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교회와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중국 근대 기독교선교는 서구 열강들의 중국침략과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침략자들의 군함을 타고, 전쟁과 “불평등조약”을 통해서, 닫혀있던 중국선교의 문을 열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한국의 기독교 선교 경험과는 많이 다릅니다. 한국에서의 기독교는 태동 때부터 일본의 침략세력과 대립하면서 “민족교회”로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중국 기독교는 서양의 침략세력과 선교사들을 같은 세력으로 생각하여 “서양종교”로 배타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동안 기독교는 중국인들 마음속에 “열등감과 모욕감과 배신감”으로 다가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에는 당시에 이런 말이 유행했습니다. “中国多一个基督徒,就少一个中国人”(중국에서 기독교인이 하나 불어자면, 중국인이 하나 적어진다.)
그러다가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기독교는 아편으"로 취급받게 되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한국에 6. 25전쟁이 일어나면서, 중국에서는 反美를 최우선 정책으로 택하였기에,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갖던 중국기독교에게 닥칠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그때 중국 국내에 체류중이던 수천 명의 선교사들은 추방되었고, 국내 많은 성직자들과 기독교인들은 해외로 이주나가게 되었습니다. 해외 기독교인들은 예언하기를 “중국기독교를 이젠 역사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게 될 것이라”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면서, 80년부터 중국교회를 하나 둘 open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구름 떼같이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중국교회가 아직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살아 있은 정도가 아니라, 더 강하고 생명력 있는 중국교회로 재탄생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여러가지 투쟁운동에서 살아남은 교회”였습니다. 그야말로 현재 중국기독교는 중국 역사상 가장 빛나는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양적성장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사회에서 기독교가 갖는 이미지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청화대 부총장을 지닌바 있는 賀美英 교수는, “中国多一个基督徒,就多一个优秀市民。”(“중국에 기독교인이 하나 불어나면, 우수시민이 하나 더 많아진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이는 중국 지성인의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평가라고 여겨지며,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은, 현재 중국의 부패문제에 대한 사회조사에서 기독교인의 부패는 거의 없었던 것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근 몇십년동의 중국기독교는 부흥과 성장에서 성공했다고 생각됩니다.
중국이 개혁개방한 20여 년간의 중국의 변화라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한국의 “한강의 기적”에 맞먹는 기적인 것입니다. 현재 상해 푸둥에 있는 빌딩들이 뉴욕의 맨하탄을 능가한다고 합니다. 싸이판에서 목회하고 있는 저의 친구목사가 있는데요, 그분은 북경출신입니다. 싸이판에서 3년간 목회를 한 후, 북경에 가서 자기 집으로 가는데 집을 찾지 못해서 헤맸고 합니다. 그만큰 중국은 빠르게, 몰라보게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중국정부 고위관리는 “변혁은 중국의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개혁은 현재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1) 첫 번째 단계는 경제개혁이었습니다.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입니다. 그러나 경제개혁은 경제개혁으로만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에 따른 체제개혁과 정치개혁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2) 그래서 현재는 둘째 단계인 정치개혁 단계에서 들어섰습니다. 사실 정치개혁은 경제개혁보다 훨씬 훨씬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의식전환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중국의 한계이자 위기는 “가치관의 위기요, 신앙의 위기”입니다.
몇 달 전에, 북경대학교 학생이 며칠의 간격으로, 세 명이나 기숙사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중국에서 매년 자살인구는 20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북경대 사회학과 싸쉐롼 교수는 “젊은이들의 자살현상은 신념의 결핍과 현대 경쟁사회가 주는 압력을 이겨낼 정신력의 부재로 인한 것이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현 사회의 부패와 무질서는 많은 중국지성인들을 혼란에 빠지고 방황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는 현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가치와 대안을 찾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출구를 찾고 있습니다. 저번에 천진에 가서 강의를 할 때, 천진 남개대학교 사회학과 方敏 교수도 저의 강의를 들었는데, 그녀는 기독교복음방송을 듣고 혼자 영접기도를 하고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분은 증권회사 사장까지 하신 분이신데, 현 사회의 부패에 실물이 나서 기독교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이뿐 아닙니다.
