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성전 제사와 현대 교회 예배의 변천에 관한 연구
목 차
Ⅰ. 序 論
A. 연구의 목적..................................................................1
B. 연구 방법과 범위.........................................................3
Ⅱ. 本 論
A. 성막에 관한 연구...........................................................4
1. 성막의 역사...................................................................................4
a. 성막이란 무엇인가?
b. 성막의 변천 과정
c. 성막의 역사적 변천
2. 성막의 모형과 기구 배치도.........................................................14
a. 성막의 모형
b. 기구 배치도
3. 이스라엘 12지파의 야영도와 행진순서.......................................14
a. 성막을 중심으로 한 야영도
b. 행진 순서
B.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16
1. 솔로몬 성전..................................................................................17
a. 성전의 위치
b. 성전의 기본구조
c. 솔로몬 성전의 역사
d. 의 의
2. 스룹바벨 성전..........................................................................20
a. 스룹바벨 성전 건축의 역사
b. 관련 역사
c. 의 의
3. 헤롯 성전....................................................................................25
a. 헤롯 성전의 건축 동기
b. 헤롯 성전 관련 역사
c. 헤롯 성전의 규모와 구조
d. 헤롯 성전의 모형
e. 의의
4. 성경에 나타난 성전 관련 사건들...............................................33
C. 제사의 종류와 방법................................................................34
1. 제사의 종류와 영적 의미............................................................34
a. 번 제
b. 소 제
c. 화목제
d. 속죄제
e. 속건제
2. 제사의 방법과 영적 의미............................................................47
a. 화 제
b. 거 제
c. 요 제
d. 전 제
3. 성막(전)과 절기..........................................................................51
a. 산술 역법에 의한 기념절기
b. 사건에 따른 기념절기
c. 농경 역법에 따른 절기
D. 예배의 변천사..........................................................................58
1. 족장시대의 예배..........................................................................58
2. 율법시대의 예배..........................................................................59
a. 성전에서의 예배
b. 규정된 예배
c. 위탁적 예배
d. 의식적 예배
e. 상징적이며 모형적 예배
3. 포로기 이후 시대의 예배............................................................61
a. 회당 예배 실시
b. 회당의 구성과 운영
c. 회당 예배의 순서
d. 회당의 건물
e. 성전 예배와 회당 예배의 차이
4. 예수시대의 예배.........................................................................66
5. 사도시대의 예배.........................................................................67
a. 사도시대 예배의 특징
b. 사도시대 예배의 종류
6. 중세시대의 예배.........................................................................70
a. 서방 교회의 예배
b. 동방 교회의 예배
7. 종교개혁시대의 예배..................................................................76
a. 루터파 교회의 예배
b. 개혁파 교회의 예배
c. 영국교회(성공회) 예배
8. 현대의 예배................................................................................80
a. 자유교회의 예배
b. 오순절 교회의 예배
c. 미국 개척시대의 예배
d. 한국 개신교의 예배
Ⅲ. 結 論..........................................................................................86
參 考 文 獻...................................................................................................................................89
Ⅰ. 序 論
A. 연구의 목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배 받으시길 원하시는데 우리가 행위로서 드릴 수 있는 경배방법 중 최고가 예배이다.
이 예배는 사람의 지혜나 발견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공하신 교제의 방법으로서 하나님은 사랑을 제공하시고 인간은 예배로서 응답하게 하신다.
그래서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聖)에 의하여 양심을 각성시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리로써 지성(知性)을 기르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름다우심(美)에 의하여 상상력을 맑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愛)에 마음을 여는 것이며, 하나님의 목적에 뜻(意志)을 바치는 것이다.1)
그런데 오늘날 과연 이런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예배는 그리스도인들의 교회생활의 핵심이며 교회의 행위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나 교인들은 예배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두지 않고 형식에 치우치고 있다.
예배 순서 하나하나가 뜻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여 볼 겨를도 없이 그저 본대로 남이 하니까 좋을 듯싶어서 습관적으로 답습을 계속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에 감사해서 기쁨으로 응답하기 보다는 구경꾼의 입장에서 순종과 결단의 태도로 말씀선포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들어주고 평가하는 태도로 복음을 증거하고 전파하기 보다는 예배를 병을 고치는 예배, 소원성취 하기위한 예배, 복 받으려는 방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더 많다.
회중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집례자들 마저도 현실에 타협하고 회중의 눈치를 보며 인기를 얻기 위하여 예언자적 사명과 제사장직적 사명을 망각라고 있음은 실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요즈음 같이 교회 개혁을 부르짖는 소리가 높아져 가는 이때 예배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참된 의미를 찾는 변혁이 필요하다.
교회의 개혁은 예배의 변혁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16세기 종교개혁이 말해 주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배경을 구약에서는 성막과 성전예배를 중심으로 신약에서는 초대교회 예배부터 현대교회 예배까지 변천과정을 고찰 해 봄으로써 참된 예배의 의미를 알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예배를 찾고자 하여 본 논문을 기술하게 되었다.
B. 연구방법과 범위
하나님께서는 예배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본 논문의 연구 방법은 구약의 예배와 신약의 예배의 변천을 살펴봄으로서 좀 더 낳은 예배를 드릴 수 있었으면 하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예배의 방법을 알려 주신 구약의 성막에 대하여 살펴보고,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에 대하여 살펴보며, 성막과 성전 제사를 드릴 때 절대 필요한 제사의 종류와 방법, 그리고 구약과 신약의 전체적인 예배의 변천사를 연구해 봄으로서 예배의 귀중함과 역사적인 예배의 흐름을 알고자 한다.
본 논문은 성서적 또는 신학적인 관점에서 주로 문헌의 연구 방법을 취할 것이며 문헌의 연구 대상은 지금까지 연구 되어진 국내외 학자들의 저술과 논문을 통해서 나타난 관점들을 비교 고찰하여 성서적 신학적 견지에서 예배형태의 변천에 접근 하고자 한다.
구약의 성막과 성전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예표 된 기독론적인 의미는 신약에 와서 더욱 깊게 그 의미가 잘 드러나기에 제 1장 성막에 관한 연구와 제 2장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 연구(솔로몬 성전과 스룹바벨 성전, 헤롯 성전까지), 제 3장 성막(성전) 제사의 종류와 방법 및 영적의미, 요즘의 교회력에 해당하는 절기 예배까지 살펴보고자 한다.
제 4장 예배의 변천사에서는 족장과 율법시대의 예배, 포로기 이후 예배, 예수와 사도시대 예배, 중세와 종교개혁 시대의 예배와 현대의 예배에 이르기까지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의 부분에서는 내용을 간추려 정리하고 예배의 변천에 따른 앞으로의 우리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자 한다.
Ⅱ. 本 論
A. 성막에 관한 연구
1. 성막의 역사
a. 성막이란 무엇인가?
성막(聖幕)은 천막(Tent)이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의 광야생활로부터 솔로몬 성전시대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를 위한 장소로써 운반이 가능했던 성소(聖所)를 말한다.
또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늘에 거하시는 참 성전 되시는 예수 그리스로의 모형이며 예표이다(요 2:21, 계 22:21).
성막의 모든 기구들은 그리스도의 부분적인 성품과 사역을 예표하며 세 가지 이상의 의미가 있는데 그 첫째는, 성막이 하나님께서 그의 처소를 두신 하늘의 모형을 볼 수 있는 실체라는 것과 둘째는, 성막은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성막은 신자들이 예수님과 교제하는 장소, 곧 교회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모형이다.(Adolph Saphir)
성막은 전체와 각 부분에 있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예시하며 그 속에 있는 세밀한 내용마다 그의 사역에 관한 어떤 견해나 그의 인격에 대한 어떤 탁월함을 상징하고 있다.
이에 대한 증거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라고 하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성막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는 장소이다.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오셨던 곳이 성막이었고 그것은 신성과 인성이 만날 수 있는 단 한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여기서 성막에 대한 다른 명칭을 고찰 해 본다.
⑴ 성소(聖所, A Sanctury)
성막의 성격, 즉 거룩하게 구별된 것이라는 뜻으로 성소는 ‘성막’ 또는‘성전의 지성소’를 말하고 있다. 출애굽기 25장 8절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짖되”라고 하셨는데 성소는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하여 구별하여 지은 장소였다.
이곳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시와 증거를 알리기 위한 처소로 세상의 어떤 처소와도 다른 성별된 장소를 의미한다.
⑵ 회막(會幕, Tent of Meeting)
“너는 정월 초일일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출 40:2),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출 1:1)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는데 성막을 이스라엘회중과 하나님이 만나는 곳이라 하여 ‘회막’이라 불렸다. 회막(Tent of Meeting)이라는 표현이 어떤 영역(英譯)성경에는 ‘회중의 성막’(Tabernacle of the Congregation)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성막 안에서 드리는 모든 예배의식은 바로 이 성막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만나는 장소임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다.
⑶ 증거막(證據幕, Tent of testimony)
증거막이란 ‘증거하는 장막’이라는 뜻이다. 성막 그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증거막으로, 특히 율법의 두 돌판(십계명)은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 보이는 계명이므로 성막을 증거막이라 했다.
⑷ 장막(帳幕,Tent)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에 따라 지을 지니라”(출 25:9) 이 장막이라는 말은 원래 라틴어에서 기원된 단어로 단순히 ‘천막’(Tent)을 가리키나 히브리어의 본래 뜻은 ‘거주하는 장소’ (dwelling place)로 ‘정착하다’를 의미하는 것이다. 성막에 대하여 가장 많이 쓰여 진 명칭이 ‘장막’이다.
⑸ 성막(聖幕, Tabernacle)
“너는 성막을 만들되”(출 26:1) “너는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성막을 세울 지니라”(출 26:30)고 하셨는데 성막은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의 장소였다.
성막이란 ‘거룩한 장막’이란 뜻으로 성막이라고 하는 이유는 장막 속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 해 계시기 때문인데, 성막은 일반 거주용 천막(Tent)과 구별되는 것으로 하나님이 임재하심을 뜻하는 거룩한 장소이고 예배의 처소이다. 그리고 희생제물의 피를 의지해 인간과 하나님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⑹ 법막(法幕, Tabernacle)
법막이란 성전에 법궤가 있음을 강조해서 하는 말로 ‘법궤의 장막’의 준말이다. 법막 안에는 십계명의 두 돌 판이 들어 있는 법궤가 간수되어 있는 곳이므로 법막이라고 불렀다. 성막안의 어떤 기물도 성막을 총칭하는 이름으로 불러지지 않았는데 법궤만이 성막을 총칭하는 말로 불렸으니 그만큼 법궤가 중요한 위치임을 알 수 있다.2)
법막에 대하여는 역대하 24장 6절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불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레위 사람을 시켜서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회중이 법막을 위하여 정한 세를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거두게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씀하고 있다.
⑺ 하나님의 집(House of God)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삿 18:31) 여기서 하나님의 집이란 개념은 정착된 영구 거처를 뜻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진행하고 있는 동안에는 성막을 가리켜 하나님의 집이라 불렀다.
광야생활이 끝이 났음으로 성막을 이동할 필요가 없게 되어 성막이 한곳에 머무르게 되었고, 자연히 ‘하나님의 집’이라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임재 해 계시는 곳, 하나님께 제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한 곳이라 하여 주어진 이름이다.
⑻ 세상에 속한 성소(World Sanctuary)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禮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었더라.”(히 9:1) 여기서 언급하는 성소는 세속적(世俗的)인 성소가 아니라 ‘세상에 속한 성소’로 이 세상에 속한 성소라는 말은 그 성소가 세상 안에 있는 것이므로 물질적이요 임시적인 것임을 암시 해 주고 있다.
모형적인 의식의 시대에 속한 성막은 장차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게 될 시대를 예표 한 것이다.
무거운 ‘종의 멍에’는 사라지고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벼운 멍에’를 멜 시대가 온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3).
‘세상에 속한’ 성소는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식양대로 지어진 것으로, 이 같은 식양에 따라 세워진 성소와 성소의 각종 성물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막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다.
⒜ 만나는 장소(A Meeting place)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 5:18)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으나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게 되었다.
즉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과 하나님은 만나서 친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거하는 장소(A Dwelling place)
“그(그리스도) 안에는 신성(神聖)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 2: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 안에는 영광의 하나님과 능력의 성령이 거하시는데, 거룩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거하시는 곳인 하늘나라로 옮겨졌다.
⒞ 계시는 장소(A Reveling place)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 내셨느니라.”(요 1:18)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통하여 그의 성격(性格)을 계시(啓示)하셨으며 그의 사랑과 구속의 목적을 선포하셨다. 또한 성막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거룩하심과 죄에 대한 의로운 분노를 나타내셨는데, 이는 바로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로의 모습에서 신(神)의 무한한 영광과 거룩하심과 확고한 정의(正義)와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찾아볼 수 있다(롬 3:26).
그밖에도 요셉의 장막(시 78:67), 여호와의 집(수 6:24), 실로의 성막(시 78:60), 여호와의 장막(왕상 2:28), 여호와의 전(삼상 1:9, 3:3), 여호와의 성막(수 22:19, 대상 16:39), 증거의 장막(민 17:7-8, 행 7:46) 하나님의 처소(행 7:46)라는 명칭들이 있다.
b. 성막의 변천 과정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고 편재(偏在)하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특별한 곳을 택하셔서 영광을 드러내시며 그곳에서 인간들과 만나주시고 함께하시겠다고 하셨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하여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기까지 함께 하신다.
특별한 곳, 즉 거룩한 곳은 ‘성소’로 ‘성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다음과 같이 발전하였다.
⑴ 최초의 성소-에덴동산
최초의 성소는 에덴동산이며 이 시대를 무(無) 성소시대라 부른다.
에덴(히브리어)은 ‘기쁨’ 또는 ‘희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곳에서 인간과 함께 하셨으며, 아담을 만나시기 위하여 친히 에덴동산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영광을 드러내 보여 주셨는데 거기가 거룩한 장소 ‘최초의 성소’였다(창 3:8-13).
⑵ 두 번째 성소-제단
죄를 사하기 위해서는 먼저 단(壇)을 만들고 그곳에서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림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의 교통을 이룰 수가 있었다. 맨 처음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린 이들은 가인과 아벨이고 홍수심판 후에 노아가 단을 쌓고 짐승과 새를 번제로 드렸다(창 8:20-21).
본격적으로 제사를 드리고 단을 쌓은 것은 아브라함 때부터였으며, 창세기 12장 7절에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과 아브라함이 단을 쌓은 것이 기록되어 있다. 이후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열심히 제단을 쌓으며 제사를 드렸고(창 12:7-8, 13:18, 22:3-5), 이삭(창 26:25)과 야곱(창 33:18-20)도 열심히 제단을 쌓았으며, 이 제단에서 하나님과 교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제단은 하나님을 섬기는 두 번째 ‘성소’이다.
⑶ 세 번째 성소-성막
성막은 하나님이 거(居)하시는 처소이며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만남의 장소로 허락하신 곳으로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시작함에 있어서 모세에게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출 25:8)라고 명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생활에서 성막과 함께하였고 행진에 따라 성막을 모시고 행진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과 영원히 거할 고정된 장소를 갖기까지(왕상 6:1)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제단이 되었다. 성막은 하나님을 섬기는 세 번째 ‘성소’이다.
⑷ 네 번째 성소-성전
“이 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대상 29:1 下)고 하였는데, 이 성전은 하나님을 모시는 네 번째 ‘성소’였다.
⑸ 다섯 번째 성소-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써 성전보다 더 귀한 진정한 ‘성소’가 되셨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을 말씀하고 있는데, 성육신은 이전의 성막이나 성전의 봉헌식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영광이 충만’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보이는 성전이 그림자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실체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소’의 개념이 완전히 달라져 건물 중심의 ‘성소’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을 모신 ‘성소’가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고, 자신이 곧 ‘성소’가 되신 것이다.
⑹ 여섯 번째 성소-신자들의 몸(교회)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라고 바울은 말한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성전이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이 내주하시는 성도들이 곧 성전이며 성소요, 따라서 성도인 우리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움직이는 교회인 것이다.
⑺ 일곱 번째 성소-천국
지상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이 나고 마지막 ‘성소’는 천국이다. 바울은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 5:1)라고 하였다.
‘장막’은 구원받은 성도의 육체를 말하며,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영광의 주님이 계신 보좌, 천국을 의미한다. 천국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성막이며, 성도가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영생복락을 누릴 장소로 하나님이 어느 곳에 제한적으로 계신 것이 아니라 온통 그곳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한 곳이다.
이상과 같이 임마누엘 하나님은 에덴에서 시작되어 제단과 성막, 성전을 거쳐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몸과 교회를 통하여 마지막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된다.4)
c. 성막의 역사적 변천
⑴ 성막은 시내산에 처음 세워졌다.
“너는 정월 초일일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출 40:2)라는 말씀을 통하여 볼 때 출애굽한 지 2년, 유월절 두 주일 전5)에 성막이 시내산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라비아 호렙에서 발행하여 유다의 네겝(Negev)에 있는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다.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는 40년이 걸렸는데, 그 기간 중 38년은 가데스에서 보냈다.
홍해를 향하여 남쪽으로 간 1년을 별도로 하고 그 오랜 기간 동안 회막은 그곳에 머물러 있었는데, 아모스 5장 25절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고 하였다.
이 기간 동안은 통례적인 제사가 드려지지 않았는데 이 기간 중에 생긴 일에 대하여는 거의 기록된 사건이 없고 여호와의 언약궤가 행진하는 대열에 앞서 행한 것 외에는 성막에 대하여 서술 된 것이 거의 없다.(민 10:33-36)
⑵ 이동 중에 길갈에 진을 쳤다(수 5:10).
요단강을 건넌 후 길갈 옆 여리고 근처의 한 장소가 성막을 위하여 마련 되었다(수 4:19, 9:6, 10:6,43). 길갈은 임시 장소여서 마침내 성막의 이동을 단행했고, 이어 회막은 에브라임에 속한 실로로 옮겨 갔다.
성막이 그곳에 정주하게 된 때에는 여호수아 당시에 된 것으로 추정 되는데 길갈에서 약 32Km 떨어진 곳으로 길갈에서 실로로 이동한 것이다.
이 실로에 있을 때 성전(Temple)으로 되었는데, 이때에 성막이 분해되고 제단이 바로 건립되었다. 그 이유는 레위 자손들이 분산되고 그들로 인하여 새 제단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단 분립의 시작이다. 그러다가 벧엘로 언약궤가 이동하게 되었고(삿 20:29-48) 실로에 성막이 있었다.
⑶ 실로에 세워졌다(수 18:1).
실로에서 성막은 그 어떤 영구적인 면모를 갖추어 ‘전’(Temple)으로 칭하였고(삼상 1:9, 3:3), 사무엘 당시에 실로에는 문과 문설주가 있는 성소가 있었다(삼상 1:9, 3:5).
사사시대 중에 이스라엘은 거듭거듭 배교(背敎)하여 성막예배는 열의 없이 형식적으로 수행되었다.
또한 사울시대에는 블레셋과 전쟁이 일어나자 백성들은 언약궤를 실로에 가져오기로 결정하여(삼상 4:1 이하)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 제사장으로 법궤와 같이 전장에 나갔으나, 이미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법궤를 떠나신 뒤라 언약궤, 즉 법궤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기고 만다.
그 후 법궤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반환되어 벧세메스에 잠깐 머물렀다가 기럇여아림으로 옮겨져 약 20년간 있었다(삼상 6:19-21, 7:1-2).
