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스크랩] 교회 직분과 돈의 관계

수호천사1 2016. 6. 14. 21:37

교회 직분과 돈의 관계

 

   


 

 

들어가는 말

 

<시사저널> 과 '한국반부패정책학회'가 공동으로 조사한 '2011 대한민국 부패지수' 측정 결과, 국내 전문가의 87.5%가 "한국 사회가 부패하다"라고 답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정도면 우리나라는 부패공화국이다. 이것은 자학 정도가 아니라 자멸수준이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항목이 있다. 그것은 부패한 직업인에 대한 조사이다. 12개의 직업인 중에서 종교인이 7번째로 부패한 직업인으로 되어있다. 종교인보다 덜 부패한 직업인은 군인, 체육인, NGO, 의료인등이다. 물론 전체적 조사에 의하면 종교기관은 미미한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인이 국가의 부패성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종교인 중에서는 타 종교 종사자에 비해 목사를 꼽은 이가 응답자 가운데 87.5%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 다수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2010년에 작성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조사연구와 차이가 없음을 볼 수 있다. 한국 개신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17.6%였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신뢰를 얻기 위하여 중요하게 바뀌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28.3%가 교회 지도자들이라고 답변하였다. 이와 함께 개선되어야 할 점은 38.8%으로 언행일치로 보았다.

 

이러한 통계는 부패한 한국사회에서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역사 가운데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왔던 한국 교회의 역할이 이제 끝난 것은 아닌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한국 교회를 침몰시키고 있는 것인가? 이러한 아픔은 한국 교회의 갱신을 요구하고 있다.

 

 

I. 한국 교회 갱신되어야 한다.

 

각종 통계를 통하여 살펴보았듯이 한국 교회는 갱신되어야 한다. 철저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 교회가 갱신되지 않는다면 세 가지 면에서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첫째 하나님을 부끄럽게 만드는 죄이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한국 교회는 하나님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사람의 영광이 나타나고 있다면 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되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값싸게 만드는 죄다.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였다.[요17:1] 이러한 그리스도의 죽음 위에 세워진 것이 교회이다. 그런데 교회의 부패함이 그리스도의 은혜와 영광을 가리고 있다.

 

셋째 한국 교회를 위하여 온 몸을 바쳐 헌신하고, 순교하였던 선진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한국 교회가 세워졌는가? 한국 교회는 순교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자신을 헌신하였다. 그 피의 고백 위에 오늘 한국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갱신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손봉호 교수는 오늘의 한국 교회는 개신교 역사상 중세 이후로 가장 부패해있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미어 온다. 그리고 누구도 이 말에 대하여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이제 교회는 거룩함의 상징이 아니라 비판의 대상이 되어 개독교라 불리고 있다. 이러한 어둠의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갱신이고 이 갱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갱신되어야 할 요소들이 산적해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교회 안에는 물질주의적 신앙과 기복주의를 넘어선 성공주의 신앙과 그에 따른 세속화 현상, 인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종교다원주의 그리고 성직자의 사제주의적인 경향 등 어두운 현실 가운데 개혁이 없이는 소망이 없음을 보여주는 현상들이 난무하고 있다. 참으로 개혁된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 하는 이 말이 뼈 속 깊이 다가오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개혁이 없이는 치유가 불가능한 중환자인 한국교회가 살 길은 무엇인가? 앞에 있는 요소들이 다 개혁의 대상들이지만 그 가운데 한국 교회의 실제적인 부패를 보여주고 있는 직분에 대하여 나누고자 한다.

 

기윤실의 조사에서 보았듯이 한국 교회가 갱신되어야 할 1 순위는 교회 지도자들이다. 다른 표현으로 한다면 바로 교회 직분자들이다. 사회는 한국 교회 직분자들의 갱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 내부에서도 여지없이 터져 나오는 탄식이다. 직분자들의 갱신이 교회 회복의 시작이다.

