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의 비전 및 상호관계 (수정.증보)
인병국 목사 (중국선교연구원 대표)
들어가는 말
선교중국은 중국선교와 세계선교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단호한 뜻이다. 지금 중국의 가정교회들이나 중국선교사들, 중국선교에 헌신하는 우리들 모두 선교중국에 부담감을 갖고 있다. 하나님은 부담감으로도 그 뜻을 나타내시며 우리를 인도하신다. 뿐만 아니라 선교중국에 대한 소식이 전에는 소문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실제로 사역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2-3년 전만 하여도 해외 선교지에서 한국선교사들이 중국인 선교사를 보았고 그들과 교제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 중국교회가 미미한 수준이지만 선교를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선교사들이 상당수 파송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교중국에 관여하는 토마스 리 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지금까지 중국가정교회가 17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올 해 70여명의 새로운 선교사들을 파송하려고 하며 중국가정교회 중 선교사파송위원회를 조직한 선교참여단체가 15개 단체이고, 전통적 규모의 선교훈련센터가 5개소가 있다고 한다. 또한 중국에서 파송된 중국선교사들이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사역하는 모습을 현지 한국선교사들에게 듣게 되며 일부 국가에서는 중국선교사와 한국선교사 사이에 협력과 연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선교중국은 비전을 운위하는 단계에서 본격적으로 수행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 준비하는 단계이지만 한국교회가 중국교회의 동역자로서 선교중국에 대해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헌신하고 협력해야 할 단계라고 본다.
선교중국이 원활하게 수행되려면 무엇보다도 선교중국에 헌신하는 지체들 간에 소통이 잘 되어야 한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선교협력과 동역을 함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선교중국 2009대회를 기점으로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의 개념, 비전, 상호관계를 한 번 짚고 가는 것이 요청된다. 앞으로 우리가 선교중국을 수행해 감에 있어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을 정확하게 알고 그 용어를 사용함으로 의사소통이 잘 됨으로 큰 유익함이 있기를 바란다.
1.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의 개념
선교사역은 상호간 의사소통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려면 사용하는 용어를 상호간에 정확하게 이해하고 용어의 개념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교중국 2009대회를 개최하고 중국선교컨퍼런스와 중국선교비전학교를 진행하고 강의와 토론을 하는데 있어서 주제인 ‘선교중국’의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중국선교(中國宣敎)와 선교중국(宣敎中國)은 한국인들에게는 개념 이해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중국인들에게는 그 말이 그 말이다. 그런데 중국가정교회가 만들고 그들이 애창하는 찬미가(贊美歌) '宣敎的中國' 가사의 의미 속에서는 이미 한국교회가 생각하는 선교중국의 의미를 담고 있다.1)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선교중국'이라는 용어가 꼭 접합하지 않다면 "宣敎的中國"을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즉 국내에서는 ‘선교중국’으로 중국교회와 소통할 때는 ‘宣敎的中國’으로 표기하면 의사소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교중국’을 ‘선교중국(宣敎的中國)’으로 표기하기를 제안한다.
