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유석근 목사와 알이랑신학에 대한 조덕영의 천박한 비방 분석③
한국인이 셈족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조덕영 교수의 무식한 주장
한국인이 셈족이라는 것은 성경적·인종학적 결정적 증거가 분명히 있다
유석근
(알이랑코리아 대표, 한국기독교상고사학회 선임연구원, 알이랑교회 담임목사)
한국교회 성도들과 목회자들은 거의 대부분 우리 민족이 셈의 후손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조덕영 목사(평택대학교 겸임교수)는 한국인이 셈의 후손이라는 것을 철저히 부정한다. 한국인이 셈족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결정적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 목사는 최근 유포한 알이랑신학을 비방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우리 민족이 셈족이라는 것은 어떠한 성경적·인종학적 결정적 증거가 전혀 없다”
조 목사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 겨레가 셈족이라는 증거가 없지만 그저 아시아인인 이스라엘 민족이 셈족이요, 한때 페르시아제국을 이루었던 오늘날 이란의 조상인 엘람족이 셈족이요, 지금의 이라크 땅의 주인이었던 대제국 앗수르의 주인공도 셈족이므로, 막연히 심정적으로 같은 아시아 민족인 우리 민족도 셈족일 거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한국교회 성도들은 엄청난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는 뜻이 된다. 과연 그럴까? 조덕영 목사는 한국인이 셈족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전혀 없다고 단언한다. 조 목사의 주장대로 우리 민족이 셈의 후손이라는 것은 성경적·인종학적 결정적 증거가 전무(全無)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결정적 증거가 엄연히 있다. “우리 민족이 셈족이라는 것은 어떠한 성경적·인종학적 결정적 증거가 전혀 없다”는 조 목사의 주장은 이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조 교수의 단견이며 그릇된 결론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옳지 않는 교설이다.
우리 겨레가 셈족이라는 것은 성경적·인종학적 결정적 증거가 분명히 있다. 실로 그것은 ‘내증’(특별계시인 성경의 증거)과 ‘외증’(일반계시인 성경 밖의 근거), 양자 모두의 증거가 충분하여 의심의 여지를 불허한다. 조 목사의 이른바 “심정적 셈족설”은 학문적 깊이가 얕은 인물이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내놓은 천박한 견해일 뿐이다.
모든 문명의 아버지인 수메르인
수메르인들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의 평야에 정착하면서 최초의 문명(BC 3500년)을 이룩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앞선 문명을 형성하며 근 2천년간 지배하다가 사라졌지만,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민족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은 신비의 민족이다. 그러나 학자들에게서 ‘수메르 문명’은 인류문명 전체의 뿌리에 대한 비밀을 간직한 민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History Begins at Sumer)>의 저자로 유명한 사무엘 크레이머 교수는 최초의 창조설화를 비롯한 교육제도, 사법제도 등 인류 최초의 39개 사건이 모두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가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됐다고 역설하는 것은 학교, 정부, 재판, 법전, 의학, 철학, 문학, 도서관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문화의 시초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법률로 알려진 함무라비법전보다 훨씬 앞서 반포된 수메르왕 우르-남무의 법전은 함무라비법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인류 역사상 최초의 왕정과 관료제도 등을 이룩했다.
특히 그들의 문헌에서는 성경의 천지창조, 에덴동산, 노아의 홍수, 바벨탑 이야기 등과 유사한 내용들이 발견된다. 에덴동산에 남자와 여자가 있었고, 동산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 그런데 슈메르에서는 여자가 아닌 남자가 먼저 따먹는다는 등, 그리고 홍수가 나서 사람들이 다 죽는데 지아슈드라는 의인이 있어서 배를 만들어 사람들을 구한다는 등... 구약성경과 유사한 내용이 놀랍게도 수메르의 토판 속에 그대로 기록돼 있다.