 

그 동안 직분자들은 교회를 세우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한국 교회의 위대한 선배들의 삶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주기철 목사와 조만식 장로, 마부 출신 이자익 목사와 양반 출신 조덕삼 장로 등 하나님의 법 앞에 정직하게 살면서 교회를 세웠던 직분자들이 한국 교회의 역사에는 수두룩하다. 그런데 오늘날 이렇게 존귀한 직분자들이 교회를 멍들게 하고 있다는 지탄을 받고 있다.

 

어떤 교회는 장로를 세우는 데 이천만원, 권사는 오백만원, 안수집사는 삼백만원을 내어야 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상담한 한 여 집사는 권사 취임하는데 삼백만원을 내라고 해서 돈이 없다고 하니까 대출을 권유해서 그 상처로 교회를 떠났다고 하였다.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교회 건축을 위하여 직분자를 세우는 일도 일반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직분을 받아도 직분자의 직임과는 관계없는 모습을 자주 보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많은 성도가 직분을 가지고 있다. 물론 직분이 많은 것이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문제는 직분에 걸 맞는 삶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교회를 멍들게 하고 있다.

 

도대체 이러한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돈을 대출해서라도 직분을 받으려고 하게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요구에 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분이 무엇이기에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는 것일까? 본 논고에서는 이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직분에 대한 성경적 정의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직분의 종류와 그 기능을 논하고,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실제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II. 교회와 직분

 

직분에 대한 불의한 일들이 일어나니 차라리 직분을 없애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직분을 없애는 것은 직분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것이다. 비록 교회 안에 바른 직분 개념의 약화내지 부재현상이 있다고 해서 직분을 없앨 수 없다. 칼빈은 교회 질서(직분제도)와 정치를 폐지시키려고 하든지 또는 불필요한 것 이라고 해서 무시하려고 하는 것은 교회를 파멸시키며 파괴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직분은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다스리기 위하여 재정하신 것이다. 즉, 직분은 교회를 지탱하는 뼈대와 같다.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회를 지탱하며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재정한 직분에 대한 바른 이해와 회복이 있어야 한다. 교회가 세상과 경계가 사라진 이면에는 직분자들의 정체성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상 교회가 거룩해지는 것은 쉬운 문제는 아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중요하다. 최홍석은 “하나님은 일보다 사람을 원하신다. 직분은 사람과 관련되어 있다. 이 직분을 가진 사람이 새로워 질 때, 교회의 갱신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교회의 직분은 교회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지배하시기 위하여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분이 바로 세워지고 적용되어진다면 교회는 건강해 질 것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쓰임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한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날마다 개혁되어져야 한다. 특별히 직분에 대한 바른 이해와 회복은 너무나 중요하다.

 

교회의 직분제도는 역사 가운데 존재하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상속하여 유지 보수하기 위해 허락하신 주님의 은사다. 그리고 이 은사는 사람들의 지략에 의한 것이 아니다. 즉, 직분은 교회를 잘 지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간들의 합의에 의해 제정된 제도가 아니라 지상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주님이 주신 선물은 교회의 시작과 함께 주어졌다. 우선 예수님은 12사도를 통하여 교회를 치리하셨다. 그리고 오순절 이후에 교회의 공동체가 형성되자 교회를 위하여 직분자를 조직적으로 세운 것을 볼 수 있다. 특별히 사도들이 더욱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힘쓰게 하기 위하여 집사를 세웠다. 이러한 교회에 직분자를 세움은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

 

성경은 직분을 언급할 때 철저하게 섬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디아코니아(δίακονία)를 사용한다.[행6:24,20:24,고후5:18,엡4:12,고전14:26,고후10:8] 이러한 섬김은 그리스도의 실천적 삶으로부터 유래하였다고 할 수 있다.[막10:46] 그러므로 어떠한 직분이라도 그 본질은 바로 섬김에 있다. 즉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봉사직이라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직분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유지하기 위하여 주신 은사이다. 이 은사는 오직 교회를 위한 봉사의 직무를 감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분은 자신을 드러냄이 아니며, 권력의 자리도 아니다 낮은 자리에서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하여 부름 받은 것이다.

