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 선교훈련에서 강조해야 할 점들
- GMTC 훈련을 중심으로 -
변 진석 (GMTC원장)
서론
최근 한국 교회와 한국 교회를 통한 선교는 여러 가지 도전들에 직면해 있다. 국내적으로 또한 국제적으로 급변하는 상황은 한국 교회와 한국 선교가 감당해야 할 역할의 중요성을 더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한국 선교를 축복해주시고 한국 선교사들을 통하여 세계 곳곳에 많은 변화들을 일으켜 주셨다. 이제 한국 선교는 세계복음화를 위하여 더욱 올바른 방향성과 통찰력을 가지고 민감하게 대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는 일차적으로 바르게 잘 훈련된 선교사들과 그들이 선도하는 선한 영향력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GMTC는 지난 21년간, 세상에 하나님으로 인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하나님의 선교를 잘 감당할 수 있는 좋은 선교사들을 양성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의 열매들인 졸업생 선교사들이 세계도처에서 열심히 사역을 해 오고 있다. GMTC에서는 매일 “세계를 품은 기도”시간에 함께 모여 그들의 가정과 사역을 위해 중보 기도를 드린다. 그들은 우리들의 자랑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한편, 이제는 GMTC 훈련이 한 단계 더 도약함으로써 21세기의 시대적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앞으로 21세기에 보다 효과적으로 선교하기 위해 한국선교훈련에서 강조해야 할 점들을 GMTC훈련을 중심으로 제시해보고자 한다.
본론
지난 21년간 GMTC의 공식 발간물로서 <선교연구>에는 GMTC가 추구하는 선교훈련의 방향과 관련된 글이 여러 차례 실렸었다(11호-1989년, 12호-1990년, 33호-1996년, 53호-2005년, 57호-2007년). 우리는 그러한 글들을 통해서 GMTC가 한국 상황에서 전문화된 선교훈련기관으로 자리를 잡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거기에는 GMTC가 행하고 있는 선교사훈련의 목표와 커리큘럼, 훈련방법(공식/비공식/비형식) 및 훈련자들의 자세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GMTC가 현재의 훈련 형태를 갖추기까지 오랜 시간의 발전을 위한 고심과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1
GMTC 훈련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현재의 커리큘럼은 1993년 아시아 복음주의협의회(EFA) 선교위원회에서 합의된 선교사 훈련의 아홉 가지 핵심 영역을 한국적 상황에 맞도록 보완하고 다듬은 것이다. 그 내용은 1)영적 성숙, 2)인격적 성숙, 3)감정 및 신체적 건강, 4)가정생활(부부 및 싱글), 5)사회성, 인간관계 기술, 6)성서 및 신학적 이해, 7)타문화 사역기술, 8)선교학 및 타문화 이해, 9)실제적인 기술 분야로 구분된다. 이러한 아홉 가지 핵심 훈련 교과 과정은 크게 인격적인 분야 혹은 기본분야(1-6)와 전문분야(7-9)의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질 수 있다.
