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종말

[스크랩] 특강:천년왕국의 진실성(3)

수호천사1 2015. 2. 21. 23:02

Ⅳ. 무천년설의 핵심사상


(一) 무천년설 핵심내용 / 도표 참조


1. 무천년설은 계시록 20장 해석에 있어서 성경 해석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2. 무천년설은 종말에 대해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 대심판, 영원한 나라의 도래로 본다.

3. 무천년설은 천년 왕국을 역사적으로 보지 않고 ‘상징’으로 본다. 그래서 도표에 천년 왕국이 없다.

4. 무천년설은 전천년설의 문제점들을 거의 해결할 수 있다.

5. 무천년설의 도표는 성경과 일치하고 있다.

6. 무천년설이라고 완벽한 사상이라고 할 수 없다.

⇒ 무천년설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성도들의 부활과 대심판 이후

그리고 새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여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종말론이다.


(二) 무천년설의 핵심 내용에 대한 설명


무천년설은 개혁주의 신학 사상이다. 반면에 전천년설은 세대주의 사상이다. 그러나 역사적으개혁주의(무천년설) 사상보다는 세대주의(전천년설) 사상이 앞서고 있다. 무천년설이 비록 전천년설보다 나중에 나왔지만 더 성경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전천년설의 수많고 많은 문제점들을 무천년설은 거의 해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여기서 유념할 것은 무천년설이 나중에 나왔다고 해서 전천년설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보완한 사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천년설은 애초부터 성경적으로 접근한 독자적인 사상이다. 그래서 전천년설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알게 되어 오히려 제시하게 된 것이다. 결코 전천년설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몸부림치다가 무천년설을 주장하게 된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무천년설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첫째는 무천년설은 계시록 20장 해석에 있어서 성경 해석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둘째는 무천년설은 종말에 순서를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 대 심판, 영원한 나라의 도래로 본다. 셋째는 무천년설은 전천년설의 문제점들을 거의 해결할 수 있다. 넷째는 무천년설이라고 해도 완벽한 사상이라고 할 수 없다.


1. 무천년설은 계시록 20장 해석에 있어서 성경 해석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무천년설은 계시록 20장 해석에 있어서 성경 해석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는 말은 성경 해석의 핵심적인 원리(①성경은 성경으로 해석 ②저자의 의도 ③본문의 배경)를 따라 해석한다는 말이다.


1.1. 계시록 20:1-6절의 해석

천년 왕국은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 사상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천년 왕국은 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분명히 존재하는 천왕국이다. 그러나 신학 사상에 따라 주장하는 견해는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천년 왕국이 기록된 계시록 20:1-6절을 해석하는데 다음 세 가지를 전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천년 왕국설을 진실하게 알 수 없다.


첫째는 저자의 의도이다. 천년 왕국은 성경에 단 한 번만 나오고 있다. 계시록 20장 외에는 성경 어디에도 천년 왕국에 관한 기록이 없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 등 종말에 대해 다양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천년 왕국’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심지어는 예수님도 종말에 대해 장엄하게 설교하며 가르쳤지만 천년 왕국에 대해서는 함구(缄口)하셨다(마24장). 천년 왕국에 관한 것은 유일하게 계시록 20장에만 나온다. 이것은 ‘저자의 의도’를 알아야 천년 왕국의 진실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둘째는 계시록 20:1-6절은 1-3절(전반부)과 4-6절(후반부) 두 부분으로 분명하게 분하고 있다는 점이다(성경 참조). 이것은 사도 요한이 전반부와 후반부에 각각 다른 상황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코 두 부분은 하나일 수 없다. 이것도 저자의 의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 본문의 배경을 중시하지 않으면 저자의 의도를 알 수 없다. 그래서 계시록 20:1-6절의 바석의 원리를 적용해야 만이 바르게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계시록 20:1-6절에 나온 이 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근본적으로 해석을 달리 할 수밖에 다. 그래서 무천년설의 핵심을 말하면서 “무천년설은 계시록 20장 해석에 있어서 성경 해석의 원를 따르고 있다.”고 한 것이다.


계시록 전반부(20:1-3)는 사단의 결박에 대해 기록하고 있으며, 후반부(20:4-6)는 예수를 증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순교를 당하는 영혼들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는 장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두 부분은 모든 면이 다른 상황인 것이다. 전천년설에서는 후반부 상황, ‘천년’은 예수 그리스도 재림 이후에 이 땅에 세워질 역사적인 년 왕국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무천년설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로 본다. 그래서 여기 천년은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전반부와 후반부는 각각 다른 상황을 말하고 있다. 전반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왔때(초림), 사단을 결박했던 상황을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후반부는 지금 현재 천상있는 성도들의 영혼들이 왕 노릇 하고 있는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전반부 배경은 이 땅이며, 후반부 배경은 천상이라는 말이다. 완전히 다른 배경인 것이다. 그러나 전천년설에서는 천년 왕국에 치중하는 해석 방법을 보편적으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무천년설에서는 본문에 충실하면서 각각 다른 배경에서 해석을 하고 있다.


