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스크랩] 설교자의담력

수호천사1 2015. 12. 29. 20:23

 설교자의담력

Ⅰ.설교자와 담력
설교자의 설교의 능력은 그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에 있다.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를 통하여 청중들에게 감화와 감동을 주어 은혜와 축복과 삶에 변화를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감과 마음 한가운데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으로 설교 준비를 해야 한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힘 있게 증거 하는 것을 우리는 담력이라고 한다. 담력은 성령이 주시는 새 힘이다. 성령의 능력이 설교자에게 나타나는 것은 담력 것은 담력이요 청중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설교자의 용기라 할 수 있다.


1.담력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서 오는 힘이다.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


2.담력은 예수님을 믿는데서 오는 힘이다.

이들의 담력의 힘이 어디에서 왔을까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왔던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성령이 충만할 때에 담력의 설교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3.담력은 기도에서 오는 힘이다.

이와 같이 담력이 어디에서 왔을까 이는 두말 할 나위도 없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데서 오는 힘이다.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였으며 그들은 위대하고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이처럼 설교자의 담력은 믿음과 기도에서 오는 힘이다.

 
4.담력은 순교의 믿음에서 오는 힘이다.

설교자는 자신을 의지하거나 욕심과 탐욕이 있게 되면 나약해지고 비굴해진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주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순교자적인 믿음으로 살면 두려움이나 무서울 것이 없다.

5.담력은 준비하므로 오는 힘이다.

그렇다. 설교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생활과 모든 일에 항상 준비하는 생활이 필요하다. 기도와 말씀으로 정성을 다하여 철저하게 준비되었을 때 담대한 설교자가 될 수 있다.

6.담력은 세례 요한처럼 증거함에 있다.

세례 요한은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취한 자라고 헤롯 갈릴리 분봉왕의 잘못을 지적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세례 요한은 목베임을 당하여 순교했다. 설교자의 담력은 세례 요한처럼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함에 있다.


2.두뇌를 설교적으로 개발하라.

설교자도 진정한 설교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살면서 생각하고 생활했던 것이 두뇌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없애 버려야 한다. 두뇌에 그대로 남아 있는 세상의 모든 찌꺼기를 뽑아내고 지워버리고 하나님 말씀으로 채워야 한다. 마음과 생각과 정신과 사상과 생활과 언어와 행동을 지배하고 있던 사단의 세력과 불필요한 요소들을 설교자 자신들 속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몰아내 버리고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야 한다.


1>두뇌를 논리적으로 개발하라.

논리적이란 논리학적 지식에 알맞은 입장 추리의 형식에 적합한 상태라고 국어사전에서 말하고 있다. 논리학이란 사유의 형식과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 여기서 사유란 경험으로 얻은 사실을 비교하여 그 관계를 정하고 이것으로 아직 경험하지 않는 부분에 미치려는 정신작용 개념, 추리, 판단을 뜻한다. 개념이란 어떤 사물, 사상, 대상을 마음에 그려 생각에 대한 표상이나 지식이나 또는 관념,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혀 깊이 생각하는 일, 추리는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알지 못하는 사실을 미루어 생각하다는 것이고 판단을 대상의 여하를 의식하여 결정하는 일, 생각하여 정하는 일을 말한다. 기독교는 타종교와는 달리 타력의 종교이다. 기독교는 자력이 아니라 타력 즉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부르시고 택하여 주셨다. 사도행전2장 38절과 에베소서2장1절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하셨던 것처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회개를 통하여 영혼이 살고 세상의 사람이 변하여 하나님의 사람, 예수님의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하나님 말씀을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논리적 사유 개념, 추리, 판단적으로 두뇌를 개발해야 한다.


2>두뇌를 문장력으로 개발하라.

설교자는 우레 소리와 같고 영혼에 불을 붙여 주는 생동감이 넘치는 능력의 설교를 위해서는 기행문과 수필집 그리고 기하학을 많이 읽는 것이 좋다. 책을 읽되 될 수 있으면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이 좋다. 소리를 내어 읽으면 성대의 고저를 조절하는 훈련과 발음과 어음을 정확하고 바르게 구사할 수 있는 연습을 설교자 자신 스스로 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3>두뇌를 문학적으로 개발하라.

그러므로 설교자는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각가지의 두뇌를 문학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설교자는 이같은 책을 읽으므로서 지식의 폭을 넓히고 두뇌를 문학적으로 개발하여 설교의 내용을 윤택하게 하고 기름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3.혀와 입술을 설교적으로 개발하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전문성과 자신의 직업성으로 혀와 입술이 굳어져 있다. 여기레서 굳어져 있다는 말은 정치인은 정치적인 말로 행정가는 행정적인 말로 법조인은 법의 말로 학자는 학문으로 사업사는 사업적인 말로 농부는 농사짓는 말로 전문적인 이야기를 잘한다는 이야기다.

 
1>같은 말을 반복해서 연습하라.

연습과 훈련을 계속하다보면 완숙한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설교자는 굳어져 있는 혀와 입술을 풀어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2>혀와 입술을 표현력으로 개발하라.
표현력이란 들어서 나타냄이란 뜻이다. 즉 내면적, 정신적, 주체적인 것의 외면적 감상적인 것이 형상화된 것, 모임, 언어, 예술작품 따위를 말하고 있다. 같은 말인데 표현력이 좋은 말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위력과 능력이 있게 된다. 같은 하나님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있다. 즉 표현력이 복음의 승패가 되기 때문이다.

 
3>혀와 입술을 발표력으로 개발하라.


내성적인 성격으로 대중 앞에 서기를 두려워한다면 하루 속히 담대함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사석에서나 공석에서나 대중 앞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갱각과 사상과 뜻과 감정을 문장력으로 문학적으로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발표력을 개발해야 한다.

 
Ⅱ.기독교 교육

1.문제제기

이미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는 눈은 극도로 타락함으로 전적으로 무능력해졌기 때문에 일반 계시만으로는 충분치 못하고 구속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기독교 교육이 가능할 뿐이다. 기독교 교육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가장 필수적인 부분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인 의미에서 교육은 기독교 교육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은 모든 진리와 실제의 근원이기 때문에 교육은 불가피하게 기독교적이어야 한다.

 
2.교육의 개념

교육이란 영어로 education인데 원래 어원은 라틴어 educo인데 이것은 e와 duco의 결합어로서 이끌어낸다라는 뜻이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e(out)+duco(to draw)이다. 라틴어의 educare:eductus sum에서 유래되었다. educare의 원뜻은 이끌어 내다 끄집어 낸다란 뜻이며 교육적 해석으로는 사람이 선천적으로 가진 가능성 능력을 이끌어 내며 잘 키워준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나타낸다란 영어의 expression!!!!!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라틴어의 educare의 의미는 educatus sum은 영어의 to nourish의 해당하는 낱말인데 우리말로는 훈육하다 기른다라는 뜻이다. 교육은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경험자와 미경험자, 성숙자와 미성숙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으로서 교육을 채워주는 infilling과정과 이끌어 내는 drawing out과정으로서 피교육자의 선천적 재질과 흥미를 재발견하여 창조적, 독자적 생활 방식을 수립하는 것이다. 교육이 촉진되는 자리를 교육의 마당이라고 한다. 교육의 장은 넓은 의미의 장과 좁은 의미의 장이 있다. 넓은 의미에서의 교육의 장을 비형식교육이라 하고 좁은 의미에서의 교육의 장을 형식교육이라고 부른다. 형식교육을 학교교육이라 하며 비형식교육을 가정교육과 사회교육이라 한다. 기독교 교육은 형식교육과 비형식 교육을 모두 포괄하는 교육이다. 좁은 의미의 교육과 널은 의미의 교육으로 나누어 정의를 하다. 좁은 의미의 교육은 교사가 학생에게 조직적, 체계적, 계속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협의의 교육은 문화전달의 기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학교교육 즉 형식교육이란 문화 전달의 기능인 것이다.


3. 교육의 목적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목표와 방향이 설정되어야 한다. 성공적인 교육은 반드시 목표가 설정되어야 한다. 목표가 부재하다면 그 교육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반드시 예수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한 인격이시며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신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구속 사역 안에서 믿음을 통하여 구속 받은 모든 사람 안에 있는 생명의 원천이시기 때문이다. 진정한 기독교 교육은 인간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교육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고 하나님의 지도 아래서 수행되어지는 교육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은 예수 그리스도가 기본 교육 목정이 되는 것이 원칙이라 하겠다. 이 교육의 목적은 첫째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고 둘째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전하게 하여 모든 선한 사업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하게 하는 것이다. 셋째 진리의 말씀을 옮게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이군으로 인정된 자로 하나님께 드리기에 힘쓰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기독교 교육의 진정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초대교회의 교회기능 4개조를 충분히 인식해야 될 것이다. 초대교회의 기능이란 예배, 전도, 교육, 성도의 친교 등이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의 전통과 실제적인 면은 교육에 있었던 것이다.

