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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태인들이 예수를 못믿는 이유-십자가-

수호천사1 2008. 11. 12. 22:57

♥유태인들이 예수를 못믿는 이유-십자가-

글//호일맥

 

[본문]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함으로 네가 그를죽여 나무위에 달거든 그시체를 나무위에 밤새 두지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여호와께서 네게주시는 거업의 땅을 더럽히지말라 나무에 달린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명기 21장22-23]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 이니라."
동서양에서 사람들을 나무에 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국가를 크게 더럽히고 어지럽힌 사람들, 민란이나 국란을 일으켰던 사람들의 목을 베어 효수를 했습니다. 목을 장대에 높이 꽂아서 못되고 나쁜 놈, 저주받을 사람의 상징으로 매달아놓았습니다.

 

'이런 사람의 삶을 따라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효수(梟首) 라는 것은 목만 베서 메달아 놓는 것이고 효시(梟示)는 사람을 곤장으로 쳐서 죽으면 목을 베지 않고 그 사람 목을 맨 채 나무에 달아 오가는 사람들로 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요근래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러다가 개화기 임오군란, 갑오경장 때 젊은 청년들이 법을 고치면서 어떤 경우에도 그냥 목을 매달아 교수대처형 하는 것 이상은 안된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렇게해서 지금은 사람 목을 매다는 경우가 없습니다. 이러하듯, 나무에 높이 달려있는 시신을 보면 저것은 저주다, 저 인생은 저주받은 인생이다라는 사실을 동서양의 모든 국가가 동일하게 알았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나무에 달려 죽이는 것이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고 오랜 역사속에 이루어졌기에 나무에 달린자는 저주를 받았다고 하여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않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율법을 범하면 돌로 쳐서 죽이고 그 다음, 하나님의 진노 받기에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목을 매달아서 나무에 달아놨습니다. 그의 일그러진 몰골을 보면서 "하나님의 저주가 마땅히 이 사람에게 임했지 않느냐? 이를 본으로 여겨 죄를 미워하고 주의 율법을 따라야한다." 고 가르쳤습니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로 나무에 달린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라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보고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다음은 성경구절 입니다.

 

성경의 근거(구약) 중동지역에서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은 가장 저주를 받는 것이다.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21:22-23]

 

★그가 또 아이 왕을 저녁 때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질 때에 명하여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그것이 오늘까지 있더라[수 8:29]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 죽여 다섯 나무에 매어 달고 석양까지 나무에 달린대로 두었다가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하매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리어 그들의 숨었던 굴에 들여 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수 10:26-27]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 지킨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아하수에로왕을 원한하여 모살하려 하거늘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고하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고한지라 사실하여 실정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의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니라 [에스더 2: 21-23]

 

★ 왕을 모신 내시 중에 하르보나가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고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가로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모르드개를 달고자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 [에스더 10:9-10]

 

 성경의 근거(신약)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행5:30-31]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행10:39]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행13:28-3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3:13-14]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벧전2:22-25]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다[고전1: 23]

 

 수난(Passion) 멸시,조롱,수치,침뱉음,
로마에서는 죽고 난 다음 목을 베어 매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나무에 사람을 매다는 무지무지한 십자가라는 사형대가 있었습니다. 원래 이 십자가는 카르타고에서 민족 반역자를 죽이는데 사용 한 사형도구입니다. 기본 개념은 "이 사람은 땅에 묻힐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시체라도 누워 있어서는 안될 못된 놈이다."라는 의미입니다. 대개 십자가에 못을 박을 때 손바닥에 못을 치지 않습니다. 손바닥에 못을 치면 사람의 체중에 의해서 찢겨 버리든지 빠진답니다. 그래서 손 뼈가 모두 모여 있는 팔목에 못을 칩니다. 만져보면 못을 칠만한 자리가 있어요. 그런데 그것 도 사람을 그냥 오징어 말리듯이 팔, 다리를 쫙 펴서 못을 박아놓으면 평균적으로 힘이 분산되기 때문에 고통이 덜 하답니다. 이것을 느슨하게 쳐놓으니까 손에 힘을 주면 발에 힘을 줄 수 없고 발에 힘을 주면 손에 힘을 줄 수 없어서 의식이 있는 동안에는 이리 꿈틀 저리 꿈틀... 너무 아파서 기절했다가 또 의식이 돌아오면 꿈틀꿈틀 거립니다. 며칠이고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그대로 놔 두었습니다. 심지어는 15일까지 살아있는 사람도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점령한 다음, 이 이상한 사형 제도를 자기 나라에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정했습니다. '아무리 극악무도해도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십자가에 죽을 수 없다.' 그래서 시세로의 글을 보면 '십자가라는 것은 치욕이고, 십자가는 저주고, 십자가 는 형벌이고, 십자가는 패배이고, 십자가는 어둠이다. 십자가 문양은 로마 사람들과 영원히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죄를 지었는데도 로마 시민권자인 사도 바울은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지금도 사도 바울이 참수당했다는 예배당이 로마에 있습니다. 그 목이 떨어져서 네 번인가 다섯번 굴렀다는데 굴러 떨어지는 곳마다 표식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일으키는 예배당이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 시민권을 갖지 못했던 사도 베드로는 그 극악무도한 십자가 형틀을 확정받습니다.

