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신약

[스크랩]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수호천사1 2019. 1. 7. 14:54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히 13:8)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히브리서 말씀은 아주 많은 것을 생각하고 행동하게 합니다. 이 한 구절의 말씀을 대하면서 많은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본문의 말씀을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칼빈과 청교도의 황태자인 존 오웬, 그리고 성경연구가인 아더 핑크는 한 결 같이 본문의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신성과 관련하여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고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하나님이라고 하는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렇다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신성을 말씀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데 이 본문의 말씀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물론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가르침은 가장 소중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처럼 예수님의 신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 않는 것을 억지로 말한다고 하면 본문에서 말씀하려고 하는 의도는 모두 상실되고 말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일들이 교회 강단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목사가 좋은 말이라고 하여 마구 쏟아 내면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아무리 좋은 교리와 가르침이 목사의 입에서 증거 된다고 해도 본문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라고 한다면 그 의미와 문맥의 내용을 바로 증거 하는 것이 설교하는 자의 가장 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고 하는 이 말씀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동일하다고 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물론 맞는 말씀이지만 오히려 이렇게 가르치면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주시려고 하는 더 풍성한 진리를 드러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왜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고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모든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때문에 유대인들과 로마제국으로부터 고난과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싸워야 한다고 하는 말씀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 사는 문제 때문에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 때문에 고민하고 염려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돈 때문에 고민하고 염려하는 것은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는 길로 향하는 시작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있고, 그들을 한 번도 버리시고 떠난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고난의 현실에 직면하고 있었던 성도들에게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대제사장으로 왕과 선지자로 계속 일하시고 있다고 하는 사역의 불변성과 동일성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타락하고 세상과 같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예수님께서 지금도 동일하게 자신의 일을 하시고 있다고 하는 것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장로교단은 이번 주 한 주간을 종교개혁주간으로 한 주는 보내는 것을 기념하고 있는데 중세시대에 교회가 타락한 이유 중에 한 가지는 이렇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이해와 가르침이 없이 인간이 그 중심에 서서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 하는 인본주의 사상 때문이었습니다. 로마교황은 자신의 통치가 마치 하나님의 통치인 것처럼 그렇게 성경의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목사의 통치가 마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인 것처럼 말입니다.

 

