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문화인류학
폴 히버트 지음
김동화(외4인: 이종도 이현모 정흥호) 옮김
조이선교회출판부. 2002
1세기 전에는 그리스도인의 91%가 서구에 살았다. 그러나 오는 날은 60%가 아시아 아프리가 라틴 아메리카에서 보게 된다. 그리고 선교들이 섬기고 있는 세상 또한 변하고 있다. 1900년 세계인구는 16억명, 오늘날은 58억이 되었다. 금세기가 시작할 때에는 백만 이상이 살고 있엇던 20개의 도시가 총 2억 3천만명이 살고 있었다. 2005년쯤이면 약 50억으로 추산되는 인구가 560여개의 거대 도시 안에서 살게 될 것이다. 한편 1세기 전에는 힌두교, 이슬람, 불교가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은 이들 종교집단들이 기독교에 대항하여 적극적으로 호전적인 부흥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교회들로부터 파송된 한국 선교사들이 이런 세계에서 어떤 사역을 할 수 있을까?
그의 첫째는 그들은 과거 세대 선교사들의 실수로부터 무엇인가 배울 수 있다. 둘째, 한국 선교사들은 우선적으로 선교가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사람과 같이 되어 사람들 속에서 살면서 섬기도록 보내셨기 때문에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선교지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과 함께 되도록 우리를 부르시고 있는 것이다.
서문
오늘날 세계의 2/3에 해당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교회에서도 선교 활동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그래서 선교사역은 선교지에서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에 훨씬 더 민감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현대 선교 운동은 서구의 식민주의와 기술문명의 확산과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서구의 선교사들은 복음을 서구 문명과 도일한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복음을 서구의 힘이나 기술문명과 동일시하여 복음이 외국의 것으로 인식되게 하였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느 한 부족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시며,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고 교회는 민족성과 계급 및 인간을 전쟁으로 몰아넣는 민족주의의 벽을 깨뜨리는 하나의 몸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사회과학, 인류학 분야에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지식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젊은 선교사들이 다른 문화 속으로 들어갈 때 그 문화를 이해하고 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인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해 보려는 시도이다. 타 문화 관계와 의사소통을 위한 전문 기술이라는 제3의 영역을 소개 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메노나이트 형제 선교회(Mennonite Board of Missions and Services)와 함께 인도에서 동역하면서 저지른 우리의 많은 실구 대하여 오랜 생각을 해온 끝에 저술한 것이다.
제1장 선교와 인류학
1. 성경의 메시지와 문화적 구성
역사적 문화적 차이점을 잇는 다리에서
자유주의[(성경적 계시)성경적인 역사와 문화적 배경]---성육신의 다리---보수주의[(현재 복음을 듣고 있는 사람들)시대적인 역사와 문화적 배경]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분명 우리는 복음을 당시의 역사적, 문화적인 상황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것 없이 메시지를 전할 수 없다.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상황 안에서 우리 자신과 섬기는 사람들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복음주의자로서 우리는 성경의 지식을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가 섬기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 점검해 보려는 시간은 거의 갖지 않는다. 그래서 외래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한편 자유주의 계통의 교회는 현대의 인간 사회에 강조점을 두어왔으나 분명한 성경적 진리에 근거한 신학적 기초의 중요성을 경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복음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한다. 때문에 우리는 성경적 메시지를 알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현재 상황을 알아야 한다.
2, 선교에 공헌한 인류학
우리는 성경과 신학과 교회사를 배워야 한다. 또 하나 사역이 설교든 가르침이든, 의료사역이든 지역개발이든 라디오나 문서사역이든 간에 선교사들로서 사역의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어떻게 우리는 현 세상에 대하여 배울 수 있는가? 인류학, 사회학, 역사 그리고 다른 사회과학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첫째, 인류학은 타문화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둘째, 인류학은 성경 번역과 같은 특별한 선교 사역에 꼭 필요한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문자 형태나 문법사전이나 선생도 없이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만 했다. 셋째, 인류학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일어나는 사회적인 변화를 포함하여 회심의 진행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선교사들을 도와주었다. 넷째, 인류학은 우리에게 복음을 듣는 자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끝으로, 인류학은 모든 문화적 다양성 속에서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에서는 인류학을 통해 선교사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통찰력을 보게 될 것이며 그들의 역사 문화적 상황 속에서 각기 다른 사람들의 연구에 공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보고 이러한 통찰력이 우리의 사역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 지에 대하여 점검해 볼 것이다. 그리고 신학적 가정과 인류학적 전제들을 찾아보고 그 두 가지가 어떻게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또 우리는 선교사역을 더 넓게 이해하기 위해 성경적이고 인류학적인 통찰력을 일치시켜 보려고 한다.
3. 신학적 가정
인간의 역사를 우주적 사건이라는 큰 틀 속에서 이해해야 하며 인간의 인류학적 모델들을 신학적 틀에도 맞아야만 한다. 그것은 인류에 대한 사회 역사적 이해를 쌓아 가도록 궁극적인 기초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성경적 계시인 것이다.
1) 하나님의 선교
선교 신학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 창조의 역사, 타락,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으로 시작해야 한다. 인간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구속이 필요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이며, 선교사로서 오신 예수의 이야기이며, 듣는 자들의 마음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이야기이다. 때문에 궁극적으로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이며 우리의 선교는 작은 한 부분일 따름이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고 전략을 짜지만 하나님이 인도와 능력을 추구하는 것을 게을리 한다면 그것은 헛일이나 파괴적이 될 수도 있다.
2) 성경의 권위
성경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의 완전한 기록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뿐 아니라 인간의 역사를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기 위하여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은 모든 진리와 의, 신학과 도덕을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 하나님의 계시는 항상 특정한 역사 문화적 상황 안에서 인간에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을 그 시대와 배경에 관련지어야 한다.
3) 그리스도 중심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그분은 모든 계시의 중심이 되신다. 하나님의 완전한 현현이다. 그러므로 그의 성육신은 우리 선교의 모델이 된다. 우리도 그분처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구원의 기쁜 소식을 그들에게 전해주기 위하여 그들과 같이 될 수 있어야 한다.
4) 성려의 사역
선교는 하나님 백성들의 삶과 복음을 듣는 자들 속에서 지속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과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
5)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선교 범위는 하늘에 있는 왕국뿐만 아니라 지상에 있는 그의 왕국도 포함된다.
6) 교회
하나님 왕국의 중심부에는 지상에서 하나님 백성의 모임인 교회가 있다. 선교에 있어서 우리는 신실한 공동체이며 협력체인 교회의 강한 신학을 필요로 한다. 교회는 선교의 임무가 이해될 수 잇게 하는 분별력 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교는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전체적인 교회의임무인 것이다.
7) 만인 제사장직
성경과 신학적 해석에 대한 이런 차이가 신학을 상대화시키지는 않는다. 기독교 신학은 성경적 계시에 한 발을 내딛어 놓고 또 다른 한 발은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의 역사적, 문화적 상황에 놓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첫째 임무는 성경적 진리에 신실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성경적 메시지의 의미가 우리의 특별한 문화와 역사적인 구성체 안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발견하는 것이며 우리의 반응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결정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의 메시지는 모든 문화를 초월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제각각의 유산과 시간의 틀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
4. 인류학의 가정
이 책에서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몇가지 인류학적 가정이다. 문화적 진화(cultural evolution)이론들이 20세기 전반부에는 인류학을 주도하였다. 인간 경험의 의미가 역사적인 측면에서 추구되었다. 문화는 세상의 각기 다른 곳에서 당야하나 발전의 단계에 있는 단일한 인간의 창조물로 보였다.
1930년대에는 문화적 진화 이론들이 부분적으로 인간 사회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어 그 사회들이 독립적이고 통합된 체계라고 보았던 구조적 기능 이론들에 의해 상당히 대치되기도 하였다. 문화적 특성을 갖고 있으면서 모든 것이 전체적인 사회의 생존에 공헌을 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여겨졌다. 이런 이론들은 결정론적으로 되어버렸으며, 인간의 사고를 사회적 조직이라는 면에서 설명하였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종교와 궁극적으로는 과학의 실체를 포함한 모든 신앙 체계를 상대화시켰던 것이다.
문화적 진화 이론들에 대한 거부 이후 등장한 것은 문화인류학이다. 이는 관념과 상징의 체계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었다. 문화는 특별한 생각과 행동 이면에 들어있는 믿음의 체계와 그 생각과 행동의 상징적 표현을 의미하게 되었다. 문화는 모든 분야가 함ㄲ 그 구성원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작용하는 통합된 전체로서 보여지게 되었다. 문화차이점과 타문화 커뮤니케이션의 성격, 어떻게 사회가 변화하는가를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이런 이해는 선교적 임무 수행에 있어서 귀한 것이었다. 각 문화는 자기의 서계관이나 사물을 보는 기본적인 방법을 갖고 있는 듯하다. 만일 그렇다면 온전한 타문화 커뮤니케이션은 우리가 섬기고 있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자신의 세계관으로 복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도 된다. 끝으로 인류학자들은 선교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의 독특한 삶의 모습들을 다루는 특별한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그 중 하나가 인간의 언어 구조를 연구하고 우리에게 언어 학습과 성경 번역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해 준 언어학이다. 인간의 개성과 문화에 대한 관계성과 변화를 연구하는 심리 인류학이다.
이 책에서 인류학적 이론에 대한 폭넓은 설명과 기독교적 관점으로부터 그것을 비판하고 선교 사역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더불어 그것을 통합해 보도록 추구 할 것이다.
5. 통합
우리가 선교 사역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류에 관한 과학적 이론들을 살펴보아야 하며 사람의 성품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과 함께 이런 것을 비교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신 것과 그의 창조물을 통해 보여주셨던 것과의 통합을 모색해야만 한다. 총체주의(wholism)라는 말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용어를 인간 존재의 전 영역을 다루는, 인류의 넓고 통합된 이해에 대한 인류학적 의미로 사용할 것이다.
