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스크랩] 총체적 선교와 선교지 지역개발의 필요성 (김승호)

수호천사1 2009. 5. 10. 14:28

총체적 선교와 선교지 지역개발의 필요성

  - 김승호 교수(한국성서대학교)

   

들어가는 말

 

총체적 선교는 인간의 신체적, 영적, 정서적, 경제적, 사회적 등의 모든 필요들(needs)을 함께 고려하는 선교이다. 총체적 선교에는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 혹은 복음의 구두선포(evangelism), 교회의 개척 및 성장(church planting and church growth)과 같은 영적인 사역뿐만 아니라 비 성경적이며 비 인륜적인 관습, 제도, 사회구조, 그리고 체제의 변혁 및 사회개혁과 개발 등이 포함된다. 요약하면 총체적 선교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 모두를 중요하게 고려하는 선교라 말 할 수 있다.

 

총체적 선교와 선교지 지역개발의 필요성을 다룸에 있어 먼저 그것을 요구하는 두 가지 신학적 주제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두 가지의 신학적 주제

1) 창조사건과 타락사건의 신학적 의미

창세기1장31절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창조된 세상이 좋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이 선하고 좋으신 분이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육(be fruitful)하고 번성(increase in number)하며 땅에 충만(fill the earth)하고 땅을 정복(경작. subdue)함을 통해 당신이 지은 창조세계를 발전시킬 것을 명하셨다(창1:28). 즉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세계를 다스리며 발전시켜 나갈 청기기적 책임을 부여 받은 존재이다. 세상은 인간에게 있어 선한 것을 증진시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하나의 ‘통치의 현장’(Dominion Charter)이 되도록 하셨다.

 

아담과 하와는 처음부터 다른 피조세계와는 구분된 존재였는데 하나님의 형상(in His image)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창1:26-27).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이 지음을 받았다’는 말은 세 가지의 주요한 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인간의 신분성 혹은 위치성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vice regents)로서 창조세계를 다스리는 자이다. 둘째, 인간의 가치성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은 가치 있고 존귀한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은 비인간적으로 취급받거나 착취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스스로도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죄 된 행위를 하거나 부패케 하는 우상들을 섬겨서 안 된다. 셋째, 인간의 삶의 목적성과 책임성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기뻐하며 그분을 영화롭게 해드려야 할 삶의 목적과 책임을 갖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와 생명에 대해 창조주 하나님께 빚졌기 때문에 전 생애를 통해 하나님을 기뻐하며 그를 영화롭게 해드려야 할 사명을 갖고 있다(사43:7,21).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은 창조세계를 다스리며 전 생애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려야 할 특권과 책임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함으로 인간 삶의 구석구석에 죄와 악들이 침투하게 되었다(창3장, 6장, 렘17:9, 엡2:1-3). 범죄는 인간만 타락시킨 것이 아니라 피조세계도 타락시켰다(롬8:19-22).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창조세상은 하나님이 원치 않는 세상이 되었다(창6:5-7). 만약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은 최고수준의 창의력, 은사, 기술, 문화행위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선하고 조화로우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갔을 것이다.

 

신학적으로 볼 때 세상은 그 존재 자체가 선교변혁을 요구하고 있다(롬 8:19-22).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엄중한 선교적 사명을 갖고 있으며 모든 영역에서의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회복시켜 나갈 사명이 있다. 타락한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새로워지고 창조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신학적 입장이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계21:5).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인간을 찾으심이 바로 성경 66권이 증거하는 구원의 스토리이다.

 

2) 개신교 보수주의 진영과 진보주의 진영의 선교 정체성 문제

 

역사적으로 선교의 정체성 문제는 늘 존재해 왔다. 전통적으로 개신교 보수주의 진영은 선교를 죄로부터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전도 즉, 복음전파에 초점을 맞추어 선교를 해왔다. 반면 진보진영은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인권 등 인간 삶의 모든 상황을 고려한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만들며 인간성을 파괴하는 사회의 구조적인 악(demonic power of social structures), 경제적 착취(economic slavery), 사회적 불의(social injustice), 정치적 독재(political tyranny), 성 차별(gender discrimination), 비 인륜적 관습 등등으로부터의 구원에 초점을 맞춘 선교를 펼쳐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간화(humanization)에 무게를 둔 진보 진영의 선교는 인간의 영적인 필요보다 물리적인 필요에 그리고 하나님 중심보다 인간 중심의 선교라는 비판을 들어왔다.

