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디아스포라

[스크랩] 우리 조상이 ‘초원길’로 왔다는 조덕영 교수의 주장은 허구

수호천사1 2016. 8. 29. 07:24

■ 기획특집: 유석근 목사와 알이랑신학에 대한 조덕영의 천박한 비방 분석


우리 조상이 ‘초원길’로 왔다는 조덕영 교수의 주장은 허구



昔根

(알이랑코리아 대표, 한국기독교상고사학회 선임연구원, 알이랑교회 담임목사)



우리는 지난 기사에서 한국인이 셈족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조덕영 교수의 주장이 완전한 거짓임을 확인했다. 우리 민족이 셈의 후손이라는 것은 ‘내증’(특별계시인 성경의 증거)과 ‘외증’(일반계시인 성경 밖의 증거)이 함께 입증하고 있는 객관적 사실이다. 실로 한국인이 셈족이라는 것은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 겨레는 함이나 야벳의 후손이 아니다.


필자는 「알이랑민족」에서 한국인은 셈 계열의 민족들 중에서도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후손이라고 설명했다(창 10:21~30). 물론 타당한 근거들을 제시했다. 그러나 조덕영 교수는 한국인이 욕단의 후손이라는 것도 부정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우리 민족이 야벳의 후손이라고 역설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셈의 후손이라는 것 자체를 불신하는 자가 우리 민족이 욕단의 후손이라는 것을 인정할 리는 전혀 없다. 욕단은 셈의 현손(玄孫)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덕영 교수는 당연히 우리 민족이 욕단의 후손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소설이란다.


여기서는 그가 한국인이 욕단의 후손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나오는 논리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우리는 그 논리가 얼마나 천박하고 무식한 “자의적” 주장인지 확인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 조덕영은 최근 유포한 “알이랑신학”을 비방하는 문서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욕단이 자녀들을 이끌고 야곱이 애굽으로 들어가듯 파미르고원과 천산산맥을 넘어 타클라마칸 사막과 고비사막을 지나 중국도 아닌 태백산 밑으로 왔다는 소설을 누가 믿겠는가? 역사적으로 천산산맥과 파미르고원을 제대로 넘은 집단 일행은 주후 740년 경 중국 당나라 장수가 된 패망한 고구려가문출신 고선지 장군이 이끌던 군대들이었다. 그들 당나라 군대의 눈물겨운 등반기는 유명하다. 따라서 우리 민족이 동방으로 온 길은 파미르고원이나 천산산맥이 아니라(그 험난한 길로 들어가면 중국 대륙으로 들어가게 된다) 즉 우리 민족 주류는 (중국민족이 들어간 길이 아니라) 유목민(스키타이, 흉노, 훈족으로 지칭되던 우리 민족과 유난히 닮은 민족)들의 주 무대 곧 야벳의 땅인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윗 비단길)를 통해 몽골과 만주 지역으로 쉽게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고선지 장군을 악용한 조덕영의 교묘한 속임수


조덕영 교수는 역사적으로 천산산맥과 파미르고원을 제대로 넘은 일행은 AD 740년 경 당나라 장수가 된 패망한 고구려 유민 출신 고선지 장군이 이끌던 군대였다고 말했다. 이것은 교묘한 속임수이다. 왜? 파미르고원을 제대로 넘어간 사람들은 고선지 장군 일행이 역사상 처음이었다는 그릇된 인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해하게 만든다.


조 교수는 왜 이런 꼼수까지 동원하는 것일까? 셈의 현손 욕단의 가계가 대홍수 이후 동양의 산지 곧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 동방으로 이동했다는 성경원어에 근거한 필자의 해석을 성도들로 하여금 불신하게 만들려는 간교한 목적 때문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파미르고원을 제대로 넘은 집단은 고선지 장군의 군대였다고? 천만에 말씀이다. 조덕영 교수는 무지한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다. 최초로 파미르고원을 넘고 천산산맥과 알타이산맥을 넘어 동방으로 천동(遷動)한 사람들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욕단의 가계였다(창 10:21~30). 그 이후에도 지나(支那) 역사에서 당나라 고선지 장군 이전에 이미 파미르고원을 제대로 넘어간 사람들은 많이 있었다. 조 교수는 고선지 장군의 군대가 파미르를 제대로 넘어간 최초의 집단인 것처럼 교묘한 필치로 사람들을 속였다.


