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스크랩] 하나님의 돈: 교회재정 사용의 원칙과 방향

수호천사1 2016. 6. 14. 21:36

하나님의 돈: 교회재정 사용의 원칙과 방향

 

 


 

 

I. 들어가며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믿는가? 존재하실 뿐 아니라 인간과 지상교회를 포함한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것들의 소유주 되심을 믿는가? 그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섭리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계심을 믿는가? 하나 더, 개인이 되었든 하나님의 교회가 되었든 그날이 되면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 앞에서 결산해야함을 믿는가? 만약 위 질문 모두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사실 교회재정에 관한 대부분의 문제는 이미 해결된 거나 다름없다. 지금처럼 교회재정과 나는 상관이 없다고 하지도 않을 것이고, 반대로 마치 개인의 재산처럼 교회 돈을 맘대로 사용하지도 않을 것이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무차별적인 공격에 당황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각별하였다. 수천 안 빛을 몰라 어둠속에서 신음하던 이 백성에게 소수의 헌신된 선교사들을 통하여 복음의 씨앗이 내린지 겨우 1세기 남짓. 그 이후로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변화가 이 땅에서 일어났고, 지금은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한국인임을 당당하게 자랑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눈부신 발전 뒤에는 기독교가 큰 역할을 하였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과 문화, 의료와 산업에 이르기까지 이 땅 어느 한 뼘 한 순간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비그리스도인조차도 교회를 무한한 애정과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았으며, 민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교회는 최전선에서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기대는 실망으로, 심지어 적대감으로까지 변하였다. 이러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도대체 무슨 연유로 교회는 그 능력을 상실하고 있는가?

 

수많은 진단 중 교회재정에 관한 이슈가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교회의 재정이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교회재정이 교회 내 특정인의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돈이라는 점, 교회 운영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원이라는 점, 그리고 교인들의 피와 땀이 헌금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빛과 소금이라고 주장하는 교회가 건전하고 투명하게 재정을 운영하여 세상에 당당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교회가 재정에 관해 대내외적으로 떳떳하지 못하면 혹독한 비판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의 돈을 부인하는 행위, 귀중한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행동, 교회의 본질과 교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사용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대외적인 능력을 상실할 뿐 아니라, 대내적으로도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금이라도 다시 한 번 자신을 냉철하게 뒤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민족과 다음 세대에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새롭게 거듭나야 할 것이다.

 

 

II. 비영리조직의 이해

 

교회는 조직형태로 보면 영리단체가 아닌 비영리조직이다. 이런 점에서 비영리조직이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특징을 이해하면 교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여기에 더하여 교회라는 조직의 특성을 고려하면 왜 교회의 재정관리가 끊임없이 문제가 되는지 그 원인을 짚어볼 수 있다.

 

비영리조직은 말 그대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조직을 총칭하는 말이다. 교회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대표적인 비영리조직의 하나이다. 비영리조직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등과는 달리 교육, 의료, 문화, 환경, 종교, 시민단체 등 삶의 질을 증진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며, 주로 후원자의 기부금에 의해 운영된다. 비영리조직은 그 설립목적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많은 단체의 경우 후원자와 수혜자가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장애인을 돕고자 하는 후원자와 이들의 기부금에 의해 도움을 받는 장애인과는 서로 다른 주체다. 또한 후원, 가입, 운영 등이 강제적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도 특징 중 하나이다.

 

이와 같은 특성으로 인해 비영리조직은 관리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에 비해 비영리조직은 감시기능이 취약하다. 대표적인 영리조직인 기업의 예를 보면, 내부감사, 외부감사, 시민단체, 언론, 소비자, 국세청, 감독기관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stakeholders)가 수시로 감시활동을 하기 때문에 위법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으며, 만약 법규를 위반할 때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된다. 이에 비해 비영리단체는 감시기능이 매우 취약하거나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특히 후원자 대부분은 조직의 경영에 실제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물질의 기부 혹은 조직의 활동 (예를 들어 봉사활동 등)에 참여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국한하기 때문에 조직의 운영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결과적으로 비영리조직의 느슨한 경영 환경 때문에 불법행위의 사전 예방이 어려우며, 사건이 발생한 후에는 이를 시정하는 비용이 막대하여 조직의 존재 자체가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둘째, 비영리조직은 설립목적이 다양하며 대부분 비재무적이다. 예를 들어 교육의 질을 높이거나 국민건강, 성숙한 신앙생활, 혹은 문화생활의 증진 등은 계량적으로 쉽게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를 예로 들면, 단순히 교인수의 증가를 성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영혼의 구원, 하나님 앞에서의 바른 생활, 대 사회적 선한 영향력의 증진 등을 교회의 존재 이유 및 성과로 볼 것인지는 교회마다 다를 것이다. 결과적으로 성과측정이 어렵기 때문에 책임의 소재를 밝히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책임의 소재를 밝혔다 하여도 그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다. 예컨대 교회의 존재목적을 비록 소수라 하여도 질적인 성장에 둔다고 가정할 때, 교인의 수가 정체되는 경우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동일한 이유로 교회에서 지출된 비용의 타당성도 검증하기가 어렵다. 즉 목적과 비용의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으니 마땅히 쓰일 곳에 합당한 금액이 지출되었는지 평가하기가 어렵다.