4. 신념과 신념체계

신념에는 당양한 수준, 다양한 형태가 있다. 그것에 대한 세 가지 접근 방법을 살펴보면 도움이 되는 통찰력을 얻게 된다. 밀톤 로키취는 인간의 세 가지 영역 그 안에 신념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각기 중앙부, 중간부, 주변부로 신념의 형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불합리한 신념들은 취향에 관련된 것으로 예를 들자면 전혀 신념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 발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원시적 신념들 바꿔 말해 로키취가 때때로 핵심 신념들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필자는 기독교적 문장으로 성경적 중심신념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들은 변화에 가장 완강히 저항하며 신념체계에 대해 일관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신념은 내적 실재를 개념적 차원 위에 재생시키는 것이다. 신념들은 스스로를 과시하며, 우리에게 접근 가능케 되면서 우리의 내부에서 일어난 것에 대해 지시해 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그것들은 에너지를 생산하고 인도하는 샘이라기보다는 지시자의 것이다. 신념은 그러한 과정에서 필수적인 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지향성을 세련되게 하고 시험하고 공고히 하고 정착시키고 도약시키는 데 필수적인 한 요소인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일단 그런 신념들이 만들어지면 이번에는 거꾸로 그것들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Ⅲ.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충만의 관계연구


1.성령충만=성령의 지배=하나님의 나라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누가는 오순절에 성령이 예루살렘 교회 위에 강림하셨을 때의 상황을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라고 표현하였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란? 성도가 자기 의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말하게 만들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이 그의 혀를 지배하여 다른 방언을 할 수 있도록 사역하였다는 뜻이 된다. 이는 성도의 성령충만은 성령의 사역을 위한 준비과정으로써 성령의 지배임을 알게 하는 부분이다. 성령의 지배는 하나님의 지배로서 하나님나라의 지상적 도래인 것이다. 그들은 갈릴리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바대인, 메대인, 엘림인과 메소보다미아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는 사람의 혀를 빌려서 소리를 내신 성령 자신의 사역인 것이다. 성령의 지배에 순응한 것이였다. 성령이 사역하실 때는 그냥 무형적 사역이 아니라 육체를 지배하심으로 사역하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육체에게 부어 주신다라고 한 것이였다. 전도와 선포는 성령에 의해 지배받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2.성령의 사역=성령 충만한 사람을 통하여

스데반 입자에서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성령의 사역의 도구가 되었다는 뜻이다. 성령지배는 사역자에게 지혜의 능력을 주신다. 교회의 분란과 다툼을 지혜롭게 감당하며 해결시킨다. 그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믿음이 충만케 되며 나아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함으로써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기까지 하였다. 성령의 역사 곧 일하심은 성도들에게 다양한 능력과 은사들을 공급하심으로써 교회를 세워가며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것이다. 성령 충만을 받으라. 바울은 에베소에서 처음으로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형으로 표시하였다. 네 심령이 성령으로만 채워져 있으라 인데 이것이 현재 수동태 명령으로 기록됨으로 계속성을 강조한 성령의 지배를 받으라로 이해되는 것이다. 술 취하지 말라는 술취함 곧 세상 염려에 취해 있으면 성령의 지배를 받을 수 없다는 경구이기도 하지만 성령충만을 유지하려면 성령의 지배를 지속적으로 받으려면 술의 지배, 세상염려의 지배아래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결국 성령충만의 그릇으로 준비되어져 있기 위해 술 취하지 말라는 것으로써 성령이 사역할 수 있도록 예비하라는 것이다. 전적 담력, 권능의 치유, 큰 소리 복음 선포, 권능안수 표적과 기사의 체험...성령의 충만이 먼저 이루어지게 된 것이며 성령의 강한 지배와 사역에 강제됨으로써 강한 담력, 큰 소리 복음 선포 그리고 기적적 병치유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따라서 사명자는 성령충만 곧 성령의 지배 아래 머물기를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한다. 성령세례와 내주만 인식하고 안주해서는 큰 사명자가 될 수 없다. 성령께서 나를 마음껏 사용케 해 드리려면 성령충만을 사모해야 한다. 베드로가 제사장의 박해와 위협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변호했던 것은 성령충만때문이였다. 성령이 그를 전적으로 지배, 인도, 그리고 통치함으로 베드로의 심령, 생각, 그리고 혀를 지배 사역하셨던 것이다. 성령 충만을 입어 성령의 말하심대로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구브로 전도에 나섰으며 대적자 엘루마를 성령의 능력있는 소리로 저주하여 소경이 되게 하였다. 성령의 지배, 성령의 사역, 성령의 통치, 성령의 충만 등은 동일한 언어군이며 하나님의 통치, 지배 그리고 지상에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Ⅳ청지기의 생활 (목회자의 직무)


서론


성경에 기록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맡겨진 직분을 충실하게 수행한 분들로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직분과 직무를 수행토록 하였으나 그것이 바로 청지기의 생활이다.


제 1장 자신의 인격 관리를 맡은 청지기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인격 관리를 맡기셨다.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섭리는 피조된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인격의 훈련을 주셨다. 예컨대 빈 그릇으로 만들어진 그것에 무엇을 담게 했는데 그 내용물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 그릇의 성격이 달라짐과 같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한 인격을 갖추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의 온전한 인격이란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회복을 말하는 것으로

첫째, 하나님의 창조의 힘을 회복한 사람이다. 청지기의 생활은 철저히 자신의 인격을 관리해 나감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타인에게도 이 일을 수행하는 자이다.

둘째, 선한 양심(이성과 신앙적 도덕성)의 회복이다. 양심의 선악의 판단 기준은 철저히 성경이어야 하고 성경에의 순종은 곧 신앙이다. 신앙 양심은 곧 하나님과 관계의 회복과 이웃과의 관계의 회복으로 나타남으로 말과 행실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의 본이 되는 일이다. 모든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으로 하나님과의 새로운 연합 새로운 관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제 2장 재산 관리를 맡은 청지기

모든 물질 세계는 하나님의 지으신 것들이기에 그 모든 것의 소유주는 철저히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물질의 모든 것 중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으로 돌리고 나머지는 잘 관리토록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과 우리의 것을 잘 구별하여 사는 것이 믿음 안에서 갖는 지혜요 신앙이다. 성경에 나타난 십일조는 세가지 유형을 말하고 있는데 생명이 십일조, 소득의 십일조, 시간의 십일조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처럼 청지기는 재산관리자로서 소유주를 분명히 깨닫고 성도들의 본이 되는 자로서의 하나님의 재산 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내가 사는 동안 하나님의 관리를 맡기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 즉 철저한 의무 그 결과 하나님은 백배로 갚아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제 3장 양의 관리를 맡은 청지기

하나님의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데 성도들이 다 훌륭한 교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관리하도록 주님께서는 이 청지기직을 맡기셨다. 1>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고 먹이라고 2>이 양을 치는 일이 주님의 남은 고난이며 3>그러기에 우리는 주님의 고난을 덜어 드리는 의미에서도 양들을 잘 관리해야 한다. 이러한 일을 해야 될 청지기가 갖출 자세는 한마디로 사랑이다.


1>예수님의 계명 그것은 곧 사랑이다. 2> 이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고 모두를 잘 감당할 사랑의 관리자다 우리의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리려 하고 목숨을 주는 것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제 4장 땅끝까지 복음 전파를 맡은 청지기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명령처럼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직부를 맡긴 이유는 1>심판의 날이 있기 때문이며 2>한 사람이라도 더 권케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3>천국 잔치 자리가 비어 있기 때문이며 4>찾으시는 열정은 한 마리 양을 찾는 심정이다.

