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없으면 큰 업적도 고난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
The Greatest performances or sufferings in vain without charity(고전 13:3)
바울은 3절에서 도덕적 업적들을 언급하면서 사랑이 없으면 이 도덕적 업적들도 쓸모가 없음을 선언하고 있다. 바울은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인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에 대해 언급한다.
사실 초대 교회에는 가난한 자들이나 복음 사역에 전념하는 자들을 위하여 가진 것을 내어 놓는 것이 관습화되었다. 예루살렘 교회가 그러하였고(행4:32), 바울이 세운 이방인 교회들에서도 그러하였다(고전16장,고후8,9장등). 그러나 바울은 말하기를 이 의무를 잘 받아 들여서 분에 넘치도록 하여 지나칠 정도가 된다 할지라도, 곧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내놓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고 본문에서 선언하고 있다.
바울이 언급하는 바 두 번째 업적은 죽임당하는 것, 그것도 가장 무서운 형태의 잔인한 불에 타 죽는 죽음이다. 바울은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선언한다. 초대 교회 당시에는 자신의 재물을 내어놓아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놓아야 하는 빈번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보자.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 사람들이 당할 수 있는 어떤 고난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참된 그리스도인적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전혀 소용되지 못한다(That all that men can do, and all that they can suffer, can never make up for the want of sincere Christian love in the heart)".
1. 사랑이 결핍되어 있는 많은 일과 고난
마음에서 우러나는 그리스도인다운 진정한 사랑이 없이도 위대한 일들을 행할 수 있으며, 고난도 당할 수 있다.
(1) 사랑이 없는 업적.
사랑이 없이도 위대한 업적을 행할 수 있다. 바울이 고백한대로(빌3:4) 많은 바리새인들이 큰 일들을 행했고 그들이 행한 종교적 업적은 대단했다(눅17:11,12). 많은 이방인들 가운데도 그들이 행한 일로 인하여 뛰어난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이는 고결함으로, 어떤 이는 자기들의 공의로 인하여, 어떤 이는 공공의 유익을 행하는 데 뛰어났다. 마음에 우러나오는 진정한 사랑이 없이도, 명성 때문에, 혹은 지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혹은 야심 때문에 그렇게 산 사람들이 많다.
(2) 사랑이 없이 믿음을 위해 받는 고난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인다운 사랑이 없이도 자신들을 극히 혹독한 고난 속에 몰아넣기를 잘했다. 또한 인간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외면하고 광야와 불모지에서 일생을 보낸 사람들도 많았다. 중세 가톨릭 신자들 중에는 자원하여 피 흘리는 전쟁에 나간 사람들도 많았다. 십자군 전쟁(참고-최근에 개봉된 Kingdom of Heaven)에 참여한 많은 이들은 그렇게 하면 자신들의 죄악이 용서받고, 천국에서 상급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목숨을 초개같이 버렸다. 그러나 터키 사람들 역시 모하메드의 가르침 때문에 자신들의 목숨을 내어던진 사람들이 많다. 두 가지 경우 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 한 일들일 뿐이다.
2. 사랑이 없는 것은 어떤 것으로도 보충할 수 없다.
아무리 큰 고난을 받고 큰일을 행한다 할지라도 마음속에 없는 진지한 사랑을 메울 수 없다. 많은 시간을 신앙적인 예배에 투자하고 잠자는 일도 포기할 정도로 신앙적인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그러한 것으로 그 이름이 세상에 널리 전파되었다 해도 그러한 일이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에서 행한 것인지를 살피라고 에드워즈는 우리에게 권면한다.
만일 한 나라의 부를 다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이 자신의 가진 것들을 다 거지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이 거지가 될 정도로 낮아졌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 마음속에 없는 것을 보충할 수는 없다. 왜 그런가?
(1) 하나님께서 가치 있게 보시는 일
하나님께서는 행해진 어떤 외적인 일이나 겪은 고난 자체를 가치 있게 보지 않는다. 사람의 내적 부분인 마음으로 심사숙고하여 행해진 것인가가 문제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몸의 움직임이나 내 몸의 행실이나 몸으로 감당한 어떤 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생명 없는 것이 움직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은 짐승이나 은금을 필요로 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시요, 스스로 충분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시50:10-12,대상29:14-16).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의 외양이 아니라 마음이다. 우리를 이성적 존재, 지성적 피조물로 보신다. 그리고 자유로운 인격체가 행동하는 것으로 보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지 못하면 우리가 행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평가하심에는 칭찬 받을 것도 없고 탁월한 것도 없다.
하나님은 선한 동기나 선한 목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몸을 괴롭게 하는 일이나 고난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을 보시더라도 기뻐하지 않으신다. 어떤 행동이나 고난도 그 자체만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는 것을 메울 수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도덕적 피조물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the sum)이다.