 

셋째, 비영리조직은 대부분 소규모로 운영된다. 그러다 보니 재정이나 인적자원이 부족하고 결과적으로 관리 시스템이 미흡하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비록 담임목사를 비롯한 리더들이 교회재정을 제대로 운영하고자 하여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거나, 실무적으로 운영할 교인 혹은 직원이 없어서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교회재정 전문가를 훈련하고 양성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비영리조직의 이해를 바탕으로 교회가 지켜야 할 원칙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원칙을 지켜야 함은 교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취약점을 보완하여 종국에는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다. 자원하는 자들로 이루어진 교회를 바르게 운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단순하고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바로 이 자원하는 자들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더욱 어려울 수 있다.

 

 

III.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

 

성경에서의 청지기 개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교회의 재정관리를 설명할 때 특히 적합하다. 청지기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일을 맡긴 당사자(위임자)와 일을 맡은 당사자(수탁자)와 사이에서의 계약 관계이다. 하지만 성경에서의 청지기 관계는 단순히 법률용어인 계약 관계보다는 더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언약 관계다. 계약 관계는 계약내용이 주택의 양도이건 서비스의 제공이건 특정 대상을 주고받는 거래관계이다. 이에 비해 언약관계는 비록 사안을 위임하고 위탁받는 사이이기는 하나 두 당사자 모두에게 유익해야함을 전제로 한다. 거래관계보다는 친밀함과 사랑에 기반하며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 상태에서 맺어지므로 거래보다는 사명에서 시작된 관계이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언약의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인간을 사랑하시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며, 이러한 은혜를 입은 인간은 위임받은 사안을 충성스럽게 수행해야 하는 사명이 뒤따른다.

 

한편, 계약내용을 어기거나 상황에 따라서는 중도에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계약관계와는 달리, 언약은 한번 관계가 맺어지면 파기는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 인간(혹은 교회)을 사랑하시는 언약이 어찌 파기될 수 있겠는가(롬 8:39). 교회와 교인과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하나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교회, 그 구성원 한 사람 한사람이 바로 교인이며 동시에 교회다. 그래서 교회와 교인의 관계도 단순히 맘에 들지 않으면 파기할 수 있는 계약관계가 아니라 사랑과 신뢰로 맺어진 언약의 관계이다. 혹시나 한 당사자가 이 거룩한 언약의 관계를 파기하고자 할 때에는 상대방은 물론이고 당사자 자신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파기와 동시에 존재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3중의 언약관계 당사자이다. 위로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이며, 내부적으로는 교인과의 언약관계,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사회와의 언약공동체이다. 이러한 3중의 언약관계는 상호 밀접한 연관이 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손상되거나 단절된 상태에서 교인 혹은 사회와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교인들과의 관계가 깨진 상태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을 리가 없다. 한국교회가 재정문제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교인, 나아가 사회 전반에 대해서도 선한 청지기의 역할, 언약공동체의 사명을 올바로 감당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의 몇 가지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1)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라.

청지기의 첫 번째 사명은 위임자가 정확하게 뭘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위임한 사항이 무엇인지 늘 깨어 기도하며 되새겨야 한다. 모든 교회의 결정은 항상 성경에 비추어 그 타당성이 검토되어야 하며, 모든 정책과 그 실행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늘 두려움과 떨림(빌 2:12)으로 일을 수행해야 한다.

