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기도의 유익
- 이다윗목사
성막기도를 통해 가장 큰 혜택을 누린 사람은 바로 제가 될 것입니다. 성막기도를 드리기 전의 삶과 성막기도를 드린 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엔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도'였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항상 부담이었고 기도를 잘 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성막기도를 통해 이제는 기도가 즐거워졌습니다. 어쩌면 기도하는 것이 일상생활 중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성막기도가 무엇인가?'하며 궁금해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막기도를 통해 얻게 되는 유익함에 대해서 정리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수 많은 사람들이 성막기도를 참여해 왔는데 저들을 통해 깨닫게 되고 발견된 것들을 종합하여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1. 1시간 이상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막기도를 통해 가장 달라졌던 부분이라고 하면 기도시간입니다. 이전에는 기도를 해도 10분을 넘기기 힘들었습니다. 큰 맘 먹고 열심히 기도해보지만 그래봤자 30분을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1시간 이상 기도하는 사람을 보면 참 부럽다는 생각을 갖곤 했습니다. 그런데 성막기도를 하니까 1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갔습니다. 대략 10분 정도 지난 것 같다란 느낌을 갖고 눈을 떠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1시간을 넘긴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할 뿐입니다.
어떻게 느낌은 10분인데 시간은 1시간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는 보편적인 기도는 '느낌은 1시간인데 시간은 10분'인데 말입니다. 그것은 성막기도가 체계적으로 구체적인 기도법이기 때문입니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기도방법인 성막기도를 드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누구라도 1시간 이상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2. 삶이 변화됩니다
저의 삶은 성막기도를 통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고집불통에다가 이기주의적이었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했었는데 성막기도를 드리고 난 후부터는 이기적인 마음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는가?'하는 죄책감과 후회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성막기도를 드리면서 '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보다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성막기도를 드린 후부터 제 아내에게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제가 아내에게 잘 해 주는 남편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었습니다. 조금도 잘 해 주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아무 소리도 안 하니까 제 스스로 '내가 아내에게 잘하고 있나보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제가 무서워서 말을 안 했고 문제 일으키기 싫어서 그런 속내음을 얘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막기도를 드리고 난 후부터는 제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내에게 친절하고 부드러운 남편으로 변하기 시작했으며 다른 사람의 입장을 보다 배려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국제성경연구원을 통해 수십개의 성막기도반을 운영하면서 삶이 변화된 사람들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막기도를 통해 가정 구성원의 삶이 변화되며 교회의 성도들의 삶이 변화될 것입니다.
3. 육신이 건강해집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성막기도를 드리고 나면 몸이 건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저의 집안은 질병을 달고 사는 집안입니다. 누구하나 질병이 없는 형제가 없습니다. 저도 성막기도를 드리기 전에는 몸이 정상적이지 못했습니다. 고혈압이 있었으며 늘 뒤통수가 아프고 땡겼으며 계단을 오르기가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성막기도를 드리고 난 후부터는 그런 증상이 전혀 없습니다.
거의 몸이 피곤치 않습니다. 제 아내의 경우는 성막기도 드리기 전에 하루종일 "힘들다", "죽겠다", "피곤하다", "싫다", "아프다"란 소리만 했습니다. 마치 TV를 하루종일 틀어놓은 것처럼 하루종일 그런 부정적인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성막기도를 드린 후부터는 그런 부정적인 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런가하면 참을 3시간도 안 잤는데도 조금도 피곤해하지 않았습니다. 제 아내의 경우는 하루에 8시간 이상을 꼭 자야만 했습니다. 1시간이라도 덜 자는 날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1시간을 채워야 했으며 1시간 못 잔 것 때문에 하루종일 힘없이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 아내가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2-3시간 정도 잠깐 눈만 뿥일 정도의 잠만 잤을 때에도 조금의 피곤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적은 잠을 자도 피곤치 않더니 몸 전체적으로 건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일들도 그런 힘이 어디서 생겼는지 많은 일들을 건강하게 하였습니다. 성막기도를 드린 많은 분들을 통해서 성막기도가 육신의 건강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몸이 피곤하고 늘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은 성막기도를 드리십시오. 성막기도를 통해 당신의 온 몸이 달라질 것입니다. 당신 몸의 모든 세포들이 변화될 것입니다. 당신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4. 하나님께 더욱 헌신하게 됩니다.