  

Ⅴ.성령론



성령님과 동행하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한 시대와 역사를 이끌었던 모든 영적 거성들은 기도에 생명을 건 자들입니다. 진정한 영적 세계를 아는 사람은 기도에 목숨을 바친 자입니다. 전심으로 기도할 줄 모르는 이는 절대 역사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기도의 세계를 알 때부터 진정한 사명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 준비에 철저한 기초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 주의 일을 한다는 것은 어불 성설입니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3위격인 하나님이시다. 인자는 아버지께서 난 자이지만 성령은 천부에게서 보내심을 받은자이다. 성령은 삼위일체 신이므로 천부와 인자와 동질이신 것이다. 따라서 창조에 있어서도 천부와 인자가 일체 역사하신다. 성령은 살아 계신 하나님 자신인고로 신으로서의 인격을 가지시고 따라서 이성과 애정과 의지를 갖고 있으시고 때로는 슬퍼하시며 때로는 애통하시며 때로는 탄식하시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스스로를 감추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분이시며 인간의 더러움을 태워버리는 정결의 주이시다. 장차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살아남은 성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성령의 명칭은 그리스도의 영 예언의 영 보혜사 살리는 영 성결의 영 생명의 성령 아들의 영 아버지의 성령 영광의 영 영원하신 성령 진리의 영 하나님의 신 등이 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이시며 창조의 사역과 주권을 갖고 계시며 거듭나게 하신다. 성령의 완전성에 있어서는 영원하시고 전능하시고 전지하시며 편재하신다.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으로서 감성과 의지 와 지성을 갖고 계신다. 성령의 활동으로는 가르치시고 계시하시며 말씀하시고 명령하시며 사람들과 함께 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시고 말씀을 증거하시며 때로는 우리의 잘못을 책망하신다. 성령의 사역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뉘는데 첫째, 세상을 위한 사역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죄를 책망하시며 둘째, 그리스도를 위한 사역으로서 그리스도를 이끄시고 기적을 행케 하시고 부활의 역사를 이루시고 세례를 받게 하시고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고 충만케 하시고 잉태케 하시고 하나님께 드리게 하신다. 셋째, 성경을 위한 사역으로써 감동하심으로 성경을 기록케 라고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넷째, 성도를 위한 사역으로서 성도들을 가르치시고 거듭나게 하시며 거룩하게 하시고 권능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며 분별력을 주시고 성도 안에 머물러 계시며 세례를 주시고 열매를 맺게 해주시고 위로하시고 은사를 주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신다. 다섯째, 교회를 위한 사역으로서 거룩하게 하시고 선교사를 파송하고 성령이 충만케 하고 전도를 명하신다.





< 성령님의 사역, 임재>



1.믿는 성도에 대핸 성령님의 사역

①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심

②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시키며 거듭나게 함

③말씀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며 생각나게 함

④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며 변호하심

⑤성도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

⑥장래 일을 알게 하심

⑦하나님의 비밀을 알려주심

⑧상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심

⑨하나님 자녀임을 증거하고 힘과 능력을 주심

⑩성도들을 인도하며 위로하며 도와 주신다.



2.우주 만물에 대한 성령님의 사역

①혼돈된 땅을 정돈하심 잘소 조성

②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실 때 동사하심

③만물을 단장, 지면을 새롭게 하심



3.인류에 대한 성령님의 사역

①죄에 대해 책망하심 예수님 안 믿음에 대해

②의에 대하여 가르쳐 주심 에수님 믿게 하심

③심판에 대한 선언하심 신, 불신 판결

④그리스도에 대한 이치를 증거하심

  

4.하나님의 선물

①사람-자연

②선민-율법

③신자-예수님

④성도-성령



5.성령님을 받아야 할 이유

①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

②속 사람이 강건해지기 위하여

③전도할 힘을 얻기 위하여

④맡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⑤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기 위하여

⑥성령의 열매를 얻기 위하여

⑦신령한 일을 분별하기 위하여



6.성령님 임재의 방법



①11제자와 120명 신도들에게 임재

⑴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⑵마음을 같이 함

⑶전혀 기도에 힘쓸 때 임재



②어찌할꼬 회개하고 물세례 받을 때 임재

⑴너희가 회개하고

⑵각각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받고

⑶죄사람을 얻으므로 성령을 선물로 받음

③하나님 앞에 모여 예수님 증거함을 들을 때 임재

⑴하나님을 경외하고 항상 기도하며

⑵주님의 사자를 청하여 복음을 들으며

⑶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들을 때



④예수님 증거함을 맡은 자에게 안수하므로 임재

⑴예수님 그리스도를 믿고

⑵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며(회개)

⑶사도 바울이 안수하매 성령이 임재





<성령세례와 충만>

1.성령의 세례

①성령으로 태어난다

②성령을 받음

③성령으로 인쳐 졌음

④성령께서 내주하심

⑤세례받아 한 몸이 됨



2.성령받은 증거

①자신이 죄인임으로 멸망받게 될 줄 깨닫는다.

②예수님을 속죄의 구주로 믿게 된다.

③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다.

④성경에 기록된 진리를 깨닫게 된다.

⑤마음 가운데 평안과 감사함과 기쁨이 넘친다.

⑥주시는 은사를 받는다.

⑦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는다.



3.성령세례의 표적

①나쁜 습관이 고쳐진다.

②자기 제어가 가능하다.

③창조적 사고가 가능하다.

④영적인 가치를 알게 된다.

⑤평화주의자가 된다.

⑥문제에 도망치던 자가 도전하게 된다.

⑦영적 설득력이 생긴다.

⑧반대의견에 대한 수용력이 생긴다.

⑨영적 친구를 얻게 된다.

⑩하나님의 칭찬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게 된다.

⑪사람을 평안하게 한다.

⑫이웃에 진정한 관심을 갖게 된다.

⑬모든 재능을 올바로 쓰게 된다.

⑭강력한 끈기가 생긴다.

⑮마음에 원한을 품지 않는다.

⑯낙관주의가 된다.

⑰희생할 줄 알게 된다.



4.성령님이 일하시는 3대 일터

①세상 속에서

②성도 안에서

③교회 안에서



5.성령님이 주시는 능력

①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 능력

②그리스도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능력

③그리스도를 위해 증거할 수 있는 능력



6.성령충만을 받는 길

①회개 ②기도 ③사모 ④말씀 ⑤안수 ⑥순종



7.성령충만한 사람이 되려면

①사랑에 뛰어나라 ②봉사에 투신하라 ③기도에 전념하라 ④공부에 열심을 내라



8.성령충만의 증거

①방언을 하게 됨 ②예언을 하게 됨

③힘있게 복음을 전하게 됨 ④예수님에 대하여 가르치게 됨

⑤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됨 ⑥심령을 감찰하게 됨

⑦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름 ⑧기쁨이 충만하게 됨 ⑨이적과 기사가 나타남



9.성령님의 주관하심

①생각 ②보는 것 ③듣는 것 ④말하는 것 ⑤행하는 것 ⑥가는 길



10. 성령의 은사란 무엇인가?

①은사 은혜의 선물 ②직임 직책 ③역사 힘의 작용 ④성령의 나타남 현상





<성령의 은사와 열매>



1.성령 충만자의 은사

①계시의 은사 1>지혜의 말씀 2>지식의 말씀 3>영분별의 은사

②발성의 은사 1>방언의 은사 2>방언통역의 역사 3>예언의 은사

③권능의 은사 1>믿음의 은사 2>병고치는 은사 3>능력 행하는 은사

2.성령의 직임적인 은사

①엡4:11 1>사도 2>선지자 3>복음 전하는 자 4>복사 5>교사

②롬12:6~8 1>섬기는 일 2>가르치는 자 3>권위하는 자 4>구제하는 자 5>다스리는 자 6>긍휼을 베푸는 자



3.성령충만자의 열매 9가지

①사랑의 열매 ②희락의 열매 ③화평의 열매 ④인내의 열매 ⑤자비의 열매 ⑥양선의 열매 ⑦충성의 열매 ⑧온유의 열매 ⑨절제의 열매



4.성령충만 생활의 축복

①현세 축복 1>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사랑입음

2>감추인 천국비밀 알게 됨

3>생명을 보장함

②심령축복 1>심령에 평화가 넘침

2>심령에 기쁨이 넘침

3>그리스도의 평강이 넘침

③내세 축복 1>예수님 재림 때 생명의 부활 얻음

2>공력대로 상을 받음

3>영원한 안식의 축복

5.성령충만한 상태의 점검 방법

①평안 ②밝고 기쁜 마음 ③감사하는 마음 ④기도하고 싶은 마음

⑤주님을 더욱 사랑 ⑥이웃사랑 ⑦주님을 위한 헌신의 열심히 더하는 상태





<성령소명>

1.성령소멸의 뜻

①죽이다. ②소모하다 탕진하다 ③다타버리다 ④삼켜버리다 소진하다 ⑤꺼 버리다 억눌러버리다. 없애다.