 

하나님뿐 아니라 교인 앞에서도 떳떳한지 수시로 질문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인간을 구원하셨고, 이들을 잘 섬기도록 교회에 위탁하신 것이다. 교인들이 교회의 운영을 교회 대표자들(담임목사 혹은 장로회 등)에게 위임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사랑하는 마음과 신뢰하는 심정으로 소수의 교회 대표에게 교회 운영을 맡긴 것이다. 일반 사회가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이다. 교회가 어느 특정 지역에 존재하도록 용인되는 이유는 일반 사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교회가 대신하여 잘 해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만약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거나, 교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나아가 일반 사회의 기대를 저버리게 된다면 교회는 이미 청지기임을 포기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는 항상 대화의 채널을 열어놓고 누가 무슨 말을 하던 다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쓰던 달던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지금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구하고 있는가? 교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사회로부터의 비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는가? 너무나 커진 교회의 목소리를 낮추고, 대신 이들 위임자의 진정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 겸손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도, 교인들이 숨죽이고 가만히 있다하여도, 사회로부터의 비판이 잠잠해졌다 하여도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교회가 잘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참고 또 참으며 교회가 바로 서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님의 때가 되면 모든 것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2)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라.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교회의 재정관리의 기본이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그 관리만 책임질 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교회는 하나님의 소유다. 의사에게 치료를 맡겼다 하여도 몸은 여전의 환자의 몸이며, 사건을 변호사에게 맡겼다 하더라고 최종적인 권리와 의무는 의뢰인에게 소속된다. 교회의 모든 자원(물질이던 인적 자원이든)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소유다. 물론 이를 고백적인 면에서 부인하는 교회는 없겠으나, 실제적인 운영측면에서 살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나친 개 교회주의에 빠져서 형제 교회를 경쟁상대로 대하거나, 기성세대의 안위와 편리를 위해 자라나는 세대의 희생을 강요한다면 그 교회는 교회의 궁극적인 주인이 누구인지를 망각한 것이다.

 

교회 내부에 국한하더라도 동일한 문제점이 노출되곤 한다. 교회의 모든 자원은 교인들이 자원하여 낸 헌금과 봉사로 이루어진 것이다. 즉 하나님께 드린 헌금이 교인에게서 교회로 이관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으며 좁게는 헌금을 낸 교인들에게 있다. 이러한 당위성은 교회의 역할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즉 교인들의 동의가 없이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독단적으로 비밀리에 자원이 사용되는 것은 비록 그것이 교회를 위한 일이라 하더라도 잘못된 것이다. 어찌 피와 땀으로 드려진 헌금이 교인들의 뜻에 반하여 사용될 수 있겠는가? 작금 한국교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던 일부 교회의 재정 스캔들은 바로 이러한 관계를 무시해서이다.

 

물론 하나님과는 달리, 교인 혹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일반 사회는 타락의 영향을 받고 있으므로 완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교인도 잘못 생각할 수 있고, 고의적으로 교회를 훼방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선의 보다는 악의로 교회를 폄하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들 즉 일부 교인과 일반 사회의 문제이지 교회의 잘못된 행위를 정당해 주지는 않는다. 그런 때일수록 교회도 타락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늘 깨어 하나님께서 주인이심을 온 몸으로 고백하고 잘못된 점은 속히 회개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 일을 게을리 하거나 모른 척 할 경우 그 징계가 무엇인지 우리 모두는 익히 잘 알고 있으며, 성경과 기독교의 역사는 반복해서 이를 증거하고 있다. 더 이상 우리 교회가 이 잘못된 대열에 합류해서는 안 된다.

 

(3) 정성 다하여 드린 헌금, 제대로 사용하라.

청지기의 또 다른 책임은 위탁된 자원을 올바로 사용하는 것이다. 악한 청지기와 선한 청지기의 차이는 의도나 동기가 옳은가 그렇지 않은가에 의해서 구분되기도 하지만, 맡겨진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했느냐에 의해서도 평가된다. 달란트 비유는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마 25장).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청지기들은 최선을 다하여 그들의 물적 및 인적자원을 활용하였고 결과적으로 1백퍼센트 수익을 달성하였다. 이에 비해 한 달란트를 받은 청지기는 이를 투자하여 이윤을 남기는 대신 땅에 묻어두어 한 푼의 수익도 거둬들이지 못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의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주인이 능력 있음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그가 나서서 일을 하지 않아도 주인이 다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럴듯한 변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청지기의 임무가 무엇인지 전혀 생각이 없는 종이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의지도 없었고, 섣불리 투자하였다가 잘못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어 보인다. 최소한 은행에 저금이라도 하여 이자수입이라도 실현해야 할 터였지만 그만한 지혜도 자신감도 없는 청지기였다. 이 청지기의 변명과 예수님의 반응을 살펴보자.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마 25:24).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참으로 냉정하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마 25:26-27). 즉, 주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그 종은 자기의 임무를 완수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이 비유에 비추어 교회재정에 관해 최소한 두 가지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교회를 운영할 때에 소극적 관리에서 좀 더 적극적인 사고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교인들의 달란트(인적이던 물질적이던)를 묻어놓는 교회는 청지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악하고 게으른 교회다. 교회는 능력 많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함을 최우선으로 해야겠지만, 그 이외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교인들과 그 교회에 위탁된 재정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주님께 드릴 최상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선한 청지기라 함은 단순히 주어진 자원을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를 투자하여 이익을 남기는 능력까지를 포함한다. 교회 재정과 그에 따른 사역도 단순히 현상 유지에 목표를 설정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성숙한 크리스천으로서 살아가는데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줄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편만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

