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학

[스크랩] 성도의 견인에 대한 소고

수호천사1 2016. 10. 24. 10:10

성도의 견인에 대한 소고

 

 

 

 1. 성도의 견인(聖徒의 堅忍, perseverance)

 

성도의 견인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성도가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질 수 없으며, 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는 캘빈주의 교리 중의 하나로서, ‘성도의 궁극적인 구원’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견인’이란 성령께서 신자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시작하시고, 계속하시어, 마침내 그것을 완성하시는, 성령의 계속적 역사라 하겠다.

즉,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에 의해 선택되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의 은총으로써 보호받기 때문에 비록 그들이 유혹받고 죄를 짓기도 하지만 결코 ‘양자의 은총’을 잃거나, ‘의인의 신분’을 빼앗기거나, ‘죽음에 이르는 죄’를 범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도는 마지막 영화를 얻을 때까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을 것이며, 언제든지 그러한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여러 부분(요10:28-29; 롬11:29; 빌1:6; 살후3:3; 딤후1:12; 4:18; 요일3:9; 5:18)에서 그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이 교리는 성도를 거짓 평안과 태만, 방종, 부도덕으로 이끈다는 비난을 받곤 한다. 물론, 성경은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받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열심과 기도를 도외시한 채 보호받는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성도는 하나님의 견인 사역에 믿음과 순종으로 협력해야 한다(행27:25). 하나님은 견인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성도에게 도덕적 반응, 성화(聖化)를 요구하신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교리문답, 도르트 신조에서 나타난 ‘성도의 견인’에 대해 살펴보고 이 교리를 체계화 시켜보고자 한다.

2.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의 내용

 성도의 견인에 대한 내용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7장에 다음과 같이 진술되어 있다.

 [ 17장 성도의 견인에 대하여 ]

 

1.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받아들이시고, 효력 있게 부르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상태로부터 전적으로 또는 최종적으로 떨어져 나갈 수 없고, 다만 끝까지 그 가운데 확실히 인내하여, 영원히 구원을 얻을 것이다.

2. 성도들의 이러한 견인은 자기 자신의 자유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값없이 주시고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선택 작정의 불변성에 의한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기도의 효력, 그들 안에 성령과 하나님의 씨의 거하심, 은혜 언약의 본질에 의한 것이다. 성도의 견인에 대한 확실성과 무오성은 또한 이 모든 것에서 기인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단과 세상의 유혹, 자기 안에 남아있는 부패의 만연함, 자기를 보호하시는 방편들에 대한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극악한 죄에 빠지기도 하고, 잠시 그 가운데 머물러 있기도 한다. 그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고, 그분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자기의 은혜와 위로를 어느 정도 빼앗기게 되고, 자기 마음이 굳어지고, 자기 양심이 훼손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모욕하고, 자기 스스로에게 일시적인 징계를 초래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받아들여 부르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결코 자신의 구원을 완전히 상실할 수 없고, 구원받지 않은 상태에서 인생의 종말에 이를 수도 없으며, 은혜의 상태에서 끝까지 인내하여 영원히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신자들 자신의 힘이나 수단,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중보기도’와 ‘성령님의 거하심’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때로는 사단과 세상의 유혹에 의해 죄에 빠지기도 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끝까지 인내할 수 있게 해 주신다고 요약할 수 있다.

견인 대상은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받아들여 부르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한 자’에 국한하며, 견인의 방법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중보기도’와 ‘성령님의 거하심’을 통해서만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3. 대교리문답

 대교리문답 78~81문에 성도의 견인에 대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진술되어 있다.

 


 대78. 왜 신자의 거룩하게 됨이 완성될 수 없는 것인가?

☞ 신자의 거룩하게 됨이 완성될 수 없음은 그들의 모든 부분에 죄의 잔재가 묵고 있기 때문이며, 영을 거슬러 싸우는 끊임없는 육의 정욕 때문이다. 이로서 신자들은 흔히 시험에 들어 여러 가지 죄에 빠지게 되어 그들의 모든 신령한 봉사에서 방해를 받는다. 그래서 그들의 최선을 다해 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목전에는 불완전하고 더러운 것이 된다.

