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론의 오해 (3) 영화(榮華 : Glorification)
구원의 서정(抒程)의 마지막 단계가 영화(榮華)입니다.
이 5단계의 서정(序程)중 넷째 단계인 칭의(稱義; 의롭다하심)를 칭의구원(稱義救援)이라 하지요.
이는 "믿는 자가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요5:24)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요3:18)
따라서 <사람이 지옥에 가느냐? 하늘나라에 가느냐?> 하는 것은 여기에서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결코 최후의 심판 때 가서 영생과 영벌이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하여간 칭의 구원 받은 사람은 성화(聖化)을 거처 그 행위(功積) 심판을 받고 그 결과에 따라 영화(榮華)로운 구원(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칭의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도 성화과정에서 행한 공적은 (최후의) 심판 받게된다는 것입니다.
이 때 공적이 큰사람은 영화롭게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상을 받게 됩니다. 이를 영화로운 구원 즉 "영화구원"이라고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영화구원은 모두가 동일한 것이 아니라 그 공적(심판의 결과)이 크면 큰 상을 받고, 크게 영화로운 천국을 차지하게 됩니다. 즉 많은 고을을 다스리는 왕노릇을 하게 됩니다.
반면 공적이 적으면 적은 고을을 다스리는 왕노릇을 하게 됩니다.(눅19:11-26)
만약 공적(功積) 심판에서 공적이 다 불타버리면 해(害)를 받게 되지요. 그러나 해를 받는다고 해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칭의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천국은 들어가되 불가운데서 겨우 살아난 사람같이 초라한 상태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고전3:10-15)
따라서 구원의 서정 첫 단계에서 네 째 단계까지는 우리가 할 것이라곤 "오직 믿음" 밖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성화(聖化)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 된다고 야고보서 기자가 강조하였습니다.(약2:26)
그러므로 정리하자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을 살려주시고(중생 엡2:1), 성령께서 믿게 하셔서(고전12:3하) 의롭다 하시고(칭의구원 롬1:17), 심판 없이 영생을 얻은(요5:24) 성도가 성화 과정에서 열심히 하나님의 의(義)를 행하여 이에 대한 심판(행위 심판 고후5:10, 공적 심판 고전3:10-15, 백보좌(白寶座) 심판(審判)계20:11-15 : 최후의 심판)의 결과로 받는 것이 바로 영화구원입니다.
따라서 영화구원은 구원의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구원의 내용
영화(榮華 glorification)란,
신자가 죽을 때 그 영혼은 낙원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몸은 무덤 속에 있게 됩니다.
세상 종말에 가서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무덤 속에 있던 몸이 부활하게 되지요.
이 때 부활한 몸이 영화롭게 되고, 그 때 죽지 않고 살아있는 성도들은 홀연히 변화되어 공중으로 들림 받아 주님을 맞게 되는데 이 때 성도들은 영과 몸이 함께 주님을 맞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이를 영화구원이라고 합니다.
“보라 !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15:51-52)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4:16-17)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런 영광스러운 영과 몸을 가지고 새 하늘과 새 땅(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상급에 따른 내세의 영광의 차등
많은 사람들은 하늘나라는 평등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가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할지라도 신분상 차등이 있다고 하면 지상 생활과 뭐가 다르겠느냐는 회의 때문일 것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지상에서 상대적 빈곤감 혹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트라우마가 있지요-.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천국에는 지상에서와 같은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나 저주가 없다는 것입니다.(계21:4, 22:1-5)
그렇지만 그렇게 구원 받은 성도들이 몸과 영이 영화롭게 되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지만
성도들이 성화 과정에서 행한 공적(功績)에 따라 내세에서 누릴 영광은 차등이 있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16:27)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눅19:16, 17)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계22:5)
하늘나라에 가서 받아 쓸 수 있는 면류관은 단순히 받아 쓰는 것이 아니라 통치권을 가진 왕관을 의미 합니다.
즉 공적이 큰 사람은 여러 고을을 다스리게 되고, 공적이 적은 사람은 소수의 고을을 다스리게 됩니다.
한편 공적이 없는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은 받았지만, 하늘나라에서 왕 노릇은 못하고 백성으로 왕의 통치를 받으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또 한 부류가 있는데 이 사람들은 심판 결과 상(償)과는 반대로 해(害)를 받게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이들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하늘나라에는 들어가게 되지만, 그러나 겨우 불 가운데서 구원받는 형국이 됩니다.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전3:15)
따라서 이런 사람은 구원은 받되 영화로운(영화)구원을 받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한국 교회가 오늘 이렇게 타락하는 것은 칭의 구원만 생각하고 성화나 영화구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좋은되로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뿐만 아닙니다.
기독교 초대교회도 처음 복음을 접했을 때 감격,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가 날이 갈수록 해이해지고, 나중엔 어떻게 하든 내가 구원은 받았으니 자기 생각대로 살면서 서로 시기하고 다투고 당파 싸움까지 게의치 않았습니다.(고전3:3-4)
서신서(특히 바울 서신)에 보면 서신의 전반부는 구원의 교리를 기록하고 후반부는 성도의 행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까지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바로 설려면 칭의 구원만 가르치지 말고 기독교 구원의 서정 모두를 가르쳐야 하고 특히 마지막 영화로운 구원에 올인 하도록 교육을 해야 합니다.
칭의-> 성화-> 영화
비유하면 칭의 구원은 이제 구원학교에 입학한 것과 같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데는 시험이 없습니다.
교육청에서 발행하는 입학통지서(믿음 엡2:8참조)만 받아오면 됩니다.
학교에 입학했다고 다 된 것 아닙니다.
이제부터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이가 성화과정입니다.
세상 종말 때 이 성화과정에서 얼마나 공적을 쌓았나 시험(심판)을 치릅니다.(고전3:12-15)
마치 이는 학교를 떠날 때 졸업시험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졸업시험 성적(공적)에 따라 천국에서 영화로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히브리 11장의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생활을 배워야 합니다.
원로 Essay 중에서
성도교회 원로목사 예종규
http://cafe.daum.net/y9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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