 

둘째, 재정의 낭비가 없도록 전 교회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회의 헌금은 개인 돈이 아니라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돈(구체적으로는 교인들의 돈)이다. 이런 점에서 특히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 교회의 재정을 관리하는 사람은 마치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처럼(엡 6:7) 최선을 다하며 모든 면에서 정직해야 한다. 나아가 지혜로워야 한다. 교회 재정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변명하여도 청지기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한 달란트 받은 청지기는 어떻게 투자할지 몰라서 그냥 땅에 묻어 두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만약 투자에 자신이 없거나 자격이 없다면 최소한 이 분야의 전문가에게 협조를 구해야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교회의 재산관리는 너무나 낙후되어 있다.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는 교회가 없기 때문에 재산관리 대장을 유지하는 교회도 드물며, 그로 인해 교회의 재산이 망실되거나 파손되어도 이를 확인할 시스템이 없다. 특히 재정담당 장로 혹은 회계집사는 통상적으로 장기간 그 책무를 맡는 경우가 일반적이어서, 만약 이들이 직책을 계속 수행하지 못할 경우 큰 혼란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무리 소규모 기업이라 하더라도 일 년에 한차례 이상 재물조사를 실시하여 회계장부와 실제보유액과의 차이를 규명하는데 비해 교회는 이런 통제 시스템이 없다. 교회 재정은 헌금수입과 사역의 지출에 따라서 결정된다. 회계학적으로 보면 헌금 수입이 천원 증가한 것이나 교회 낭비요소를 천원 줄이는 것이나 결과는 동일하다. 즉 일정액의 비용을 절감하면 그만큼 헌금이 증가한 효과가 있다. 창고에 재고로 남아 있지만 다시 주문한 소모품, 한 쪽 구석에 방치된 피아노 혹은 컴퓨터, 불필요한 복사와 종이의 낭비 등 이러한 사례는 끝이 없다.

 

(4) 속이지 말고 감추지도 마라.

투명성과 진실성,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지만--특히 교회에서는--가장 문제가 되는 원칙 중 하나이다. 투명성이라 함은 단어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실체를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투명성은 회계장부나 보고서를 전 교인 (때로는 대외기관)에 공시(disclosure)하는 것 이외에 각종 정책 등이 결정되는 절차도 투명하게 진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몇몇 소수에 의해서 비밀리에 결정된 정책, 예산의 집행과 관련 장부, 그리고 회계보고서 (예산서, 결산서 등)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바로 투명성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혹은 비록 공개는 하지만 형식적으로 대강 보고하는 것 역시 투명성을 해치는 요인이 된다.

 

한편 비록 투명하다고 하여서 모든 자료가 진실하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공개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진실성이 더 확보될 가능성은 높으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진실성(truthfulness)이란 실체 (혹은 가치)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장부에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장부를 거짓으로 기입하면 교인들에게 공시하여 투명성 원칙은 준수하였다 하여도 진실성 원칙은 훼손된 것이다.

 

이처럼 투명성과 진실성이 교회의 재정 관리에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원칙이 위배되면 신뢰성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교회가 교인들로부터 혹은 사회로부터 신뢰를 상실하면 잠시의 불편함 정도가 아니라 교회의 존재자체가 위태로우며 무의미해진다. 이는 하나님은 다 아신다고 주장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미 신뢰성이 상실되었는데 어찌 교회의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며 어찌 빛과 소금의 역할을 올바로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한국교회의 신뢰성이 상실되므로 인해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이 우려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하나님께서 정직하시니 교회도 정직해야 한다. 교회 헌금은 하나님의 돈이니 단 1원이라도 도둑질하면 안 되며, 있는 사실 그대로를 진실 되게 기록하고 보고 해야 하며, 모든 과정이 온 교인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5) 감독기능을 회복하라.