2.성령의 영감을 소멸하게 되는 원인

①꿈과 환상을 잃어버리면 ②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③우상숭배를 하면 ④음란으로 성전된 몸을 더럽히면 ⑤세속적인 것을 탐닉하면 ⑥기도의 말씀을 등한히 할 때



3.성령님께 저항하는 6가지 죄

①훼방 ②거부 ③모독 ④조롱 ⑤위증 ⑥근심

  

Ⅵ.시편 22편에 나타난 메시야



이 시편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승리적인 위업을 예언한 전형적인 메시야의 시로서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시편 중의 하나이며 그 주제는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예언한 심오한 시이다. 이러한 비탄의 시에서 다윗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것과 같으나 끝까지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에 순응하며 주의 인도와 치리에 복종할 때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으며 예수보다 대략 일 천년 전 인물인 다윗이 이 같은 예언의 시를 쓰고 또 그것이 예수께 성취된 것을 볼 때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사실임을 지금도 강력히 반증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 달려 게시던 정오 열두 시부터 오후 세시 경으로 추정되는 제 구시 사이에 되어진 사선으로 주님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인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를 외치셨던 것이다. 사람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이 말은 구역의 말씀을 주님께서 인용하고 계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고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언어들은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였기 때문에 히브리어로 된 말씀을 인용하여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라고 부르짖을 때 사람들은 그가 엘리야를 부르고 있는가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짖음은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구약의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한 부르짖음이었으며 자기 백성을 행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의 완성으로서 죽음이란 절박한 순간 속에서 대속의 위업을 이루기 위한 예수님의 숭고한 사랑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하나님의 계획을 위한 버리심

메시야 도래를 대망하는 구약의 장구한 역사를 통해 장차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말씀하실 내용들을 읽을 수 있으며 우리는 이를 통해 중요한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첫째로 주님의 절규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 계획된 사실이라는 것이며 둘째로 주님의 외침은 성경의 예언을 완성하시는 외침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고통의 절규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는 영영하신 말씀의 예언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외침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거룩한 존체되시는 예수님을 버리셔야만 했는가? 첫째로 예수님이 죄인으로 간주되셨기 때문이며 둘째는 세례 요한의 지적처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였듯이 세상 백성의 모든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었기 때문이며 셋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구속을 위해 예수님을 죄인처럼 죽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버리심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였듯이 십자가에 달리심은 죄인된 우리를 위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었으며 한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하였듯이 주님의 죽으심은 많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죽으심이었는데 이를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상의 버리심이 되었으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였듯이 하나님은 타락한 자기 백성의 영생을 위해 독생하신 예수님을 내어 주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며 은혜였으며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한 위대한 계획이었다. 예수님의 버림에 대한 의문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창조 계획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죄인의 대속물이 되신 메시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는 아들로서의 부르짖음이 아닌 죄를 범한 이방인을 대신하는 부르짖음 때문에 나의 하나님이라 부른 것으로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한 권리조차도 없는 모든 인간의 죄로 인해 정죄받은 인간의 모습이 표출되어져야 했기 때문에 이를 죄인의 구원을 위해 부르짖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음을 생각할 수 있다. 예수님게서 셋상 죄인들을 위한 죄인으로서의 대속자되신 속죄 제물이 되셔서 예수님의 초림의 목적을 완성하시므로 이제는 더 이상의 죄인의 모습이 필요 없기 때문일 것이다.

3>고통과 암흑을 이기신 메시야

낮과 밤이란 에수님이 십자가 위에 계시던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낮이란 광명한 세 시간이었으나 암흑이 짙은 세 시간이었으며 죄인의 몸으로 하나님의 버림을 당한 때를 낮과 밤의 시간으로 표현하였는데 이 시간은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신 거룩한 시간이었으며 만 백성의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시간이었으며 하나님의 원대한 경륜을 이루는 성취의 시간이었다.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였는데 이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의 대한 모욕과 멸시와 조롱으로 마땅히 죄인인 우리가 당했어야 할 무서운 진노를 주님이 담당하심으로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시는 하나님이 위대한 은혜와 사랑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4>멸시 당하실 메사야

다윗은 시편을 통해 자기가 당한 극한 환난과 고통을 피력하며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하였는데 이는 예수님이 자기를 대항하기 위해 합세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노도 같은 위협으로 십자가에 매달리기 원하는 무지한 민중들의 득세를 나타내는 모형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악한 무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위한 사전 제시로서 유대인들과 합세하여 둘러 있는 이방인들을 보고 말씀하신 것으로 개들이 나를 둘러쌌다는 부정한 이방인을 뜻하는 것이며 수족이 찔렀다는 것은 전적으로 다윗 시대에 따온 표현으로 근동지방의 특별한 야생 개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면 그들의 공격 대상을 포착하여 닫힌 원을 형성하고 그 사람 가까이 점점 다가가서 물어 땅을 팽개치고 손발의 살을 찢기 위해 손과 발을 공격했다. 다윗은 자기위 원수들을 보되 자기 생명을 노리며 자기 손발을 할퀴는 그런 개들에게 비유하고 있는데 그의 원수는 다윗을 도와준 놉 땅의 제사장 팔십 오인을 죽인 에돔 사람 도엑을 생각할 수 있으며 다윗의 환난 날에 돌을 던지며 그를 저주했던 시므이의 행동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의 대적자로부터 핍박당하는 멸시와 고난의 모습을 통해 유대 민중과 로마 병정에 둘러싸여 고난과 멸시를 당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 모형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5>메시야 예언 시로서의 증거

그들이 메시야적 해석을 따를 경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와 아주 일치하므로 그것으로 인하여 그들이 당황하게 되기 때문에 이 시편을 다른 방식으로 해명하려 했다는 것이다. 또한 신약의 증거들이 메시야적 해석임을 증거하고 있는데 복음서에 나타난 메시야의 주된 특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며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 복음에는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조롱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하였는데 마태 복음에서는 그들이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이 뱉어낸 많은 말들 가운데 마태가 유독 이 말들을 선택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은 예언과 성취가 그렇게 잘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함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하였는데 이 말씀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뇌와 고통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된 것으로 극심한 갈증이 있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라는 표현은 이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라는 요한의 명확한 언급으로 정확하게 성취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언어학적으로 충분한 논증을 통해서 입증되고 있는 것은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라는 어구인데 이 말씀은 메시야이외의 다른 인물을 가리킬 수 없다는 것인데 이를 게제니우스는 “사람들이 원수의 몸을 찌르는 예는 있어Td나 그 수족을 찌르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이 어구는 오로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손과 발에 못이 박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모형이라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Ⅶ.고난의 성서적 의미 (용기를 중심으로)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참된 인생의 길인지 보여주시려고 행복과 qf행의 모델로서 두 사람을 선택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솔로몬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족장이었던 욥이다. 하나님은 욥이 참아낼 수 없을 만한 비참한 고난 가운데 두시고 침묵하신 반면 솔로몬에게는 부귀영화 권세 즉 한 인간으로써 누릴 수 있는 온갖 행복을 다 부여하셨다. 이제까지는 그의 믿음이 누구에겐가 들은 것에 기초를 두었었지만 고난을 겪은 후에는 그의 믿음이 하나님을 직접 만나뵌 경험에 기초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스스로 의로운 사람인 줄 알았던 그가 자신을 혐오하고 죄 가운데에서 회개하였던 것이다.



1>시련이 필요 없을 만큼 의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욥이 완전하고 의로운 사람이었다는 것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악을 멀리했던 사람이란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의 믿음, 그의 의, 그의 행복 등은 고난을 통해 여과되지 못한 채 이루어진 불완전한 것이었다. 고난은 불 속에서 금을 정련하는 도가니와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욥의 의는 고난을 통해 정제되어야만 했다, 고난을 통과해보지 못한 믿음은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무기력한 군인과도 같을 것이다. 욥이 그토록 불안해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자기 자신의 의에 의지하고 그것으로 인해 복을 받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화를 받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려 하였기 때문에 힘에 겨웠고 또한 불안하였던 것이다. 욥은 온유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지만 그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다른 인간들과 똑같은 죄인이었다. 신자로서의 욥과 다른 사람들과를 구분하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온전해지려는 욥의 의지일 뿐이다. 이 의지를 하나님은 중시하시는 것이다. 어쨌든 욥의 신앙조차도 시련의 불을 통해 정화되고 연단되어야만 했다. 그럼으로써 욥의 도덕 종교는 은혜의 종교로 바뀌었던 것이다. 욥의 말은 그도 인과율을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마다 심은대로 거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그러나 인생이 하나님 앞에 어찌 의로우랴?는 것이다. 인간의 정직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헛된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욥은 비록 그 자신이 정당할지라도 그의 영혼을 순결하게 하기 위한 시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2>기독교 신앙은 모든 시련을 극복한다.

욥의 기사는 솔로몬 행적과 더불어 기독교 신앙을 세상에 증거하기 위한 하나의 좋은 표본이다. 양자는 대조적으로 상벽을 이루는 사람들로서 전자는 고난을 통한 은혜에 대한 모델이며 후자는 세속적 영화의 헛됨에 대한 모델이다. 그들의 경험은 세상에 중대한 교훈을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시였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은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시는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앙인은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과 같은 큰 재난을 당해도 거기에 압도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신앙을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아무것도 잃은 것이 아니다. 반면에 신앙을 잃어버렸다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신앙을 잃어버렸다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욥을 통해 생동하는 기독교이 신앙을 세상에 계시하려고 그에게 시련을 허용하셨던 것이다. 욥의 고난은 사람이 어떻게 고난을 이기고 하나님을 신앙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 되는 것이다.