1) 인류의 다양성과 동질성
선교사들은 인류학자들과 함께 온 인류에 관심을 자져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못하는 것은 자기 민족이나 사회,, 자기들이 속한 분야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넓은 그림 속에서만 우리는 인간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선교사와 인류학자들은 상호 간에 많은 차이점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생물학적으로 심리적으로 서로 다르다. 그들이 조직한 사회와 만들어낸 문화가 서로 다르다. 철학적, 신학적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처럼 선교사들도 인간의 보편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류의 보편성이 없이는 사람들이 다른 한 문화를 이해한다거나 다른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상,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우리의 공통적인 인간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그들”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키는 깊은 차이점에 신뢰와 사랑의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첫 번째 단계가 된다.
교회도 역시 새로운 인간성의 창조를 통해 인종과 문화차이를 초월하여 믿는 자들이 한 몸을 이룬 것이다. 다른 언어를 사용할 수 있지만 복음은 오직 하나이다.
* 인간성의 총체적인 모델
우리는 흔히 사람들에게 단편적으로 접근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런 것을 부분적으로 쪼개어 내지 않고 그들을 총체적인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
1) 축소주의
모든 것들을 하나의 설명 유형으로 축소해 버린다. 그리고 선교에 있어서 축소주의의 위험은 인간의 필요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 방법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총체적인 복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구원이란 우리 삶의 모든 차원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기계적 축소주의에 대항하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우리를 자연에 대한 정복자로 만들어 왔지만 오남용을 해 왔으며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각기 다른 민족들을 같은 인류로 보도록 요구하며 효과적인 선교는 프로그램에 의해서가 아니라 관계성을 구축해 감으로써 시작된다.
또한 기계적인 접근법은 하나님을 우리의 목적에 꿰어 맞추려는 시도를 하게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술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예배와 순종으로 향하도록 요구한다. 이런 선교2적 과업은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이며 우리는 그의 인도에 따라야만 한다.
2) 층위학적 접근(Stratigraphic approaches)
클리포드 기어츠가 말한 층위학적 접근에서 하나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우리에게 총체적인 견해를 주지는 못한다. 여기서 선교사들은 대부분 종교와 과학, 초자연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을 수 있는 사회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구분은 성경적이 아니라 헬라적이다. 이는 자연법칙이란 측면에서 물질적인 질서를 설명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기적적인 것으로 분류하는 층의학적 접근법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는 인간을 영적-육체적(soul-bodies)으로서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라, 서로가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3) 총체주의를 향하여
인간 이해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을 축소주의자들이나 층의학적 모델에 의해 얻어질 수 없다. 인류학은 사회과학적 방법을 통해 여러 다양한 통찰력이 설에게 어떻게 원칙을 부여해 주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의 외형적인 특징은 그들이 만들어 내는 문화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문화는 사람들의 외형적인 특징을 형성한다. 그리고 과학은 경험적인 현실에 대한 다양한 구조 안에서 우리에게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신학은 건물과 건축자와 그 역사 속에 있는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과 창조론에 비추어 과학과 신학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 모두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충돌을 방지하게 한다.
4) 선교사의 임무
이제부터는 선교사들은 더 이상 서구인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선교사라는 말은 타 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 모두를 말할 수 있다.
제2장 복음과 문화
인류의 문화와 복음의 관계성을 다루는 것은 가장 큰 어려움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여러 가지 복음과 인간 문화 사이의 관계성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계시이며 모든 인류를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복음은 항상 인간의 문화적 형태 안에서 표현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의 사고의 문화적 형태나 언어와 분리될 수 없다.
* 1. 문화의 개념
우리는 문화를 관념과 감정과 가치의 통합된 체계 및 이와 연관된 행위의 형태와 그들이 생각하고 느끼며 행동하는 것을 조직하고 규칙화하는 사람들의 집단에 의하여 공유된 산물이라고 정의할 것이다.
1) 문화의 개념
먼저 문화는 관념과 감정과 가치에 관련된다는 것에 유의하라.
① 인식적 차원--이 차원은 한 집단이나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하여 공유된 지식과 관련이 있다. 지식은 또한 무엇이 존재하고 무엇이 없는지를 사람들에 말해준다. 문화적 지식은 여러 방식으로 저장되어 있다. 말로 전해지는 사회와 문자로 전해지는 사회의 차이 및 그들의 저장하는 방식과 정보를 전수하는 방식의 차이는 선교사들에게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준다. 서정적 신학(lyric theology)이라고 하는 노래들 속에 신앙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② 감정적 차원--문화는 또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태도, 미적 감각, 식도락, 의상, 싫고 좋은 것, 기쁨과 슬픔 등 감정과도 관련이 있다.
③ 평가적 차원--각 문화는 또한 인간관계에 대해 도덕적이냐 비도덕적이냐를 판단하므로 가치를 갖게 된다. 어떤 직업은 귀하고 다른 것은 천하고, 음식을 먹는 어떤 방식은 적절하고 다른 것은 그렇지 못하다는 등의 평가하게 된다. 이러한 것에 대한 가치판단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a. 각 문화에서 어떤 인식적 믿음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평가하게 된다.
b. 각 문화적 체계는 인간 삶의 정서적 표현들을 판단하기도 한다.
c. 각 문화는 가치를 판단하고 옳고 그름을 결정하게 된다.
이처럼 각 문화는 최고의 가치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중성과 문화적으로 정의된 목표들을 갖고 있다. 관념, 감정, 가치관은 인간 문화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며 우리는 자주 그것들을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④ 세 가지 차원에서의 복음
인식적 단계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성경적이며 신학적인 정보의 이해와 수용과 더불어 지식과 진리에 관련되어 있다. 이 단계에서는 진리와 정통성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복음은 역시 감정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경외감과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신비, 죄에 대한 수치와 구원의 기쁨 그리고 하나님이 백성들과 교제하는 가운데 위안을 느끼게 된다. 궁극적으로 복음은 가치와 충성에 관련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의로 통치하시는 하나님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선교사나 교회 지도자들은 복음의 인식적인 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성경의 지식과 신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감정의 중요성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드러내는 태도를 이해하는 테는 실패하고 있다. 그러나 감정적인 영역에서도 복음의 지식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설득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었거나 용서를 체험하고 구원의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대하여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인식하고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제자화이다. 우리는 단지 복음의 내용을 알린다거나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려고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부르는 것이다.
2) 문화의 표현
문화 정의의 한 부분은 행위와 산물을 포함하게 된다. 여기서 ①행위--많은 분야에서 사람들은 문화에 따라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②산물--문화는 역시 주택, 바구니, 카누, 탈바가지, 수레, 자동차, 컴퓨터 등과 같은 물질적인 대상들을 포함하고 있다.
3) 상징체계
어떤 행위나 문화적 산물에 특별한 의미나 감정이나 가치가 부여된 것을 상징이라고 부른다. 하나의 문화는 여러 가지의 상징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어떤 행위나 문화적 산물에 특별한 의미나 감정이나 가치가 부여된 것을 상징이라고 부른다.
① 형식과 의미--대부분의 문화적 상징은 그들의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상황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처럼 한번 만들어진 상징들은 문화 체계의 일부분이 된다. 많은 상징들은 다양한 구성체 안에서 사용되며 다르지만 서로 연관이 있는 수많은 의미를 갖게 된다. 상징들이 문화의 한 부분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 공동체에 의하여 공유되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상징 안으로 그것을 먼저 입력시켜야 한다. 그들이 이러한 상징(행위, 말, 산물)의 형태만 받아들일지라도, 그들은 상징의 일반적인 구성체를 함께 나누는 것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추론할 수 있다. 문화적 상징들이 공유되고 계속해서 반복되기 때문에 문화 속에서 안정과 변화 모두를 위해 고려해 보아야 한다.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의 전환도 역시 문화의 축적되는 특성을 말해 준다. 그래서 문화는 그 특성상 사회적이며 역사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② 형태와 의미의 연합--형태와 의미는 예식의 상징에서도 동일시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예배드리러 교회에 간다는 것이다. 이는 교회에 가 있으면 우리는 예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통적이며 농경적인 문화는 형태와 의미를 동일시하는 반면에, 특히 서구 사람들은 그 둘을 분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상징들을 새로운 문화적 구성체 내에서 상황화할 때 문화적인 상징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4) 형태와 체계
문화라는 것은 새로운 특성들이 첨가되고 옛 것은 사라지기도 하면서 계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가 규격화되었다거나, 혹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구분하기가 항상 쉬운 것은 아니다. 단순한 부족 사회에서는 문화적인 틀의 종류가 몇 안 되며 그들 간의 차이점 또한 매우 적다. 한편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특이 있게 되며 그들 간에 튼 차이점을 갖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문화적인 틀이 다양해지는 이유는 더 복잡해지고 제도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가 놀랄 만큼 다양한 하부 구조로 이루어졌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커뮤니케이션과 교통망에 의해, 무역과 일반 정부와의 결속에 의해, 사회적 관계의 연결 망에 의해 서로가 관련된 거대한 체계들인 것이다.
5) 문화적 통합
문화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조직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서 가장 깊이 공유된 기본적인 믿음과 가치에 의하여 함께 연결되어있다. 그러나 이런 지식의 이면에는 많은 부분이 함축도어 있는 사물의 본성에 관한 기본적인 전제가 있다. 건물의 기초와 같이 많은 부분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들이 문화를 견지하고 있다.
