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은 왜 이슬람을 알아야 하는가?
Ⅰ. 들어가는 글
이슬람은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주님이 오시기 전에 복음을 전해야 할 마지막 거인이다. 필자는 19년 전 영국에서 사역지를 놓고 기도하면서 ‘위대한 심판(The Great Reckoning)’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의 저자는 “다가올 세대에는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무함마드의 이슬람이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었다.
그 후 공산주의는 75년 만에 붕괴되었으며, 이슬람은 급속도로 공산주의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이슬람은 지난 14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선교를 주도해 왔던 서구 세계는 이러한 이슬람의 성장을 애써 외면해 왔다.
사무엘 헌팅턴은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자신의 적수가 누구인지 알 때만 내가 누구인지 안다는 전제 아래 ‘앞으로 미국은 공산주의가 무너짐에 따라 가상의 적으로서 이슬람을 겨냥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사태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미국과 맞서는 존재로서 이슬람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이슬람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이 이슬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주신 ‘지상명령’ 때문이다. 우리는 그 명령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미전도 지역인 이슬람을 알아야 하고, 무슬림들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치시고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위대한 사명,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장 8절)는 그 명령에 우리는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Ⅱ. 이슬람을 알아야 하는 이유
1. 무슬림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현재 전 세계 인구는 약 70억 명이다. 이 가운데 무슬림은 약 16억으로, 22% 정도이다. 이슬람을 아랍 지역의 종교로만 여겨왔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 어느 곳에서나 대도시에서는 모스크와 무슬림들을 만나는 상황이 되었다. 이미 지역과 국경을 넘어 만날 수 있는 이슬람, 이런 이슬람을 향한 기독교의 선교적인 접근은 아주 미미하였다. 현재까지도 기독교 선교는 미완성 사역이다.
전 세계 미전도종족은 약 6천~8천 개이고, 그 중 성경이 번역되지 않은 종족은 4천 개나 된다. 영국의 데이비드 바렛(David Barrett)은 미전도종족에 대한 선교지도를 A, B, C로 구분하였다. A가 미복음화 된 지역이다. 약 30개 국가로 인구는 13억 정도이며 23.7%이다. B지역은 전도된 국가이면서도 기독교 신자가 적다. 이들 나라가 76개국으로서 23억 정도이다.
C국가는 기독교 국가로서 145개국이며 인구는 18억이다. 기독교인이 60% 이상인 나라들이다. 전 세계 교회의 모든 수입 중에 99.8%가 이미 복음화된 곳에서, 0.09%만이 비기독교지역에서, 0.01%만이 A지역, 즉 미복음화된 지역을 위해서 사용된다. 전 세계 기독교 선교사 가운데 3천 명만이 이곳에서 사역하고 있다. 전 세계 선교사는 약 17만 명이다. 전체의 2%만이 미전도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는데, 그곳의 대부분은 무슬림들이 살고 있다.
기독교에서 이슬람권을 향해 최초로 선교적 접근을 한 사람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1181-1226)였다. 그는 5차 십자군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 이집트의 술탄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함으로 선교사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물론 가시적인 열매는 없었으나, 중요한 것은 이슬람 선교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은 순교를 각오하고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1219년 다섯 명의 수도사가 모로코로 갔다. 그러나 1년 후에 그들은 순교하였다.
실제로 최초로 무슬림을 위하여 조직적으로 사역한 선교사는 레이몬드 룰(Raymond Lull, 1235-1316)이다. 그는 이슬람권에 보낼 선교사의 훈련을 위하여, 1290년 아랍어과와 신학부가 있는 몽펠리에 대학을 설립하였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유럽에 이슬람과 아랍에 관한 학문을 고취시켰다.
