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 발견하기 (2)
조선족을
중국의 인민이 되게 하심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앞 장에서 필자는 지금부터 약 10여년 전에 중국과 러시아 등 북방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고백을 썼다. 약 120여 전에 그 땅에 이주하여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한민족들을 만나고 느낀 소감이었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살아가는 한민족들을 만나면서 한민족을 향하신 하나님이 뜻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기회가 되었음을 고백한 글이었다.
여행에서 돌아 온 후로 여러해를 무관심하게 지냈었다. 여행에서 느꼈던 충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져가고 있었기에 그렇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부단히 필자의 마음에 강한 부담감을 주셨다. 이를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며 애써 부정하면 할수록 그 부담감은 나날이 더욱 심해져 가는 그런 상황이었다. 끝내는 부담감에 굴복하며 깊이 상고하였다. 주님은 놀라운 깨달음으로 필자의 굴복하심에 대한 응답을 허락해 주셨다. 점점 한국교회의 부흥과 중국의 조선족이 뿌리를 내리게 된 지난 120년의 역사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이 선명하게 깨달아지기 시작했음이었다.
한반도에 살고 있던 한민족들이 중국으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한 때는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게 된 시기와 거의 동일한 시기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라는 미국인 선교사들이 지금의 인천인 제물포로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선교초기는 한민족들이 중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때와 거의 동시대의 일이었음이다.
사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으로 전래되기 시작한 것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를 통해 한반도 땅을 밟기 훨씬 이전에 있었다. 유럽에서 일본과 중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이 직, 간접적으로 조선선교에 참여하였으며, 그들에 의해 조선선교의 씨앗은 이 땅에 뿌려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조선선교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오랜날동안 그들에 의해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움을 티우지 못했었다. 따라서 조선선교가 싹이 트면서 자라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것은 후에 미국인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오면서였다. 이 때부터 조선선교는 새롭게 시작되었고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면서 한국교회는 크게 부흥하고 성장되는 기적이 일어났음이었다.
한국에서 시작된 선교적 역사가 유럽에서 일본과 중국에 파송한 선교사들에 의해 성장하지 않고, 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에 정착되면서 성장됨도 심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하여는 이 글에서는 별로 중요하다고 할 수 없어 다음의 기회를 생각하기로 하며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하나 중요한 것은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선교가 시작된 시기와 한반도를 떠나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족들의 이주시기가 거의 동일시대에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의 본격적인 선교의 개시와 한민족의 중국이주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던 두가지 사건이 동일시대에 이루어진 것은 결코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 두 사건은 서로 연결될만한 고리가 있으리라고 여겨졌다. 따라서 이 두가지 동일시대에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깊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 일을 깊이 상고하면서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창조 이래로 인류의 역사를 운행하신 하나님의 일관된 방향적 섭리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이었다. 더 나아가 이 사건은 한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숨겨진 놀라운 섭리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왜 하나님은 이들을 남의 나라에 이주시켜 그 나라 백성이 되게 하셨을까?" "왜 이들은 오랜 세월을 이방의 땅에서 살면서 우리 말과 글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일까?" 라는 궁굼증이 하나 둘 풀리기 시작했다. 앞 장에서 썼던 이야기처럼 그 궁굼증은 결코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아니었다. 21세기에 한민족이 [서쪽]을 향하여 복음이 증거되어져야 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일이었음을 발견하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복음화가 유럽에서 파송했던 재중, 재일본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미국에서 파송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졌음의 비밀도 풀려지고 있었다. 참으로 [서쪽]을 항한 복음의 땅끝까지 전달되는 과정에 한반도가 아주 중요한 입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랬다. 앞서 말한 동일 시대에 이루어진 두 가지 사건은 하나님의 한민족을 향한 기대하심이 무엇이었는지 여실하게 드러나는 사건이었음을 발견하였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서쪽]을 향한 복음의 땅끝까지 전달되는 과정에서 한민족에 증거된 복음은,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 한국을 통하여 계속 [서쪽]을 향한 복음의 증거가 진행되기 위해 준비됨이었다.
한민족의 중국 이주가 시작되면서 중국에 이주된 한민족들은 본국이라고 할 수 있는 한반도에 남아 있는 동족들과는 오랜세월동안 격리된채 살아 왔다. 어찌보면 국제적으로 양비론에 빠졌던 시대에 동족이 함께 할 수 없었던 정치적인 이념이 만들어 낸 희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은 그것도 아니었다. 철저하게 계산된 하나님의 섭리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교회를 놀랍게 부흥시켜 성장케 하신 것과도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음이었다. 그랬다. 이는 분명한 일이었다. 중국과 러시아, 특히 중국에 조선족을 이주시키심과 한국교회의 엄청난 부흥에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특별한 사명을 위해 준비된 사건으로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하나님은 한민족으로 하여금 한편으로는 신앙적인 놀라운 부흥과 교회의 성장을 가져오게 하셨다.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오랜 세월을 이방에서 살아가며 철저한 이방인이 되게 하셨다. 이 두가지는 하나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분명한 어떤 이유가 있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일이었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었다.