① 허용정도--문화와 문화적 틀은 결코 완전히 통합될 수 없다. 결과적으로 허용적인 태도를 갖게 되며 경향이 있다라는 말과 같이 제한적인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② 세계관--사람들은 현실에 대해 다른 전제를 갖고 대하기 때문에 세계를 다르게 인식한다. 한 문화의 믿음과 행위 이면에 있는 현실에 관한 기본적인 전제를 때로는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이 세계가 진정 보이는 그대로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보는 세계관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문화의 세 차원에는 각기 강조하는 기본적인 전제가 있다고 했다. 존재론적 가정은 사람들이 현실을 설명하는데 사용하는 기본적인 인식적 구조들과 함께 하나의 문화를 제공한다.
존재론적 혹은 인식적 전제들도 사람들에게 시간과 공간과 다른 세계에 대한 개념을 제공해 준다. 이러한 것에는 인식적인 전제는 다른 여러기능을 수행한다. 감성적 전제들은 아름다움과 양식과 하나의 문화 속에서 발견되는 심미적인 개념을 강조한다. 평가적 전제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정당한 것과 잘못된 것, 기준과 판단의 근거를 제공한다.
각 문화는 다른 도덕적 기준을 갖는다는 사실이 많은 타문화에 대하여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도덕적 체계는 각기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이 선교에 있어서 많은 질문을 하게 한다. 어떻게 우리는 죄에 대한 성경적 개념을 소개해야 하는가? 성경적인 죄의 관점은 무엇인가. 문화를 어느 정도 강요하면 위험하다고 부는가? 이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인식적, 감성적, 평가적 전제들은 민감하게 대처하게 하고 편안한 감정을 주며 그것들이 옳다는 것을 재확인 시켜 주면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이러한 세계관은 명확한 믿음 및 가치 체계와 일상생활 속에서의 사회 제도를 형성하는 데에 기초를 마련해 준다.
③ 세계관의 기능--a.세계관은 여러 체계 속에서 믿음을 위한 이성적 정당성을 제공하면서 설명을 가능케 하는 인식적 기초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처럼 세계관은 우리에게 현실을 인지할 수 있게 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모델이나 지도를 제공해 준다. b.우리의 세계관은 정서적 안정감을 부여한다. 불가항력적인 힘과 가뭄, 질병, 죽음의 위기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근심 때문에 빚어진 재앙으로 가득 찬 위험한 세상을 직면하게 되면 사람들은 감정적 위안과 안정을 위해 가장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문화적 가치관으로 돌아가게 된다. c.우리의 세계관은 경험을 평가하며 행동의 방향을 선택하는 데 가장 깊숙한 문화적 규범을 정당화시킨다. 그리고 우리에게 세계관은 예견 적이며 규범적인 기능을 한다. d.세계관은 우리의 문화를 통합한다. 그것은 내면의 깊은 감정과 신념에 의해 재 강하 된 통일된 현실관을 우리에게 주게 된다. e.우리의 세계관은 문화적인 변화를 조정해 준다.
이처럼 세계관이 완전히 통합될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자체는 변화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항상 내적 갈등이 있게 된다.
④ 선교에 대한 적용
통합된 문화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은 더욱더 안정되어 변화를 거부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변화를 문화의 한 부분에 도입하게 될 때 종종 문화의 다른 부분에서 예측ㅎ지 못한 부수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6. 문화는 학습된다.
문화를 정의함에 있어 학습된 믿음이나 행위에 국한한다. 만일 문화가 배우는 것이라면 또한 가르쳐야 한다. 사회 과학의 중요한 발견 중의 하나는 인간성의 형성에 있어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문화를 전수하는데 있어서 어린아이 때의 기간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7. 공유성
하나의 문화는 집단에 의하여 공유되는 것이다. 그것은 믿음과 상징과 사회의 산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모든 인간관계는 사람들 간에 공유된 이해의 폭넓은 기준을 요구한다. 공통적인 것을 더 많니 가지면 가질수록 상호 관련서의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한 사회와 그 문화의 관계는 변증법적이다. 그런데 무엇이 한 문화나 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문화적 틀의 개념으로 다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각 사회 제도는 자기들의 공동체와 사회 구조 및 하부 구조를 갖고 있는 문화적인 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틀에 의존하면서 사람들은 다른 옷을 입기도 하며 말하는 방식을 바꾸기도 하며 다른 태도를 취하기도 하며 다른 것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지역문화는 더 큰 지역과 국가 문화 속으로 통합된다. 밑바닥의 문화적 틀로부터 시작하여 상위의 국가적 또는 국제적인 문화에서 끝나는 문화적 통합의 다른 면을 말할 수 있다.
만일 서로 다른 집단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을 문화라고 한다면 복음은 어디에 적합한 것인가. 사도행전에 있는 이방인 회심자에 의해 문제가 제기되는 것을 보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유대인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들은 유대인이 될 필요가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기쁜 소식은 특별한 문화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그것을 어떤 문화적인 틀에 제한시킬 수는 없다. 각 기독교 공동체는 자기의 문화와 복음을 동등하게 보려는 유혹을 받게 되었다. 기독교가 서구 문화와 똑같게 됨으로서 그들은 문화적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복음을 이용하였고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사람들이 서구의 문화로 전향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다른 문화들에게 복음이 외국의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복음이란 하나님의 행위이며 결정적으로 그의 성육신을 통하여 역사 속에서 드러난 하나님 자신의 계시인 것을 알게된다. 그리스도는 완전하신 하나님이었던 것처럼 신성을 잃지 않고 인간 문화라는 수단에 의하여 전달된 것이다.
1) 복음과 문화의 대립
복음은 모든 인간 문화로부터 구분되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이론이 아니라 신성한 계시이다. 그것은 어느 하나의 문화에 속하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문화에 적절히 표현될 수 있다. a. 복음과 인간 문화들 사이를 구별하는 데 실패한 것은 현대 기독교 선교의 가장 큰 약점 중의 하나가 되어왔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주권의 거부한 것이 아니라 흔히 회심자들이 그들의 문화적 유산과 사회적 유대를 부인한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에 복음을 거부하였다. b. 서구 제국주의를 정당화 하려는 데 있었다. 경건주의와 애국심은 함께 혼합되었다. 그리고 종교가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관습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사용될 때 그것은 시민 종교가 되버린다. c.복음과 문화를 동일시하는데 있어서 위험한 것은 죄와 관련하여 상대주의화 하려는 생각이 점점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죄에 대한 문화적 정의가 변함으로써 우리가 만일 문화의 정의로부터 성경적인 규범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성경적으로 정의된 기준의 절대성을 확신할 수 없게 된다.
2) 문화속의 복음화
복음이 인간 문화들과는 구별된 것이라 해도 그것은 반드시 문화적 형태 안에서 표현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토착화나 상황화로써 복음을 이해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복음을 문화 속에 번역해 가는 과정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모든 문화는 복음 전달을 위한 독구로 적절히 사용될 수 있다.
3) 문화에 대한 복음
셋째로 복음은 모든 문화가 변화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스도 생애가 우리의 죄성을 정죄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왕국은 모든 문화를 심판하는 위치에 있게 된다.
연습문제: 복음과 문화
제3장 문화차이와 신임 선교사
모든 사람이 동일한 세상을 보고 있지만 각기 다른 문화적 안경을 끼고 세상을 인식한다. 문화적 차이는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자아내기도 한다. 또한 문화차이는 곤란한 일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언어충격은 의사소통의 불능이다. 그리고 일상생활의 변화와 관계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해력의 상실을 가져올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문화충격의 실제 문제는 우리 스스로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의식하지 못하게 다가오는 심리적 왜곡이다. 한편 스트레스의 발생과 신체적인 질병을 유발할 수 있고 심리적, 영적 우울증이 심화될 수 있다.
1) 문화충격의 과정
① 관광객의 단계--새로운 문화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어려운 여정의 시작을 의미한다.
② 각성--외부 방문객에서 문화권 내부의 생활인으로 바뀔 때 관광객 단계는 끝난다. 이 시기는 집을 정하고 혼자서 책임을 맡게 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기 시작할 때이다.
③ 회복--유머가 살아나면서 흔히 이는 회복단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난처한 처지를 웃음으로 대처하기 시작하고 현지인에 대해서도 비난 대신 농담을 던지기 시작한다.
④ 적용--새로운 문화가 편하게 느껴지는 때이다. 이제 그곳에서 의기양양하게 사역할 수 있다. 그리고 현지인과 동일하게 되려고 노력 할 수도 있게 된다.
⑤ 역문화 충격--체류 후 본국에 돌아왔을 때 역문화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새로운 문화에 가장 성공적으로 적응했던 사람이 오히려 이전 문화로 재 적응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2)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방법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은 새로운 환경으로 이주할 때 혼동을 경험한다. 여기서 극복하는 방법을 살펴보면
① 염려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② 새로운 문화를 배우라는 것이다. 두렵고 괴로운 체험이지만 반대로 신나고 새로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낯선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전도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③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문화권에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④ 스트레스를 해결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라는 것이다. 특히 스트레스를 줄이는 중요한 방법은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우선적인 사역 대상임을 인정해야 한다.
⑤ 너무 심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직면한 문제를 적절한 관점으로 스스로를 보는 것이다. 현재의 일들은 단시간에 이룰 것이 아니라 평생의 사역을 내다보는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실패했더라도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복음의 핵심은 죄와 실패에 대한 용서인 것이다.
⑥ 자신을 즐겁게 하라는 것이다. 타문화권 상황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스트레스가 더 커질 때가 많다. 자신의 즐겁게 하는 것은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시기적절하게 조절해 준다는 의미도 있다.
⑦ 부담을 나누어라 그리고 자신의 배우자나 자녀들의 부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커다란 스트레스의 부산물로 생기는 이기적인 마음을 막을 수 있다.
3) 문화충격을 넘어서
이 분야는 주변상황과 기계류와 사람이라는 세 개의 커다란 경험권으로 나눌 수 있다.