3>고난은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욥이 고난의 그릇으로 선택받았으나 단지 다른 사람에게 교훈이 되거나 유익을 주기 위한 제물만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욥 자신과 고난당하는 자들 모두를 위해 시련이라는 것을 예정하셨다. 시련을 인해서 욥이 얻은 유익이 무엇인가? 그것은 구원하시는 구속자 메시야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욥을 향한 하나님의 연단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실상 욥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 욥은 구속주가 부활하실 소망에 관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다. 그래서 욥은 자신이 전해 줄 말씀은 비석에 영영히 새겨질 것이라고 하였다. 왜냐 하면 그 말씀은 가볍게 잊혀질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말씀은 곧 메세야의 도성인신과 부활에 관한 복음이었기 때문이다. 구속주도는 변호자, 영적인 상태 또는 부활이다. 그리고 그가 서실 것이다 라든가 또는 가가 일어나실 것이다. 라는 것은 부활에 대한 정확한 참조가 못되고 오히려 출현 또는 현시를 의미하지만 히브리어의 땅위에는 흙 위에를 의미하므로 그 표현은 땅위에 성육하시고 흙에서 부활하신 구속주를 묘사하는 것인데 그 메시야는 자신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욥을 구원하고 흙으로부터 부활시킬 분이시라는 뜻이다. 가장 중요한 견해는 욥이 그의 고난을 통해서 구세주 메시야를 만났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섭리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를 따라 누구든지 구원받기 위해서는 신구약 시대와 동서양 지역을 막론하고 반드시 메시야를 만난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숙명적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구약 시대에도 두 가지 신앙 노선이 있었음을 명백하게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율법주의의 노선과 메시야를 신앙하는 노선인 것이다. 기나긴 시련의 과정을 지나는 중 욥은 구세주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고 메시야에 대한 계시를 받게 되자 그의 신앙은 율법 주의적 계열에서 메시야를 신앙하는 계열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4>고난은 마침내 축복으로 마감된다.

사단은 인간을 멸망시키려고 시험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받지도 않으시고 친히 악으로 사람을 시험하지도 않으신다. 다만 하나님은 축복을 위해 인간을 시련하실 뿐이다. 그 시련은 바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보내신 은총의 사자다. 시련은 하나님의 섭리로 어떤 목적이 신자들에게서 성취될 때까지 어떤 노력에 의해서도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욥 그는 시련에 굴복할 수 없었고 그가 원한다고 해서 회복될 수도 없었다. 축복 또는 고난은 전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이것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음으로써만 하나님을 알았었는데 고난을 겪은 후 그 자신이 하나님을 체험함으로써 하나님을 알앗다는 것이다. 시련은 신령에 도달키 위한 사람이 겪어야만 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경지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욥에게 그가 이전에 가졌던 것의 배나 되는 축복을 내려 주셨다. 모든 것이 완전히 회복되었고 더 없이 풍성한 축복이 내려졌던 것이다. 시련은 다섯가지 의미를 지닌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징계, 시련, 연대적 고통 핍박, 그리고 형벌이다. 이것들을 분명히 구분함으로써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욥의 고난은 시련을 통한 연단에 해당된다. 의인들이 당하는 고난의 문제는 결코 문제일 수 없다. 시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의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욥의 경우도 그 법칙에 있어서는 에외가 아니다. 욥의 시련은 신앙의 사람이 고난에 의해 좌절되지 않는다는 진리에 대한 증거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전에도 사람이 시련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도록 예정하셨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구원의 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이 신련에 이어서 풍성한 삶이 따라 온다는 것이다.




Ⅷ.목회적 영성개발의 필요성과 목표



1.목회적 영성 개발의 필요성

신학의 영역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신 죽음의 신학, 세속화 신학, 혁명신학 등이 등장하였는데 예수 운동 같은 보수적인 운동이 일어나는가 하면 제 3세계 중심의 해방신학, 민중신학이 등장함으로써 교회는 교역의 전반적인 실천에 매우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시작하였다. 현대 교역의 위기의 원인을 네 가지로 분석하였다. 첫째, 지금까지 신학교육은 인간 이성의 능력에 너무 강조점을 두어 삶의 문제 해결은 인간 이성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둘째, 산업혁명의 결과로 자연 공동체의 와해에 있다. 셋째, 교회가 인간 삶의 중심에서 나변으로 밀려난 데 있다. 마지막으로 문화의 각성에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의 유일한 대안의 교역의 영성적 차원에서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컬리는 영적 성장을 위한 교육에서 서론적으로 방황하는 현대인을 심각하게 묘사하고 영성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개념을 확장하여 성령의 개념으로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인간 목회자의 역할에 직결시켰다. 목회자에게 있어서는 목회의 장은 곧 영성개발의 장이요 영성 개발지도의 자리인 것이다. 영성은 수동적인 하나님의 은사와 능동적인 인간의 삶에의 동참으로 이루어진다. 즉 하나님의 개입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성은 자연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다. 영성이 고갈된 현실 속에서 교회가 교화될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영성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존재의 근원과 성장의 원천도 영성에 있으며 그리스도인답게 살게하는 원동력이 된다. 영성개발이란 새사람을 만들어 나가는 인간의 훈련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들 속에서 새 창조의 역사를 행하실 수 있도록 성령님게 우리 자신을 드리는 훈련인 것이다. 영성은 일시적으로 개발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자기 비움의 과정, 초탈, 삼중도 등, 우리 영혼의 성장 단계에 있다. 이것은 성령의 인도로 지속적인 과정이며 역동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적 영성개발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고 본다.



2.목회적 영성개발의 목표

영성생활이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은 인간이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히 얻게 하고자 함이다. 사실상 만물의 궁극 목적은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에서 태어난 만민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하나님께로 나아가 성삼위의 풍요한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영성 생활은 세 가지 뚜렷한 목표가 있다. 그것은 하나의 긍극 목표와 두개의 상대적 혹은 근목표가 있다. 영성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님의 영광이며 근목표는 인간의 성화와 구원이다. 모든 피조물과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동일한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다. 성서에서도 그대들은 먹거나 마시거나 또 무엇을 하거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시노라고 말한다. 개인의 성화와 구원은 성삼께 영광을 드리는 가장 탁월하고 유효한 방법일 뿐이다. 창조된 전 우주는 하나님의 선성 진리 및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존재하고 이는 바로 창조자의 본 외적 영광이다. 그러나 피조물 편에서 본 하나님의 영광이란 더욱 더 큰 완덕을 향해 노력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이러한 노력으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동일한 궁극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란 개념보다는 이차적 목표가 영성생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구원이라 용어는 인간의 궁극적 행복, 영생, 및 영광 속의 삶이란 표현과 동의어이다. 지복지관을 완성된 영혼의 삶으로 이해한다. 영성 생활의 또 다른 목표는 자신의 성화이다. 성화란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서의 가르침에 다라 자신의 영성생활의 완성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의 완전하심 같이 완전하라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도록 노력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결국 영성 생활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요 개인의 구원과 성화는 근목표인 것이다. 즉 영성 개발의 목표에 근접하도록 돕는 역할이 목회자의 역할이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영성개발은 자신의 성화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인간과 피조물의 성화에 전적인 목표를 두고 연구되어져야 한다.



3.미래적 목회의 필요로서의 영성개발

기독교와 현대 정신을 종합해보고자 한 사람은 샤르댕이다. 샤르댕은 종교의 기독교가 인간의 노력을 위축시키고 세계 건설을 과소평가했던 오류를 지적하면서 신을 향한 기독교적인 상승운동은 미래세계를 향한 인간의 전진 운동을 포괄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둘 사이는 서로 의존하지 않고서는 완전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보았다. 브라보는 이러한 샤르댕의 신학에 기초한 새로운 미래의 목회를 구상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곧 미래 목회의 자리를 우주와 세계에 설정하는 것이었다. 브라보는 기독론은 그러므로 자연히 우주적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고 교리는 신과 우주 사이에 놓여져 있는 인간의 실존성을 강조하는 것이어야 한다. 계시론의 영역도 단순한 인간범주를 넘어선 전 우주를 구속하시고 하는 신의 뜻을 조명하는 빛으로 확정되어야 한다. 샤르댕은 그리스도는 인간적이고 신적인 뿐만 아니라 우주적이며 세계적인 속성을 지닌다. 그리스도는 양면운동으로 즉 물질적으로와 정신적으로 전 우주와 전지구 그리고 인간 영혼에 관계하여 영향을 주며 통합시키며 영성화하여 하나님 안에 통일하게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인간만이 아니라 만유 곧 하나님의 창조 전체를 영성화시키는 우주적 그리스도이다. 이러므로 그리스도는 우주의 존재와 발전에 중심이 되며 우주는 지금 진화 도중 즉 생성 도중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상승운동과 전진운동이 종합되는 샤르댕의 영성에서 우리는 인간적인 행위와 노력이 지니는 가치를 재평가하게 된다. 샤르댕은 인간의 수고와 참여가 없이는 즉 전진하는 운동이 없이는 하나님의 우주 환성의 계획은 실현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간은 거듭 하나님의 우주 진화와 창조의 행위에 참여할 것을 부름받고 있다. 그것은 우주의 그리스도를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영성적인 독려인 것이다. 이는 단지 인간의 구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받은 모든 피조물의 구속과 영광을 성취하기 위한 전체성으로의 영성이다.