1.1 중국선교
중국선교는 중국의 복음화와 중국교회의 건강한 교회로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선교는 선교대상에 따라 개념이 다르다. 즉 주님으로부터 잃어버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는 불신자를 복음화하고 제자를 삼는 것과 그 결과 지역교회를 설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는 현존하는 교회들을 격려하고 강화시키는 것이며 목회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을 성직의 사역을 위하여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선교는 중국인의 복음화를 추구한다. 중국선교가 NGO사역이나 의료선교, 긍휼사역 등 간접적인 선교사역도 포함하지만 어떤 선교사역도 궁극적으로 중국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으로 열매를 맺는 것을 추구할 때에만 중국선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선교는 중국인의 영혼구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그들이 주님의 제자로 설 수 있도록 양육하고 섬기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결과 복음을 받아들인 신자들과 제자로 훈련받고 양육된 자들로 지역교회가 설립될 때 일차적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할 것이다. 또한 중국에는 이미 교회들이 많이 있는데 연약한 면들이 있기에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는 현지 교회들을 건강한 교회로 서 가도록 섬기는 것이며 중국교회 사역자들의 신학교육과 목회자로서의 훈련에 집중하는 것이다. 중국선교의 중점사역은 중국교회 사역자들의 신학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중국사역자들이 자국에서 사역을 하지만 주로 해외 선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한국선교가 서양선교사들이 주도하였던 것처럼 중국선교도 해외 선교사들이 수행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1.2 선교중국
선교중국은 중국교회가 주역이 되어 해외선교에 헌신하는 것이다. 선교한국이 한국교회로 해외선교에 헌신하도록 도전하는 것처럼 선교중국은 중국교회가 해외선교에 헌신하도록 격려하고 섬기는 것이다. 물론 중국교회(전적으로 가정교회 내지 제 3의 교회)는 ‘백투예루살렘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선교중국과 용어상 혼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백투운동은 가정교회 전체가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2) 이러저러한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3)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백투운동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다.4) 그리고 백투운동은 중국인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그리고 북한선교를 도외시하는 문제가 있다. 선교중국대신 백투운동을 우리가 추구한다면 선교사각지대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중국교회의 정서와 약간의 마찰이 있을 수 있지만 선교중국(宣敎的中國)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선교중국이 백투운동을 대체하는 선교운동이 아니라 백투운동을 포함하는 선교운동인 것이다. 앞으로 중국교회와의 심도있는 협의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교회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용어를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선교중국의 영역은 중국교회에 해외선교에 대한 헌신을 도전하고 격려하는 것을 첫 번째 과업으로 한다. 나아가 중국교회의 선교훈련을 섬기며 해외 선교를 수행함에 있어서 자문과 동역으로 함께 가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교회와 중국인 선교사들이 국제적인 감각을 갖게되고, 오랜 기간 타문화권 선교에 헌신해 선교의 노하우와 경험을 풍부하게 갖고있는 기존의 국제적인 선교단체들과 네트웤을 구축하여 보다 효과적이고도 효율적으로 타문화권 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섬기는 것 또한 선교중국이 추구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교중국은 한국교회에 주어진 사명이라고 하더라도 실제적으로 중국교회에 주어진 사명이다. 오래전 중국교회가 가졌던 비전을 선교강국으로 발돋음한 한국교회가 그 비전을 함께 가지고 이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선교중국을 수행하는 중국교회의 동역자와 협력자로 선교중국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다.
2.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의 비전
비전은 하나님이 그 백성들에게 주시는 것으로 비전을 받은 자는 그 비전을 따라 살게 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 비전을 받은 자는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된다. 비전을 주신 하나님은 그 비전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도 붙여주시고 필요한 물질과 여건도 조성하여주시며 비전이 성취될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비전이 성취되었을 때 비전을 받은 사람은 그 일을 한 것은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알고 고백하게 된다. 주의 일은 주님이 친히 하시는 것이다. 우리도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이 주님이 친히 하신 일이고 하실 일임을 믿고 비전을 보아야 할 것이다.
2.1 중국선교의 비전
중국선교의 비전은 중국을 복음화하고 중국교회 성도들을 성경 말씀대로 세우며, 중국교회를 성경적인 교회가 되게 하고 선교하는 교회로 세워지도록 섬기는 것이다.
1) 중국인의 복음화와 중국문화의 복음화.
중국의 복음화는 중국인의 복음화요, 중국 사회와 문화의 복음화이다. 중국에서 복음을 정확하게 듣지 못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때까지 복음을 증거해야 하며, 중국에 있는 소수민족들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중국의 복음화는 개인의 구원뿐만 아니라 중국인의 다양한 필요에 응답하는 전인적인 선교, 통전적인 선교를 추구하는 것이다.
2) 성경적 교회의 건립.
중국교회는 성경적인 유기체로서 자생력있는 토착교회로 세워져야 한다. 예배, 교제, 공동체 등 성경적 교회생활의 회복을 추구하며,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역동적인 교회가 되어야 하며 주 안에서 하나됨을 지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또한 삶으로 복음을 증거하고 중국인의 삶의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며 중국을 책임질 인재를 배출하고 중국에 부합되는 기독교 문화를 창출하여야 한다.