 

 

III. 직분의 종류와 기능

 

앞서서 직분은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를 치리하시기 위하여 사람에게 주신 은사임을 살펴보았다. 직분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교회의 주인 되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섬김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교회의 주인은 오직 그리스도라는 사실이다. 사람이 결코 주인이 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의미 아래 직분이 주어진 것이다.

 

이광호는 이 사실을 강조한다. “교회에 직분제도가 있는 것은 개인이 자기 취향이나 판단에 따라 교회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 역할을 동반한다. 그러므로 교회 내에는 어느 누구도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되며 허락된 직분들을 통해 공동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이 부분에 있어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교회는 개인이 사유화하는 공동체가 아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 어느 누구도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섬기는 자들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교회는 세상의 모습처럼 추악하게 변한다. 오늘 한국 교회에 직분에 대한 심각한 왜곡과 직분자들의 비리 소식이 난무하는 것은 모두들 주인노릇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에 허락된 직분은 어떠한가? 바울은 교회에 주어진 직분으로 목사, 교사, 장로, 집사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네 개의 직분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장로교회는 목사와 교사를 같은 것으로 보고 세 직분으로 구분한다. 본 논고에서는 장로교회의 전통에 따라 세 직분으로 생각하고 각각의 직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3-1 목사

 

바울은 엡4:11절에 하나님은 교회를 위하여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를 세웠다고 증거하고 있다. 여기서 사도와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는 임시직으로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를 세우거나 교회를 모세에게서 그리스도로 옮겨야 할 당시에 한한 것이다. 그러나 목사와 교사는 항존직으로 교회가 존재할 때까지 존속된다.

 

목사는 기본적으로 장로다 그러기에 다른 장로들과 함께 교회를 다스리고 감독할 직임을 가지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증거 할 선지자적 직임을 겸하고 있다. 이 때문에 목사는 교회에서 더 큰 존경의 대상이 된다.[딤전5:17] 그러나 이것이 계급적 의미를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점에 있어서 존경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다. 칼빈은 목사의 직분에는 복음을 전하며 성례를 집행하는 것에 있다고 하였다. 목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연구하여 성도들에게 그 뜻을 바르게 해석하여 주어야 한다. 이 일에 온 힘을 다할 때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스리는 일을 가볍게 하라는 것은 아니다.

 

3-2 장로

 

장로는 목사와 함께 교회의 치리를 감당하는 직분자이다. 그래서 성경은 장로를 감독이라고 부른다.[행20:17,28, 딛1:5,7,빌1:1] 감독자로서의 장로의 직책은 실제로 양떼를 살피고 인도하며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목사와 장로는 교회를 세우는 가장 중요한 동역자이다. 목사와 장로는 역할분담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하지, 직위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장로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직책이 있다. 첫째 규칙적으로 가정을 심방을 통해 양무리를 돌아보고 감독하는 일이다. 이것이 감독의 직무이다. 성도들의 가정을 살펴보면서 그들이 목사의 설교를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신앙의 모습을 점검하여 당회에 보고 하는 것이 장로의 직무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교회에서 이러한 장로의 모습을 찾아보기란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장로가 명예직으로 남는 것은 교회를 부실하게 만드는 일이다.

 