 

대79. 참 신자들이 그들의 불완전과 그들이 빠진 여러 가지 유혹과 죄의 이유로 은혜의 상태에서 타락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사랑과 그들에게 궁극적 구원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예정과 언약그리스도와의 나눌 수 없는 연합과 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간구와 그들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영과 씨로 인하여 참 신자들은 전적으로나 종국적으로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기까지 보존된다.

 

 대80. 진실한 신자들은 그들이 은혜의 상태에 있음과 구원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 견인될 것을 무오하게 확신할

         수 있는가?

☞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고 그 앞에서 모든 선한 양심으로 행하고자 노력하는 자들은 비상한 계시 없이도, 하나님의 약속의 진실성에 근거한 믿음과, 그들에게 주신 생명의 약속을 주신 그 은혜를 스스로 분별할 수 있도록 하시며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그들의 영으로 더불어 증거 하시는 성령에 의하여, 그들이 은혜의 상태에 있음과 구원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 견인될 것을 무오하게 확신할 수 있다.

 

대81. 모든 진실한 신자들은 그들이 지금 은혜의 상태에 있음과 장차 구원받을 것을 항상 확신하는가?

☞ 은혜와 구원의 확신이 신앙의 본질에 속한 것이 아니므로, 진실한 신자들도 확신에 이르기까지 오래 기다릴 수 있으며, 이러한 확신을 누린 후에도 다양한 병리, 죄, 유혹, 이탈 등으로 인하여 확신이 약화되거나 중단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버려두지 않고 동행하며 붙드심으로 결단코 전적인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지키신다.

참 신자들은 영을 거슬러 싸우는 육의 정욕 때문에 거룩함을 완성할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간구와 하나님의 영과 씨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기까지 보존되며, 확신이 약화되거나 중단되기도 하지만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끝까지 지키신다고 요약할 수 있다. 견인의 대상은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고 선한 양심으로 행하고자 노력하는 ‘참 신자’이다. 견인의 방법은 구원의 확신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우리와 연합하고 있는 ‘예수님의 계속적인 간구’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를 구원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보존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성도의 견인에 대한 도르트신조의 설명

도르트신조의 다섯째 교리인 ‘성도의 견인’에서 참 신자의 견인 교리에 대해 더 탁월하게, 완벽하게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이 진술은 명쾌하고 균형 있을 뿐만 아니라 위로를 주며, 목회적으로 유익하기까지 하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 1 장 :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통하며 성령으로 새롭게 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비록 육체의 범죄와 육체의 연약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 했다 할지라도 죄의 지배와 그 노예 상태로부터 구원받은 것이 사실이다.

 

제 2 장 : 인간이 불완전함으로 범하는 날마다의 죄와 결점은 성도로서의 최선의 일을 하도록 만든다. 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죄와 결점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을 낮추게 하며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께만 의지하도록 만드는 영원한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성령으로 기도하며 경건을 연습함으로써 더욱 더 육체를 제어하고 완전한 목적을 향하여 나감으로 마지막에 이 육체의 죽음에서 구원받아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어린양과 함께 통치하게 되는 것이다.

 

제 3 장 : 이 죄에 거하는 성도들, 또한 이 세상의 사단의 유혹으로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이 스스로 강하다고 여기는 사실을 떨쳐버리지 않는 한 이 은혜 안에 거하지 못한다. 그러나 은혜를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은 성도들을 이 세상 끝까지 자비로 지켜주시고 능력으로 보존해 주신다.

 

제 4 장 : 믿는 자들을 은혜 속에서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연약한 인간이 거스릴 수는 없으나 회심한 이후에라도 육신이 연약하여 하나님의 성령 안에 항상 거하지는 못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나 죄에 빠져 육체의 정욕에 유혹되기도 한다. 따라서 성도들은 유혹에 빠지지 않게 늘 깨어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을 게을리 할 때 성도라도 육신적인 이 세상의 사단의 크고 무서운 죄에 빠질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심으로 실제로 이 죄에 빠질 수도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다윗과 베드로와 그 외의 다른 성도들이 연약함으로 인하여 타락에 빠진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제 5 장 :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님께 심히 거스리는 죄를 범함으로써 성령을 근심하게 만들고 믿음의 사역을 방해하며 그들의 양심을 파괴하는 일이 생기고 잠시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기도 하는데, 이럴 때에 그들이 진심으로 회개하여 그 길에서 돌아서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빛이 그들에게 다시 임하게 된다.