물론 필자의 이러한 깨달음이 불변의 진리가 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는 주장할 수 없다. 이러한 깨달음은 필자의 주관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는 일이며, 사람의 깨달음을 완성도가 높은 깨달음이라고 장담하는 일은 매우 위험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관장하여 운행하신 관점으로 보아 필자의 깨달음은 "필연적"이라고 믿어졌다.
우리가 중국에서 만나는 조선족들은 분명히 중국인들이다. 그들이 비록 우리와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하고 있고, 그들과 우리의 조상이 같은 한민족임도 분명하지만, 그들은 틀림없는 중국의 56개 소수민족 중에 한 민족임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 사실이 진짜인지 궁굼하거든 중국의 거리에서 만나는 조선족들을 붙잡고 그들에게 "당신의 조국은 어디입니까?"라고 물어보라. 그들로부터 무슨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아주 작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나의 조국은 중국이다"라고 대답하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참으로 그들은 중국인이며, 그들의 조국은 분명히 중국임이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국을 '조국'이라고 할 수 없듯이 조선족 또한 '대한민국'을 조국이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임을 또한 받아드려라.
본래 한반도에 거주해야 했던 조선족들은 중국이라는 큰 땅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서서히 중국인으로 바뀌었음이다. 그들이 스스로 중국이 좋아서 중국인이 되길 선택한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필연적인 삶의 여건이 그들을 중국인으로 바뀌게 만들었음이다. 한반도와의 오랜 단절과 이 땅에서 일어난 수 많은 정치적, 사회적 소용돌이로 하여금 그들이 중국인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이유는 사회학의 관점에서 볼 때 그렇다고 할지 모른다. 허나 진짜 이유는 하나님께서 한민족을 향한 큰 섭리가 있기에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하심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런 깨달음은 필자 스스로에게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조선족들은 한 때 한반도를 떠나 중국에서 살기 시작했던 초기에 일정한 국적을 가지지 못한 떠돌이 집단에 불과한적이 있었다. 그들은 그 일로 인해 곤고한 삶을 보냈던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동북삼성에서 뿌리를 내리며 점점 안정된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 나라에 정치적인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가 이 땅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공산주의 국가로서 오늘의 중국이 건국되기 시작할 초기에 조서족들은 대거 동참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조선족은 중국의 중요한 56개 민족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그들은 스스로 중국인으로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다른 소수민족들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점들이 많다. 먼저 그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부터 다르거니와 또 다른 면에서는 중국의 핵심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 한족과의 친화적인 차원에서도 다른 소수민족들보다 진보적인 경향이 있다. 따라서 중국에서의 조선족이 차지하는 위상은 다른 소수민족들에 비해 높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의 생활수준도 다른 소수민족들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편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건 역시 우연이라거나 조선족들이 스스로 일궈내어 수확한 열매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적극적인 간섭하심이었고, 이렇게 간섭하심의 놀라운 비밀이 감추어져 있음이었다.