⑷ 사울 시대에 놉에 세워졌다.
성막에 대한 다음 언급은 대제사장 아히멜렉이 있었던 놉에서 볼 수 있다(삼상 21:1-9). 나중에 사울왕은 성막을 기브온으로 옮겼다.(대상 16:39, 21:29)
⑸ 다윗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옮겨졌다(삼하 6:17).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그 자신의 궁정을 건축한 후 시온에서 하나님의 법궤와 장막을 위한 장소를 마련했다(삼하 6:17-19), 대상 6:1).
기브온에 있던 성막의 모형인 장막을 시온에 세우고 제단도 준비한 뒤 법궤를 기럇여아림에서 가져왔다(삼하 6:11). 그 때 웃사가 경솔하게 법궤를 다루다가 죽었으므로 그 후 석 달 동안 레위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놓았다가 엄숙한 절차에 의하여 법궤는 다윗성으로 옮겨졌다.
⑹ 기브온에 세워졌다(왕상 3:4).
이렇게 해서 기브온과 예루살렘에 성막이 있게 되었는데, 기브온에는 제단이 있었고 예루살렘에는 법궤가 있었다(왕상 3:1-4).
그 법궤와 제단은 성전이 건축된 후 하나로 통합되었으며, 그전까지는 기브온에 있던 제단이 솔로몬 왕 시대까지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성막의 모든 기구는 분실된 것이 많으나 남은 기구들을 가지고 분산되어 있는 곳에서 제사를 드렸고(대하 1:5-6), 솔로몬왕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분산된 유품을 모아 그 성전에 안치하고 보존하였다(왕상 8:4).
⑺ 솔로몬 성전으로 옮겨졌다(왕상 8:1).
성막은 솔로몬 시대 이전에 전쟁, 재화 등으로 인하여 파괴 또는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엘리 제사장 시대에 블레셋에 빼앗긴 경우와(삼상 4:11), 그 후 솔로몬의 성전건축으로 변동이 있었고, 이스라엘의 타락과 악한 왕들에 의한 피해가 많았다. 또 바벨론 포로로 성전의 모든 기명은 탈취되고 소실되었다(왕하 24:13, 단 1:1-2, 5:2, 대하 36:18).
성경에는 성전이 두 번 파괴를 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첫 번째는 남 왕국 유다의 18대왕 여호야김(대하 36:17, B.C. 605년)때며, 두 번째는 19대왕 여호야긴(대하 36:10, B.C. 577년)때로 성전이 소화된 것은 역대하 36장 19절 이하에 나타나 있다. 이것은 솔로몬 성전의 최후도 되고 모세 성막의 최후도 되지만 모세 성막의 최종이라 할 수 있다.
성막이 지향하던 목적은 솔로몬의 성전이 건립되었을 때 완전히 성취되었다. 즉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이전 이동 상태에 있을 동안 여호와의 언약궤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데 솔로몬의 성전이 완공됨에 따라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신 12:14,21)이 예루살렘으로 고정되었기 때문에 여행과 이동의 시기 동안에 적합했던 성막은 그 본래의 사명을 다한 것이다.
성막과 고귀한 기물에 관하여 살펴보면 모세가 만들었던 언약궤는 성막시대에도 계속 보존되었으며 솔로몬의 성전이 완성되었을 때 그 성전의 지성소에 안치되었다.
정금으로 만들어진 분향단과 등대, 그리고 진설병 떡 상은 솔로몬 시대에 다시 만들어 졌다. 또한 그것들은 스룹바벨 시대에 다시 새롭게 제작되었고, 스룹바벨 시대에 만들어진 성전기물들은 마카베오 시대에 다시 새롭게 만들어 졌다.
그러나 언약궤는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기까지 예루살렘 성전에 고이 간직 되어 있었다(대하 35:3, 렘 3:16). 그런데 스룹바벨이 재건한 제 2 성전에는 언약궤가 안치되지 못했다.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제 2 성전의 지성소 안에는 모세가 만든 원래의 언약궤 대신에 돌로 만들어진 궤가 있었다고 한다.
성막은 하나님과 만나는 곳이었으며 그의 가르침을 듣고 그의 사랑을 구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거룩한 예배를 상징하며 또한 하나님과 만나 사귀는 삶이 성막에 집약되므로 말씀의 표징이 되기도 한다. 성막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임재를 예표하며 역사 현장에서 그를 대언하는 교회를 표징하게 된다.
2. 성막의 모형과 기구 배치도
a. 성막의 모형
* 언약궤
(출 25:10-22, 37:1-9, 40:3)
* 분향단
(출 30:1-10, 37:25-28, 40:5,26,27)
* 진설병
(출 25:23-30, 37:10-16, 40:4,23)
* 등 대
(출 25:31-40, 37:17-24, 40:4,24,25)
* 물두명
(출 30:17-21, 38:8, 40:7,30-32)
* 번제단
(출 27:1-8, 38:1-7, 40:6,29)
* 포 장
(출 27:9-19, 38:9-20)
* 앙 장
(출 26:1-14, 36:8-19
b. 기구 배치도(다음 Page에 표시됨)
3. 이스라엘 12지파의 야영도와 행진순서
a.성막을 중심으로 한 야영도 b. 행진순서
B.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
이스라엘의 성전이란 과거 모세의 성막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백성 중에 임재 하여 계심, 또는 임재하신 곳을 상징하는 처소였다.
예루살렘 성전은 고대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이 성전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한 곳에서만 예배를 드려야 했는데 이것은 신명기에 나타난 ‘예배장소의 단일화’(Centralization of Worship) 의 원칙이다(신 12:4-14).
이 원칙은 신앙의 순수성 문제에 직결되어 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예배를 여러 곳에서 드릴 때, 자연히 가나안 원주민 종교의 영향을 받을 위험이 있고, 따라서 신앙의 순수성이 오염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위험을 막기 위해서 예배를 한 곳에서만 드리도록 하였다.6)
이스라엘 역사상 성전은 세 번 건축되었는데 제 1성전은 솔로몬 성전(왕하 6:1-18, B.C. 959년)이며 제 2성전은 스룹바벨 성전(스 6:15-18, B.C. 516년)이고, 제 3성전은 헤롯 성전(B.C. 20-A.D. 63년)인데 제 2성전을 증축한 것이다.7)
이것은 모두 같은 장소에 건축 되었다.8)
이 성전들은 현재 모두 다 훼파되었으므로 구약적(舊約的) 제사는 막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믿는 모든 믿음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장사한지 3일 만에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일으켜 세우신 부활의 소망과 믿음으로 드리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드려지고 있다.9)
파란만장한 이스라엘의 역사와 함께 했던 성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연구함으로서 그 성전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와 사랑을 점검하며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한다.
1. 솔로몬 성전
a. 성전의 위치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곳은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Mount Moriah)으로서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있던 곳이다(대하 3:1).
모리아 산은 일찍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던 곳이며(창 22:2),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다윗이 하나님께 범죄 한 후회계의 제단을 쌓았던 곳이다(삼하 24:18-25).10)
그러므로 이곳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관계 회복의 의미를 지닌 장소라 하겠다. 따라서 이러한 곳에 솔로몬의 성전이 건축된 것은 성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즉 성전은 인간이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그분께 변함없는 순종과 헌신을 다하여야 함을 일깨워 주는 처소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해주실 것임을 나타내 주는 하나님의 임재(臨齋)의 상징물인 것이다(왕하 8:11,27-30).
b. 성전의 기본 구조
솔로몬 성전은 기본적으로 모세 시대의 성막 구조를 바탕으로 하여 당시 근동의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아 건축 되었다.
그러나 이교적(異敎的) 요소는 철저히 배격하여 자신들의 신전 내에 신상을 설치해 두었던 이방인들의 경우와는 달리 솔로몬 성전 내에는 하나님의 언약궤만 안치해 두었다. 현관과 성소, 지성소로 나누어지는 솔로몬 성전의 삼중 구조는 수리아의 에블라(Ebla)와 텔 타이나트(Tell Tainat), 텔 아랏(Tell Arad) 그리고 갈릴리 상부의 하솔(Hazor)등지에서 발견된 신전의 구조와 유사하다.
이는 서부 셈족 문화권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구조물이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오랜 역사를 지녔던 신전 형태였음을 증거 해준다.
그러나 세부적인 구조에 있어서는 서로 차이가 있었는데 솔로몬 성전의 경우 지성소(至聖所)가 정방형이었던 것과 달리 여타 신전에는 장방형을 이루고 있고, 솔로몬 성전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연이어 있었던 것과 달리 여타 신전에서는 지성소가 단순히 벽감(壁龕)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솔로몬 성전의 경우 모든 구조와 양식 하나하나에 있어서 조차 치수 등과 관련 상징적 의미를 두고 설계되어 독특성과 탁월성이 드러난 것과 달리 여타의 신전들은 그렇지 못하였던 데서 기인된 것이다.
솔로몬 성전의 전체적인 구조와 내부 시설에 관해서는 아래의 평면도를 통해 알아본다.
⑴ 평면도
c. 솔로몬 성전의 역사
예루살렘 성전 건축 계획은 솔로몬의 부왕 다윗 때부터 있어 왔다.
즉 다윗은 당시 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럇여아림에 약 20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언약궤를 다윗성에 옮겨온 뒤에 성전을 건축할 계획을 세웠었으나 하나님이 다윗의 계획을 막으시고 대신 그의 아들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토록 하셨다.11)
다윗은 성전을 건축할 장소와 건축 재료와 비용을 준비하고 또 성전의 모형도를 준비하였을 뿐이다(대상 22장, 28:11-19, 29:1-5).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즉위 제 4년인 B.C. 966년이며 그 후 7년 뒤인 B.C. 959년에 완공하였다. 그러나 이 성전이 이스라엘의 중앙 성소로서 그 기능을 완전히 수행한 것은 솔로몬의 재위 기간뿐이며 그나마도 솔로몬 통치 말년에는 그의 우상 숭배와 타락으로 인해 성전은 제 기능을 수행치 못했다.
분열왕국 시대에는 남 왕국 유다의 왕 아사, 요아스, 히스기야, 요시야 등에 의해서 성전 정화 사업이 추진되고 또 성전 제사 활동이 새롭게 재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체로 1대(代)에 끝나버린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았으며 대부분은 성전이 원래의 목적대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였다.
심지어 남 왕국 유다의 왕 아하스에 의해서 성전 앞에 놓여 있던 놋 제단이 옮겨지고 이방의 다메섹 우상제단의 양식으로 개조된 제단이 놓여지고 그 외의 성전 기구들도 개조되거나 파괴되기까지 했다(왕하 16장).
그리고 남 왕국 유다에 바알 종교를 드려온 악녀 아달랴(왕하 12:18)와 남 왕국 유다의 왕들 중 가장 사악했던 므낫세에 의해서도 성전이 상당 부분 훼손되기도 하였다(왕하 21:5).
이와 같은 파란만장한 역사를 격은 솔로몬 성전은 성전이 완공된 지 373년만인 B.C. 586년 예루살렘이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 의해 멸망할 당시에 완전히 훼파 되었고 성전의 금, 은, 놋기명과 보물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졌다.
d. 의 의
솔로몬 성전은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지니는바 의미는 실로 크다. 솔로몬 성전은 과거의 이동용 성막(tabernacle)이 고정용 성전(temple)으로 바뀌는 결과를 가져왔다(왕상 8:1-11).
이는 지금까지 불안정했던 한 시대가 끝나고 이제 안정과 평화를 구가할 새 시대가 되래하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솔로몬 성전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언약을 통해 허락하신바 가나안 땅(창 15:1-11)의 중앙에 위치하여 선민 이스라엘의 민족적,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로서의 그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 같은 솔로몬 성전이 단일 중앙 성소로서의 역할을 이스라엘 역사상 단 한 번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로서의 한계성을 보여준다.
이와 동시에 그것은 장차 성전의 실체되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만들어져 갈 신약 교회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영원히 함께 거하게 될 천국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2. 스룹바벨 성전
두 번째 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은 포로귀환 이후 첫 번째 성전인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이래 약 70년 만에 재건되었으나 B.C. 20년경 헤롯 성전 재건으로 대체됨으로서 그 막을 내렸다.
이러한 스룹바벨 성전은 포로귀환 이후 유대인들의 신앙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것으로 성경 에스라서, 느헤미야서, 학개서, 스가랴서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며 말라기서와는 간접적으로 스룹바벨 성전 재건 이후 느헤미야 시대의 유대인들의 종교 생활과 관련을 가진다.
그리고 성전과 연관된 이스라엘의 순수한 신앙은 스룹바벨 성전의 소멸 이후 완전히 사라진다. 이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외형적인 건물로서의 성전에 의존하지 않게 하고 성전의 실체 되시는 메시야를 대망케 하였다는 측면에서 이 성전이 이스라엘 역사에 끼친 영향과 그것이 갖는 종교적, 영적 의의는 크다.
a. 스룹바벨 성전 건축 과정의 역사
B.C. 585년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 의해 솔로몬 성전이 훼파된 이래 이스라엘이 다시 성전 재건을 시도 할 수 있었던 것은 B.C. 539년 파사 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하여 모든 속국 포로들에게 대한 유화 정책의 일환으로 각각 고국에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 할 수 있도록 허락(B.C. 538 년)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도 이러한 고레스의 칙령(스 1:1-4)에 따라 세스바살과 스룹바벨 그리고 대제사장 예수아의 지도하에 B.C.537년 제 1차포로 귀환 때 귀국하여 성전 재건 사업을 펼쳐나갔다.
스룹바벨 성전의 건축 과정을 단계별로 살펴본다.
⑴ 성전 지대 건축
스룹바벨 성전 건축 지대(地臺)가 건축된 것은 이스라엘 포로귀환 제 2년째 즉 B.C. 536년 시브월, 곧 태양력으로는 5월이었다(스 3:8). 이 시기는 근동 지역의 기후가 건조기 때이므로 성전 제건 작업 착수가 용이 했다.
스 5:16에는 당시 유다 총독 세스바살이 전 지대를 건축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스룹바벨이 이 세스바살의 대리인으로서 전 지대 건축의 책임자로 활동하였다(스 3:8).
전 지대가 완공되었을 때에 대부분의 백성들은 즐거워하였으나 과거 솔로몬 성전의 크기와 웅장함을 익히 알고 있던 노인들은 그 지대의 크기가 솔로몬 성전의 지대보다 작았기 때문에 대성통곡하였다,
⑵ 성전 재건 공사 중단
성전 재건 공사가 시작되자마자 사마리아 사람들이 방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사마리아인들은 스룹바벨과 유대 족장들에게 나와 자신들도 성전 재건 공사에 동참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것이 거부되자 그들은 한편으로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건축을 방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회적으로 파사국의 관료들에게 뇌물을 주어 성전 재건을 중단케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성전 재건 공사는 파사 왕 고레스 제 4년(B.C. 536년)부터 다리오 즉위 때(B.C. 520년)까지 약 16년간 중단하게 된다.
사마리아인들이 이렇게 성전 재건을 극구 방해한 것은 단순히 그들을 공사에 동참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게 될 경우 지금까지 팔레스틴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그들의 입지가 약화될 것을 두려워해서였다.
이와 반대로 유대인들이 그들의 동참을 반대한 이유는 그들은 대부분 순수 이스라엘 혈통이 아니라 과거 앗수르의 식민지 백성 이주 정책에 따라 사마리아 땅에 옮겨진 이방인들이었고 일부 이스라엘인들도 모두 이방인과 통혼으로 혈통적, 종교적 순수성을 완전히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⑶ 성전 공사 재개 및 완공
사마리아인들의 방해 공작으로 중단된 이래 대부분의 백성들은 낙담하거나 아니면 이기주의적 무사 안일주의로 인해 성전 재건을 시도할 마음을 갖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책망과 권고로 성전 재건 공사가 다시 시도되었다.
이 당시 유대지역을 포함한 팔레스틴과 시리아 지역은 모두 강 서편 총독, 즉 유브라데 서편 지역을 관할하는 닷드내의 통치하에 있었다. 이에 유대인들이 성전 공사를 시작 했다는 소식을 들은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는 그 당시 파사왕 이었던 다리오에게 상소를 올려서 유대인들의 성전 공사가 적법(適法)한지의 여부를 물었다(스 5:6-17).
그리고 그것의 적법성의 여부를 확인한 다리오 대왕은 성전재건 허가 조서를 내리고 또 유브라데 서부 지역 관할 총독에게 유대인들의 세금 면제는 물론 건축 경비까지 원조토록 명하였다.
이때가 다리오 즉위 제 2년 즉 B.C. 520년이었으며 공사가 재개된 지 4년만인 B.C. 516년, 즉 다리오 제 6년 아달월에 성전이 완공되었다(스 4:24, 6:15).
b, 관련 역사
⑴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
스룹바벨 성전과 관련된 최초의 역사 기록은 새 성전 완공 후 백성들이 그곳에서 유월절을 지켰다는 것이다(스 6:19). 그리고 제 2차 포로귀환(B.C. 458년)이 있기 이전까지 약 58년 동안 성전과 관련된 기록은 없다.
제 2, 3차 포로귀환 시 지도자들이었던 에스라, 느헤미야와 관련하여 스룹바벨 성전의 역사가 다시 언급된다. 에스라는 포로귀환 후 성전제사의 활성화 및 백성들에 대한 율법교육, 심지어 B.C. 442년 느헤미야가 파사 왕국을 다녀온 후 암몬지방 총독 도비야가 성전 뜰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그를 축출하고 십일조와 안식일에 대한 개혁을 시도하였는데(느 13장), 이 모두가 성전 제사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었다.
⑵ 느헤미야 이후 마카비 시대까지
우리가 가진 성경에는 이 시기 곧 소위 신․구약 중간사(中間史) 시대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다만 다니엘서의 예언이 이 시기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외경인 ‘벤시락의 지혜서’ 또는 ‘집회서’(Ecclesiasticus)라 불리는 책을 보면 오니아스(Onias, 히브리 명으로 요하난)의 아들인 대제사장 시몬 2세(B.C. 220-180년경)가 이 스룹바벨 성전을 보수하고 또한 이 성전을 외적(外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성전 주변에 큰 성벽을 건축했음이 나타난다.
또 외경인 마카비서를 보면 B.C. 170년에 시리아의 셀류크스(Seleucus)왕조의 왕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4 Epiphanes)가 성전을 크게 모독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유다 사회를 헬라화 하기 위해 여호와 종교 말살 정책을 폈으며 거기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을 무참히 학살 했으며 B.C. 168년경 약 2만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에 쳐들어와서 안식일을 지키던 유다인을 대량 학살하고 성전을 파괴한 후에 성소 안에 제우스(Zeus) 신상을 세웠으며 유다인들로 하여금 돼지를 잡아 그 신상 앞에서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 이러한 성전 모독사건으로 인하여 유다인들은 크게 격분하였으며 하스몬(Hasmone) 가문에 속한 제사장 맛다디아(Mathatias)와 그의 다섯째 아들 마카비(Massabeus)가 셀류크스 왕조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소위 마카비 혁명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들은 이미 다니엘서에 예언된바(단 11:20-45)의 성취이다. 다니엘의 종말에 관한 예언은 ‘다니엘의 70이레와 대 환난 예언’(단 9:20-27)에서 언급된 적그리스도의 예표가 바로 이 성전을 모독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이다.
