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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단`에 대한 이해

수호천사1 2015. 5. 30. 10:41

사단`에 대한 이해

 

 

 

히브리어로 `사단'(@f;c;, Satana'", Satan ) 은 `대적'을 의미한다. 다메섹 왕 하닷은 솔로몬의 대적이라고 불리운다(왕상11:14). 더 정확히 말하여 이러한 표현은 법정에서의 적수, 즉 고소자(송사자)를 가리킨다(계12:10, 여기서 마귀가 참소자로 불리운다). 자연적으로 `사단'이라는 말은 `고발자' 혹은 `비방자'를 의미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단'을 `마귀'라고 번역하는 것은 아주 타당한 번역이다. 희랍어의 'diavbolo'란 말의 정확한 의미도 역시 `고발자' 혹은 `비방자'의 뜻을 지니고 있다(요6:70-71, 여기서 유다를 `마귀'라고 불렀다).

 

 

1. 구약성경에서의 사단

구약의 가장 초기의 부분에서는 사단이 아직 독립적인 존재도 아니고, 또 사악한 존재도 아니다. 사단에 대하여 묘사한 가장 오래된 성경 원본인 스가랴 3:1에 의하면, 사단은 하나님의 보좌의 다른 편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와 함께 그 보좌의 한쪽 편에 자리를 잡고 있다. 또 욥기에서는 사단이 자기 스스로의 뜻을 나타낸다. 여기서 사단은 적어도 욥을 걸고 하나님과 내기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명시된 범위 안에서만 행동을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정하신 그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욥 1:12, 2:6). 하나님이 사단의 고삐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이다.

역대상 21:1에서 다윗으로 하여금 백성을 계수하게 한 악한 생각을 암시해 준 것은 곧 사단이었다. 이에 반하여 사무엘하 24:1의 구역(舊譯)에는 이같은 어리석음에 빠지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왕에 대한 그의 분노의 불길이 점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예언자들의 교훈 속에 흐르는 염세적인 경향이, 그리고 유대인들이 겪은 무시무시한 정치적인 사건들, 그뿐만 아니라 바사 종교(Persian religion)가 끼친 영향 따위가 이원적인 세계 개념의 발전을 이룩하게 하는 온상을 이루었다.

사단은 역사의 무대에서 더욱 더 극적이며, 독립적인 연출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단은 마치 조로아스터 교도들(Zoroastrians)과 마니교도들(Manichaeans) 사이에서와 같이, 그는 결코 하나님의 적대자로서의 위치는 확립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하나님보다 열등한 피조물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단의 이름은 초인간적 존재에 적용되고 있으나, 그것은 보통명사이지 고유명사는 아니다. 욥기나 스가랴서에서 볼 수 있는 사단의 상(像)은 후에 나오는 사단처럼 하나님께 대적하는 악령의 두목으로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행동하는 하나님께 예속된 존재에 불과하다. 사단의 활동은 주로 인간의 죄를 하나님께 고해바치는 것이었다. 이 단순한 고소자로의 사단이 이원론적 우주적 의미로 하나님께 대적하는 제령(諸靈)의 우두머리로서 생각하게 된 것은 후기 유대교에서이다. 

 

2. 후기 유대교에서의 사단

유대교에서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반신적(反神的)존재가 늘 사단의 명칭으로서 불리우고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벨리야알(l['Y'lib]], beliyyaal, `무익') 또는 마스테마(hm;fEc]M', mastemah, `적의')란 명칭이 보다 일반적이었다. 그 밖에 아자젤, 셈야자, 사마엘 등의 이름이 발견된다. 특히 벨리야알은 쿰란 종단(宗團)의 문헌에서 많이 발견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쿰란(Qumran)에서는, 세계는 `빛의 임군' `진리의 영'이 지배하는 빛의 영역과 `흑암의 천사' `불의의 영'이 지배하는 암흑의 영역의 둘로 명확히 나누어지는데, 벨리야알은 암혹의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수령, `혹암의 천사'이다. 이 쿰란의 이원론은 이란의 조로아스터교의 그것과 유사하다. 즉,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선악의 양자가 대립하고 있어 선은 아후라마즈다(Ahuramazda)가, 악은 앙그라마이뉴가 인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원론은 선악이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 윤리적 이원론이지만, 쿰란의 그것은 암흑의 천사 벨리야알도 하나님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며, 최후의 심판에서 하나님께 멸망당할 운명에 놓여 있다고 하는 상대적인 윤리적 이원론이다.

