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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드와이트 레이먼 무디 : 하나님 은혜로 크게 쓰인 19세기 최고의 복음 전도자

수호천사1 2009. 4. 29. 11:56

하나님 은혜로 크게 쓰인 19세기  최고의 복음 전도자

 

드와이트 레이먼 무디(Dwight  Lyman Moody) 1837-1899:


        
현대 대중 복음전도운동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드와이트  무디는  미국 남북 전쟁 이전의 찰스 피니와 1950년 이후의 빌리 그레이엄에 비길 수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 전도자이다.  무디는 1837년 2월 5일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주 외딴 농가 노스필드(North Field)에서 석공(石工)이자 청교도였던 에드윈 무디(Edwin Moody)와 베씨 홀튼 (Betsy Holton) 사이에서  여섯 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그의 나이 4세때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심으로 어머니와 8명의 아이들은 아주 가난하게 성장했다. 어머니 벳시의 근면과 남은 가족의 단합 그리고 그 지방의 유니테니언 교파의 도움으로 가족들은 흩어짐을 면할 수 있었지만 벳시는 그에게 충분한 교육을 시킬 여건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비록 무디는 생계를 돕기 위해 초등교육밖에 받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청교도 신앙 아래서 옳다 생각하는 일에 모든 일에 열심히 노력하며 바칠 수 있는 열정과 자신감 그리고 탄탄한 체구에 야심 있고 상당히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어렵고 힘들게 자라온 농촌에 회의를 느껴 17살이 되던 해 보스톤에서 직장을 구하고자 집을 떠난다.  보스톤에서 취직은 생각만큼 빨리 되지 않았다.  구두 소매점을 경영하던 외삼촌 사무엘 홀턴(Samuel Holton)과의 만남으로 무디는 구두 세일즈를 시작하게 된다.  독실한 신자였던 삼촌의 요구조건은 매 주마다 주일학교와 교회에 나가는 것이었다.  그는 일 때문에 마지 못해 주일학교에 등록했다. 그는 교회는 다녔지만 그의 꿈은 빨리 돈을 벌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18세 때에 주일학교 교사 에드워드 킴볼(Edward Kimball)은 습관적이며 교회 마당만 밟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젖어 있던 무디의 마음에 영적인 도전을 주었다.  무디는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였다.

1856년 회심한 지 1년 후, 무디는 시카고로 가서 제화점에 취직하였다.  그는 구두 세일즈맨으로 모든 일에 열정적이었다.  그의 검소하고 성실한 생활방식, 그리고 철저한 직업의식과 열정은 그를 일약 백만장자로 만들었다.  그는 교회에서도 열심히 봉사하였다.  특히 시카고 빈민층에 사는 어린아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다.  교회에서 맨 처음 했던 일들은 예배와 주일학교, 그리고 집회에 사람들을 모아오는 일이었다.
        
무디는 기독교 사역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아낌없이 헌신했다.  그는 주일학교를 부흥시키는 일에 마음을 써서 18명에 불과하던 주일 학생들이 몇 년 만에 1,500명이 모일만큼 양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그는 어린 시절부터 뜨겁게 간직한 원대한 꿈을 아낌없이 영혼 구원을 위해 복음 전하는 사역에 전 생애를 바치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무디는 하루에 한 명 이상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잠을 자지 않겠다고 결심을 할 정도로 불신 영혼에 대한 전도 열망은 너무나 강해서무보수로 어린이들을 위한 선교와 새 YMCA를 운영하기 위하여 자신의 사업을 그만두었다. 어느 날 건초사에서 열린 기도 모임에서 설교자의 말씀에 크게 도전을 받았다.  “이 세상에는 아직 온전히 헌신된 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 온전히 헌신된 한 사람이 나타나면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그와 함께, 그를 위해, 그 안에서 일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무디는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기를 원했고 기도했고 그를 통해서 놀라운 일들을 이루었다.

무디는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고 컬컬한 목소리와 많은 문법, 철자, 발음 등이 틀리고 설교에도 결함이 많았지만 그가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말처럼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장애를 극복했다.  무디는 충분치 못한 교육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살아있는 말씀으로 담대하게 증거하는 탁월한 은사를 발전시켜 그리스도를 위해 결단을 촉구하는 그의 강력한 메시지와 성령 충만한 집회는 어느 것보다 강하고 능력이 있었다.  

