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투예루살렘과 예루살렘
강요한 / 인터콥 사역자
“샬롬 예루살렘 ! ”
‘예루살렘예수행진2004’의 오펠가든 집회에서의 “샬롬 예루살렘 !”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며, 모리야 산 옛 성전 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황금 모스크 (바위 돔 사원 The Dome of the Rock)가 눈에 아른거린다. 솔로몬 성전의 자리에 세워져 있는 바위 돔 사원은 이삭의 후예인 이스라엘과 이스마엘의 후예인 이슬람 민족 간의 첨예한 대립을 상징하고 있고, 그 지붕의 황금색이 더욱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다.
모리야 산 옛 성전의 회복을 열망하던 유대인들은 1948년 5월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이루어진 ‘고토로의 귀환’을 통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 1967년 6월 ‘6일 전쟁’을 통하여, 요르단이 장악하고 있던 역사적인 구 예루살렘을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이 전쟁을 통하여 회복한 통곡의 벽에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서기 70년 로마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된 여호와의 성전 재건을 위하여 통곡하며 기도하고 있다. 유대인의 열망대로 바위 돔 사원을 제거하고 성전을 재건한다는 것은 곧 세계 3차 대전을 의미하는 것임을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이 모두가 잘 알고 있기에, 그 긴장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예루살렘예수행진2004’는 이삭과 이스마엘 자손의 첨예한 대립의 현장인 오펠 가든 곧 황금 모스크 남쪽 벽을 바로 맞대고 있는 다윗의 옛 궁전 자리에서 2,500여 참가자들이 “샬롬 예루살렘”을 외치며 예루살렘의 진정한 평화를 위하여 기도했었다. 오펠 가든은 유대인들의 자부심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고, 바로 통곡의 벽 건너편에서 황금 모스크를 끼고 위치해 있는 곳이라, 이슬람과 유대교의 최고 성지를 맞대고 있는 긴장된 곳이기도 하다. 현장에 달려 간 한국의 성도들과 함께 1천 개의 한국 교회 성도들의 기도가 거룩한 향이 되어 하늘의 보좌로 올려진 순간이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시122:6)의 말씀대로 우리가 구했던 예루살렘의 평화는 BC 1천년 경에 다윗의 도시로 확정된 이후 10번 이상 파괴되었던 예루살렘 도시의 평화 뿐 아니라 이삭과 이스마엘 자손의 회복, 곧 열방의 회복을 갈망하는 종말론적인 평화의 기도였다.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우리 모두는 이삭과 이스마엘 자손의 화해와 평화가 모든 민족의 회복을 통한 주님의 재림과 직결되어 있음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
중국에서 시작된 백투예루살렘 (Back to Jerusalem)운동은 이제 한국과 서구 교회를 넘어 벌써 중앙아시아 교회들로 퍼져가고 있다. 중국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들을 때마다 서로 순진한 웃음과 순박한 이야기꽃을 피우며 예루살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낸다. 심지어는 중앙아시아 성도들도 예루살렘에 대한 사랑으로 물들어 가며 사모함으로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멀리만 느껴지던 예루살렘이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사랑스러운 도시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사모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다는 소망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복음의 마지막 주자로 완성의 피날레를 끊으며 예루살렘에 도달하는 날, 공중에서 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릴 때 수고한 모든 종들에게 위로와 기쁨이 임하게 될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격스럽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시122:6)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예루살렘을 사랑하시며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눅19:41, 42)고 말씀하시며 평화의 왕 성자 하나님께서 오신 그 날을 모르며 눈에 숨기워진 것을 한탄하셨다. 예수님은 표적을 보이라고 말한 유대인을 향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2:19)고 말씀하신대로 예루살렘의 성전을 사흘 만에 회복하시고 평화의 날을 선포하셨다. 그 평화의 날은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이제는 북미를 돌아 심지어는 이스마엘의 자손들에게까지 선포되어지고 있다.
축복된 모든 민족의 평화의 날이 아직도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눈에는 여전히 숨기워져 있다. 예수님이 보셨던 성전, 곧 헤롯대제에 의하여 중건된 성전은 이미 법궤도, 선지자도, 하나님의 임재도 없었던 그냥 돌무더기였을 뿐이었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그 성전에 어떤 집착을 보이지 않으셨으나 오히려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사랑을 보이셨다. 지금 유대인들이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며 재건하기를 원하는 성전에도 역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생명은 없을 것이다. 곧 다시 무너질 돌 위에 쌓여진 돌무더기일 뿐이리라. 이미 평화의 날은 임했고, 성전은 재건되어 모든 민족이 성전의 생명을 나누고 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재건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한 “만민이 기도하는 집”(막11:17)을 재건하셨다. 이제 모든 민족은 신령과 진정으로 어디서든 여호와의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모든 민족의 성도들이 모퉁이 돌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성전이 되어가고 있는 감격스럽고 기쁜 소식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숨기워져 있다(엡2:20,21). 이! 스라엘 민족의 눈을 가리우고 있는 것은 이스마엘 자손과의 결박과 역사적으로 버림 받은 상처의 아픔들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셔서 모든 민족의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고 계심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이 유대인들을 내려놓고 이방인의 구원을 외치며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을 때도 유대인들은 바울을 수없이 핍박하며 이방인의 하나님을 부인했었다.