<계시록 20:1-3절 해석>

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

하여 3) 무저갱에 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본 절에서 중요하게 알아야 할 것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사단의 결박’이다. (2) ‘천년 기간’이다. (3) ‘무저갱(열쇄)’이다. (4) ‘만국을 다스리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다. 이 네 가지를 정직하게 밝혀내는 것이 본문의 진실한 해석일 것이다.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왔다는 사실에서 분명 본 절의 배경은 세상(땅)이다.


본문의 핵심은 사단의 결박이다(1번 해석).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은 천년 왕국이 아니다. 예수께서 사단을 결박한 환상을 본 것이다. 그 과정을 보면 네 가지이다. ① 사단의 정체성으로서 용, 뱀, 마귀, 단을 말한다. ② 사단을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을 했다는 것이다. ③ 사단을 무저갱으던져 년이 차기까지 가두었다는 것이다. ④ 그 후에 잠간 풀어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단을 결박한 것을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본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단을 결박하는 목적은 천년이 차기까지 열방을 더 이상 미혹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4번 해석). 여기서 사도 요한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천년 왕국이 아니라 사단의 결박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왜 사단을 결박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밝히려고 한 것이다. 저자의 의도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런데 전천년설에서는 사도 요한의 의도를 벗어나 ‘천년 왕국설’로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저자의 의도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사단을 결박할 수 있는 권세가 누구에게 있는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마9:32-34). 우리는 여기서 본문의 배경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필요가 있다. 본문의 배경은 하늘이나 공중이 아니라 이 세상 땅에서 있었던 일이다.


계시록을 쓰게 된 최대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와서 사단(귀신)을 결박시켰다(마4:24, 8:28, 17:18 등). 그리고 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할 수 있는 권세까지 부여하셨다(막6:7). 왜냐하면 사단의 결박은 곧 복음전파와 교회 시대까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지상 명령을 주셨다(마28:19). 우리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과 관련하여 제자들의 이런 질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일 사단이 옛날 수법로 계속해서 열방을 미혹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사도 요한은 계시록 20:1-3절에서 이러한 질문에 대해 해답을 주고 있다. 요한의 대답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시작된 복음 시대에는 사단이 계속해서 과거에 방법대로 열방을 미혹하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사단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결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자 여러분은 복음을 전할 수 있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을 수 있을 것이니 교회를 세우고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어라.”


이 말은 사단이 결박되었다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도는 “사단이 결박되어 있는 동안 만민들이 진리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배우지 못하도록 미혹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사단은 잠깐 놓아주었기 때문에 현재 활동은 하고 있지만 예수께 결박당하기 전처럼 당당하게 활동할 수 없으므로 성도들을 전적으로 미혹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가 역사적으로 세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의 초림 때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미 결박당해 있는 상태이다. 사실은 예수님께서 사역던 사복음서에서 충분히 발견되고 있다(마12:29; 눅10:17-29). 사단의 결박은 예수의 제자들선교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단을 결박하지 않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는 지상 명령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사단을 결박한 것이다.


예수의 말씀 속에 사단의 결박은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마12:28). 마태복음 13장은 천국 비유장이다. 씨뿌리는 비유(13:24-30; 37-43)는 사단과 하나님 나라의 관한 말씀이다. 여기 원수는 사단을 말한다(39절). 그러므로 사단의 추방은 하나님 나라가 임재 했다는 증거이며, 복음이 지금 모든 나라와 모든 속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재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가 죽음 사망 권세에서 다시 살아난 것도 사단에게 승리했기 때문이다(딛3:1; 골2:15). 이처럼 사탄이 그리스도의 초림 때에 결박되었다고 신약 성경은 다양하게 증언해 주고 있다.


사복음서 기자들이나 서신서 기자들은 사단(귀신)이 제어당하는 현상만 기록하고 있다. 사단의 결박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왜 귀신들이 쉽게 제어당하고 있는 이유를 모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여기에 해답을 주고 있다. ‘사단을 결박한 목적은 성도들을 전적으로 미혹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사도들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재하기 위해서였다.’ 곧 교회 시대를 본 것이다.


