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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월절 음식의 실체와 성찬식 제정

수호천사1 2015. 12. 27. 22:03

 

유월절 음식의 실체와 성찬식 제정

 

 

 

 

 

(마 26: 17-29) “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 무교절의 시작과 유월절 준비(17-19)

 

 

 

마리아의 향유사건에 관한 예수님의 대응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긴 가룟 유다가 그를 팔아넘기기로 작정했을 때, 함께 있던 다른 제자들은 그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그의 무모한 생각을 알고 계셨을 것이 분명하다. 사악한 본성을 드러낸 유다의 활동은 하나님과 배도에 빠진 원수들 사이에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는 사이 드디어 이스라엘 민족의 마지막 무교절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절기는 유월절을 기념하며 양고기를 먹음으로써 한 주간 동안 이어졌다. 무교절 절기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구약 율법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엄격하게 지키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다. 그것은 선택적인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는 이 절기가 메시아를 소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유한 신앙의 근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그 절기를 소홀히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세는 율법을 통해 그 절기의 구속사적인 의미와 함께 그것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를 삼아 이 날을 대대로 지킬찌니라 정월에 그 달 십사일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칠일 동안은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니 너희는 아무 유교물이든지 먹지 말고 너희 모든 유하는 곳에서 무교병을 먹을찌니라”(출12:17-20);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며 너희는 칠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火祭)를 드릴 것이요 제 칠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라”(레 23:5-8)

 

 

 

역사 가운데 존재한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에는 항상 유월절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그 가운데 존재하는 핵심은 양고기였다. 그 절기는 유대력 정월 십사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일 년 한 차례 행해지는 절기지만 단순한 통과의례가 아니었다. 이는 일 년 열 두 달이 그 절기에 연관되어 있으며 모든 백성들의 삶은 그에 지배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애굽에서의 첫 유월절 사건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구출한 사건에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출애굽한 날을 기준으로 그 절기를 지키도록 율법이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백성들은 긴박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누룩 없는 음식을 먹어야 했으며 노동이 금지되었다. 그리고 무교절 기간에는 날마다 화제를 드렸을 뿐 아니라 첫날과 마지막 날에는 성회(聖會)로 모였다.

 

 

 

이 절기의 의미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으로부터 탈출하게 되는 구속사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했던 아빕월 곧 유대력 정월에 무교절을 지키도록 명령하신 것은 그런 뜻을 담고 있다(출34:18). 따라서 그들은 아무 날이나 임의대로 적절한 날을 정해 유월절과 무교절 절기를 지킬 수 없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저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여겼다. 유월절 저녁에는 모든 백성들이 집집마다 유월절 양고기를 먹으며 구원에 연관된 감사의 축제를 벌였다. 따라서 제자들의 그런 생각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 유월절이 구속사 가운데 마지막 유월절이 되리라는 사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연관된 진정한 유월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제자들은 유월절 음식을 어디서 먹어야 할지 예수님께 물었다. 당시는 이미 예수님께서 자기가 이제 유월절 어린 양의 실체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을 선포한 상태였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관한 제자들의 말을 듣고 유월절 음식을 먹도록 하자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그 장소는 특별하게 지정하시고자 했다.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가 어떤 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가서 주인에게,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는 말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그가 자기 집으로 안내해 유월절을 지킬 수 있는 방을 내어 주리라는 것이었다. 누가복음에는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여짜오되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의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저가 자리를 베푼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예비하라 하신대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눅 22:8-13)

 

 

 

예수님께서 유월절 준비를 위해 두 제자들을 예루살렘 성으로 보내셨다. 그들이 물동이를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 주인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라는 것이었다. 그 때 주님으로부터 특별히 보냄을 받은 제자는 베드로와 요한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가 예수님께서 시키는 대로 순종했다.