그는 82세의 노구로 튀니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베자야 해변에서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헨리 마틴(Henry Martyn, 1781-1812)은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성공회 목사로서 인도로 가서 동인도회사의 전임 사목으로 있다가 힌두어 성경을 번역했고 이란으로 가서 이란어 성경을 번역했지만, 결핵으로 인해 겨우 31세의 나이에 터키 토카트에서 죽었다.
그 후는 이슬람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무엘 쯔머(Samuel Zwemer, 1867-1952)이다. 학생신앙운동에 자극을 받고 헌신하여 아랍선교회를 세우고, 그의 친구들과 아랍어를 배우기 위하여 레바논에 들어갔으며, 1900년대 초반에 이집트에서 사역을 하였고, 40년 동안 20여명의 개종자를 얻었다. 이슬람권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국에 알렸다. 그는 21년간 아라비아반도에서 사역을 하였다.
이것이 19세기까지 이슬람권에 들어가서 사역한 사람들이다. 이슬람권을 향한 몇몇 선교사들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는 달리, 서구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이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반목과 갈등의 관계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항상 걸림돌이 되어왔다. 더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의 많은 기독교인들조차도 이슬람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 않으며, 무슬림에 대해 배우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해야 할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에 대해 무관심함에 따라, 결국 무슬림들은 복음을 듣고 진리를 알 수 있는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무슬림들은 자연스럽게 서구교회의 냉대를 받았으며, 관심 밖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서구의 자세가 지속되어 왔는데, 이는 이슬람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장벽과 함께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무관심으로 인하여, 성경이 아랍어로 번역된 것은 무함마드에 의하여 이슬람이 시작된 지 227년이 지난 837년이었다. 아랍어로 성경이 번역되었다고 해도 정작 아랍어 성경이 출판된 것은 1516년이다. 기독교의 중심이었던 서구의 이슬람에 대한 심리적 원수관계로 인하여, 전 세계 무슬림들의 80%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게 되었다.
2. 무슬림들은 구교회에게서 무시당했다.
기독교회사에서 무슬림이 구교회의 학대를 받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1099년부터 8차에 걸쳐 일어났던 십자군은 성지탈환이라는 구호 아래 약 200년간 예루살렘을 다스렸는데, 무슬림 역사가들에 의하면 군인들은 말을 타고 모스크 안을 휘젓고 다닐 때 모스크 바닥에 피가 얼마나 흥건했던지 말의 굽이 잠길 정도였다고 한다.
그때 많은 무슬림이 학살당함으로써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에 큰 상처가 생겨난 것이다. 데이비드 바렛은 세계 그리스도인 백과사전(The World Christian Encyclopedia)에서, AD 33년부터 AD 2000년까지 약 69,420,000명의 남녀 및 아이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 전체 인원 중에 9,101,000명의 기독교인들이 무슬림들에 의해 순교를 당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이기적이고 잔인한 인종주의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의 복음의 진보와 역사 앞에 이 같은 엄청난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독교를 가장한 인종주의와 차별주의에 대해 분명한 분별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인류를 편애하지 아니하시고 전 세계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무슬림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3. 이슬람은 과거 기독교 지역에서 성장하고 있다.
무함마드가 살던 시절에 중동은 기독교의 중심이었다. 북부아프리카는 가장 큰 교구를 자랑했었다. 초대교회 기독교는 5곳에 거점을 두고 있었다.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 로마였다. 그런데 이 5곳 중에 지역적으로 4곳은 모두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가 있었을까?
첫째, 당시 비잔틴 제국은 페르시아와 100년 넘게 지속된 전쟁으로 인해, 많은 세금을 백성들에게 부과하였다. 특히 비잔틴 제국 아래에서 살아가는 기독교 이단들에게 더욱 가중되었다. 이집트의 경우 비잔틴 제국에 의해 이단으로 판명된 이후에 가중한 세금을 견디기 힘들어 하던 중,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이슬람을 해방자로 여기고 이에 협력하였다.