제4장 성육신적 선교사
새로운 문화에 적응되었다면 이제는 성육신적 선교사가 되어야 하고 문화차이로 인해 생기는 신학적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1. 새로운 문화에 동화
1) 타문화권의 오해들
장애물은 오해이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지식과 이해부족과 관련되어 인식적 장애와 혼동을 불러일으키다. ①오해를 극복하라 무엇보다도 배우는 자로서 새로운 문화권에 들어가야만 한다. ②내부자적 관점과 외부자적 관점을 가지고 문화를 보고 배우라
2. 자문화중심주의
자문화 중심주의는 자신의 감정적 가정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방식에 반응하고 또 그런 반응을 흑백논리로 강화시키는 인간의 본성에 뿌리를 둔다. 여기서 자문화 중심주의를 극복하는 한 방법은 그 문화의 학습자가 되는 것인데 자기중심주의는 보통 다른 사람에 대한 무지에서 시작되기 때문에다. 다른 하나 방법은 문화 다원주의에 의하여 제기된 철학적 질문들에 답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문화권 사람들을 천편일률적으로 대하지 않고 우리와 같은 개개의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서로의 공통된 인간성을 인정하는 것이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는 차이점을 극복하게 해준다.
1) 미숙한 판단
① 상대문화주의--모든 문화의 그와 같은 고결한 특징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문화상대주의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는 모든 문화는 동일하게 선하다는 믿음이다.
② 상대주의를 넘어서--가치판단과 상관없는 인간의 사고란 없다는 것이 점차 알려지고 있다.
③ 세가지 차원에 대한 평가--인식적 차원과 감정적 차원과 평가적 차원에서 문화를 바라봐야 한다.
3. 두 세계에서의 삶
1) 배척
두 세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한 해결책은 둘 중 하나를 배척하는 것이다. 즉 우리 자신의 문화를 배척하고 현지인화 하든지 그 반대를 취하는 것이다.
2) 구획화
두 세계 안에서 삶의 문제에 대한 또 다른 해결책은 구획화이다. 그러나 구획화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선교사는 위선자요 표리부동한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구획화는 두 세계 가운데 살 때 부딪히는 내적 긴장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3) 통합
장기적으로 그리고 가장 깊은 수준에서는 우리 속에 있는 두 문화권간에 통합을 이루어 가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문화권에서 선하고 참된 것을 받아들이고 또 문화권에서 잘못되고 악한 것은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초문화적 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분하는 벽을 허무셨으므로 우리는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연합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모든 문화에 상대적인 존재이다. 그의 나라는 모든 문화를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4. 동일화의 수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역 모델을 보여준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을 구원하기 위해 완전한 인간이 되셨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의 기독교적 정체성을 타협하지 않으면서 현지인들과 가능한 가까이 동일시되어야 한다.
1) 생활양식
생활양식의 면에서 동일화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역할과 태도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제5장 서구 선교사들의 문화적 전제
1. 세계관의 연구
우리는 그들의 믿음과 실천으로부터 기본적인 가정들을 추론해야 한다. 우리는 축제나 출생의례나 결혼 및 장례와 같은 상징과 의례에 대해 연구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다른 사회에서 살다가 되돌아오게 될 때 역시 더 명확하게 우리 자신의 문화를 보게 된다. 그리고 세계관연구에서 하나의 문화에 흐르고 있는 공통적인 주제를 찾아내는 것이다.
2. 여러 가지 다른 세계관
1)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전제는 자신 밖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실제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을 합리적이고 질서가 있으며 인간의 이성으로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는
a.데카르트의 이원론과-하나님과 피조물 사이를 구분 짓는 성경적인 이원론은 영 물질, 혼 몸의 이원론으로 대치되었다.
b.인간과 자연-우리는 인간과 다른 삶의 형태 사이에 예리한 선을 긋는다. 그리고 인간이 독특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본다.
c.물질주의 번영-물질에 의해 인간을 판단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다.
d.개인의 소유권--재산이 개인적으로 소유될 수 있다는 깊은 잠재의식과 연관되어 있다.
e.진보--더 나은 생활을 찾아 나서고 이를 물질적인 면에서 나아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2) 분석적 접근
이세상은 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질서 정연하다고 믿고 있다. 때문에 잘못된 일들이 일어나면 그 것을 고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a. 양극적 사고--현실을 도덕적 가치에 흔히 결부시켜 상반되게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b. 계획--합리적이고 질서 있는 세계에서는 목적을 세우고 성취하기 위해서 문제점을 보고 미리 막을 수 있도록 미래를 위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
c. 실용주의--여러가지 방법 중에서 어떤 것이 목적을 이루는데 적합한지 알기 원하는 것이다.
3) 기계적인 세계관
우리는 각 부품의 작동이 외부의 힘에 의해서 결정되는 기계처럼 자연을 생각하는 경향이 잇다.
a. 생산과 이익--공장들과 관료제도들의 성공을 측정할 수 있는 중심적인 가치는 생산과 이익이다.
b. 수량화--기계적 세계관의 또 다른 기본적 특징은 측량가능성에 있다.
c. 조립대식 심리--생산에 대한 기계적 접근 방법의 중요한 요소는 조립대식 심리이다.
4) 개인주의
우리의 세계관에서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개인이 사회라는 건물의 기초를 이루는 벽돌 한 장이 된다는 것이다. 각 개인은 자신의 분리된 정체성을 갖고 자율적인 개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a. 정체성--우리가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b. 자기의존--북미인들 정체성의 중심부에는 자기 의존이 있다.
c. 계약적인 집단들--개인주의와 성취를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관계가 쉽게 약화된다.
d. 호감--우리는 호감을 받는 데에 높은 가치를 두며 그것을 사회 관계에 있어서 성공의 징후로 본다.
e. 개인 소유권--개인주의에서 특별하게 중요한 한 가지 표현은 재산에 대한 개인 소유권이다.
f. 인도주의--각 개인의 가치에 대해 강조하는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인도주의이다.
5) 평등
각개인의 권위에 대한 미국인의 개념은 소위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기본적인 생각과 아주 밀접하다.
a. 비형식--평등권에 대한 강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은 계급제도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쉽지 않다.
b.경쟁과 자유기업--경쟁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은 자유 기업 정신이다.
c.직적적이고 대결적이다--우리는 관계에 있어서 단도직업적이고 대결적이다.
d. 협력--경쟁에는 개인과 집단간에 상당히 많은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북미인들 사이의 경쟁은 협력의 상황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조금은 알 수 있다.
6)시간에 대한 우선권
북미인들은 시간에 큰 비중을 둔다.
a직선적인 시간--미국인들에게는 시간이 직선적이다.
b.미래 지향적--직선적인 시간은 미래로 향하며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과거보다 미래에 있다.
c.젊음에 대한 강조--젊은이들의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면이 더 인정을 받는다.
d.공간과 시간--땅에 대한 개념과 시간에 대한 관계를 다루는 데에 있다.
7)보는 것에 대한 강조
a.추상적인 지식--쓰는 것은 전달자로부터 메시지를 이탈시키게 된다.
b.글 속에 담겨있는 정보의 축적--기록된 정보에 아주 큰 비중을 두고 있으며 인쇄된 메시지를 더 신뢰한다.
c.지식에 대한 강조--정보를 축적하고 꺼내는 효과적인 저술 체계를 갖게 되면서 지식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것은 놀라 일이 아니다.
d.조직화--글을 쓴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을 처음부터 다시 정리하여 아주 정확한 지식의 조리 있는 체계 안으로 거대한 양의 정보를 조직할 수 잇도록 한다.
3. 선교사들의 선입견
성경에 비추어서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문화와 복음을 혼동하며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문화에 근거한 복음을 소개하게 되는 것이다.
3부 문화차이와 메시지
제6장 문화차이와 메시지
문화차이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메시지 자체에도 영향을 끼친다. 우선 메시지 전달자 스스로가 그 메시지를 받게 되는 사람들은 그 메시지를 받을 수 없다. 그리고 메시지 자체는 본래 의도하는 바가 가장 덜 훼손되도록 변역하여 전달해야 한다. 또 메시지가 전달될 지역 문화의 형식으로 상황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각문화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역사적 문화적 상황에서 성경 말씀이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말해 주는 신학을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복음을 새로운 문화의 형식으로 번역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할 것인가를 다루려 한다.
1. 상징과 의사전달
의사전달은 정보를 발신자로부터 수신자에게 이전하는 것이다.
1)상징의 특성
상징은 복합적이다. 상징은 특정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의미와 표현 형식들을 연결지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는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준다. 사람들은 유사한 상황에서 유사한 목적을 위해 똑같은 형식과 의미를 결합하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의사소통은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회적 집단을 만들어 낸다.
a.상징의 유형--언어와 어조등의 유사언어, 몸짓, 시간과 공간을 이용하는 상징 등을 동시에 사용한다.
b.상징의 의미--우리는 생각이나 감정, 가치 등을 상징을 통해 전달한다. 이때 어떤 특정한 것을 기리키면서 다른 것을 가리키지 않는 상징들의 의미를 외연적(外延的), 사고나 감정의 다른 영역에 속하는 의미가 부여되는 것을 내포적(內包的)이라고 한다.
2)상징체계의 문화차이
문화가 다르면 상징도 달라진다. 우리는 문화권마다 쓰이는 언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2. 번역
1)형식과 의미
우리가 다른 문화권의 언어로 어떤 메시지를 번역할 때는 형식과 의미 그리고 내포적 의미와 외연적 의미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보다 어려운 문제는 바로 내포적 의미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번역할 때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내포적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형식과 외연적 의미를 얼마만큼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관해 좋은 지침을 제공한다.
3. 초문화적 의사전달
1)의사소통은 인지적인 면에서 볼 때 정보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고 감정적인 차원에서는 자신의 느낌을 나누는 것이다. 인지적인 메시지는 우리가 상대방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그 느낌까지도 같이 전달한다.