 

제 6 장 : 하지만 변함없는 하나님의 택하심에 기초한 그의 풍성하신 은혜는 비록 성도들이 심각한 죄에 빠져 있을 때라도 성령을 거두시는 것이 아니며,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 은혜를 잃음으로 의인의 상태에서 떨어져 나가도록 고통 가운데 방치해 두거나, 성령을 거스리는 죄악을 범하며 전적으로 타락되어 영원한 멸망에 빠지도록 하시지도 않으신다.

 

제 7 장 :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멸망에 빠져 있는 이 세상 중에서도 결코 썩지 않는 마음의 씨를 보존해 주신다. 다시 말해서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그들이 회개하여 새롭게 되고, 그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마음속에 탄식하도록 함으로 중보자의 보혈로 죄 사함을 얻고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여 믿음으로 그 은혜에 감사하며 두려운 마음과 수고로써 그들 자신의 구원에 이르도록 부지런히 역사하신다.

 

제 8 장 : 그러므로 믿음과 은혜에서 전적으로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며 범죄로 인한 멸망에서 우리가 구원된 것은 인간의 공로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의한 것이다. 비록 인간은 실수하여 범죄 함으로 마음속에 결심이 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변하거나 실패하지 않으며 그 약속이 취소되는 일이 없다. 또한 그리스도의 공로와 그 도고의 기도 그리고 성도를 보호해 주시는 그 모든 것은 성령의 인 치심으로 되는 일이므로 결코 좌절하거나 무효화되는 일이 없다.

 

제 9 장 : 참된 신자들은 그들이 지닌 믿음의 정도에 따라 구원을 얻도록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심과 믿음으로 성도를 보존해 주심에 대한 확신을 갖는데, 이 확신을 따라서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교회의 참 지체가 되며 앞으로도 계속 지체가 된다는 사실과 죄 사함을 얻어 영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믿는 것이다.

 

제 10 장 : 그러나 이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해 주는 것과 어긋나는 그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위로가 되시는 그 계시된 말씀, 즉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의 믿음으로만 이뤄지는 것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 기업이 된다고 말하는 성령의 증거로서 되는 것이다(롬 8:16). 이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선한 양심을 가짐으로 선한 일을 이루도록 하신다. 만일 하나님에 대한 약속을 소유하지 못하면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는 것이다.

 

제 11 장 : 성경이 증거 하는 바는 신자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여러 가지 육신적인 의심으로 마음의 갈등을 갖게 되며 심한 유혹으로 믿음과 성도의 견인에 대한 확신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을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위로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성도를 견인토록 하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사람이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고 다만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케 하신다(고전 10:13).

 

제 12 장 : 그러나 성도를 인내하도록 하신다는 이 확신은 교만한 마음으로 이 세상의 안일함 속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겸손한 마음과 충성심, 참된 경건함과 모든 시험 중에서의 참음, 그리고 뜨거운 기도와 인내심 그리고 진리를 고백하며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이 모든 일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를 인내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선한 일을 행함으로 이 은혜에 보답해야 마땅한데, 이는 성경이 증거 하는 바이며 성도들이 체험한 신앙이었던 것이다.

 

제 13 장 : 하나님께서 성도를 인내하게 하신다는 이 확신은, 죄악에서 구원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건함을 무시하고 세상으로 나가도록 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께서 정하신 길 안에서 조심스런 마음을 계속 가져서 그 길로 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그 사랑을 남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서 떠나는 일이 없고 따라서 양심이 고통을 받는 지경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시는 것이다.

 

제 14 장 : 복음을 외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것같이 우리 속에서 이 은혜가 역사함으로써 하나님은 우리를 보존해 주시되 그 말씀을 듣고, 보고, 묵상하며 또한 이 말씀에 의하여 권면하고 책망하며, 그 말씀의 약속에 의지하여 성례를 행하게 하심으로 그의 성도들을 지켜 주시는 것이다(견인의 방식).