둘째 장로는 양떼를 거짓 스승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행20:29] 장로는 이 사명을 위하여 자신을 잘 준비하여야 한다. 말씀을 바르게 분별할 줄 모른다면 어떻게 양떼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자신의 영적 상태를 바르게 인식하여야 하고, 신앙고백에 대한 바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믿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는 장로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장로는 먼저 교회 밖에서 오는 거짓 스승을 경계하고 교회를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장로는 담임목사를 오류로부터 보호하여야 한다. 장로는 목사의 설교에 대하여 바르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아마도 이 부분은 매우 민감하게 생각할 수 있으나 목사 역시 부족한 존재이기에 동역자로서 이 부분에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목사를 코너로 몰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철저하게 교회를 세우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장로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허순길은 개혁교회에는 개교회의 당회마다 빈도는 다르지만 매년 몇 차례 당회의 회순에 설교 토론 순서를 넣고 함께 나누는 시간이 있다고 한다. 아마 한국 교회는 이러한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직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다면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데 매우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최기채는 이러한 장로의 직분에 대하여 장로의 사명은 한 마디로 파수꾼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장로의 사명은 누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파수병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장로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직분과 거리가 멀게만 보인다. 직분에 대한 바른 실천이 없고 목사와의 다툼만 들리니 참으로 서글프다. 동역자가 되지 못한다면 교회는 건강할 수 없으며 세상에서 조롱거리가 된다. 장로가 장로로서의 직분을 잘 감당한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3-3 집사

 

한국 교회 가운데 집사만큼 가볍게 대해지고 있는 직분은 없다고 본다. 그것은 장로직 보다 못하다는 인식과 성경에 없는 서리 집사 제도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국 문화 가운데 깊숙이 남아있는 체면문화는 자연스럽게 교회 안에 자리 잡게 되었다. 체면 문화의 기독교화가 바로 직분의 서열화와 서리집사 제도라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서리집사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다. 성경에는 오직 집사만이 있다. 물론 이 집사도 그 기원이 명백하지는 않으나 초대 교회 안에 존재하였고, 교회의 성장과 함께 집사직의 역할도 중요하게 되었다.

 

칼빈은 집사에게는 구제하는 일이 맡겨졌다고 하였다.[롬12:8] 칼빈은 사도행전의 근거로 집사직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보았다. 교회를 위하여 구제 사업을 관리하는 집사들과 직접 빈민을 돌보는 집사들이다.[행6:3] 집사직은 교회의 재정을 관리하고 바르게 사용하는 직무를 감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집사직분은 교인들의 생존과 관련된 일상적 삶과 연관이 된다. 그러므로 집사들은 목사와 장로들의 심방을 통하여 성도들의 상황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집사는 교회에서 천대 받거나 아니면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위한 중간단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 교회를 세우는 은사적 직분이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 교회의 집사들에게는 이러한 직무적 모습이 없다. 단지 당회의 결정에 지출하는 재정 경리에 불과하다. 이것은 집사직분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는 것이다. 집사들의 직책은 몸 된 교회에서 어느 지체가 어려운지를 살피고 그에게 합당한 도움을 줌으로 공동체 안에서 소외당하는 자가 없도록 봉사하는 데 있다. 이 집사의 효과적인 봉사를 위하여 교회가 충분한 예산을 책정하고 지원하여야 한다. 이러한 분립과 균형이 잘 주어진다면 교회는 더욱 건강하고 투명하고 아름다워 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직분적 분립이 없이 목사 혹은 당회의 권한이 강력하다보니 곳곳에서 잡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은사가 없는 사람이 돈을 만질 때 혼란은 불 보듯 뻔하다.

 

한국 교회가 무엇보다도 집사직에 대한 바른 회복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단순히 이름뿐이거나, 명예직이거나 체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집사의 직분이 바르게 회복 될 때 교회 공동체가 더욱 건강해 질 수 있다.

 

3-4 임시 직분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직분은 목사, 장로, 집사이다. 물론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전하는 자가 있지만 이들은 교회가 세워질 때가지 존속한 한정직이다. 따라서 사도들은 선지자직과 더불어 초대교회에 한하여 세워진 한정직이며 그들은 교회의 기둥이며, 그들 위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졌다.[갈2:9,엡2:20] 그리고 이후 교회에는 항존직으로 목사, 장로, 집사만이 세워졌다.