2)전달매체와 부차적 전달매체
노래, 시, 속담, 수수께끼, 영창, 이야기 등
3)발신자와 수신자
발신자가 전달매체를 선택해서 자신의 메시지를 연설이나 몸짓 문자 같은 상징 형식으로 부호화하여 전달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의사소통은 발신자와 수신자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어야 하고 의사전달자가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쌍방이 이해할 때라야 비로소 올바른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4)여과장치와 피드백
우리가 전달하는 메시지와 이를 받아 해석하는 상대방이 받는 메시지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으려 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다.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자신의 신념과 정서, 가치체계가 마치 여과장치처럼 자리 잡고 있어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메시지는 통과시키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은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5)장애요소와 부조화
공중전파 방해 같은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 같은 것이다. 특히 타문화권 상황에서 나타나는 부조화의 한 유형으로 이질감을 들 수 있다.
6)쌍방적인 의사소통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은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일이 거의 없다. 서로 듣고 배우는 양가간의 쌍방통행이 되어야 한다.
7)재해석과 메시지에 대한 반응
주고 받는 의사소통의 결과는 일종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8)상황
의사소통은 항상 특정한 상황과 사건 속에서 일어나게 되는데 이 두가지가 메시지의 성격과 의미를 결정짓는다.
4. 의사소통과 선교사역
효과적인 의사소통은 선교사역의 핵심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마지막 1-2m되는 의사소통의 장애를 뛰어넘지 못한다면 우리의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의사소통에는 함축적인 요소들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물론 수신자 중심의 사고를 해야 한다. 그리고 복음을 전달할 때 성령을 통하여 듣는 자들의 마음 가운데서 역사하시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들을 준비시키고 계신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미숙한 메시지를 통해서라도 사람을 변화시켜주게 된다.
제7장 비판적 상황화
그 사회가 사람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며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잘 발달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신념들도 발견하게 된다.
1. 전통적 문화들
문화는 사람들이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 및 궁극적인 실체에 관하여 만들어낸 묵시적인 가정들 위에 세워진 신념과 관습의 체계들로 이루어져 있다.
1)물질문화
오락물질, 치료약, 치료예방을 위한 마술도 사용하는데 이는 종교적인 목적도 있다.
2)문화적 표현
모든 문화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있다.
3)잔치와 축제, 전시회 성지순례
사람들은 함께 놀고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각종 축제일을 즐기고 노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 할 필요는 없다.
4)옛 것을 부인: 상황화의 거부
대부분의 옛 관습을 이교도적인 것으로 여겨 거부해 버린 적이 많았다. 북, 노래, 연극, 춤, 몸치장 등 이러한 거부는 흔히 선교사의 자문화중심주의에 기인한 것으로 선교사들은 복음을 자신의 문화와 동일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다른 문화의 관습들을 나쁜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것은 문화적 진공상태를 만들어 내었고 관습들이 없어지기보다는 지하로 숨었으며, 새 신자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5)옛 것의 수용: 무비판적 상황화
이것은 무비판적으로 교회에 수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죄에는 개인적인 죄 뿐만 아니라 집단적이며 문화적인 죄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복음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도 변화할 것을 요구한다. 상황화는 복음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뿐 아니라 사람들이 개인으로서 그리고 집단으로서 악한 길에서 돌아서도록 도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6)옛것에 선별적으로 대응함: 비판적 상황화
비판적 상황화로 불리어질 수 있는 즉 옛 신념들과 관심들을 거부하거나 수용하기 에 서 잘 점검해 보는 것이다. 개인이나 교회는 삶의 모든 영역을 성경적으로 다루어야 할 필요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현지교회 지도자와 선교사는 문제되고 있는 전통적 관습을 신자들이 일단 편견 없이 수집하게 한 뒤 문제의식을 갖고 이를 잘 분석하도록 지도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담임목사나 선교사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안과 관련이 있는 성경공부를 하도록 지도하여야 한다. 또한 신자들이 스스로 새롭게 깨달은 성경적 진리에 비추어 과거의 관습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그 관습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2. 상황화의 사례
그리스도인들이 헤비메탈 음악을 들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에 부딪힌다. 그리고 록음악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이다.
3.신학적 근거
비판적 상황화에 대한 신학적 근거는 모든 신자의 제사장직을 확인시켜 준다. 지도자들이 결정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스스로 결정을 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에 대한 판단의 최종 권위는 성격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같은 판단 근거를 갖고 있다. 그리고 만인 제사장설은 모든 신자는 성경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데 있어 자신을 인도할 성령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제8장 자기 신학화
신학적 문제는 우리와 다른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새로운 신자들과 교회의 자율에 관한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1. 세가지 선교원칙
선교사들이 선교지의 교회에 대해 아버지가 아들을 대하듯 온정주의적 또는 가부장적인 태도를 보편적으로 보였는데 1861년경 루퍼스 앤더슨은 신생교회들의 독립의 기초가 되는 세가지 원칙-자전(self-propagation) 자립(self-support) 자치(self-governance)를 제안했다. 이 세가지의 원칙은 신생교회들도 전세계 교회 공동체 내에서 동등하고 독자적인 일원이 된다는 중요한 원리를 담고 있다.
2.자기 신학화
이는 신생교회들이 성경을 스스로 읽고 해석할 권리를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1)신학적 충격
우리는 신학적 신앙고백을 배우며 성장하였다. 그래서 신학적 다원주의에 대해서 처음으로 보이는 반응은 그것을 부인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신학에 있어서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성경적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
2)성경, 신학 그리고 문화
성경의 진실성을 굳게 믿는다. 또한 강한 신학적 확신도 가지고 있다. 성경이 인간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역사적 문서라면 신학은 성경의 진리들에 대한 체계적이며 역사적인 분석 또는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신학은 사물의 참된 존재방식인 하나님이 사물을 어떻게 보시는가를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또 성경 연구를 통해 나타난 실체를 인간이 기술하고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에 의해서 발전된 모든 신학은 그들의 특정한 문화적, 역사적 상황인 그들의 사용하는 언어와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다. 인간이 가진 모든 신학은 하나님이 아시는 대로의 신학을 부분적으로 이해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모든 신학은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온전하지 못하다. 우리도 종종 지키기 어려운 성경의 메시지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①신학적 가교--인간의 신학은 한편으로는 성경에,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신학은 우리와 복음을 연결시켜 주는 가교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중한 성경 석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문화적 역사적 상황에 대한 신중한 석의가 필요하다. 도 좋은 성경 해석학이 필요하다.
②진리의 점검--인간은 불안전 하므로 진리의 점검 기준은 성경 자체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점검 기준은 진리 안에서 성도들을 가르치시는 시속적인 성령의 역사를 구해야 한다. 또한 분별력 있는 기독교 공동체 속에 거해야 한다.
3)신학의 유형들
각기 다른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실재의 배후에 있는 기본 체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은 하나님, 세상, 인가, 죄, 구원 등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한다. 여기에는 공시적(公示的)인 틀이 있다. 다음으로 신학은 실재의 이야기에 간심이 있다. 우주와 인간 사회아 각 개인의 궁극적인 기원, 목적, 운영, 등에 관한 질문을 제기하며 우주와 인간의 역사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이것을 통시적(通時的)인 틀이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과 우주의 본질을 연구하려 한다면 조직신학, 즉 공시적 신학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에 관하여 알기를 원한다면 성경 신학, 즉 통시적 신학이 필요한 것이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통시적 이야기로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우주 가운데서 일하신 것을 기록한 역사적 기록이다.
4)신학의 기능들
클리포드 기어츠는
첫째 기능은 실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재 지도로써의 역할이다.
둘째, 기능은 우리행동의 방향을 인도해 주는 안내 지도의 역할이다.
a. 소재지도로써의 신학--기어츠는 인간이 삶에 대한 이해를 상실하는 것보다 더 큰 두려움은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모델과 이론을 모순 없이 설명할 수 있는 기본 틀을 제공해 주는 궁극적인 설명 체계를 필요한 한다. 궁극적인 실체의 지도 역할을 하는 신학은 몇 가지 중요한 목적을 갖고 있다.
첫째, 신학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를 갖게 해준다.
두 번째, 신학은 우리 모두가 전제하고 있지만 표현을 해본 적이 없는 신학적 개념을 명시화하고 그것들을 검증하는 데 사용된다.
세 번째, 신학은 변증학적으로 사용된다.