수메르인들이 남긴 문화유산은 그 후 인류사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수메르인들의 기술과 생활양식, 종교, 문학 등은 그들 주변의 많은 민족들에게 하나의 전형이 되었고, 수메르의 뒤를 이은 바빌론, 앗시리아, 히타이트제국, 그리고 멀리 이집트 등에도 큰 영향을 남겼다. 마치 오늘날 청바지와 햄버거, 코카콜라로 상징되는 미국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듯이 인류 역사의 초기 단계에서 수메르 문화는 고대 중동세계의 보편 문화로서의 역할을 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배우는 인류문명의 4대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말 그대로 ‘meso-potamia’로 양강(兩江) 사이란 뜻이다. 양강이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한 무리의 인간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이 한 무리의 인간들을 ‘수메르인 Sumerian’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양강 지역에 올 때 문자와 학교제도와 법제도 등 고급문화를 이미 가지고 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도대체 어디서 있다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이주해 왔을까...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겨져 있는 이 수메르인들의 유래 문제를 소위 “수메르 문젯거리 Sumer Problem”라 할 정도이다.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문명도 수메르보다 무려 1000년 이후의 것이며,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 문명도 그와 비슷한 후기 문명이다. 수메르인들이 가지고 온 문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문명으로서, 당시 그들은 설형문자라는 것을 사용했고 직조기술을 발견하여 이미 옷을 물들여 입고 다녔다. 건축술도 발달하여 2층 가옥을 지을 정도였다.
수메르 이름의 기원은 셈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을 “검은 머리의 사람들”(black-headed people)이라고 불렀으며, 자신들이 사는 땅을 수메르(Sumer)라고 불렀다. 수메르인이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의 원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수메르’는 무슨 뜻이며, 이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
수메르인은 ‘탈락 자음’이라고 부르는 것 -어말(語末)에서는 생략되거나 발음되지 않는 자음- 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신’을 뜻하는 ‘딩기르(dingir)’는 ‘딩기(dingi)’로 발음되었다. ‘r’ 자음은 설형문자로 기록되긴 했지만 발음은 되지 않았다. ‘수메르(Sumer)’라는 말은 설형문자 문헌에서는 ‘슈메르(Shumer)’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낱말이 성경에 나오는 ‘쉠’(Shem, 한글성경의 셈)이라는 이름과 유사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노아의 아들인 셈은 앗수르, 엘람, 아르박삿, 룻, 아람 다섯 아들을 낳았다. 셈은 이들의 조상이며 특히 셈족의 정통성을 승계한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직계 조상이다. 에벨의 장자 벨렉은 유대인의 조상이 되었고(창 11:1~10; 12:1~3), 작은 아들 욕단은 동방으로 멀리 스발(스바르~시비리~새벌~시베리아)로 천동(遷動)해서(창 10:21~30) 우리 한국인의 선조가 되었다. 에벨(에베르)은 ‘히브리’의 호칭적 기원이다. 따라서 유대인이 서부 히브리인이라면 한국인은 동부 히브리인이다. 한국인도 에벨의 혈통이기 때문이다.
‘슈메르(Shumer)’는 ‘쉠’(Shem, 한글성경의 셈)이라는 인명과 유사한데, 이 ‘셈’이 수메르라는 지명의 기원이 되었다. 뛰어난 수메르 학자 크래이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①히브리어의 모음 ‘e’는 설형문자의 모음 ‘u’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름’을 뜻하는 히브리어 낱말 ‘shem’도 그런 경우다.
이것은 아카드어의 ‘shum’에 해당한다.
따라서 수메르어의 ‘슈메르(Shumer)’는 히브리어에서 ‘세메르(shemer)’가 된다.
②끝자음 ‘r’은 생략할 수 있는 자음으로서, 발음되지 않는다.
따라서 ‘슈메르’가 히브리어에서는
‘셈’으로 발음된다는 피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까 수메르인들은 그들이 선조로 기억하고 있던 노아의 아들 셈의 이름을 따서 자기들의 거주지를 ‘수메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야벳이나 함 계열의 종족이 아니었다. 수메르인은 셈족이었던 것이다. 수메르의 어원이 ‘셈’이기 때문이다.
수메르인과 한국인은 셈 계열의 동일 종족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수메르인과 한국인은 언어, 체형. 풍습 등이 확연히 같은 동일 종족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셈의 후손이라는 결론은 필연적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수메르인은 셈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수메르라는 지명은 ‘셈’에서 유래했다.