 

하지만 한국 교회에는 성경과 그리고 보편교회에 없는 직분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권사, 서리집사, 권찰, 강도사, 전도사, 원로목사, 명예 권사 등이다. 이러한 직분들은 한국교회만 있는 직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직분은 모두가 임시직으로 교회가 필요하여 세운 직분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는 거의 항존직과 같은 개념이 되어 버렸다. 교회의 필요에 따라 직분을 세울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항존직과 같은 개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명예직은 더더욱 존재의 의미가 없다. 직분에 있어서 명예직은 직분의 개념과 전혀 함께 할 수 없다. 이것은 교회의 필요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명예직은 없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요약하자면 직분은 말씀과 치리를 담당하는 목사와 성도를 심방하고 신앙을 살피고 다스리는 장로와 성도들의 실제적인 삶의 문제를 돕고, 구제하는 일에 봉사하는 집사직이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에 있는 임시직이 존재하고 있다.  

 

 

IV. 직분에 대한 오해

 

직분은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최전방의 군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직분자들의 타락은 하나님의 영광을 무너뜨리고 교회를 허무는 일을 하게 한다. 근래에 교회와 각 기관에서 들려오는 목사와 장로들의 금권선거는 너무나 비참한 일이다. 우리 시대는 대중매체의 발달과 함께 교회의 허물이 숨겨 질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어디서든 교회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 교회의 좋고 나쁜 소식이 다 들린다. 이러한 시대에 교회는 더욱더 각성하여야 한다. 교회의 역사 가운데 교회를 허물고자 하는 무리들은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교회는 무너지지 않았다. 때마다 하나님께서 개혁자를 보내어 주셔서 교회를 갱신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체를 비판만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자리를 살피고 버릴 것과 취할 것을 분명히 하여 다시금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여야 한다. 그 출발은 불의한 돈이 사용되고 있는 직분이다.

 

앞서 잠시 살펴보았지만 한국 교회의 직분은 본질을 많이 떠나 있다. 최홍석의 말대로 사람의 변화가 교회의 갱신의 시작이다. 사람이 변하지 않고 어떻게 교회가 갱신 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중심에 직분의 갱신이 있다. 앞으로 직분의 갱신에 있어서 한국 교회가 오해하고 있는 직분의 이해와 폐지되어야 할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직분은 명예직이 아니다.

 

한국 교회가 직분에 있어서 금권이 통용되는 것은 직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직분은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교회 공동체가 뽑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직분은 은사이며, 실천적 봉사자이다. 결코 쉽지 않은 직책을 가지고 있다. 직분자는 자신의 시간을 헌신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소명이 없이 직분을 감당 할 수 없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 교회 직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을 서로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직분을 은사도 봉사도 아닌 명예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명예직으로 생각하기에 어떻게 해서라도 직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 문화에 남아있는 체면 문화가 이러한 모습을 부추기고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자 직분을 받으려고 한다. 이것이 직분을 돈을 주고 사는 매관매직이 되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정치인이 자신은 현재 안수집사인데 장로가 되고 싶지만 안 할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 이유가 술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인가? 또한 한 지자체 단체장은 자신 역시 안수집사인데 창조와 성육신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얼마나 서글펐는지 모른다. 성경을 한 번만이라도 보았다면 그런 사람들이 직분을 받을 수 있겠는가? 아니 직분을 주는 교회와 성도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기 위하여 직분을 선호한다.

 

기업인들 역시 자신의 사회적 위치 때문에 교회에서도 그에 걸맞은 신분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 역시 이러한 이들의 사회적 위치와 도움 때문에 직분을 주기도 한다. 어디에서도 직분에 대한 바른 모습을 볼 수 없다. 대다수의 성도들 역시 직분을 명예직으로 생각하니까 신중하게 선출하지 않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에 사회적 인물이 있는 것을 오히려 자랑하고 있다.

 

또한 신앙 연수에 비례하여 직분수여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보상심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성도들이 자신의 영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가볍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직분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고 유지하고자 하시는 은사이다. 그리고 직분자는 자신의 소명에 따라 봉사하는 것이다. 명예직이 되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2. 직분은 서열이 아니다.