Ⅸ.바른 교육자가 되자



1.부교역자의 정의

part time pastor:파트 타임 주어진 시간 내 사역

Associate pastor:동역자 평생 위임 목사와 동역 한국 교회는 중간형이다.

2.담임 목사와 부목사의 관계와 위치에 대한 성경적 근거



1>여호수아1:1 모세와 여호수아 관계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시종은 아니고 담임과 부교역자 관계이다.)여호수아가 모세를 시종처럼 받들고 섬겼다. 상전과 종 관계로 인식 노예처럼 섬겼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처럼 모세를 섬겼다.



2>왕하2:1~11:엘리야->엘리사 관계

담임 부목사 관계없이 하나님 중심 이어야 한다. 가까이 가면 얻어지는 것이 있다.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배워라. 영적 문제 해결되면 육적 해결 따른다.



3>삼상24장 사울과 다윗관계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이유도 있었지만 안 죽인 것은 사울은 하나님이 기름 부은 종이었기 때문이다. 각자 개성 다르기 때문에 그 관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 관계가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인간관계이다.

4>복음서:JX와 제자들 관계

제자들 세상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 사용했다. 베드로 다혈질이다. 내가 약한자가 되어야 한다. 따라만 가도 큰 일한다. 가롯 유다와 베드로 돌이켜 회개하고 따른 것 차이다.



5>바울과 디모데 관계

바울이 디모데를 자식같이 여김 파송하고 기억하였다. 교인을 교회에 붙이고 담임 목사에게 붙여야지 자기 사람 만드는 것 잘못이다. 문제 생기면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까 생각하라. 모세이어서 여호수아를 쓰신 주님이다.



3.부목사의 자세

1>사람이 되라 목사이전에 사람이 되라 자기 수선주의자

네게 하나님이 주신 성품을 찾아라. 성품으로 일하라. 된사람, 난 사람, 될 사람

된 사람은 인정받는다.

2>질서를 지키는 목회자(여자 머리-남자 -그리스도-교회) 하나님 인정, 담임목사 인정, 교인 인정, 권위있다. -내문제

3>순종하라. 교인에게 순종하라. 교육하며 본인은 순종치 않는다. 기도로 나 자신 다듬어라.

4>내 자신이 부족한 줄 알아라.-경험 앞에는 고개 숙여라. 나보다 더 많이 한 분 경험과 결과가 있다.

5>공부한 티 내지 말라 겸손하라. 나를 낮추어라. 없는 척 안가진 척 교인이 알고 있다. 부목사가 순종하고 안하는 것

십일조 생각-기도 후 얻은 것(선물 성미 감동 받은 것 만큼 더하라.)

6>부목사는 2~3인자 자리에 있어야 한다. 항상 2~3인 자라고 생각하여야 자리 지킨다.

7>자신의 범위를 넘지 말아야 한다.

8>담임목사 목회 범위 내에서 창조하라.

9>언제나 담임 목사 편에 서라. 목사 잘못은 하나님이 책임진다. 교인이 왈가 불가 할 사항이 아니다.

10>자기 생각과 경험을 깨라.

11>하나님이 나를 보내 주셨고 담임 목사 돕는 자이다.

12>모든 삶의 중심 1.하나님 2.교회 3.담임목사 4.양때 현장 근무시는 담임 목사 교회 양때=하나님의 일이다.

13>자기 자리 잘 지켜야 한다.

4.부목사의 역할

5.부목사로서의 사역 감당의 자세

6.성공적인 파트 목회의 조건



**목회자가 가져야 할 자세

1.주님의 종이라는 자세 절대복종

1>자기 소원을 가질 수 없다. 2>자기 의사를 가질 수 없다. 3>주인에게 대항할 수 없다. 4>주인에게 떼를 쓸 수 없다.

2.목회자는 성도를 말씀과 품위로 인격적으로 다스리라.

1>성도하고는 어떤 문제라도 분쟁하지 마라. 이겨도 지고 저도 지므로 아예 분쟁하지 마라

2>절대로 논쟁하지 마라

3>종교적 지도자는 좋은 인격도 없고 자존심도 없으므로 침묵하라. 간쓸개 없는 자이다.

4>성도 잘못을 회개시키려 하지 말라.

3.비료주는 목회를 하라.

4.말썽 부리는 성도 때문에 죽지 말고 자기자신을 위해 죽어라.

5.말을 너무 많이 하지 마라. 말을 조심하면 목회는 50%성공한다.

6.양은 양이고 목자는 목자임으로 너무 가까이도 말고 멀리도 말라.

7.상담을 너무 많이 하지 마라. 오직 하나님의 말슴으로 스스로 해결하도록 협력자가 되라.

8.비난이라는 화살이 내게 날려 올 때 문제와 관계 있던 없던 누명을 써도

1>못 본척 피해야 한다. 2>재빨리 피하라.

3>전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 해야 한다.

9.비난의 화살에 맞지 않는 방법(비판)

1>화살 소는 법을 배우지 말라 2>화살 소는 자와 함께 있지 말라. 3>입을 꼭 다물어라 침묵하라.

결과로 화살이 심장을 꿰뚫고 지나가도 결코 우리 자신을 건드리지 못한다.

10.다른 사람을 위해서 금식하지 마라. 금식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11.고정관념을 깨뜨려라 특히 다른 교회와 비교하지 말라.

12.주의 종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알아도 쉽게 이야기 하지 말고 가능한 침묵하라.

13. 성도의 말을 듣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라.

14.영성이 개발되기 위해서는 기도 밖에 없다.

15.누구에게 선물을 받았을 때 반드시 축복기도를 해주고 받아라. 그래야 뒷탈이 없다.

16.100%믿지 말아라.

17.부교육자는 철저히 담임 목회자 편이 되라.

18.스스로 일은 만들어 묶어 놓지 마라.

19.자신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에 묶이지 말라.

20.가능하면 일을 자신이 스스로 하지 말고 사소한 것은 맡겨라.

21.성도들에게는 말하지 말라. 은혜 받게 하라. 돈에 대하여 헌금에 대하여 스스로 물어 올 때까지 기다려라.

22.성도와 돈 거래는 하지 말라. 차비 식사 대접받지 말라.

23.부교육자는 어떤 경우에도 성도 앞에서 담임 목사님을 비방하거나 성도들의 비방에 동의하지 말 것

24.말을 조심하면 목회는 50%성공한다. 거룩한 말만 나와야 한다.

3여인 잘 만나야 목회 성공한다. 여전도사, 사모, 여 전도회장

25.환난이나 시험 당한 자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26.목회할 때 꿈 해석을 자주 해 주지 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확신이 오는 것 이외는 그냥 넘겨라. 잘못하면 꿈 해몽가로 전락할 수 있다. 환상 꿈 음성보다 말씀대로 살도록 가르쳐라.

27.목회를 할 대 부정적인 말을 하는 가진자들에 대한 태도

목회자가 먼저 긍정적 적극적 사용하라.

1>그들의 말을 무시하라.

2>두려워 하지 말라.

3>하나님께서 해 주실 것을 믿어라.



**구역관리

우리는 개척교회의 개척자이다.

1.목회방법을 배워서 적용하라.

2.부흥과 성장 이후의 꿈을 가져라.

3.큰 교회 교역자 아니라. 큰 교회를 이루는 교역자이다.

가서 심방 전도:사람을 만나라.

제자 삼으라. :지속적인 교제를 하라.

성령으로 세례를 주고:기도운동 회개운동하라.=일정한 장소 정해진 시간 성령받기 위해서다.





**심방



1.심방시기

1>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심방하라.=계획심방 부재중일 경우 주보 메모지 남겨라.

2>예방 심방(아프기 전에 치료하라. 성도가 병에 걸리지 않는다 시험 1주일 1회하라.)



2.심방 요령

인정에 글리지 마라. 편해 한다고 오해받기 시작하면 힘들어진다.

특정가정을 요청한다고 해서 2번 가지 마라.

균형, 평등한 심방하라.

3.심방시 동행자가 없을 경우

동행자를 빨리 포섭하라.

상황에 따라 기도만 하라. 예배드리지 말라.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일 대는 억지로 들어가려 하지 말라. 문밖에서 인사

연합 예배는 특별한 강사가 없는 한 들이지 말라.

구역예배를 살려주어라.

심방 시에는 절대로 오래 않아 있지 말라.

목적 심방은 특별한 경우에만 심방하고 방뭉과 심방을 구별하라. 아쉬움을 남겨두고 나와라. 심방도 비교하여 시기하는 성도가 있다. 심방시 교역자는 흩어진 모습을 보이지 말라.



3.심방 설교

각 가정 심방시:풀뽑는 설교=그 집안의 나쁜 것을 지적하고 설교하지 말라.

