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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모태신앙, 과연 성경적인가?

수호천사1 2017. 2. 1. 20:48

모태신앙, 과연 성경적인가?


  

 한국의 기독교회 현장에서 모태신앙이란 표현은 낯설지 않다. 기독교회 속에서 이미 익숙해진 용어로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보편적으로 회자(膾炙)되는 것이 현실이다. 모태신앙이란 일반적으로 부모와의 혈통적 연대 속에서 현재 본인의 믿음 상태와 무관하게 신앙의 계승을 통해 그리스도인이란 사실을 표방한다. 그러므로 모태신앙의 소유자가 현재 신앙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다면 이는 금상첨화로서 교인들 사이에서 일말의 자랑거리로 작용하기까지 한다. 일등신자의 상표처럼 말이다.


  모름지기 21세기 개혁교회란 16세기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바르게 재정립된 성경의 교리체계와 개혁파적 교회 전통을 이 시대에 상속받아 계승하면서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수정 보완해 발전시켜 나가는 성경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파 교회의 특징은 '개혁된 교회는 지속적으로 개혁돼야 한다'는 명제 속에서 부단히 성경의 본의를 회복시켜 나가는 가운데 총체적 관점에서 본질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성경적 개혁교회의 정체성은 절대 다수에 의해 추구하게 되는 제도권적 전통성을 지양하고,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는가를 총체적인 계시의 관점으로 탐구해 이를 신앙과 삶의 근간으로 삼게 되는 계시의존성을 통해 확증된다(롬 10:2-3, 마 7:21-23, 막 7:6-9).


  16세기(1517년) 종교개혁 이후 거의 500여년이 목전에 다가온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기독교회는 과연 얼마큼이나 종교개혁의 정신과 정통성에 근거한 성경의 본질과 본의를 이 시대에 여전히 계승하면서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것일까. 16세기 역사적 개혁파 교회와 여전히 대내외적으로 개혁교회를 표방하고 있는 21세기 한국의 현대교회는 본질상 계시의 동질성과 연속성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인가. 복음서 기자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경계시켰던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하나님을 헛되게 경배하며 신앙'하는 형식주의 신앙관에 매몰돼 있는 것은 아닐까(막 7:6-7). 이런 결과로 현대교회가 사람의 계명을 적극 지키려고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기꺼이 포기하는 패역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이상의 선의적인 비판적 질문에 얼마큼이나 한국의 현대교회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조만간 종교개혁 500주년이라는 뜻 깊은 해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본 강론에서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덧입혀졌을 수 있는 전통의 옷을 벗고 계시의 옷으로 갈아입는다는 심정으로 한국 교회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매김 돼 있는 모태신앙이란 표현을 '신앙의 혈통적 연대성과 계승이 가능한가?'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진단해 보고자 한다.


  모태신앙이란 통상 신앙의 혈통적 계승과 연대성을 전제하는 표현이다. 문자대로 해석한다면 부모의 신앙을 태속에서부터 유전적이고 혈통적으로 물려받았다는 의미이다. 이런 주장과 관련해 흔히 사 44:1-2과 24절 및 행 16:31과 창 17:7이 증거본문으로 제시되곤 한다.


  우선 사 44:1-2과 24절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회복을 아브라함 언약과 선지자들의 새 언약 사상에 근거해 미래지향적으로 약속하고 있는 이중 구조적인 언약의 내용이다. 이런 결과로 이스라엘은 70년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친 후 일차, 이차, 삼차에 걸쳐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언약성취의 전부가 아니다. 마침내 때가 찰 때에,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참 이스라엘인 교회공동체의 출현을 통해 갱신되고 성취되기에 이른다(갈 3:29).

이런 사실로 인해 아브라함 언약과 선지자들의 새 언약 사상 속에 내포되었던 역사적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표면적 유대인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었다. 이삭에 의한 약속의 자손에 국한돼 그리스도께 속한 이면적 유대인을 처음부터 지향하고 있었을 뿐이다(갈 3:29, 롬 2:28-29, 9:6-8). 물론 최종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사야서 본문은 이스라엘의 미래적인 회복을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인 표면적 이스라엘에게서 찾지 않는다. 이면적 이스라엘 곧 언약의 자손들인 남은 자들에게 제한적으로 적용시킨다(사 10:22).


  둘째로 행 16:31의 말씀 또한 본질상 믿음의 혈통적 계승이나 신앙의 혈통적 연대성을 보증하는 말씀이 아니다. 간수와 죄수의 신분으로 만나게 된 빌립보 감옥의 간수와 그의 집 곧 온 가족들이 어떤 계기에 바울의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성령의 역사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세례를 받은 사실(32-34)을 복음의 점진적인 확장이라는 맥락(행 1:8) 속에서 증거해 주는 사건이다. 여기서 복음의 점진적인 확장이란 표현은 행 1:8에 언급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의 구체적인 성취를 가리킨다.