GMTC 훈련은 양쪽 분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기본분야인 인성 개발 측면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이것은 선교사 훈련이 일반 신학교나 그와 비슷한 기관에서 행해지고 있는 지적인 분야로 치우진 신학/선교학 교육을 넘어 좀 더 깊은 차원의 전인(全人)의 변화를 유도하는 통합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면에서 정당하고도 필요한 강조라고 하겠다. 인성 훈련의 부분은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공식적 훈련(강의)에서는 물론 일정기간(3개월, 6개월)이기는 하지만 헌신된 훈련자들과 훈련생들 및 그 자녀들이 함께 이루고 있는 공동체 생활이라는 독특한 맥락에서 비공식적이고 비형식적인 방법으로 더 심도 있게 이루어지게 된다. GMTC는 훈련생들이 ‘성서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평생 동안 노력하는 선교사’가 되도록 토대를 마련해 줌으로 그들이 한국 선교를 위해 섬기는 지도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돕는다는 목표를 처음부터 일관되게 유지하여 왔다. 2
GMTC에서 주안점을 두고 있는 선교사 훈련의 목표는 21세기에 들어서서도 여전히 적절하며 유효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21세기의 특징이 되어버린 “세계화(Globalization)”의 상황 속에서 그 목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새롭게 강조되어야 할 점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특히 지난 30여 년 간의 한국 선교의 성장은 세계 교회와 선교계 안에서 한국 교회의 선교가 모델을 제시하며 지도력을 발휘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는 GMTC를 통해 배출되는 사람들이 한국 선교와 나아가 세계 교회와 선교계에도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좀 더 확대된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실 지금까지도 GMTC는 암시적으로나마 그러한 목표점들을 지니고 훈련에 임하여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확대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좀 더 보강하고 강조해야 할 점들이 있다고 여겨진다. 아래의 강조점들은 어떤 면에서는 한국 및 세계 선교 지도자들이 이미 그 필요성을 느끼고 어떻게 구체화시킬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우리는 그러한 점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GMTC 훈련에 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1.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능력 배양
큰 그림을 보는 능력이라는 것은 어떤 한 부분만을 따로 떼어 보지 않고 그것이 전체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는 통찰력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선교사들의 사역은 선교 현지는 물론 그들을 파송한 교회와 파송단체들, 한국 사회와 나아가 세계 교회의 선교 운동과 밀접한 연결점들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의 발단 및 진행, 사태해결의 과정을 보면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는 아무리 세계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도 일파만파(一波萬波)의 파급 효과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 국민일보(2007.11.2.)에는 아프가니스탄 사건을 전후해서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의 제 2도시 후잔드 지역에서만도 교회 세 곳이 문을 닫게 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타지키스탄 현지인 기독교 지도자의 증언에 따르면 아프간 피랍사건은 끝났지만 이슬람권에 있는 기독교 교회들은 현지에서 큰 곤란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화가 기독교 선교에 미친 부정적 영향의 일례라고 말할 수 있다.
많은 경우 한국 선교사들은 협소한 안목을 가지고 자신의 비전과 사역에만 집착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 결과 선교의 실제 상황을 왜곡하여 판단하고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 선교사들은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의 상황 및 선교 동향은 물론 세계적 변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안목을 키우도록 해야 할 것이다. GMTC의 경우는 선교학 과목 중에서도 <선교학 총론> 과정을 통하여 그러한 작업을 하고 있는데 21세기의 상황에 맞추어 그 내용을 더욱 심화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선교사들이 보아야 할 큰 그림 속에는 전체 세계 교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선교 운동의 일부로서 한국선교를 이해하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한국 교회와 선교사들로 하여금 세계 선교를 홀로 다 짊어지고 가야한다는 과도한 책임감 내지 자만심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효과도 있다고 보인다.
필자는 2006년 10월 스페인의 그라나다에서 열렸던 제 3차 코미밤(COMIBAM: 이베로 아메리카 선교대회)3에 참석하면서 그런 경험을 하였다. 지난 1997년 참석했던 멕시코 아카풀코에서의 2차 대회와 비교해 보았을 때 지난 10년 동안 라틴 아메리카 전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선교 운동이 장족의 발전과 성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9천 여 명의 라틴 아메리카 교회 출신의 선교사들이 과거 수 세기 동안 자신들에게 선교하였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비롯해서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사역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한 나라가 아니라 한 대륙이 선교를 위해 움직이고 서로 긴밀히 협력하는 모습 속에서 거대한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음을 보았다. 앞으로 중국이나 인도 등의 교회들을 통해서도 이러한 선교운동의 물결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 한국 선교사들은 기존의 서구선교 운동과 더불어 새롭게 일어나는 선교 운동의 흐름과 보조를 맞추어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시각을 갖도록 준비되어야만 할 것이다.
2. 신학적/선교학적 성찰 능력 강화
한국 선교사들은 사역에 대한 헌신과 열정으로 많은 열매를 맺고 있는 반면 신학적 성찰에 있어서는 아직 두드러진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한국 선교사들에게만 해당하는 현상은 아닌 것 같다. 기독교 역사의 초기에 있어 교회는 매우 선교적이었고 신학 자체도 선교적 상황4에서 형성되었던 반면 기독교가 로마 제국과 뒤이어 유럽 주류 사회의 종교로 정착한 이후에 선교운동은 교회의 주변부에서 일어나는 일이 되어버렸고 신학은 선교적인 차원을 상실하게 되었다.