네 번째, 실체의 모형으로서 신학을 사용함으로 이단을 물리칠 수 있다. 한 개인의 신학과 세계관을 성경적 가르침에 맞도록 변화시키는 이 작업을 평생을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b. 안내 지도로써의 신학. 우리가 어떤 경로를 통해 갈 지를 결정하는데 신학의 목회적인 면은 먼저 신학자와 선교사의 삶 속에서 나타나야 한다. 우리의 신학은 우리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우리로 하여금 철저히 성화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전하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
3. 상황 속에서의 신학
교회사는 그 문화적 역사적 배경과 분리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17, 18세기의 정통 개신교는 현대의 세속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합하고 의미 있게 전하기 위한 시도로서 경건주의, 복음주의,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및 기타 여러 신학들이 대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생교회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스스로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1)상황화의 정도
a. 새로운 문제들--사람들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한다. 아프리카 교회는 일부다처제, 마술, 정령, 주술의 문제에 대해 답을 주어야 한다. 한편 인도의 교회는 가스트 제도, 결혼 지참금, 악한 눈 등에 관한 문제에 답을 주어야 한다. 중국교회는 부모의 권위, 일가친척에 대한 의무, 유교적 윤리 등의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서구 교회 역시 세속화, 현대의 오락 문화, 극도로 가난한 세계와 서구세계의 풍요로움 등 서구 문화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신학자의 첫 번째 사망은 인간의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해답을 찾는 것이다. 신학자는 조직신학을 연구하기에 앞서 교회가 보여주는 삶과 증인의 역할이 제대로 되어있는지를 먼저 평가하고, 신자들과 성경적인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교회가 당면한 논쟁 거리와 문제들, 그리고 교회가 직면하게 될 기회와 도전들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b. 새로운 문화 범주. 신학자는 성경의 배경이 된 문화의 유형과는 전혀 유사점이 없는 다른 유형의 문화에서도 복음의 메시지가 분명하게 전달 되도록 해야 한다. 기독교 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 중 하나는 신관(神觀)이다. 창조주이자 통치자이신 지고신(至高神) 개념을 갖고 있다. 이처럼 한국인들은 하나님이라고 하는 지고신의 개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개념과 한국인들이 이미 알고 있던 하나님의 개념 사이에 많은 유사저이 있었다는 저이 한국 기독교의 급속한 성장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리차드슨은 말하고 있다. c. 새로운 세계관--가장 어려운 신학적 문제들은 세계관과 관련된 문제이다. 세계관은 한 문화의 핵심으로 그에 대한 신학적인 평가가 없으면 혼합주의나 기독교적 이교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현대의 세속적인 서구 세계관보다는 많은 비서구 문화의 세계관들이 성경적 세계관에 더 가깝다. 수치심 성향의 문화에서는 옳고 그른 것이 문제가 되기보다는 남들이 자신에게 기대하고 있는 바를 행하는 것이 자존심을 유지하는데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실수를 저지를 경우 대부분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낸다. 스스로를 처벌함으로써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유지하는데, 이는 죄책감이 고백과 용서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데 반해 수치심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죄책감이란 내재하는 절대적인 도덕률의 기준 또는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죄책감의 문화에서는 죄에 대한 내재적 확신이 선한 행동을 유발한다. 형벌과 용서를 강조하며, 수치심 성향의 문화는 사회적인 질서를 회복하는 방법으로 자기 부인과 겸손을 강조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는 수치심과 죄책감 양편 모두와 관련되어 있다. 구약에서 죄에 대한 해결책은 샬롬(shalom), 즉 단절된 관계의 회복이며 평화의 조화의 회복이다. 신약성경은 죄란 하나님의 의를 어기는 것이며 이에 대해 처벌과 회복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상황화의 단계
상황화의 첫 번째 시도는 일반적으로 선교사가 현지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자신들의 신학에도 문화적 편견이 스며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선교사들은 합리적이고 공시적(共時的)인 사고 체계를 강조하는 헬라적 세계관의 영항을 받은 서구식 신학적 접근법을 선교지에 도입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올바른 믿음을 유지하는 가운데 어느 정도까지 기독교 신앙을 상황화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점은 우리의 문화적 상황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부르심을 보다 분명하고 호소력 있게 전달해 주면서 아울러 어떻게 하면 위리가 더욱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복음의 메시지는 한 문화의 범주 내에서 그 세계관에 적합하게 표현되어야 하며, 동시에 성경적 내용이 그 문화의 범주와 세계관의 내용을 바꾸어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3)초신자 양육
선교사는 많은 경우 선교지의 원주민들에게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본보기이다. 선교사가 주도적으로 성경의 메시지를 현지 문화에 알맞게 상황화해 나가야 한다. 따라서 선교사가 현지 문화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초신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실천함으로써 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법을 익히게 된다.
4)현지 신학자 양성
우리 복음주의자들이 선교지 교회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신학자가 되도록 격려하는 일이 특히 시급하다. 우리가 믿는 바를 교회의 교리와 헌법으로 만들어 교회와 신학교를 감독해 갈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와는 다른 그들 나름의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교회 내의 각 세대는 각자 살아 있는 자신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저 물려받은 신앙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우리가 허용하든 않든 상관없이 현지지도자들은 자신의 신학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4. 초문화 신학(超文化 神學)
자기신학화는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문화환경에 맞게 복음의 내용을 명확하게 밝혀 주는 신학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 자기신학화는 다원주의라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진리를 훼손하는 상대주의, 주관론, 제한적 구속론(particularism)등을 피하면서도 신학적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각 문화권의 교회들은 자신의 특정한 상황에 맞게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을 뿐 아니라 여러 교회가 연합한 보다 큰 의미의 교회 공동체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책임도 있다. 문화차이를 초월하는 초문화 신학(transcultural theology) 즉 신학을 비교하며 이들의 문화적 편견을 검토하고 성경적 보편성을 탐구하는 초문화 신학(metatheology)이다.
1)초문화 시학의 특징
서로 다른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이 성경의 계시하는 바를 동일하게 이해한 결과로 이루어지는 신학적 합의를 초문화 신학이라 한다. a.성경적 근거--상황 신학과 마찬가지로 초문화 신학 역시 성경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신학이 성경에 기초를 두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생각을 다루면서도 그 궁극적 관심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생각에 있다.
b.문화초월--초문화 신학은 인간문화의 한계와 편견을 초월해야 하지만 부득불 특정한 문화를 통해 형성된 언어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학은 서로 다른 문화의 편견을 어떻게 뛰어 넘을 수 있는가? 우리는 문화가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내부인들은 볼 수 없는 것을 외부인들이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c.역사와 기독론--초문화 신학은 하나님께서 역사속에서 행하신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의 중심에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복음의 핵심이며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이 구속의 요지가 됨으로 모든 신학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통일되어야 한다.
d.성령의 인도하심--초문화 신학의 통일성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인도해 주셔야 하낟. 신학의 정신은 독선이 아닌 겸손한 마음, 정죄가 아닌 구속의 사랑, 명령이 아닌 나눔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무릎 꿇는 자세로 신학을 해야 한다.
2)초문화 신학의 기능
초문화 신학을 추구해야 할 이유는 이를 통해 우선 범세계 그리스도인들이 한 교제권을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문화적 편견을 더욱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고 무비판적으로 우리 신학을 상황화 할 때 발생되는 혼합주의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신학을 평가하는 기준은 오로지 성경이다.
5. 기독교와 기타 종교
다른 종교와 처음으로 만날 때 제2의 신학적 충격을 경험한다. 이교도들의 신앙은 배격하면서도 그들을 인격적으로 사랑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다.
1)기독교와 기타 고등종교
타종교라고 할 때 우리는 보통 회교, 불교, 힌두교, 신도 등을 의미한다. 고등 종교는 모든 사물의 기원, 목적, 운명에 관한 궁극적인 문제들을 다룬다. 로고스는 당시 스토아 철학에서 본질에 대한 최상의 표현, 즉 이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방 종교를 복음에 대한 준비 단계로 생각하고 그 안에 있는 이들은 이방 종교를 복음에 대한 준비 단계로 생각하고 그 안에 있는 진리의 흔적을 찾아 그 위에 무엇을 세워나가려 한다.
a.복음의 유일성--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로지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길뿐이라고 말한다(요14:6, 행4:12). 기독교의 유일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신다는 성경의 메시지 있다.
b.참된 복음--우리가 우월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우월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 메시지의 진리 됨을 선언할 때 겸손과 사랑(엡14:6)으로 해야 한다.
2)기독교와 민속 신앙
민속종교의 관습에 더 깊이 빠져든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민속 신앙은 궁극적인 실체가 아닌 일상생활의 문제들을 다룬다. 점괘(omens), 신탁(oracles), 무당(shamans) 예언자(prophets)등을 통해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개신교에서는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고,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우리 소원을 아뢸 수 있다는 사실, 즉 기도와 하나님의 섭리의 교리를 강조해 왔다. 은사주의자들은 하나님 백성의 일상생활 속에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를 강조해 왔다. 기독교적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데 있어서 우리는 혼합주의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경험들을 통해 교훈을 얻게 된다. 마술과 예배의 차이는 형식에 있지 않고 태도에 있다. 그리고 위험은 식별 능력의 부재이다. 다음으로 무엇이 더 중요한가 모르는 데 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예비하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그 초점은 인간의 구원과 영생에 있다. 오늘날 선교의 최대 문제는 신학적 종교적 다원론에 관한 것이다.
4부 문화차이와 이중문화 공동체
제9장 이중문화(Bicultural)의 가교
문화의 벽을 넘어가는 복음의 전달은 사람 사이의 인격적인 의사소통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을 사회의 인간관계 구조의 관점에서 문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1. 타문화에서의 인간관계
어떤 상황 안에서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로 일어나게 된다.
1)이중문화적 공동체
이중문화적 공동체는 타문화에서 온 사람들이 특정한 사회적인 역할위에서 상호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의 지역 공동체이다. 이러한 이중문화는 두 문화의 사상과 감정 그리고 가치들로 구성이 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선교사와 현지인들의 상호이해하고 신뢰하며, 만족할 만한 이중문화 공동체가 형성되어 올바른 기능을 하도록 해야만 한다. 선교사역의 성공여부는 이 이중문하 가교의 질적인 수준에 크게 달려 있다.
