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교회와 다문화 사역
부족한‘다문화 사역’
선교학 전문가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른 문화의 장벽(언어, 사회계급, 종족)이 없는 상황에서 가장 쉽게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교회는‘문화의 장벽을 넘어서’전도대상자의 문화 속으로 들어가 진리의 복음을‘지역화’하여 전도대상자들이 자신의 언어로서, 자신이 가장 익숙한 생활습관과 환경 아래,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고 그를 경배하며 그의 제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도 이전에는‘아직 얻지 못한 백성’이었다.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계속해서 먼 곳을 향해, 땅 끝까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다문화 사역’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를‘문화를 넘어, 말씀이 변하여 육신이 되게’하시고 복음을 전해서 우리 이 죄인들을 구원하신다. (빌2:5~11) 교회는 주 예수께 이끌림을 받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다문화 사역’은 바로‘대 사명’을 주신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다.(마28:18-20)
전체적으로 볼 때, 중국교회가 이러한 문제를 아직 제대로 직면하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문화방면의 요인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는 중국교회가‘중국문화’의 부정적인 삼중 장벽을 뛰어넘어야만 하나님의 대 사명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여‘다문화 사역’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나라와 민족,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하신 것은 그를 소극적인(우상, 특히 달을 섬기는) 문화로부터 분별해 내시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떠남’이 어떤 문화의 부정적 영향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가에 대한 가부는 잠시 거론하지 않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축복의 허락을‘분리해 나오는’시점 이후에 두셨다는 것이고, 이것은 허락을 얻는 조건을 의미하며, 문화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데 중요한 영향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것은 소극적인 문화가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응답을 제지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본문은 중국문화 가운데‘다문화 사역’을 가로막는 세 가지 방해요소를 간단하게 논하면서 우리의 경각심을 높이고 교회의 사고의 틀을 새롭게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에게 자국의 문화를 반대하라거나 신자들에게‘가출’해서, 아직 미 전도된 사회와 불신자 가족을 떠나라는 것이 아니다.
소극적인 사고의 틀
최근 중국교회에는‘중국교회가 강해진 후 다문화 사역에 대해서 논하자’는 생각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의 틀은 대부분의 중국교회를 소극적으로 만들어 대 사명의 원동력과 창의력을 잃게 하고, 자기 자신의‘본집과 고향’의 필요만을 볼 뿐, 세계선교에 대해 일말의 부담도 느끼지 않게 한다.
이러한 소극적인사고의 틀을 형성하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중국교회가 최근 자신을 늘지원 받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역사적인 사실들이 20세기 초(1900년대)의 중국교회가 이미‘다문화’의 비전과 행동을 보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지만, 한 동안 어려움과 가난한 환경 속에서 몸부림의 시간을 보낸 중국교회는 근래 개방이후 외부세계와의 접촉에서 대부분‘베품을 입고’있다.
15년 전 선배들을 따라 중국에 와서 섬길 때, 선배들이 늘“경솔하게 금전상의 지원을 함부로 해서 그들을 모욕하지 마라. 우리가 그들의 동역자임과 협력자임을 시시로 반성하라.”고 일깨워주신 일이 생각난다. 그러나 최근 중국내지에서 교재용 책들을 소개할 때, 분명히 재정 조건이 상당히 좋은 교회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정적 지원을 바라는 교회를 보았다. 이러한 사고의 틀의 형성은 누구의 책임인가?
중국교회가 강성한 후에 다문화 사역을 논하자는 것에 대한 또 다른 난제는 강성에 대한 기준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강성한 것인가?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념이 비록 상식적이라고 해도 꼭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가 하는 것이다.
시작부터 단번에 땅 끝까지 진군할 수는 없지만 교회의 리더는 교회의 일에 대해 건강한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교회 사역의 범위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땅 끝까지이다. 7,8년 전 필자는 한 교회가 개척한지 1년도 되지 않아 두세 가정밖에 없을 때인데도‘다문화 사역’계획을 실행하여 매달 한 차례 회의를 개최하고, 인근 도시와 농촌에 가서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건축을 준비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마게도니아 여러 교회의 예를 모방하여 정기적으로 해외의 몇몇 국가 미전도 종족의 복음사역을 위해 헌금하였는데 그들은 경제력이 강성해질 때를 기다려서 헌금한 것이 아니다.(고전 8:1-5) 이 적은 무리는, 비록 개척교회로 사람들이 수가 적고, 경제력도 약하지만 그것은 성경 속의 교회의 기본적인 모델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주의해서 보면 연해지역의 일부 교회들이 이미 하나님께 분명한 응답을 올려 드리는 일을 미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내륙의 개혁개방이 가속화됨에 따라 광둥(廣東), 원저우(溫州) 및 여러 해안도시, 혹은 제 2도시 등 비교적 개방적인 지역의 교회들은 지난 십년동안 이미 국내외 유명한 설교자들의 설교를 대부분 들었다. 세계 각국의 전문적인 설교와 상세한 견해, 그리고 교회영적 성장과 인재가 많다는 것 등. 그러나 단지 아주 적은 수의 교회만이‘다문화 사역’의 비전을 발견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다문화 사역에 대한 올바른 이해
교만과 자긍은 중국 민족의 특징이다. 필자는 한 다원문화의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따라서 항상 모순된 심리가 생성되고, 피 속에 흐르는 어찌할 수 없는 그것을 뼈 속 깊이 체득했다.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비교적 낙후한 이(異)민족문화를 경시하게 된다.(때문에 가책을 느끼고 성령의 질책을 받는다) 그러나 자신보다 강한 민족을 마주할 때는 또 강한 자괴감을 느낀다.(때문에 질투하고 비평하고, 아첨을 하게 된다) 내륙지역의 소수민족과 영적 파산 위기에 처한 서방국가들(비록 다른 면에서 중국보다 우수하지만) 모두 중국교회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각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반드시 새로운 시대의 도전을 마주해야 한다. 만약 복음전도를 다음세대의 임무로 제대로 전하지 못하면, 복음의 옥토는 일순간 한 조각‘새로운’복음 황무지로 침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 예수께서 교회에 주신‘대 사명’(마 28: 18-20)은 우리에게 만민으로 하여금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라고 하신 명령이다. 창세기 10장의 70개 국가와 민족은, 오늘날 이미 칠천종의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으로 발전하였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문화의 요인, 즉, 지리(하나의 민족이 세계 각 지역으로 흩어질 수 있는데 화교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사회(하나의 민족을 다른 계급으로 나눌 수 있다), 종교 등을 고려하면 현재 16,000개 민족이 있고, 그중 6,900개 민족이‘아직 얻지 못한 민족’인 미전도 종족이다. 그리고 중국‘본고장’의‘미전도 백성’과‘숨겨진 무리’가 있다. 어떤 연구에서는 중국대륙의 12억 한족을 방언구역으로 나누면 33종 이상의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였다.