선교 역사학자인 앤드류 월즈(Andrew Walls)의 평가에 의하면 근대 선교 운동을 일으킨 선교사들은 서구 교회와 학문세계에 한 가지 영역을 제외하고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선교사들의 영향이 미흡했던 그 한 가지 영역이 바로 신학적 분야였다. 그 이유는 신학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선교에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선교사들 자체도 신학은 이미 기존에 서구에서 형성된 것을 선교지 사람들과 교회에 전달하면 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중심을 바꾸며 변화와 성장을 지속해왔다는 사실이 인식되기 시작한 한편 오랜 동안 기독교의 중심으로 간주되었던 서구에서의 교회의 쇠퇴와 비서구 교회의 성장은 신학에 대한 관점도 바꾸어 놓았다. 특별히 1970년대에 들어 나타난 “상황화”의 개념은 새로운 신학의 형성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았는데, 점차 서구 신학을 비롯해서 모든 신학들이 특수한 상황 속에서 성경 계시를 해석하는 가운데 나타난 산물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 결과 비서구 교회들도 이제는 자신의 상황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신학적 성찰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은 필요하고도 정당한 작업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근대선교운동과 더불어 오랜 세월 동안 비서구 지역 교회의 토착성의 표지로 간주되었던 자립(self-supporting), 자전(self-propagating), 자치(self-governing)의 특성뿐 아니라 진정한 토착 교회는 자신학화(self-theologizing)라는 중요한 표지를 지녀야한다는 것이 세계교회에 점차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변화된 상황에서 한국 선교사들은 신학적 성찰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선교사 자신이 신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더불어 타문화 상황 속에 복음을 증거하려고 하는 진지한 노력은 필연적으로 신학적 작업을 수반하게 된다는 것을 좀 더 민감하게 의식하지 않고서는 21세기 선교의 현장에서 시대착오적인 선교사역을 수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GMTC는 훈련생들이 신학과 선교학의 정당한 관계에 대해 바른 관점을 가지도록 힘써 도울 필요가 있다. 데이빗 보쉬(David Bosch)는 “바울은 최초의 기독교 신학자였는데 이는 그가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였기 때문이다(Paul was the first Christian theologian precisely because he was the first Christian missionary)”라고 말함으로 선교사들의 신학적 성찰 작업의 필연성과 그에 따른 유리한 점을 지적했다. 트리니티 신학교의 선교학 교수였던 고(故) 폴 히버트 박사는 선교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선교학은 타문화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참된 신학 작업이다(Missiology is doing real theology in cross-cultural contexts.)" 라고 늘 강조하였던 것이 기억난다.
GMTC는 훈련생들로 하여금 선교 상황 속에서 대면하게 되는 사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신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시켜야만 한다. 요즈음 들어서는 대부분의 훈련생들이 이미 GMTC에 들어오기 전에 단기(短期)로나마 타문화 경험을 한 경우가 많다. 특히 후반기 훈련(8월-12월)의 경우에는 선교지에서 상당한 기간의 사역을 한 경험있는 선교사들이 안식년을 맞아 귀국하여 훈련에 지원하여 들어오는 비율이 절반 이상이다. GMTC 훈련은 이들에게 자신들의 경험을 신학적/선교학적으로 반추해보고 평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주어야 할 것이다. 그 한 가지 방법으로 필요에 따라서는 각지에 있는 졸업생 선교사들의 경험과 고민들을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 자료들로 삼아 심도 있게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3. 유연성(flexibility) 제고
상황이 많이 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의 단일 언어, 단일 문화적 배경은 타문화선교에 있어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간주되었던 ‘단일 언어, 단일 민족’의 신화는 사실상 이제 그 힘이 약화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한국 선교사들의 자문화중심적 시각을 강화시키는데 있어서는 여전히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민족, 다중언어 사회에서 타문화를 가진 그룹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가운데 성장한 사람들에 비해 한국 선교사들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 것이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다문화적 배경에서 자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감각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유명한 문화인류학자이면서 교육가인 조지 스핀들러(George D. Spindler)는 800명의 미국 스탠포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 외의 다른 문화적 상황에서 인지적/해석적 오류를 지속적으로 범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사람들이 새로운 경험을 해석할 때 과거의 경험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다만 해석적 과정에 ‘결정적인 개입’이 있다면 그 결과가 달라진다고 보았다. 