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선교민족의 뿌리와 사명

[스크랩] 고조선은 연방국가였다. 지방자치가 살아있는…

수호천사1 2018. 5. 2. 11:13

 






한국식 청동검과 중국식 청동검 분포지역 비교 (자료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



비파형동검의 분포도는 [고조선]이 한반도, 만주, 요하유역을 아우르는 커다란 나라였고

중국 동해안으로도 진출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중국동해안(특히 산동반도)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들은

중국당국에 의해서 그 발견사실이 많이 감추어진 것으로 봅니다.)




비파형동검


비파형동검(태극모양 동검)은 고조선 고유의 검인데

실전용 검이 아니라

고조선 각 지역의 지도자(우두머리)들이 상징적으로 보유하며

제천행사 등에 의전용으로 사용한 검입니다.





적석총(돌(石)로 만든 무덤)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은 위처럼

한반도, 만주와 중국 동해안이며

특히 한반도와 만주에 집중적으로 있습니다.


동북꽁정 이전에는 중국학계에서도 

만주와 요하유역(만주서부)은 모두 [고조선의 영역]이라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발견된 [비파형동검]들은 발견 사실들을 숨기지 않았고

그래서 만주와 요하유역의 비파형동검들은 그 발견이 많이 알려져 있고


그런데 중국 동해안의 경우에는

동북꽁정 이전에도 비파형 동검의 발견 사실이 많이 감추어진 것 같으며


그러나 위 그림의 적석총 주요 분포지는 

고인돌의 주요 분포지와도 일치하는 등 


전성기 때의 고조선 직할영역은

중국 동해안의 산동반도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이 확실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고조선은 연방국가였습니다.   


고조선연방


미국이 연방국가이듯이

고조선도 연방국가였습니다.

마치 지금의 미국에서 각 주에서 주지사들을 스스로 정하고 (뽑고)

큰 문제가 없으면 연방정부가 그것을 승인하듯이 


고조선에서도 각 지역의 수장들을 그 지역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큰 문제가 없으면 고조선 중앙정부가 그것을 승인하는.


고조선이 지방자치가 발달한 연방국가였다는 사실은

고조선 중앙정부가 사라진 후에도

한반도에 그 흔적이 남아있어서 

중국 사서인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에 다음과 같은 귀절이 나옵니다.  



이 귀절은 널리 알려져있는데

대단히 중요한 기록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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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馬韓)은 서쪽에 있는데, 54국(國)이 있으며... 진한은 동쪽에 있는데, 12국(國)이 있으며...
변진(弁辰 = 변한)은 진한(辰韓)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국(國)이 있으며...
모두 78개 나라인데 백제(伯濟)는 그 중의 한 나라이다.
큰 나라는 만여호(萬餘戶), 작은 나라는 수천가(數千家)인데, 각기 산과 바다 사이에 있어서 전체 국토의 넓이가 사방 4천여리가 된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를 경계로 하니 모두 옛 진국(辰國)이다.
마한이 [한족(韓族) 중에서] 가장 강대하며 그 종족들이 함께 왕(王)을 세워 진왕(辰王)으로 추대하여
목지국(目支國)에 도읍하여 전체 삼한(三韓) 지역의 왕(王)이 되며,
[삼한(三韓)의] 제국왕(諸國王 : 모든 여러 나라들)의 선대(선조)는 모두 마한 종족의 사람이다.





(원문)


馬韓在西, 有五十四國... 辰韓在東, 十有二國... 弁辰在辰韓之南, 亦十有二國... 凡七十八國, 伯濟是其一國焉.

大者萬餘戶, 小者數千家, 各在山海閒, 地合方四千餘里, 東西以海爲限, 皆古之辰國也.

馬韓最大, 共立其種爲辰王, 都支國, 盡王三韓之地. 其諸國王先皆是馬韓種人焉.



http://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set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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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대략 한반도 전체를 [마한(마조선)]이라 했고

만주를 [진한(진조선)], 요하유역과 산동반도 등 중국 동해안을 [변한(변조선)]이라 했는데 


<- 전삼한

 

후에 한반도 밖의 진한과 변한으로부터 한반도로 사람들이 이주해오면서


대략 후대의 신라지역을 [진한]이라 부르게 되고


대략 후대의 가야지역을 [변한]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겠습니다.