고선지보다 먼저 이 길을 떠난 사람은 중국 동진(東晉)의 승려 법현(法顯: 317~419. 399~412 인도순례)이었다. 법현은 중국에서 출발해 이른바 천축(인도)에 들어갈 때 파미르를 넘어 갔다. 법현 법사는 399년에 혜경, 혜응, 혜외, 도정 등의 승려와 함께 장안을 출발해 서역으로 떠났다. 법현은 둔황을 벗어나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로질러서 곤륜산 아래 호탄 왕국을 거쳐 파미르고원(총령)을 넘어서 마침내 인도에 도착했다. 그리고 불적지를 순례하고 다수의 불서를 구해서 413년 10여년 만에 남해 항로를 따라 청주(지금의 산둥성)로 귀국하였다. 당시 파미르고원을 지나며 법현은〈불국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 천축을 향해 떠난 지 1개월 만에 총령(파미르고원)산맥을 넘을 수 있었다. 겨울은 물론 여름에도 눈이 덮여있고, 또한 독룡(毒龍)이 있어 만약 그가 한번 노하면 독풍(毒風)과 눈·비를 토하며 모래와 자갈을 날리므로 이를 만나는 자는 한 사람도 온전할 수가 없다.”

 

다음은 중국 북위(386~534)시대의 승관(僧官)이었던 송운(宋雲)이 혜생이란 불승과 함께 경전을 구하기 위해서 서역(중앙아시아)과 북인도를 갔다 왔다. 그들은 오늘날의 신장성, 중앙아시아, 이란과 북부인도 지역이었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파미르고원 등지를 다니면서 경전을 구해서 북위로 가져왔다. 

 

그리고 당나라 초기의 고승이며 역경승(譯經僧)이었던 현장(玄奘, 602-664)이 627년에 천축(인도)에 들어가 645년에 귀국하였다. 현장 법사는 645년 약 17년간의 서역과 인도 여행을 마치고 파미르고원의 오아시스 읍성인 타쉬쿠르간의 석두성을 지나서 카슈가르에 도착, 천산남로를 택하지 않고 곤륜산 루트를 따라서 호탄을 경유하여 둔황에 이르렀다. 현장은 천축(인도) 여행의 견문기를《대당서역기》에 통합 정리하여 태종에게 진상하였다. 이 책은 당시의 인도나 중앙아시아(서역)를 알기 위한 제1급의 사료이다. 또한 문학적으로는 현장의 천축 여행을 모티브로 하여 명나라 시대에《서유기》라는 소설이 생겨났다.


고선지 장군보다 먼저 파미르고원을 넘어간 신라 청년도 있었다. 그는 혜초. 唐나라 開元 15년(727년) 음력 11월. 마침내 신라의 불승 慧超(704~787년)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에 당도한다. 약 4년간 천축(인도)과 서역을 巡遊한 뒤다. 20대 초반의 젊은 승려가 교통과 숙식이 용이치 않았을 낯선 세상 험한 곳으로 장기간 장거리 여행을 감행한 그 용기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귀로에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을 넘었다.


혜초는 신라의 수도 경주를 출발해 뱃길로 중국 광저우(廣州)를 거쳐 인도에 도착한 뒤 육로로 페르시아 중앙아시아를 지나 당의 수도 장안(지금의 시안)까지 2만 km를 여행했다. 혜초는 그 때에 험난한 파미르고원을 넘어서 당나라에 입국했다. ‘왕오천축국전’은 그 4년에 걸친 대장정의 기록이다. 한국인이 쓴 최초의 해외 여행기인 이 글은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일상풍습 등을 생생히 담고 있다. <두루마리 필사본으로,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총 227행에 5893자. 폭 42cm, 총길이 358cm.>


천축(인도)과 페르시아, 아랍까지 돌아본 혜초는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간 걸어온 길이 고달팠던 만큼 돌아가는 길도 험난했다. 혜초는 토화라국(토카리스탄)에서 폭설을 만났을 때 그 힘겨움을 오언시로 절절하게 풀었다. 다음은 ‘왕오천축국전’의 글.