한편 혁명에 성공하여 B,C, 142년 로마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하게 된 마카비 혁명군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파괴된 성전을 수리하여 그 제단을 성결케 한 후에 그 날을 명절로 정하였는데 그것이 유대인의 ‘하누카’(Hanukah) 명절이다.
⑶ 마카비 시대에서 스룹바벨 성전 훼파까지
마카비 혁명 성공 후 유다는 장치적으로 완전한 독립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B.C. 142-A.D. 67) 이때가 하스몬 왕조 시대이다. ‘하스몬’은 마카비 가문의 칭호인데 마카비의 둘째 동생 힐카누스 1세(Hyrcanus 1,B.C. 134-104)가 대제사장직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왕의로서 유다를 통치하였기 때문에 이 시대를 ‘하스몬 왕조 시대’라 칭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성전은 유다의 종교적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여러 정치적 문제로 인해 성전이 훼손되거나 혹은 보수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B.C. 63년에는 로마 장군 폼페이가 다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모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로마 원로원에 의해 유다 왕으로 즉위한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위하여 스룹바벨 성전이 너무 작고 초라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없애고 성전을 재건하였다. 그것이 바로 제 3성전인 ‘헤롯 성전’이다.
c. 의 의
포로귀환 이후 소위 신․구약 중간사(中間史) 시대의 이스라엘의 역사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스룹바벨 성전을 통하여 우리가 발견하는 바 그 의의는 실로 크다.
⑴ 가견적 건물로서의 성전의 중요성이 현격히 악화되었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과거 솔로몬의 성전에 비해 그 규모나 화려함에 있어서 훨씬 미치지 못했다는 것(스 4:13)과 성전 안에 언약궤가 없으며 대제사장은 우림과 둠빔을 소유하지 못했다는 것(스 2:63), 그리고 성전이 이방인들에 의해 여러 차례 모독을 받았다는 것 등이다.
이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에 불과한 건물로서의 성전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으며 오히려 성전의 실체인 메시야가 도래할 것을 대망하게 되었다.
스룹바벨 성전 시대, 소위 신․구약 중간사(新, 舊約中間史) 시대에 메시야 사상이 크게 대두되게 된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⑵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총에 의한 이스라엘의 포로 회복의 일차적인 증거이다.
흔히 이스라엘의 포로 기간 70년을 솔로몬 성전 훼파(B.C. 586년)에서 스룹바벨 성전 재건(B.C. 516년)까지로 본다.
곧 스룹바벨 성전건축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전을 중심으로 선민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회복되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인 것이다.
그러나 스룹바벨 성전이 외적으로 매우 초라했을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언약궤가 없고 대제사장에게 우림과 둠밈이 없었다는 사실은 곧 선민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은 오직 성전의 실체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짐을 강하게 상징하는 것이라 하겠다.
3. 헤롯 성전
헤롯 성전은 이스라엘 역사상 세 번 건축된 성전 중 마지막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성전(聖殿, Temple)이란 다른 이방 종교에서처럼 여러 곳에 있는 예배 처소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절대 초월자이신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이 이 땅 백성 주에 임재하심 또는 임재 하여 계시는 곳을 상징하는 유일한 처소였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각 성전은 항상 그 시대의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구심점이 되었다.
그러므로 각 성전에 대한 전반적 이해는 그 시대의 이스라엘의 종교문화 전반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열쇄가 된다.
헤롯 성전은 B.C. 20년경에 건축하기 시작하여 10년 만에 그 기초 골격은 완성되었지만 그것이 최종 완공된 것은 A.D. 63년경이었다.
따라서 예수님 당시에는 헤롯 성전은 아직 미완성 상태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롯 성전은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생활의 구심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 공생애 사역의 주요 배경이기도 하였다.
이에 헤롯 성전에 관한 전반적인 사실들을 살펴봄으로서 신약시대 이스라엘의 종교, 사회, 정치적 배경들을 이해하고자 한다.
a. 헤롯 성전의 건축 동기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B.C. 37-4)이 성전 건축을 개시할 당시 이스라엘에 성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즉 B.C. 516년에 건축된 제 2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롯은 기존에 있었던 제 2성전을 헐어 버리고 새롭게 재건하였다.
그 이유는 이두매 출신으로서 로마제국의 임명에 의해 팔레스틴을 통치하게 된 헤롯이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헤롯이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통치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헤롯이 로마 황제에게 유능한 통치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야 했고 그 환심을 얻기 위해 새 성전을 건축하게 된 것이다.
또 사실 당시에 있었던 제 2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은 과거 제 1성전인 솔로몬 성전(B.C 959, 왕상 6:1-38 참조)에 비해 매우 초라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 의해 수차례 모독을 당함으로서 대부분의 경건한 유대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었다.
이에 헤롯은 새로운 성전을 재건함으로서 자신과 정치적으로 결탁한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다시 성전을 중심으로 일반 민중들에게 더욱더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바랐으며 또 그렇게 함으로서 자신의 팔레스틴 통치가 수월해지기를 바랐다.
물론 이와 같은 동기에서 헤롯이 성전 재건 사업을 추진하기는 했으나 스룹바벨 성전 시대 이후 가견적 건물로서의 성전에 대한 절대적 존경심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은 다만 헤롯 왕가의 통치를 지지했던 헤롯에 의해 임명 되었던 대제사장과 그 수하에 있었던 종교지도자들의 주관에 의해 정규적인 동물 희생 제사가 드려진 종교 의식적인 측면에서만 그 의의를 지니게 되었다.
b. 헤롯 성전의 관련 역사
헤롯 성전이 건축되기 시작한 것은 그의 통치 18년째인 B.C. 20년이었다.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된 성전의 본체와 성전 뜰은 착공한 지 약 10년만인 B.C. 10년경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성전을 둘러싸고 있는 외벽 공사는 성전 건축 개시 46년만인 A.D. 26년경, 곧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실 무렵(요 2:20)에야 비로소 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마침내 성전 수비 요새인 안토니아 망대를 비롯하여 성벽 외벽과 각 모퉁이의 망대들까지 모두 완공된 것은 성전 건축 개시 83년만인 A.D. 63년경이었다.
A.D. 49년경 유대 주재 로마 총독 벤티디우스 쿠마누스(Ventidius Cumanus, A.D. 48-52년)때에는 로마 병사가 유월절에 성전을 모독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유대인들과 로마인들 사이에 큰 충돌이 있었는데 많은 유대인들의 참사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A.D. 65년경 유대 주재 로마 총독인 플로루스(G. Florus, A.D. 65-70)가 헤롯 성전의 창고에서 보물 몇 개를 가져다가 유대인들의 큰 반발을 사게 되었고 이것이 비록 식민지 체제로나마 국가로서의 유대의 최종 멸망을 초래한 유대 전쟁 발발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A.D. 70년 로마 황제 베스파시안(Vespasian)의 아들 디도(Titus)의 예루살렘 정복으로 인해 헤롯 성전은 전소 되고 만다. 결국 헤롯 성전은 완공된 형태로는 불과 7년 밖에 존립하지 못한 셈이 된다.
c. 헤롯 성전의 규모와 구조
⑴ 규 모
헤롯 성전의 전체 규모는 솔로몬 성전보다 오히려 크고 웅장했다.
먼저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된 성전 본체에 이어서 솔로몬 성전은 성소의 높이가 30규빗,12) 지성소의 높이가 20규빗인데 반해 헤롯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의 높이가 각각 60규빗이나 되었다.
성전 본체 전체의 길이와 넓이는 동일했지만 성전 현관의 높이는 100규빗에 이르며 현관 정면과 동편이 금판으로 꾸며져 화려하기가 다른 어떤 성전에 비할 바 아니었다.
성전 본체를 비롯하여 성전 뜰을 다 포함하는 성전 외벽에 둘러싸인 헤롯 성전 지대 전체의 총면적은 141,638㎡였다.
그리고 서쪽 성벽의 총 길이는 497m, 북쪽은 306m, 동쪽은 469m, 남쪽은 276m로서 전체 모양은 약간 비뚤어진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으며 성벽의 높이는 약 29m 가 된다.
⑵ 구 조
헤롯 성전의 본체의 기본 구조는 솔로몬 성전이나 스룹바벨 성전의 구조와 동일했다. 다만 그 크기나 웅장함에 있어서 헤롯 선전은 다른 성전에 비해 월등했다고 볼 수 있다.
성전 건물의 전체는 6구획으로 이루어졌으며 각 구획마다 그 높이가 각각 달랐다.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에 각 단계별로 접근 할 수 있는 자의 자격을 엄격히 제한함으로서 죄인과 하나님의 근본적인 관계단절을 상징하며 나아가 죄인이 그 속죄를 구하러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과 그에 요구되는 자세의 엄정함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는 이 헤롯 성전의 원형인 모세 시대의 성막(Tabernacle)과 솔로몬의 성전 의 건축 양식을 주시면서 하나님이 직접 규정하신 규례들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이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배타성을 유지하는 일에만 급급하였다.
⒜ 성전 본체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된 성전 본체는 성전 전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 제사장의 뜰
성전 본체에서 12계단, 약 2.5m를 내려가면 이르는 곳이다. 제사장들에게만 출입이 허용된 곳이며 이곳에서 주로 동물 희생 제사가 이루어 졌다.
⒞ 이스라엘의 뜰
제사장의 뜰과 이스라엘의 뜰 사이에는 약 2규빗(91.2cm) 높이의 분리대가 세워져 있었다. 이스라엘 남자들이 이곳에서 제사장들이 집행하는 동물 희생 제사를 지켜보았다.
⒟ 여인의 뜰
이스라엘 여인의 뜰은 이스라엘 남자의 뜰에서 15계단, 약 3m 아래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유대 여인들에게만 출입이 허용되었다.
⒠ 이방인의 뜰
이스라엘 여인의 뜰과 이방인의 뜰 사이에는 약 3규빗(약 1.2m) 높이의 울타리가 세워져 있었으며 울타리 꼭대기에는 이방인들이 이 울타리를 넘을 경우에는 사형에 처한다는 경고문이 적힌 팻말이 달려 있었다.
한편 환전상들과 희생 제물을 매매하는 장사꾼들이 위치했었던 곳도 바로 이곳 이방인의 뜰이며 두 번에 걸쳐 예수께서 이곳의 장사꾼들을 몰아내셨다(요 2:14-16, 마 21:12-17).
⒡ 성전 외벽
이 외벽의 동, 서, 남쪽에는 각각 2개의 성문이 있었고 북쪽에는 1개의 성문만 있었다. 혹자는 남쪽에는 3개, 서쪽에는 4개의 문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이는 확실하지 않다.
성전 수비 요새의 역할을 하던 안토니아 망대는 성벽의 북동쪽 모퉁이에 그리고 감람산으로 통하는 솔로몬의 보좌라고도 불리어지는 금문(Golden Gate)은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솔로몬의 행각도 동쪽 문과 연결되어 있었다. 오늘날 가장 많이 보존되어 남아있는 벽은 서쪽 벽으로서 소위 ‘통곡의 벽’(wailing Wall)이라 불리는 곳도 이곳에 위치해 있다.
⒢ 의 의
포로시대 이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단일 중앙 성소로서의 성전의 중요성은 상당히 격감되었다.
그 근본적 이유는 유대인들의 종교 생활이 대부분 회당(Synagogue)을 중심으로 한 각 마을 단위의 공동체 또는 디아스포라(Diaspora) 공동체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예루살렘 성전은 단지 희생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헤롯 성전의 경우는 이방인 출신인 헤롯이 그 성전을 건축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부패가 극심하였기 때문에 많은 바리새파 사람들뿐만 아니라 에세네파 사람들까지 성전에서의 제사를 그렇게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쿰란 공동체 사람들은 성전에서의 희생 제사를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자기들 나름대로의 제사를 성전이 아닌 자신들의 예배처소에서 드리기도 했다.
더욱이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성취로 주의 구속 사역을 예표 하는 희생 제사의 유일한 장소로서의 성전의 의의는 종결되었고 더욱이 헤롯 성전 파괴 예언(막 13:2)에 의해 가견적 건물로서의 성전의 중요성은 결정적으로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여호와께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성령이 각 성도에게 내주하심으로 인하여 오히려 단순히 상징의 차원을 넘어 실제적으로 실현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신약 시대에는 각 성도의 전 인격이 곧 성전이 되게 되었다(고전 3:16-17, 엡 2:19-22).
따라서 헤롯 성전이 갖는 신학적 의의는 이전 솔로몬 성전시대의 그 성전이 갖는 의의에 결코 비할 바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롯 성전은 여전히 그 시대 유대인들의 종교, 정치 중심지로서 그리고 신약 성경의 한 무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볼 수 있다.
d. 헤롯 성전의 모형
e. 의 의
포로시대 이후 유대인들에게 단일 중앙 성소로서의 성전의 중요성은 상당히 격감(格减) 되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유대인들의 종교생활이 회당(Synagogue)을 중심으로 한 각 마을 단위의 공동체 또는 디아스포라(Diaspora) 공동체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예루살렘 성전은 단지 희생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헤롯 성전의 경우는 이방인 출신인 헤롯이 그 성전을 건축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루살렘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종교 지도자들의 부패가 극심하였기 때문에 많은 바리새파 사람들뿐만 아니라 에세네파 사람들까지 성전에서의 제사를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쿰란 공동체 사람들은 성전에서의 제사를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제사를 성전이 아닌 자신들의 예배처소에서 드리기도 했다.
이처럼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성취로 주의 구속사역을 예표(禮表)하는 희생제사의 유일한 장소로서의 성전의 의의는 종결되었고 더욱이 헤롯 성전 파괴 예언(막 13:2)에 의해 가견적 건물로서의 성전의 중요성은 결정적으로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성령이 각 성도에게 내주하심으로 인하여 신약 시대에는 각 성도의 전 인격이 곧 성전이 되게 되었다(고전 3:16-17, 엡 2:19-22).
따라서 헤롯 성전이 갖는 신학적 의의는 이전 솔로몬 성전시대의 그 성전이 갖는 의의에 결코 비할 바 못된다.
그럼에도 헤롯 성전은 여전히 그 시대의 유대인들의 종교, 정치 중심지로서 그리고 신약 성경의 한 무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볼 수 있다.
4. 성경에 나타난 성경관련 사건들
사 건
장 소
관련성구
1
주의 부모에 의해 아기계수가 성전에 봉헌되고 할례 받음
여인의 뜰(?)
눅 2:27
2
예수가 12세 되던 해 유월절에 성전을 방문함
성전 구내
눅 1:41-52
3
사단이 예수를 성전 꼭대기에 데려감.
성전의 남동쪽에 위치한 주랑의 뾰쪽 지붕
마 4:5 눅 4:9
4
예수의 제 1차 성전 청결
이방인의 뜰
요 2:20
5
예수께서 무리들을 가르치심
솔로몬 행각을 비롯한 여러 곳
마 26:55 막 12:35요 10:23
6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함
여인의 뜰
막 12:41-44 눅 21:1-4
7
예수의 제 2차 성전 청결
이방인의 뜰
마 21:12
8
예수의 성전 파괴 예언
성전
마 24:1-2 막 13:1-2, 눅 19:44
9
예수 운명 시 성소와 지성소 사이 휘장이 찢어짐.
마 27:51
10
예수 부활 승천 후 12제자들이 매일 예배드림
성전 구내
눅 24:53, 행 2:46
11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고침
동쪽성벽에 위치한 미문 (美聞)
행3:1-10
12
사도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설교함
북쪽 성벽에 위치한 안토니아 망대
행 22장
C. 제사의 종류와 방법
1. 제사의 종류와 영적 의미
a. 번제(燔祭, The Burent Offering, 자원제, 레 1장)
⑴ 번제의 어의
번제란 희생 제물을 불에 태워 그 냄새를 하나님께 피워 올려야 하는 제사이다.
영어로 ‘burnt offering'이라 불리는 번제는 히브리어로 올라( 히 )인데, 이 말의 어근은 아라( 히 )로 ’올라가다‘(to a send)라는 뜻이다.
즉 등불이 타오르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번제단 위에 제물이 타오르는 것과 제물의 연기가 오르는 것을 말하는데, 완전히 태워 드린다고 해서 ‘Holocaust offering'이라고도 부른다.
⑵ 목적과 의미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죽음 밖에 없는데, 이 죽음을 면하기 위해서는 피로써 생명을 가려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속죄의 원리이며 제사가 없이는 속죄가 없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느니라.”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제사의 길을 통해서 속죄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번제는 고대의 제사법 중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 제사 드리는 자와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유지를 위하여 완전한 헌신과 감사를 위하여 드려졌다.
⒜ 번제의 종류
번제 중에는 매일 조석으로 드리는 상번제와 특별한 때에 드리는 특별 번제가 있다.
⒝ 성 격
자원제로서 생활 형편에 맞게 드려졌으며, 비둘기를 제외한 제물에는 직접 안수하고, 그 제물을 드리는 자가 직접 죽였다.
⒞ 목 적
일반적인 죄를 속죄함 받고 하나님께 헌신과 봉사를 다짐할 목적으로 번제를 드렸다.
⒟ 방 법
동물의 각을 뜬 후 화제로 전부 불살랐는데, 일반적으로 소제나 전제와 함께 드려졌다.
⒠ 의 미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온전히 자신을 산 희생의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전적인 희생을 예표 한다.
성도와 관련해서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본받아 성도 역시 하나님께 자신의 영육을 온전히 산제사로 전적 헌신할 것을 상징한다.
⑶ 특성과 유형
번제의 제물은 생축이었으며 바치는 자의 신분이나 빈부에 따라 소나 양, 염소 또는 새를 드릴 수 있었다. 이것은 번제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며 또 번제물을 드리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순종의 제사임을 뜻한다.
⒜ 소를 드릴 경우
레위기 1장 3-9절에 하나님께 소를 희생 제물로 드리는 방법이 언급되어 있다. 제물을 바치는 자는 그 소의 머리에 안수를 하여 자신의 죄를 그 희생 제물에 전가하고 제물을 직접 잡아야 했다. 제물을 친히 죽임으로써 자신을 전적으로 바쳐드리는 헌신의 삶을 고백했으며, 또한 자신을 대신하여 죽어가는 짐승을 보면서 속죄의 은총을 감사했다.
⒝ 양이나 염소를 드릴 경우
하나님의 율법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빈손으로 갈 수가 없었다.
번제물은 대개 경제적 형편에 따라 구분 되었는데, 소를 드릴 수 없는 계층은 양이나 염소를 제물로 드렸다. 이것은 하나님은 제물에 차별을 두지 않으시고 형편에 맞게 정성껏 드리는 예물을 기뻐 받으심을 의미하고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희생 제물로 드리는 양이나 염소는 ‘흠 없는 수컷’이어야 했는데 드리는 법은 소를 제물로 드릴 때와 동일하다.
⒞ 새를 드릴 경우
번제물로서 소나 양 또는 염소가 경제적으로 힘겨울 때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를 바칠 수 있었으며 드리는 방법은 다른 것과 조금 차이가 있다. 제물은 안수함이 없이 바로 제사장에게 가져갔다는 것과 절차상의 차이가 있었다. 번제는 자원제였기 때문에 비둘기로 제물을 드렸다고 하여 당하는 불이익은 전혀 없었다.
실제로 가난했던 요셉과 마리아는 산결례(産潔禮)로 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하나님께 바쳤다(눅 2:24).
⑷ 제사의 방법
소나 양은 ‘흠 없는 수컷’으로 드려야 했다(레 1장).