 

제 15 장 :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성도의 견인에 관한 이 교리와 계시된 말씀 속에서 충분히 나타난 확신성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만 자신의 이름의 영광과 성도를 향하신 위로를 심어주셨기 때문이다. 사단은 이를 미워하고 이 세상도 이를 조롱하며,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한 자들이 이를 남용하고 이단들도 이를 적대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부된 성도들은 날마다 이 사랑을 갖고 마치 놀라운 보배를 가졌듯이 이를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이 세상 끝날 까지 성도를 보호해 주실 것이요 따라서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즉 성부, 성자, 성령께만 영원토록 영광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멘.

 

제1장에서 견인의 대상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통하며 성령으로 새롭게 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밝힌 후에, 제2장에서 인간의 죄와 결점은 성도로서의 최선의 일을 하도록 만들며,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을 낮추게 하며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께만 의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제3장에서는 죄에 거하는 성도들,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 은혜 안에 거하지 못할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은 성도들을 이 세상 끝까지 자비로 지켜주시고 능력으로 보존해 주신다고 계속 말하고 있다.

제4~6장에서는 참된 신자들도 조심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다윗과 베드로와 같이 심각한 죄에 빠질 수 있으나, 죄에 빠질 때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빛이 그들에게 다시 임하게 되며, 하나님의 택하신 성도들이 심각한 죄에 빠져 있을 때라도 성령을 거두시는 것이 아니며, 고통 가운데 방치해 두거나, 영원한 멸망에 빠지도록 하시지도 않으신다고 한다.

제7~8장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효력 있게 새롭게 하셔서 회개하게 할 것이며, 이것은 인간의 공로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강조하고 있다.

제9~11장에서 참된 신자들은 하나님의 교회의 참 지체가 되며 앞으로도 계속 지체가 된다는 사실과 영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믿어야 하며, 이는 우리의 위로가 되시는 그 계시된 말씀, 즉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의 믿음과 성령의 증거로서 이루어진다고 계속 강조하고 있다. 또한 여러 가지 육신적인 의심이나 확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하였다.

제12~13장에서는 성도의 견인에 대한 확신은 교만한 마음으로 부주의한 삶과 도덕적 해이의 원인이 되기는커녕 경건의 동기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제14~15장에서는 하나님의 견인의 은혜가 역사하여 우리를 보존해 주시되 그 말씀을 듣고, 보고, 묵상하며 또한 이 말씀에 의하여 권면하고 책망하며, 그 말씀의 약속에 의지하여 성례를 행하게 하심으로 그의 성도들을 지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만 자신의 이름의 영광과 성도를 향하신 위로를 심어주셨기 때문에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성도의 견인에 관한 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 끝날 까지 성도를 보호해 주실 것이요 따라서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즉 성부, 성자, 성령께만 영원토록 영광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말로 글을 맺고 있다.

 

요약하면

견인의 대상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통하며 성령으로 새롭게 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며, 참된 신자들도 조심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심각한 죄에 빠질 수 있으나,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빛이 그들에게 다시 임하게 되며, 이것은 인간의 공로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강조하고 있다.

성도의 견인에 대한 확신은 교만한 마음으로 부주의한 삶과 도덕적 해이의 원인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경건의 동기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여 우리를 보존해 주실 수 있도록, 말씀을 듣고, 보고, 묵상하며 또한 이 말씀에 의하여 권면하고 책망하며, 그 말씀의 약속에 의지하여 성례를 행하게 하심으로 그의 성도들을 지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 끝날 까지 성도를 보호해 주실 것이요 따라서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즉 성부, 성자, 성령께만 영원토록 영광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도르트문트 종교회의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있는 모든 형제들에게 경건하게 살아갈 것을 권면하는 동시에 대학이나 교회 안에서 이 교리를 조심스럽게 가르칠 것을 바라고 있다. 글을 쓰는 데 있어서나 설교를 함에 있어서 이 가르침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경건한 생활을 이루며 고난당한 영혼을 위로하도록 해야 하며, 성경에 의한 믿음의 견지에서 사람들의 감정뿐만 아니라 그 언어까지 잘 규정하며, 성경의 참 의미를 가지고 인간이 알 수 있는 그 이상의 불필요한 한계를 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도록 하고, 거만한 마음으로 남을 공격한다는 구실로 또는 중상 모략하는 무례한 궤변론자들에게 개혁 교회의 교리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성부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만민에게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진리 안에서 거룩케 하시며, 잘못을 범하는 사람들에게 참 진리를 주시며 건전한 가르침을 비방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시며, 그 진실한 말씀의 사역자들에게 지혜와 분별의 영을 내려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증거 하게 하며,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잘 인도하게 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아멘.