수메르인들은 머리털이 검고 곧으며, 후두가 편평하며, 태음력을 사용하였고, 한국어와 어순이 비슷한 교착어를 썼다. 대영백과사전에는 수메르인의 교착어가 한국어와 같다고 지적하고 있다.
교착언어란 우리말의 주어나 목적어 다음에 ‘은, 는, 이, 가’ 등이 붙는 언어를 의미한다. 이는 우랄 알타이언어의 공통된 현상이다. 그런데 支那語와 인도어는 일단 교착언어가 아니다. 그래서 수메르어와는 그 특징에 있어서 같지 않다.
다음으로 문법 구조에 있어서 수메르어는 '주어+목적어+동사'이다. 이는 영어 혹은 支那語와는 다르고 우리말과는 같은 구조이다. 수메르어는 우리말 ‘은, 는, 이, 가’ 처럼 토씨를 사용하는 교착어이며, 모음조화현상과 ‘주어+목적어+서술어’의 어순 등 동일한 문법체계를 가졌다. 또한 기본단어들까지도 유사하다. 수메르어와 한국어는 뜻과 음이 일치하는 단어가 아주 많이 있다.
한국어의 광명을 뜻하는 ‘밝’은 BAR-BAR, 금은 GUSH-KIN(KIN은 금, 누런 금속이라는 뜻,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우리 겨레는 금은 ‘구지’라고 했다), 길은 GIR, 굴(穴)은 GUR, 구릉(산보다 낮은 언덕)은 KUR, 노래는 NAR, 님(높은 분에 대한 존칭어)은 NIM, 달(月)은 DAL, 대갈(머리)은 DAD-DIL, DA-GAL, 독(장독)은 DUG, 밭(田)은 BAD, 빛은 BIR, 어른은 UR, 하늘(한알)은 AN-UR(가장 높다는 뜻), 칼은 KAR, 엄마는 UMMA, 아빠는 ABBA 등 유사한 말이 굉장히 많다.
특히 수천 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던 인칭대명사나 지시대명사는 더욱 일치한다. 나는 NA(나), 너는 NE(네), 그는 GE(게), 지시대명사 이는 I(이)로 각각 발음되고 뜻도 같다. 또한 수사(數詞)도 같다. <삼국사기>에는 고대 우리말의 수사가 남아 있다. 그런데 수메르의 수사와 우리말의 수사가 일치한다.
여기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수메르어는 처음 1을 ‘아스 as’라고 하는데, 이는 <삼국유사> 고(古)한국어의 그것과 일치한다. 애벌, 초벌을 ‘아시 김매기’라고 하며 논이나 밭의 처음 갈이를 ‘아시 갈이’라고 하고 처음 빨래를 ‘아시 빨래’라고 하고 과일이나 나물의 처음 나오는 첫물을 ‘아시물’라고 하고 아침은 ‘아사’라고 하는 것이며, 해 뜨는 아침을 의미하는 Asis가 여기서 유래한다. Asis가 곧 Asia이다.
고조선의 한글 이름 ‘아사달’은 ‘아침의 땅’, 즉 ‘해가 처음으로 뜨는 땅’을 의미한다. ‘아사’는 ‘아침’ ‘처음’을 뜻하며, ‘달’은 ‘땅’을 의미하는 바, 곧 ‘양달’이 ‘양지’요, ‘응달’이 ‘음지’며, ‘빗달’이 ‘비스듬한 땅’(비탈)이니, ‘아사달’은 ‘해가 처음으로 뜨는 땅’, 즉 ‘아침의 나라’를 뜻하는 말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사달’은 ‘밝달’(배달), 즉 ‘밝은 땅’과 어휘는 다르지만 의미는 같은 우리 겨레의 토박이 말이다.
수메르인은 우리처럼 머리카락을 묶어 상투를 틀었다. 그리고 고구려, 가야, 신라 등에서 쓰인 회도(灰陶)를 사용했다. 또한 파미르 고원이 원산지인 파를 즐겨 먹었다. 게다가 우리와 똑같은 형태의 씨름을 했다. 아래의 사진 자료를 보라. 더 이상 무슨 증거가 요구되겠는가!