제사를 드릴 때에는 드릴 짐승을 끌고 회막이나 또는 성전에 나와서 제물의 머리에 안수해야 했는데, 그 안수한 희생 제물은 안수한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을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레 1:4)는 말씀처럼 드리는 자가 자기의 생명을 바친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제물은 당사자가 직접 잡아서 그 피를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번제단 사면에 그 피를 뿌린다. 상징적으로 제주(드리는 자)는 스스로 그것을 바쳤고 제사장이 하나님께 드린 것이 된다.
이것은 모형이고 원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제단에 달리심으로 아버지께 자신의 생명을 드려 제사장의 기능을 수행하신 것이다.
헌제자(祭主)는 그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내장과 정강이는 물로 씻어 제사장에게 주면 그것을 제단 위에서 태운다.
가죽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고, 가죽은 제사장의 몫이 되었다(레 1:5-9, 7:8). 제물의 종류가 비둘기일 때는 암수 구별 없이 먼저 머리를 비틀어 끊고 피는 단 곁에 흘렸으며, 더러운 찌꺼기들은 단 동편 재 버리는 곳에 버리고, 그 몸은 제사장이 단 위에 불살라 번제로 드렸다(레 1:15-17).
이상과 같은 규례를 지켜드린 번제 또는 화제는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시며 열납 되는 제사였다.
⑸ 영적 의미
번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구원만이 아니라, 성도들이 이에 대한 보답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헌신을 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일상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번제는 ‘피 있는 제사’로 인간이 하나님께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축을 통한 희생의 제사가 있어야 했으며 형식에 그쳐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육체의 생명은 피 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이 생명이 피 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비록 이 짐승으로 드리는 희생제물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죄하게 하는데 유효 했다지만, 그 동물로 드리는 희생 제사가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대속의 가치가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는 모든 제사의 완성이시다.
b. 소제(素祭, The Meal Offering, 자원제, 레 2장)
⑴ 소제의 어의
소제는 히브리어로 민하( 히 )로서 마나( 히 )라는 어근으로부터 나온 여성명사인데 ‘마나’는 아랍(Arab)어로 ‘준다’는 뜻이 있다.
‘민하’(minchah)는 an offering(예물), present(선물), to give(주다), to bestow(증여하다), oblation(봉납), service(봉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을 의미한다. 또 소제는 번제와는 달리 ‘피 없는 제사’이며 다른 제사와 함께 드린 제사이므로 ‘부속된 제사’라고도 한다.
소제는 보통 번제를 드린 후에 드렸으며, 전제와 함께 드렸다(민 15:3-4,7,9,10). 소제(The Vegetable Offering)도 동물의 희생제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상징적인 음식으로 식물(meal)은 고기를 대신하고, 식물기름(oil)은 동물 기름을 대신하며(fat), 포도주는 피를 대신한 것이다.
⑵ 목적과 의미
⒜ 목 적
‘소제(素祭)’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선물’이란 뜻을 지닌다. 이러한 소제는 땅의 소산물을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모든 소산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또한 그 소산물에 대해 하나님께 경의와 감사를 표현하기 원할 때 언제든지 자발적으로 드릴 수 있었다.
⒝ 제 물
소제의 제물로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고운 가루, 고운가루를 요리해서 만든 여러 가지 형태의 떡, 처음 익은 열매를 볶아 찧은 것 등이 있다(레 2:1-10,14-16).
⒞ 상징적 의미
인간과 관련하여 소제는 하나님을 향한 충성과 감사를 상징하고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소제는 흠 없고 죄 없으신 순결한 그리스도의 인격과 생애를 상징한다(레 2:1-10,14-16).
⑶ 특성과 유형
소제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감사와 주 예수의 순결한 생애를 상징한다. 소제는 번제와 마찬가지로 향기로운 냄새를 하나님께 열납 되게 드리는 제사이며, 재료는 고운가루, 기름, 유황과 소금으로 각 재료는 그리스도의 유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번제와 소제의 차이점은 번제가 생명을 바쳐서 주 뜻대로 삶을 고백하는 것이라면, 소제는 열매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표현한다.
또 번제가 생명을 하나님께 굴복시켜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의무를 이행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소제는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신 것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케 하는 것이다.
소제물(素祭物)은 번제와는 달리 그 제물의 일부만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인데, 구약의 5대 제사 중 유일하게 피 없는 제사로서 다른 피 흘리는 제사와 더불어 그 일부로서 드려지는 형태(민 6:15-17, 15:1-10, 28:5, 레 7:11-14, 8:26-28, 23:13), 독자적으로 드려지는 형태(레 2장), 두 가지가 있었다.
⑷ 제사의 방법
누구든지 고운 가루를 가지고 나왔을 때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황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에게 가지고 간다.
제사장은 그 고운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황을 취하여 기념물로 제단 위에 불사르고 소제의 남은 것은 제사장들이 취하였다.
또 무교병도 누룩을 넣지 않은 고운가루로 떡을 만들어 굽든지, 삶든지 기름을 발라 제사장에게 주면 단 위에 불살라 화제로 드리고 남은 것은 아론의 자손들이 취했다.
그리고 첫 이삭을 드릴 때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기름을 더하여 가지고 나오면 그 중에 얼마를 취하여 모든 유황과 함께 불살라 드린다. 그러나 주의 할 것은 누룩이나 꿀을 섞어 드리지 못하며, 소금을 빼지 못하게 하였는데, 소금은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이기 때문이다(레 2:1-18, 6:14-18, 민 15:4이하). 또 이 소금은 하나님께 대한 신자의 순결성을 상징한다.
소제를 드릴 때마다 드리는 유황은 하늘까지 상달되는 기도력을 의미한다. 아론의 자손이 드리는 소제물은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일을 항상 드리되 절반은 아침에 절반은 저녁에 드리게 되어 있다.
⑸ 영적(靈的) 의미
소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절대 충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소제는 우리 육신에 필요한 식물을 하나님이 주셨음을 깨닫고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제사를 드릴 뿐 아니라 영혼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위하여 신령한 양식을 주심도 관계한 것이다.
소제는 기름과 함께 드렸는데, 기름은 성령을 의미하며 성령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첨가하라고 하신 것은(레 2:13), 소금은 언약을 의미하므로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자는 영원한 상급이 약속된 사실을 명심하고 자기를 희생의 제물로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c. 화목제(和睦祭, The Peace Offering, 자원제, 레 3장, 7:11-34, 17:1-9)
⑴ 화목제의 어의
화목제는 히브리어로 제바크 쉘라밈‘( 히 )인데 ’제바크‘와 ’쉘라밈‘이 각각 단독으로 화목제를 뜻하기도 한다. 이 제사는 감사제사라고 하나 정확히 말하면 구원의 제사이다.
레위기에서 많이 사용된 자바크( 히 )는 ‘짐승을 잡다’,‘도륙하다’라는 뜻으로 ‘희생물’을 뜻한다.
쉘라밈은 ‘화평하다’, ‘교제하다’란 뜻의 단수인 쉘렘( 히 )에서 파생된 말로 화평, 친교란 뜻이다. 쉘렘은 축복과 능력에 관계를 가질 때가 있고 구원과 관계를 가질 때도 있는데, 그때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관계하시는 때이고, 또 가끔은 구원에 대한 감사에도 사용했다. 그래서 세 가지 다른 종류의 말로 불리기도 했는데, 찬양제사, 서원제사, 그리고 자원의 제사이다(레 7:12,16). 그러므로 화목제는 여러 가지로 호칭될 수 있으나 그 중심은 구원만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감사를 의미한다.
⑵ 목적과 의미
화목제는 여호와를 섬김에서 향유하는 적극적인 은총과 축복의 상태를 상징한다.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라고 하여 ‘감사제’라고도 하고,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감사, 감격하여 하나님께 헌신을 맹세하는 제사여서 ‘서원제사’ 또는 ‘자원제사’라고도 한다.
화목제사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는 수직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의 담을 허물어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관계를 화해시키는 은총의 역사이며, 둘째는 수평적으로 인간 상호간에 가로 막혀 있는 불신과 미움의 벽을 허물어 진정한 사랑을 회복시키려는 은혜의 역사이다.
번제단 사면에 뿌려졌던 화목제물의 희생의 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며 또한 화목제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성소에서 허락된 제물을 같이 먹는다는 공동체 의식 속에 화해와 친교의 화목제 정신이 살아나는 것이다.
⒜ 특 징
1, 소, 양, 염소 중 수컷이나 암컷의 구별 없이 희생 제물로 드릴 수 있었다.
2, 생활 형편에 맞게 자원하여 드릴 수 있었다.
3, 유교병이 사용될 수 있었다(레 7:11-14).
4, 제사 후 같이 공동식사를 나눔으로써 축제적이고 친교적인 성격이 짙었다.
5, 화목제는 제물을 드리는 자가 자신이 드린 예물을 먹을 수 있었던 유일한 제사였다.
⒝ 의 미
번제와 소제는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헌신을 나타내지만 화목제는 하나님에 대한 자아 헌신은 물론이고 하나님과의 영교를 나타낸다.
이 제사가 기쁨과 화해의 제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희생 제물과 피가 있었기 때문이다.
화목제는 먼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성도와 하나님과의 화목과 교 통을 의미하며(롬 5:1, 골 1:20) 동시에 성도 상호간의 즐겁고 거룩한 교제를 표징(標徵)하는 제사로서 신약시대 성만찬의 근원이다.
⑶ 특성과 유형
화목제의 제물로는 번제와 마찬가지로 생축으로 소, 양, 염소를 드릴 수 있었으나 번제와는 달리 날 짐승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러한 화목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평과 친교를 나타내는 제사로서 수은제, 평화제, 구원제(救援祭), 감사제 등으로 불리는데 그 성격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베풀어 주신 복과 구원에 감사할 때 언제든지 드리는 감사제,
둘째, 간구가 이루어진 경우, 혹은 이루어진 줄 믿고 믿음으로 바치는 서원제,
셋째, 조건 없이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시할 때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자원제(自願祭)로서 일명 낙헌제(樂獻祭) 등이다.
결국 화목제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하여 드리는 기쁨과 화해의 제사이다.
⑷ 제사 방법
화목제를 드리는 방법에 대해서는 레위기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고 특히 레위기 3장과 7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소와 양 그리고 염소 중에서 수컷이나 암컷을 택하되 흠이 없는 것이라야 하고((레 3:1,7,12), 예물을 드리는 자가 예물을 가지고 회막으로 나와서 그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에서 그것을 잡는데, 예물의 피를 제사장은 단 사면에 뿌리고 예물의 기름은 제단에서 불태웠다(레 3:4-5).
제물을 드리는 자는 그 짐승의 더러운 것을 회막 밖에 있는 곳에 버리고 가죽과 앞,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제물의 가슴은 요제로 드리고 우편 뒷다리는 거제로 드린다.
그리고 남은 부분은 제사장과 그의 가족이 먹었고 예물을 드리는 자도 예물의 한 몫을 소유했다. 제사장과 가족들은 그것을 그 날에 먹어야 하며 조금이라도 아침까지 두지 말고 그 제물의 남은 부분은 태워버려야 했다.
⑸ 영적 의미
화목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제사로 죄인들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구원으로 내적인 평안과 즐거움을 가지게 되어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제사이다.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죄를 대신 지시고, 속죄의 피를 흘리시고(벧 1:19), 또 살을 찢어 우리에게 양식으로(요 6:31-58) 주어 영으로 살고 신령한 양식으로 살이 찌게하고,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계시어 화목하게 하셨다.
화목제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진 화평의 제사를 의미하는데 감사와 서원 등을 위한 것으로서 자원하여 드리는 것이지만 모든 다른 제사처럼 속죄의 요소도 지니고 있다.
번제단 사면에 뿌려지는 희생제물의 피로 인해 화해와 친교의 화목제 정신이 살아나고, 또한 이 피는 구속사적으로 장차 십자가상에서 흘려질 그리스도의 대속의 보혈을 예표하고 있다.
d. 속죄제(贖罪祭, The Sin Offering, 의무제, 레 4:1-35, 출 29:10-14)
⑴ 속죄제의 어의
속죄제는 히브리 원어 ‘카타트’( )로 곧 죄(sin)를 의미하는데, 이 말은 ‘빗나가다’, ‘죄를 짓다’란 뜻을 가진 카타( )의 파생어이다. 따라서 속죄제란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에서 빗나간 모든 죄에 대하여 청결과 자유를 얻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이다.
⑵ 목적과 의미
레위기 4장 2절에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라고 했는데 고범죄가 아닌 죄로서 하나님 앞에 부지중에 범한 죄를 깨닫고 자복하는 마음이 생길 때 드렸으며, 제물을 드리는 자가 범한 죄에 대하여 대속한즉 사함을 얻었다.
속죄제는 죄를 속하고 사함을 받기 위한 제사로서 반드시 드려야 하는 의무제이고 신분에 따라 제물이 다르게 정해져 있었다.
번제에서 모든 제사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다면, 속죄제는 인간을 위한 것이다.
⒜ 특 징
1, 제사장이나 회중을 위한 경우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를 속죄 제물로 드렸다.
2, 족장을 위한 경우에는 흠 없는 숫염소를 속죄 제물로 드렸다.
3, 평민을 위한 경우에는 흠 없는 암염소 혹은 암양을 각각 속죄 제물로 드렸다.
⒝ 의 미
속죄제는 죄인들의 속죄를 위한 대속물이 되시사(요 1:29, 고후 5:21),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처형당하신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뚜렷이 보여주는 대속의 사역을 예표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알지 못하시되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음’이 되셨다는 말씀(고후 5:21)은 속죄제물이 되셨다는 의미이다.
⑶ 속죄제의 특성과 유형
속죄제의 제사는 향기로운 제사가 아니었다.
번제, 소제, 화목제는 모두 향기로운 냄새의 제사로 하나님 앞에 열납되는 제사였으나 속죄제는 열납을 위한 제사가 아니라 속죄를 위한 제사이다. 전자의 경우 제물을 드리는 자가 하나님께 만족을 드리기 위해 나왔으며 제단위에서 제물이 태워짐으로 향기로운 냄새가 열납이 되었으나, 속죄제의 경우에는 제물을 드리는 자가 죄를 범한 죄인으로 나왔다. 그러므로 제단 위에서가 아니라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에서 제물을 불살랐다.
고기를 진 바깥 정결한 곳에서 태우는 것은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다.
또 죄를 지은 자의 지위에 따라 제물의 등급 및 제사의 규례가 다르게 적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구속사적으로 장차 전 인류의 죄를 완전히, 단번에, 그리고 영원토록 대속하기 위한 제물로는 더 크고 값지며 완전한 제물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계시하시기 위함이다(히 9:13-14,23).
속죄제는 바로 이러한 진리를 모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구약의 갈보리 사건인 것이다.
⑷ 제사의 방법
⒜ 제사장을 위한 속죄제(레 4:1-12)
흠 없는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와서 제물을 드리는 자가 희생 제물에 손을 얹어 안수하고 그 희생제물을 잡은 다음 그 피를 가지고 회막 안으로 들어와 손가락으로 피를 찍어 성소 앞에 일곱 번 뿌리고, 향단 뿔에 피를 바르고 회막 앞과 번제단 밑에 전부 쏟았다. 그리고 여러 부위의 기름과 두 콩팥과 함께 취하여 번제단위에 불살라 화제로 드렸고, 그 나머지 부분인 가죽과 모든 고기와 머리와 내장과 똥, 곧 기름과 콩팥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진 밖 재버리는 정결한 곳에서 나무 위에 놓고 불살랐다.
⒝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한 속죄제(레 4:13-21)
제사장을 위한 속죄제와 동일하여 제사장이나 회중이 범죄 하여 그 죄를 속죄함 받기 위하여 드리는 희생 제물에는 제사장과 경배자의 몫은 없었다. 그러나 회중이 범죄 하였을 경우 모든 사람이 일일이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할 수 없으므로 모든 백성을 대표하여 장로들이 제물에 안수하였다.
⒞ 족장을 위한 속죄제(레 4:22-26)
숫염소 중 흠 없는 제물을 택하여 희생 제물에 안수한 후 여호와 앞에서 그 제물을 잡아 희생제물의 피를 성소 뜰 번제단 네 귀퉁이 뿔에 바르고 나머지 피는 번제단 밑에 쏟았다.
제사장, 회중의 경우와 같으나 성소 안 향단 뿔에 피를 바르던 대신 번제단 뿔에 바르는 것이 다른데 그 이유는 평민이나 족장이 범죄 한 경우 죄의 영향력 면에서 제사장이나 회중이 범죄 한 경우보다 작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죄의 영향이 지파나 개인으로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 평민을 위한 속죄제(레 4:27-35)
이스라엘 평민 중 하나가 금령을 어겼을 경우, 속죄 제물로는 흠 없는 암 염소나 어린 양을 드렸다. 이것은 속죄 예물 중에 그 질이 가장 낮았는데 그 이유는 평민이 범한 죄는 그 영향력이 제사장과 족장과는 달리 그 가족에게만 미치기 때문이다.
아무리 신분이 낮은 평민이라고 할지라도 범죄에 대해서는 면죄가 되지 않아 가난한 지의 속죄제를 위하 여는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드린다.
그것에도 힘이 모자라는 극빈자는 고운가루 에바 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속죄 제물로 드리되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라고 하였다(레 5:11-13).
짐승의 희생제물 중 기름과 콩팥부분은 제사장이나 회중의 속죄제 때와 같이 번제단 위에서 불살랐으나 그 나머지고기는 진(陣) 밖에서 불태우지 아니하고 ‘성막 뜰 안에서’ 제사장들이 먹을 수 있었다(레 6:26-30).
⑸ 영적 의미
속죄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들을 구속하심을 의미한다. 희생 제물에 안수하는 것은 바로 범죄자의 죄를 희생 제물에 전가시키는 것으로 바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고 속죄의 제물이 되신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인들의 죄를 한 몸에 지시고 하나님의 속죄 희생의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시어 대속물이 되셨는데(롬 15:5, 벧전 1:18-19),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히 9:22, 레 17:11).
그러므로 제사장이 그 손가락에 피를 찍어 성소의 휘장에 뿌린 것과 향단 뿔에 바른 것은 이 일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자기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실 것을 예표 한 것이다(히 9:12).
e. 속건제(贖愆祭, The Tresass Offering, 의무제, 레 5:14-6:7)
⑴ 속건제의 어의
속건제의 어원은 아솸(히브리)으로 ‘의무를 다하지 못하다’ ‘위반하다‘ ’범죄 하다‘의 뜻으로 죄가 아니고 범죄, 범법과 손해 등을 의미한다.
범죄 또는 범법이라는 것은 사회생활 질서를 침해하는 반사회적, 반문화적, 반규범적 행위이다.
이에 대하여 성경이 말씀하는 범죄는 신앙생활의 질서를 침해하는 반 신앙적, 반 진리적, 반 율법적 행위라고 할 수 있으므로 ‘아솸’은 신앙의 윤리를 떠나서 행한 제반행위이다.
⑵ 속건제의 목적과 의미
속건제는 범죄 또는 범과를 사함 받기 위해 제물을 드리는 제사이다.
속건제는 두 가지 특색이 있는데, 하나는 이것을 얼마나 갚을 것인가에 대한 가치 평가가 있는 유일한 희생제이며, 다른 하나는 얼마의 돈이 더해지는지 유일한 제사라는 것이다.