<- 후삼한



위 기록에 보면 한반도의 후삼한에는  

 모두 78개 나라가 있고  백제(伯濟)는 그 중의 한 나라라고 하는데 

처음에 백제가 고구려에서 남쪽으로 내려왔을 때에는 작은 나라였습니다.


신라 역시 처음에는 여러 나라들 가운데 하나의 작은 나라였습니다.


고조선 중앙정부가 사라지고 난 후에

고조선 각 지역이 여러 독립국들이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많게는 수십만명, 적게는 수만명의 인구를 가진 여러 나라들이

독립국들이 된 것이라 하겠으며

이러한 여러 독립국들은 후에 차차 고구려, 백제, 신라로 통합하게 되죠.



위 기록에 이러한 여러 나라들이 "모두 옛 진국(辰國)이다. (皆古之辰國也)" 했는데 

 

 여기서 진국(辰國)고조선(단군조선)을 뜻하는 것이죠.



고구려를 이은 발해는 후에 나라이름을 대진국(大振國)이라고도 했는데

여기서의 진국(振國) 역시 고조선(단군조선)을 계승한 나라를 뜻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즉 고조선의 나라이름은 조선(朝鮮)이지만 

  진국(辰國)이라 불리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위 그림들은 이병도교수의 저서 [한국상고사입문]에 나오는 것들인데

이병도씨는 일제 때 일본인 교수 밑에서 제자로 성장해서인지

일제의 조작인 "한사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을 해방 후에도 계속 주장하다가

 

사망하기 얼마전에 양심선언하듯이

"위만조선과 한사군은 요하 서쪽에 있었다."는 것을

이 책에서도 밝혀놓았습니다.




 

조선(朝鮮)이라는 이름은 단군조선의 국호인데 

후대에 전체조선의 일부지역인 요하유역에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 생겼고


그래서 후대에 중국인들은 [조선]이라는 말은 그들과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기자조선, 위만조선을 의미하는 말로 쓰고


전체조선(단군조선)은 진국(辰國)이라는 말로 분간해서 쓴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후한서]의 위 기록에

마한, 진한, 변한의 여러 나라들이 "모두 옛 진국(辰國)이다. (皆古之辰國也)" 한 것은

"마한, 진한, 변한이 모두 [고조선]이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원래는 하나의 나라였는데

고조선 중앙정부가 사라져서 여러 독립국들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또한 위 기록에


"마한이 [한족(韓族) 중에서] 가장 강대하며 그 종족들이 함께 왕(王)을 세워 진왕(辰王)으로 추대하여
목지국(目支國)에 도읍하여 전체 삼한(三韓) 지역의 왕(王)이 되며,
[삼한(三韓)의] 제국왕(諸國王 : 모든 여러 나라들)의 선대(선조)는 모두 마한 종족의 사람이다."라 한 것은

당시 마한, 진한, 변한이 비록 여러 독립국들이었지만
아직도 고조선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어서
[마한, 진한, 변한 전체의 임금]을 세웠고
그 임금이 진왕(辰王)이라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진왕(辰王)이란 고조선 전체의 임금
즉 [단군(檀君)]을 뜻하는 용어이며

고조선이 2천년 넘게 존속했으므로
 단군왕검(檀君王儉 : 1대 단군)시대 이후에도
대략 수십대의 단군이 추대되었다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오랜 전통이 있기 때문에
고조선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한반도의 여러 나라들이 모여서 [전체의 임금]을 세웠고

그것을 보고 중국인들이 위와 같이
"진왕(辰王)이 전체 삼한(三韓) 지역의 왕(王)이다."라는 요지로 위와 같이 기록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당시 만주의 [부여] 등의 나라들은 이에 동참하지 않고 따로 존속한 것 같습니다.)