 

 

 

사실 이와 유사한 방법은 그 전에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 전 유대인의 왕으로서 어린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자 할 때도 그런 방법을 사용하셨는데 그 때도 그와 유사한 명령을 내리셨다. 이 가운데는 자기가 만유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베드로와 요한이 주님의 말씀에 따라 예루살렘 성내로 들어갔을 때 물동이를 가지고 지나가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유월절 음식 먹을 것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자 흔쾌히 이층의 큰 다락방을 보여주었다. 그 사람이 예수님과 제자들의 유월절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자신의 커다란 방을 내주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그곳에서 유월절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2. 마지막 유월절을 위한 특별한 다락방(20-25)

 

 

 

유월절 저녁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한 집의 다락방에 둘러앉았다. 대다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족 단위로 유월절 음식을 먹었지만 거기 모인 사람들은 가족이 아니라 앞으로 세워지게 될 교회의 기초가 되는 매우 특별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날 밤은 정치적으로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가운데서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출애굽과 더불어 유월절이 시행된 이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의 피와 고기가 없는 상태에서 유월절을 지킨 적이 없다. 그리고 역사상 맨 마지막 유월절을 지킬 때도 백성들의 집집에는 유월절 양고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유독 예수님과 제자들이 모인 그 다락방에는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해 모인 특별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양고기가 없었다. 그 대신 구약시대부터 그 때까지 시행되던 유월절 어린양의 실체이신 참된 하나님의 어린양이 그 자리에 계셨던 것이다.

 

 

 

산헤드린 공회는 그 시각에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작전에 돌입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방안에는 예수님을 팔게 될 가룟 유다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태연스럽게 앉아 있었다. 예수님은 안팎에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제자들은 그에 대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열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해 모인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느닷없이 이해할 수없는 말씀을 하셨다. 열 두 제자들 가운데 자신을 원수들에게 팔 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구체적인 내막을 알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여간 충격적이지 않은 말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제자들은 혹시 그 사람이 자기인지 예수님께 물어보는 자들도 있었다. 그 때 가룟 유다도 예수님을 팔게 될 사람이 자기냐고 뻔뻔스럽게 물어보았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그렇다는 답변을 하셨으나 다른 제자들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즉 당사자인 가룟 유다를 제외한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말씀을 사실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것을 실제로 받아들였다면 예수님을 원수에게 팔게 될 자가 누군지 찾아내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른 제자들이 가룟 유다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과연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까? 그는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 가운데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무도 누가 예수님을 팔자인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어쩌면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했을 가능성도 있다. 제자들 중에 실제로 예수님을 팔자가 있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자기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곧 자신을 팔자라는 사실을 언급하심으로써 그에 대한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셨다. 이는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행동에 관한 언급이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떡을 찍어다가 주는 그 사람이 곧 스승을 팔게 될 자라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 13:26-30)

 

 

 

예수님께서 떡 한 조각을 찍어 가룟 유다에게 주니 그것을 먹고는 자기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 가운데 예수님의 말뜻을 정확하게 알아들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요한복음 본문에서 유다가 예수님으로부터 떡을 받아먹은 후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다고 한 말의 의미는 예수님이 그에게 사탄을 집어 넣으셨다는 뜻이 아니다. 그 말은 그것을 신호로 하여 사탄이 예수님을 죽음에 내어주기 위해 유다를 구체적으로 이용하게 됨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자기를 팔게 되리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인자(人子)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구속사역을 감당하게 되겠지만 자신을 파는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은 자라는 사실을 언급하셨다. 그렇게 하는 자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훨씬 낫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음에 내어 준 자로서 인간들 가운데 가장 저주받은 인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말씀을 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유다에게 속히 원하는 바를 결행하라고 요구하셨다. 물론 유다는 예수님의 말귀를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예수님과 가룟 유다 사이에는 암묵적인 부정적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유다는 벌써 예수님을 향해, “당신은 내가 기대하던 그리스도가 아니오”라는 오만방자함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던 제자들은 그 진정한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다. 단지 가룟 유다가 재정을 담당하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명절에 쓸 물건을 사거나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구제할 준비를 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했다. 그렇지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후 유대인들을 데려오기 위해 밤중에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더욱 절박한 형편에 놓이게 된 것이다.

