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볜朝鮮族의 민족자치적 지위
김병호/중앙민족대학 교수
1. 延邊朝鮮族自治州의 건립
1945년 8월 옌볜지역이 해방된 후, 延邊朝鮮族 인민은 민주정권을 건립하고 토지개혁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거의 모든 延邊朝鮮族이 중국국적으로 가입하였으며, 명실상부한 중국공민이 되어 진정한 옌볜의 주인이 되었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후, 延邊朝鮮族은 중국 소수민족의 일부분으로서 평등한 사회·역사적 지위를 취득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 공산당과 중국정부의 민족구역자치정책에 근거하여 민족자치의 권리를 향유하였다. 延邊朝鮮族 인민으로 하여금 구역자치를 실현하도록 하기 위하여 중국공산당은 한 측면에서는 당 영도하의 지방민주정권 건립에 착수하여 朝鮮族 인민이 주인이 되어 그들의 자치에 대한 의식과 능력을 증강하도록 하였다. 다른 측면에서는 각급정부가 “민족자치를 실행하는 준비업무를 완료하며”, 朝鮮族 간부를 힘써 배양하고, 민족자치를 위한 조직준비를 할 것을 요구하였다. 중국공산당은 관내에서 항일전쟁에 참가했던 朝鮮族 원로간부 등을 옌볜에 파견하고 옌볜에 軍政大學을 설립하여 朝鮮族 간부를 힘 써 배양하였으며 朝鮮族 간부가 신속히 성장하도록 만들었다. 1952년에 이르러 延邊朝鮮族 간부는 6,090명에 달했으며 옌볜 총간부 수의 74%(당시 延邊 朝鮮族 인구는 옌볜 총인구의 62%를 점했다)를 점했다3). 또 다른 한 측면에서는 행정구역의 조정을 진행하여 구역자치의 행정지리적 범위를 확정하였다. 1948년 3월, 吉林省 정부는 吉東專區를 延邊專區로 바꾸었으며, 원래 吉東專區에 속했던 敦化, 蛟河 두 현을 성 직할 현으로 바꾸어, 1945년 11월의 延邊行政監察專員公署시기의 지리적 범위(轄延吉, 和龍, 汪淸, 琿春, 安圖의 5縣, 延吉市는 延吉縣에 귀속되었다)를 회복하였다.
1952년 7월, 中共延邊地委는 <吉林省延邊朝鮮民族聚居區實施區域自治的計劃>을 만들었다. 같은 해 7월, <吉林省延邊朝鮮民族自治區人民政府組織條例(草案)>를 입안하였다. 동년 7월 30일, 吉林省人民政府는 東北人民政府에 이상의 3개의 문건을 보고하고 8월 24일 東北人民政府의 비준을 얻었다. 8월 21일, 延邊各族各界人民代表會議籌備委員會가 성립되었다. 8월 29일 延邊各族各界第一屆人民代表大會會議(人民代表大會의 직권을 대행)가 延吉市에서 개최되었다. 회의대표 300명중 朝鮮族 대표는 209명으로 대표총수의 69.7%(한족대표 79명, 26.3%, 기타소수민족대표 12명)를 점하였다.4) 회의에서는 <吉林省延邊朝鮮民族自治區各族各界人民代表會議組織條例>와 <吉林省延邊朝鮮民族自治區人民政府組織條例>를 비준·통과시켰다. 회의에서는 또한 中共延邊地委書記인 朱德海(朝鮮族)의 <關於吉林省延邊朝鮮民族自治區人民政府施政建議>보고를 토론·통과시켰다. 회의에서는 朱德海를 자치구 인민정부 주석으로 선출하고 32명의 정부위원을 선출하였다. 정부내에 14개 處(局, 委)를 설치하고 그 중 11개 處(局, 委)의 주요책임자를 朝鮮族이 담임하였다. 이렇게 延邊朝鮮民族自治區건립의 모든 준비업무와 행정비준절차, 법률비준절차가 완성되었다. 1952년 9월 3일, 延邊朝鮮民族自治區成立大會가 延吉市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으며, 전 중국과 전 세계를 향하여 세계에서 유일한 朝鮮民族自治區(1955년 12월에 1954년 국가헌법의 유관규정에 근거하여 自治州로 바뀌었다)의 성립을 선포하였다. 이로부터 延邊朝鮮族의 민족자치적 지위가 정책과 법률상의 확인을 얻었다.