중국광주 중산대학과 철학과 류소평 교수는 러시아 문학을 읽다가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기독교인이 되었는데, 교회는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중국어신학”이라는 학파를 형성하였는데, 믿지 않는 많은 학자들도 많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기독교가 중국의 주류적 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국어신학에 대표적인 학자인 리츄링 교수(인민대)가 저번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함께 식사하면서, "중국에서의 기독교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가?"를 질문했습니다. 그는 중국교회는 한계점에 왔고, 기독교정신만은 21세기 중국사회에서 큰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회와 기독교 정신은 분리된 것입니다. 적어도 현 중국교회로서는 중국사회에 대한 대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정도 리츄링 교수의 말에 동의합니다. 중국기독교는 지금까지 핍박속에서 투쟁하면서 앙을 지키고, 뜨거운 열정을 가지는 교회로서는 성공했지만, 새로운 변혁의 대에 사회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면서 주도적 역할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아직 중국교회는 급변하고 있는 중국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가정교회는 내세지향, 개인구원만 강조하고 있고, 자기네끼리 뭉치고 “자기 義”에 빠지시 쉬으며,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삼자교회는 여전히 정치게임에 치중하면서, 복음의 능력과 역동성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토인비는 역사를 “도전과 응전”으로 보았다. 중국교회는 새로운 시대적 요청과 더불어 자신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도전앞에 바르게 응전함으로 자신의 진로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바뀐만큼 과거적 패러다임으로 새로운 역사를 이룰수 없기에 중국교회는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을 갱신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부흥의 물줄기를 타고 지속적인 성장과 성숙을 이룩하면서 중국의 주류적 가치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의 중국교회의 과제를 4가지로 생각해봅니다.
1) 교회의 질적 성장을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집회중심, 은사중심의 교회였다면 이제는 교육중심, 훈련중심의 교회로 바꿔야 합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농촌중심에서 도시중심의 교회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신앙지킴 중심의 교회에서 섬김 중심의 교회로 나아감을 의미합니다.
2) 교회의 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중국교회는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의 대립적 관계, 가정교회 내에서 당파성격의 분파형태는 새로운 시대에 기독교적 모범과 대안을 내놓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회가 연대할 때에만 역량을 모아 유익한 사업도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교회는 대사회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중국사회는 현재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학자들은 5년후에 중국이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예견을 조심스럽게 내놓기도 합니다. 이때 기독교는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사회적 안정과 질서형성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중국의 건설은 공자의 사상이 아니라, 마르크스의 이념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구속적 사랑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저는 “中国多一个基督徒,就多一份希望。”(중국에 그리스도인이 하나 많이 지면, 중국이 그만큼 희망을 더 갖게 된다)를 소원을 갖게 됩니다. 이는 소극적으로 죄를 짓지는 않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생산적인 대안적인 의미에서의 희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중국교회는 세계선교를 감당해야 합니다.
중국말에 "흙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는 곳에 중국인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큰 중국인들은 세상 모든 것에 포진되어 있기에 중국인들의 복음화는 세계복음화로 연결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선교의 역사를 보더라도, 이제는 중국이 선교의 바톤을 물려받을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교회는 한국교회와 더불어 마지막 선교를 마감함으로 주님을 재림을 맞을 것으로 희망되어 집니다.
저는 중국교회와 한국교회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역사적 과정을 겪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경험과 표현방식에도 조금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름이 함께 어울려질 때, 풍요로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상보적인 관계를 가질 때, 두 나라의 교회는 모두 성장하면서 풍요로워 질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교회는 한국교회로부터 교회운영, 교육시스템, 사회참여적 경험, 선교경험 등등을 배우고, 한국교회는 중국교회의 고난을 이겨내고 역동적인 영적인 체험의 능력들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중국교회를 성숙하게 하고, 한국교회의 영적인 능력을 강화시키는 "교차로"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동일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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