▲씨름하는 사람 청동상 향로
두 남자가 머리에 단지를 이고 씨름하는 장면을 묘사한 약 4600년 전의 수메르 유물.
상대의 샅바를 붙들고 있는 모습을 보라. 우리 겨레 고유의 씨름과 똑같은 형태이다.
바그다드의 동쪽 하파자(khafajah)의 닌투 신전에서 출토되었다. 이라크 바그다드 박물관 소장.
▲서역인과 고구려인이 씨름하는 모습을 그린 각저총(角抵塚) 벽화
왼쪽 선수는 코가 큰 서역인, 오른 쪽에 지팡이 들고 서 있는 사람은 심판이다.
이 모든 증거들은 한국인과 수메르인이 동일 종족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메르인들은 셈의 후손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쉠’(Shem, 한글성경의 셈)이 ‘슈메르(Shumer)’라는 지명의 기원이다. 수메르인은 셈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과 수메르인은 같은 종족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한국인도 셈의 후손이라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민족이 셈의 후손이라는 결정적 증거이다.
이렇게 한국인이 셈족이라는 것은 성경적·인종학적 결정적 증거가 분명히 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 셈족이라는 것은 어떠한 성경적·인종학적 결정적 증거가 전혀 없다”는 조덕영 교수의 주장은 틀렸다. 그것은 무식한 말이다. 가련하게도 조덕영 교수는 이 분야에 깊은 지식이 없기 때문에 “심정적 셈족설”이라는 괴이한 이론을 내세우며 허튼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조 교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라.
실은 한국인이 야벳의 후손이라는 조덕영 교수의 획기적(?) 이론이야말로 결정적 증거가 전혀 없는 잡설이며,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 혼란만 부추기는 사설이다. 한국인은 어디까지나 셈의 후손이다. 셈족 중에서도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인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후손이다(창 10:21~30). 조 교수는 우리 겨레가 욕단의 후손이라 것도 부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서구 신학을 분별없이 답습 맹종하는 카피 신학의 전형이다.
조덕영 교수의 오만
수메르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사무엘 크레이머(Samuel Noah Kramer, 1897~1990) 박사는 수메르의 어원이 ‘셈’이라고 설명했다. 수메르인이 셈족이라는 사실을 규명한 것이다.
근대에 들어 수메르 지역에서 발굴된 그들의 점토판 문헌에서 성경의 천지창조, 에덴동산, 노아의 홍수, 바벨탑 이야기 등과 유사한 내용들이 발견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구약성경과 유사한 그 수메르 문헌들은 오랜 세월 전승되는 가운데 원형이 변형되었겠지만 처음에는 그들의 조상 셈으로부터 성경 창세기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과 유사한 내용들이 고대 수메르 문헌 속에 기록될 수는 없다.
그런데 조덕영 교수는 수메르의 토판 속에 구약성경과 유사한 내용들이 그대로 기록돼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그는 오직 수메르인들이 다신론(多神論) 신화족이었다는 것만 지적한다. 교묘하게 수메르인들이 셈의 후손이라는 인식을 차단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조 목사는 수메르인이 다신숭배자들이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수메르는 다신론(多神論) 신화족이었으며 비성경적인 점성술이 난무하고 잔인한 순장(殉葬)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허황된 단군신화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신화체계를 가진 문화였다. 3,600명에 달하는 그들의 신들은 대단히 변덕스럽고 감정적인 존재들이었다. 노아 홍수 이후, 노아는 600세 이후 350년을 더 살면서 인류 타락과 하나님의 심판과 구속의 언약을 후손들에게 가르쳤을 텐데, 짧은 시기 동안 어떻게 또 다시 인류가 그렇게 하나님과 쉽게 멀어질 수 있었는지 그들의 타락상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들 수메르 신들의 이름은 성경의 하나님 이름과 너무도 멀어져 있었다.”