 따라서 빌립보 간수와 그의 가족들의 구원은 행 10장에 기술된 고넬료와 그의 권속들의 구원사건과 더불어(행 10:44-48) '복음의 점진적인 확장'이란 문맥 속에서 '땅 끝' 곧 이방인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선택적 구원역사에 해당된다. 이처럼 영혼의 구원여부는 부모로 말미암는 구원의 혈통적 연대성이나 계승의 문제가 아니다. 창세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베푸시는 주권적인 선택과 은혜의 결과일 뿐이다(엡 1:4-5).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 앞에서 인위적인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는(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3).

본문에서 '오직 하나님께서로 난 자들'이란 표현은 다름 아닌 창세전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사상(엡 1:4-5)을 가리킨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본문에서 '하나님의 선물'이란 구원이 사람의 선행과 업적에 대한 보상과 대가로 주어진 것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 은혜에 근거한다는 사상을 강력히 암시해 준다.   


  셋째로 창 17:7도 본질상 같은 맥락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갱신시켜 주시는 과정에서(5절) 아브라함 언약의 중요한 요소들인 자손과 땅과 왕권의 내용을 다시 한번 총체적으로 확약해 주신다. 이 과정에서 '영원한 언약'이란 표현을 통해 아브라함과 그의 대대 후손들과의 언약을 재차 천명해 주신다. 문제는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아브라함 후손들의 정체가 언약적 구속사의 점진적인 경륜 속에서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집중된다. 만일의 경우 이들 후손이 아브라함의 육체적 후손들로 설명될 수 있다면 언약의 혈통적 연대성이란 원리 속에서 신앙의 계승이란 주제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아브라함 언약 속에서 자손언약의 구체적 성취는 이면적 유대인들 곧 이삭으로 말미암는 약속의 자녀들로 국한된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롬 2:28-29, 9:6-8). 바울은 이들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복음의 빛 안에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로 주해한다(갈 3:7, 29절). 선지자들도 새 언약 사상을 통해 아브라함의 참 자손들을 육체적 후손들이 아닌 이스라엘의 남은 자(remnant) 사상을 통해 설명한다(사 10:22, 렘 23:3-4).

남은 자 사상이란 구약계시 속에서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언약(창 3:15)과 아브라함 언약(창 12:1-3) 및 선지자들의 새 언약(렘 31:31-34) 안에서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섭리적으로 보존해 주신 언약백성들을 총칭한다. 이 원리는 신약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롬 11:4-5). 이들 남은 자들이 처음부터 아브라함 언약 속에 약속된 자손들의 실체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언약의 자손들을 혈통적 후손들로 해석해 역사적 이스라엘인 표면적 유대인들 모두에게 적용시킨다면 이는 하나님의 본의와는 무관한 자의적 해석이요 편의적인 적용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신적 언약이 혈통적 연대성에 의해 계승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엡 1:4-5), 신앙과 믿음 또한 인위적인 혈통이나 육적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지 않는다(요 1:13).     


  결과적으로

아브라함 언약 속에 약속된 후손들의 정체는 아브라함의 혈통적이고 육체적인 후손들이 아니다. 이삭을 통한 약속의 자녀들을 총칭한다. 신약성경은 이들을 이면적 유대인(롬 2:28), 성령의 인침과 내주로 인한 마음에 할례 받은 자(롬 2:29), 남은 자(롬 11-4-5) 등으로 부른다.

이처럼 언약적 구속사의 경륜 속에서 이스라엘의 영적 정체성은 본질상 구속계시의 도구로 선용되고 있었다는 전제 속에서 신적 언약의 이중 구조성을 해석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그렇지 못할 때, 아브라함 언약 속에 약속된 후손들의 정체를 문자적으로 접근해 역사적 이스라엘로 해석함으로 자칫 언약의 혈통적 연대성에 근거한 신앙의 혈통적 계승의 타당성을 옹호하게 된다.


  이상 모태신앙과 관련해 세 가지 증거본문으로 제시된 성경구절을 주해하는 방식으로 모태신앙의 성경적 타당성 여부에 관해 비판적으로 진단해 봤다. 결과는 부적합하다는 결론이다. 증거본문으로 제시된 성경구절들은 한결 같이 언약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결코 혈통적인 연대성의 개연성을 허락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은혜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한 성령의 인침과 내주의 역사를 통해서만 거듭남과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의 신앙에 비로소 바르게 접촉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언약의 외적(표면적)이고 내적(이면적)인 이중 구조성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면 표면적으로만 접근한 나머지 이면과 관련된 언약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모태신앙이란 개념은 신약시대에 성전 개념과 더불어 성경적인 관점으로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의 전통이 하나님의 계시에 선행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모태신앙이란 용어는 성경적으로 적절한 표현일 수 없다. 타당성을 찾기 어렵다. 사용상 절제와 자제가 필요하다.


옮긴글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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