“차디찬 눈이 얼음까지 끌어 모으고/찬바람 땅이 갈라져라 매섭게 부는구나/망망대해는 얼어붙어 단을 깔아놓은 듯/강물은 제멋대로 벼랑을 갉아먹는구나/…/불을 벗 삼아 층층 오르며 노래한다마는/과연 저 파미르 고원을 넘을 수 있을는지.


파미르의 기후는 예나 지금이나 매우 험악하여 겨울이면 자주 -50C 이하로 떨어지고 도처에 강풍이 몰아치며 높은 봉우리들은 일 년 내내 눈으로 덮여 있으며 경사면에 남아 있는 1000개 이상의 빙하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 험난한 파미르고원을 혜초는 넘어 갔던 것이다.


파미르고원을 넘어가는 혜초


파미르고원부터는 당나라 군대가 혜초의 눈에 들어왔다. 파미르고원은 실크로드 오아시스 육로의 필수 경유지였다. 이처럼 고선지 장군 이전에도 파미르고원을 제대로 넘어간 사람들은 다수 존재했다. 군대가 아니었기에 규모가 작았을 뿐이다. 물론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을 뿐, 파미르고원을 넘은 사람들은 더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크든 작든 집단적으로 이동했던 사람들도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기록이 없을 뿐이다.


바위투성이의 지형과 냉혹한 겨울 때문에 파미르고원의 상당부분의 지역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다. 그런데도 먼 옛날부터 파미르를 넘는 무역로가 생겨났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 길을 넘어간 한 유명한 유럽 여행가의 이름이 현지 산악인 사이에 전해지고 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마르코 폴로 양이라는 가축 이름으로 파미르에 남아 있다(사진).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는 13세기에 “파미르 하이웨이”의 전신이 되는 옛길을 이용하여 파미르고원을 횡단한 서양인이다. 이탈리아의 상업도시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마르코 폴로는 1271년 보석상이었던 아버지 니콜로 폴로와 숙부인 마테오 폴로를 따라 동방여행을 떠났다. 이들이 택한 실크로드 여정은 베네치아→이라크ㆍ이란→아프가니스탄→파미르고원→중국(원나라)이었다. 이와 같이 고선지 장군 이전에 파미르고원을 넘어간 사람은 서양인 중에도 있었다. 물론 기록이 없을 뿐 더 많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천산산맥과 파미르고원을 제대로 넘은 일행은 AD 740년 경 당나라 장수가 된 고구려 유민 출신의 고선지 장군 군대였다는 조덕영 교수의 주장은 자기 얼굴에 무식이라는 침을 뱉는 수준 이하의 말이다. 학자 맞나? 조 교수는 이 무식한 말로써 무지한 사람들을 속였다. 교묘하게 파미르는 AD 740년 경 고선지 장군 군대가 넘은 것이 역사상 최초였다는 암시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얄팍한 속임수가 아닐 수 없다.


조덕영 교수가 이런 암시를 주는 의도는 무엇일까? 대홍수 이후 셈의 현손 욕단의 가계가 동양의 산지 곧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 동방으로 천동했다는 “알이랑신학”의 핵심내용을 사이비이라고 매도하기 위해 나름 근거를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허나 역사적 사실을 바로 아는 식자들은 그의 기만적 논리에 속지 않을 것이다.


산지로 들어서면 중국대륙으로 들어간다는 조덕영의 거짓말


조덕영 교수는 우리 민족이 동방으로 온 길은 파미르고원이나 천산산맥이 아니라면서, 그 길로 들어가면 중국 대륙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이 동방으로 온 길은 파미르고원이나 천산산맥이 아니라

(그 험난한 길로 들어가면 중국 대륙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조 교수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거짓말이다. 파미르고원을 넘어 동북쪽으로 이동하면 천산산맥이 나온다. 천산산맥을 넘어서 동북쪽으로 좀 더 이동하면 알타이산맥이 나온다. 알타이산맥을 넘어서 동북쪽으로 계속 이동하면 시베리아 벌판이 나온다. 그렇게 이동하면 절대로 중국 대륙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아래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라.


