 초월하려 했고, 한 복음(One Gospel)이라는 언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속죄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구원의 복음전파를 공동적인 ‘한 임무(One Task)’로 정리한 것이다.

 

“전도는 정죄 받고 잃어버린 바 된 죄인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을 믿도록 설득할 목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인류의 유일한 구속자이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며 삶의 모든 영역의 주로서 그리스도를 그의 몸 된 교회의 친교 속에서, 영광으로 오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섬기도록 하는 것이다.”

 

선교의 동기에 있어서도 “명령에 대한 순종”으로 압축했다.

 

그리고 이 대회는 세상을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으로 변화시키는 형태의 선교관을 거부하였다. 그러한 선교관은 복음을 현세적인 윤리체계로 전락시키고 핵심적인 요소인 종말론적인 특징을 제거할 여지가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윌링켄 대회(1952)이후 하나님의 선교 사상도 거부하여, 베를린 대회에서 이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사역적인 선교관 대신에 그리스도 중심의 선교관을 주장했다. 전도가 하나님 구속사역의 핵심이며 전도를 통해서 예수의 위대한 예언자적 환상도 실현된다는 것이다.

 

2) 로잔대회(1974)

 

복음주의 자들의 모임으로써는 가장 중요한 대회인 로잔 대회는 150개국, 130교파, 2743명 이 중에 1200명이 비백인이 함께 참석한 대회였다.

 

지상명령만을 생각하던 주장에서 전도뿐만 아니라 문화적 위임까지도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고 전환되는 대회였다.

 

존스토트는 선교는 전도와 사회책임의 불가분리를 주장하면서 사회행동은 전도의 동역자로 보았다. 동역관계로 양자는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며 독립적이며 어느 한 쪽도 수단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각기 자체의 목적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회는 전도가 우선이라고 보았다.

 

4. 통전적 선교

 

통전적 선교신학은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적 진영의 주장들이 수정의 과정을 거쳐서 양 진영이 어느 정도 통전적인 노선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통전적인 모습은 나이로비 대회 때부터 불기 시작한 바람이다. 이 때 제기된 구호가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선교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통전적 사고로의 전환은 ‘우리의 선교신학’ 은 확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되어지고 있는 미완성이라는 관점이 서로에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전적 선교는 비판적 종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도 다 이루지 못하였기에 비판하여 취사 선택하여 종합하는 것이고 적용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통전적 선교란 전도와 양육과 봉사와 교제가 다 포함되는 것이다. 이것은 지리에 관계없이 동일문화 권에서, 유사 문화권에서, 그리고 타문화권에서 행하는 모든 것 즉 전도와 양육과 봉사와 교제가 곧 선교가 되는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께서 백성을 세상에 보내시어 하게 하시는 모든 것이다. 여기에서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선교의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생성되고 성장하는 기구이며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도구이다. 그 목표는 세계의 복음화이다.

 

Ⅲ. 나오는 말

 

미래 사회는 교회로 하여금 지금보다 더 분명하게 그 정체성을 요구할 것이며, 이는 교회로 하여금 애매 모호한 신앙고백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점은 선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작용 할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헌신이 없이는 개교회는 쇠퇴할 것이다.

 

미래의 사회는 더욱더 강하고 영성 깊은 선교적 준비를 요청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를 이루어 가면서 선교는 다양한 형태로 전개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선교는 교회로 하여금 헌신을 요구 할 것이다. 즉 편협한 개교회 유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사역에로 하나님의 강한 부르심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 부르심의 방향은 통전적 선교에로의 헌신과 사랑의 실천일 것이다.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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