3) 선교하는 중국교회.
중국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하여 소수민족선교와 타문화권 선교를 수행하도록 섬겨야 한다. 중국교회가 소수민족선교와 해외선교에 헌신하도록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도전하고 동기를 부여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선교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선교훈련과 선교 실행에 있어서 섬겨야 한다.
4) 해외교회와 교류하며 보편적 교회로 세워지는 중국교회.
중국교회가 해외 교회들과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해외 교회들의 경험을 듣는 교제를 하여 보편적인 세계교회의 일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중국내에서의 선교와 해외 타문화권 선교에서도 협력하며 동역하도록 섬겨야 한다.
2.2 선교중국의 비전
선교중국의 비전은 중국교회를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섬겨 미전도지역인 회교권 선교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북한 등의 선교에 헌신하여 그 열매로 선교지 토착교회를 설립하며 나아가 선교지 교회들이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섬기는 것이다.
1) 중국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로 세워지는 것이 선교중국의 비전이며 선교중국의 출발점이다.
선교지교회인 중국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중국선교의 성공이며 하나님께 드릴 열매인 것이다. 중국교회가 자체 운영과 자국 복음화에서 타문화권 선교로 눈을 돌리고 선교를 시도하는 것이 선교중국의 첫 번째 비전인 것이다. 나아가 모든 중국교회가 타문화권선교에 참여할 때 이 비전은 성취된다.
2) 중국가정교회가 갖고있는 ‘백투예루살렘운동’의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선교중국의 두 번째 비전이다.
선교중국은 중국교회가 주체가 되고 해외 교회는 섬기는 자, 동역자가 되어 타문화권 선교로 나아가는 것이다. 중국교회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전부터 ‘백투운동’의 비전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백투운동의 비전은 수면아래로 사라졌다가 최근 가정교회를 중심으로 다시 부활하여 중국교회의 비전이 되고 있다. 중국교회의 비전과 정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에만 중국교회와 타문화권 선교를 동역할 수 있다. 백투운동은 중국과 예루살렘 중간에 있는 이슬람, 불교, 힌두교의 주요 종교지역을 복음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백투운동은 실크로드의 한쪽 끝에 위치한 예루살렘을 통해 유럽과 북 아프리카, 중동 지역의 문물과 복음이 중국에 들어오게 된 것처럼 이제 반대로 그 길을 따라 중동과 북부 아프리카와 유럽에 까지 복음을 전하겠다는 비전이다. 백투운동은 서안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 중국 남부에서 인도차이나반도를 지나 예루살렘과 유럽에 이르는 길, 사천성 성도에서 부탄과 북인도 네팔 등 지역을 통과해서 실크로드와 합하는 길을 따라 유럽까지 복음을 전파하자는 것으로 이슬람 국가들만 아니라 서남 중국의 소수민족과 동남아시아의 국가들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확인한 바에 의하면 중국교회가 의도하고 추구하는 백투운동은 철저히 회교권선교였다.
3) 선교중국이 백투운동에 머문다면 선교중국은 타문화권 선교의 사각지대를 상실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선교중국에 관여하는 화교 지도자에게 중국교회의 백투운동이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북한선교에 대해서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에 대하여 질문하였을 때 ‘시기상조’라고 답변하였다. 물론 지금 중국교회가 백투운동도 버거운 사역인데 백투운동의 사각지대에까지 선교사역을 준비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대로 둔다면 세계선교의 완성은 너무나 오래 지체될 것이다. 그래서 선교중국은 백투운동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타문화권 선교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아프리카, 인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북한선교를 복음화하고 현지 교회를 선교는 교회로 서도록 섬기는 것을 세 번째 비전으로 한다. 예를 들어 북한이 복음화된다면 북한에서도 세계선교, 타문화권 선교에 순교자적 자세로 헌신할 선교헌신자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3.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의 상호관계
중국가정교회의 찬양에 “우리는 선교하는 중국(宣敎的中國)의 비전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가사가 있다. 이 찬양가사의 뜻은 양방면이다. 그 하나는 복음선교가 중국의 모든 각 지역에 들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이 선교의 국가가 되어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전하는 것이다. 이 찬양 가사가 말해주듯이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은 상호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선교가 없는 선교중국은 성립자체가 불가능하고, 선교중국이 없는 중국선교는 뭔가 부족하고 아쉬운 미완성의 사역이 될 뿐이다.
