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스크랩] 성경적 설교

수호천사1 2015. 12. 27. 22:59

성경적 설교

 

 

 

설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성경적 설교란 무엇인가?

 

단순한 성경적 사실만을 나열하는 것이 성경적 설교는 아니다. 오히려 이단이 단편적인 성경적 사실로 그들의 논리를 구축한다. 성경의 한 구절로 논리를 비약시키고, 자신의 논리를 만들기 위해 성경의 한 구절을 이용한다. 성경의 한 마디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성경적인 설교는

 

1) 성경 전체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2) 성경 전체에 부합해야 한다.

 

3)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한 지향점을 가져야 한다. 기독론적이고 구속사적인 초점이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일 년의 몇 주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설교인가?

 

4) 신구약이 통일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신구약이 하나의 관점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구약에 근거하여 구원계시가 점진적으로 발전되어나간다. 구약의 본문은 신약으로 뒷받침되고, 신약 본문은 구약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신구약이 동떨어진 것으로 단절된다면 문제이다.

 

5) 성경적인 설교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만남이 진행되어 나가야 한다. 하나님과 우리과 동떨어진 채로 이루어지면 안된다. 오늘 여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왜 해석자의 작업을 거쳐야 성경적인 설교로 나갈 수 있는가?

 

성경본문에 대한 해석자의 입장이 있어야 한다. 본문을 어떻게 이해해서 청중들에게 성경적인 설교를 할 것인가?

 

■ 해석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1) 우화적 설교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 등에 의해 발달(모든 성경의 내용을 영적으로만 해석-도약과 비약이 심함, 주관적이 되기 쉬움)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오린겐의 우화적 해석을 들 수 있다. 성경에 있어 영적인 의미를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가 이들의 해석의 관점이다.

 

(영해) ex)잃어버린 도끼를 찾자! 기도의 도끼. 사랑의 도끼...헌금의 도끼... 과연 이런 것이 성경적인 설교인가? 영해의 포장 안에 모든 본문은 하고자하는 사람의 같은 주장을 담는 그릇일 뿐이다.

 

2) 교리적인 설교(교훈적인 설교)

 

난해한 성경구절을 해석하는 데는 유익- 교파(교단)적인 입장에 갇혀 버리는 경우가 있다.

 

교리적인 입장의 설교. 교파적인 입장에서 지협적인 말들을 반복에 그친다. 교리 자체를 반복하는 것은 의미 없다.

 

3) 신비적인 해석(종교개혁 후의 경건주의와 퀘이커교도들이 많이 사용.)

 

자기의 주관, 내적 조명(inner light)에 의존한다. 성경의 text를 무시함. 신비적 요소가 너무 많다.

 

성경 본문에 충분히 익숙해지지 않고, 성경을 외면한 채 신비주의에 몰입한다면 위험스럽기 그지없다. 신비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도약, 비약적인 면이 가능하다.

 

4) 합리주의

 

성경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는 운동. 합리적인 것만 설교하므로 결국 초자연적인 것들은 배제되고 윤리, 도덕만 남게 되는 초라한 설교.

 

이성에 의해 검증되지 않는 이적, 추자연적인 사건들을 무시하고 윤리와 도덕만 남어 버림(성경고등비평, 진화론, 과학의 발달)

 

5) 실존주의적 해석 방법(성경의 무오성과 역사성을 부인하는 해석)

 

불트만의 실존주의 적인 해석. 역사성이 배제되고, 비신화화해서 해설. 양식사 비평, 신정통주의등은 성경의 무오성을 회손하거나 성경의 역사성을 부인하는데 있다. (나에게 이 말?씀이 어떤 영향을 주는가만 중요시)

 

예) 선악과는 사실이 아니다. 부활은 우리 마음 속에 변화를 말한다.

 

■ 성경적 설교란 석의 과정, 주해과정, 적용의 과정 등을 거쳐야 한다.

 

Ⅰ 석의 작업: then, there

 

가장 타당한 성경해석적인 방법. 이것들이 가장 합당한 해석 방법이다.

 

1) 문법적

 

“고전15:22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있는냐? 사망아 너의 쏘느 것이 어디있는냐?”

 

이 절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이 의문문 “Oh Death! Where ...........?”는 사망을 의인화하고, 사망을 조롱하면서 하는 질문. 사도바울이 사망에 대한 꾸중과 조롱. 지금까지 부를 수 없었던 것을 부름. 설교자들은 이러한 문학적인 느낌, 문법적인 의미들을 찾아내어야 한다. 우리는 철저하게 본문을 통해 문법적인 의미들을 찾아내야 한다.

 

2) 역사적

 

당시 고린도 교회에 대한 정황들을 이해해야 한다. 고린도 전서 15을 말하게 된 고린도의 환경, 정황 등 역사적인 상황을 알고 있어야 한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부활을 안 믿고 있기 때문에 부활을 얘기 할 수 없었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내가 하고자하는 성경 한절을 분석할 뿐 아니라, 이 한절에 대한 역사적인 정황들을 이해해야 한다. 고전 4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 - 고린도교회에 대한 분열적인 상황들 속에서 나온 것이다. 설교자는 충분히 본문에 머물러야 한다.

 

3) 신학적

 

신구약성경의 신학적인 주제, 핵심 멧시지 등의 흐름에 충실해야 한다.(다루어져야 한다.)

