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에서 '바울'로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행13:9)
흔히 사람들은 사울의 이름이 바울로 바뀐 것을 그의 회심과 관련해서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사울의 뜻은 ‘큰 자’이고, 바울의 뜻은 ‘작은 자’라는 말로 합리화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적용하기를 “바울은 성령체험을 한 이후에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그렇게 겸손합시다.” 라고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뭔가 은혜롭기는 하지만 사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의 회심을 기록하고 있는 행9장에서는 사울이라는 이름은 나오지만 바울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회심한 지 3년이 지난 뒤에도 그의 이름은 여전히 사울입니다(행9:26).
성경 어디에서도 사울이 회심 한 이후에 자기 이름을 바울로 바꾸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1)
‘큰 자’라는 뜻을 가진 사울이, 회심을 통해 그의 이름을 ‘작은 자’로 바꾸었다면, 그의 회심 직후에 개명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행9장 19절에 그의 바뀐 이름이 나타나야 합니다. 아니면, 그러한 해석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사도행전 13장 9절입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9절은 바울이 회심한 지(33,34년 경) 13년이나 지난 AD 46/47년 경의 일입니다.
즉 사울에서 바울로 이름이 바뀐 것은 그의 회심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울은 자신의 이름을 바꾸었을까요?
바울의 이름이 바뀐 상황은 회심이 아니라 이방인 선교였습니다.
자세히 설명하면, ‘사울’(Sau/loj)은 히브리식 이름인 ‘샤울’(lWav')을 헬라식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샤울’은 ‘구하다, 요청하다’ 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동사 ‘샤알’(la;v)에서 온 것으로 ‘구하여진, 간청된’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삼상1:20; 참조 왕하6:5).2)
바울이라는 이름의 뜻이 ‘작은 자’인 것은 맞지만, 사울은 ‘큰 자’라는 뜻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바울’이라는 이름은 당시 로마 사회에서 종종 사용되던 이름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구브로 섬을 통치하던 총독 서기오 바울(Sergius Paullus)이 있습니다(행13:7).
그렇다면 바울로 이름을 바꾼 이유는 로마 사회와 관련이 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사울이 이름을 ‘바울’(Paullus)이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바꾼 것은 선교적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울은 선교 중에 바예수라고 하는 엘루마, 다시 말하면 박수무당 노릇을 하는 거짓선지자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행13:8). 그 사람은 선지자라고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이상한 무속 종교에 영향을 받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된 바울은 나름대로 자신의 복음을 지키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름을 사울에서 바울로 바꾼 것입니다.
바울은 나면서부터 히브리인이면서 동시에 로마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히브리식으로는 ‘사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고(the Jewish name of the apostle Paul), 로마식으로는 ‘바울’이라는 이름을 이미 갖고 있었습니다(the Hebrew name of the Apostle Paul). 2개의 이름을 이미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3)
왜 그랬을까요?
바울의 아버지는 어떠한 사정으로 고향을 떠나 로마 제국의 길리기아(Cilicia) 지역의 수도인 다소(Tarsus)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바울을 낳아 그에게 이민 사회에서 사용할 로마식 이름인 “바울”이라는 이름과 그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의 가장 유명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 이름을 따라 ‘사울(Sau/loj)’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사울에게는 처음부터 히브리식 이름인 ‘사울’과 로마식 이름인 ‘바울’이 있었던 것입니다(행 13:9).
그런데 바울은 회심 이후에 선교적 목적으로 자신의 유대식 이름 대신에 로마식 이름을 사용하면서 선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로마인이라는 것이 선교에 유용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같이 1년 이상 목회를 할 때는 히브리식 이름인 ‘사울’을 사용하였지만(행 11:25-30; 13:1-2), 이제 성령으로부터 부름을 입고 목회자가 아닌 선교사로서 로마 제국의 여러 곳을 다닐 때는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이라는 이름은 ‘큰 자’라는 뜻도 아니요, 그의 회심 때문에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바꾼 것도 아닙니다.
“큰 자라는 뜻의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사울이 자기의 이름을 작은 자라는 뜻을 가진 바울로 바꾼 것은 그가 성령체험을 한 이후에 겸손한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바울처럼 겸손합시다.”라는 적용은 아무리 은혜롭다 하더라도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1) Joseph A. Fitzmyer, According to Paul: Studies in the Theology of the Apostle (New York: Paulist Press, 1992), 2.
2) Koehler & Baumgartner,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 2 (Leiden: Brill, 2001), 1370.
3) 마가복음의 저자이자 바나바의 사촌인 마가도 이름이 두 개였다. 하나는 히브리식 이름인 ‘요한’이고(행12:12, 25), 다른 하나는 로마식 이름인 ‘마가’(Marcu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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