 

총체적 선교와 선교지 지역개발의 필요성의 관점에서 볼 때 보수주의 진영이나 진보주의 진영의 선교 모두 장점과 약점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 진영은 선교를 전도와 동일시함으로 복음의 사회(구원)적 성격을 간과하는 약점을 갖고 있다. 보수주의 진영 내부로 들어가 보면 내세와 현세, 영혼과 육체, 거룩과 세속을 구분하는 이원론적 태도가 여전히 지배적이다. 또한 분리주의적 태도로 인해 선교지에서 협력사역에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편 진보주의 진영의 선교는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에 대한 본래적 개념’인 죄사함을 통한 영혼구원보다 사회구원에 초점을 둔다는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요인들이 인간이 만든 제도, 관습, 구조, 체제, 문화 등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죄성(sin nature)이 그 주요 요인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의 행복, 인간성 회복, 긴요한 필요를 채움, 차별철폐,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등과 같은 인간의 권리문제도 중요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받은 백성을 창출하심으로 하나님의 주권, 영광, 통치회복과 같은 하나님의 권리는 더욱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2. 하나님 나라의 회복 차원에서 본 총체적 선교의 필요성

 

데로스 마일스(Delos Miles)교수는 선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는데 그의 정의는 총체적 선교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Mission is being(koinonia), doing(diakonia), and telling(kerygma) the gospel of the kingdom of God, in order that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persons and structures may be converted to the lordship of Jesus Christ.”

 

선교는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들 및 사회구조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Lordship. 통치)아래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되며(being), 복음대로 행하며(doing), 복음을 선포(telling) 하는 일이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대적(사단)을 완전 패배시키고 구속받은 백성들(redeemed people)로 이루어진 나라로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가 실현되는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의 차원에서 선교는 하나님의 통치를 대적하는 사단과 그의 나라를 파멸시키며 정복해 가는 것이며 또한 사탄의 권세와 영향권에 잡혀 어둠 가운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통치권(주권)안으로 회복시키는 일이다(행 16:15-18). 하나님의 나라회복에 초점을 둔 선교는 구원론적 성격을 갖고 있는데 즉 죄, 고통, 목마름, 상함, 다툼, 눈물, 굶주림, 질병, 차별, 억압, 착취, 비 성경적인 구조, 제도, 관습, 그리고 (영적)죽음으로부터의 치유와 구원이다(사11:9, 마4:23, 24). 주님의 기적들과 치유사건은 사탄 세력을 파멸하고 정복해 가시는 생생한 증거들이었다(마12:28, 눅10:18).

 

하나님의 나라는 선(good)과 진리가 악(evil)과 거짓과 싸워 적극적으로 정복하여 성취되는 나라이다. 사도행전14장22절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갈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겪어야 할 많은 수고와 환난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차원에서 볼 때 우리의 선교 대상은 사람에 물론 잘못된 사회구조, 체제, 제도, 관습들도 반드시 포함될 필요가 있다. 사단의 영향과 타락한 인간이 만든 잘못된 사회의 구조, 체제, 제도, 관습들을 성경적인 것으로 변혁시키는 일은 선교에서 필수적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임할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면서도 자신의 세대의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도록 하는 선교변혁을 꾸준히 수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

 