 

한국 교회는 성도, 권찰, 서리집사, 안수집사, 권사, 장로로 점점 올라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직분이 은사에 따른 것임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직분은 결코 수직적 단계로 주어지지 않았다. 직분은 수평적이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결코 서열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서열이 존재하는 순간 직분의 의미는 왜곡되어 진다.

 

이러한 직분의 서열화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돈을 사용해서라도 직분을 얻으려고 한다. 서열의식은 직분에 대한 과열을 일으키게 되고, 목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가져오며 외식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다. 직분을 얻기 위하여 단기간 봉사하고, 물질의 헌신도 이어진다. 그러나 일단 직분을 얻으면 이전의 헌신과 봉사는 서서히 식는다. 목적이 직분을 얻는 것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행동이다. 더구나 서열화는 섬기는 자세에서 누리는 모습으로 변화한다.

 

한 예를 든다면 나이가 들면 권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 한국 교회의 불문율처럼 되어있다. 그래서 믿음의 내용과 관계없이도 나이가 되었다면 권사 직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나이에 걸맞게 권사직을 얻는다. 만약 나이가 되었는데도 권사직을 갖지 못하면 스스로 창피하게 여긴다. 또한 성도들은 이상하게 보기도 한다. 신앙이 없거나, 봉사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결혼만 하면 집사라고 부르고, 나이만 들면 권사라고 부르는데 익숙하다. 모두다 서열화의 피해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열의식은 성경적 세계관이 아니다. 직분이 서열화 되면 어떻게 해서라도 높아지려고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불의한 일이 빈번해 지는 것이다. 교회가 멍들고 피 터지는 일이 일어난다. 직분에 대한 바른 기준이 없이 이름뿐인 직분자로 인하여 세상에서 교회는 매우 초라하게 대접받는다.

 

3. 직분은 권력이 아니다.

 

직분에 대한 권력의식은 한국 교회를 부끄럽게 만드는 절정이다. 직분은 앞서 살핀 것처럼 소명과 은사에 대한 봉사직이다. 오직 교회를 세우기 위한 직임일 뿐이다. 그런데 직분이 권력으로 왜곡되면 직분의 본질은 사라지고 쓰레기만 남게 된다.

 

현실적으로 목사와 장로간의 다툼은 이러한 직분의 몰상식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직분이 권력화 되면 반드시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고 장로를 세우지 않으려고 하는 목사가 있으며, 장로가 되기만 하면 목이 곧은 사람으로 변화된다. 왜 그런가? 직분이 마치 권력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장을 하고 있다가 직분을 받으면 돌변하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교회를 무너지게 한다.

 

사실 한국 교회는 당회 중심으로 교회가 운영된다. 즉 모든 결정 사항이 당회 중심으로 되어 진다. 결국 당회가 가지고 있는 권력은 막강하다. 이러한 막강한 권력은 사람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죄로 인하여 부패한 본성을 가진 사람들은 권력을 선호한다. 더구나 사회에서 권력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 나이 먹어서 권력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최고의 행복이다. 이러한 오해로 인하여 온갖 포장을 통해서 직분을 얻으려고 한다.

 

교단 총회와 각 종 회의를 볼 때마다 권력의 화신이 되어있는 직분자들을 종종 본다. 그리고 그 직분을 얻고 누리기 위하여 금권을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직분에 대한 권력의식이 폐기처분되지 않는 한 계속하여 직분과 돈의 먹이 사실을 존재할 것이다. 사실 이것은 하나님 부재의 모습이다.

 

직분이 은사이며, 수평적 관계라면 권력은 존재하지 않고 교회를 세우기 위한 소통과 협력만이 존재한다. 당회의 기능과 집사회, 그리고 재직회의 기능이 성경의 가르침대로 세워져야 한다. 권력다툼이 교회 내에서 매우 적어질 것이다. 직분이 권력이 아니라면 아마도 직분을 감당하려고 하는 이들이 돈까지 쓰면서 하려고 할 까? 초대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의 모델로 삼는다면 초대 교회처럼 교회에서의 직분의 역할 분담이 바르게 세워져야 할 것이다.