카스피해 남안~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시베리아~바이칼호수~만주~한반도 북부


중앙아시아의 천산산맥과 알타이산맥을 넘어 가면 중국 대륙이 아니라 시베리아 벌판으로 들어간다. 알타이산맥을 넘은 우리 조상들은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대장정 끝에 마침내 극동의 백두산 지역까지 도달해서 유일신 하느님(하나님)께 제사하고 배달나라를 세웠다. 파미르고원이나 천산산맥으로 넘어 가면 중국 대륙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조 교수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것은 순진한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이 ‘초원길’로 이동했다는 조덕영의 또 하나의 거짓말


조덕영 교수는 우리 조상들이 동방의 산지 즉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서 동방으로 천동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쪽으로 이동하면 중국 대륙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조 교수는 먼저 그렇게 사람들을 속인 다음 우리 조상들은 야벳의 땅인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윗 비단길)를 통해 몽골과 만주 지역으로 들어왔다고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우리 민족 주류는 (중국민족이 들어간 길이 아니라) 유목민(스키타이, 흉노, 훈족으로 지칭되던 우리 민족과 유난히 닮은 민족)들의 주 무대 곧 야벳의 땅인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윗 비단길)를 통해 몽골과 만주 지역으로 쉽게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유라시아 북방의 초원 지대를 동서로 횡단하는 초원길


조덕영 교수는 한국인이 셈의 후손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인물이다. 그는 한국인이 야벳의 후손이라고 역설한다. 물론 근거가 빈약한 독선적 주장이다. 만일 우리 민족이 야벳의 후손이라면 한국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한 언어여야 할 것이다. 또한 골상 역시 유럽 백인들의 골상과 비슷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으면 엉덩이에 유럽 백인 아이들 처럼 청반점도 없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조덕영 교수는 한국인이 야벳의 후손이라는 새로운 신화를 창출한 위대한 학자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조 교수는 한국인이 셈의 현손 욕단의 후손이라는 것을 극구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성경은 욕단의 가계가 동방의 ‘산악지대’를 통해 ‘스발’(시베리아~만주)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다(창 10:30). 그런데 조덕영 교수는 황당하게 한국인이 야벳의 후손이라고 믿고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조 교수는 당연히 우리 조상들이 유라시아 대륙 북방의 초원지대인 ‘초원길’을 통해 몽골과 만주 지역으로 들어왔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은 셈의 현손 욕단이 동방의 ‘산지’를 통해 아시아로 갔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원길’은 야벳의 거주지인 흑해 연안의 동유럽에서 시작된다. 동유럽~카스피해북안~카자흐초원~준가얼분지~몽골초원~대흥안령산맥~만주 그리고 한반도까지 이르는 길이 ‘초원길’이다. 조덕영 교수는 한국인이 야벳의 후손이라고 믿기 때문에 우리 조상이 ‘초원길’을 통해 동방으로 왔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조 교수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이동 경로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이 야벳의 영토인 유라시아 대륙 북쪽의 초원지대(윗 비단길)를 통해 동방으로 왔다는 조 교수의 주장은 한국인이 야벳의 후손이라는 것을 전제할 때에만 설득력을 갖는다. 왜냐하면 ‘초원길’은 야벳 족속의 땅인 흑해 연안의 동유럽에서부터 카스피해북안~카자흐초원~준가얼분지~몽골초원~대흥안령산맥~만주 그리고 한반도까지 연결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정확히 꿰뚤어볼 수 있어야 한다.


결국 한국인이 야벳의 후손이라고 믿는 조덕영 교수는 ‘초원길’이 우리 조상들의 자연스러운 이동 경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첫 번째 단추를 잘 못 채웠다. 그래서 나머지 단추도 잘 못 채우고 말았다. 오류 자체인 그의 거짓 교훈에 속지 말라. 우리 민족은 유럽에서 ‘초원길’을 통해 이동한 야벳의 후손이 아니다. 한국인은 서아시아에서 출발하여 중앙아시아의 ‘산지’를 넘어서 극동으로 천동(遷動)한 셈의 후손이다(창 10:21~30).