 

5. 잘못된 주장에 대한 배격

도르트신조에서는 지금까지 설명한 교리에 대한 잘못된 주장을 종교 회의에서 배격하는 내용도 담고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장 1] 진실한 성도들의 견인은 택함 받음의 결실도 아니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얻어진 하나님의 선물도 아니요 다만 새 언약의 조건일 뿐인데, 이는(마치 그들이 주장하듯이) 자기의 결정적인 선택과 의로움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자유 의지를 통하여 이 조건을 채워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와는 달리 성경은 성도의 견인은 택함 받은 데에서 나오는 것임을 증거하며 택함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그의 중보 되심으로 인하여 이 성도의 견인을 받는 것이다(롬 11:7; 롬 8:32-35).

 

[주장 2]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인내할 수 있도록 충분한 힘을 공급해 주시는데 이것은 성도들이 그 의무를 이행할 때에 되는 것이요, 비록 성도들이 인내하기에 충분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셨다 하더라도 그것은 성도들이 인내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좌우될 뿐이다.

이것은 펠라기우스의 생각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으로, 인간에게 자유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 같은 생각이기는 하나, 하나님의 영광을 탈취하는 잘못된 주장인데,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모든 감사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돌릴 것을 말씀하고 있다. 또한 끝까지 견고케 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주장 3] 참 신자요 중생한 사람일지라도 의롭다 하는 믿음에서 떨어져 은혜와 구원에서 멀어질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구원에서 벗어나 영원히 버림받을 수도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칭의, 중생함,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계속하여 보급해 주시는 이 모든 사실을 무효화시키는 그릇된 주장으로서, 롬 5:8~9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말과 모순되는 것이며, 사도 요한일서 3:9와 요한복음 10:28~29에 나타난 요한의 말과도 모순되는 것이다.

 

[주장 4] 참 신자요 중생한 사람일지라도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을 수 있으며 성령을 거스리는 죄를 범할 수 있다.

사도 요한은 그의 첫 번째 서신인 요한일서 5:16~17에서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는 사람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들을 위하여 구하라 하지 않노라고 말한 후에 계속하여 요한일서 5:18에서 예수님께서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게 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주장 5] 우리는 특별한 계시가 없이는 이 세상에서 미래에 있을 성도의 견인에 대한 아무런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위의 주장은 참 신자들이 가지는 확실한 위로를 이 세상에서 빼앗아가며 가톨릭교회의 잘못된 신앙이 교회 안에 다시 침투해 오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성도의 확신을 그 어떤 특별하고 비정상적인 계시에서 찾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자녀에게 임하는 성령의 증거에서, 또한 하나님의 일관된 약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특별히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9). 또한 요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

 

[주장 6] 성도의 견인이나 구원에 관한 확신은 그 본성을 따져보면 나태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거룩함이나 선한 행동, 또는 그 밖의 다른 경건한 행위를 하는 데 방해할 뿐이요, 오히려 그러한 확신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위의 주장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과 내재하는 성령의 역사를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사도 요한의 첫 번째 서신 요한일서 3:2~3에 나타난 것과 같이 예수님이 나타나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되며,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나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는 내용에 어긋난다. 또한 이들의 주장은 신약과 구약에 나오는 성도들의 생애와도 모순되는데, 신·구약의 성도들은 믿음의 인내와 구원에 관하여 확신을 가졌으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기도하며 경건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 결코 게으르지 않았음을 성경이 보여주고 있다.

 

[주장 7] 잠시 동안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과 칭의를 받고 구원의 믿음을 가진 사람과의 차이는 단지 그 기간에 있을 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13:20과 누가복음 8:13 등에서 이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셨다. 즉 그 말씀은 잠시 동안 믿은 사람과 참 신자와의 차이가 세 가지 면에서 있는데, 첫째로 일시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돌 위에 떨어진 씨앗과 같으나 참 신자는 좋은 땅 위에 (마음 밭에) 떨어진 씨앗과 같으며, 둘째로 전자(前者)는 뿌리가 없으나 후자(後者)는 견고한 뿌리가 있으며, 셋째로 전자는 열매가 없으나 후자는 계속적인 인내를 가지고 많은 결실을 맺게 된다고 하셨다.