 

Ⅱ. 주해작업: now, here

 

석의 작업이 성경의 사건이 그때, 거기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음을 해석하는 것이라면,( 성경에 쓰여진 작업이 그 당시 어떻게 쓰였는지 이해 한 후). 주해작업은 석의작업에서 파악한 내용을 지금(now), 여기서(here)적용될 수 있게 적용하는 것이다.(“지금, 여기서” 무슨 말인지 묻는 것이다.)

 

요나서의 박넝쿨. 충분히 해설해 주어야 한다. 보수주의 설교자들은 과거에 돌아가는데 능숙하나, 오늘의 그 말씀은 무엇인지 침묵하고 있다. 우리가 샅샅히 밝혀낸 그 때, 그것이 오늘의 무엇인가 필요하다. 석의 작업은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나, 주해작업에는 기도와 영적인 묵상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설교문을 작성할 때, 본문 석의와 주해과정을 1,2p 정도 있어야 한다. 그 후 설교문을 작성해야 발전할 수 있다. 고통스럽게 붙잡은 말씀들이 의미있다. 설교문이 완벽한 문장으로 3-4장 써야 한다. 설교를 말로 배워서 때우려고 하는데 그것은 마지막 단계이다.

 

Ⅲ. 적용

 

성경적 적용은 바른 석의와 바른 주해를 거쳐 올바른 적용에 이르러야 한다.

 

1) 구체적으로 회중들의 삶속에서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가? 석의 뿐 아니라 주해와 적용까지 거친 작업들이 되어야한다. 주해도 부실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적용의 문제이다.

 

(본문 연구에 중 얻은 힌트와 착상들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 본문에 관한 스터디는 충분한 작업을 거쳐 적용으로 가서 착상되어야 한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해서는 안된다. 설교에는 성경이 있고, 성경에 대한 공부가 있으며 기도와 묵상과 적용이 있어야 한다.

 

☞ 적용이 아닌 것은

 

1) 개인적으로 큐티하다가 적은 것. 행위하나, 등으로 설교가 적용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다. 설교 자체가 적용덩어리다. 제목자체가 적용이고, 설교자체가 적용이다. 설교자는 변증하는 학자가 아니다. ex) 부활절 이후 : 부활이 연례행사가 됨. 제목은 설교의 맨 마지막에 붙이는 것이고, 제목이 적용점이 없을 때 그 설교는 적용의 고민이 없는 것이다.

 

2) 존 스토트의 다리놓기의 예화

 

성경의 세계와 현재의 세계 사이의 깊은 심연(gap)=(시간적, 지형적,) 설교는 이 두가지의 gap를 바르게 연결시킬 수 있는 brige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설교의 바른 적용의 문제는 설교 존립자체의 문제이다. 그 시대 얘기가 우리와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뤄지고, 이 시대의 문제가 성경 시대로 가서 해답을 얻음. 이것은 설교 인가, 아닌가의 존립의 문제이다. 석의와 주해작업이 중요하지만 이 다리 놓는 작업이 설교자의 생명이다.

 

아브라함이 오늘 우리에게 온 것처럼, 격의 없는 이해를 하고 설교가 진행되어야 한다. 보수주의자는 성경세계만을 말하고, 자유주의자들은 현재만을 말함. ex)에덴의 이야기. 에덴에 살고 있는 듯이 빨려오게 함.

 

3) 적용에 있어서의 도움

 

① 현시대에 발생하는 사건, 문제, 등을 이해하고 해석 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오늘의 issue가 무엇인가? 파악해야 한다.

 

설교학에서는 통하는 얘기다.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세계속에서 적용되기 위해서는 오늘을 이해해야 한다. 오늘 회중들에게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신문을 읽더라도 주로 사설을 읽고, 지금 우리 모두의 삶에 형성되어야할 여론은 설교자들에게 중요한 접근점이 되어야 한다. 세상을 이해할 때 국민일보 1면식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시사 주간지를 읽어야 된다. 그리고 한 주간의 이슈를 납득해야 한다. 시대적 삶의 정황을 납득해야 한다.

 

② 윤리문제에 대한 재인식(윤리적인 접근에서도 시야를 달리해야 한다.)

 

평행적인 개인 윤리보다 사회윤리, 공동체 윤리 등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개인윤리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현재 기독교 윤리는 술, 담배를 금하는 수준이다. 교회윤리가 저급하고 협소하다. 과연 교회가 이 수준이라면 교회가 금연운동하는 단체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느냐? 사회 윤리단체의만도 못한 수준의 윤리에 설교를 적용시키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이 없다. 설교적용은 구조적이고, 거시적으로 보아야 한다. 설교자들이 설교를 작성하는데 있어서 사회가 바라보는 관점 이상으로 보고 말해야 된다. 한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가치,인간 평가에 대한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

 

③ 적용점을 넓혀가야 한다. (경건의 모델이 무엇인가?)

 

적용점 없는 설교가 무엇인가? 우리 삶이 바꿔야 하고 성도의 삶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기업의 가치는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무엇을 하는냐에 달려있다. 그럴 경우 서비스업, 유통업보다 기반산업 쪽이 휠씬 유익하다.

 

 

우리는 설교가 어떻게 적용되어야 좋은 영화, 교육방송의 프로그램들을 통해 회중들을 이해해야 한다. 예화도 가능한한 가까운 주변에서 찾아야 한다. 성령충만은 신비적인 일만이 아니다. 사회와 삶을 살아가는 가치와 관점을 바르게 가지고 적용점을 넓혀나가야 한다.

 

개인윤리의 차원을 떠나 사회윤리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개인 윤리와 함께 공동체적 윤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