현재 이스라엘 교회가 아직 매우 약하지만, 옛날 초대 교회처럼 남아 있는 미전도종족, 특히 이스마엘 자손들을 위하여 선교사를 파송하며 사역하게 된다면 오히려 어둠의 매듭은 쉽게 풀어질 수도 있다. 사도 바울이 이방인을 향할 때, 이스라엘 민족 교회는 적은 수로도 열방의 사도로 섬기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이스라엘 민족 교회는 이방인을 향하고, 이방인들의 교회는 이스라엘을 향한다면 역사의 마지막 매듭이 자연스럽게 풀리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과 이방인, 특히 이삭과 이스마엘 자손들의 화해는 그들의 눈을 열어 주며 성전의 생명을 나눌 수 있는 대로를 열어 줄 것이다. 극히 미미한 이스라엘 교회지만,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이스라엘 민족의 원래 부르심대로 다시 열방을 섬기기로 결정하고 기도하며 열방의 사역을 회복한다면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슥14:8)는 말씀의 성취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극히 소수 그리스도인들의 지하 교회들에서도 벌써 선교사들이 나오며, 이슬람권 뿐 아니라 백투예루살렘을 외치며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 교회에서 열방의 선교사들과 사역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기대가 아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회개와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는 통로이다. 한국 교회도 선교하며 다른 민족을 사랑하고 섬기게 되었듯이, 이스라엘도 열방의 사랑 안에 들어와야 한다. 결국 곧 사라지게 될 모든 미전도 종족들을 포함한 모든 열방이 복음으로 사랑의 빚을 지고 갚아감으로, 함께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을 완성하며 그 위에 십자가를 세우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는 자신과 자기 민족 뿐 아니라 그 벽을 뛰어 넘어 모든 민족과 잃어버린 영혼을 위한 눈물겨운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성전을 완성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사모하는 우리 모두는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며, 예루살렘의 평화를 갈망하는 자들이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영적 전쟁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1:26) 했던 하나님의 비전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었다. 인간에게 부여했던 하나님의 능력과 부와 지혜의 형상은 이제 원래대로의 회복이 불가능하며,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거친 후 하늘의 영광에 도달한 후에나 원상회복이 가능한 상황이다. 사단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는 그래서 더욱 크시다. 죄가 심할수록 능력은 더욱 제한받고 감퇴되기에 사단과 악령들에게도 치명적인 제한이 불가피하다. 하나님의 교회는 성령 충만을 통하여 능력과 지혜가 배가되고 있고, 사단과 악령들은 마지막이 될수록 더욱 악해지며 모든 면에서 더욱 제한을 받게 되기에 이 전쟁은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
세계 선교 역사상 지금만큼 동시다발적으로 장, 단기 선교사와 단기선교팀 그리고 중보기도 사역이 전략적으로 이루진 적이 없었다. 남아 있는 6천여 개의 미전도 종족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선교팀을 우선적으로 보내기 위한 프론티어 선교 운동이 보편화되고 있다. 여호수아프로젝트에 의하면 인구 1만 명 이상 되는 종족이 1,581개라 하니, 남아 있는 미전도 종족의 대부분이 소수 종족이라 미전도종족 선교의 속도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과 북미주 그리고 아프리카, 러시아, 오세아니아 그리고 아시아의 모든 교회가 세계 선교에 동참하고 있다. 선교지에서 각 대륙의 선교사들을 만난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남미와 중국의 대군대도 전선에 동참하고 있어 더욱 고무적이다. Uz국의 한 도시의 선교사들은 비서구권 선교사들로만 구성되어 영어가 아닌 현지어로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페르시아 창과 아랍 창에서도 지하 교회의 성장 소식들이 들려오며 마지막 프론티어를 향한 사역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90년대에 소련 연방의 붕괴로 초원길을 여셨던 하나님은 비단길을 흔들며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교회 성장을 주도하셨다. 10년 후 2001년 9.11사태 이후에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 페르시아창을 다시 열면서 마지막 남은 아랍창을 두드리고 계신다. 쓰나미 해일의 재난으로 세계 교회가 17만 이상의 인명이 희생된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스리랑카를 위해 함께 아파하며 기도하고 많은 구호품과 구조팀을 보내고 있다. 이 섬김과 기도로 아시안 하이웨이를 회복하시며 열어 가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기대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사방에서 회복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예루살렘 밖에서의 영적 전쟁은 백투예루살렘을 외치며 전략적이고 대대적으로 회복과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진군하고 있다.