나쁜 것을 억지로 뽑으려 하지 말고 복음으로 좋은 것만 먹여 주면 자연히 나쁜 것은 사라진다. 스스로 깨닫도록 하라. 목회자가 억지로 뽑아 주려고 하면 서로 상처입기 쉽다.



1>성도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을 준비해서 나누어주는 설교를 해라.

2>설교의 주제와 내용을 특이한 것을 하려하지 말고 평범한 것을 하라. (이단 성경상식 시비 걸린다.)

3>설교시 절대 목회자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라. 들을 때는 좋게 들어도 뒤에서는 욕을 하는 게 성도다.

4>예화는 철저히 성경 예화를 들어라. 복음서 많이 보아라.

5>다른 사람의 설교를 가지고 해라. 자리 잡힐 대가지 자기 설교를 만들지 말고 다른 사람의 설교를 반복해서 잃은 후 자신이 은혜를 먼저 받고 자신이 받은 은혜를 전하라.

6>주제별로 좋은 설교를 선정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라.

모자이크 좋은 것을 모아서 하려는 것 설교를 하지 마라.

설교하나를 택하여 완전히 외워서 하라. =변경하려 하지 말고 모방을 두려워하지 마라.

특별한 예화를 들려하지 말고 평범한 것을 하라.

반복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제일 자신 있는 것을 하라.

7>설교는 가장 쉽게 쉬운 말로 하라.

8>설교 제목을 정할 때 축복의 메시지 축복에 포인트를 두어서 설교하라.

9>잘못을 지적하는 설교를 피하고 축복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 살리는 설교하라.

10>설교시간에 교육하려 하지 말라.

11>설교의 주제는 교리적인 것을 피하고 축복 좋은 하나님 치료의 하나님을 택하라.





상담

1.많이 듣는 것이 원칙이다.

2.성도들이 상담할 대 거의 거짓말을 많이 하므로 인내하라. 듣고만 있어라.

3.자기의 말을 절제하고 잘 들어주어라. 그러면 그 때서 기도만 해주어라.





전도

1.주간 근무 계획서 참고

2.구역장들이 전도할 수 있도록 활성화시켜라.

3,전도 대상자를 찾아서 구역에 알려주어라.





구역관리

1.성도들로 하여금 자부심을 갖도록 하라.

2.리더자라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어라. 자기 스스로 훈련을 하게 한다.

3.5인 이상 되면 분리해주어라.

4.구역 원은 2인으로 구성하라.

5.능력자는 가능하면 구역장 독립으로 개척하도록 하라.

6.항상 칭찬해 주고 기도해 주어라.

7.부족할 때는 도와주지만 가능하면 성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주어라.

우리는 개척교회의 개척자이다.

1.목회방법을 배워서 적용하라.

2.부흥과 성장이후의 꿈을 가져라.

3.큰 교회 교역자가 아니라 큰 교회를 이루는 교역자이다.





심방



1.심방의 종류

1>대심방:지교회에서 봄과 가을 계절에 전교인 가정을 방문하여 가정의 형편과 처지를 살펴보아 담임 목회자가 말씀을 통하여 권면하는 가정예배

2>환자심방:성도의 가정에 환자가 있어서 환자를 위해서 예배드리며 말슴을 통하여 치료의 역사를 소원하면서 드리는 예배

3>수시심방:성도의 신앙성장을 위해서 목회자가 수시로 성도의 가정을 방문하여 신앙의 생활을 보다 하나님게서 기뻐하는 삶을 살도록 권면하는 심방



2.심방시기

수시 심방은 성도의 가정을 방문하되 성도가 집에 있던지 없던지 관계없이 계획적으로 심방하여야 하자. 혹 심방하였으나 부재중이라. 할지라도 주보 또는 심방 명함을 꼭 성도 가정에 남겨두고 와서 성도로 하여금 언제나 목회자가 성도의 가정을 위해서 보살핌과 기도를 쉬지 않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3.심방요령

성도의 가정을 심방할 대는 인정에 끌리지 말고 심방을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목회자가 성도들 가정을 편해한다고 오해하기 시작하면 교회의 모든 행정과 신앙권면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특정가정에서 특별한 일 없이 심방을 원하면 적당히 사양하여서 성도들 가정과 가정간의 균형, 평등한 심방을 하여야 한다.



4.심방시 동행자

심방을 할시 혼자는 가급적 피하고 동행자를 발리 포섭하여서 함께 심방을 다녀야 한다. 특히 남자 교역자는 여성도 혼자 있는 집은 절대 혼자 심방하지 말아야 한다. 상황이 혼자만 가야할 급박한 처지라면 방문을 열어놓고 가급적 예배 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야 한다. 심방하였을 때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일 때는 억지로 들어가려 하지 말고 대문 밖에서나 현관에서 인사와 문안 정도로 마치고 되돌아오는 것이 좋다.

심방 시에는 절대로 오래 않아 있지 말아야 한다. 편한 성도가정이라고 오래 있으면 교역자로서의 자세가 흩틀어진 모습을 보이기 쉽다. 또한 성도들 가정을 방문할 때는 목적 심방과 특별한 경우에만 심방하고 방문과 심방을 구별하여서 성도로소 항상 목회자에 대해서 아쉬움을 남겨두는 것도 심방의 기술이다. 성도들 간에는 심방도 비교하여 시기하는 성도가 있으므로 다른 가정 심방을 구태여 다른 가정에게 공개할 필요는 없다.



5.심방의 자세

심방시 교역자는 흩틀어진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교인 중에도 편하고 오래 사귀고 중직이라고 해서 해이한 마음을 갖고 흩틀어진 자세로 심방을 하면 다음에 언젠가 그 성도에게 약점을 보여서 목회에 많은 지장을 초래한다.



6.심방설교

각 가정을 방문하여 심방시 설교는 어떠한 경우라도 풀뽑는 설교는 하면 안된다. 그 집안의 나쁜 것을 지적하여서 설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쁜 것을 억지로 봅으려 하지 말고 그 집안의 좋은 점 다른 가정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을 발견하여서 칭찬과 축복을 하여야 한다. 성도의 나쁜 습관이나 잘못된 신앙관은 지저가여 주고 풀을 뽑는 설교로 고쳐지지 않는다. 방문한 가정을 살피고 그 가정과 성도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을 준비해서 나누어주는 설교를 해라. 설교의 주제와 내용을 특이한 것을 하려하지 않고 평범한 것을 하라. 설교시 절대 목회자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공적 예배에 결석자를 위해서 심방하고 예배드릴 때는 담임 목사의 주일날 낮 예배 설교를 이해하고 본인이 은혜받은 것 간증하면서 전하라. 심방을 위해서 주제별로 좋은 설교를 선정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라. 설교시 사장 쉽게 쉬운 말로 사용하여야 한다. 설교 제목을 정할 때는 축복의 메시지 축복에 포인트를 두어서 설교하라. 설교시간에 교육하려 하지 말고 설교시간에는 은혜받기 원하니 은혜를 받도록 노력하고 교육은 따로 시간을 정해서 교육하여야 한다. 설교의 주제는 교리적인 것을 피하고 축복 좋은 하나님 치료의 하나님을 택할 때 성도가 신앙생활 할 때에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성숙해진다.

  

Ⅹ.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신학교의 신학사상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 개혁총회 직영 신학교로서 사도적 전통과 성경진리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칼빈주의 신학의 바탕 위에 시대적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성경적 보수 정통신학을 지향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선지학교임을 자부한다. 신학사상의 바탕위에 한국 교회의 미래와 세계선교라는 막중한 시대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우리의 신학사상과 교의적 입장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정립하여 목회자 후보생 선교사 후보생과 신학자 후보생과 교회 지도자 후보생 양성에 최선을 다 할 것이다.



1.삼위일체 유일신 하나님을 믿느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등 한 하나님 안에 권능과 지혜와 성품과 옳으심이 같은 세 인격이면서 한 분이신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믿는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제1위이신 성부하나님 안에서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함께 창조하셨고 제2위이신 성자 하나님 안에서 성부 하나님과 성령하나님께서 함께 십자가 대인속죄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셨고 제3위이신 성령 하나님 안에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께서 함께

십자가 대인속죄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셨고 제 3위이신 성령 하나님 안에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께서 함께 그의 교회를 세우시고 이 교회를 통하여 영원한 메시아 왕국을 세우실 것을 믿는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발기자로 성자 하나님은 시행자로 성령 하나님은 적응자로 인간을 구원하실 것을 합의하시고 그대로 구원사역을 실행에 옮기신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므로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이라고 지칭할 때에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한 호칭이라는 같은 인식을 갖는다. 이 삼위일체 교리에 대하여 삼신설을 비롯하여 독자적인 개념으로 접근하려는 어떠한 주의나 사이비한 주장도 배격한다.



2.성경의 신적권위를 믿는다.