구약의 5대 제사 중 속건제만 희생제물 외에 일정액의 손해 배상을 반드시 지불해야 했다.
⑶ 특성과 유형
범죄 한 대상에 따라 여호와의 성물 또는 금령을 범한 자는 흠 없는 숫양(레 5:15-19)을, 모르고 범했든지 알고 범했든지 죄를 범했을 때 숫양의 피를 흘려 이 제사를 드렸다.
속건제는 오직 실제적인 제물가치(actual property value)가 치러지지 않는 데에서만 요구되는 것으로 한정된 영역에서의 물질적인 내용은 죄의 일반 영역에서의 영적인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성물의 상실과 타인의 물건을 불법적으로 획득한 경우에 드려져야하는 것이 속건제의 규정이며, 이 경우 제물을 여호와께 드리고, 회개와 화답의 표시로 오분의 일을 더하여 배상해야 한다.
⑷ 제사의 방법
속건제도 다른 제사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거룩하고 피 흘림이 있어야 했다. 희생물의 종류는 “너의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숫양”(레 5:15,18)이다.
제사장이 숫양의 피를 제단 주위에 뿌리고 속건제의 일부분, 내장의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간에 덮인 꺼풀은 제단 위에서 태운 후 그 나머지 부분은 속죄제와 같이 제사장이 거룩한 장소에서 먹었다.
⑸ 영적의미
이사야 53장 10절의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에서 메시야의 대속적인 죽음은 속죄제의 성격처럼 죄를 씻고 용서하는 성격과, 죄에 대한 배상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만족이라는 성격을 포함하는 완전한 제물로서의 죽음인 것이다(히 10:10-14).
속건제는 우리가 지은 죄 값을 대신 지불해 주시는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예표 한다(사 53:4-6).
2. 제사의 방법과 영적 의미
a. 화제(火祭, The Fire Offering, 출 29:18)
⑴ 어 의
영어로는 ‘Fire Offering'이고 히브리어로는 ’이쉐‘(히브리)로 이 말은 ’불에 태우는 제사‘ 혹은 ’제물‘ ’에쉬(히브리), 즉 불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화제는 ‘불로 태운다’는 의미이나 이쉐는 전체가 다 불 태워지는 제물의 경우뿐만 아니라 일부만 태워지고 나머지는 제사장 몫이 되는 헌물의 경우에도 사용되고 있다. 새 번역 영국 성경(NEB)과 현대인을 위한 성경(TEV)등은 ‘양식의 제물’(Food Offering)로 번역하고 있다.
화제는 제사 드리는 4대 방법 중의 하나로 고대부터 가장 보편적으로 취해졌던 제사의 형태이다.
⑵ 제사 방법(레 1:4-11, 3:3-9, 4:6-7,24)
(a) 제사를 드리는 자가 제물을 끌고 와 그 머리에 안수한다.
(b) 제사장이 제단 곁에서 제물을 잡는다.
(c) 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성막 기구에 바르거나 뿌리고, 단 주위에 쏟거나 뿌린다.
(d) 제물을 단 위에 불살라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게 한다.
⑶ 해당제물(레 1:3,10,14, 2:1-2, 3:1,6,12, 4:23,28)
흠 없는 수소, 숫양, 암양, 숫염소, 암염소, 산비둘기, 고운 곡식가루, 기름, 유황 등이다.
⑷ 해당제사(출 29:18,25, 레 1:9,13,17, 2:1-16, 3:3,5,9, 5:12, 6:17-18)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등에 해당된다.
⑸ 영적의미
희생제물의 연기가 하늘로 올라감을 통하여 예배자의 심령이 하나님께 바쳐짐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시어 하나님께 받쳐짐을 의미한다(마 26:28, 히 9:12-14,24-26, 10:10-14). 또한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위하여 생명을 바쳐 희생당하심을 상징한다(마 27:17-50 엡 5:2).
b. 거제(擧祭, The Herve Offering, 레 7:32)
⑴ 어 의
히브리어로 ‘테루마’(히브리)로 ‘높이 쳐들다’ ‘높이 떠 바치다’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heave offering'이다.
이는 제물을 높이 들었다가 내려놓은 제사로서,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제사장이 받았음을 보여 주는 데서 생겨났다(출 29:27-28, 레 7:14,32).
⑵ 제사방법
제사장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희생제물을 높이 들어 올렸다가 내린다.
⑶ 해당제물
화목제 희생물의 우편 뒷다리, 처음 익은 곡식, 불태우지 않은 희생제물 부분, 토지의 소산물, 십일조, 기름, 포도주 등이다(레 7:32, 민 15:20, 18:24, 31:50-53, 느 10:39).
⑷ 해당제사
화목제로 희생제물의 가슴을 드릴 때(레 7:14,31), 땅의 처음 소산물을 드릴 때, 십일조를 드릴 때, 전리품을 드릴 때에 해당된다.
⑸ 영적의미
하나님께 받쳐진 것을 제사장이 다시 하나님께로부터 받음을 상징하며(레 7:31-34),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양식으로 주어지심을 상징한다(요 6:33-58, 롬8:32).
c. 요제(搖祭, The Wave Offering, 출 29:24)
⑴ 어 의
히브리어‘테누파’(히브리)는 ‘흔들다’(wave, quiver, shake),란 뜻의 ‘누프’(히브리)에서 파생된 말이다. ‘테누파’는 ‘앞뒤로 움직이다’, ‘흔들다’는 뜻의 히브리 동사 ‘누프’(히브리 )의 힙일형(능동사역형)에서 유래 되었다.
⑵ 제사방법
요제는 제사 드리는 4대 방법 중하나로 제사장이 제물을 제단 앞에서 앞뒤로 수평 되게 흔드는 제사 방법이다. 제물을 제단 앞으로 내미는 행위는 여호와께 바침을 뜻하며, 그것을 뒤로 가져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시 제사장에게 주심을 뜻한다.
이 예식은 제사장 위임식 때(레 8:25-29, 출 29:22-27), 유월절이나 오순절의 첫 이삭 드릴 때(레 23:11,20), 나실인의 경우(민 6:20), 문둥병자가 속건제를 드릴 때(레 14:12,24), 의심의 소제물을 드릴 때(민 5:25), 레위인의 성별식 때(민 8:11-13), 등에도 행해졌다.
⑶ 해당제물
화목제로 드려지는 동물의 가슴부분과 첫 곡식 단, 첫 이삭의 떡. 등이다(레 7:30, 9:20, 10:14-15, 23:15,20, 민 6:20, 8:11-15, 18:18).
⑷ 해당제사
화목제, 속건제, 땅의 처음 익은 소산물을 드릴 때 해당 된다.
⑸ 영적의미
하나님께 흔들어 바친 것을 다시 제사장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음을 의미하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양식으로 성도에게 주어지심을 상징 한다(민 18:8, 요 6:31-58, 롬 8:310).
d. 전제(奠祭, The Drink Offering, 출 29:40)
⑴ 어 의
히브리어는 ‘네세크’(히 ), 헬라어는 ‘헬 ’, 영어로는 Libation ; drink offering이다.
전제는 포도주, 물, 기름 등과 같은 액체를 붙는 것으로 구약의 많은 제사에 첨가되었다(출 29:40-41, 레 23:13,18,37, 민 15:4-10,24, 28:7-10).
⑵ 제사방법(민 28:7,14)
(a) 포도주나 독주를 다른 제물과 함께 부어드린다.
(b) 제사의 희생물이 일 년 된 어린양일 때는 포도주 4분의 1힌, 숫양일 때에는 3분의 1힌, 수송아지일 때는 2분의 1힌을 붓는다.
⑶ 해당제물(레 23:13, 민 15:7, 28:7)
포도주, 독주로 전제물인 술은 일종의 추가적인 기뻐하는 향기로운 냄새 제물로 여겨졌다.
⑷ 해당제사
전제는 화제, 요제, 거제등과 함께 드려졌고 단독으로 드려질 수 없다.
번제, 소제, 화목제와 함께 드려졌으며 번제물과 같이 전제물도 제사장이 취할 것은 없었다. 상번제(출 24:40-41, 민 28:7), 안식일 제사, 월삭 제사(민 24:9,14) 때에도 드렸던 것으로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⑸ 영적의미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다 바쳐 충성심을 상징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헌신적인 봉사를 상징한다(마 27:46-51, 빌 2:17, 딤후 4:6).
3. 성막(성전)과 절기
a. 산술역법(算術曆法)에 의한 기념 절기
⑴ 안식일(安息日, The Sabbath Day, 출 31:12-17, 창 2:1-3, 신 5:12-15)
안식일은 히브리어로 ‘샤바트’(히 )이다. ‘샤바트’는 명사인데 ‘샤발’(히 )에서 온 것으로 ‘샤발’은 ‘노동으로부터 쉬다’ ‘그치다’ ‘중지하다’는 의미를 갖는데 특히 ‘노동으로부터 쉬다’, ‘안식을 지키다’를 의미한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계시로 창세기 2장 3절에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천지와 그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제 7일 되는 날에 쉬었다고 하는데서 기원한다. 하나님은 창조사역을 마치신 후에 친히 쉬셨고, 이날들을 거룩하게 하셨다. 십계명의 제 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지켜라”고 명령하셨다.
안식일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에게 복주시고 그 영장인 인간에게 영과 육신에 복을 주시는 거룩한 날이다.
⑵ 안식년(安息年, Sabbatical year, 출 23:10-11, 레 25:2-7, 20-22, 신 15:1-15)
안식년은 히브리어로 쉐베트( 히 )인데 이는 ‘안식’ 또는 ‘안식의 해’라는 뜻이다.
안식년은 7년을 1주기로 환산할 때 그 마지막 해 즉 7년째 되는 해이다.
안식년은 땅을 갈지 않고 묵혀두며, 가난한 자와 짐승들에게 먹이고 빛을 면제해 주며, 이스라엘의 종들을 해방시키는 해로 정해진, 히브리 역법상의 7년 주기의 마지막 해이다.
안식년 제도의 영적의미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성취될 안식의 기쁨을 상징함이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출발을 의미함이다.
⑶ 희년(禧年, Year of Jubilee, 레 25:8-55, 27:14-24, 민 36:4)
희년은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그 다음 해 즉 제 50년을 말한다.
희년은 히브리어로 요벨( 히 )인데 이 말은 레위기 25장,27:18, 23-24절에 ‘수양의 뿔의 해’( 히 ) 또는 ‘하요벨’( 히 , 레 25장, 민 36:4)의 요벨( 히 )에서 유래되었다.
희년의 기원은 하나님께로서 이며 희년의 규례 중 토지제도는 안식년이 되면 남에게 팔거나 저당 잡힌 땅을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또한 희년이 되면 노예도 해방이 되어 자유인이 되는데 이것은 천국을 궁극적인 소망으로 살 것을 예시하는 것으로 우리가 천국에서 물질과, 육신의 고통과, 절망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어 영원한 복락을 누릴 것을 예표 하는 것이다.
⑷ 월삭(月朔, New moon, 민 10:10, 28:11-15, 스 3:5, 느 10:33)
월삭은 히브리어로 ‘호데쉬’(히 )인데 이말은 ‘로쉬 호데쉬’( 히 )에서 온 말로 ‘달의 시작’(처음, 민 10:10, 28:11 참조)이라는 뜻으로, 이 월삭은 초승달 출현으로 시작되는 매달의 첫날을 종교적인 축제일로 지키는 날이다. 월삭을 절기로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해 하신 폐할 수 없는 약속의 징표로서 달을 창조하셨고 그 달로 하여금 제사의 때를 정하게 하셨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시 104:19).
월삭을 지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안식일과 비슷했다. 일로부터의 휴식, 희락이 있었으며(암 8:5, 호 2:11), 금식과 슬픔이 중지되었다.(외경, 유다서 8:6) 성전제사에는 특별한 제물이 바쳐졌는데 이는 안식일에 드리는 것보다 더 훌륭한 제물이기도 했다(민 28:9-15).
첫 것은 여호와께 속하였다 따라서 첫 것은 하나님께 봉헌해야 함을 상징하며, 한 달의 첫 날로서 성도의 새로운 삶의 헌신을 예표하며,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⑸ 나팔절(The Feast of Trumpets, 레 23:23-25, 민 10:1-10)
나팔절이라고 한 것은 여러 가지 제사와 함께 나팔을 사용하였기 때문인데, 나팔을 불어 기념하는 절기는 나팔절 뿐이다.
레위기 23장 24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라고 하였다. 나팔절은 민간력으로 새해의 첫날이 되며, 유대교의 월력으로 안식의 달인 제 7월(Tishri) 1일로 나팔을 불어 새해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이 날에는 성회로 모이고 노동을 금했으며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나팔을 불어 신년 축제의 기쁨을 알렸다.
기쁨으로 새날을 맞을 것을 선포하였기 때문에 ‘신년절’이라고도 불렀으며, 나팔절은 월삭 때보다 더 큰 규모의 희생 제사를 드렸다.
⑹ 속죄일(The Day of Atonement, 레 16:1-34, 23:26-32)
속죄일은 히브리어로 ‘욤 하프림’( 히 )으로 부르는데, 그 뜻은 ‘보상의 날’(Day of Atonements)이다.
속죄일은 나팔절 다음에 오는 절기로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고 이 날에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라”(레 23:27-28)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속죄일을 정하신 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죄와 제사장의 죄, 성막의 부정함 등을 철저히 속죄하기 위해서이다.
이 날은 모든 사소한 노동까지 금지되었고 금식이나 고행 등을 통해 스스로 괴롭게 해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이 범죄 했을 때에 속죄제를, 그들의 죄에 대한 보상은 속건제를 드려 지불했다.
그러나 부지중에 범죄 한 경우와 온전히 속죄하지 못한 죄와 범죄를 하고도 깨닫지 못하는 죄의 잔재들을 깨끗하게 제거하기 위해서는 1년에 1차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서 모든 죄를 깨끗이 씻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구속사적 의미로 이 속죄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구약의 예표이다.
b. 사건에 따른 기념 절기
⑴ 유월절(Passover, 출 12:3-4, 레 23:4-5)
유월절은 ‘페사크’( 히 )로 출애굽의 기념과 해방을 제공하신 하나님의 영광스런 경륜을 기념하는 절기로서(출 12;1-4), 구속사의 전형을 이루는 날이다. 이날은 애굽으로부터 속박과 고난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의 구원함을 뜻하는데, 특별한 제사를 드리지는 않았으며단지 전 가족이 함께 모여서 ‘어린양 식사’를 하는 관례만 있었다.
이스라엘 역사를 통한 이 의식의 계속은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유월절은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그림자이다. 또 구약의 유월절은 사망에서 구원의 예표요,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이며, 완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⑵ 무교절(레 23:6-8, 출 23:14-15, 신 16:2-3, 고전 5:8)
무교절은 히브리어로 ‘카그 하마촛’( 히 )이며, ‘카그 하마촛’은 ‘칵’( 히 )이라는 낱말과 ‘하마촛’( 히 )이라는 낱말이 결합된 합성 명사이다.
‘카그’는 ‘절기를 지키다’ 혹은 ‘성일을 축하하다’이다.
무교절은 유월절과 같은 사건의 연속이며 유월절의 계속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아빔월인 1월 14일이 유월절이고, 무교절은 다음날인 15일부터 시작되어 7일 동안 계속되는데(신 6:8), 무교절 음식은 유월절부터 먹었기 때문에 7일을 먹는 셈이다. 레위기 23장 6절에“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라고 하였다.
유월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은 단 하루만 지키는 절기인 반면에 무교절은 7일 동안 지켜야하는 절기이다.
출애굽이란 한 사건을 중심으로 볼 때 유월절은 초태생의 죽음을 강조하는 절기이며, 무교절은 애굽에서의 해방을 강조하는 절기로 지켜졌기 때문에 상호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는데, 엄격히 유월절을 무교절에 포함시켜 언급한 경우도 있고, 그와 반대로 언급한 경우도 있다(출 12:3-20, 13:3-8, 행 12:13, 20:6).
영적으로는 유월절과 무교절이 주는 의미와 기독론적 사건을 볼 때 서로 다른 진리를 보여준다. 그러나 유월절과 무교절은 각각 다른 목적을 지닌 절기이나 이 두 절기를 함께 지키는 것은 연결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⑶ 수전절(修殿節)
수전절은 성전 재 봉헌 축제(聖殿 再 奉獻 祝祭)를 일컫는 말로서 히브리어로 ‘하누카’( 히 )라고 하고 영어로는 Dedication, Feast of이며 헬라어로는 (호 엥카이니스모스, 외경 마카비 上서 4:56) 또는 (호 카다리스모스, 외경 마카비 下서 10:5)로 말하고 있다.
오늘날 ‘하누카’로 불리는 연례 봉헌 축제가 생기게 된 것은 B.C.165년 유다 마카베오가 희랍의 셀류쿠스군에게 승리한 것과 수리아 안티오 쿠스 에피파네스가 더럽혔던 성전을 재 봉헌하고 특별히 새로 만든 제단(외마상 4:53)을 봉헌한 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 축제는 다른 말로 ‘빛의 축제’ 또는 ‘광명제’라고 부르며 겨울에 8일간 계속되는데, 기슬래월 25일에 시작된다.(요 10:22-23, 수전절)
이 행사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고 각자의 집에서 지켜도 되었다. 하누카는 비록 율법에 규정된 축제는 아니지만 중단되지 않고 지켜져 왔으며, 최근 유대교에서는 더욱 큰 종교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⑷ 부림절(Purim, 에 7:17-32)
부림절은 히브리어로 ‘부림’(히 ,<제비들>이란 뜻)이라하는데, 영어로는 Purim이라 하며 히브리력으로 마지막 달인 아달월 14, 15일에 기념하는 유대 절기이다13). 부림절은 모세오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에스더서 3:7, 9:24에 잘 기록되어 있다.
부림절의 영적의미는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 섭리 하에 있다는 것을 예시함이며, 택한 성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 사단의 궤계로부터 보호 될 수 있다는 사실과 ‘죽으면 살리라’는 기독교의 역설적인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c. 농경역법(農耕曆法)에 따른 절기
⑴ 초실절(初實節, 레 23:9-14, 롬 8:23, 고전 15:20-23, 살전 4:13-18)
초실절은 히브리어로 ‘빅쿠트’라고 하며, 무교절 기간14)중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로서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첫 열매란 모든 곡식의 첫 열매가 아니라, 일 년 중 가장 먼저 드려지는 곡물의 첫 열매를 말하는 것으로, 보리수확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봉헌하고 지키는 절기이다.
첫 열매는 부활의 첫 열매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초실절은 부활이다. 부활주일이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이스라엘의 초실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⑵ 오순절(오순절, Pentecost, 레 23:15-21, 신 16:10)
오순절은 칠칠절, 맥추절로 불러졌는데(출 34:22), 이 절기는 유월절을 지나서 50일 만에 지키는 절기이므로 오순절15)이다.
오순절은 헬라어로 ‘펜테코스테’( 헬 )인데 ‘펜테콘타’( 헬 )인 50이란 말에서 변형된 것이다.
오순절은 첫 곡식을 거두는 수확의절기로 안식일 이튼 날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로부터 7주간이 지난 그 다음날, 즉 50일째 되는 날 밀의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리는 히브리 최대의 농경제였다. 이 절기는 예수님 당시에도 지켰고 현재에도 지키는 귀한 절기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날에 성려에서 강림하심으로 교회의 탄생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⑶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 레 23:33-34)
장막절은 히브리어로 ‘칵하 숰코트’( 히 )이다. 샤카드(히 )는 ‘덮는다’, ‘보호한다’, ‘덮는 것을 둔다’는 뜻으로‘칵’은 ‘절기’, ‘축제’, ‘제사’를 의미하며,‘숰코트’( 히 )는 ‘초막’, ‘오두막’, ‘장막’을 의미한다.