 

그는 사형 집행인에게 말합니다.
"나 같은 못된 놈이 어찌 우리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죽을 수 있습니까? 거꾸로 십자가를 매달아 주세요." 그래서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그 동생 안드레는 십자가에 못박힐 때 사형 집행인에게 "나도 감히 우리 주님처럼 그 영광의 십자가에 달릴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인생으로 주님 모습을 흉내 낼 수 있나요? 십자가를 엇비슷하게 뉘어주세요." 그래서 X 자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X자 십자가를 St. Andrew's Cross라고 이야기합니다. 안드레의 십자가! 여러분, 그 십자가에 우리 주님이 달리셨습니다.

 

초대교회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이 십자가는 사실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십자가를 목에도 매고 사방에서 보니까 그렇지, 사형 집행 틀 중에서 어떤 사형대를 자기 종교의 심볼로 삼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디 그런 상상이 있을 수 가 있을까요? 그래서 이 십자가가 어떤 사람에게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패배와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 못이 박혔단 말입니다. 수난은 잠깐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에게 당한 수치는 사람으로도 잊을 수 있을까요?? 님은 용서 하실 수 있나요?

 

그런데 그 저주는 그냥 저주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니라." 즉, '나무 아래 있는 자는 저주를 받는자다, 주께서 저주를 받으셨다, 그 저주는 그냥 저주가 아니다, 십자가는 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신 틀이다.'는 것 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러 올라가실 때 로마 군인들의 무서운 채찍이 그의 등을 할퀴었습니다.

자료 영화보기-패션오브 크라이스트*한국어자막

 

살점이 튀고 피로 얼룩진것 가시관과 손과 발과 옆구리에 창에 찔려 흘리신 피가 나와 여러분의 죄를 사해주기 위해 대신 당한 고통인것을 아시나요? 머리에 가시관은 사람이 생각으로 짓는 죄. 손은 사람이 손으로 짓는 죄, 발은 내가 다니면서 머물렸던 곳에 지었던 죄. 옆구리는 심장 즉 마음으로 짓는 여러분의 죄를 다 사해주기 위해 당한 고난인것을 아시는지요? 영화를 보면서 정말 참혹하다고 여겼지요? 예수님이 당한 그 고통은 우리 자신들이 당해야 할 고통을 대신 지신 것임을 아는지요?

 

이사야 53장 4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위 글 우리라는 단어에 여러분의 이름을 넣고 다시 한번 읽어 보세요 이사야 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는 증거가 자신의 아들 독생자를 이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고 한사람도 멸망치 않고 천국에 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죄를 지으면 판사의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가서 죄의 댓가를 다 지불하면 출소하지요. 그와같이 예수님의 부활은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고  죄의 댓가를 다 지불하셨다는 증표입니다. " 내가 다 심판을 받았으니 이제부터 너희들은 의인이다." 하시려고 우리들의 죄값을 다 갚아 주신것을 증명해 주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앞에 죄인인 우리가 달려야 할 십자가인데 나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짊어져 예수님은 하나님앞에 죄인이 되었습니다. 신명기21:23 나무에 달린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하신 말씀처럼 주님은 대신 저주 받았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주께서 십자가에서 못이 박혔습니다. 손과 발에 찔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 위의 가시관이 힘껏 눌려서 가시 끝이 박힌 곳에 피가 주르르 흘렀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 이라."

그런데 왜 하필이면 십자가에서 달려야 했을까요?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몸부림치고 바르게 하려고 하면 할 수록 내게 하나님의 저주 밖에 없다고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의 죄를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해결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처치하는 완전한 방법을 고안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완성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십자가를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저주의 시행처라고 믿으면 내 저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저주로 옮겨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시면서 내 모든 저주가 그 십자가에서 시행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저주는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 받은바 되사..." 입니다. 죄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저주 받을 이유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저주를 대신 지실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 분이 죄인 이어서 자기 저주를 자신이 받을 인생이었다면 그는 자기 저주를 자기가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흠 없는 분으로 저주와 상관없는 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1장 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이 말을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이제부터 나를 믿는데서 그리스도를,주님을 믿는 마음으로 그 믿음의 대상이 바뀌어져야 됩니다.

 

하나님 아들로써 멸시와 조롱과 침뱉은과 옷을 벗기고, 머리를 때리고 흔들었고...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참으신 예수님이십니다.심지어는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셨고,  강도에게 까지 조롱을 당하사며,하나님 아버지께도 버림을 당하셔서 "엘리 엘리 나박다니"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외치시던 예수님이 십니다.유태인은 예수님이 나무에 달려 죽은 것과 하나님께 버림을 당한 자는 메세야가 될 수없다고 믿지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예수님이 나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구세주이심을 고백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멘, 아니요? 둘중에 하나를 하셔야 할 시간입니다....扈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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