조덕영 교수는 단군을 부정한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충견(忠犬)답게 여기서도 "허황된 단군신화"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수메르도 신화체계를 가진 다신론 신화족이었다며, 그들이 단기간에 그렇게 하나님과 멀어진 그 타락상이 놀랍다고 소란을 떤다. 과연 그것이 놀라운 사실일까? No! 그것은 놀라운 일이 전혀 아니다. 바벨탑 사건과 비교해 보라.
바벨탑 배역 사건은 어떤가? 그것은 대홍수 이후 고작 한 세대가 지나간 후 발생했다. 노아는 홍수 이후 350년을 더 살았으므로 그 때에 노아는 생존해 있었다. 홍수 생존자들의 그 신속한 타락상이 놀랍지 않은가? 하물며 수메르인들이 셈의 후손이었지만 점차 일신신앙를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타락한 것이 뭐가 그리 놀라운 일이라는 말인가? 전혀 놀라운 현상이 아니다.
조 교수는 수메르인과 한국인은 셈 계열의 동일 종족이라는 필자의 설명을 부정하려고 궁색하기 짝이 없는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메르인이 셈족이었다는 인식을 차단하려고 다신숭배자들이었다는 것만 집중적으로 부각시킨 것이다.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했는데도 이렇게 반응하는 것은 몽니 부리기이다. 결코 학자다운 태도가 아니다.
필자는 수메르의 어원이 '셈'이라는 크레이머 교수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수메르인이 셈족이라는 피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했다. 그리고 한국인과 수메르인은 친족이었기 때문에 한국인 역시 셈족이 확실하다고 했다. 조덕영 교수는 유 목사가 이렇게 한국인이 셈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자 당황한 것 같다. 그는 호언하기를 "우리 민족이 셈족이라는 것은 어떠한 성경적, 인종학적 결정적 증거가 전혀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조 교수는 계속 다음과 같은 억지 주장을 늘어놓는다.
“그들이(수메르인) 머리가 검고 씨름을 하고 교착어를 쓰고 태음력을 쓴다는 것이
우리 민족이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머리가 검고 태음력을 쓰며 교착어를 가진 민족은 허다하다.”
위 문장에서 “머리가 검고 태음력을 쓰며 교착어를 가진 민족은 허다하다”는 두 번째 문장은 맞다. 실제로 머리가 검고 태음력을 쓰며 교착어를 가진 민족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번째 문장, “그들이(수메르인) 머리가 검고 씨름을 하고 교착어를 쓰고 태음력을 쓴다는 것이 우리 민족이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문장은 틀린 말이다. 왜?
앞서 사진 자료까지 제시했듯이 수메르인과 우리 민족은 동일한 형태의 씨름을 했다. 조덕영 교수는 우리와 똑같은 형태의 씨름을 하는 다른 민족이 있으면 제시하라. 지구상에 어느 민족, 어떤 종족도 그렇게 상대의 샅바를 붙들고 같은 형태의 씨름을 하는 인종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다. 실로 그것은 한국인과 수메르인이 셈 계열의 동일 종족임을 완벽히 입증해 주는 물증인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고고학적 유물까지 물증으로 제시했다.
▲두 남자가 머리에 단지를 이고 씨름하는 장면을 묘사한 약 4600년 전의 수메르 유물.
상대의 샅바를 붙들고 있는 모습이 우리 고유의 씨름과 똑같은 형태이다
(이 사진 자료는 2005년 출판사 "휴머니스트"에서 번역 출간한
"The Epic of Gilgamesh"(길가메쉬 서사시) 107쪽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메르의 어원은 ‘셈’으로서 그들은 셈 계열의 종족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한국인 역시 셈족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결론인 것이다. 왜인가? 한국인과 수메르인은 언어, 체형. 풍습 등이 확연히 같은 동일 종족이었기 때문이다. 물증까지 있지 않은가? 결국 우리 겨레가 셈족이라는 것은 성경적·인종학적 결정적 증거가 엄연히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적 증거”를 제시했는데도 조 교수는 허접한 논리로 태클을 걸며 아니라고 억지를 부린다. 바로 이런 태도가 오만인 것이다. 사무엘 크레이머(Samuel Noah Kramer, 1897~1990) 박사는 수메르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그는 수메르의 어원이 ‘셈’이라고 했다. 곧 수메르인들은 셈족이라고 밝힌 것이다. 수메르 연구에서 조덕영 교수는 크레이머 박사보다 더 탁월한 학자인가? 사람이 오만하면 하나님도 대적하신다.