 

4. 직분은 믿음의 판단 근거가 아니다.

 

이 말은 매우 민감하다. 그 이유는 성경의 관점과 현실의 관점이 너무 괴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직분자에 대한 자격에 있어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지명하고 있다.[행6:5] 또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는 자[딤전3:2]라고 하였다. 이렇듯 직분자에 대한 성경의 인식은 분명하다. 성경의 가르침을 통하여 본다면 직분자는 믿음과 성령과 삶에 있어서 책망할 것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직분자의 모습이다.

 

반면에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믿음과 성령과 책망할 것이 없는 분들이 직분자인가? 며칠전 한 선교사와의 대화 중에서 씁쓸하지만 의미 있는 말을 들었다. “목사가 가장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같다.” 온전한 헌신과 겸손과 낮아짐과 섬김의 모습을 가장 볼 수 없는 것이 목사라는 것이다.

 

직분은 은사이기에 분명한 소명이 있어야 하고, 교회가 잘 판단하고 세워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교회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직분을 통하여 자신의 믿음을 증거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믿음과 성령과 책망 할 것이 없는 자를 세워야 하는 모습에서 직분을 통하여 믿음과 성령과 책망할 것이 없음을 증명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직분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직분은 믿음 판단의 근거가 아니다. 직분은 은사와 소명과 교회의 부르심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직분자는 겸손해야하며 직분을 감당하지 못할 때에는 내려놓아야 한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러한 인식이 바로 세워진다면 직분을 받기 위하여 로비 활동과 같은 세상의 방법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5. 직분은 축복의 조건이 아니다.

 

직분에 대한 오해 가운데 내면 가운데 깊이 박혀있는 것이 기복신앙이다. 직분을 복과 연계해서 생각하는 일들이 많다. 그래서 나이가 들었고, 신앙의 연수가 어느 정도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직분을 받지 않는다면 축복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복적의식이 직분을 받기 위한 애씀으로 나가게 된다.

 

그래서 교회는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앞 다투어 직분자로 세우는 것을 본다. 이러한 모습은 은현 중 직분이 축복의 조건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 가운데 “장로는 돈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직분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직분의 본질로 본다면 사회에서 바쁜 사람은 직분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개혁교회에서는 1년씩 직분을 감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직분과 돈을 연관시키고 있다. 하지만 직분은 돈과 관계가 없다. 더더욱 축복의 조건이 아니다. 축복 받기 위하여 직분을 받아서는 안 된다. 직분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직분자는 배나 더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V. 폐지해야 할 관습

 

이렇게 직분에 대한 온갖 오해가 불의한 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직분의 오해에서 벗어나서 직분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관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관습들은 하루속히 교회에서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1. 직분은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 교회에서 만연되고 있는 악습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수단으로서의 직분이다. 일부의 교회들은 교회 건축이나. 차량 구입이나, 교회 리모델링 등 교회의 외적 확장을 위하여 직분을 수여하는 것을 본다. 직분이 본질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 진 모습이다. 이것은 악습 중에 악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직분 헌금은 폐지해야 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직분에 따라 헌금액수가 정해져 있기도 하다. 이것은 직분의 본질을 매도하는 것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직분이 서열화 되어 있음을 가르치는 것도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직분 헌금은 폐지되어야 한다.

 

또한 교회 성장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직분자가 세워져야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고 정착한다는 생각으로 직분을 주는 행위는 끝내야 한다. 그리고 일부는 위임목사가 되기 위하여 직분자를 세우기도 하는데 이러한 일도 멈추어야 한다. 직분은 결코 수단이 아니다. 은사와 소명이 있어야 한다. 직분이 수단이 되어 지면 온전한 직분자로서의 사명을 감당 할 수 없다.

 

2. 임직식시 축의금을 폐지해야 한다.