선교지에서 발견되는 비 성경적이며 불의한 사회구조, 체제, 제도, 관습들을 성경적이며 정의롭게 변혁시켜 나갈 책임이 선교사들에게 있다. 역사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은 선교에서 죄사함을 통한 영혼구원에 힘을 쏟은 반면 사회변혁에 대해 소극적 태도를 취하여 왔는데 이런 자세는 반드시 교정될 필요가 있다. 반면 진보 진영은 노예제도, 영아살해(infanticide), 인도의 과부를 불태워 죽이는 관습(widow burning), 카스트 제도(caste system), 중국의 전족관습(foot binding), 무슬림권의 여성 할례식(female circumcision)과 같은 비 성경적이며 비 인륜적인 제도에 대해 적극적인 투쟁을 펼쳐온 결과 점차 이런 제도들이 사라지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떨어뜨리는 비성경적인 구조, 체제, 관습은 언제든지 정죄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악이기 때문이다(시 51:4, 눅 15:21).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진정한 원인은 사회적 요인에 있기보단 인간의 죄성(sin nature)에 있다는 사실이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슬럼(slum)이 아닌 풍요롭고 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 자신을 타락시킨 존재가 되었다. 아담의 범죄는 에덴동산을 황폐화된 동산으로 만들었다(창 3:17). 성경은 인간을 죄(sins)와 허물(trespasses)로 죽은 존재라 말하고 있다(엡 2:1). 죄는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다주었고, 비정상적인 욕구를 갖게 했으며, 잘못된 제도, 체제, 관습을 만들게 했으며 자연계의 타락을 가져왔다.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이 기대하는 존재가 되지 못하고 비인간화가 되었는데 누구에게도 책임을 돌릴 수 없으며 스스로가 책임질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 있어 최악의 단절, 분리, 격리, 고립(alienation)은 인간사이가 아니라 하나님과 자신의 분리이다.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인간을 고립시키고 분리시키는 주범은 자본주의라고 공격하였다. 물론 수평적 차원(인간사이)에서 일어나는 단절, 분리, 고립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수직적인 차원(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단절, 분리이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됨이 없이는 진정한 수평적 관계는 가능치 않다.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서는 참된 인간화(authentic humanity)는 이루어 지지 않는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의 고백이 이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Thous hast made us for Thyself and our hearts are restless till they rest in Thee.”). 하나님은 아담을 향해 “네가 어디 있느냐 (The Lord God called to the man, Where are you)?”고 물으셨다 (창 3:9). 인간의 참된 행복은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가능하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 8:36).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다. 물질적 풍요로서 행복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진정 행복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Only one way back to God) 밖에 없다. 많은 통로(paths)가 있을 수 있지만 길(The Way)은 오직 한길  밖에 없으며 세상에 많은 스승과 선지자가 있을 수 있으나 구세주(The Saviour)는 오직 한분 밖에 없으며 많은 종교가 있으나 복음은 오직 하나밖에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요14:6).

 

    

3. 상황화된 선교지 지역개발전략

 

조지 프라이(George Fry)와 제임스 킹(James King)은 지난 수십 세기 동안 진행되어 온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반목관계를 한 예로 들면서 결국은 기독교인들의 사랑, 관심(긍휼) 그리고 겸손이 쌓인 벽을 허물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 사람은 더 많은 수의 교사, 의사, 간호사 그리고 농업전문가들을 이슬람권으로 파송할 필요가 있으며 행동이 말보다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지인들이 갖고 있는 긴요한 필요를 해결해주며 채워주는 지역개발과 같은 사역은 편견을 극복하게 해주고 복음전파의 좋은 통로로 사용될 수 있다. 종종 기독교 선교가 공격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선교의 장애물을 우리 스스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21세기 선교는 현지인들이 좋아하며 인정하는 상황화된 방식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공급자 중심의 선교를 해왔는데 이제는 현지인들의 필요에 맞춘 수요자 중심의 선교로 전환할 때가 왔다.

 

2007년 7월 발생한 아프간피랍사태는 우리의 선교방식의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의료, 건축, 농업, 경제, 스포츠, 예술, 기술, IT, 과학 등의 분야의 전문인 선교사들을 파송함으로 선교지에서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선교하는 방식이다. 전해야 할 메시지나 열정은 결코 변경되어서는 안 되지만 선교방식과 수단은 상황에 따라 변경될 필요가 있다. 특히 무슬림지역은 복음에 대한 저항성이 높기에 전문인을 통한 지역개발과 같은 간접적인 사역이 큰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미국 남침례교 해외선교부(Foreign Mission Board, SBC)는 아랍지역에 3개의 대형병원, 그리고 레바논, 요르단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거주 지역)에 여러 학교들과 고아원들을 현재 운영하고 있는데 이 사역들을 통해 남침례교단은 척박한 이슬람권에서 많은 선교 열매를 거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가는 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고 주님은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 속에서 복음은 전인적인 혹은 총체적인 성격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이 함께 이루어지는 총체적 차원의 선교였다(참고. 역하 7:14). 영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John Stott)도 선교에서 복음의 선포와 섬김의 비중을 동일선상에 두었는데 그리스도인의 섬김(Christian service)은 복음 선포의 중요한 요소이며 섬김 없는 선포 역시 설득력이 없고 복음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복음의 선포를 소홀히 하는 섬김도 주의해야 할 것을 촉구했다.

 

총체적 선교는 성경이 가르치는 선교로서 인간이 안고 있는 영적, 정서적, 사회적, 그리고 신체적 필요 모두를 고려하는 성경적 선교방식이다. 현재 겪고 있는 한국교회의 선교 정체성문제(mission identity)는 다름 아닌 성경적 선교에 대한 바른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의 총체적 성격을 바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교단을 초월해 서로 협력하며 변하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복음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할 것인지 성령의 능력과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출처 : 내 사랑 중국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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