1) 뿌리와 열매의 관계.
선교중국은 중국선교라는 뿌리에서 잉태되고 자라나고 수행되는 선교사역이다. 중국선교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성숙해가면서 선교중국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중국선교가 중국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였기에 그 열매로서 선교중국이 시도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의 관계는 뿌리와 열매의 관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뿌리인 중국선교가 더 흥왕하고 건강하게 수행될 때에 열매로서의 선교중국은 왕성하게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선교중국의 뿌리인 중국선교가 쇠락해간다면 선교중국도 그 전도를 보장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중국선교의 성장과 성숙을 추구하면서 선교중국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2) 선교중국의 원동력으로서의 중국선교, 중국선교의 확장으로서의 선교중국.
선교중국의 원동력은 중국교회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국선교는 선교중국의 원동력으로서 앞으로도 중요한 사역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교중국은 중국선교의 대체가 아니라 중국선교의 확장인 것이다. 선교지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 진다. 건강하게 성장한 교회는 반드시 선교에 헌신하게 되어 있다. 중국선교의 성공은 선교중국으로 입증되어진다. 그러므로 선교중국의 비전을 성취하려면 중국교회가 온전하고 건실한 교회가 되도록 섬기는 중국선교가 지금보다 더 진일보 해야 할 것이다.
3) 땅끝으로서의 중국선교, 땅끝으로 가는 선교중국.
중국은 세계선교에 있어서 땅끝이다. 지금도 중국은 세계선교의 땅끝이다. 그럼에도 중국교회는 그들의 땅끝인 해외로 나아가야 한다. ‘중국에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굳이 해외 선교를 해야하느냐?’의 논란이 중국교회에 있다. 중국인들이 다 구원받은 다음에 타문화권 선교에 나선다면 선교중국은 영영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땅끝인 중국선교를 수행함과 동시에 중국교회의 땅끝인 선교중국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은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병립할 수 있고 병립되어야 하는 관계인 것이다. 이미 과거에 다 입증된 주제를 갖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지말고 땅끝으로서의 중국선교도 이전 못지 않게 열심히 하고 땅끝으로 나가는 선교중국도 힘써야 할 것이다.
4) 해외 중국인 선교를 포함하는 중국선교, 해외중국인 선교를 발판으로 삼아 뻗어나가는 선교중국.
해외에 화교뿐만 아니라 대륙에서 나간 중국인 거주지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중국선교(China mission)가 아니라 중국인선교(Chinese mission)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중국선교를 말할 때는 중국인선교도 포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해외 중국인선교는 중국선교일 뿐 아니라 선교중국을 수행하는데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 해외중국인 선교를 선교중국으로 인정할 때 오히려 선교중국이 활기차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한국교회가 한인교회 사역을 하는 사역자들을 선교사로 인준해 줌으로 한인교회를 선교의 전진기지로 삼아 타문화권 선교가 진전을 이룬 것에서 관점을 찾을 수 있다.
5) 중국선교로서의 중국소수민족선교, 타문화권 선교의 경험으로서의 중국소수민족선교.
중국소수민족선교는 우리에게는 중국선교의 일환이지만 중국교회로서는 타문화권 선교이다. 중국교회가 타문화권 선교를 경험한 것은 중국내 소수민족 선교를 수행하면서부터일 것이다. 근래 가정교회에서 100여명의 사역자를 소수민족선교에 파송하여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 의미가 있다. 선교중국의 관점에서 중국소수민족선교를 그 자체가 중요할 뿐 아니라 타문화권 선교의 경험을 하는 것에도 가치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소수민족선교는 중국선교와 선교중국 모두에게 중요한 사역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6)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와 중국선교, 선교중국의 관계.