여기 ‘천’이라는 숫자는 사단을 결박하는 기간을 말한다. 천년 왕국 기간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자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계시록은 상징적인 숫자가 많이 나온다. 특히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천년 왕국’은 계시록 본문 외에 전혀 언급이 없다. 여기 천년 왕국이 전천년설에서 말한 것처럼 사적이라면 사도 바울이나 예수님이 종말에 대해 말하면서 천년 왕국을 두 번 세 번은 아니라 할지라도 한 번쯤은 언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예수님은 천년 왕국에 대해 전혀 언급없다. 심지어는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도 천년 왕국 생활과 제반사항(구원, 부활 등) 등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무천년설에서는 여기 ‘천년’이라는 숫자를 문자적으로 보지 않고 십사만 사천(계7:4), 십 사 장로(계11:16), 수많은 재앙들의 현상들(계8:10, 12:4)과 같이 ‘상징’적으로 본다. 여기 상징라는 말은 ‘천년 기간’은 역사적인 기간이 아니라 ‘완전한 기간’ 곧 불확정한 매우 긴 기간으로 보는 것이다(여기 1,000은 완전 수 10을 세제곱한 수이다(10x10x10, 여기 세번도 완전 수). 결코 천년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천년은 천년왕국설이 핵심이기 때문에 계시록 20:4-6절 해설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다음 해석은 ‘무저갱(열쇠)’이다(3번 해석). 여기 무저갱은 사단이 들어가서 영원히 사는 곳이 아니다. 왜냐하면 계시록 20:10, 14, 15절에 나오는 ‘불못’이 최후의 형벌을 받는 곳으로 사도 요한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못’은 20:1, 3절에 나오는 ‘무갱’과는 다른 개념이다. 그러므로 여기 저갱은 사단이 최후의 형벌을 받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천들이 하늘에서 ‘무저갱 열쇠’를 가지고 내려 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 상황은 여전히 땅에서 있었던 일이며,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서 사단을 결박하는 상황인 것이다.


‘열쇠’의 특징은 잠그고 푸는 기능이다. 예수께서도 열쇠에 대해 아주 중요하게 언급한 바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상에 내(예수)교회를 세울 것을 말씀하셨다(마16:18, 19). 교회론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교회를 위임하신 장면이다. 예수님은 회 위임식베드로(제자들)에게 사단을 제압하라는 의미에서 열쇠를 부여(附与)했다. 이 열쇠의 형태는 실제적인 열쇠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열쇠이긴 하지만 실제성을 지닌 의미 있는 열쇠이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제자들이 교회를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 천사들이 하늘에서 가지고 내려온 무저갱의 열쇠도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것이다.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무저갱의 열쇠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부여했던 열쇠는 이런 의미에서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사단을 제어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사도 요한이 사용하고 있는 ‘무저갱(열쇠)’이라는 단어는 사단의 행동이 제압당하는 법에 한 상징적으로 볼 수 있다. 사도 요한은 천년으로 말하고 있실제적인 기간은 예수의 초림에서부터 예수의 재림 때까지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도 요한이 왜 사단이 결박당하는 기간을 ‘천년’이라는 숫자로 표기했을까?


여기 ‘천년’은 숫자적이며 역사적으로 천년을 말하고 있을까? 아니면 계시록에 대부분의 숫자가 상징적이듯 여기 천년도 동일한 상징적인 의미일까? 실상은 이 물음이 해결된다면 ‘천년’이라는 비밀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전천년설은 전자를 따르고 있으며, 무천년설은 후자를 따르고 있다. 그래서 양자는 평행선을 그으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전천년설에서는 해석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 ‘천년’은 단순하게 문자적으로만 보며 해석할 수 없으며, 또한 그렇게 해석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천년설주의자들은 목숨을 걸고 문자적인 해석으로 올인하고 있다. 천년왕국에서의 천년의 기간은 3절보다는 4절이 핵심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4-6절 해석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게 된다.


계시록 20:1-3절에 기록된 사단의 결박 상태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복음시대 동안에 사단의 영향력이 많이 축소되어 이제 복음이 세계 여러 나라로 펴져 나가는 것을 방해 할 수 없음을 의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다시 정리해 보면, 계시록 20:1-3절은 20:4-6절과는 완전히 다른 배경으로서 이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본 절의 핵심은 사단의 결박이다. 사단의 결박은 누구만이 할 수 있을까? 기도에 ‘기’자만 알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단의 결박은 예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사단을 결박을 하셨으며, 사도 요한은 환상으로 본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본 3절은 결코 어떤 방법으로든 천년 왕국의 대한 어떠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은 이 세상에 오셔서 다양한 사역을 하셨다. 주요 사역을 열거해 보면, 제자훈련, 천국복음, 치유, 축사(逐邪), 십자가의 희생제물 등이다. 여기 치유와 축사는 사단의 결박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 20:1-3절을 기록한 목적은 역사적으로 도래할 천년 왕국을 알리기 위한 것아니라 예수로부터 사단이 결박되었음을 알리기 위함이다. 그래서 계시록 20:1-3절은 사단의 결박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복음시대에 사도들이 교회들이 세우는 일과 다른 많은 제자들이 모든 족속을 제자 삼는 지상 명령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사단을 결박하지 않고서는 결박할 자가 없으며, 교회가 세워질 수 없으며, 모든 족속을 제자 삼는 일은 있을 수도 또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일을 해 온 것이다.


  노파심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본 절에 천년이라는 말은 나오지만 천년 왕국 기간하고는 전혀 무관한 숫자이다. 결코 역사적 천년 왕국이나 그 기간으로 해석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이것이 개혁주의 입장에서 계시록 20:1-3절을 무천년설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출처 : 물과피와성령(water and blood and the Holy Spirit)
글쓴이 : 중사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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