여기서 ‘결정적인 개입’이란 교육을 의미한다. 그는 모든 교육/훈련 프로그램에는 “초문화적 노출(transcultural sensitization)”이 필요하며 문화인류학적 시각이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가 한국선교사 훈련에 시사(示唆)하는 바는 매우 크다고 본다. 비록 기존의 한국사회의 특성과 편협한 교육으로 인해 한국 선교사들은 타문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의도된 개입(교육/훈련)을 통해 적어도 그러한 약점을 극복하는 과정을 밟아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타문화 경험을 많이 한다고 할지라도 적절한 교육/훈련과정이 없다면 모든 것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인지하고 해석하는 오류를 계속 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적절한 선교훈련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보도록 만드는 대목이다. GMTC 훈련에 이것을 구체적으로 적용해본다면 훈련생들로 하여금 한국문화중심적인 좁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것들을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훈련목표중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훈련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가 알다시피 교육의 중요한 기능중 하나는 특정 그룹의 정체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그 사회의 문화적 가치들을 구성원들에게 전수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 그룹에 속한 사람들에게 소속감과 충성심을 강화시켜주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로 외부 사람들에 대한 배타성을 강화시키고 단절을 가져오게 만드는 역기능적 측면을 가지게 된다. 기독교 세계에 있어서의 극단적인 예를 찾자면 자기들만의 세계를 형성하고 외부와 접촉을 제한하고 있는 아미쉬(Amish)들이 거기에 속할 것이다. 아미쉬 교사들은 “세상의 삶”과 대비되는 아미쉬 삶의 방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더 넓은 사회와 관계를 맺고 효과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드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이번에 탈레반에 의한 분당샘물교회 아프가니스탄 단기 선교 팀 피랍사건을 둘러싸고 한국 교회에 쏟아 부어진 비난 여론의 원인 중 하나는 한국 교회가 그동안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사회와 제대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진리를 선포하는 태도를 가져왔던 것이 문제였음이 지적되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사람들의 요구를 인식하지도 못했고 교회의 생각과 행동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부족했다는 것이다.
한편 이런 교육 방식과 대비하여 선교사 훈련은 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문화적 경계를 넘도록 하여야 하기에 새롭고도 넓은 전망을 갖도록 도와주어야만 한다. 따라서 훈련생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가정들과 가치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어떤 문제들에 대해서 자신들의 경험을 뛰어넘어 자신들의 문화와 상황에서 기대되는 것들 밖에서 해결책들을 찾는 법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GMTC 훈련은 훈련생들이 익숙해있던 사고의 단계에 그대로 머물지 않고 새로운 단계로 뛰어오를 수 있도록 그들의 기존 전제들의 “평형을 깨뜨리는 (disequilibration)” 역할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동안 GMTC 내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표현되어 왔다. “GMTC의 훈련방향은 단순히 정답을 찾아내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의식하는 가운데 해당문화와 독특한 상황 중에 어떤 가능한 해답(들)이 나올 수 있는가를 찾아내는 능력을 갖추고 이를 실천케 하는데 있다.” 5이를 위해 GMTC는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비롯해서 문화인류학, 상황화 연구의 중요성을 훈련생들에게 가르쳐왔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 변화를 긍정적으로 이용하여 다양한 사람들에게 변하지 않는 복음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사도바울과 같은 유연한 사고를 가진 선교사(고전 9:19-22)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위의 강조점들이 인격과 영성의 훈련이라는 기본을 계속 강화시켜 나간다는 전제아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동안 GMTC는 짧은 기간이지만 밀도 있는 훈련을 통해 훈련생들이 삶 속에 위에 언급한 것들을 향하여 평생토록 살아가도록 목표를 잡아주고 그 밑그림을 그려주는 역할을 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많은 것을 단기간에 소화해 내기에는 역부족이기에 아쉬움을 느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이제 곧 GMTC의 오랜 숙원이었던 선교사 연장 교육 훈련원이 개원될 예정이다. GMTC 초대원장이셨던 이 태웅 목사님과 GMF의 지도자들이 주축이 되어 이끌어갈 <한국 글로벌 리더쉽 연구원>(Global Leadership Focus)이 GMTC 졸업생들을 비롯한 한국 교회 선교지도자들에게 위의 목표들을 향하여 계속 발전과 심화의 과정을 가도록 도와주게 될 것이다. 