중국선교는 삼자교회도 섬기고 가정교회도 섬긴다. 이렇게 하는 것을 삼자교회나 가정교회는 양다리전략(雙軌策略)이라하여 모두 달가워하지 않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선교중국이 현재는 삼자교회와 별 상관이 없다. 삼자교회는 교회와 교인의 관리에 관심이 있고 집중하지 선교, 특히 타문화권 선교에 대해서는 별 관심도 없고 실제로 시도하지도 않는 것이 사실이다. 선교중국은 가정교회 내지 제3의 독립교회들이 부담을 갖고 헌신하려고 하고 실제로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선교는 중국의 모든 교회를 아우르지만 선교중국은 가정교회를 중심으로 수행되고 있고, 선교중국에서 중국교회는 가정교회 내지 제 3의 교회를 지칭할 수 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삼자교회도 선교중국에 참여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럼에도 삼자교회와 협력하는 선교사는 삼자교회가 선교중국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서서히, 그리고 지혜롭게 동기를 부여하고, 선교중국에 쓰임받게 준비할 수 있도록 섬겨야 할 것이다.
7) 한국교회의 입장에서 본 중국선교와 선교중국.
한국교회에 중국선교는 그 자체가 세계선교의 완성에 헌신하는 것이다. 중국선교가 세계선교에서 차지하는 1/4이상의 비중을 갖고있기 때문이다. 한중국교수립이후 한국교회는 중국선교에 다걸기 하다시피하였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선교중국에 대한 부담을 갖기 시작하였다. 선교중국은 중국교회가 주역이지만 한국교회의 헌신과 동역이 없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교회가 빠져나오기 힘든 침체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선교중국에 헌신하는 것은 꼭 필요한 사역이다. 그래서 선교중국은 한국교회에 선택이 아니라 필수수역이 되는 것이다. 아직도 상당기간 중국선교에 헌신해야 하지만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는 이제 선교중국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에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은 별 개의 대립적인 사역이 아니라 중국선교가 확장되어 나아가는 것이 한국교회의 선교중국인 것이다. 한국교회가 중국선교를 계속하면서도 선교중국에 헌신해야 하는 것이다.
8) 중국선교에서 훈련되고 준비되어 선교중국에서 새롭게 쓰임 받는 한국선교사.
중국선교에서 준비된 중국에 재입국이 불허된 비자발적 귀국선교사들이 선교중국에서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다. 비자발적 귀국선교사들에게 중국선교는 귀한 경험이었고 훈련이었다. 그들에게 선교중국은 새로운 사역의 장으로 열려 있다. 비자발적 귀국선교사들은 대부분 중국어를 습득하여 소통에 별 문제가 없고 중국인 사역 경험도 풍부한 편이다. 게다가 중국교회와 관계망을 형성하여 네트웤이 되어 있다. 비자발적 귀국선교사들은 선교중국을 위한 하나님의 비장의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해외에서 중국인 선교사들과 함께 선교중국을 열어갈 수 있다.
이들과는 또 다른 선교중국의 귀중한 자원은 중국에서 장기사역을 한 시니어 선교사들이다. 중국에서 장기간 사역을 한 선교사들이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을 이어주는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보화가 될 것이다. 장기 사역 선교사들은 신분과 사역이 노출되어 그대로 간다면 추방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추방당하기 전에 자진 귀국하여 비거주 사역을 하면 중국선교를 지속하면서도 선교중국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다. 중국교회와 네트웤도 되어 있고, 중국에 출입도 자유로우니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을 도모하기에 금상첨화의 조건이다.
나아가 중국선교에 헌신하고 있는 선교사들도 교통하고 협력하는 교회들이 선교중국에 헌신할 수 있도록 믿음으로 도전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나아가 중국교회들이 선교중국을 감당할 수 있는 선교적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격려하고 섬겨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어느 정도 때가 이르면 네트웤된 교회들과 함께 선교중국에 동참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사역을 하는 것이 요청된다.
