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이루어진다.” 학교와 집에서 늘 들으며 자라왔던, 저 유명한 발명왕 에디슨의 말이다. 이 말로 사람들은 스스로와 자녀들에게 천재가 되기 위해서는, 즉 성공하기 위해서는 영감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열심히 땀 흘리며 끈기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마침내 전구를 발명해내기 위해 거의 2000번의 실패를 경험했던 사람이니, 에디슨이 이처럼 끈기 있는 노력을 중요시한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놀랍고도 재미있는 사실은 노력이 중요하다는 이 해석은 에디슨의 본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철저한 곡해라는 점이다. 이 말로 에디슨이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아무리 노력해도 1%의 영감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영감을 뜻하는 inspiration은 그 단어의 라틴어 근원을 살펴보자면 ‘안으로 들이마시는(in) 숨(spiratio)’을 의미한다. 이처럼 영감이란 내 안으로부터 형성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영감이라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닿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기에 동양인들은 이 서양의 말 inspiration에 영감(靈感), 즉 ‘신령스러운 예감이나 느낌’이라는 뜻의 한자어를 부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습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승부가 갈리는 운동을 하다 보니 질 때마다 열심히 패인을 분석하는 사람들을 흔히 보게 되는데, 그런 사람들은 대개 승부에 진 원인을 유독 자기편에서만 찾는 경향이 있다. 내가 진 이유는 이것저것을 잘못하고 실수해서 게임에 졌다는 식이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방이 나보다 더 잘해서 내가 졌다는 간단한 진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성공적인 결과를 위한 모든 것이 자기 안에 다 있다는 착각 속에 있기 때문이다. 자기 땀의 100%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 이 믿음은 결국 그 어떤 인간의 노력으로도 닿을 수 없는 1%를 결코 보지 못한다.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도 모자란 1%가 반드시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착각은 신앙에서도 흔하게 일어난다. 원하지 않은 결과, 실패, 좋지 않은 일을 당하면 내가 신앙생활을 게을리 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생각은 일견 깊은 신앙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자. 결국 무슨 말인가? 내가 열심히 기도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면 모든 일이 다 순조롭게 풀렸을 거란 말이 아닌가? 아하, 결국 성공과 실패는 내게 달려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교만은 자주 겸손의 옷을 입고 등장하고, 이렇게 겸손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교만을 알아채기란 정말 쉽지 않다.
우리를 잠식하는 신앙의 교만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어쩌면 인간의 영역 밖으로부터 까닭 없이 주어지는 1%를 볼 수 있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내 모든 노력으로도 닿을 수 없는 그것에 닿게 만드는 1%, 보이지 않는 세계, 초월의 세계로부터 신비롭게 선물로 주어지는 이 1%가 없다며 과연 무엇이 가능할까? 그러나 우리의 수고와 노력 속에 1%로 숨어계신 하나님은 투명인간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드물게 이 1%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언제나 모든 끝에 다음과 같은 고백을 덧붙인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하나님인 것을 알라.” (시 46:10) |
<저작권자 © 당당뉴스> |
'목회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성경적 상급론 (0) | 2014.10.04 |
---|---|
[스크랩] 개혁교회의 교회정치질서 (0) | 2014.10.04 |
[스크랩] 현대목회상담학 (0) | 2014.09.28 |
[스크랩] 마음(성품)의 불 (0) | 2014.09.25 |
[스크랩] 교인들과 싸우는 목사님들 (0) | 2014.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