주 안에서 거듭난 개인도, 주님의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라 할지라도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는 완전하지 않다. 지상 교회가 재정 스캔들에 휩싸인다 하여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어떤 개인이든 어느 교회든 일시적인 실수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잘못이 재정의 오용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은 여전히 잘못이기 때문이다. 최선의 길은 교회가 잘못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혹시 사후적으로 별견되었다면 이에 합당한 교정조치를 취해서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교회 내 감사기능이 활성화 되어야 하며 최소한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이 고려되어야 한다.

 

(가) 교회도 잘못될 수 있음을 인정하자. 교회 내에서 진행하는 모든 것은 은혜롭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개인이든 교회든 주님과 멀어질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나) 담임목사 등 지도층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아무리 감사위원이 열심히 하려고 해도, 아무리 교인들이 간절히 원해도 담임목사를 포함한 지도층이 무관심하거나 고의적으로 왜곡하려고 하면 감사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다) 담임목사와는 독립적이어야 한다. 담임목사의 전적인 지지가 필요함과 동시에 담임목사와는 독립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즉 감사부서가 담임목사의 통제아래 있어서 사사건건 간섭을 받게 되면 감사는 결코 객관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라) 형식적이 아니라 실질적인 감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일 년에 단 한차례, 형식적으로 대강 훑어보는 감사는 지양해야 하며, 단순히 영수증 확인에서 머물면 안 되고 업무감사 및 제도개선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이며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마) 감사결과는 전 교인에게 정직하게 보고해야 한다. 보고를 할 때에도 어떤 감사절차에 의해서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시정이 필요한 부분은 어떻게 처리 되었는지도 상세하게 보고 하여야 한다.

 

(바) 사전 예방이 최우선이다. 교회의 감사는 사후보다는 사전 예방이 우선이다. 사후에 교회에 문제점이 발견되었을 때는 교회 전체가 시험에 들고 당사자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된다. 제도를 확립하고 위험요인을 미리 파악하여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사) 기준에서 벗어난 사항에 대해서는 시정을 요구하고 책임을 분명히 하며, 그 결과를 당회원 혹은 전 교인에게 보고해야 한다. 가끔 감사는 열심히 수행했으나 이의 시정이 올바로 이루어지지 않아 감사 자체가 유명무실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이런 사실이 교인들에게 알려지면 감사기능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IV. 산적한 문제들

 

위에서 언급한 투명성, 진실성, 회계감사 등과 관련된 문제점 이외에도 다음에 열거하는 항목들은 문제가 될 소지가 높은 항목들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은 어떤 이유인가? 결국은 의지의 결여다. 물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미루고 있을 수 있겠으나 시정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못할 이유도 없다. 교회 성장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리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거시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재정문제만큼 교회의 성장과 관련이 있는 사역도 드물다. 전도를 하고자 해도, 교육을 하고자 해도, 구제를 하고자 해도 재정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불가능하며, 세상을 향해 빛과 소금이 되려면 재정의 투명성과 진실성이 결여한 상태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 직면한 문제점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가) 통일된 회계 규정이 없다.

심각한 문제점이다. 교단은 물론이고 한국교회 전체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교회마다 각각 다른 회계기준을 적용하며 그 기준조차 불분명하여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회계처리가 달라진다. 이처럼 통일된 기준이 없다보니 감사를 수행하기도 어려워진다. 감사란 기본적으로 규정대로 했는지를 검토하는 기능이기 때문이다.

 

(나) 예산은 모든 문제점의 집합체다.

교회 예산은 형식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체 공동의회를 통과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예산을 작성하는 교회도 전년대비 일정비율의 증가 혹은 감액으로 수립할 뿐 왜 그 예산이 적정한지에 대한 근거가 없다. 해당 사역부서와의 소통이 없어서 전 교회 차원에서의 협조를 기대하기가 어렵고 그렇다보니 예산과 결산의 차이에 대해서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며 교인들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예산의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인 통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예산제도는 유명무실한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다) 교회도 납세의 의무가 있다.