여호와의 일곱 절기 중 마지막 절기인 장막절은 수장절(출 23:16, 34:22), 또는 초막절이라고도 불렸다.
장막절은 무교절 오순절과 함께 이스라엘 3대 절기 중 하나이며, 종교력 으로는 7월 15일부터 시작하여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레 23:34). 이때는 추수가 끝날 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 첫 날에 일손을 멈추고 하루를 쉬면서 거룩한 소집 나팔은 불어 축제를 선포하였다(레 23:35). 그리고 7일 동안 날마다 번제를 드렸고, 절기가 끝나고 난 8일 째에는 마지막 번제를 드리고 거룩한 성회에 참석하여 하루를 쉬었다(레 23:36,39). 이 절기 동안 모든 백성들은 초막에 거하였는데 그 이유는 광야에서 장막을 치고 살았던 조상들의 과거 생활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D. 예배의 변천사
영어권에서는 예배를 “Worship" 이라고 표현한다. 이 말의 어원은 앵글로 색슨(Anglo Saxon)어인 ”Woerthscipe"에서 유래한 것인데 가치(Worth)와 신분(Ship)이라는 합성어로서 “존경과 존귀를 받을 가치가 있는 자”를 이르는 말이다.16) 즉 예배는 신분적으로 존귀한 자를 만남으로서 그 분께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배의 일반적인 정의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본질성을 내포하고 있는 특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배의 역사를 고찰하는 것은 진정한 예배의 양상을 알게 하며 나아가서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예배의 역사와 발달 과정을 연구함으로 본래의 참된 의미와 방법을 알 수 있으며 본래의 하나님의 뜻도 알 수 있다.
즉, 예배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통해서 예배를 보다 생명력 있게 만들 수 있는 자원을 발견 할 수가 있으며 또한 지나온 교회 예배의 전통적 관례들을 통해서 나타난 과오와 약점들을 오늘에 재조명하여 봄으로써 교회 예배 생활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장점들을 발견하고 약점들은 고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1. 족장 시대의 예배
족장시대의 예배는 주로 개인제단과 가정 제단이었다. 그리고 그 예배의 제단에는 희생 제물이 중심이었다.17)
이스라엘 족장들은 예언자로서, 제사장으로서, 작은 단위의 씨족국가 형태의 왕으로 불렸는데 공적 예배에서는 족장들이 사회를 하였고 예배를 집행하는 일을 하였다.18)
우선 노아의 경우를 보면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에 자신과 가족의 구원에 대한 특별예배와 감사를 여호와께 드리려고 제단을 쌓았다고 기록되고 있다. 노아는 홍수 뒤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의 구원을 칭송하여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를 단에 드렸다.”(창 8:20)는 기록을 보면 족장 노아는 구원 얻은 전체가족을 위하여 제사장으로서 봉사하였는데 이것은 성경의 제사장적인 직무로 나타난 최초의 기록이다.19)
노아 이후 대표적인 족장 아브라함은 그가 천막을 치는 곳마다 자기의 믿음을 예배를 통하여 나타내기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
칼빈은 말하기를 ‘아브라함은 마음의 제단을 어디든지 가지고 갔다’고 하였듯이 이스라엘의 족장들은 그 가족과 함께 어디를 가든지 제단을 쌓고 제사 드리는 일을 하였다.(창 12:7-8, 13:18, 35:1-8, 수 24장 참조)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을 찾으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그 나타나신 곳에서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예배에 있어서 하나님의 임재의 원리를 분명하게 해 주시는 것이다.
이삭은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하나님을 예배드리는 법을 배워 가는 곳마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창 26:24-25).
야곱은 루스벌판 즉 벧엘(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에서 돌로 단을 쌓고 여호와께 예배드리며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의 꿈을 통하여 확실한 응답의 예배 표현을 하였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으시는 자에게 오시고 예배드리는 자의 마음속에서 그 자리에 임재 해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는 외식이고 거짓이며 인간만이 모이는 집단일 뿐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 문제가 있을 수 없다. 만약 있더라도 해결된다.
2. 율법 시대의 예배
히브리인과 기독교의 예배를 세상의 다른 종교의 예배와 구별하는 것은 하나님 백성의 예배는 언제나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예배라는 것이다.20)
율법시대의 예배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노예생활에서 구원하여 주신 경험을 통하여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의 응답으로 예배를 드렸다. 또한 율법을 주시어 율법에 의한 예배를 드리도록 하셨는데 모든 공적(公的)예배는 성전(Temple)이라는 특별한 장소를 중심으로 하여 예배가 드려졌다.21)
율법 시대에도 족장 시대의 가족적 예배가 존속하기는 하였으나 공적 예배의 장소는 성전을 중심한 예배였다. 율법 시대의 예배에는 몇 가지 특색이 있는데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a. 성전에서의 예배
율법 시대의 예배는 성전에서만 드려졌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 이외는 어느 곳에서든지 희생의 제물을 드리는 일이 허락되지 아니하였다.
b. 규정된 예배
예배의 세부적 사항까지 규정되어 있었고 그 규정에 따라서 예배를 드렸다. 그 규정은 성전을 시설하는 방법, 제사장의 예복, 희생 제물의 종류와 방법 등이다. 왜 이렇게 세부적인 것까지 규정지어졌는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어린 자녀로 취급하였기 때문이다.
c. 위탁적 예배
예배는 대리적이며 위탁적이었다.22) 성전의 예배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예배하러 온 백성들을 대리하여 의식을 집행하였으며 백성들은 다만 간접적으로 참여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매년 3회의 예배는 위탁하지 아니하고 12세 이상의 남자는 누구나 모두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3회는 무교절, 맥추절, 장막절이다.
d. 의식적 예배
예배는 의식적(儀式的)이었다. 예배에 있어서 말씀보다도 행위의 요소가 더 컸으며 설교는 없었다. 동물의 희생은 거행되었으나 기도가 없는 예배였다. 오늘의 로마 교회가 답습하는 것으로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예배가 율법 시대의 예배를 모방하여 그 의식을 취한 것이다.23)
e. 상징적, 모형적 예배
여기서 상징이라고 하는 것은 영적 진리를 가시적(可視的), 구상적(具象的)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율법 시대의 예배는 모형적이었다. 즉 미래에 나타날 영적 진리를 가리킨다. 구약의 의식은 신약에 있어서 성취될 진리를 가리키며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활동에 대하여 상징하는 것을 말한다.
율법시대의 예배의 방법으로 생명의 전부를 드리는 번제, 곡식과 기름과 향료를 드리는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를 드렸다.(레 1:3-17, 2:1-16, 3:1-17, 4:1-6:7 참조)
3. 포로 이후 시대의 예배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한 구약의 예배는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후로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범하여 성전을 파괴하였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붙잡혀 갔기에 자연히 성전에서 드리는 희생 제물을 드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전에서 드리는 희생의 예배를 대신하여 포로민들에게 허용된 것이 회당(Synagogue)에서 드리는 예배였다.24)
a. 회당 예배의 실시
성전을 잃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성전 예배 대신에 회당(synagogue) 에서 드리는 예배가 허용되었다.
회당은 헬라어 sunagoge에서 온 말로서 ‘회집하는 집’(house of assemble) 또는 ‘모이는 곳’을 의미하며, 유대 공동체가 주로 공공적인 예배와 교육 혹은 집회를 위해 사용하는 집회장소를 말한다. 회당에서는 말씀의 낭독과 설교가 예배의 중심적 요소가 되었는데 여기에서 설교란 성경에 대한 강해와 회중들을 위한 권면을 의미한다.
이것은 신약의 예배 형태, 기독교의 예배 형태를 준비케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성전은 기독교 예배의 발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 반면 회당은 평범한 건물 단순한 의식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25)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재건하고 희생으로 드리는 예배가 다시 거행되었으나 회당 제도는 폐지되지 않았고 성전 예배와 병행하여 회당 예배도 존속하게 되었다.(느 8:1-6 참조)26)
회당은 예루살렘에도 많았지만 흩어진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어느 곳에서든지 설립되었다.(행 6:9, 13:5, 14:1, 17:1, 참조)
유대인들은 국가가 패망하고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지 못해도 율법을 중심으로 회당은 유대의 종교와 사상적 공동체, 그리고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27)
b. 회당의 구성과 운영
회당은 장로들로 구성된 장로회에 의해 통치되었고 운영되었다. 장로 회의에서 회당장을 선출 하였는데. 회당장은 예배를 사회하고 때때로 자신이 설교를 하기도 하였으며, 적당한 인물에게 기도, 성경 낭독, 권면 등의 예배 순서를 맡기기도 하였다(눅 7:3-5, 행 13:5,14-15).
또 회당장은 회당의 관리를 주관하고, 예배를 주관하며, 교육을 담당하였고, 가난한 자를 위하여 구제금을 모금하고 분배하였으며, 자신이 설교하지 아니할 경우에는 설교자를 결정하였으며, 회당을 관리하였다.
회당에는 랍비를 두어 설교하고 권면하는 일하게 하기도 하며 제사(祭司)를 두기도 하였다.28)
c. 회당 예배의 순서
회당에는 안식일마다 예배가 거행되었고(행 15:21), 매주 둘째 날인 월요일마다 다섯째 날인 목요일에 사람들은 율법을 듣기 위해 회당에 모였었다. 회당 예배의 일반적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⑴ 쉐마(shema)의 낭독
쉐마(shema)는 ‘듣는다’(hear)에서 유래되었는데 이것은 신명기 6장 4-9절, 11장 13-21절, 민스기 15장 37-41절의 세 곳의 말씀을 합한 것을 낭독할 때 예배 참석자가 듣는다.
⑵ 기 도
제 18 축복 기도(Shemone Esre)와 축도의 전부 또는 일부가 행하여졌는데 회중은 일어서 각 축복 기도가 있은 다음에 ‘아멘’을 제창하였다.
제 18축복기도 내용에는 하나님에게 찬양하는 것이 부분적으로 설명되어 있고, 소원과 회개와 물질적 축복과 포로생활, 심판, 상담자로서의 중재와 선민에 대한 것들을 해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⑶ 율법의 낭독
율법의 낭독은 안식일마다 있었고, 이순서는 먼저 감사의 기도로 낭독을 시작하고 또 기도로 낭독을 그친다(행 15:21).
⑷ 예언서 낭독
구약의 예언서를 낭독하였다. 행 13:15에서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라고 기록하고 있다.
⑸ 강해와 권면
성경에 대한 강해와 회중들을 향한 권면이 있었다.(행 13:15-16, 눅 4:16-22. 참조)
⑹ 축 도
제사장이 있을 때는 축도를 하였고 축도가 끝난 후에는 회중들은 ‘아멘’으로 화답하여 끝난다. 찬송이 예배 순서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으나 유대 종교 생활에서 음악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시편과 아론의 축복 기도를 노래한 듯하다.29)
회당예배의 주된 요소를 간추려 본다.
(a) 성서 읽기와 그 해석
(b) 유대교 신조, 쉐마의 암송
(c) 시편, 십계명, 축복기도 그리고 아멘의 사용
(d) 기 도
(e) 그리스도교의 전통인 텔 산크투스(Ter Sanctus : “거룩, 거 룩, 거룩”)가 된 유대교의 성결의 기도
d. 회당의 건물
회당의 건물은 성전과 같이 장엄하고 화려하지는 못해도 각 마을의 경제 형편에 따라 회당을 건립하였다. 회당 안의 기둥에다 장식을 하고 또 일곱 촛대를 세우고 포도나무 가지나 잎 등을 조각하기도 하였다.
강단 가운데는 성전의 지성소의 법궤를 상징하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임시 법궤를 설치하고 있다. 그 속에는 율법과 선지자의 교훈이 기록된 두루마리가 들어 있다.30)
e. 성전예배와 회당 예배의 차이
⑴ 성전 예배
성전은 유대인들의 종교 생활의 세 가지 기능을 충족시켜 주었다.
첫째 : 성전은 야웨(Yahweh:여호와 하나님)가 중심이 되었고, 국가 생활에 있어서 법률의 중심지가 되었다.
둘째 : 성전은 제사와 기도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는 의식을 행하는 정규 예배를 위한 기회를 가지는 곳이다.
셋째 : 성전은 유대인의 절기마다 국가적으로 종교적인 행사를 위하여 모이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성전 예배의 가장 중심적인 중요한 사실은 제물을 드리는 일이다. 특히 ⒜ 감사와 헌신을 악속 드리는 번제를 드렸고,
⒝ 인간과 하나님, 또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목을 위한 화목제를 드렸으며
⒞ 하나님을 반역한 죄를 대속하고 용서를 받으려는 대속제를 드렸다.
⒟ 전문적인 음악가의 지휘하에 훈련된 찬양대와 장엄한 음악을 준비하여 많은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
⒠ 예배의 장소가 성전으로 국한되어 있다.
⒡ 예배에 관한 모든 요소가 성문화(成文化)되어 규정되어 있으며,
⒢ 특정인을 통하여 대리, 위탁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 의식적(儀式的)예배로 설교와 기도가 없었고,
⒤ 상징적, 모형적 예배였다.
⑵ 회당 예배
회당 예배는 성전의 파괴와 이스라엘의 포로 됨으로 말미암아 성전 예배의 대용으로 사용되었다. 이를 통하여 선지자의 교훈을 배우게 되었고 제물 없는 예배를 인식하였다. 회당의 시설과 의식도 성전의 시설과 의식을 모방하였다.
성전 예배와 회당 예배의 근본적 차이는 제물이다.
성전 예배는 제물이 핵심이었는데 비하여 회당 예배는 예배자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도록 하기 위하여 성경을 공부하는 일로 대치되었다. 이와 같은 각도에서 볼 때 오늘날의 기독교 예배는 회당 예배의 형식을 인용한 것이다.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시작된 이 회당예배는 이스라엘이 해방되어 고국에 귀환한 후에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희생으로 드려지는 성전 예배와 병행하여 계속하였다.
여기서 회당예배의 특징을 살펴보면
⒜ 전 지역에 흩어져 있다.
⒝ 제물보다는 예배자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도록 이끈다.
⒞ 교훈적 또는 교육적 요소가 많다.
⒟ 성전예배에 비해 덜 형식적이다.
⒠ 랍비가 중요한 인물이며 제사장의 존재는 미약하다.
⒡ 평신도의 참여가 뚜렷하다.
⒢ 안식일마다 거행된다.
⒣ 또 매일 거행되기도 한다.
⒤ 제사 대신 기도와 찬송으로 예배하였고 율법을 읽고 가르쳤다.
4. 예수 시대의 예배
예수님 시대의 예배는 회당에서와 성전에서 동시에 거행되었다. 예수께서는 그의 지상 생애에서 새로운 예배 형태를 만드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심과 동시에 회당에서 거행되는 안식일 예배에 출석하셨으며, 또한 회당에서 설교하심으로 회당예배의 정통성을 인정하셨다. 그리고 보통 유대인처럼 절기에 성전예배에도 참석하셨다(막 14:49, 눅 4:16, 요 7:14).
이 외에도 예수님께서는 직접 제자들에게 다락방 예배도 행하셨다. 그 예배를 통해 떡을 떼시므로 주님이 행하신 모든 일을 기억나게 하셨으며 성찬 예식의 기초를 만들어 주셨다.
예수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오순절(Pentecost)을 기점으로 하여 시작되는 신약 시대 교회의 예배 기초를 다음과 같이 이루어 놓으셨다는 것이다.
첫째 : 예수님은 구약의 의식적 예배를 폐지하고 새로운 영적 예배에 대하여 예언하였다(요 4:24).
둘째 : 신약시대의 2대 예전인 성찬예식과 세례식이 제정되었다(마 26:26-29, 28:19-20, 고전 11:22-29).
셋째 :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구약의 의식적 예배가 실제로 완전히 성취된 것이다.31)
넷째 :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위한 영원하고 완전한 희생을 그 육체로 하나님께 드림으로 그 이후 지성소에서 희생제사로 드려지는 성전 예배의 종결을 고하였다.32)
5. 사도 시대의 예배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모인 그리스도인은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약에서 예언한대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메시야로 믿었다. 이들은 처음에 예수님이 하신 것 같이 성전과 회당의 예배에 참석한 듯하다.
사도행전 2:46, 5:42의 성경구절처럼,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그러나 그들이 성전예배에 참석을 했으나 희생의 제물을 드리면서 예배에 참석했는지의 언급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사도 시대의 예배에는 몇 가지 특색이 있다.
a. 사도시대 예배의 특징
초대 교회의 교인들은 자기들은 독자적인 회당의 조직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 듯하다(약 2:2). 예루살렘에 있어서의 사도들은 성전 특히 솔로몬의 행각에서 설교를 중심한 예배를 행한 것을 알 수 있다(행 3:11, 5:1-13).
이와 동시에 ‘집’에서도 매일 예배가 거행되어 기도와 떡을 떼는 일과 사도의 가르침이 있었다.(행 2:46-47, 5:42. 참조) 매 주일 예배를 위하여 모인 기독교인들은 성찬식을 거행하였고 기도와 찬미와 의(義)에 관한 교훈과 강론이 실시되었다. 이 사실은 사도행전 2:42의 구절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 쓰니라.”와 사도해전 20:7-8의 구절,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튼 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 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의 모인 윗 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이 구절들이 잘 나타내고 있다.
위에서 보는 대로 사도시대의 예배는 기독교인의 경험의 내용 안에서 예루살렘 이외의 장소에서는 개인의 집이나 그 외의 장소를 사용하여 예배가 거행되었다. 이와 같이 회집 장소로 사원이나 다락방에서 예배가 거행된 것을 알 수 있다.
b. 사도 시대의 예배의 종류
사도 시대의 예배에 대하여 비교적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것은 바울이 기록한 고린도전서인데 거기에 나타난 것을 보면 두 가지의 예배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⑴ 비교적 개방적이고 비형식적인 전도 형식의 예배이다.
이 예배에 불신자가 참석하였다가 결심하고 개종하는 일이 있었다.(고전 14:23-25. 참조) 이 예배는 오늘날의 부흥 집회와 비슷한 것으로서 공인된 지도자가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자유롭게 진행되는 집회였다.
회중 가운데서 한 사람의 남자 교인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교인들에게 덕이 되는 은혜로운 말을 하였다.
여자들에게 교회에서 말하는 것을 금하는 것(고전 14:34)은 고린도 교회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예배 방법은 회당 예배의 형식을 채택하고, 즉석 기도와 같이 응답을 위한 단순한 예배를 위한 장소가 마련되어 사도적 예배의 성격이 되었다. 예배 순서는 기도, 찬송, 가르침, 예언, 방언과 축도로 진행되었다.33)
기도, 찬송, 성경 봉독과 해설은 기독교 예배의 기초가 되었는데 기도에 대해서는 행 1:24-25, 4:23 이하 등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기도의 형식은 감사, 기원, 간구의 기도인 도고와 축도였다(딤전 2:1-2). 또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가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찬송은 오늘날과 같은 찬송가가 아니고 신약 성경 중에 나타나는 내용들로써 마리아의 송가, 시므몬의 찬미, 사가랴의 찬가(눅 1:46, 2:29-32, 1:68이하), 그리고 엡 5:18-21, 골 316, 고전 14:15, 계 2:10-12, 5:9,12-13, 12:10-12, 19:1-2,6-8에 있는 것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는데 찬송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였다.