그리고 GMTC는 이러한 목표들을 이루어나가며 시대의 선교적 필요에 부응하는 더 좋은 지도자들을 길러나간다는 소명을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결론
이상에서 GMTC가 21세기에 요청되는 더욱 좋은 선교지도자들을 길러내기 위해 강조해야 할 점들을 살펴보았다. 현재 한국교회와 선교는 안팎으로 여러 가지 도전들에 직면해 있다. 교회 안으로는 성장정체상황이 하나의 돌이킬 수 없는 현상으로 굳혀져 가고 있고, 교회 밖으로는 세속주의와 종교다원주의라는 새로운 타당성구조(plausibility structure)6
가 한국 사회 안에 강하게 형성되어 가고 있다. 한국 선교와 관련된 더 큰 맥락 속에는 한반도의 통일문제와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의 정세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 선교사들의 현장 속에서는 이슬람 세력과의 긴장이 더욱 고조될 것이 전망된다. 이 모든 도전들을 헤쳐 나가는 최선의 해결책은 성경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러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GMTC가 이 시대의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여 한국과 세계 속에 복음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교사들을 훈련시킬 때 한국 선교는 성숙을 향하여 앞으로 한 발짝 더 전진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각주>
1. 성서 및 신학적 이해(6)가 인격적 분야에 속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 인격 개발에 있어서는 성경적 이해가 기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 이러한 GMTC 훈련의 효과는 21년 동안 배출된 1016명에 이르는 GMTC의 졸업생의 삶과 사역을 통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GMTC 훈련을 받은 선교사들이 현장에서 타문화적응을 가장 효과적으로 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최형근, 2000). 또한 GMTC 자체 조사에 의하면 졸업생들의 선교 사역으로부터 순수 탈락률은 지난 21년간을 통틀어 3%미만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연간 탈락률이 3-5%에 이른다고 하는 국내/국외의 선교단체들의 탈락률과 비교해 보았을 때 대단히 적은 숫자라고 할 수 있다.
3. 1차 코미밤 대회는 1987년 브라질의 싸웅 파울루에서 개최되었다.
4. “선교는 신학의 어머니이다(mission is the mother of theology.)"- Martin Kahler
5. 이 말은 처음 정근모 박사가 그의 강연 중에 사용한 것인데 GMTC 초대원장 이 태웅 목사가 GMTC 훈련 철학을 설명하는데 사용하기 위해 약간 변형시켜 적용한 것이다.
6.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 Burger)가 제시한 개념으로서 개연성 구조, 설득력 구조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어떤 사회 안에서 타당하다고 받아들여지는 신념이나 행동을 판단하는 기준이 구조적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1970년대 한국 사회에서는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발전의 상징으로 매우 자랑스럽게 간주되었던 적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환경오염의 상징으로 비판받고 있다. 즉 한국사회 안에서도 1970년대와 21세기 초의 타당성 구조가 달라졌다.
<참고문헌>
이 태웅. 1989. “한국선교훈련-제언과 진단(I)" 선교연구 11호. GMTC.
. 1990. “한국선교훈련-제언과 진단(II)" 선교연구 12호. GMTC.
. 1996. “선교사 훈련에 대한 소고" 선교연구 33호. GMTC.
. 2005. “내국인에 의한 선교훈련 과연 바람직한가?" 선교연구 53호. GMTC.
. 2007. “지난 21년간의 GMTC 이야기" 선교연구 57호. GMTC.
Bosch, David. 1988. Transforming Mission.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Choi, Hyung Keun. 2000. Preparing Korean Missionaries for Cross-cultural Effectiveness. Ph.D. diss., Asbury Theological Seminary.
Spindler, George D. 1997. Education and cultural process: Anthropological approaches.
Waveland, Prospect Heights, IL.
Walls, Andrew. 2001. The Missionary Movement in Christian History. New York: Orbis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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