 

 

 

 

 

3. 참된 유월절 음식과 성찬의식 제정(26-29)

 

 

 

유월절 이후에 무교절이 뒤따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교절 기간에는 모든 백성들이 누룩 없는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어야만 했다(출12:8). 그리고 허리에 띠를 두르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어야 했다(출12:11). 이는 음식을 맛있게 즐기며 먹을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유월절과 무교절은 육신적으로 본다면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라 도리어 괴로운 일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즉 괴로움 중에 참된 즐거움이 존재하는 것이다. 유월절은 역사적인 출애굽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이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탈출하게 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특별한 유월절 음식을 나눌 때 가룟 유다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또한 예수님께서 나누어 주신 음식을 형식적으로 받아먹었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영적인 의미가 발생하지 않았다. 사탄에게 속한 그가 영원한 유월절 음식의 실체인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통한 은혜를 누릴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그 다락방에는 양고기 대신 하나님께 영원한 제물로 바쳐지게 될 어린 양 자신이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앞으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나누게 될 완성된 유월절 음식인 자신의 몸에 연관된 특별한 의미를 설명하시고자 했다.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던 때를 기억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에 따라 허락하신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셨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인신제사(人身祭祀)를 요구하는 유일한 사건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독자 이삭을 데리고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 산으로 갔다. 산 밑에 이른 이삭이 하나님께 바칠 제물이 어디 있는지 묻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답변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7-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의 몸을 제물로 원하신 것은 나중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치게 될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이삭 대신 다른 동물을 번제물로 허락하셨는데, 아브라함이 그곳을 ‘여호와이레’(Jehovahjireh)라고 칭했다. 여기에는 예루살렘에서 바쳐지게 될 영원한 어린양에 연관된 하나님의 언약이 드러나고 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 밤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한 집 다락방에 모여 있을 때 그 방안에 유월절 음식인 양고기가 없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제자들 가운데 아무도 예수님께 왜 양고기가 없었느냐고 질문하는 자가 없었다. 예수님은 무언중에 자신의 몸이 곧 아브라함에게 요구했던 이삭의 몸에 대한 실체이자 모세시대 시작된 유월절 어린 양의 완벽한 실체적인 제물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해 모인 제자들에게 양고기 대신 떡을 가지고 축복하신 후 떼어 나누어 주며 그것이 자신의 몸이니 받아먹으라고 말씀하셨다(28). 그리고는 잔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 저들에게 포도주를 나누어 주며 그것이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게 될 자신의 언약의 피니 받아 마시라고 하셨다(29). 그것을 통해 아담으로 말미암아 들어온 죄가 사해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약속의 자녀 이삭에 연관된 아브라함 언약과 애굽에서의 첫 유월절에 연관된 모세 언약의 성취에 관한 의미를 보여준다.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는 출애굽하기 전 이스라엘 백성이 문설주에 발랐던 어린양의 피에 대한 실체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제자들에게 자신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나누어 주신 예수님께서는, 이제부터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포도주를 마시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하셨다.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my Father's Kingdom)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마 26:29)

 

 

 

이 말은 과연 무슨 의미인가?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나중 그가 재림하신 후 영원한 왕국에 이르고 나면 그 때 포도주를 마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 나타나는 진정한 의미는 교회와 성찬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아버지의 나라’는 지상에 세워질 그의 교회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역을 완성하신 후 오순절 성령을 통해 교회가 세워지면 그 가운데서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마시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위의 본문에서 새 것으로 마시겠노라고 한 ‘새 것’이란 교회의 성찬에서 나누어지게 될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를 의미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 이후에는 그의 몸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그의 재림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통해 참된 유월절 음식을 먹게 된다. 그것은 지상에 세워지게 될 교회 가운데서 본질적인 기능을 한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교회 중에 마땅히 시행되어야 할 성찬에 연관된 의미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3-26)