가르침이란 성경말씀의 설교나 강해를 말하며 건덕(健德)을 위하고 영광을 위하여 행하여진 하나님의 말씀의 강해였다.34)
디모데전서 4장 13절에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고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명한 것을 보면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가르침의 내용은 구약의 예언의 말씀과 율법의 말씀이 설명되었고 또한 사도들의 설교의 중심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이였다.
이때 나타난 예언과 방언은 사도 시대 특유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나타난 성령의 산물인 은사이다.
⑵ 통상적으로 밤에 드려진 예배이다.
사도 시대는 예배가 매일 밤 어느 가정집에서 모여 거행되었다. 혹은 다락방에 모이기도 하였는데 이때 제자들이나 성도들이 한 장소에 모이면서 각자가 음식을 가지고 와서 주의 만찬을 겸한 식사를 하였다.
이것을 아가페(agape) 또는 사랑의 축제, 혹은 사랑의 식사(Agape Meal)라고 한다. 이 사랑의 식사는 순수한 식사로서 감사와 기도와 간증이 동반되었고, 성도와 그리스도의 일치와 거룩한 교제를 뜻하는 것으로 행하여졌다(고전 11:17-34).
이 사랑의 식사는 처음에는 좋은 뜻에서 시작되어 아주 의미 있는 일로 거행되었으나 시간이 감에 따라 많은 폐단이 생겼다.
밤 예배의 사랑의 식사는 성도들의 빈부의 차이에 따라 같은 장소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가 따로 모여 먹는가 하면 어떤 이는 포식하고 어떤 이는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음식의 위생 문제도 있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병폐를 알고 사랑의 식사를 중지시켰고 각자 집에서 식사를 하고 교회에서는 주의 만찬만을 거행토록 하였다. 이것이 성만찬, 성찬식으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게 되었다.
사도 시대의 예배 중 방언을 말하는 것과 사랑의 식사는 1세기 이후는 없어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방언은 사도들이 좋아하지 않았고 사랑의 식사는 여러 가지 폐단이 뒤따랐기 때문이다.35)
6. 중세 시대의 예배
중세 기독교는 313년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황제의 기독교 공인과 395년 데오도시우스(Theodosius)황제의 국교회 선포로 인하여 지하교회가 지상교회로 옮겨가게 되었다.
즉 로마의 박해를 피해서 지하 동굴인 카타콤(Catacombs)에서 드렸던 예배가 교회 건물 안에서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외적인 예배의식도 발전되어 교회력(Church Years)을 사용하고 찬송가가 발전되어 예배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4세기 중엽이후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큰 도시마다 중심적인 교회가 생겨났고 이러한 교회 중심으로 독특한 신학과 예배형태를 발전시켜 나갔다.36) 그러나 중세교회는 국교화 이후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되자 외적인 형식과 예식을 강조하여 “미사”라는 예배행위를 통하여 예전적 예배형태로 변환하였다.37)
초기 중세교회는 인위적이고 정교한 형식의 수많은 기도문을 비롯하여 교독문과 교창을 양산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들은 동방교회나 서방교회 모두가 예전의 정착을 가져오게 되었고 예전의 정착은 내적(정교하고 수사학적인 예식), 외적(장엄한 성당)의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다.
이러한 인위적인 작용은 7세기를 지나서 예배형태가 미신적이고 신비적인 요소를 발생시켜 놓았다. 더욱이 신비종교와 이방종교의 풍습 등을 첨가하여 구약의 제사형태로 되돌아갔다.
감각에 호소함으로서 많은 미신이 발생하였고 성만찬 또한 본래적의미를 벗어나 미신적인 관념으로 퇴색 되었다.38) 더욱이 마리아 숭배를 비롯하여 성자 및 유물숭배 사상이 나타나 초대교회에서 생각할 수도 없는 상태로 비약하고 말았다.
중세기 예배형태를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나누어 알아본다.
a. 서방교회의 예배
서방교회의 예배의 내용과 순서는 초대 기독교의 예배 형태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서방교회가 동방교회와 입장을 달리하면서 예배의 형태와 내용에 있어서 극히 자유로웠던 교회가 된 것은 로마인들의 심성 그대로 실용주의의 정신이 예배 속에 적용되었기 때문이다.39)
⑴ 로마식 예전
말씀의 예전
* 입당송 : 사제의 입장 때 두 성가대에 의한 찬송
* 키리에(Kyrie)40)
* 사제의 인사 :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 기도문(Collects)
* 예언서 및 구약성서 낭독
* 교창(交唱, Antiphonal)
* 서신 낭독
* 층계송(Gradual) : 시편이 한 목소리로 처음부터 불려진다.
* 복음서 낭독
* 초신자 해산(解散)
성만찬 예전
* 봉헌(Offertory) : 떡과 잔이 드린, 제단위에 성체준비, 영성체를 위 한 준비, 예물의 봉헌, 포도주에 물 혼합(이 시간 시편이 불리어 짐)
* 인사와 봉성체(奉聖體, Sursum Corda)
* 봉헌 기도
서문경, 성찬서식(서식), 삼성송, 축성기도
* 평화의 입마춤
* 분병(Fraction)
* 주기도
* 영성체 : 사제가 먼저 한 뒤 회중이 받음(이때 시편이 불리어 짐)
* 영성체 후 감사기도
* 부사제에 의한 해산선언
⑵ 트렌트 예전예식41)
말씀의 예전
* 입당송
* 키리에(Kyrie)
사제의 입장, 사제의 준비(제단에서 개인적인 기도로)
* 대 영광송
* 인사와 기도문 낭독
* 서신서의 노래(부제에 의한 노래 응답)
* 성가대에 의한 층계송
* 영 창(永唱) - 복음서를 통한 기도와 준비
* 복음서 낭독
* 설교자의 등단
예고, 초대의 기도, 자국어에 의한 서신서와 복음서 낭독
* 강론
* 니케아 신조(콘스탄티노플 신조)
* 인사와 초대의 기도
성만찬 예전
* 봉헌(사제가 신비스럽게 나오는 동안 시편송이 불리어짐)
빵의 봉헌, 포도주에 물을 섞음, 잔의 봉헌, 기도, 향의 축복, 떡과 잔의 분향, 제단의 분향, 사제의 손 씻음, 성물 봉헌식
* 인사와 서송(序誦)
* 봉헌의 기도
사제에 의한 성찬 서식, 삼성송, 성별, 축성기도
* 사제에 의한 주기도문 찬미
* 입맞춤과 분병 분잔
* 하나님의 어린양 찬미(사제와 성가대에 의해
* 사제의 영성체
* 성만찬 참여
* 성가대에 의한 영성체 시편 찬미
* 인사와 영성체 후 기도문
* 부제의 인사와 시도들의 해산
초기의 그레고리 예전은 초대교회의 예배와 큰 차이점이 없는 단순한 예전 이었다면 후기 트렌트 예전은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과 함께 복잡성을 수반한 것이 특징이다.
중세교회의 예전의 문제점은 예배의 장을 신비적 요소로 이끌어 갔으며 또한 회중의 예배참여는 단지 구경꾼이라는 입장에서 내용을 전혀 모르고 참예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은 연옥설, 성모마리아 숭배, 7성례, 십계명의 혼돈된 해석, 면죄부 등등 중대한 오류를 가져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b. 동방교회의 예배
동방교회의 예배는 350-380년경에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교구의 정착을 하고나섰을 떼부터 예전의 독특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헬라 문화권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은 시와 문학과 예술과 철학을 숭상하여 그것이 여러 면에 있어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래서 동방교회 예배는 헬라적 상상력에 의해 그 형태가 성립되었으며 많은 상징적 의미들이 첨가되었다.42)
뿐만 아니라 동방교회의 성전 구조와 상징적인 벽화들은 하늘나라의 예배현장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사도 요한이 계시록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을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장식들은 하늘나라를 이 땅위에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43)
동방교회는 주로 안디옥 교회의 예전을 사용했는데 클레멘트 예전44)은 현존하는 예배의 형태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예전이다.
이 클레멘트의 예배 예전은 다음과 같다.45)
말씀예전(The Liturgy of the Word)
* 성서일과의 낭독(Lection)
* 강론(Sermons)
* 초신자의 해산(Dismissal of Catechumens)
성찬의 예전
* 신자(세례교인)를 위한 주교의 기도
* 인사와 응답(Salution and Response)
* 평화의 키스(Kiss of Peace)
* 봉헌(Offertory)
주교와 집례자들의 손 씻는 의식, 성찬대에 떡과 포도주의 봉헌, 사제의 제의 착용, 부제장(副祭長)에 의한 제단 보호
* 서송(Surum Corda)
* 봉헌의 기도(Consecration Prayer)
창조와 섭리에 대한 감사, 삼성송, 구속에 대한 감사, 성찬의 말 씀, 성령을 구하는 기도, 대 중보기도
* 주기도(Lord's Prayer)
* 부제의 연도(連禱)와 사제의 기도
* 성별(Elevation)
거룩한 실체와 응답, 대 영광송, 복의 기원
* 배찬(Delivery)
* 성찬의 참여(Communion)
* 부제의 권면과 선언
* 성찬 후 사제의 감사와 중재
* 사제의 축복 기도
* 페회(Dizmissal) : 부제가 신자들을 해산 선포
이와 같은 동방교회의 클레멘트의 의식은 복잡하며 신비적인 과정들이 많은데 성 바실의 예배 예전을 줄인 것으로서 정교회들이 표준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 예배는 소입문과 대입문에서 주요한 의미를 보여주는데 소입문은 복음서 낭독을 중심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에 역점을 두는 것이고, 대입문은 떡과 포도주에 중심을 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강조하도록 의도하고 있다.46)
이 두 개의 예배예전을 보면 로마식 예배는 초대교회의 예배와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으나, 트렌트 회의에서 확정된 예배의식은 더 많은 의미를 부과하려는 노력과 함께 복잡성을 수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로마식 예배는 로마인들의 실용주의적 정신의 영향 아래서 근엄성과 단순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 단순성의 경향은 그 예배의 순서와 상징들에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 경향은 5세기 까지도 봉성체(The elevation of the host)와 종을 치는 순서 등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로마식 예배에 있어서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위에 지적한 순서들을 사용하여 그들도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감각을 살리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 앞에 두려움과 경외를 갖도록 하는 성전의 장식과 구성을 게을리 하지 아니하였다.
중세교회는 그 예배의식이 발전하면서 하나는 신비적 성격을 띤 예배에 역점을 두게 되었고 또 하나는 기도에 역점을 두게 되었다.47)
중세 시대 예배의 유일한 형태인 미사에 따른 부수적인 일과가 생기게 되었는데 이를 성무일과(聖務日課)라고 부른다. 성무일과는 ‘기도의 시간’(hours if prayer)이다.
이 기도의 시간은 수도원 제도에서 중요한 의무(officium)로 준수되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성무(聖務)라고 부르고 있다.
기도의 시간에 대한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초대 교회의 개인기도, 가족기도에서 유래된 듯하다. 사도들과 그 제자들은 유대인의 기도 시간을 지켰는데 이는 구약의 전통적 방법이다(단 6:10, 시 55:17, 119:164).
신약에서는 제 3시, 6시, 9시(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가 언급되고 있다.(행 2:1,15, 3:1,9, 10:3,30, 참조)
후기 교부들의 문서에 이러한 기도 시간이 자주 언급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인들도 아침에 일어날 때와 저녁 잠자리에 들어갈 때 기도하였으며 개종자를 위한 신앙 지침서(3세기에 발행)에는 그리스도인도 하루 6회씩48) 의무적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개인 기도를 중심한 것으로서 기도에 어떤 형식도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 이 기도의 시간이 계속되자 자유로운 개인기도 시간에서 일정한 형식을 가진 공중기도(ordered public prayers)로 변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제 4세기말에 가서는 매일 6회의 고정된 시간에 드리는 공중예배(daily public services)가 행하여졌다.
그러나 날마다의 성무(聖務)의 최종적 구조와 내용이 확정된 것은 수도원에서이었다. 그것은 베네딕트 회 종규(宗規)의 제정49)에 따라 된 것이다. 성 베네딕트(St. Benedict)는 로마 교회의 6대 성무일과에다 Prime이라는 조과(早課)와 Compline이라는 종과(終課)를 첨가 시켰다.
7. 종교개혁 시대의 예배
중세 교회의 예배는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의 전담이었다. 라틴어로 된 예배서와 기도서 그리고 예배의 진행은 평신도들의 예배 참여를 배제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중세교회의 예배형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어 의식과 형식 중심의 예배에서 말씀 중심의 예배로 바뀌게 되고 성만찬의 본질을 회복하려고 노력하였고 만인 제사장주의에 의거하여 회중이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예배참여를 주장하게 되었다.50)
루터와 칼빈을 중심한 개혁자들은 예배의 중요한 부분으로 말씀을 강론하였다. 성경을 강해하며, 생활에 적용을 강조함으로 신자들로 하여금 신앙을 생활화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케 하였다.
또 중세교회의 찬송은 소수의 성가대의 전유물이었으나 개혁자들이 주장한 것은 회중을 위한 찬송이었다. 루터는 스스로 찬송을 작사 작곡하여 예배에서 사용하였고 칼빈은 새로운 찬송과 시편송(詩篇頌)을 통해 예배 참여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하였다.
종교개혁을 통해서 가장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성무일과(Divine Office)이다. 중세교회는 하루에 8회의 기도를 드렸고, 교구 교회(parish)는 아침과 저녁으로 2회의 기도를 의무적으로 드렸다. 이와 같은 성무일과 제도가 강제로 되어지지 않고 신자들의 자발적인 기도 생활로 이어져 기도생활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
종교 개혁시대의 예배를 살펴본다.
a. 루터파 교회의 예배
16세기에 전 유럽을 지배하던 로마 카톨릭 교회를 향하여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들은 위대한 개혁자 루터는 예배의 개혁을 일으키는 개혁자 중에서 가장 많이 주저하여 루터교회가 로마교회의 예배유산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게 되었다.
루터는 교회의 미사형식에서 비성경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것도 변경하기를 원치 아니하였다.
1523년에 루터가 새로운 예배의 형태와 내용을 담은 예식서(Formula missa)를 출간하였으나 그것은 장황한 로마교회의 미사순서를 요약한 것에 불과하였으며 부분적으로 라틴어를 사용하는 특성이 있을 뿐이다.
그는 3년 후 1526년에 급진적 개혁을 요구하는 그의 추종자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도이치미사’(Deutsche Messe)란 독일어 예식서를 발간하여 로마교회의 예배형태를 많이 변경시켰으나 제복이나 등불은 그대로 인정하였다.51)
b. 개혁파 교회의 예배
16세기 스위스에서 일어난 종교개혁 신학의 세 유형이 발전하였는데, 첫째가 독일어를 말하는 스위스 북부 지방에서 일어난 쯔빙글리(Zwingli)의 종교개혁이요, 둘째는 제네바를 중심한 남부지방에서 칼빈이 주도한 개혁이요, 셋째는 재세례파(Anabaptists)라고 알려진 과격한 종교개혁이다.
여기서는 쯔빙글리와 칼빈의 예배 예전을 살펴보고자 한다.
⑴ 쯔빙글리의 예배
쯔빙글리는 개혁자 루터와 칼빈과는 초기훈련과 신학에 모순점이 없는 접근에 있어서 상이하였으므로 그는 인문주의자로서 그의 신학적 견해에 있어서는 더 합리적이요, 주관적이요, 분석적이었고, 예배에서는 한층 더 단순성과 도덕적 실재성을 찾았다고 본다.
이러한 그의 신학적 입장에서 나타난 그의 예배 예전에 나타난 양상은 첫째 성만찬에 대한 태도와 둘째 기도의 내용과 셋째 찬송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난다.
첫째로 주의 만찬에 대하여는 그는 다른 개혁자들과는 근본적 차이점을 나타냈으니, 그는 주의 만찬 그 자체를 은혜의 수단으로 또는 기독교 예배의 규범으로도 간주하지 않고 그 의미를 기념적 성찬으로 제한시켰고 따라서 매주일 가졌던 주의 만찬을 폐지하고 1년에 4번 집례토록 하였다.52)
둘째로 그의 기도에 대한 태도는 단순한 직접적 간구와 찬송이라기보다 도리어 신앙의 정확한 신학적 정의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는 경건하고 헌신적 이기보다 교훈적이었다.
쯔빙글리는 로마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조나 예배의식들을 부정해 버리는 극단적 개혁의 주도자로 등장하면서 봉헌의 기도나 중보의 기도도 사용하지 아니하였다.
셋째로 찬송에 대한 태도는 1525년 그의 추종자들이 드린 예배에서 음악은 모두 폐지되고 시편과 성가의 교독적 낭독으로 대치되었다.53)
⑵ 칼빈의 예배
개혁자 요한 칼빈은 종교개혁 사상에 가장 큰 공헌을 하였고 그 결과로 다음 세대를 위한 예배 의식의 형성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칼빈은 새로운 예배 형태를 만들었고 이 새로운 형태에는 로마 교회의 미사제도를 완전히 무시하였다.
칼빈은 미사 자체를 사탄에 의하여 만들어진 증오 물로 여겼고 교회당의 각종 장식이나 의식은 하나님의 영광을 깎아 내리는 비성경적인 것으로 단정하였으며 성경과 초대교회 의 전통을 통하여 성경적인 예배 형성을 노력 하게 되었다.
칼빈은 성찬식을 주례적으로 실시하려는 이상을 가졌다. 그러나 그의 주례적 성찬식(Weekly Communion)의 이상은 제네바의 행정관들의 반대에 의하여 1년에 4회만 가지도록 제한되었다.
칼빈은 그의 이상이 실현되지는 못하였으나 행정관들과의 타협으로 존 낙스의 경우처럼 고전적인 성찬식 전 예배(聖餐式 前 禮拜, Anti-Communion)를 드렸다.
칼빈은 예배의식을 바꾸는 일에 있어서 루터보다는 더 과감하였고, 쯔빙글리보다는 덜 과격하였다.54)
c. 영국교회(성공회) 예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력은 주요한 신앙의 네 유형을 만들었는데 루터파와 개혁파와 재세례파와 성공회(Anglican Church)이다. 영국교회인 성공회는 정치적 운동으로부터 시작되어 종교적 운동으로 계속되었다.55)
따라서 영국교회의 예배는 로마교회와 결렬된 후에도 헨리 8세 통치기간까지 동일한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영국교회(성공회)의 교리는 그 신조에 구체화되어 있는 것같이 철두철미하게 칼빈주의적인데 반하여 그 예배는 루터교회와 매우 흡사한 점을 가지고 있다.