또 이 쿰란의 이원론에 영향을 준 묵시 문학의 하나인 요벨서에 의하면, 악령은 창세기 6:1-4에 나오는 타락한 천사의 자손이다. 나쁜 제령의 두목이 마스테마인데, 그는 인간을 죄로 유혹하여 참소하고, 심판의 사자(使者) 역할을 다할 뿐만 아니라, 거기서는 하나님의 지배에 대적하는 반신적 존재로 되고 있다.

사단은 가장 훌륭한 천사에 속하여 있었던 것과 더구나 모든 천사의 수령이었으나 결정적인 시기에 하나님께 대적하여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한 교만 때문에 다른 천사들과 같이 하늘에서 추방되었다. 랍비들에게 있어서 선악의 대립은 계시문학과 쿰란의 그것과 같이 이원론적 우주적인 것이 아니고, 종교 심리적이다. 즉, 그들은 적이 아니고 종교 심리적이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선악의 대립은 `선한 충동'과 `악한 충동'의 대립이다. 그들은 인간이 범하는 모든 죄의 뿌리를 이 `악한 충동' 안에서 발견하였다. 이 `악한 충동'과 사단, 그리고 죽음의 사자는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악한 충동'은 `선한 충동' 또는 율법에 의하여 극복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랍비들은 율법에 의거하는 자유로운 결단에 의하여 악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쿰란이나 계시문학에서와 같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을 초월한 우주적 존재로서의 사단의 상은 전개될 여지가 없었다. 여하튼간에 종말에는 이들 악의 세력이 멸망된다는 점에서는 후기 유대교는 일치하고 있다.     

                         

3. 신약에서의 사단

사단의 명칭에는 `사단'(satana'":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사도행전, 바울서신, 요한계시록), `마귀'(diavbolo":마태, 누가, 요한복음, 사도행전, 바울 서신,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요한1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시험하는 자'(oJ ponhrov":마13:16;요일5:18), `참소하던 자'(kathvgwr 계12:10), `원수'(ejcqrov":마13:39;눅10:19), `대적'(ajntivdiko":벧전5:8), `귀신의 왕'(aJ a[rcwntw'n daimonivwn:마 9:34,12:24;막3:22;눅11:15), `이 세상 임금'(oJ a[rcwn tou' kovsmou touvtou:요12:31,16:11), `공중의 권세 잡은 자'(a[rcwn th'" ejxousiva" tou' ajevro":엡2:2), `벨리알'(beliavr:고후6:15), `바알세불'(Beezebouvl:마10:25,12:24,27;막3:22;눅11:15,18-19) 등이 있다.

이상의 예에서, 신약은 사단의 상을 구약이나 후기 유대교의 사단 표상을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복음서에서 사단이 맨 처음 나타나는 것은 광야의 유혹 이야기, 즉 사단의 예수 시험이야기이다. 거기서 사단은 전에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광야에서는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이간시켜 불순종의 길로 타락시키려고 한 것처럼, 지금 예수까지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순종의 길에서 전락시키기 위하여 유혹으로써 시험하는 자로서 등장한다. 이것은 창세기 3장에 등장하는 뱀의 행위와 흡사하다.

이 뱀은 사단이 지향하는 바(유혹하고, 속이고, 인류를 죽음 속에 빠뜨리는 등)와 꼭 같은 모양으로 그것에 꼭 부합하는 행동을 하므로 시편이나(58:4) 또 후에 요한계시록이(12:9, 20:2)사단을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는 초기의 무대에서 흉악한 연출을 벌였던 `옛 뱀'과 동일시한 원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용도 사실상 뱀과 같은 것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뱀과 다르다고 할 수 없으며, 그도 역시 천사장 미가엘에게 패망당할 운명에 놓여 있다.