교회재정과 관련하여 통상적인 오해는 교회는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조직으로 생각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나 교회 역시 납세의 의무가 있다. 부가가치세도 납부해야 하며 교회에서 수익사업을 하였다면 이에 해당한 소득세를 내야한다. 오랫동안 논란이 되고 있는 목회자의 납세 문제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고려해야 한다. 교인들이 교회에 내는 헌금은 증여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는 비과세 대상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사례 혹은 월급을 받는 사람은 소득이 발생한 것이므로 소득세 납부의 대상이다. 교회와 목회자는 서로 다른 주체이며 이에 따라 납세의 의무도 달라진다.

 

(라) 수익사업을 하는 교회는?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일부 교회들이 수익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여기에는 서점의 운영, 카페운영, 기도원 운영, 유치원 운영 등 다양하다. 대부분 교인의 신앙생활을 돕고, 지역사회의 복지를 위한 선한 목적에서 설립되고 운영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설의 운영의 취지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단순히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돕기 위한 보조 수단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수익을 창출하여 교회의 재정을 돕겠다는 취지는 많은 문제점을 야기한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성도들의 헌금으로 운영되는 것이 원칙이다. 만일 유휴시설을 이용하여 수익을 창출할 목적으로 운영한다면 정식으로 영리법인으로 등록을 한 후 법인세를 납부해야 한다.

 

(마) 교회의 재산이 담임목사 혹은 재정장로 명의로 등기되어 있다면?

각 교회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 재산과 개인 재산은 엄격하게 분리되어야 한다. 예기치 않게 교회가 분쟁에 휘말리게 되면 누구의 소유로 교회 재산이 등기되었느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재산은 교회의 이름으로 등기되어야 하며, 법인격이 없다 하여도 각 구청에서 발급하는 부동산등기용 등록번호로 등록이 가능하다. 담임목사의 명의로 되어 있을 때는 해당 재산의 양도시 양도소득세, 담임목사의 변경에 따른 각종 행정상의 비효율성이 문제가 된다.

 

(바) 기타 문제점

허술한 영수증 관리도 개선되어야 한다. 영수증이 첨부되지 않은 경우, 정식 세금 계산서 대신 간이 세금 계산서로 대치되어 있는 경우, 잘못된 영수증을 첨부한 경우 등 많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회계장부에서 누락된 회계거래 역시 문제가 된다. 각 사역별로 자체 회비를 징수하여 사용하는 경우, 교회 전체 장부에서는 누락되어 통제 상의 취약점이 노출되며 재정적인 사고가 발생할 경우 등 교회 전체에 누를 끼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회 헌금의 종류도 지금보다는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현행 한국교회의 헌금 종류는 너무 복잡하며 목적헌금과 일반헌금을 구분하여 관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혼합해서 사용하고 있다.

 

 

V.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행 2:37)

 

초대교회 성도들이 베드로 사도에게 묻던 질문이다. 죄를 지은 자들이 죽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아무 죄도 없는 예수님을 대신 못 박음에 마음이 찔렸던 초대 교회의 신도들이 던진 질문이다. 사도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으라...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 2: 38).

 

최근 들어 급격하게 쇠퇴하여 가는 교세에 대해서 무엇이라 변명할 수 있겠는가? 특히 30대 이하 젊은이들이 또래 인구의 10%로도 훨씬 못 미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0년 후, 20년 후의 우리나라 기독교의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가? 한국교회가 쇠락한 유럽교회의 전철을 밟는 것은 순식간이다. 교회의 리더들이 신행일치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고, 복음의 능력이 교회에서부터 회복되어야 할 것이며, 온 교회가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 주님은 언제 이 나라로부터 촛불을 다른 곳으로 옮기실지 모른다.

 

날로 부흥하는 교회도 예외일 수 없으며, 대형 교회라 해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작은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교인 수가 줄어드는 교회도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다.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자비를 구해야 한다. 진정으로 회개해야 한다. 우리의 손익계산서를 들고 주 앞에 투명하게 보고 드려야 한다. 그리하여 지혜를 후히 주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간구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이라도 이 땅의 온 교회와 그 리더들이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공감하고 방법을 찾아 나서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안타까운 점은 아직도 이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불미스러운 재정문제로 교회가 분열되고 세상 법정에서 모든 치부를 드러내는 형제 교회를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내 문제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를 질고에서 건지실 분은 오직 우리 주 한 분뿐이다.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두 손 들고 나아가 하나님께 조용히 엎드린다. 주여, 말씀 하옵소서, 우리가 듣겠나이다.

 


 

황호찬 교수(세종대학교 경영대학원)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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