(2)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들
어떤 일을 하고 아무리 큰 고난을 받는다 할지라도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다면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 하나도 없는 셈이다. 사람은 이성을 가진 존재요,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에 마음의 목적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는다면 기계나 악기와 다를 바가 없다. 선물은 선물을 주는 사람의 마음이 선물을 받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한 요점이다. 선물의 진정성을 결정하는 것은 선물을 주는 마음의 목적이 어디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마음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이 일어나 일을 하고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쳐지는 것이 어떤 것이든지 그런 식의 예물이라면 마음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결핍을 보충할 수는 없다.
어떤 예물이든지 마음으로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면 진정한 의미에서 드려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물 같이 보이기는 하지만 지존하신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 밖에는 안 된다.
(3) 사랑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것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요약한 것이 사랑이다. 율법의 두 돌판에서 요구하시는 것이 사랑이라고 주님은 요약해 주셨다. 사랑은 마음에 자리하는 것이다. 그런 사랑을 거부하고서 어떤 다른 것으로 대신하거나 상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없는 외적인 일에 대해서 “나는 그러한 일을 요구한 적이 없다”(사1:12)고 말씀하신다. 오로지 우리가 드리는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되려면 마음을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
(4) 사랑 없는 외적인 모양이 바로 외식이다.
마음에는 진지한 생각이 전혀 없는데도 외적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경외하는 심정이 크게 있는 것 같이 보이려 한다면 그것은 외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저희가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시78:36). 진정한 마음으로 경외하지 않으면서 아첨하는 말로 메울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진리가 없는 거짓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 같이 무모한 짓이다.
(5) 우상에게 바치는 제물과 같은 일
어떤 일이나 고난이 마음의 진지함을 동반하지 않으면 그것은 우상에게 드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자신이든, 우리 이웃이든, 세상이든,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간음을 행하면서 그것이 남편을 향해 충성치 못하는 것을 대신한다고 상상하는 것과 같이 무모한 것이다.
3. 적용
(1) 자기 검증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진지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가 아무리 큰일을 하고 아무리 큰 고난을 당한다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 진리라면, 우리 자신은 그렇게 진수적인 사랑을 마음에 가지고 있는지 자기 성찰을 통하여 확인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아무리 큰일일지라도 사랑이 없이 행한 일이라면 매우 싫어하신다. 그러나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한 것이라면 그것을 기뻐 받으신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거기 진정한 사랑의 마음이 함께 있다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몸을 다 내어 주면서도 사랑이 없는 경우보다 더 크게 보신다.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섬김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요소를 에드워즈는 지적하면서 이것들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점검해 보라고 권면한다.
1) 진실함.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과 경외하는 마음을 드리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면,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만큼 깊이가 마음에도 있어야 한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간사한 것이 없는 마음의 소유자로 나타난다(요1:47). 여러분의 외적 행동 안에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진지함이 있는가를 확인해 보라.
2) 자유함(자발성).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노예적인 굴종이 아니라, 자식이 부모에게 하듯이 자발적인 순종, 사랑과 기쁨으로 하는 순종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영혼은 그리스도를 따르는데서 가장 큰 즐거움과 행복을 발견한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행할 의무들을 시행하는데서 큰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기 때문에 우리는 자발적인 자유스러운 순종을 드릴 수 있다.
3) 총체성(전체성). 진지함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을 찾되 전심을 기울여서 찾고 온 영혼을 다 동원하여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신앙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전심을 다해 온 몸과 영혼을 다해 거룩을 추구하고, 우리의 의무를 행하는 것이다.
4) 순결함. “아이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벧전2:2). 순전함, 곧 아무 것도 섞이지 아니하고 음란한 마음이 섞여있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이것에 죄에 반대되는 덕행이다. 이러한 순전함이 여러분의 것이라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이게 될 것이다.
(2) 자연인을 각성시킴
아직도 중생치 못한 자는 어떠한 일을 하든, 어떤 고난을 받든, 마음에 거룩하고 진실한 원리가 없다면, 그것을 보충할 도리가 없다. 그들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는 바 심령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까지는 그들은 절망적인 조건에 놓여 있게 된다. 하나님의 회심케 하는 은혜가 아니면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고난을 받든지 여러분의 악행에서 건짐받지 못한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큰 고난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들의 성품이 변하지는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폭풍 속에서 그들을 건져낼 것은 그런 것들 자체가 아니다. 그들이 행한 일이나 그들이 당한 고난을 의지하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오직 그리스도를 의뢰하여 안식을 찾아야만 한다. 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해지기를 구해야 한다.
(3) 사랑의 권면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다운 신실한 사랑의 마음을 기르라고 권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여러분이 추구해야 할 큰 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을 열심히 찾고 구해야한다. 그것은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여기지 말고 하나님께서만이 주실 수 있음을 알고 하나님께 구하도록 하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큰일이나 큰 고난을 요구하신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무슨 공로나 가치 있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정직한 영의 외적인 증거나 그러한 것이 흘러넘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그리스도인다운 하나님께 받으심 직한 사랑과 진지함을 기르라고 권고하는 일은 매우 큰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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