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에서 처럼 사실 농촌의 원거주지 선교는 앞에서 말씀드린 여러가지 사정으로 장기 체류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원거주지 선교는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교제하고 섬기는 형태를 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의료봉사, 어린이 교육, 음악, 건축보조 등의 일을 함께 도우며, 실제 사역을 병행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한달에 한 번, 혹은 분기에 한번이나, 6개월에 한번이라도 꾸준히 감당해 나감으로써 적지 않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비거주 선교라고 부릅니다. ● 그런데 이 원거주지의 농촌에서 사역과 관련하여 도시 혹은 대학에 비해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은 "회심"의 부분입니다. 즉 농촌에서의 "회심"은 개인적인 회심의 차원이외에 "집단적 회심"이라는 요인을 반드시 고려하여야 합니다. 대학은 "개인적 회심"이 많습니다. 도시에서는 개인적인 회심이외에 "가족적 회심"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데, 특히 농촌에서는 개인과 가족을 넘어선 씨족 혹은 더 나아가서는 부족 전체의 회심이라고 하는 "집단적 회심"의 경우를 항상 염두에 두며, 성령의 역사하심을 기대해야 합니다. ● 이러한 집단적 회심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그 부족 혹은 씨족의 의사결정에 대한 메카니즘을 잘 이해하고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보편적으로 이러한 종족의 의사결정 매카니즘은 가정 내에서는 남자에게, 그리고 씨족의 경우에는 연장자에게 그리고 부족의 경우에는 그 부족 중 가장 권위가 있는 사람에 의해 어떤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가정과 씨족과 부족이 집단적으로 주님께 돌아오는 집단적 회심의 경우, 이런 의사결정권자의 태도와 결정에 의해 집단적 회심이 일어 나는 경우를 우리는 기대해야 합니다. ● 이러한 집단적인 회심의 성경적인 근거는 많습니다. 그 하나는 유월절인데, 사실 구원을 예표하는 유월절은 가족적 구원의 개념입니다. 어린 양의 피로 인해 온 가족이 구원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의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 도시와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집단적 회심의 경우에 유의해야 할 개념의 하나는 소위 "구속적 유사"라고 하는 것인데, 그것은 그 종족의 고유한 문화적 개념 가운데 우리 신앙의 주요한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을 포착하여 믿음의 도리와 개념을 가르키는 것을 말합니다. ● "화해의 아이"라고 하는 유명한 이야기는 구속적 유사의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소설 "춘향전"도 그렇게 보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춘향에게 대한 이몽룡의 사랑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이몽룡을 기다리다 온갖 고초 다 겪는 춘향의 시련을 우리 성도의 환란으로, 일편단심으로 기다리는 춘향의 기다림을 성도의 소망으로, 마지막 극적인 둘의 만남을 우리 성도와 주님과의 만남으로 설명하는 것이지요. ● 어떻게 그 종족의 문화속에 숨어있는 구속적 유사(코드)를 발견해 낼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 종족의 문화와 종교, 역사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적절한 구속적 유사는 그 종족 전체를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데 큰 힘을 발휘합니다. 율법 속의 어린 양을 통해 제사 지내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세례 요한이 제시한 구속적 유사는 "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하는 어린 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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