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가 명심해야 할 네 가지 교회론
이 글은 ‘온누리 리더십 축제’ 전도 콘퍼런스 중 빌 하이벨스의 강의를 요약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비전을 구하는 것과 비전에의 동참, 기쁨이 넘치는 예배, 목회자 자신을 위한 속도조절, 이것이 유언을 하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정리한, 현대의 목회자들과 나누고 싶은 네 가지 교회론이다. 특이하게도 사람은 임종 직전에 가장 진실된 말을 한다. 인생의 마지막 말이기에 그 어떤 말보다 절제되고 정직하며 구체적이다. 나는 바로 그런 언어로 세계의 목회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죽음을 앞둔 상황, 절대 긴 말을 못할 것이다. 짧게 말한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목회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임종을 맞은 사람처럼, 하나님께 거듭 여쭤보고 더 많이 고민한 끝에 드디어 네 가지를 추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내가 죽어가며 한 말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멀쩡하게 살아 있으니까. 그런 비슷한 심정으로 목회자들에게 다음 네 가지를 권하고 싶다. 첫째, 하나님께 명확하고 투명한 비전을 구하라 교회의 비전을 명확하고 투명하게 하기를 바란다. 리더십에 관한 유명한 구절인 잠언 29장 18절에 “묵시가 없는 백성은 망한다”라고 돼 있다. 망함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단순히 육체의 죽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비전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사람은 꿈이 없고 묵시가 없으면 죽는다. 하나님과 교회를 향한 신뢰, 하나님이 교회를 위해 위대한 일을 하신다는 꿈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성도들을 구할 비전은 어떻게 찾는가? 목회자와 지도자들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5년 후 교회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를 통해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쉽게 구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끈질기게 기도해 보자. 마침내 비전을 받았다면, 교회 성도들을 향해 그 비전을 선포해야 한다. 아마 교회 생애에서 결정적인 날이 될 것이다. 문제는 비전을 선포할 때 그것이 인간의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확신까지 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거기에는 필요한 것들이 있다. 먼저 지도자들이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비전을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고 열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며 성도들에게 동참하기를 권할 수 있다.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들이며 최고의 섬김과 열정적 기도 그리고 온전한 재정적 지원을 통한 참여를 구할 수 있다. 그들에게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뛸 때 하나님의 영광을 반드시 이뤄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2000년 윌로크릭교회가 25주년을 맞이했을 때 우리도 3개월 동안 기도하며 5년 후 윌로크릭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발돋움하기를 원하시는지를 하나님께 구했다. 그 기도를 마친 뒤 우리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에 숨이 멎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비전이었기 때문이다. 덜컥 겁이 나서 교회를 떠나기까지 한 사람들도 생겼다. 몇 개월 후 다시 한번 회중에게 그 비전을 얘기했다. 나는 그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여러분이 이 비전에 동참하기를 원하신다면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놀랍게도 한 사람, 한 사람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 교회의 미래를 위해 하나님 나라 영광을 위해 이 일에 동참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뒤로 6년이 흘렀다. 우리는 앞으로 200년 동안 성도들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의 기가 막히게 멋진 성전을 지었다. 시카고와 인근 지역에 4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시카고 시내 교회에서 열린 첫 예배에 2,500명의 성도들이 참석했다. 그뿐 아니라 전 세계 흩어져 있는 교회를 지원하기 위해 수억 달러를 사용했고 교회의 합력을 위해서도 뛰고 있다. 만일 우리가 6년 전에 하나님께 비전을 구하지 않았다면 이 중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비전은 중요하다. 어떤 목회자들은 좋은 교회를 위해 열심히 좋은 설교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설교하고 교회를 운영하는 것은 비전을 던지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하나님께 비전을 구하고 비전을 보여주시는 순간에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품기를 바란다. 둘째, 성도들을 동참시켜라 여기서 잠깐 나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버지는 한창 나이에 돌아가셨지만, 많은 회사들을 소유한 성공한 사업가로서 기독교인이었고 항상 교회에 다녔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교회의 일에 동참한 적이 없었다. 나는 4년마다 교회 목사님이 바뀌면 그 목사님을 통해 아버지가 교회의 일에 동참하고 봉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교회의 일을 통해 느낄 수 있는 희열, 기쁨, 보상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채 하나님 나라에 가셨다. 자신 있게 말하지만,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담임 목사의 부족한 리더십에 있다. 교회를 맡고 있는 목회자는 스스로 교회의 비전에 헌신하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 아버지는 4년마다 목회자가 바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어차피 3년 반이 지나면 그 목사는 떠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만일 그 목회자가 교회에 남아 평생 헌신할 것임을 알았다면 아버지는 아마 교회 사역에 동참했을 것이다. 꿈의 크기도 문제다. 아버지는 작은 꿈에 만족할 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교회는 항상 작은 꿈에만 매달렸다. 아버지는 거대한 세계에 살고 항상 큰 일을 풀어나가며 어려운 도전을 좋아했다. 그런 사람에게 중·고등부 예배당 벽을 어떤 색깔로 색칠하면 좋을지 묻는다면, 아버지와 같은 분을 절대로 이끌어낼 수 없다. 아버지가 교만한 분은 아니었지만, 그분이 가진 달란로는 작은 꿈에는 생명력 있는 일을 하실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목회자는 그들에게 맞는 도전을 줘야 한다. 또 필요하다면 몸을 낮춰 개인적 요청을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최선의 방법은 아닐 수 있지만,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성도는 대체로 시간이 없고 바쁘다. 