영국교회를 위한 전통의 초점은 공동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이다. 영국에 있어서 종교개혁 후 계속 사용 중인 유일한 예배서인 영국교회의 공동기도서는 그 당시 가장 유능한 예배학자요 켄터베리(Canterbury) 대주교 이였던(1532-1556) 크랜머(Thomas Cranmer)의 불후의 저작으로서 그의 지도의 원리는 1549년에 발생된 제1기도서의 서문과 1662년에 출판된 ‘교회의 예배에 관하여’(Concerning the Service of the Church)란 현행 기도서에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모든 것은 회중이 그것에 의하여 신앙을 높일 수 있도록 영어로 읽고 불리워질 것, 둘째, 예배는 단순하여야 할 것, 섯째, 서구의 예배의식의 전통의 본질적 요소들은 그 초기의 위치로 환원할 것, 넷째, 지금까지 이 왕국의 교회 내에서 동일한 예배 양식을 가지도록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8. 현대 교회 예배
a. 자유교회의 예배
자유교회는 고정된 교회법 사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자유’요 각 지역교회가 자치한다는 입장에서 ‘회중교회’요, 예배에 있어서 그 내용이 조직화되고 의식화 된 것을 거절한다는 입장에서 ‘비 예전적 교회’라고 불리 운다.56)
⑴ 침례교회 예배
침례교회는 영국의 분리주의자들을 통하여 그들의 전통을 추적해야 하는데 그 운동의 창시자 죤 스미스(John Smyth)와 화란의 메노나이트 교도들57)(Mennonites)의 영향을 받고 1608년에 암스테르담에서 목회를 하였고 1611년에 그들 중 상당수가 영국으로 가서 침례교회가 되었다.
암스테르담의 침례교회 예배양식은 기도로 시작한다. 한 장 또는 두 장의 성경을 읽어주고, 그 뜻을 풀어 준 다음, 설교자의 장엄한 기도 후, 설교자는 성경의 어떤 본문을 택한 뒤 한 시간 또는 45분간 예언을 한다.
그 사람 후에 두 번째 설교자가 같은 시간동안 예언하고 그 사람 후에 시간이 허락되는 데로 셋째, 넷째, 다섯째 등등, 그리고 그 첫 번째 설교자가 기도로 시작 했던 것처럼 기도로 마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헌금을 권면하고 그 드린 헌금 위에 기도함으로 끝난다.
이 아침 예배는 8시에 시작하여 12시까지 계속 된다. 이와 같은 예배과정이 오후에도 2시에서 5시까지 또는 6시까지 행하여진다.
⑵ 그리스도 교회 예배
그리스도 교회는 회중교회적 구조의 개방적 전통을 가진 교회로서 19세기에 미국에서 스코틀랜드의 장로교인 켐벨 부자(Thomas Campbell과 Alexander Campbell)의 지도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1809년에 알렉산더 켐벨은 신약성경에 있는 교회와 같은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그 교회란 각 지방의 교회는 반드시 자치해야 하며, 신조는 비 성경적이며, 세례는 신자들의 침수에 의한 것이 적당하며, 주의 만찬은 주일 예배의 한 부분이 반드시 되어야 한다.58)는 것이었다.
이 교회들의 예배의 특징은 첫째, 주일을 축하하는 회중 예배의 정규 행위는 설교와 주의 만찬을 포함하는 예배이며, 둘째, 그들의 예배적 실천은 수식된 형태와 구별된 개혁파형의 예배 혹은 성령충만 형의 예배에 속하며, 셋째, 그들은 회중의 보호 감독과 성례의 행정을 신학을 공부하지 않고 그들의 교회일 때문에 월급을 받지 아니하는 장로들에게 맡겼다. 넷째, 세례는 완전히 물속에 잠기는 침례이고 스스로 충분히 신앙 문답에 대답할 수 있도록 나이든 사람에게 한정하였다.
교회의 예배에 있어서 정규적 사건으로서 성만찬과 설교를 계속하여 함께 지켜온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오직 이 교파뿐이라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b. 오순절 교회의 예배
오순절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기도, 웃음, 울음, 노래와 방언이라는 황홀에서 나오는 말을 포함하여 하나님께 황홀한 찬양의 폭발을 동반하는 성령의 압도적 실재의 경험을 강조하는 데서 나왔다.
그들은 예배의 경험으로부터 그들의 신학적 정의와 이해를 발전 시켜 나갔다. 예배에 있어서 경험은 성경 해석과 신학의 형성을 위하여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회심한 다음에 행 2:4에 따라서 ‘성령 세례’를 경험할 수 있으며 또 경험해야 한다고 하며 성령의 세례는 방언을 말함으로 증명된다.59)고 한다.
고전적 오순절 교회의 예배는 찬송과 기도(때로는 방언을 말하고 통역함) 설교와 함께 오순절 자유교회의 전통을 따랐다.60)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원하기를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전 14:39-40)고 기록한 바와 같이 예배에서 그들은 은사들을 개방하였고 따라서 회중의 표현으로서 기도는 모두가 큰 소리로 하였다.
예배에서 한 사람이 인도하는 공중기도는 아멘 소리의 회중응답이 특징이다. 예배 중에 병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되 그들에게 기름 바르고 안수하는 일도 있었으며, 한 사람은 방언으로 말씀하고 다른 사람은 통역하는 경우도 있다.61)
c. 미국 개척 시대의 예배
미국 개척시대에 미국 기독교인은 유럽을 떠나온 자들로서, 그 특징은 개인주의와 부흥 운동과 급진적이어서 놀라울 정도로 창의력을 가지고 있었다는데 있다. 미국 식민지에서 회중교회,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는 어떤 고정된 예배순서를 배격하였다.
미국 개척 시대의 예배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원칙62)이 있었다.
* 예배를 위한 고정된 형식들이 없었다.
* 성례의 집례는 의식을 집례 할 안수 받은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 주 거행하지 못하였다.
* 교육받은 교역자에 관해서는 개척자들 편에 의심을 가지게 하였으니, 이것은 그들에게 기성교회를 의미하게 되었다.
* 예배에 있어서 설교에 가장 역점을 두었다.
* 기도자들은 자발적이었고 교역자와 같이 평신도들도 드렸다.
* 예배자들 편에서 감정적 황홀경에서 때때로 표현되는 비공식적 열광 상태가 있었다.
* 예배의 특징은 풍성한 찬송에 있었는데 그들의 찬송은 주관적이요, 개인적인 것들이었다.
* 개척자들의 예배는 즉흥적이었고 전통이나 과거에 거의 유의하지 아 니하였다.
* 예배의 장소는 평범하고 거칠었다. 교회 건물들을 의식에 알맞게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d. 한국 개신교의 예배
한국교회는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이며, 모일 때마다 언제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습은 한국교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각 교파마다 예배의 순서와 내용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으며, 장로교 안에서도 통일성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한국장로교회는 종교개혁의 역사적 전통을 따르며, 특히 신학적으로는 칼빈의 신학사상과 서구 개혁교회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장로교회의 예배 실재는 전혀 개혁교회의 개혁신학에 적합한 예배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서 지금 한국교회의 예배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⑴ 한국교회의 예배전승
한국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미국의 장로교회와 감리교선교사를 통하여 1885년 4월5일 인천에 상륙한 장로교회의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와 감리교의 아펜젤러(H. G. Appenzeller)부부 이 세 사람이 최초의 개신교 한국 선교사로 첫 발을 디딘 것이다.63)
언더우드는 영국 태생으로 13세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네덜란드 개혁교회에 교적을 두고 네덜란드신학교를 졸업한 후 북미장로교회의 선교사로 임명받아 한국에 나왔으며 나이는 불과 25세였다.
더욱이 아펜젤러는 미국 펜실베니아 태생으로 루터교도였으나 장로교회의 부흥회에 참석 했다가 장로교회로 전향했다. 그러다가 감리교로 교적을 바꾸어 드류 신학교를 졸업하고 선교회로부터 선교사로 임명받았다.
그러므로 ‘한국개혁교파의 역사는 신학교를 갓 졸업한 20대의 풋내기 선교사들에 의해서 출발한’64)것이다.
이들에게서 뚜렷한 선교신학이나 유럽의 공동체적 신학과 교회론 적인 의식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특히 그들이 전해준 예배는 미국의 자유교회(Free Church)에서 배워온 그대로의 것이었다. 전통적인 예배신학이 있을 수 없고 또 본래적인 그리스도교의 예배를 전해 준 것이 아니라 청교도적인 예배를 전해준 것이다.
⑵ 초기 한국교회의 예배
북미 대륙 출신 선교사들의 일반적인 경향은 비예전적이어서 의식적인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 대 각성 운동의 직접적인 여파로 말씀중심의 부흥회와 기도회 등으로 예전과는 거리가 먼 형태 속에서 전통과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이었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한국의 장로교도 역시 예전보다는 설교중심, 교화중심의 예배가 주조를 이루게 된다.
또한 개신교 초기의 복음 선교는 직접적인 복음전도보다는 학교나 병원을 매개체로 간접 선교방식을 택했는데, 이는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이 보수적인 분위기였으므로 본격적으로 복음전도 실시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65)
아울러 선교사의 눈에는 한국 문화가 온갖 미신과 악습에 젖어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러한 선교정책의 중심을 한국인의 생활 습관을 바로 잡으며 높이는데 두었던 것은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66)
비예전적인 예배전통을 물려받았던 선교사들에게, 이러한 선교정책은 예전보다는 설교 중심적인 예배, 교화 중심적인 예배로 흐르게 하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되었을 것임을 추론할 수 있다.
⑶ 현대 한국교회 예배
기독교 예배가 올바른 형태의 예전을 가지고자 한다면 말씀의 예전과 성찬 성례전이 함께 해야 됨은 당연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예배는 주일에 진행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올바른 예배예전이 매주 주일에 사용되어지지 않는 것이 현대 한국교회의 실정이다.
예배 의식의 혼란, 쇠퇴, 무질서 등이 만연하던 근세시대를 지나고 현대에 와서는 예배 의식에 대한 연구와 예배의식에 대한 갱신 운동이 새롭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 각처에서 교회의 혁신을 부르짖고 있으며 현대교회의 예배를 보다 깊고 풍부하게 하고자 하는 욕망이 높아가고 있다. 이것은 로마 가톨릭 교회나 개혁파 교회를 막론하고 예배 구조의 변화와 방법론의 개선에 노력하며 성찬 예식의 거행도 새로운 궤도로 정착 시키려는 노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것은 성경적 근거와 기독교의 전통을 배경으로 하여 형성되며 이를 현대 예전 운동(ilturgical movement)이라 한다.
Ⅲ. 結 論
예배란 무엇인가?
예배는 기독교에서 볼 때 ‘신의 위엄 앞에 겸손히 영광과 존귀를 돌린다는 말로서 곧 인간이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최상의 영광과 존귀를 돌려 경배하는 것’을 뜻한다.67)
예배 없이 그리스도인이 될 가능성은 없다. 예배는 그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이 세상에서 자기백성으로 부르신 회중의 자화상이다. 사실 예배는 교회를 교회되게 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능력이다.68)
본 논문을 통하여 구약의 성전(성막)을 통한 예배의 방법과 신약의 역사적인 예배의 변천과정을 살펴봄으로서 하나님께서 열납 하시는 참된 예배에도 시대의 흐름 속에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이러한 변화된 예배라 할지라도 성서적 이여야 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본 논문이 목적하였던 바는 예배의 역사적인 변천에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의 방법을 찾고자 했던 것이기 때문에 이제 그 방법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물론 교의, 역사, 전통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교파의 예배 형태가 일치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만남, 헌신과 봉사, 복음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 그리고 예배의 근본적인 요소(말씀, 성례전, 기도, 헌금과 찬양)가 제시되어 지는 형태이면 가능하다는 것이다.69)
첫 번째로 예배는 다양성을 수용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 예배인도자, 청중이 함께 코이노니아를 나누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즉 친교라는 축제적인 분위기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 예배를 통해서 삶 가운데 적용되어지는 활력소가 되어야 한다. 또한 예배는 장소를 한정하여 드리는 것을 탈피하는 다양성이 추구되어야 한다.
예배가 특정한 장소적인 것보다는 우리의 다양한 삶 속에서 어느 곳에서도 성령과 진리 가운데 드려지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생활과 삶과 직장 그리고 성전, 가정이라는 유동화의 원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두 번째로 현대의 예배는 변혁된 문화적 수용이 있어야 한다.
기독교의 문화는 서구의 역사를 통해 시대의 문화를 수용하고 변혁 시키며 토착화 해온 문화이다. 나아가 기독교 예배도 유대에서 시작하여 신약, 중세, 종교개혁을 거쳐 현대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와 문화 속에서 상황에 따라 원리를 적용해왔다.
그러므로 교의와 문화의 상관성을 조화시켜 기독교의 본질에 어긋나지 않는 변혁된 문화의 수용은 예배의 이상적인 원리인 것이다.
세 번째로 예배는 신비한 종교체험의 과정이 따라야 한다.
예배가 지식과 논리로만 진행되어지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것이다. 신비한 종교체험의 과정이란 신비주의적인 자기만족의 감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분명한 자기성찰을 통해 하나님의 현실적 계시에 진지하고 솔직하게 응답하는 자세로 출발해야 한다. 즉 예배를 통해서 인간의 본래적 기능과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신비한 영적체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있을 때 시대와 역사를 주도해 가는 하나님의 교회로 성숙한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예배는 신학적이고 신앙적이며 현실적이고 미래적 이어야 한다. 신학이 없는 예배는 감상적이고 생명력이 없으며 신앙적이지 못할 때는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지 못한다.
또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 하심에 대해 분명한 깨달음이 없고 신비한 종교적 체험이 없는 고백은 신비주의적 환상에 불과한 것이며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지 못하는 예배의 역기능에 빠지는 일이다70).
이와 같이 이상적이고 효율적인 예배는 성경에 근거하면서 기독교의 전통에 부합해야 하며 개인적으로나 공동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의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또한 교의와 이성적 판단에 의해 검증되고 변혁된 문화의 토착적 표현이 다른 예배의 요소들과 통일을 이루며 현실과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비한 종교체험을 통한 예배가 되어야 한다.
개척자가 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위기를 무릅쓰면, 대개 많은 것을 터득하게 된다. 모든 기독교 예배의 전체적인 맥락에 있어 예배의 변혁은 분명 개척자의 역할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이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일이다. 올바른 예배의 변혁 우리 다함께 해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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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illiam Temple,『The Hope of A New World』(New Yok: The Macmillan Co), p. 30.
2) 이종수,『광야의 성막』(서울: 기독교문사, 1999), p. 74.
3) 양승오, [성막과 제사], (서울 : 한국신학교 출판부, 2003). p. 21.
4) 양승오, op. cit., p. 25.
5) 출애굽 제 2년 1월 1일
6) 박준서,『구약성서, 성서와 기독교』(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9), p. 68.
7) Ibid, p. 97.
8) W. F. Stinespring,『Temple, Jerusalem』(Nashville & New York: Abingdon Press), p. 534.
9) 양승오,『신․구약 난제 해석』(서울: 한국신학교 출판부, 2002), p. 75.
10) 솔로몬 성전의 위치를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이라 불리 우는 현재의 회교 사원이 위치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최근 실시한 고고학적 발굴 작업 결과 ‘바위의 돔’으로부터 동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외곽 지대임이 밝혀졌다.
11) 다윗은 하나님께 성전 건축을 소원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렸다는 이유로 이를 허락하지 않으신다. 성전은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의 평강을 베풀어 주는 거룩한 장소이기 때문에 성전이 내포하고 있는 속성과 그 성격상 성전 건축 적임자는 다윗이 될 수 없었던 대신 전쟁을 알지 못하는 솔로몬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12) 1규빗 = 45.6Cm
13) 태양력 2-3월에 해당
14) 니산월 15-20일
15) 순(旬)은 10일이다.
16) 정장복,『예배학 개론』(서울: 예배와 설교 아카데미, 2004), p. 7.
17) Robert G. Rayburn,『O Come Let Us Worship』. 김달생, 강귀봉 역, 『예배학』(서울: 성광문화사, 1982), p. 57.
18) Ibid.
19) Ibid
20) Robert G. Rayburn, op. cit. p.63.
21) 김소영,『예배와 생활』(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p. 13.
22) 김수학,『개혁파예배학』(대구: 보문출판사, 1982). p. 34.
23) Ibid., p. 35.
24) 김수학, op. cit., p. 36.
25) Ibid.
26) 김소영, op. cit., p. 15.
27) 양승오,『예배학』(서울: 한국신학교 출판부, 2000). p. 13.
28) 김소영, op. cit., p. 16.
29) 김소영, op. cit.
30) 김수학, op. cit., p. 38.
31) 김수학, op. cit., p. 40.
32) Robert G. Rayburn, op. cit., p. 99.
33) 양승오, op. cit., p. 15.
34) 김소영, op. cit., p. 25.
35) 양승오, op. cit., p. 16.
36) Robert E, Webber,『예배학』김지찬 역(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8), p. 78.
37) Franklin M. Ssegler,『Christian Worship』p. 51.
38) Ibid.
39) 정장복, o.p. cit., p. 84.
40) 키리에는 “천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으로 미사 첫 머리에 연하는 연도에 붙인 음악
41) 정장복, op. cit., p. 88.
42) Ibid., p. 82.
43) Robert E, Webber,『Worship Old &New』(Grand Rapids: The Zondervan Corporation, 1982), p. 64.
44) 이 예전은 동방 교회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의식으로 4세기 후반 주로 시리아와 안디옥 교회들이 사용하였다.
45) 정장복, op, cit,. pp. 82-84.
46) Ibid
47) R. E. Webber, op. cit., p. 67.
48) 일어날 때, 제 3시 6시 9시, 취침 시, 한 밤중
49) A.D. 530년경
50) 김수학, op. cit., p. 51.
51) 정장복, op. cit., p. 102.
52) Ibid
53) W. D. Maxwell,『A History of Christian Worship』pp. 81-87.
54) F. M. Segler,『예배학 원론』정진황 역, p. 43.
55) E. E. Cairns,『Christianity Through The Centuries』p. 354.
56) R. N. Schper,『In His Presence』p. 141.
57) 일명 ‘땅의 사람들’로 불리는 아미쉬는 1525년 스위스에서 유래한 종파다. 그들은 메노나이트파 혹은 재세례파로부터 분리된 그룹이다. 유럽에서 확산된 재세례파는 네덜란드에서 재세례파 운동에 가장 영향을 준 메노 시몬스(Menno Simons)에 의해 더욱 심화되었다. 재세례파들은 그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메노나이트파(Mennonites)로 불리게 되었다. 아미쉬(Amish)의 분리는 다른 메노나이트의 지도자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야콥 암만(Jacob Amman)에 의해 시작되었다. 야콥 암만은 스위스에서 태어나 후에 알사스(Alsace)로 이주해서 그 지역의 재세례파 장로와 설교자로 활동했다.
58) R. N. Schaper, op. cit., p. 146.
59) F. D. Bruner,『A Theology of the Holy Spirit』p. 61.
60) J. G. Davies,『A Dictionary of Liturgy & Worship』p. 311.
61) R. N. Schaper, op. cit., p. 152.
62) F. M. Segler, op. cit., p. 68.
63) 민경배,『한국기독교회사』(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0), p. 112.
64) 정용섭,『교회갱신의 신학』(서울: 교회 대한 기독교출판사, 1979), p. 52.
65)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한국기독교의 역사』(서울: 기독교문사, 1999), p. 254.
66) 민경배, op. cit., pp. 134-163.
67) 박창환 외, “어떤 예배를 드릴 것인가?”『기독교사상』p. 35.
68) 석남식,『예배에 관한 역사적 변천과 현대적 의의』(서울: 장로회신대원 연구논문, 1983), p. 118.
69) 조명은,『예배의 역사적 변천과 그 형태에 관한 연구』(서울: 성공회 신대원 연구 논문, 1998), p. 117.
70) Ibid., p.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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