하여튼 어떤 경우이건 간에, 마귀를 (우연히) 뱀과 동일시한다고 해서 그가 이 땅에서만 권세를 부린다고 생각하여서는 안 된다. 그 권세는 중간계(中間界)인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도 나타난다. 마귀에게 어떠한 이름을 갖다 붙일지라도 그의 행동하는 자세는 항상 같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들의 허물을 비방하고 고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들을 죄 속에 빠지게 하는 길을 모색한다. 그것은 마귀 자신이 죄의 존재이기 때문이다(요일3:8). 그를`유혹자'라고 칭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마 4:3;살전3:5).

그는 인간을 유혹할 때 하나님께 순종치 않는 데 대한 보상으로 쾌락이나(고전7:5) 혹은 세상의 권세(마4:8-11) 혹은 하나님과 같이 되는 지식(창3:5) 등을 약속한다. 이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는 많은 거짓과 속임수를 쓴다. 이로써 그에게는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요8:44)라는 간판이 붙게 된다.

마귀가 공작을 하는데 있어서 뚜렷한 경향성을 나타내는 또 다른 수단은 살해이다. 즉, 그는 `사망의 주인'이다(히2:14;요8:44;계9:11;마10:28;요일3:11,12). 그는 사람의 행위의 원동체인 육체를 파괴시킴으로써 엎으려는 모든 계획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이시대의 관원들'(고전2:6-9)이 사실상으로는 사단으로 말미암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성도들을 핍박함으로 마귀의 종들이 된 원인이 이러한 마귀의 수단으로 인함이었다.

이와 같이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은 끊임없이 폭력과 기만의 수단을 쓰고 있으므로 믿는 자들은 극단의 용기와 경계 태세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엡6:11;약4:7;벧전5:8;고후2:11). 더우기 사단은 `빛의 사자'로 가장하기 때문이다(고후11:14). 양의 옷을 입은 이리들이나 개들에 대하여(마7:15;행20:29,30;빌 3:2;마7:6) 건전한 의심과 `뱀' 같은 지혜를 갖는 것은(마10:16) 신약성경이 가르쳐 주는 기본적인 덕목이다.

누구든지 사기를 당하였거나 혹은 속은 후에는 자기의 천진스러운 경신(硬信)이나 혹은 너그러운 신뢰감을 구실삼아 자기의 과오를 변명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더우기 사단이 속임수를 쓰고 기만하여 자기의 종으로 삼으려 하는 대상은 인간 각 개인들 뿐만 아니라 집단들이라는 것을 말해둔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정치적인 세력들은 다만 그들이 정의를 지지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이는 때에 한해서만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다(롬13:1-7). 만일 정부가 정의 대신에 전제정치가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죄 없는 사람을 학대한다면, 마치 요한계시록이 우리에게 생생한 사진으로 보여 주듯이, 그것은 다만 마귀 자식들에 불과한 흉악하고 더러운 `짐승들'의종이 되고 만다.

모든 성경 말씀의 전체적인 취지가 최고의 행악자인 사단의 자태를 나타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단은 `악한 자'로 낙인 찍혀져 있다(살후3:3;마6:13;요일2:13). 그는 인류의 가장 큰 적이다(마13:39). 현 세계에 있어서 그의 능력은 어떤 때는 `이세상의 관원 혹은 통치자'(고전2:8;요14:30,16:11), 또 어떤 때는 `이 세상 신'(고후4:4)이라는 명패가 그에게 붙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우리 세대에 있어서 그의 세력은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에 있어서도 떨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는 역시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이다(엡2:2). 그러면 사단의 운명은 무엇이겠는가?  

그는 말일에 그의 계획이 이루어졌다면 그에게 확실한 승리를 가져왔었어야만 할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쓰라린 참패를 당한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 곧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 사건으로 인함이다. 인류를 파멸의 운명 속에 몰아넣으려던 그의 고소장이 이 십자가를 통하여 무효가 되어버렸다(골2:14-15). 이것이 가장 신기한 십자가의 위대한 역설적인 국면이다.