수백 년 동안 쌓아왔던 신학적인 공로와 업적들이, 단지 몇십 년의 역사밖에 없던 이슬람에게 넘어간 것이다. 기독교 안의 수 세기에 걸친 이단 논쟁과 끊임없는 영토전쟁 등으로 인해서, 기독교인들의 복음 전파에 대한 열정은 식어갔고 믿음 또한 한계에 이르렀다. 그로 인해 이슬람의 협박에 맞서 싸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둘째, 기독교인들이 종교적 신념보다 정치적·경제적 실리를 택했기 때문이다. 이슬람 정치가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지지야(Jizya)라는 약간의 종교세(인두세)만 내면 각자의 종교에 대하여 자유를 보장해 주었다. 이는 아주 관대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적 자유를 주기는 하였지만, 완전한 자유는 아니었다.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딤미가 되는 것이었다. 딤미는 2등 국민으로서 정치적·사회적인 불평등을 받았다. 그러나 이슬람으로 개종할 경우, 고위관리·군장성 등 사회 지도층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딤미(Dhimma)는 이슬람의 정부 아래서 샤리아법의 통치와 보호를 받는 비무슬림들을 의미한다. 딤미는 노예에 비해서는 지위상의 유리한 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무슬림보다는 사회 전반적인 권리 행사에 있어서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들에게는 지지야(인두세)라는 세금이 부과되었다. 딤미는 원래 성서의 사람들인 유대인과 기독교인 뿐이었으나, 후에 시크교·조로아스터교·힌두교·불교도 포함하게 되었다. 이들의 이슬람 개종은 매우 쉽게 열려 있어, 개종을 하면 모든 권리와 자유를 얻게 하였다.
셋째, 무슬림 남자들이 샤리아 법에 따라서 기독교 여성들과 결혼을 하게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기독교인은 감소하게 되었다.
4. 이슬람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종교이다.
1930년 전 세계 이슬람 인구는 2억 3백만 명이었다. 오늘날 16억이 되었다. 1970년에 이슬람 인구는 세계 인구의 15%를 차지하였지만, 2000년에 20%로 5%가 늘어났다. 반면에 기독교는 1970년에 34%에서 2000년에 33%로 1%가 감소하였다. 이러한 통계는 비록 이슬람이 기독교에 비하여 600년 후인 7세기 초에 시작되었지만, 문화와 인종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으며, 많은 국가·지역에서 기독교인 수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럽의 경우에는 이슬람 인구가 1970년에 720만 명에서 2007년 5300만 명으로 성장했다.
그동안 아시아 지역 기독교인 수는 1억 1,900만 명에서 2억 1,100만 명으로 증가하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이슬람 인구는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41.32%로, 3억 2천4백10만 명이다.
이슬람을 양적인 면에서 기독교와 비교해 보면, 기독교 인구는 두 배로 되는 데 47년이 걸렸지만 이슬람 인구는 두 배로 되는 데 2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슬람은 문화와 인종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고 있으며, 많은 땅에서 기독교인의 수를 압도하고 있는 사실을 정확히 보여준다.
5. 한국에서도 이슬람이 성장하고 있다.
국내 외국인 체류자는 2008년 12월 말 1,158,866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인도네시아 28,696명, 우즈베키스탄 21,588명, 방글라데시 12,154명, 파키스탄 10,044명의 순이다. 이슬람 국가들 가운데 한국의 근접 국가인 극동아시아 국가들 다음으로 많은 수의 체류자들이 있다. 또한 이들 가운데 불법 체류자는 200,489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우즈베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이란 등의 불법체류자는 29,959여 명에 달하고 있다. 전체 외국인 불법 체류율은 17.2%이며, 이슬람 국가 국민 불법 체류율은 34.5%로, 비이슬람 국가 국민 불법 체류율 15.7%보다 크게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전국에 9곳의 모스크와 수많은 무쌀라(기도처)에 모이고 있다. 특히 이들의 무쌀라는 크고 작은 국가별·지역별 모임들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불법체류자들의 피난처이며, 정보 교환과 만남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무슬림 남성들이 한국 여성들과 결혼하여 국적을 취득하는 사람들이 두드러지게 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대표적인 이슬람 국가들 중에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의 경우는 한국 남성들과 결혼 비율이 월등히 높게 나오는 반면, 한국 여성과 결혼하는 비율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남자 배우자의 국적 중에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이란, 나이지리아가 드러나고 있다.