그들을 교회 일에 동참시키려면 이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다. 일을 맡기면 믿어야 한다. 담임 목사가 일일이 통제한다면 일을 해낼 수가 없다. 그리고 고맙다는 표현을 해야 한다. 나의 아버지는 좋은 리더였다. 그는 회사원들에게 항상 ‘잘하고 있고 자랑스러우며 고맙다’고 말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담임 목사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원했을 것이다. 목회자는 열심히 일하는 자원자들에게 고맙다는 표현에 인색하다. 교회에 나와라, 더 많이 기도해라, 더 많이 섬기라는 말을 하면서도 정작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물론 교회 일에 참여하려는 동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왔지만, 우리는 인간이고 모두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목회자들에게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비전에 맞는 성도를 찾아 동참을 적극 유도하고 맡기며 인정하고 알아줘야 한다. 그들은 교회가 큰 선을 이루는 데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셋째,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예배를 하라 예배는 감동을 주고 기억에 남아야 하며, 교회의 모임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사도행전 2장 43절에 보면, 초대 교회의 예배와 모임이 얼마나 좋았는지에 대해 나온다. 그들은 예배에서 느낀 엄청난 기쁨 때문에 두려울 정도라고 했다. 사실 창의력과 감동이 있고 기억에 남는 예배를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러나 할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 예배라면 성도들이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데리고 오고 싶어 할 테니까 말이다. 영화관에 들어가 지루한 나머지 몸이 비틀리는 영화를 본다고 가정해 보자. 영화관을 뛰쳐나오지 못하는 게 단지 돈이 아까워서라면 누가 그 영화를 추천하겠는가? 교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를 생각하면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감동적인 예배를 준비하기에 충분하다. 몇 개월 전, 런던에 있을 때 어떤 교회에 간 적이 있다. 오래된 성당 같은 교회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장내에는 성도들로 가득했다.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예배의 한 순서에서 담임 목사가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교사들을 일어서라고 요청했다. 이어 뒤에서 누군가 피아노 건반을 조용히 두드리기 시작했다. 매우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목사님은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교사직에 계시는 모든 분들, 여러분이 하시는 일이 어려운 만큼 얼마나 고귀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이나 마음이 망가질 때 우리는 당신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을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축복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을 축복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교회의 한 구석에 앉아 있던 나까지도 가슴이 찡해지며 근처에 서 있는 의사를 위해 기도했다. 나는 그의 이름도 몰랐고 앞으로 만날 일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영혼을 위해, 그가 수술을 집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손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온 성전에 기도와 격려가 가득 했다. 나는 그 예배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아마 예배에 참석했던 모든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교사들도 그럴 것이다. 이렇게 하는데 무슨 비용이 들겠는가? 하지만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예배였다. 많은 목회자들이 예배가 위대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를 위해 춤도 좋고 영상도 좋으며 드라마도 좋으니 계속해 실험 정신을 갖고 예배에 임하기를 바란다. 물론 설교와 가르침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예배가 살아난다면 성도들은 자랑스러워할 것이고 반드시 소문으로 이어져 주위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목사님들의 설교는 더 많은 성도들에게 큰 은혜가 되어 가깝게 다가갈 것이다. 넷째,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이기기 위한 경주를 하라고 말한다. 이기기 위한 경주라고 해서 무작정 달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처음부터 무작정 달리면 이기기도 전에 지쳐서 포기하게 될 것이고, 너무 느리다면 영원히 그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완주는 물론이고 승리하기 위해선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교회의 일은 굉장히 어렵고 고군분투해야 하며 열심히 해야 한다. 열심히 달리고 있다면, 더욱 더 한 번쯤 속도를 멈추고 왜 이렇게 열심인지 그 이유와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거기서 얻는 휴식과 힘은 이기기 위한 경주에 중요한 추진력이 된다. 나는 윌로크릭교회를 개척하고 15년간 무작정 달리기만 했다. 15년이 지나 완전히 탈진했을 때 나의 인생에 가장 무서웠던 시간을 만나고 말았다. 너무 지쳐 목사직을 그만 둬야 한다고도 생각했고, 설교는커녕 그 준비도 어려웠으며, 성도들의 상담도 버거워졌다. 내 안의 어떤 힘도 못 느끼고 껍데기만 남은 채 계속해 도망갈 생각만 했다. 그때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일으켜 세워줬다. 좋은 기독교 상담가를 만났는데, 그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줬고 나를 도울 스태프를 추가로 고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하고 원래대로 돌아오기까지 4년이라는 치유 기간을 필요로 했다. 그 후로 나는 너무 속도가 빠르다고 여겨지면 잠시 멈추고 쉬는 지혜를 터득했다.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복음의 등대로 자리매김한 중요한 나라다. 일본, 중국, 북한 그리고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한국의 목회자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고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단 한 사람의 목회자나 리더도 잃어버리거나 상실하기 싫고 하나님도 그러하실 것이다. 대한민국의 목회자들 모두 하나님을 향한 꿈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선 달리는 속도를 잘 조절해 경주가 끝날 때까지, 승리할 때까지 달릴 수 있어야 한다. |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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