좀더 세밀히 짚어보자. 지도에서 “카스피해 북안”을 주시해보라. 카스피해 북안의 서쪽은 야벳 족속의 땅인 동유럽이다. 동유럽의 서쪽과 북쪽 역시 야벳 족속의 땅인 유럽이다. 즉 카스피해 북안의 서쪽과 북쪽 지역은 전부 시날 평지에서 흩어진 야벳 족속의 거주지였다. 그러므로 우리 조상이 만일 야벳의 후손이라면 카스피해북안~카자흐초원~준가얼분지~몽골초원~대흥안령산맥~만주 그리고 한반도에까지 이르는 ‘초원길’을 통해 동방으로 천동(遷動)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셈의 후손이다. 따라서 우리 조상이 유라시아 대륙 북쪽의 넓은 초원지대인 ‘초원길’을 통해 동방으로 천동했을 여지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초원길’을 횡단하려면 일단 카스피해 북안까지 북쪽으로 한참 수직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그것이 제1단계다. 중동 지역에 있던 셈족이 동방으로 이동하기 위해 야벳 족속의 영역인 카스피해 북안까지 그렇게 북방으로 가는 경로를 택할 이유는 없다. 동유럽을 경유하는 그런 루트는 셈족으로서는 너무나 멀리 돌아 가는 길이다. 더군다나 ‘초원길’은 뜨거운 여름과 혹한의 겨울, 그리고 연간 강수량이 300㎜ 내외에 불과한 척박한 자연조건을 가진 곳이다. ☞→▶ steppe


우리 조상들은 셈족이었으므로 카스피해 북안이 아닌 카스피해 남안 즉 지금의 이란 북동부로 추정되는 곳(메사)에서부터 동쪽으로 전진하여 산지 곧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서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극동까지 천동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타당한 해석인 것이다. 우리 조상이 ‘초원길’로 왔다는 조덕영 교수의 주장은 허구에 불과하다.

 


‘파미르’의 어원과 ‘사내’의 어원


우리 조상들이 고대에 참으로 ‘파미르고원’을 넘고 ‘천산산맥’을 넘고 ‘알타이산맥’을 넘어서 동방으로 이동해 왔음을 보여주는 물증이 있다. ‘파미르 고원’을 지나(支那) 사람들은 총령(蔥嶺: 파총, 재령)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어 파(蔥) 마루(嶺) 그대로 파마루(파미르)이다. 지리학에서도 역시 파미르 고원(蔥嶺)에서는 파(蔥)가 많이 야생한다고 한다.


파미르 고원은 ‘파마루’로서 파(蔥)가 많이 자생하는 산마루(嶺)이기에 파마루(파머루) 고원인 것이다. ‘어머니’나 ‘오마니’나 같은 말이듯, ‘파미르’나 ‘파마루’나 같은 말이다. ‘파미르’의 어원은 한국어 ‘파마루’이다. ‘파마루~파머루~파미르’로 음전되었다. 이는 우리 조상이 파미르 고원을 넘어 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종의 ‘언어유물’인 것이다.


한국인은 남자를 사내라고 한다. 사내는 원래 ‘산아이’가 [산아이~사나이~사내]로 변한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고대에 산지, 즉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 동방으로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적인 연관성은 우리 조상이 참으로 동양의 많은 산들 즉 ‘파미르고원’을 넘고 ‘천산산맥’과 ‘알타이산맥’을 넘어서 동방으로 이동해 왔음을 보여주는 물증이다. 필자는 저서「알이랑민족」에서 이런 ‘언어유물’까지 세심하게 제시했다.


그러나 조덕영 교수는 우리 조상이 동방의 산지를 넘어 왔다는 필자의 설명을 소설이라고 매도한다. 이런 태도는 극도의 오만이다. 오히려 우리 민족을 야벳의 후손이라면서 북방 스텝지역의 초원길을 통하여 동방으로 왔다는 조 교수의 주장이야말로 소설이다.


알타이산맥을 넘어 가면 시베리아가 나온다.