후에 고구려, 백제, 신라 때도 이러한 전통이 이어지는데  
고구려 전체 임금을 대왕(大王) 또는 태왕(太王)이라 하고 
그 아래 그냥 왕(王 : 후왕(侯王))들이 있었고
백제, 신라도 이러한 모습이 보이는데
 지방자치가 활성화되었던 고조선의 연방제 전통의 흔적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중국에서 고조선의 이러한 모습을 흉내낸 것이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의 중앙임금이 각 지역의 왕(王)들을 승인한 것이고
진시황 때 이러한 것을 없애버리고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통치하는 방식으로 바뀌는데 

한국에서는 연방제(지방자치)의 원조국이라 그러한 전통이 워낙 강해서
고조선 중앙정부가 없어진 이후에도 수백년 이상의 세월을
연방제(지방자치)의 모습이 상당히 강하게 살아있었다 하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원래 근본적으로 민본주의, 민주주의 전통이 대단히 강하다 하겠으며
오랫동안 외세의 압박 등으로 이러한 것이 많이 가려지기도 했지만
앞으로 그 전통이 다시 만개(滿開)하리라 생각합니다.   



일제 때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 역사학과를 장악한 일제는
그곳을 중심으로 한국고대사 폄하 작업을 극심하게 했는데

 일본에서는 불과 2천여년 전에 한국에서 전해진 벼농사, 금속문명이 시작하는 등
일본고대사가 한국고대사에 비해서 너무나 저급하기 때문에

일제는 고조선을 부정하는 공작을 합니다.
그래야 마치 일본고대사가 한국고대사보다 빠른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고조선이 마치 평안남도 지역에 있던 작은 나라라는 듯이 조작하려 광분했고
일본인 극우교수들이 완전히 장악했던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 역사학과 출신들이
해방 후에도 한국 역사학계의 실세들이 되면서
일제의 조작은 해방후에도 계속 힘을 발휘했지만

여러 뜻있는 학자분들 등의 노고에 의해서
 고조선이 한반도와 만주와 요하유역을 아우르는 커다란 나라였다는 것이
차차 명확히 밝혀지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위 [후한서] 기록에서
"[삼한(三韓)의] 제국왕(諸國王 : 모든 여러 나라들)의 선대(선조)는 모두 마한 종족의 사람이다."
라 한 부분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후삼한의 진한과 변한은 만주와 요하유역에서 온 사람들인데
"선대(선조)는 모두 마한 종족의 사람이다.(其諸國王先皆是馬韓種人焉)"라 한 것은



그보다 전 시대에


마한의 땅인 한반도, 그중에서도 특히 중부, 남부 지역 사람들이
만주와 요하유역으로 많이 이동했었다는 얘기입니다.

후대에 고조선 중앙정부가 사라지고
만주와 요하유역 사람들이 한반도 남부로 상당수 이동했지만
그 사람들의 선조는 원래 한반도 사람들이고

즉 조상의 땅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라는 얘기라 하겠습니다.

한반도 남부, 중부 사람들이 한반도 북부와 만주, 요하유역으로 많이 이동했었고
고조선 시대가 끝나자
선조의 땅을 찾아서 한반도 남부, 중부로 돌아온 사람들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고조선 시대는 끝났지만 [고조선연방]의 전통이 아직도 강해서
 한반도의 여러나라들이 [전체 임금]을 선출한다는 것
이러한 전통은 한반도 - 만주가 차차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으로 통합되어가면서 사라져갔지만

근래에 우리나라에 지방자치가 다시 강해지면서
시장, 군수, 도지사 등 지역 대표들을 뽑아서
지역에서 스스로 행정을 운영하며
동시에 중앙정부와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시대에 이미 이러한 모습을 보였다 하겠습니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



경주 불국사



부여 부소산성




전북 익산시 왕궁리 궁터




창덕궁 낙선재 후원 [사진제공 : 문화재청]



덕수궁 석어당의 동쪽 전경


이상 모두 서헌강 작가의 사진들입니다.

출처 :한국고대사




 

 

 


 


출처 : 여호와는나와함께
글쓴이 : 알찬마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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