2. 延邊朝鮮族은 민족자치권리를 충분히 향유한다
민족구역자치는 중국이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기본형식과 기본정책이며, 일종의 기본제도이다. 이것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역대 헌법과 중국의 기본법-<民族區域自治法>이 확정한 것이다. 朝鮮族의 延邊自治州건립은 중화인민공화국건립이래 세 번째 민족자치지역이며 당과 국가의 중시를 받았다. 周恩來, 朱德, 賀龍, 胡耀邦, 趙紫陽, 萬里, 彭眞, 葉劍英, 鄧小平, 江澤民등 당과 국가 영도자가 延邊朝鮮族自治州를 시찰하였는데, 그 중에는 세 분의 당총서기등 최고 영도자와 두 분의 국무원총리, 세 분의 人大常委會委員長이 포함되었다. 1983년 鄧小平은 옌볜시찰시 “延邊朝鮮族自治州를 더욱 빠르고 더욱 좋게 건설하자”는 제사(題詞)를, 江澤民은 두차례의 옌볜시찰에서 “투먼장(圖們江)개발은 동북아 지역의 경제와 문화교류를 위해 공헌한다”는 제사(題詞)를 썼다. 延邊朝鮮族自治州는 현재 종합실력에서 전국 30개 自治州중 가장 강한 自治州가 되었다. 延邊朝鮮族은 민족구역자치정책과 제도하에서 민족자치권리를 충분히 향유하고 있다.
延邊朝鮮族自治州는 헌법과 민족구역자치법의 관련자치권리의 규정에 근거하여 지방입법권(자치조례와 단행조례제정)과 인사관리권, 재정경제관리자주권, 문화·교육발전자주권, 위생·체육발전자주권, 지방공안부대조직의 권리 등등을 향유하고 행사한다.
延邊朝鮮族自治州는 1985년 4월 24일에 自治州第八屆人民代表大會第三次會에서 <延邊朝鮮族自治州自治條例>를 통과시켰으며, 1985년 7월 31일 吉林省第六屆人民代表大會常務委員會第14次會議에서 비준하여 실시를 반포하였다. 이것은 중국에서 실시를 반포한 첫 번째 자치조례이며 중국민족구역발전사에 있어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延邊朝鮮族自治州가 중국민족구역자치건설의 측면에서 중대한 공헌을 하였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延邊朝鮮族自治州自治條例는 7장 75조를 나누어져 있으며, 법률의 형식으로, 朝鮮族과 옌볜 각 민족인민들의 옌볜정치, 경제, 문화, 교육과 사회발전의 각 방면에 있어 자주적 자치적 권리와 각종 정책 및 조치를 전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延邊朝鮮族自治州自治條例는 자치기관직원의 조직구성, 즉 민족자치간부의 임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규정하였다. “自治州 州長은 朝鮮族 공민이 담임한다. 副州長과 秘書, 局長, 위원회 주임등 정부구성원 중에서 朝鮮族 구성원이 반수를 초과할 수 있다.”5) “自治州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조직구성원중에서 朝鮮族 구성원이 반수를 초과할 수 있다.”, “自治州 인민대표대회상무위원회 주임은 朝鮮族 공민이 담임한다.”6) 여기에서 특히 두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延邊朝鮮族 인구가 옌볜총인구의 40.5%를 점하고 있으며, 민족간부에 대한 국가정책의 일반적인 제기방식은 소수민족간부의 점유비율이 그 인구의 점유비율에 상당할 것을 요구하나, 자치조례는 정부조직구성원과 人大常委會組織 구성원에 대해 朝鮮族 구성원이 반수를 초과할 수 있다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도 이렇게 이루어졌으며, 1985년 延邊朝鮮族 간부는 51%(27,646명)를 점하고 있다7). 두 번째는 <中華人民共和國民族區域自治法>에서 “민족자치지방의 인민대표대회상무위원회에는 구역자치를 실행하는 민족의 공민이 주임 혹은 부주임을 담임함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는 것이다8). 이것은 자치민족은 주임을 담임할 수도 있고, 주임을 담임하지 않고 부주임을 담임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延邊朝鮮族自治州의 자치조례는 朝鮮族 공민이 주임을 담임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규정하여 자치기관에서의 朝鮮族영도역할을 강화시켰다. 인민법원과 인민검찰원의 인원구성상에서 <민족구역자치법>은 “영도구성원 업무인원중에 구역자치를 실행하는 민족의 인원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9). <延邊朝鮮族自治州自治條例>는 “自治州 중급인민법원, 인민검찰원중에 朝鮮族 공민이 원장, 검찰장 혹은 부원장, 부검찰장을 담임 한다”고 규정하였다10). 이는 자치민족-朝鮮族의 사법기관에서의 지위와 역할을 강화시켰다는 것을 말해준다.