기독교는 계시종교로서 하나님을 창조주시오 또한 믿음의 중심이요 예배의 대상으로 하고 성경은 곧 하나님의 계시요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진리요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성경의 신적 권위를 믿는다. 그리하여 성경은 스스로의 생명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영혼과 골수를 쪼개고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능력 있는 유일무이한 진리의 말씀으로 믿는다. 성경을 기록한 성령의 영감의 성격은 유기적 영감을 믿으며 그 영감의 범위는 일점일획도 틀림이나 잘못이 없는 축자 영감설을 믿는다. 전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3.기독교 운동의 목적은 생명의 구원과 교회 운동으로 메시아 왕국의 건설과 확장이라는 목적을 분명히 한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서 주창되고 잇는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은 비성경적인 반기독교 운동으로 단정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기독교 운동은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 구원의 운동이요 동시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아서 교회를 일으켜 세움으로 천상에 있는 무형교회를 기준으로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며 육체로 재림하셔서 세상 만민을 상선벌악간에 심판하신 다음 영원한 메시아 왕국을 건설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왕국 건설과 확장운동으로서의 교회 운동을 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4.우리 신학교가 지향하는 신학교의 운영방침

교의에 따라서 보수주의 신학과 신앙으로 우리 한국 교회의 신학을 정립하고 한국 교회를 성경대로 개혁해야 할 것과 세계 선교를 책임지고 나아갈 목회자와 선교사와 신학자와 교회 지도자를 적극적으로 양성해 낼 것을 그 사명으로 하고 있다. 지금 시중에는 주로 자유주의 신학사조의 서책들이 범람해 있다는 것을 우려하여 우리학교와 총회가 주관하여 자체 출판사를 운영함으로 교수, 학생, 및 교단 목회자들이 연구물이나 저서들을 언제든지 출판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5.기타

세계적인 보수 정통주의 신앙과 신학운동의 요람으로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하나님의 절대 영광이라는 성경적 신앙과 신학을 지향하는 목회자와 지도자 양성에 주력하는 한편 우리 한국 교회가 지향해야 할 한국 교회의 신학을 반듯이 정립하여 한국 교회의 개혁에 앞장 설 것이며 나아가서는 바른 신학 사상을 가진 한국교회의 선교사들로 하여금 세계 선교를 위해서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선교사 양성에 일익을 담당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Ⅺ.성경이 말하는 토지개혁



토지개혁의 성서적 당위성

희년이 선포되면 각 사람이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스라엘의 각 사람이 자기 조상의 본래 소유지로 되돌아가라는 명령을 받고 있는 것이다. 희년의 양각 나팔소리는 땅을 본래 주인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선포의 소리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소유권을 반환해야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야훼 하나님은 땅의 유일한 주인이시며 땅에 대한 권리 투쟁을 계속적으로 선언하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희년에는 땅의 개인적인 소유곤이 포기되어야 하며 모든 백성들간에 토지 소유의 평등이 이루어진다. 희년은 경제 정의가 회복되고 소유의 평등을 보장해주는 특별한 기간이기도 하다. 그러한 소유의 평등은 철저한 토지 개혁을 전제로 하지 않을 수 없다. 희년의 선초는 자동적으로 토지개혁을 수반하게 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나누어주실 계획을 앞두고 희년법을 제정하셨다. 이 희년의 토지법은 누구라도 자신의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땅을 소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입법이었다. 희년은 인간의 기본권이자 생존권의 바탕이 되는 토지권을 평등하세 회복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었다. 희년은 모든 인간의 자유와 소유가 회복하는 해이며 정신의 문제와 물질의 문제를 동시에 회복하는 기간이었다. 희년은 이와 같은 양면성과 통전성을 회복하여 새로운 출발을 시작할 수 있다는데 본질적 의미가 있다.



희년의 양면성 회복

자유의 회복
소유의 회복

정신의 회복
물질의 회복

영혼의 회복
육체의 회복





우리 생명의 시간이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고백과 함께 우리는 이 땅이라는 공간도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희년에는 모든 것을 원 주인에게 돌려보내야 하므로 노예를 해방시키듯이 땅도 해방시켜야 한다. 땅도 인격체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철저하게 영육의 구별을 배격하고 있는데 그 정신은 사람의 해방과 땅의 해방을 구별하지 않고 통전적으로 동시에 추구하는 희년법에 명백히 나타나 있다. 기독교는 그만큼 물질적인 종교이며 땅의 종교이다. 일반적인 종교의 세계에서는 대체로 물질적인 것을 속되게 여기려고 하는데 반하여 기독교는 그렇지 않고 오히려 물질세계를 아주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었다. 일반 게시의 실재를 크게 강조하면서 기독교는 가장 물질적인 종교라고 하였다. 정신적 세계만 높이고 물질적 세계는 낮은 것으로 보려는 생각은 비성경적이고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모든 물질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모든 실존을 하나님의 계시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요청된다. 육체와 물질의 의미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기독교의 일대 특징이 되어왔다. 이런 점에서 희년법은 물질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넓혀주고 있다. 희년법이 토지반환을 명령하고 있는 것은 물질과 육체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며 복음의 양면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교회에 대한 칭찬보다 비난의 소리가 높은 것은 우리의 영적 생활이 게을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물질문제에 대해 참된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토지에서 비롯되는 물질 문제의 회개야말로 우리 시대의 참된 회개의 진실성 여부를 입증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토지 개혁은 영적 회개의 척도

희년의 기본정신은 토지의 소유권과 사용권을 철저하게 분리시키는 원칙을 강조한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 사람은 그것을 일정기간 동안 빌려서 사용하는 소작농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악한 농부의 비유는 이러한 희년의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그 주위를 울타리로 두르고 포도즙 짜는 기구도 설치하고 망대탑을 높이 세운 뒤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라는 상황은 소유권과 사용권이 엄연히 분리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는 특수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한 지역을 선정하여 울타리를 치신다. 그리고 그 울타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기를 요청하신다. 그것은 소유권자의 요구이기도 하다. 포도원의 임대 경작자는 사용권을 가지고 있을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 모두가 하나님과 맺고 있어야 할 관계는 루터가 말한 바와 같이 포도원주인과 임대 경작자의 관계이다. 소유권과 사용권의 엄격하고 철저한 분리는 희년법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희년법 아래서 사람이 토지에 대하여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오직 사용권이면 희년이 될 때가지 그 사용권을 팔 수가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땅을 사용하는데 의미있는 것이지 소유하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땅을 창조하시고 소유권을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교훈이다. 토지는 사용권에 의하여 생산수단이 될지언정 소유권을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교훈이다. 토지는 사용권에 의하여 생산수단이 될지언정 소유권을 강화시키는 무기이 대상이나 재화증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경자 유전의 원칙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희년의 토지 반환과 토지 개혁을 무시한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온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계대결혼법과 희년법

우리는 구약에 나오는 계대결혼법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일 형이 죽으면 형수를 취하여 아들을 낳아줌으로 형님의 기업과 혈통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시형제 결혼법 곧 계대결혼법은 조상의 혈통과 기업을 철저히 지켜나가려는 신앙에서 나온 이스라엘의 관습이였다. 이러한 풍습의 뿌리를 우리는 희년법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희년법의 정신이란 희년이 되면 너희는 가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가라고 하는 전통을 지칭한다, 가족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노예해방과 부채탕감으로 인한 자유의 회복이며 이산가족의 결합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가족의 혈통을 지킨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희년법의 신앙이 이스라엘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된 제도가 계대결혼법이었다. 이 제도는 조상의 기업과 혈통을 동시에 키우며 유지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할 신앙이 형식이었다. 계대결혼법의 관습은 곧 희년법적 신앙의 한 표현이었다. 희년법의 구체적 내영으로 생겨났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의 혈통을 지키려는 신앙은 메시야 대망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아브라함 혈통에서 즉 자기들의 혈통에서메시야가 올 것이므로 그 혈통을 지키면서 기다리는 것이 메시야 대망 사상의 한 모습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각 가정은 자기 가족의 혈통이 끊어지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는 신앙으로 접촉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희년법이나 계대결혼법은 메시야 대망사상과 같은 맥락에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최종적인 토지 개혁이 구체화되는 현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토지 개혁의 의미는 조상의 기업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이며 하나님의 주권을 근거로 하여 소유권을 제한시키고 또한 그것을 지켜나갈 것을 요구하는 희년법적 신앙이다. 이러한 신앙의 의지가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내려진 판결문에 잘 나타나 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마음대로 시집가려니와 오직 그 조상지파의 가족에게로만 시집갈지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지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당 곧 네 기업된 소유의 당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지니라. 희년법의 삼대 명령 중에서 토지 반환의 조항은 토지개혁을 필연적으로 요청한다. 신명기에서는 그것촉구하면서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라고 표현하였다. 선인의 정한 경계표를 이동시켜 놓았다면 그것을 원 위치로 되돌려 놓으라는 것은 토지 개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경계표를 이동시키려는 인간의 욕망은 적절한 분령의 한계를 넘어 행동하는 인간의 원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원죄는 주제파악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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