 

한국 교회에 들어와 있는 허례허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임직식에 받는 축의금이다. 이것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는 모습이다. 이것은 임직자들이 임직 헌금을 통하여 선물을 주는 것에 대한 보상차원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전혀 관계없다. 오히려 교회가 앞으로 봉사하고 헌신하여야 할 임직자들에게 감사의 선물을 드리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임직식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예식과 같아 진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하루 속히 없어져야 한다.

 

3. 임직예배를 주중에 드리는 것을 갱신해야 한다.

 

대부분의 임직식은 주중에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역시 누구를 위한 임직식인지 생각해야 한다. 임직자들은 교회를 위하여 봉사할 자들이다. 그런데 교회의 온 식구들이 함께 할 수 없는 시간인 주중에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사실 주중에 하는 것은 외부 손님들을 위하여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직분은 외부 손님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 교회를 위하여 주어진 봉사직이다. 축하받고 화환받는 그러한 모습이 아니다. 모든 것이 왜곡된 상황에서 나타난 모습이다.

 

그러므로 임직예배는 주일 공 예배에 시행하여야 한다. 온 성도가 함께 교회의 일꾼을 세우고 감사를 표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또한 임직자 역시 하나님의 거룩한 공회 앞에서 자신이 받은 바 소명을 잘 감당 할 수 있도록 고백하여야 한다. 이렇게 되면 불필요한 외식들이 많이 사라질 것이다. 한국 교회가 좀 더 성경적인 교회로 거듭나려면 심각한 고민을 해야한다.

 

4. 불필요한 직분은 점진적으로 폐지되어야 한다.

 

교회에 있는 항존직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필요로 하여 세워진 임시직의 문제이다. 임시직은 교회의 필요에 따라 세워졌다. 그러나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없어져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 교회에는 교회의 필요에 따라 세워진 직분이 아니라 관례로 세워진 직분들이 있다. 예를 들면 명예, 공로, 원로직분이다. 이것은 교회의 직분과 아무 관계가 없다. 또한 서리집사도 점진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합당하다. 교회의 집사직이 충분하면 더 이상 서리라는 이름의 직분은 필요하지 않다. 권사에 대한 호칭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불필요한 것을 그대로 나두면 교회의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점진적으로 폐지되는 것이 마땅하다.

 

5. 사회적 지위가 직분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끔씩 사회적 명성이 있는 분들의 모습에서 참담한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정신이 몽롱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직분자라는 사실이다. 사회적 지위와 직분의 상관관계를 동일시하는 것은 교회에 큰 해악이다.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직분을 주고 직분자를 세워야 한다. 결코 사회적 지위를 보고 직분을 주어서는 안 된다. 직분은 돈과 명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은사와 소명으로 감당하는 것이다.

 

 

나가는 말

 

오늘날 누가 보아도 한국 교회는 직분에 대한 바른 이해가 무너진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중세시대에 직분매매가 있던 것과 같은 가증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직분매매는 교회를 허무는 악성 종양이다. 그러므로 제거되어야 한다.

 

직분은 교회를 세우는 거룩한 직임이다. 직분이 바로 세워질 때 건강한 교회가 세워진다. 그리고 건강한 교회는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궁극적 소명을 달성하게 한다. 현재 한국 교회가 당하고 있는 부끄러운 결과들을 가볍게 생각하거나 안티의 소리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이라면 우리는 감당해야하지만 죄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이라면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벧전2:19-20]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의 자리에 서야 한다. 그것이 교회를 살리는 길이며 더디지만 가장 빨리 가는 길이다.

 

한국 교회가 바르게 세워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회복하려면 직분과 직분자에 대한 바른 이해와 회복이 있어야 한다. 직분자들은 한국 교회를 살리는 소중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받은 직분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교회는 직분자를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세워야 한다. 좀 늦게 세워도 된다.

 

오늘날과 같이 직분을 얻기 위한 추악한 행태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손을 떠나게 될 것이다. 부디 한국 교회가 다시금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본분을 감당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신동식/빛과소금교회 담임목사/기윤실 정직윤리운동 본부장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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