고대 한국인의 친족이었던 수메르인들
고대 수메르 민족은 메소포타미아의 원주민이 아닌 동방에서 온 이주민이었다. 크레이머(Samuel N. Kramer)는 수메르인들이 동방에서 왔다고 한다. 번즈(E.M. Burns)는 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수메르인들은 대홍수 후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방으로 이동했던 욕단 족속 곧 우리 겨레의 친족들로서, 바이칼호(天海)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다시 역이동해 중앙아시아(실크로드)를 거쳐서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들어가 문명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수메르인은 우리 민족과 혈통이나 언어, 문화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던 종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타당한 이론을 조덕영 교수는 다음과 같은 조잡한 논리로 부정한다.
“고조선은 주전 2333년 시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검증된 역사는 아니다.
하지만 수메르문화는 이미 주전 7천-3천년 경 번창한 문명이다.
즉 수메르는 단군(욕단) 후손들이 만든 나라가 아니라
단군이 나라를 세우기 전 이미 수천 년 동안 번창하던 국가였다.”
조 교수는 필자가 우리 민족이 셈의 후손이라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자 이를 부정하려고 집요하게 태클을 걸고 나온다. 고조선은 주전 2333년 시작되었지만 수메르는 주전 7천~3천년 경 번창한 문명이라며, 수메르는 단군이 나라를 세우기 전 이미 수천 년 동안 번창하던 국가라고 주장한다. 즉 년대 차이기 크게 나기 때문에 수메르와 우리 민족은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조덕영 교수는 년대 차이가 수천 년 이라는 것을 강조하려고 수메르 문명의 기원을 주전 7천 년까지 소급하는 간교함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너무 년대를 과장한 것이다. 실제로 수메르 신화와 연대는 과장된 측면이 많다. 탄소연대 측정 자체가 오차가 많기 때문이다.
수메르 신화는 대홍수가 발생한 BC 3071년 이전과 고대 바빌로니아 역사(~1130년)까지 광범위하게 인용된다. 한 제국이 2000~3000년간 지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고대 역사가 대부분 그렇듯이 수메르의 연대기도 과장되어 있다. 고고학자들과 지질학자들은 무엇을 발견하면 가능한 한 더 오랜 것을 발굴했다고 평가받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대단한 업적이 되기 때문이다.
대홍수가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의 점토판은 기원전 650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수메르 왕 명부”에 따르면 길가메시는 기원전 28세기경 우루크를 126년 동안 지배한 왕이었다고 한다. 길가메시가 실존 인물이라면 지배한 기간만 126년이므로 이 시대는 성경에 기록된 장수시대와 같다.
수메르인들이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의 평야에 정착해 문명을 이룩한 것은 기원전 3500년경이었다. 그렇다 해도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년대로 알려진 기원전 2333년보다 수메르 문명이 1천년 이상 앞선다. 조덕영 교수는 이런 시간적 격차를 내세워 한국인과 수메르인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국인이 야벳의 후손이며 셈족이 아니라는 자신의 획기적(?) 이론을 계속 고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조덕영 교수가 필자의 저서 『알이랑민족』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서 유 목사의 타당한 견해를 함부로 비방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년대 차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필자는 단군의 년대에 관해 『알이랑민족』 147~148쪽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단군의 조선 건국 연대에 대하여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2333년이라는 설이 통용되어 왔다. 이 기원전 2333년 설은 고려의 13세기 말 이승휴의 「제왕운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인데, 그때 이승휴는 자기 저서에서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의 조선 건국 연대를 중국의 요(堯)임금 건국 연대와 똑같이 무진년(戊辰年)으로 본 것인데, 그것은 실제 우리나라의 그 어떤 구체적인 자료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는 당시 요임금을 중국 한족의 시조로 보면서 -요임금은 동이족이었다- 그의 건국 연대가 우리 단군의 건국 연대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그런 논법을 세웠던 것이다.