 

 

 

사도바울은 지상 교회에서 행해지는 성찬이 주님께서 직접 명령하고 요구하신 거룩한 의례라는 사실을 증거 했다. 여기서 그가 성찬의례를 주님으로부터 받았다고 한 말의 의미는 교회적 상속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교회에는 항상 그리스도로부터 상속받은 성례가 존재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말씀선포와 성찬이 있는 곳에 교회가 존재함을 말한다. 즉 그 두 가지 요소가 없다면 참된 교회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흔히 선교에 있어서 목사가 있는 곳에 교회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교회로부터 말씀 사역자로 세움을 받은 목사가 공 예배를 통해 말씀선포와 성찬을 시행하게 될 때 비로소 교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유월절의 의미를 완성하신 후 교회는 주님의 재림 때까지 무교절과 같은 긴 기간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오실 때까지 유월절 음식을 먹었듯이 오늘날 우리도 그의 재림 때까지 그 유월절 음식을 통한 무교절 음식을 먹게 된다.

 

 

 

지상교회는 주님의 요구에 따라 매주일 공예배시에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성찬을 나누어야 한다. 그 때 사용되는 떡과 포도주는 간식(間食)의 성격이 아니라 주식(主食)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음식은 손과 입을 통해 우리의 육신이 실제로 먹음으로써 제공되는 신령한 영적인 식량이다.

 

 

 

성찬에 관해서는 잘못된 다양한 이론들이 있다. 그 가운데는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한다는 화체설, 떡과 잔 주변에 그리스도의 몸이 존재한다는 공제설, 그것은 단순한 상징일 뿐 그 이상은 아니라는 기념설 등이 있다. 로마가톨릭, 루터, 쯔빙글리 등이 각각 그렇게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성찬의 의미를 올바르게 깨달아야 하며 그것을 신학적인 이론으로 다루는 것으로써 만족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회 가운데 마땅히 존재해야 할 신앙의 본질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성찬은 성도들에게 허락된 구체적인 삶의 원동력이 된다. 즉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참된 양식을 제공함으로써 영혼의 영양을 공급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올바른 정리를 한 사람이 존 칼빈이다. 신학자들은 편의상 이를 ‘영적 임재설’이라 부른다.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그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찬은 단순한 상징적 의례가 아니라 실체적인 영적 음식의 공급원이다. 따라서 그 양식을 섭취하지 않고는 영혼이 자라날 수 없다. 성도들이 공 예배 시간에 선포되는 말씀과 더불어 믿음으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 그 영혼은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실제적으로 섭취한다. 즉 우리의 육신이 떡과 포도주를 먹을 때 우리의 영혼은 천상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섭취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바는 그 성찬의례는 개별적인 의미를 넘어 공동체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세례를 받은 각 성도들은 거룩한 음식을 직접 먹게 되지만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어린 성도들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그들 역시 그 본질적 의미와 더불어 실제적으로 그에 참여하게 된다. 즉 그들은 직접 떡과 포도주를 먹지 않지만 장성한 성도들의 성찬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섭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태중에 있는 아기나 아직 모유를 먹는 영아와도 같이 설명될 수 있다. 그 아기들은 직접 음식을 씹어 먹을 수 없지만 그 어미가 음식을 먹음으로써 태중에 있는 아기와 영아에게 영양을 간접적인 방법으로 공급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처럼 교회에 속한 어린 성도들도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직접 섭취하게 된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마지막 유월절날 밤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면서, 교회 가운데 있게 될 성찬의례의 제정과 더불어 그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신 것을 똑똑하게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모든 성도들은 세상 마지막 날까지 항상 떡과 포도주를 통한 성례를 지속적으로 나누어야만 한다.

 

 

 

출처 God`s Will 글쓴이 서성필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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