목사와 교사, 그리고 장로와 집사, 모든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말씀 아래에서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가르치는 목사는 자신의 것을 가지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배우고 연구하여 그것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있다고 하는 신앙 원리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목사가 마치 교회의 머리가 되는 것처럼 그렇게 가르치고 자신의 권세를 나타내면 그 때부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사라지고 인간의 제도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교황이 교회의 머리입니다. 오늘날도 교회의 머리가 교황이지 예수님이 아닙니다. 어떻게 교황이 성경을 해석할 권세가 있고, 그가 말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말하는 것이 됩니까? 또한 교황도 죽어 심판을 받는 자입니다. 그런 자가 죄가 없다고 하는 무오한 자가 된다고 하는 가르침은 사탄의 가르침이 분명한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로마교회가 타락한 것은 교회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인정하지 않는 어리석은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현대교회도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가르침이 거의 전무합니다. 왜 이런 일이 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까?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어떻게 교회에서 예수님의 구원사역과 지금도 동일하게 일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증거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인간의 교만과 어리석음이 하나님의 복음의 진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사탄이 조정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복음의 진리가 증거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사탄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과 그 아들을 보낸 분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구원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 가운데 보내셨습니까? 그것을 알려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 가운데 오셔서 하신 모든 일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은 이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받아들인 자들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가르쳤던 것입니다. 여기에 구원의 은혜가 넘쳐나고 감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탄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교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이 가르쳐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이것을 알고 교회에서 예수님의 사역이 계속 가르쳐지게 하기 위해 교리를 만들과 그것을 문답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이 교회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짧은 말씀을 통해 복음의 진수를 다시 한 번 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다고 하는 이 말씀은 문맥과 함께 이해되고 가르쳐야 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구약시대뿐만 아니라 신약과 모든 시대에 자신의 피로 구원하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물론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는 제사에 사용되었던 피의 내용물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피라고 하는 방식은 동일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신의 백성들에게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구약시대는 하나님의 아들의 모형인 양의 피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신약시대는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의 피로 죄를 사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십니다. 결국 구약과 신약은 피를 통해 죄를 사함 받고 그것을 믿는 자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는 방식이 바로 믿음입니다. 구약시대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신약시대도 동일하게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방식이 동일하다고 하는 것을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구약은 성부 하나님, 신약은 성자 하나님, 신약시대 이후는 성령 하나님께서 구원의 일을 하셨다고 그렇게 가르치는 자들이 있는데 이런 가르침은 세대주의 사상의 영향입니다. 오순절 교회와 신사도 운동을 하는 자들은 오늘 우리 시대는 성령의 시대라고 미친 자들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이 오히려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를 파괴하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을 자세하게 그리고 아주 정확하게 읽고 배운다면 이미 하나님의 아들께서 구약 시대에도 역사하시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구약의 동물의 제사제도를 통해 예표적으로 구원하는 그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신약시대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친히 속죄제물이 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이 너무나 잘았습니다. 그래서 “때가 차매”라고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셨다고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제 율법의 때가 다 된 것입니다. 율법으로 정해진 시간 안에서 동물의 피로 제사를 드려 죄를 사함 받았던 그 때가 다 된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믿고 죄를 용서 받게 된 것입니다. 구원의 방식에 있어서 피의 내용물만 바뀌었지 피라고 하는 것을 여전히 동일한 것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시 한 번 예수님의 구속 사역의 위대함을 이 짧은 문장으로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구원의 방식이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동일합니다. 오히려 더 분명하게 이제는 다시 반복하여 드리는 동물의 피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단 번에 모든 죄를 다 속죄 받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을 증거하여 주고 있습니다. 구원의 방식이 동일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신, 구약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의 방식이 동일하기 때문에 교회는 여전히 복음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구약시대처럼 제사장들이 땅에 없습니다. 오직 유일하신 대제사장이신 예수님만이 천상에서 계속 죄를 사하여 주시는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이 땅에는 피의 복음을 증거하고 가르치는 목사와 교사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위해 사도들이 초대교회 당시 계속 피의 복음을 증거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에 세워진 교회와 목사들은 무엇을 증거하고 가르쳐야 합니까? 다른 말 할 것도 없습니다. 오직 주의 복음만을 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복음은 동일합니다. 같은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 목사들의 사명입니다. 로마교회가 이 동일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변질되고 타락한 것입니다. 만약 오늘 이 세대의 교회들이 이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시고 동일하신데 교회가 변화되고 복음이 변질되는 것입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죄인들인 우리들의 잘못인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히브리서 기자가 계속 강조하였던 믿음의 대상과 내용이 동일하다고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백성들과 신약의 백성들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믿음을 만드시고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일을 하시기 위해 성령께서 세상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구원의 길을 가게 하기 위해 성령께서 오셨지, 성령께서 자신의 일을 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위해 성령께서 아들의 것을 가지고 일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은사주의 자들은 마치 성령이 모든 것을 다 주신다고 하면서 거짓 복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고, 성령으로 기도하고,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을 증거하고 그것을 성도들이 믿고 예수님을 믿는 그 신앙 안에서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도록 격려하시고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도가 마지막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인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께서 함께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은 역시 동일한 사역을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의 사역입니다. 교회 안에 성령께서 은사를 주신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의 길을 가게 하시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성도들이 서로서로 그리스도의 한 몸인 것을 알고 연약한 자를 도와주고 세우기 위해, 그리고 복음이 계속 증거 되기 위해 성령께서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개인에게 은사를 주셨지만 그것은 결국 교회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상관없는 은사는 성령의 일이 아니고 마귀의 일인 것입니다. 사이비 이단집단이나 거짓 종교에서도 마귀는 병을 치료하고 역사를 일으킵니다. 무당도 귀신의 힘을 빌려 작두위에서 날뛰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령은사주의 자들은 성도 개인들에게 은사를 받으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르치는 은사와는 전혀 다른 은사주의라고 하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복음을 위해 성령께서 은사를 주시고 성도들 간의 섬김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구약시대 때도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용하시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도 구약 교회라고 하는 전체를 위해 주셨지 한 개인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교회를 위해 성령으로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면 성도들의 삶, 즉 우리의 삶도 예수 그리스도 인해 동일하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삶은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들을 배우고 그들의 가르침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그것을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7절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우리가 세상에서 살면서 지금 함께 사는 자들보다는 이미 믿음으로 살았던 조상들의 삶을 보고 배우는 것이 더 안전하고 도움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검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함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많은 오류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목사들보다는 이미 삶을 살고 지나가 뛰어난 지도자들을 본받는 것이 더 좋습니다. 과거의 조상들에게도 잘못된 모습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반면교사로 삼고 우리가 나가면 되기 때문에 성도는 오늘의 사람들보다는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 바른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리를 세상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그렇게 주장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도 오직 성경,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오직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종교개혁 당시의 외침이었기에 현대와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도 다른 것을 가르치고 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대와 뒤떨어진 교리를 버리고 새롭고 스마트한 가르침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언제나 교회를 무너뜨리고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시대가 변하면 교회도 변해야 한다는 주장은 마귀의 주장입니다. 처음에는 방법론적인 변화를 말하지만 결국 복음의 내용과 대상에 대한 변화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만 믿지 않아도 구원을 받고,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착하게 살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렇게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방식에 대해, 믿음으로 구원 얻는 다고 하는 이 진리에 대적하는 일을 계속 볼 것입니다. 하지만 참 선지자들은 이미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하시는지를 항상 보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예레미야 선지자는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고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렘6:16). 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구원은 이미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방식대로 이루어집니다. 이미 옛적부터 하나님은 그것을 정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변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구원의 길에서 변함없이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는 이 말씀을 베드로 사도가 신약교회의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 모두는 항상 변함없이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시기 위해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에 순종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끝 날가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는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구속의 사역이 종결되어도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으로 계속 통치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동일하십니다. 세상과 교회의 통치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진리를 믿는다면, 특히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모습이 분명하게 나타나야 합니다. 모든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믿음으로 믿고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지나온 시대는 오늘의 시대와 다를 수가 있습니다. 또한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와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식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녀들에게 요구하는 삶의 방식은 여전히 동일하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인생을 이 땅에서 마감해야 합니다. 고난과 환난 가운데서도 끝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가르치지 위해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다고 말해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것을 세상에 어떻게 나타내 보일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가난한 자를 돕고, 복음 때문에 갇힌 자를 돌아보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보일 때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언제나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시고 계십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임진남 목사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개혁신학연구를 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다.

 

저서.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 <현대 칭의론 논쟁>(CLC, 2017), <요한계시록 설교>(우리시대, 2018)이 있다.

 




출처 : 예수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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