2천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는 감람산 중턱의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시며 성전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정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의 자리에서 옛 성전의 자리를 바라보면 그곳에 황금 문 (Golden Gate)이 위치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문으로 알려져 있는 황금 문은 자비의 문과 회개의 문(Mercy Gate & Repentance Gate)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금은 두 문이 다 막혀 있다. 2천년 전 기도하셨던 감람산에서 초림 예수님은 성전을 바라보시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정하셨다. 동일한 감람산으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어린 양이 아닌 사자 같은 권위의 왕으로, 그 무너진 이스라엘을 향하여 예루살렘의 황금 문을 여시고 영광 중에 입성하실 것이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서 이방인을 향한 자비와 유대인의 회개의 회복이 완성되었음을 선포하실 것이다.
백투예루살렘(Back to Jerusalem)
백투예루살렘의 초원길, 비단길, 아시안 하이웨이의 회복은 이방인들이 감당할 수 있지만, 예루살렘의 회복은 종국적으로 유대인들의 민족적인 회개에 달려 있다. 70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나감을 깨닫고, 예루살렘 고토로의 귀환을 위하여 금식과 회개로 부르짖었던 다니엘과 같은 자들이 일어나서 기도하면, 여호와의 손이 민족을 치유하며,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롬11:26)는 말씀이 성취되어질 것이다. 백투예루살렘의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예루살렘과 유대인들의 회복도 속도를 더하고 있다.
150만의 러시아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 유입되면서 많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본토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전보다 더욱 많은 유대인들이 성경과 전도지를 가져가고 있으며, 일하지 않고 정부의 지원으로 종교 활동에만 전념하는 유대교 랍비들이 세습되고 너무 많아져 세비 부담이 많아지게 된 유대인들의 감정이 그들에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고 한다. 진리를 갈망하나 채워지지 않는 청년들이 뉴에이지에 심취되어 모이는 대규모 집회가 매년 이스라엘에서 열리고 있다고 한다. 영적인 공허함이 깊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진리를 찾아 절규하는 부르짖음이 더해가고 있다. 영적 무너짐은 하나님의 회복과 부흥의 전주곡과 같다고 하기에 “예루살렘에 사람이 거하리니, 그 가운데 사람과 육축이 많으므로 그것이 성곽 없는 촌락과 같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슥2:4,5)는 말씀을 사모할 때이다.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의 종말론적인 예언의 말씀으로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아지며, 여호와께서 직접 불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 영광이 되시리라는 말씀이다. ? ?유다 족속, 이스라엘 족속을 이방인 가운데서 저주가 되지 않고 축복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의 성취이다(슥8:13).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다고 외치게 된다(슥8:23).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의 사역이 아직도 완성되어지지 않았다. 6천여 개의 미전도 종족이 빠르면 10년 내에 사라지게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세계 선교의 위대한 순간이자 하나님의 교회의 승리의 순간이다. 이방인의 사도, 바울의 사역이 완성되면서 종말로는 유대인의 구원을 통하여 이방인의 구원도 신속하게 함께 완성되어질 것이다.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계14:15)는 말씀과 함께 낫을 땅에 휘두르는 대대적인 추수가 남은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동시에 이루어질 것이다.
마지막 소망
백투예루살렘 운동은 초원길, 비단길, 아시안 하이웨이를 따라 이슬람권, 힌두권, 불교권, 공산권의 복음화를 완성하며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이 그 마지막 비전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중앙아시아와 소아시아와 모든 이슬람권에서, 유럽과 북미에서,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그리고 북방 러시아에서 모두가 다 십시일반 힘을 합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모든 이방으로 다시 향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사도의 정신이 회복되고, 모든 이방인 교회를 위한 사랑과 희생이 회복된다면 그 권위와 존귀함은 회복되어 질 것이다. 이스라엘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열방을 함께 품는 장자의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평화 뿐 아니라 모든 열방의 평화도 함께 외치는 것이다. 놀라거나 두려움이 없는 유다 지파 사자로 회복되어야 한다. 백투예루살렘 운동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를 채움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려는 사도 바울의 사역 정신과 일치한다(롬11:25). 이제 예루살렘은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어 이방인의 형제들에게 문안하고 사도적인 결정과 위! 로를 전해주었던 초대 교회의 영광으로 회복되어야 할 때이다(행15:20-29). 백투예루살렘은 이방에서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더욱 예리하고 계시적인 사역으로 확장되며 완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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