2)문화의 중개인들
이중문화 공동체는 두 세계가 만나는 곳이다. 여기서 문화의 교량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문화의 중개인이라고 한다. 또한 그들은 파송교회들과 현지교회들 사이의 중간에서 협력을 도모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선교사와 현지지도자들은 사회에서는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변두리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영역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대 주변 사람들은 외부적인 관점으로 외치는 선지자들이 되어야 한다. 일례로 선교사들은 범세계적인 교회들과 나누는 교제 관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3)선교사들 사이의 세대들
a.제일세대 선교사들--임기를 사역하는 선교사는 이중문화의 일 세대에 속한다. 이상이 높고 사역에 대한 꿈과 열정이 강하기 때문에, 부담감을 갖기가 쉽고 설정한 목표도 높고 이상적이 되기 쉽다. 어느 도시나 국가 전체를 복음화하고 병원이나 성경학교 세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의 선교사들은 현지 사회의 기존 제도에 적응해 가기보다는 그 사회의 존립 기반을 무너뜨릴 위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식민지주의 시대에 이중문화 공동체에 들어간 초임선교사들이 흔히 가졌던 하나의 딜레마였다. b.제이세대 선교사들--둘째 이하의 임기를 사역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 왔고 그 안에서 편안함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사역을 감당하는 동안 어느 정도 유익한 경험도 맛보았던 사람들이다. 제이세대 선교사들은 어떤 공통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자신의 사역을 좀더 현실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제이세대 선교사들은 몇 년 안에는 한 나라는커녕 한 도시도 복음화 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c.제삼세대 선교사들--이들을 고참들이라고 부른다. 서구 우월주의와 식민지 통치사상을 수용하였다. 그들은 선교사가 반드시 일을 주도해야 하며 선교사는 선교사 주거지역 내에서 외국인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선교사들은 피선교지의 사람들과 그들의 필요에 대해서 민감해야 하고 그들과 함께 낮아져야 하고 함께 공감해야 한다.
4)현지지도자들 사이의 세대차이
이중문화 안의 현지지도자들 사이에도 역시 존재한다. 제일세대들은 사역에 대한 큰 비전과 강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사역을 위해서는 많은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며 헌신하게 된다. 제이세대 현지지도자들은 교회나 선교에 장기적인 헌신을 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제삼세대 현지지도자들은 식민지 시대에 성장한 사람들이다.
5)선교사와 국내인들이 밀접하게 관계를 형성하고 침으로서 함께 일할 때 가장 효과적인 타문화 의사소통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한 공동 노력만이 선교과업을 성공리에 성취하게 한다.
2.이중문화에서의 어려움들
이중문화는 생성과정에 있는 문화이다.
1)이중문화의 창조
a.동일화--타문화에서 선교사의 이상적인 관계모델은 성육화(incarnation) 모델이라고 가정해 왔다. 스티븐 니일(Stephen Neill)은 선교사는 자신이 섬기는 사회의 양자로 입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현지교회의 회원이며 양자교회를 위한 옹호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2)자기정체성의 확립
이중문화의 사람들이 직면하는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바로 자기정체성의 문제이다. 이는 우리가 심리적으로 두 세계에 속하는 두 사람을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며 진정 우리가 누구인가를 발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 결과 문화적인 분열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두 자아를 하나의 통합된 체계 속으로 몰아넣으려고 시도할 수도 있으나 우리의 두 문화적인 자아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차이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필수과제이며 이것은 매우 어려운 과정이다. 우리는 사회문화적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우리의 사회문화적인 정체성을 정기적으로 재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양문화와 동일화하려는 상징적 행동들은 이중문화적인 사람들 대부분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또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해외의 이중문화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양문화 사이에서 정체감이 분리된 채 생을 마감하게 된다. 어느 의미에서 이중문화의 사람들은 진정한 문화적인 고향이 없는 것이다.
3)소외
소외의 문제는 정체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선교사와 함께 일하는 현지지도자들이 이중문화에 너무 밀착하게 되면 그 나라 사람들로부터 소외되며 외국 놈이라고 불신을 받게 된다.
a.국제적인 지도자들--국제사역에 종사했던 현지지도자들과 현지인들과의 사이에 일어나는 문화적인 간격이다. 선교에 있어서 우리는 국제지도자를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 제2, 3세계의 지도자들이 온전히 국제적인 지도력을 행사하기까지 교회는 완전히 국제적이 되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3. 자녀들
a.선교사 자녀들--심각한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들이 정말 편안하게 느끼는 일차문화는 바로 그들이 자라온 이중문화이다. 그들은 해외거주 한국인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선교사의 자녀들이 부모의 일차문화를 방문하게 될 때에 심각한 문화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의 자녀들이 조국도 아니고 외국도 아닌 제3의 문화에 속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자녀들이 직면하는 여러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을 준다.
b.학교--대개 선교회가 경영하는 이중문화학교에 다니게 된다. 젊은 선교사의 자녀들이 직면하는 한가지 문제는 부모에서 받는 사랑에 비례하여 하나님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선교사 자녀들이 직면하는 다른 문제는 뿌리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폴 투르니에가 지적했듯이 사회든 그곳에 소속되어 있다는 소속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뿌리의식의 결핍문제는 다른 선교사 가족들과 밀접한 교재를 나눔으로 부분적으로는 극복이 된다.
c.재입국--자신들이 이제는 본국 사회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 때 충격을 받게 된다. 선교사 자녀들의 해외경험은 장래에 상당하나 이점이 되기도 한다. 이들은 대개 삶의 동기가 높은 성취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선교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선교사들이 자녀의 양육에 성공하지 못하고서야 어찌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증거자가 될 수 있겠는가?
d.현지지도자의 자녀들--이들은 현지나 국제 사회에서 교회의 높은 직위를 맡을 현지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교사와 마찬가지로 현지지도자들도 성육신 사역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고 그렇게 동일하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 또 좋든 싫든 세상의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교회 지도자들은 현대사상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을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1)권한의 위임 문제
이중문화에서 만나는 또 다른 문제는 힘과 권위와 관련된 문제들이다.
a.선교사 공동체--이들은 사실상 선교사들 사이의 관계망은 머물 장소와 공동체를 제공해 줌으로 세계를 광범위하게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기도 한다.
b.현지 공동체--자기들의 정체감과 자존감을 발견하고 권위나 명예를 위해 경쟁도 한다. 그들이 선교사에게 얼마나 가까이 밀착되어 있는가에 달려있다. 선교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그 집에서 일하는 하인을 통하라는 현지 속담이 있다.
c.선교사와 내국인의 관계--가장 나쁜 태도는 인종차별이다. 선교는 선교사역이 되어야 한다고 인식하게 되며 식민지적인 장벽과 차별문제는 점점 깨어져가고 있다.
2)교회와 선교기관과 관계
a.교회의 부분으로서의 선교--어떤 교회에서는 선교사역을 전체적으로 교회나 교단이 실행하는 과업의 하나로 보고 있다. 교회나 교단이 선교회를 조직하고 선교사를 파송하며 선교사를 지원한다. 이 모델은 교회단위의 선교의식이 깊은 뿌리내려 있으며 강한 교회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선교사들은 활동하고 있는 교회구조 내의 한 부분이 된다.
b.교회를 개척해서 교회가 성장하면 그 교회를 준비되어 있는 현지지도자들에게 양도하는 것을 선교사들의 사명으로 알고 있었다.
c.혼합된 선교 모델-- d.식민지 이후의 모델--현재 교회가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식민지적 고거의 흔적을 갖지 않는 국제적인 교회. 선교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 교회의 자율성과 동등권을 인식은 하지만 문화차이, 선교사의 우월감, 부의 불균형과 민족적 충성심 등이 필요하다.
e.은퇴--
4.이중문화 가교의 극복
이중문화 공동체는 복음이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건너가기 위한 가교이다.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의 흐름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선교의 효율성은 이중문화 공동체의 질적 수준과 그 안에서의 관계에 크게 좌우된다. 현대의 대중전달 수단이나 다른 현대기술이 복음의 중심적인 전달매체인 사람 대 사람 간의 간계를 통한 수단을 결코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있어서 비용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알고 계신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지고한 자기계시를 보이시려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불러서 삶을 기꺼이 드리도록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사역에 필요한 비용은 영원히 공급될 것이다.
제10장 선교사의 역할
1. 신분과 역할
1)신분
한 사회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 안에 있는 어떤 직위를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이 차지하고 있는 신분들은 그 사람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역할
신분에 연관된 특별한 행동을 바로 역할이라고 부른다.
3)복합적 신분
신분은 사람들에게 한 사회 안에서 지위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위계조직 안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회의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가를 상당히 결정하기도 한다.
4)역할조와 역할짝
모든 사회관계들은 역할짝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들의 개념은 복합적인 사회관계를 분석하는 강력한 도구의 역할을 한다. 일세기 전의 이상적 아버지 상은 상당히 권위주의적이었고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가정의 생계를 유지해 가는 유일한 책임자로 이해되었다.
2. 타문화에서의 역할 혼동
사람들이 한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 옮겨갈 때에는 많은 역할 혼동이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역할을 모호성은 우리가 해야 할 역할들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더 상처를 입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온 기존 사회에서의 역할이 새로운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때에 일어나게 되는 역할혼동의 형태이다.
3. 선교사의 역할에 대한 정의
1)선교사와 현지의 비그리스도인
선교사들이 유럽에서 왔을 때 이들은 식민지적 통치자로서 여겼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선교사가 먼저 왔고, 그 다음에 사업하는 사람들이 따라왔다. 그 다음으로 총을 가진 군들이 들어와서는, 정복하고, 나누어 가지고 통치하였다. 선교사들이 역장이 무료로 제공해 주는 표를 이용한 것을 보게 되면 현지인들은 보고 선교사들이야말로 식민지 통치의 일부세력이라는 충분한 증거가 된다고 인식했다. 그런 지역에서는 흔하게 사용했던 표어 가운데 하나는 식민지화, 기독교화 그리고 문명화라는 슬로건이었다.
식민지 정책과의 연관성은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선교사역의 문을 열어주는 방편이었던 반면에 선교사들이 자신들을 순수한 선교사로 현지인들에게 인식시키는 데 어려움을 갖게 하였다. 우리는 충성의 우선순위를 어느 곳에 두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국가인가 아니면 선교사역인가 결국 우리의 신분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조국이 우선인가, 아니면 우리가 섬기러 온 그 사람들이 우선인가? 선교사의 지주의 역할이 극심한 억압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다소간의 자유를 줄 수는 있었지만 종종 복음으로 인도하는 문을 닫아버리는 수도 있었다.