한국 내 이슬람은 1989년부터 국내 노동력 부족을 충당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 이주가 1990년대 이르러 본격화되었고, 체류 외국인의 10% 정도가 무슬림으로서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 최소한 15만 이상의 이슬람권 출신의 외국인이 국내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한국과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맺고 서울에 공관을 설치하고 있는 이슬람 국가만도 21개국에 이르고 있다.
2001년도 5월 신동아에 글을 게재한 한국인 무슬림 무함마드 깐수(정수일, 전단국대교수)는 “약 4만 명의 신도를 구성원으로 갖게 되었으며, 범세계적 이슬람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수능에서 아랍어 지원자가 증가하고 있다. 수능에서 0.1점은 상당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학생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 고득점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과목인 아랍어를 선택하고 있다. 아랍어 응시자는 05학년도 531명(0.43%), 06학년도 2,184명(2.25%), 07학년도 5,072명(5.58%), 08학년도 13,588명(15.2%), 09학년도 29,278명(29.3%)으로, 매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무엇이 학생들에게 아랍어를 선택하도록 하였는가? 아랍어 시험이 쉽게 출제되어 ‘조금만 공부해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과목’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아랍어는 학생들의 평균점이 매우 낮고 표준편차가 커, 몇 문제를 더 맞추면 표준점수가 높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로 나갈 때 일반 고교에 아랍어가 정규과목으로 채택되면, 학생들이 이슬람에 대해 친밀감을 갖게 되어 내국인의 무슬림화가 가속될 수 있다. 또한 아랍어 교사 필요를 이유로 무슬림인 아랍어 교사를 초빙하게 될 수 있다.
6. 이슬람은 잘못된 기독교를 고치기 위한 종교라고 주장한다.
서구에서 이슬람은 그 자체가 유대교와 기독교와 같은 종류의 신성한 근원에서 나왔다며, 무슬림들은 ‘알라’를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하나님과 같은 신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하여 유대교가 세워지고 예수를 통하여 기독교가 세워졌듯이, 무함마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보여주고 계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프리카나 비서구 지역에서는 이슬람을 유대교와 기독교의 잘못을 고치기 위해서 온 종교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이슬람의 양면성을 아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비서구 지역, 특별히 아프리카에서 그들은 “기독교는 백인의 종교이며, 아프리카의 종교는 이슬람이었는데 백인들이 노예제도를 통하여 자신들을 기독교로 바꾸어 놓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무함마드 이전에는 아프리카가 기독교 지역이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슬람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기독교의 가장 큰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는데도 말이다.
7. 이슬람은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종교이다.
이슬람 학자들은 성경이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부패되었기에 알라가 무슬림에게 꾸란을 주었다고 가르친다. 본래 하나님이께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준 구약과 신약의 메시지는 옳은 것이었으나, 후에 유대인에 의해서 구약이 변질되었고, 기독교인에 의해서 신약이 그들의 욕심에 따라 변질되고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꾸란에서도 그 근거를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꾸란은 성경의 권위를 강하게 인정하고 있는데, 그 증거로 무함마드 자신이 계시에 의심이 생겼을 때 성경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였다.
“우리(알라)가 그대에게 계시한 것에 그대가 의심한다면 그대 이전에 성서를 읽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실로 그대의 주님으로부터 진리가 그대에게 이르렀나니 의심하는 자가 되지 말라”(수라 10장 94절) 실제로 무슬림 학자들은 꾸란이 지닌 이러한 모순 때문에 꾸란을 가르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부패하였기에 무슬림에게 성경 읽는 것을 금지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8. 이슬람은 기독교와 대비하여 자신을 정의하고 있다.