우리 민족의 조상은 고대에 알타이산맥과 바이칼호수 주변의 시베리아(스발)에

넓게 퍼져 살면서 극동으로 이주해 왔다.

우리 한민족의 뿌리는 단군이며 그 정신적 고향은 북방 특히 백두산과 바이칼(밝알)호에 있다.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이동해 온 북방계 아시아인이다.


조덕영 교수의 기만적 이론에 속지 말라


유라시아 대륙의 북쪽 넓은 초원지대인 ‘초원길’은 가장 오래된 교역로로 역사시대 전에 주로 유목민이 이용하던 길이었다. 고대로부터 유라시아를 연결하여 인간의 삶과 문명의 소통이 이어지게 한 가장 오래된 교역로 또는 이동로가 바로 ‘초원길’이다.


이 길은 동유럽에서 카스피해북안~카자흐초원~준가얼분지~몽골초원~대흥안령산맥~만주 그리고 한반도에까지 이르는 길로서 이 유라시아 스텝지역에서 스키타이 이래 흉노·선비·돌궐·몽골 등 기마군단이 바람같이 이동하면서 제각기 역사를 써 내려갔다. 물론 이 길은 고대 한민족의 활동무대와도 뗄 수 없는 깊은 관계가 있다.


하지만 대홍수 직후 우리 조상들이 동방으로 천동할 때는 ‘초원길’을 통해 이동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 민족은 야벳의 후손이 아니라 셈의 후손, 그 중에서도 셈의 현손인 욕단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우리 조상이 ‘초원길’을 통해 동방으로 왔다는 조덕영 교수의 주장은 우리 민족이 야벳족이라는 것을 전제할 때만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셈의 후손이다. 따라서 조 교수의 주장은 당신만의 소설이며 허구이다.


steppe


조덕영 교수는 황당하게도 한국인을 야벳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그가 우리 조상들의 이동 경로를 유라시아 대륙 북방의 넓은 스텝지역인 ‘초원길’로 보는 까닭이 여기 있는 것이다. ‘초원길’은 야벳 족속의 거주지인 흑해 연안의 동유럽에서 시작하여 카스피해북안~카자흐초원~준가얼분지~몽골초원~대흥안령산맥~만주로 이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결국 조 교수는 애초에 전제를 잘못 세웠기 때문에 계속해서 거짓과 오류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비극이다.


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조덕영 교수의 기만적 이론에 속지 말라. 한국인은 야벳의 후손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 조상은 ‘초원길’을 통해 극동으로 천동(遷動)하지 않았다. 한국인은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후손이다(창 10:21~30). 따라서 동방의 산지 곧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서 극동으로 이동했다. 바로 이 고개들이 「알이랑민족」에서 상세히 설명한 ‘아리랑’의 고향이다. ☞→▶ 아리랑 찬송가론의 인문과학적 논거들


원로 지리학자 이정면 미국 유타대 명예교수는 “한국 전통문화의 정수인 아리랑을 연구하는 것은 인문 지리학의 영역이다”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 분이다. 그리하여 지리학자이지만 아리랑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썼다. 그는 최근 이지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아리랑 기행서 「누이야, 시베리아에 가봐」에서 파미르고원과 톈산산맥과 알타이산맥을 우리 조상들이 아리랑을 부르며 넘어온 ‘아리랑 루트’라고 규정했다. 학문적 지평이 넓은 아주 훌륭한 학자시다. 한 줌도 안 되는 신학지식을 전부인 줄 착각하는 오만한 인간과는 격이 다른 분이다. ☞→▶ 누이야, 시베리아에 가봐 


평택대학교 겸임교수라는 조덕영은 최근 유석근 목사를 이단의 괴수 같은 존재로 조작하려는 야비한 의도를 드러냈다. 그렇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나? 알이랑신학을 비방하는 그의 글들을 보니 오만함이 넘친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가? 이런 자도 크리스천인가?


-계속됩니다-


관련기사: < 덕영 교수가 유석근 목사를 세대주의자로 매도한 저열한 목적 >


< 조덕영 교수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忠犬 노릇을 그만두라 >


< 한국인이 셈족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조덕영 교수의 무식한 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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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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