중국교회의 해외선교와 타문화권 선교에서 자발적, 비자발적 귀국선교사들은 중국인선교사와 선교지에서 이미 사역하고 있는 한국인선교사들을 연결하는 코디네이터의 역할과 함께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들도 때가 되면 선교중국에 귀한 역할을 감당하게 되리라고 기대한다.
나가는 말
선교중국이 새로운 선교의 방향인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중국선교가 시작될 때부터 선교중국은 이미 그 속에 잉태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기가 엄마 배속에서 열 달을 채우고 나오는 것처럼 선교중국도 중국선교 속에서 잉태기간을 보내고 이제 당당히 그 모습과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아기가 점점 자라나듯 선교중국도 점점 성장하고 성숙해가고 있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도 않던 선교중국의 실체가 이제는 또렷하게 보이며 조금 더 지나가면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깜짝 놀랄만큼 거대한 세력이 되어 세계선교의 장을 장식하게 될 것이다.
선교중국은 마지막 시대 한국교회에 주신 섬김의 사명이요 어려운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지렛대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선교중국에 쓰임받는 꿈을 꾸자. 중국선교사는 물론 해외에서 선교하고 있는 선교사들, 그리고 국내에서 주님이 부르신 현장에서 이모저모로 주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 선교중국으로 부르시는 선교의 대사령관이신 성령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힘차게 달려가서 사도 바울과 같이 주님 앞에 서는 날 어엿이 설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병이 되자.
각주
1) 宣敎的中國의 가사 내용 중 일부 번역부분 "성령께서 앞으로 내 마음을 인도하시는 음성이 있네.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갑시다. -중략- 나는 이상을 가지고 전진하면서 선교하는 중국을 볼 것입니다. 복음이 세계 곳곳에 전파되도록"
2) 가정교회 중 오순절 계열의 교회들은 열렬한 반응을 보이고, 복음주의 계열은 관망하는 태도이고, 보수주의와 근본주의 계열은 반대한다. 그리고 삼자교회의 반응은 냉담하다. “백투예루살렘운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중국을 주께로, 2007.9/10. 통권 103호. 참조.
3) 김학관은 ‘백투에루살렘 운동’의 문제점을 몇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1) 현대선교방향을 극단적으로 획일화시키고 있다. 그럼므로 신학적으로나 선교학적으로 전문적인 연구와 철저한 점검을 받아야 한다.
2) 성경에서 예루살렘이 선교의 목표요 최후 종착지란 근거가 없다.
3) 복음이 서진하여 지금 중국에 이르렀고 이제 예루살렘으로 건너가서 유대인들의 개종만 이루어지면 주님이 재림한다고 믿는 것은 매우 초보적인 이해이다.
4) 1920년대의 백투에루살렘 운동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1차세게대전과 경제공황으로 인한 혼란의 시기였으며, 많은 이단들이 출현하여 종말이 왔다고 외치며 세상을 미혹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중국의 일부교회들이 종말적 선교사명을 앞세워 백투에루살렘 운동을 주장하게 되었으며, 1940년대에는 더 구체적인 중국 서북지역과 이슬람선교에 대한 선교운동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5) 중생파는 1990년대에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셔북지역과 이슬람 지역의 선교를 꿈구며 일꾼들을 파송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신자들의 희생과 이슬람지역의 사람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반감만을 낳은 채 끝나고 말았다. 김학관, 중국선교의 미래(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2008), pp.189-190.
4) 국내에서 백투에루살렘 운동의 이미지가 좋지 않게 된 것은 중생파가 이 운동을 이익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중생파가 주장하는 10만명 선교사 동원설과 해외에 5개 이상의 신학기관을 설립하여 단기간에 세계복음화를 완성하자는 것이 무모한 발상이기 때문에 그 진정성과 실현성이 의심받게 된 것이다. .
<2009년 8월 11일 선교중국 2009에서 주최하는 선교중국컨퍼런스에서 발표할 내용입니다.>
|출처:중국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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