무함마드는 기독교에 대하여 그때그때마다 다른 태도를 취하였다. 그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는 우호와 적대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흔들렸다. 메디나에서 유대인에 대항하여 싸울 때 기독교에 대하여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아라비아 반도에서 지배력을 확보했을 때, 기독교인들을 신앙의 공동체에서 배제하였다. 이런 배제는 서구 쪽을 장악하려고 하는 그의 의지와 관련되어 있었다.
시리아에 있는 비잔틴 전초기지에 군대를 보내겠다는 그의 군사적 결단은,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 불행한 대결의 시작이었다. 그 신학적 정당성을 계시로 결정지었다. “알라와 내세를 믿지 아니하며 알라와 선지자가 금기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를 따르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비록 그들이 성서의 백성이라 하더라도 항복하여 지지야를 지불할 때 까지 투쟁하라 그들이 스스로 저주스러움을 느끼리라”(꾸란 9:29) 이로써 무함마드는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결단을 영구히 신학적으로 정당화했던 것이다.
이슬람은 언제나 기독교와 유대교를 대비하여 자신들을 정의하고 있기에, 꾸란에 명백하게 정의되어 있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내용을 알아야 한다.
9. 예수님은 무슬림을 위하여도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슬람은 현재 전 세계에서 기독교 다음으로 큰, 명실상부한 세계 제2의 종교가 되었다. 실제로 그 인구는 16억 명에 이른다. 우리가 이러한 숫자적인 명분이 아니더라도 이슬람 선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예수님께서 무슬림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이다. 이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11가지 이유보다 더 강력하고 중요하다. 예수님은 복음 전파에 대해 “모든 민족에서 복음이 전파되어야” 오신다고 말씀하셨다. 이때 모든 민족 속에는 당연히 무슬림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제자들이다. 우리들이 복음의 불모지라고 여기는 이슬람권에 가기를 주저한다면, 주님이 보이신 모범은 우리에게 벽화와 같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조차 이해하지 못할 때, 제자들을 데리고 당시 유대인이 경멸하던 지역인 사마리아에 가서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이방 땅에 가심으로써, 제자들에게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모든 민족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셨다. 예수님은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모든 민족에게 동등하게 다가가신 것이다.
오늘 교회의 현실에서 본다면, 이슬람은 다가가기 어렵고 힘들게 여겨지지만, 무슬림들이 날마다 암송하고 있는 꾸란의 이사(Isa)는 성경의 예수님이시며, 이 진리가 오늘 한국 교회를 통하여 무슬림들에게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
Ⅲ. 나가는 글
필자의 책 “이슬람이 다가오고 있다”(2003년, 쿰란출판사)의 서문에서 “어느 날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주변의 이웃들이 이슬람을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에 이슬람에 대하여 배워야 한다”고 썼다. 그러나 이제는 이슬람이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기독교의 진리를 고수함과 동시에 우리 곁에 다가온 이슬람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이 진리를 이슬람을 따르는 무슬림들에게도 전해주어야 한다. 우리가 이슬람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복음을 잘 전하기 위해서이다.
1865년 2개월 반 동안 한국의 서해안을 따라 복음을 전하였고 1866년 9월 평양에서 순교했던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으로 오기 전 1866년 4월 4일 런던 선교회로 보낸 기도편지에서 “조선인들은 다른 어느 민족보다 복음 진리에 관심이 많은 민족입니다”라고 썼다. 복음 진리에 관심이 많아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부흥을 경험한 한국교회는, 이제 복음의 빚을 갚고자 무슬림들에게 나아가야 한다.
글쓴이: 유해석 선교사(FIM국제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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