건국시조 단군 때로부터 상당히 긴 세월이 흐른 후세에 살던 우리 선조들은 단군이 나라를 세운 연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였고, 다만 단군이 매우 오랜 옛적에 나라를 세웠다는 막연한 인식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단군의 건국 연대를 자기들이 알고 있던 가장 오랜 옛 임금에 비교하여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이요, ‘요와 같은 시대’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주전 2333년인 단군기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단군의 즉위 원년의 절대 연대는 사실로서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삼국유사」 등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단군이 요와 동시에 즉위해 나라를 건국했다는데 의의가 있을 뿐이다. 요와 순은 이상적인 통치시대를 펼친 인물의 대명사격이다. 특히 요는 공자가 성군으로 추앙하던 인물이다. 바로 그러한 요임금과 단군이 동시대에 즉위해 조선을 건국하였다는, 즉 우리나라가 중국과 대등한 시기에 건국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라라는 것을 알리려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단군의 즉위 연대는 그 절대 연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내세우고자 했던 의식세계를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따라서 단군을 성경상의 셈의 현손(玄孫) 욕단이라고 단정할 때에 단군 시대와 욕단 시대의 일치 여부는 논란의 소지가 될 것이 전혀 없다. 주전 2333년이라는 단군기원은 사실로서의 연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는 그보다 훨씬 더 옛날로 소급될 수도 있다.”
그렇다! 지금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주전 2333년 단군기원은 사실로서의 연대가 아니다. 실제는 그보다 훨씬 더 옛날로 소급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메르와 단군조선의 년대 차이를 들어 수메르인과 한국인이 동족이라고 할 수 없다는 조덕영 교수의 주장은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이다. 만일 수메르인들과 한국인이 친족이 아니라면 어떻게 두 민족이 같은 형태의 씨름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설명해보라. 게다가 앞서 자세히 언급한 바처럼 수메르인과 한국인은 언어, 체형. 여타 풍습 등이 확연히 같다. 수메르인은 우리 겨레와 혈통이나 언어, 문화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던 친족이었던 것이다.
결국 조덕영 교수는 『알이랑민족』을 읽어보지도 않고 유 목사의 타당한 설명을 비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주 더러운 매너다. 위에 인용한 문장은 『알이랑민족』 147~148쪽에 수록되어 있다. 어떻게 타인의 저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함부로 비평을 가한다는 말인가? 이런 인물을 교수라고 호칭하며 학자 대우를 해줘야 하는지 의문이다.
더욱이 조 목사는 유석근 목사의 신학과 인격에 부정적 이미지를 덮어 씌우려고 신사도운동과도 엮어놓고 세대주의로 매도하며 심지어 허위사실까지 유포하는 등 야비한 행동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자도 과연 목사인가? 조씨가 우리 민족이 셈의 후손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유석근 목사의 알이랑신학을 사설로 몰아붙이려는 추악한 목적을 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 자세히 설명한 바처럼 한국인이 셈족이라는 것은 성경적·인종학적 결정적 증거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 셈족이라는 것은 어떠한 성경적·인종학적 결정적 증거가 전혀 없다”는 조덕영 교수의 주장은 오류이며 무식한 말이다. 조 교수는 이 분야에 전문적 지식이 없기 때문에 “심정적 셈족설”이라는 터무니없는 이론을 들고 나와 성도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이 야벳의 후손이라는 조덕영 교수의 주장이야말로 결정적 증거가 전혀 없는 잡설로서 성도들의 신앙 혼란만 부추기는 최상급 사설이다.
-계속됩니다-
추천도서:
①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서울, 가람기획), 2000
②데이비드 롤, 문명의 창세기(서울, 해냄), 1999
③문정창, 한국 ․ 슈메르 ․ 이스라엘 역사(서울, 한뿌리) 1979.
④정진국, 메소포타미아를 찾아서(혜안), 1999
☞관련기사: < 조덕영 교수가 유석근 목사를 세대주의자로 매도한 저열한 목적 >
< 조덕영 교수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忠犬 노릇을 그만두라 >
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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