延邊朝鮮族自治州自治條例는 조선언어문자의 사용에 대해서 명확하게 규정하였다: “자치기관이 직무를 집행할 때, 조선어와 한어 두 가지를 통용하며, 조선언어문자를 위주로 한다”; 自治州내의 국가기관과 기업·사업단위의 문건발행과 포고시에는 조선어와 한어 두 가지 문자를 사용해야 하며, 이러한 단위의 “공인(公章)과 간판은 일률적으로 조선어와 한어 두 가지 문자를 사용한다”; “법원과 검찰원의 심리안건과 법률제정문건은 조선어와 한어 두 가지 문자를 사용해야 한다”11). 朝鮮族의 교육에 대해서는 “朝鮮族의 특징에 근거하여 朝鮮族의 중·소학교의 학제와 교육계획과 유관학과 교육요강을 확정하며, 조선어로 된 각 과 교재와 참고자료, 朝鮮族 소년아동의 과외 읽을거리를 편역출판한다”12) “自治州내의 朝鮮族 중학교는 朝鮮族 역사를 역사과목교육내용중의 하나로 한다”13) “自治州내의 대학교와 고등전문학교의 학생모집시 각 민족의 수험생은 자기민족의 언어로 답안을 작성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어로 답안을 작성할 수 있는 것도 명확한 것이다. “自治州내의 단과·종합대학의 학생모집은 동일한 조건하에서는 우선적으로 朝鮮族 학생을 모집한다”고 규정하였다14). 현재 朝鮮族 고등학교 졸업생은 조선어를 사용하여 대학교 입학시험에 참가할 수 있다. 延邊大學의 학생모집의 다수는 朝鮮族이다. 朝鮮族문화에 대하여 “도서관과 박물관 건설로 민족서적의 수집, 정리, 번역, 출판을 중시한다”, “조선어로 된 뉴스, 출판, 방송, 텔레비젼사업 발전을 중시한다”고 규정하였다15). 현재 옌볜의 각 현에는 모두 문화관이 있고, 많은 鄕에도 문화관(文化館, 站)이 있으며, 조선어 방송과 텔레비젼이 이미 보급되어 있고, 세 개의 출판사가 있으며, 延邊日報와 綜合新聞이 있다.
延邊朝鮮族自治州自治條例는 경제건설과 재정관리에 관한 장에 22개 조목(자치조례 총조목의 29.3%)을 설치하고 규정하여, 延邊自治州 발전과 자주적 경제건설, 재정관리에 유리한 정책과 조치를 제기하고, 延邊自治州의 경제발전을 촉진시켰다. 그러나 현재 중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실시하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전의 몇몇 규정들은 이미 시대의 발전보다 낙후되어 있어 열거하지 않는다.