그러나 투쟁은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다. `사단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신 예수님의 통찰은(눅10:18) 그 당시에 일어난 어떤 사건이 나타난 것이라기보다는, 그의 선지자적인 환상이었던 듯하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생활 속에서, 또는 그의 육체에서까지(고후12:7), 그리스도와 그의 적대되는 세력들과의 투쟁의 반격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필요한 경우에는 순교까지 당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으며, 또한 예수님의 산상보훈을 자기 자신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해 주는 생활의 방편으로 생각하여서는 결코 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의 좋은 씨를 심은 자들은 그들의 밭에 나는 잡초들에 대하여는 책임을 질 수가 없다. 그것은 `원수'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마13:39). 그러나 결국에 가서는 사단과 `그의 사자들'은 전멸당하고 말 것이라는 것은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이것은 분명히 신약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다. 특히 바울 서신과 요한계시록에서 뚜렷하다(롬16:20;고전15:25-28;계 14:10,19:20,20:10,21:8;마25:41).

사단으로 인하여 닥치는 모든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믿는 자는 감당치 못할 시험을 당하도록 허락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미쁘심을 확신케 된다(고전10:13). 사람들을 시험하는 이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명확히 말하고 있으므로(약1:13), 우리가 잘 아는 주기도문에서의 여섯 번째의 간구인 "우리를 유혹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를,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로 고쳐 번역된 것은 옳다고 하겠다. 비록 같은 사건일지라도 하나님이 유혹이 될 수 있는 그러한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마귀의 자식'이란 표현은 반드시 신화적인 의미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마귀의 종들이란, 믿지 않는 유대인들(요8:44), 또 궤계가 가득한 술객들(행13:10)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면에, 더욱 글자 그대로 해석해서 마귀가 어떤 사람 속에 들어감으로 그가 마귀의 종이 되는 경우는 마치 가룟 유다의 경우(눅22:3;요13:27)와 마귀를 소유함으로 마귀의 종이 되는 경우는 베드로의 경우(막8:33)와 같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사단의 예수 시험 이야기로 되돌아가 거기에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순종의 도를 다함으로써, 전에 아담이나 이스라엘이 굴복한 사단의 유혹을 극복하여 이 세상에 대한 사단의 지배를 끝마치게 하고, 하나님의 지배를 확립한다는 모티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단의 지배를 종식시키는 순종의 도를 방해하는 자는 베드로일찌라도 예수께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막8:33)라고 엄히 꾸짖었던 것이다.

또 예수님의 귀신 추방의 역사는 사단과 귀신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 하나님의 지배의 도래로 보여진다. 바알세불 문답은 그 점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 준다(막3:20-30). 귀신 추방에 대한 율법 학자들의 비난에 대하여 예수는 자기의 역사를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단의 왕국 내의 내부 항쟁으로서가 아니고, `강한 자'(사단)를 결박한 다음에 사단의 수하 귀신들에 대한 예수의 맹공격으로서 이해하고 있다. 이 `강한 자의 결박'이란, 광야에 있어서 예수께서 사단의 시험에 이긴 사건을 가리킨다고 생각된다.

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까지 순종했다고 하는 72제자의 보고에 대하여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10:18)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같은 사태를 지적한다고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다. 요한복음과 그 서신에는 빛과 어두움, 진리와 거짓, 하나님과 사단, 하나님의 아들과 마귀의 자식의 대립은 특히 쿰란의 이원론과 유사하다.

요한복음의 `이 세상 임금'이란 표현은 이미 계시문학(위경 이사야의 순교와 승천 2:4 기타)에도 보인다. 그러나 양자의 차이는 후기 유대교에서는 `이 세상 임금'에 대한 심판은 장래일인데 대하여, 요한복음에서는 그 심판은 예수의 십자가에서 현재의 사실이다(요12:31-).

그 밖의 서신에서 사단은 박해나 시험에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공격할 자로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교회의 싸움은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이고, 교회를 박해하는 유대인은 `사단의 회'(계2:9,3:9)라고 한다. 이 사단은 또 천상에서 미가엘과 그 사자들과 싸워 패한 용이며, 낙원에서 유혹한 뱀이기도 하다(계12:7-).

 

이상 구약에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사단 상을 통하여 말할 수 있는 사단의 본질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파괴하고, 인간(과 세계)을 죄와 죽음 속으로 떨어뜨리는 것, 즉 하나님의 선한 창조 역사를 부정하는 허무의 영, 어두움과 혼돈의 영이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의 사단에 대한 승리, 즉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에 의하여 이미 이세상의 어떠한 것도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롬8:31 ).  <슈퍼바이블>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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