배우는 자의 역할은 동참하는 것은 선교사에게 새로운 사회로 들어가서 그들의 관습이나 방식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배우는 사람들은 그 문화를 배우려는 열정이 진지해야 한다. 우리가 인간관계를 맺으려는 목적이 자기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사용하려는 것인지 아닌지를 곧바로 알게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우리가 진실로 사람들을 사랑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삶과 문화에도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사람들을 좀더 알기 위해 배우는 과정 그 자체는 그들을 우리가 사랑하는 한 방법이다. 배우는 자로서의 두번째 한계점은 시간의 문제이다.
2)선교사와 현지 그리스도인들
경찰관의 역할이다. 우리는 교회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일에 늘 관심을 갖게 된다. 교회의 규율은 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지만 그것이 선교사에 의해 강요될 대에 선교사는 곧 경찰관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교회의 규율은 국내 교회의 지도자들 스스로가 시행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그런 문제이다. 경찰관과 같은 자세로 의를 강압하면, 복음은 율법주의로 흐리게 되고 사람들은 향한 우리의 사역마저 무너지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순종과 확신에서보다는 처벌이 두려운 선교사의 법에 단지 복종하게 될 때 문제이다.
선교사가 빠지기 쉬운 두 번째 역할은 성자의 역할을 하려는 것이다. 성자적인 접근을 하는데는 여러 무제가 있다. 이는 사람들이 우리 자신보다도 더 확실하게 우리의 죄를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선교사가 고백하고 용서해 주는 일에 있어서 현지지도자의 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죄를 고백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표본이 되지 못한다면, 현지지도자들 역시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또 선교사와 현지인들 사이에 어떤 장벽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육신의 유혹을 덜 받을지 모르지만 영적인 유혹은 더 많이 받는다. 그러므로 성도를 구원받은 죄인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죄가 없기 때문에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푸신 은혜 때문에 의로운 자가될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을 구원받은 죄인으로 보는 것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좀더 투명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 우리가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것은 다른 사람과 대화의 문을 여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특히 취급하기 어려운 것은 영적 부모로서의 역할문제이다. 먼저 의존단계에서 독립관계로 전환하며 상담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보수를 받는 설교자 또는 자비량 전도자로서의 선교사인가에 대해서 현지인들은 선교사들이 사례를 받는 교사로 본다는 것이다. 유급성직자뿐만 아니라 평신도도 복음전조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자비량 선교사를 모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3)선고사와 다른 선교사
가장 어려운 선교사의 역할 가운데 하나는 동료들과의 인간관계이다. 밀접하게 연결된 공동체로서의 동료 선교사들 상화간의 관계는 아주 밀접하다. 때로는 너무 친밀한 나머지 성격의 차이로 인한 적대감이나, 반감 그리고 냉소적인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기도 한다. 선교사들은 대부분 강한 개성과 깊은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관계의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흔히 있을 수 있다. 때로는 동료 선교사들과 경쟁관계에 놓이기도 한다.
4)선교사와 파송교회
안식년 중의 선교사--주일 아침에 강단을, 다음 주일저녁에 슬라이드를, 그 다음 주 수요일에-밤에 성경공부를 인도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언제 사역지로 돌아갈 것인지 묻기 시작한다. 우리가 불편하게 되는 첫번째 이유는 안식년의 선교사라는 지위가 일시적인 것이며 그 사회에서는 상당히 변두리적인 지위라는 데 있다. 안식년의 선교사는 외국인가 같은 처지이다. 선교사가 실제 거할 곳은 이제는 외국이다.
선교사들은 특별히 자녀들의 필요에 대하여 민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문화충격을 받게 되고 현지의 동료 집단에 수용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선교사의 부부간에 갈등이 흔히 일어난다. 결혼생활을 견고하게 세우는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건강한 결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하며 그것이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선교사의 자녀들은 조금만 도와주면 그 아이들은 대단히 창조적이 될 수 있다. 선교사가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사역하는 지역의 새 신자들에게 기독교 가정생활의 한 모델을 보여주어야 한다.
현대 독신 선교사가 거의 절반을 이루었다. 이들은 보상받지도 못하는 독특하면서도 주요한 사역을 감당했다. 그러나 이들의 큰 문제는 고독이다. 낯선 외국에서 혼자 산다는 것은 특별한 은사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4. 기능적 역할과 지역적인 역할
식민지시대는 이미 끝났으나,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더욱 첨예한 형태의 식민지주의에서 선교사 자신들을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복음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맺는 현지인들과의 인간관계는 복음을 위해 가장 중요한 교량의 역할을 여전히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제11장 미완성 과업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어서 성령의 역사는 교회와 온 세상으로 계속적으로 펴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1. 기독교 초기의 복음의 진행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붕괴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했다. 무엇보다도 큰 어려움은 회교의 침략에 의한 것이었다. 주후 500년부터 950년까지의 기독교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1300년과 1500년 사이에 기독교는 상당히 침체되었다. 그리고 1500년 이후에야 교회는 개신교와 천주교의 개혁을 통하여 새 생명의 부활이 일어나게 되었고, 러시아에서도 기독교 갱신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2. 개신교 선교의 시기
개신교 선교 운동은 주로 경건주의자들과 모라비안 교도들 사이에서 18세기 초에야 시작되었다. 진젠도르프 백작에 의해서 주도된 모라비안 자비량 선교사들은 그린랜드와 미국 그리고 아프리카로 나아갔다. 1792년에 윌리암 캐리에 의한 침례교 선교회의 설립은 윌리암 캐리가 인도로 간 첫 25년 동안, 10개 이상의 선교기관이 대서양 연안국들 내에서 세워졌으며, 선교사들은 세계의 대다수의 지역으로 파송되었다. 1865년에는 전적으로 독신 여성들에 의하여 운영되는 선교단체가 조직되었다.
개신교회의 초창기 선교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사랑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두번째 선교운동은 19세기 말경에 다시 일어났다. 1856년에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내지선교운동을 일으켰다. 1880년대와 1890년대에 학생자원선교운동으로부터 선교의 바람이 일어났는데 수만명이 해외로 선교사로 나갔다. 다음 상업주의 사상의 19세기 개신교 선교전략 안에도 깊숙히 침투되어 있었다.
현대 선교는 인간의 노력에 의한 성공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일하신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깨어지고 헌신된 사람들은 취하셔서 자기의 사역을 성취하시는 것이다.
3. 현대 선교의 여러 측면들
1)인구성장
세계의 인구가 10억이 되는 데는 아담 때부터 1830년까지의 시간이 걸렸다. 두배-100년→30억-30년→40억-15년→50억-12년
2)도시화
문화변동의 두번째 파도는 도시화이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신다면, 도시 중심지역으로 많은 인구가 대량으로 이동하는 데는 어떤 목적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복음전파는 명백한 하나님의 목적의 일부분이다.
원리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사람들과 그들의 문제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나, 사역을 함에 있어서 사랑으로 그들과 동일시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원리들이다.
3)문화적인 위기들
a.폭력문제--1900년부터 1941년 사이에는 24번의 국제전쟁과 시민전쟁이 있었다고 보고 된다. 그리고 1945년부터 1969년 사이에 는 훨씬 짧은 기간이지만 97번 이상의 전쟁이 있었다. 1984년도에는 40여 차례 각종전쟁이 있었다. 이 모든 문제들은 선교를 필요로 하고 있다. 교회는 폭력의 희생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돕는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세계 도처에는 1700만 이상의 난민들이 있다. 교회는 화해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만 한다.
b.가난과 기근문제--7억 8천만의 세계인구가 절대빈곤 속에 살고 있다고 한다. 세계의 약 5억은 굶어죽을 지경에 있으며, 15억은 영양실조의 상황에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15억의 기독교 신자들은 세계자원의 2/3를 소유하고 있고 비그리스도인들 보다 연평균 3배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중 약 7억 5천만이 부유한 상태에 살고 있다. 수입의 3%이하만을 기독교 사역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그들이 1/10조를 낸다면 대부분의 기근문제, 가난, 질병, 실업, 식수공급 등의 문제를 상당한 정도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렛이 말했다.
c.억압과 정의의 문제--억압과 정의문제에 대하여 절차적으로 인식이 높아져가고 있다.
4)민족주의
지구를 휩쓸고 있는 또 하나의 문화적인 현상은 민족주의 문제이다. 선교사들은 혁명이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도 사역을 감당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며, 사역의 문이 열려져 있는 곳은 어디로나 기꺼이 이사를 가겠다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만 한다.
5)타종교들의 발흥
세계의 많은 교육받은 인구들 중에서는 세속주의가 확산되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속주의는 궁극적인 실재에 대한 관심에서 방향을 돌려 현세에서의 삶에 만 초점을 두는 현세적 세속주의이다.
3. 미래를 향한 도전
식민지주의적 분위기 속에서는 세계선교를 위한 개방적인 접근방법은 생겨나기 어렵다. 서구 식민주의와 기독교선교를 도일시하는 태도도 역시 사라져 가고 있다. 그리고 민족적이며 문화적 다원주의에 대한 현대선교의 민감성도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후기식민지주의적인 선교사역의 모델을 찾고 있다.
'선교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제9강 종족 분류와 전략적 정보 (0) | 2009.05.22 |
---|---|
[스크랩] 신학적 관점에 의한 선교 이론의 변화와 역사적 상황에 의한 선교 방향의 변화에 관한 고찰 (0) | 2009.05.20 |
[스크랩] 제9강 종족 분류와 전략적 정보 (0) | 2009.05.15 |
[스크랩] 제8강 선교에 있어서의 종족개념과 계층 개념의 이해 (0) | 2009.05.11 |
[스크랩] 제7강 중국 종족 중 한족의 경우 (0) | 2009.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