종합하면, 延邊朝鮮族인민은 민족구역자치실행을 통하여 자기 지역과 자기민족 내부사무를 자주적으로 관리하는 자치권리를 향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48년간의 노력으로 이러한 권리를 충분히 행사하고 있으며 朝鮮族을 크게 발전시켰고 朝鮮族의 민족자치적 지위를 빛내고 공고화시켰다.
3. 延邊朝鮮族自治州는 민족구역자치하에서 신속하게 발전하였다
延邊朝鮮族과 延邊朝鮮族自治州의 48년간의 발전은 중국민족구역자치 등의 중국공산당 민족정책의 지도와 인도하에 발전된 것이며 이미 휘황찬란한 성과를 얻었다. 여기서 몇가지 예를 들어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옌볜의 종합경제실력이 증강되었고 인민생활수준이 눈에 띄게 제고되었다. 1998년 옌볜국내 총생산가치는 114.6억 위안으로 1978년의 3.7배이며 년평균 8.1% 증가하였다. 1인당 평균 총생산가치는 5,247 위안으로 1978년(461 위안)의 11.4배이며, 년평균 14.2% 증가하였다. 1998년 自治州 재정수입은 14억 위안으로 1978년의 14.3배이며 년평균 14.2% 성장하였다. 1998년 전체 自治州 농업, 임업, 목축업, 어업의 총생산가치는 27.4억 위안으로 1978년의 1.2배이며 년평균 4% 성장하였다. 경제총량에서 제 1, 2, 3차 산업의 부가가치비례관계는 1978년의 28.2 : 47.8 : 24.0에서 1998년 15.0 : 43.7 : 41.3 으로 변화되어 경제구조가 더한층 합리화되었다. 1998년 전 自治州 직공(職工) 년평균 임금은 4,710 위안으로 1978년의 6.2배이며 년평균 10.4%가 성장하였다. 1998년 농촌주민저축액은 141.6억 위안으로 1978년의 252배이며 년평균 31.9%가 성장하였다. 일인당 저축액은 6,484 위안으로 1978년의 202배이며 년평균 30.4%가 성장하였다. 1998년의 전 自治州 도시주민 일인당평균주택면적은 8.7평방미터이다16).
延邊朝鮮族自治州의 각종 사회사업이 날로 번영하였다. 전 自治州에 현재 1,035개의 학력교육기구가 있으며 재학생이 37.7만명이다. 옌볜의 5개 대학이 하나로 합병된 延邊大學은 이미 검수를 거쳐 “21세기 중국 100개 대학”의 대열에 진입하였으며 현재 학부생 8,461명, 석사과정 398명, 박사과정 130명이 있다. 自治州 전체의 고등전문학교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전국평균수준을 크게 웃돌고 있다. 自治州 전체에 9개의 방송국과 8개의 텔레비젼 방송국, 9개의 유선텔레비젼 방송국이 있다. 방송과 텔레비젼의 보급률은 각각 99.7%와 95.8%로 전국평균수준을 초과하였다. 1998년 전 自治州의 의료보건기구는 253개소로 9,630개의 병상으로 1천명당 4.4개 병상을 갖추어 전국평균수준을 초과하였다. 현재 전 州의 의료인은 1.6만명이며, 그 중 의료 기술자는 1.3만명으로 1천명당 5.8명이고 천명당 의사수는 2.4명으로 모두 전국에서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17). 전 自治州의 체육사업은 특히 축구에서 큰 발전이 있어 갑A리그에 속해있다. 조선어 문자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번역과 연구기구가 증가 하고 있다.
그 외에도 延邊朝鮮族 自治州내 민족관계의 화목한 발전으로 自治州가 1994년 9월과 1999년 9월 두 차례에 걸쳐 국무원이 명명한 “民族團結進步模範自治州”가 되었다. 옌볜은 전국에서 첫 번째로 이러한 영예를 안은 自治州가 되었다.
종합하면, 48년동안 延邊自治州는 천지개벽의 변화가 있었으며, 공인된 위대한 성과를 올렸다. 21세기에는 그 발전이 분명히 더욱 더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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