한족 이외에, 457개 민족(정부가 인정한 것은 55종족 뿐이지만)을 포함한 소수민족이 있다. 그리고 반세기의 복음사역으로 복음이 농촌으로 신속하게 전파되었지만, 현대 도시화 붐이 가져온 고도의 인구이동은 도시복음화 사역을 다음 반세기 최대 도전이 되게 하였다. 그러나 우선 제대로 해야 할 당면 과제는 전체사회에서 신속하게 변하는 복잡한‘문화단층’이 만들어낸‘숨겨진 민족들’을 연구하는 일이다.
‘다문화 사역’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이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은 중국교회는 ‘본 민족을 떠나’,‘한족화에 의한’,‘중국인 통일’이 아닌, 다민족 중국을 직시하고 하나님의 눈으로‘이민족’을 바라보고,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자립과 연합
필자가 당시 전임사역자로 헌신할 때를 되돌아보니 노모께서는 비록 주님의 자녀가 되신지 오래된 경건한 신자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장자인 내가 마음을 돌리기를 바라셨다. 이것저것 고려하시는 듯이 말씀하셨고 또 말을 빙 돌리시면서 나에게 전임사역자가 되지 말라고 권하셨다. 그러나 우리 전 가족의 의지가 굳건한 것을 보시고는 어머니는 마음을 바꾸시고 나를 격려하셨다.“너는 배운 사람이니 어서 책 몇 권을 써서 이름을 세상에 알리거라. 그리고 스스로 선교기관을 세워 단독으로 이 부분에서 최고가 되어 부모에게 효도 하거라.” 노부와 노모의 부창부수하는 당부말씀이 곧 내 혈액속의 중화문화를 겨냥하고, 명중시켜 마음이 흥분되어 곧 그렇게 하고 싶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인이다.
현 교회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화제는‘대 사명을 합일하여 실현’하는 비전일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 중국교회에서 단체합일의 호각을 불고 계시며 중국교회와 전 세계 화교 기독교인들의 합일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필자는 가장 먼저 전선에 서야할 내륙 연합팀이 합일운동을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반대하거나 냉정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비전 자체의 문제이거나 타 단체의 실행 스타일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들 반대하는 이유는 단지‘서로 순복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며‘우리’가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친히 받거나‘우리’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면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사실‘당을 짓는 영’이 연합을 방해하는 것이다.
중국교회는 자신들의 문화 약점을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의 중국교회 안에 부르심을 받고 은혜의 기름부음 받은 자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그는 반드시‘아비의 집을 떠나야 한다.’ 중국인은 뿌리 깊은 파벌문화에서 벗어나야만 좀 더 일찍 만민의 축복이 될 수 있는 희망이 있다.
결론
창세기 12장 4절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응답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아브람은 여호와의 분부대로 떠났다. 그는 믿음으로 떠난 것이다. 비록 잠시 갈 바를 모르기도 했지만 목적지에 이르자 하나님께서‘도착했다’고 말씀하셨다. 믿음의 자녀들도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국가, 민족, 부모를 떠나라고 한 것은, 그렇게 해야만 소극적인 문화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님을 사랑하는 수많은 중국 성도들도 반드시 이러해야 한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이 따라할 필요는 없다. 어찌되었든 중국교회는 반드시 자기문화의 소극적인 면을 인식하고 용감하게 성경의 진리와 성령에 의지하여 문화를 뛰어 넘어 믿음으로 가장 훌륭한 중국 기독교 문화를 후대에 전해, 역사적인 악순환을 타파해야한다. 우리는 이를 위한 대가를 지불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희생’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고 우리와‘교제’하시기를 바라신다.
교회 원로지도자의 지휘에 순복하자. 순종과 믿음만이 중국교회가 하나님의‘다문화 사역’을 받아 만민으로 하여금 우리로 인하여 아브라함의 축복을 입게 할 수 있다.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대로 최대한 문화의 벽을 넘어 주님과 함께 땅 끝까지 달려가 진리의 복음을 온 세계위에 전하기를 바란다.
출처 / www.ccchina.org
번역 / 성결대학교 중국어성경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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