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인식(罪認識)과 죄책감(罪責感)
실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난제 중의 난제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을 모두 죄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죄책감과 스트레스
사람이 죄를 범하면 그 대가는 죽음입니다.
죄의 대가인 죽음 이외에 죄를 지은 사람이 시달리는 건 죄책감입니다.
그리고 죄책감은 우리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를 가져옵니다.
그 결과 정신과 육체에 크게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현대의 질병은 대부분 스트레스 성 질병입니다. 인간이 받는 스트레스 중 가장 그 강도가 심한 것 중의 하나가 죄책감입니다.
심지어 죄책감으로 인해 자해(自害)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롯 유다도 그 중 한사람입니다.
성도가 이 무서운 죄책감에서 해방되는 방법은 회개하는 것 뿐입니다. 회개를 하게 되면 죄 사함을 받게 되고, 죄책감에서 해방이 됩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에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곧 구속 죄사함을 얻었도다"(골1:13-14)
자기 죄 인식
그래서 우리가 죄책감에서 해방 받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죄 인식의 문제입니다.
죄 문제를 다루다 보면 가장 큰 문제가 성도들이 "자기 죄 인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자기가 죄인인 것 만은 틀림없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사함을 받아 의인이 되었으므로 죄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죄를 지어도 이는 이미 십자가로 다 처리 되어 정죄함이 없기 때문에 자기는 죄인이 아니고 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파가 여기에 해당합니다.(총회 홈페이지 <이단사이비 상담> - “이단사이비 총회 중요 결의” No 17 [권신찬, 이요한, 박옥수씨(구원파)] 77회 - 1992년 2002년11월5일 참조)
따라서 세월호같은 대 참사를 일으키고도 저들은 죄 인식이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많은 성도들이 죄를 범하고도 자기는 죄 지은 것이 없다고 치부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죄는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죄만 잘도 봅니다.
말하자면 “자기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몰라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저지르는 죄는 죄로 보이지 않으니까 이것이 큰 문제인 것입니다.
루터는 “하나님을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인식하는 것이며 우리의 죄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바라보는 것이고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면서 자신이 추한 죄인임을 알지 못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눅18:9)인 바리세인들은 의로운 자가 아니고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기도하는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눅18:13-14)라고 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자기 죄를 인식하지 못하는 교인은 바리새인이라 칭함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죄책감은 회개로 없애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죄 인식에는 철저해야합니다.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남의 죄만 탓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회개하라고 외치는 소리는 요란하지만 정작 회개하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데 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
성도교회 원로목사 예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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