 

[주장 8] 은혜를 상실한 사람이 다시 새롭게 된다든지 또는 몇 번씩 새롭게 된다는 일은 불합리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의 썩지 아니할 씨, 즉 우리가 다시 새롭게 되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으로서 베드로전서 1:23에 나타난 사도 베드로의 말과 모순된다.

 

[주장 9]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들이 쓰러지지 않고 계속하여 믿음에 거해야 할 것을 그 어디에서고 기도하신 적이 없다.

도르트 신경은 벨기에 교회에서 논쟁되어 왔던 다섯 조항에 관한 정통 교리를 분명하고 간결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선언한 것이며, 동시에 얼마 동안 말썽을 일으켰던 잘못된 주장을 지적하여 이를 배격한 것이다. 이 종교 회의에서 결정된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동시에 개혁 교회의 신앙고백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 도르트 신조는 모든 진리와 공의와 은혜를 거스린 채 사람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말로 현혹시키려는 몇몇 사람들의 잘못됨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데,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예정론과 여기에 첨가된 몇몇 요소들에 관한 개혁교회의 교리는 그 특징적인 경향에 비춰 볼 때 사람들에게서 모든 경건한 신자의 의무를 무시해 버리고 있으며, 이 세상적인 사단에 의해 조작된 일종의 마취제이다. 또한 이것은 사단의 견고한 요새이며, 여기에서 사단은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며 실망과 나태함의 화살로서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키며, 하나님을 죄와 불의의 원인으로 돌리며 또한 하나님을 폭군이요, 위선적인 분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온갖 흉악한 범죄를 마음대로 자행하도록 유도되고 있다

 

둘째, 이 교리는 유기된 사람들이 심지어 성자들이 모든 선행을 진실로 행한다 할지라도 그 행위는 그들이 구원 얻는 데 아무런 보탬이 되지를 못한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선행이나 죄악과는 무관하게 그 분 마음대로 결정하시어서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징벌에 처하도록 내버려두시며, 더욱이 그들을 만드신 목적도 영원히 벌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이 교리는 가르치고 있으며 즉 선택이 신앙과 선행의 기초와 원인이 되는 것이며, 동시에 정죄(유기)는 불신과 불경건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도르트 종교 회의에서는 개혁 교회의 모든 신앙을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판단해 주시되, 위에서 잘못 말한 사람들의 중상모략으로부터가 아니요, 가르치는 자가 정직하지 못하게 인용했다든지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곡해해서 인용하는 등의 사사로운 표현도 아니요, 교회들의 공적인 신앙고백, 즉 종교회의의 모든 교회가 다 같이 찬성하여 확정지음으로 정통교리로서 선포한 것이다.

 

6. 결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교리문답, 도르트 신조에서 언급한 성도의 견인에 대해 살펴본 결과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성도의 견인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성도가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질 수 없으며, 구원을 상실할 수 없으며,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의 은총으로써 보호받기 때문에 비록 그들이 유혹받고 죄를 짓기도 하지만 결코 ‘양자의 은총’을 잃거나, ‘의인의 신분’을 빼앗기거나, ‘죽음에 이르는 죄’를 범하게 되지 않는다.

 

이처럼, 성도는 마지막 영화를 얻을 때까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을 것이며, 언제든지 그러한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이 교리는 성도를 거짓 평안과 태만, 방종, 부도덕으로 이끈다는 비난을 받곤 한다. 물론, 성경은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받지만 그렇다고 인간 편에서의 주의와 열심과 기도를 도외시한 채 보호받는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견인의 사역에 믿음과 순종으로 협력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견인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성도에게 지속적인 성화를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받아들여 부르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결코 자신의 구원을 완전히 상실할 수 없고, 구원받지 않은 상태에서 인생의 종말에 이를 수도 없으며, 은혜의 상태에서 끝까지 인내하여 영원히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는 신자들 자신의 힘이나 수단,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중보기도’와 ‘성령님의 거하심’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때로는 사단과 세상의 유혹에 의해 죄에 빠지기도 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끝까지 인내할 수 있게 해 주신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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