중국 속의 조선족은 120여년 전에 이주한 세대를 이민 1세대로 시작하여 그 자손들이 이미 5세대에 이르기까지 전파되었다. 한 세대는 보편적으로 30년으로 구분한다. 따라서 극히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 중국정부가 수립되기 직전에 이민한 소수의 조선족을 제외하고는 이민 1세대는 대부분 별세하였다. 중국정부가 수립되기 직전에 이민한 소수의 1세대들도 이미 70대 후반의 고령자가 되어 극소수만 생존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민1.5세대로 분류될 유아기에 중국으로 이민온 소수의 고령자들이나 이 땅에서 태어나 이민 2세대로 분류될 이들도 대부분 60세 이상의 노인들로 조선족 사회의 어른들이 되어 있다. 그리고 장년세대라고 할 수 있는 4,50대의 조선족들은 이민 3세대로 분류할 수 있으며, 30대 이하의 젊은세대는 이민 4세대미여, 10대의 청소년과 어린이들 중에서 서서히 이민 5세대들의 출현이 많아지고 있음이 작금의 조선족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족들의 정서적인 성향이나 기질의 형태도 각 계층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보편적으로 이민 1세대에서는 한반도인의 정서를 많이 간직하고 있어 그들의 기질에서도 한반도인의 실체가 그대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100분률로 나타낼 경우 한반도인의 정서와 기질을 90% 이상 가지고 있다고 하면 어떨까? 또한 이민 2세대에 이르러서는 그들에게 중국인의 정서와 기질이 조금씩 이입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서는 한반도인의 정서와 기질이 70% 정도 남아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따라서 그들에게서도 우리와 같은 성징을 발견하기란 결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민 3세대에 이르면 경우는 현저하게 달라진다. 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한반도인의 정서와 기질은 50% 미만으로 떨어져 나타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정은 이민 4세대에 이르면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어쩌면 그들에게서는 한반도인의 정서와 기질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함이 옳으리라. 그들의 극히 일부에게서 한반도인의 정서와 기질을 30% 가 못되게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이민 4세대가 그러하다면 이민 5세대로 분류되는 청소년들이나 어린이에게 한반도인의 정서와 기질을 찾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그들은 어쩌면 100% 중국인으로 변화된 전혀 우리와 다른 한민족이 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선족을 이렇게 분류하는 필자의 견해가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를 학문적으로 깊이 연구해 본 바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해동안 중국을 여행하면서 많은 조선족들을 만나 교제하며 피부로 느낀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적중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물론 같은 조선족일지라도 그들이 어느 지역 출신인가에 따라 다소 나타나는 양상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들의 출신지가 조선족 집거지역인지, 산거지역인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출신지역이 집거지 출신이라면 그렇지 않은 산거지역의 출신 보다 한반도인의 정서와 기질이 다소 높을 수 있다.
어떤 매체에서 어떤 이가 아주 재미있게 표현한 글을 읽은적이 있다. 그는 한국과 중국이 스포츠경기를 할 때 중국의 조선족들에 "어느 편이 이기기를 원하는가?"라고 묻는다면 '1~3세대는 한국이 이기기를 바라고, 4세대는 한국이 이기기를 바라는 사람과 중국이 이기기를 바라는 사람이 반반이며, 5세대는 100% 중국이 이기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를 필자는 그는 한국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필자는 1~2세대는 한국이 이기기를 바랄지 모르나 3세대의 경우만 해도 중국이 이기기 바라는 세력이 절대 우세할 것이며, 4세대 이후로는 절대적으로 중국이 이기기를 바란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여긴다고 쓰고 있었다.
맞는 이야기이다. 사람은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창조된 존재이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처한 환경에 잘 적응하며 살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중국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들의 정서와 기질이 한반도인의 정서와 기질에서 중국인의 정서와 기질로 이미 100% 바뀌었거나 앞으로 서서히 바뀔 것은 분명하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기다리심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민족을 통해 20세기가 끝나면서, 더 나아가 21세기가 시작되면서 큰 계획을 이루시고자 하심이 있으셨다. 그 계획은 아주 중요한 것이며, 필연적인 것이었기에 한국에 복음이 전해지던 동시대부터 조선족을 중국에 이주시키셔서 그들이 중국인으로 변화하기까지 기다리며 지켜와 주셨음이었다. 이 사시에 대하여 한국교회와 조선족 사회는 스스로 깨달았어야 했다. 참으로 하나님의 섬세하신 구속사적 역사의 운행하심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했었다.
1990년 대 초까지 중국과 우리나라는 정치적인 이념이 장막으로 높이 가려진채 교류할 수 없었다. 그들과 교류가 단절되었던 지난 반세기 동안도 하나님의 섬세하신 섭리의 간섭이셨음을 깨달아야 했었다. 중국과 적성국이 되어 서로가 상종할 수 없었던 단절된 세월들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한국과 중국에서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음이었다. 그러나 때가 이른즉 하나님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국교가 정상화시켜 주셨다. 오랫동안 적성국으로 상종하지 않았던 중국과 상종하게 되었고, 그들과의 상종은 또한 조선족과 한인들의 만남을 이루어 주셨다. 그 만남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아주 중요한 만남이어야 했었다.
오랫동안 하나님은 한국교회에 교회사적으로 유례없는 대부흥을 가져오게 하심으로 한국교회를 훈련시키셨고, 영적으로 풍성하게 채워주심으로 미래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영력을 키워주셨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족들로 하여금 중국에서 살면서 철저하게 중국인으로 변화되게 하셨다. 그러면서도 한인들과 통할 수 있는 말과 글을 잃지 않고 간직하게 하셨었다. 현대적인 한반도인의 정서와 기질의 변화는 필연적인 것이었지만, 한민족의 고유한 옛정서와 기질은 순수하게 보존시켜 주셨다. 이는 분명히 하나님의 큰 뜻이 숨어 있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뜻을 이루시고자 중국과 우리나라의 관계를 정상화시켜 수교하게 하심이었다.
베이징에서
石一進 씀
20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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