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스크랩] 예배가 콘서트인가 설교가 중심인가?

수호천사1 2016. 10. 15. 22:51

예배가 콘서트인가 설교가 중심인가? 


필자가 신학공부를 나름 독학으로 10년이상 꾸준히 이어가면서 여러신학 중에 역사신학과 교회사 그리고 세계사와 고대근동역사에 관심을 두고있습니다.

두번째가 설교학이며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 본문 이해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에도 국내 정상급 설교학 교수의 강의를 들었으나 영양가없는 사변론적 강의가 대부분이라 실용적으로 적용되기보다 파편적 신학과 요령을 익히는 강연에 불과했습니다.

누구에게 어떻게 배워야 설교를 잘 할 수있을까? 고민하는 목사들에게 간단히 설명을 못하겠으니 필자 역시 답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릴 말씀은?

"설교는 1)신학의 꽃이고 2)종합 예술이며 3)본문의 이해가 우선이며 4)수사학적 테크닉이 어울려진 일용할 양식입니다.

 

교인이 설교를 듣고서 이해를 못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성경과 연결됨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교인의 몫입니까? 설교자의 몫입니까?

만족하지 못한 교인이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목사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하던대로 계속하여 설교를 계속한다면 그는 목사가 아닙니다.

 

교인들에게 예배에 목숨을 걸어라! 혹은 예배를 회복하라! 명령하기 이전에, 목사가 먼저 설교에 목숨을 걸어야 하고 설교에서 하나님 말씀 즉,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 그리고 부활이 매번 강조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열심과 성령님의 견인하심이 늘 설명해야 합니다.

이것이 설교의 본질입니다.

 

목사가 설교에 목숨을 걸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지 않은 설교를 하는 예배는 결단코 목숨걸수도 회복되지도 않습니다.

예배에서 경건이 사라지고 엄숙이 없는 자리에 인간의 감동과 감격이 자리를 차지하고서 두렵고 떨리는 심령이 소멸된 예배는 콘서트입니다.

 

이에 동조하여 인간의 귀를 자극하는 음악과 인간의 마음을 유혹하는 설교는, 찬양도 아니고 하나님 말씀의 선포도 아니며 예배의 자리에 함께할 수없는 푸닥거리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예배의 중심은 설교이고, 설교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삶이 예배라고 할찌라도 삶의 중심이 하나님의 말씀을 노래하는 것이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일상입니다.

 

목사가 교인에게 예배에 목숨을 걸며 회복하라! 외치지만 예배에서 온갖 악기와 유행에 민감한 노래와 감성을 자극하는 가사와 현란한 스크린 그리고 감정을 이입한 기도소리 그리고 종교적 만족에 도취되는 간구를 통해 교인의 마음을 훔치는 연기를 통해 인간의 환심을 산들 시간이 지나면 교인들은 압니다.

종교 마약이라는 사실을..

 

빈약한 설교는

기복주의 경향으로 흐르거나 종교생활의 열심과 순종을 역설합니다. 더하여 세상의 성공신화를 강조하여 승자독식주의를 불러 천민자본주의를 합리화시키면서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슬로건으로 부르짖고 외치고 손을 들어 떨면서 눈물샘을 자극하는 연출로 예배를 대신하려는 종교 마케팅에 열중합니다.

연신 아멘!을 외치면서 나와서는 은혜를 받았다고 하나, 삶은 거룩되지 않는 세상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마치 식사 후 담배 한 개피를 피우는 몽롱함과 같은 예배는 인간의 폐를 병들게 하듯이 심령과 영혼을 망가트립니다.

 

풍성한 설교는

이 땅에 복을 배설물로 여기며 자신을 뒤돌아보고 이웃을 배려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굳건히 하여 단아한 모습으로 교회문을 나오며 생활이 변하여 성결되기를 원하며 경건의 삶을 추구하므로 심령이 춤을 추면서 영혼이 비옥한 옥토처럼 일상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립니다.

하나님 말씀의 권능은 설교를 통한 교인의 변화이며 변화는 사람과 사람 관계를 성숙시켜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나누어 부족함이 없는 삶의 현장에서 나타납니다.

앎이 삶으로 변화되는 회복이지 종교 스테로이드에 취한 환각적 위선이 아닙니다.

 

예배의 요소는

1. 찬양: 하나님 영광을 노래하는 것이고

2. 기도: 하나님 이름을 높여 삶의 거룩을 기원하는 것이며

3. 헌금: 을 바쳐 이웃을 이롭게 하여

4. 말씀: 하나님의 뜻을 내려받아

5. 교제: 만찬(성찬)으로 먹고 마시며 화목하는 의식이며 삶을 표현하는 소통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광고"가 끼여서 홍보를 하는 것은 온당치 않으며, 스크린으로 선교가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선교를 선동하는 행위는 명백한 예배의 훼손이고, 교인의 소식을 알리고 교회의 행사를 홍보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지 못해서 교인에게 은혜로 다가오지 못하니 세상의 스크린을 동원하여 세상의 볼거리를 제공하여 콘서트장을 만드는 행위는 설교의 빈약성을 논증하는 꼴불견입니다.

 

설교가 바로된 교회를 찾아가보면

예배가 콘서트장이 아니라 휘황찬란하지 않습니다. 복잡하지 아니하며 심플하게 진행됩니다.

☆설교가 중심이 된 순서임을 즉각 알 수있으며 대체로 설교시간이 한시간 정도를 차지합니다.

☆대표기도는 고백, 회개, 감사, 교인의 영혼을 위한 간구, 하나님 나라를 위한 소망 등으로 이루어지며

☆헌금 바구니를 돌리거나 내용을 따로 읽거나 호명이 없습니다.

☆찬양은 성가대 혹은 찬송가를 부르며 C.C.M(곡은 대중가요이나, 가사는 기독교적)이나 복음송은 부르지 않습니다.

☆만찬(성찬)은 일반 교회보다 휠씬 자주하거나 매번합니다.

□광고는 대자보나 홍보판에 기록이 되어있거나 예배가 끝나는 즉시 사회자가 마이크로 알려줍니다.

 

목사의 설교가 교인에게 은혜로 전달되지 않는 예배는 반드시 푸닥거리나 콘서트로 설교의 부족한 부분을 때우려합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려는 사명을 저버리고 기복과 성공신화를 추구하는 것 이상으로 타락하는 것이 예배의 근본을 왜곡시키는 종교의식으로 흐르는 문제를 낳습니다.

예배의 꽃 설교의 타락은 예배의 타락으로 이어져 종교적 스테로이드를 복용하여 종교마약으로 끝나게 됩니다.

목사가 예배에 목숨을.. 혹은 예배의 회복을 주장하지만 실상은 종교마약의 양을 늘리는 아편장수에 불가합니다.

 

지나친 흡연이 좋지 않듯이 지나친 C.C.M 찬양은 좋지 않습니다. 소량의 흡연은 좋을 수있듯이 소량의 C.C M찬양도 좋을 수있습니다.

하지만 담배없이도 건강한 삶을 살 수있듯이 C.C.M없이도 건강한 믿음생활이 가능합니다.

바른 믿음생활은 언제나 말씀의 바른 해석인 설교가 중심이고 꽃입니다.

 

예배는 교육을 목적으로하는 교육장도 아니며 참석자의 마음에 감동을 목적으로 하는 콘서트장도 아니며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교제를 목적으로 하는 화목제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주제는 교제이며 화목제입니다.

교회는 만찬을 성찬으로 먹고 마시며 소통하는 예배를 기원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의 모형입니다.

 

- 배재인 씀 -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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