그는 교파를 초월하여 어떤 교리에도 매이지 않았고 단순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치중했다.  무디는 교육을 통해 평신도를 양육하며 도시 의 빈민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이들을 훈련시켜 그리스도 일군으로 양육하고자 했다. 독자적인 선교사가 된 무디는 아내의 건강 문제를 계기로 영국을 방문하면서 죠지 윌리암스, C. H. 스펄젼, 죠지 뮬러등의 신앙 동지를 만나 그들로부터 배우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1872년 시카고 대화재로 인해 모두 파괴 되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1873년 제3차 영국 방문때 요크에서부터 무디는 부흥사로서의 그의 삶은 열리게 된다.  찬양 사역자 아이라 데이비드 생키 (Ira David. Sankey 1849-1908) 와 함께 부흥 집회를 같이 하게 되었다. 생키의  은혜롭고 감동적인 찬송은 집회 분위기를 뜨겁게 고조시켜  열기를 달아올려  집회에 기여한 바가 크다.  무디의 솔직한 담백한 설교와 생키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영감있는 찬송으로 매 집회는 대성황을 이루었고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와 회심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그리하여 무디는 전도자로서의 탁월성을 인정받게 된다.  찬양과 말씀의 사역은 부흥집회의 좋은 모델이 되었다.  

이로써 영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부흥 집회 활동을 전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까지에 이른다. 비록  미국과 영국을 넘어 전도여행을 하지 않았지만 학생자원 단체와 해외 선교를 위한 끊임없는 독려를 통해 기독교 확장에 큰 영향을 주었다.

 

생키는 아름다운 찬송을 불러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무디는 힘찬 설교를 통하여 복음의 씨앗을 뿌렸으며, 무어하우스는 뿌려진 말씀이 싹을 내고 잘 양육될 수 있도록 많은 상담을 통하여 그들을 돌봐주었다.  사람들은 무디, 생키, 무어하우스를  가리켜 '무디의 전도단'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들 세 사람 뒤에는 무수한 기도의 동역자들이 생겨서 기도로 후원을 해주었다.
무디는 거듭난 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최소한 한명의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증거했을 정도로 열정적인 복음전도자였다.  그는 40년 동안 미국과 영국에서만 백만 명이 넘는 수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한 영적인 거인이었다.  
        
말년에 무디는 두개의 학교(무디성경학교/노스필드신학교)를 설립하여 사역자와 선교를 위한 헌신자들을 훈련시켰고, 노스필드에서 정기적인 성경대회를 개최했다.  그는 공동 수양관을 개설했고, 세계 학생연맹, 부인협의회,‘노스필드의 메아리’라는 정기 간행물을 발간, 그리고 종교서적 판매 연합회 등을 발족시켰다.

외적으로 내놓을 만한 것이 없고 충분한 교육을 받은 사람도 가난한 부모 밑에서 교육도 거의 받지 못한 시골 소년이었던 무디가 하나님을 위해 이토록 엄청난 일을 해내리라고 기대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무디가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헌신하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일로 그를 부르셨고 인도하셨고 모든 능력을 공급하심으로써 그를 위대한 부흥의 탁월한 도구로 사용했다.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한 한 사람을 통해 많은 불신자가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타락했던 수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왔으며  복음주의 정신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보스톤 뒷골목의 구두 세일즈맨에서 세계적인 부흥사로 잃어 버린 자들에 대한 강한 열정을 지닌40년 동안 백만 명의 죄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영적인 거인이었다.  

그는 그 많은 역사 가운데 에서도 진심으로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한자로 하나님 나라 가기 바로 직전까지 쓰임을 받았다.  1899년 11월 16일. 수 많은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한 큰 종 무디는  미주리주 캔자스시에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고 뛰어난 발자취를 남긴 그리스도의 충성스런 군사로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이 시대의 무디가 Korean American 에서 나오기를 바라면서….

 

|출처: Global Y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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