성막기도를 통해 더욱 하나님께 헌신하게 됩니다. 번제단에서 매일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고백하고 서원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헌신도가 높아집니다. 그래서 성막기도를 시작하기 전에는 평범한 성도였는데 성막기도를 드리고 나면 어느새 귀한 일군으로 변모해 있음을 발견합니다.
성막기도를 교회에서 드리게 되면 그 교회는 부흥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번제단에서 매일 하나님께 헌신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저절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담임목사님이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지 않아도 저절로 성도 스스로 하나님께 헌신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교회가 부흥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5.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막기도는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물두멍에서 매일 회개하는 시간을 갖기 때문에 '나 스스로 얼마나 죄인인가?'를 매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봅니다. 내가 의인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 앞에 서게 되면 다툼과 불화 뿐이지만 내가 죄인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 앞에 설 때에 화해와 이해가 생기게 됩니다.
그렇게 스스로 얼마나 죄인인가를 느끼며 살아갈 때에 배우자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배우자가 꼴도 보기 싫고 그렇게 나쁜 인간이 따로 없다 생각했지만 나 스스로가 죄인이라고 느끼니까 죄인처럼 느껴졌던 배우자가 의인으로 변하더란 것입니다.
만일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성막기도를 드리게 되면 온 성도들 스스로 회개하는 심령이 생기기 때문에 크고 작은 교회 내의 모든 불화들이 순식간에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회개의 삶을 통해 가정이 회복되고 교회가 회복되며 나아가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옳바로 회복될 것입니다.
6. 기도응답이 빠릅니다
성막기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것 중 하나는 기도 응답이 빠르다는 것입니다. 진설병에서 간구하게 되는데 단순히 기도제목을 놓고 하나님께 간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간구한 것을 놓고 선포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갖기 때문에 기도 응답이 매우 빠르다는 것입니다.
소위 기도의 삼박자 "간구 - 선포 -감사"를 드리게 되는데 이러한 기도의 삼박자를 통해 엄청나게 기도제목들이 빨리 응답되는 것을 봐왔습니다. 기도의 삼박자에 대해 잠시 설명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의 자녀가 사춘기로 인해 가출하여 나쁜 아이들이랑 함께 어울려 다니는 것으로 인해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자녀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그 사람의 기도는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자녀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속히 집으로 돌아오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음 날에 똑 같은 기도를 할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자녀가 돌아올 때까지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막기도의 기도는 그렇게 드리지 않습니다. 간구하는 것은 똑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자녀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속히 집으로 돌아오게 하소서"라고 간구합니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면 선포기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선포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 자녀 000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속히 집으로 돌아올지어다!"
이러한 선포기도는 강력한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성막기도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 무엇이든지 응답되리라 말씀 하셨습니다. " [요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실제로 간구한 내용을 그래도 선포했더니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간구기도 - 선포기도'만 해서는 그 효과가 덜합니다. '감사기도'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간구한 것을 선포했으면 선포한 기도내용이 이미 응답되었음을 믿고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했을 때 기도제목이 매우 빨리 응답되는 것을 봐왔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제목의 응답을 받고 기뻐했습니다.
7. 믿음이 커집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믿음이 큰 사람일 것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을 보면 너무 위대해 보입니다. 그런데 성막기도는 믿음을 키워줍니다. 좀 전에 말씀 드렸듯이 '간구기도-선포기도'를 드린 후에 간구한 내용이 이미 이뤄졌음을 믿고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이렇게 감사기도를 드릴 때에 나도 모르게 믿음이 커져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의 경우엔 잔머리를 많이 굴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음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교회모임에 열심히 참여하고 교회를 위해 최선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았고 성경공부도 나름 열심히 하며 살았지만 믿음만큼은 너무나 약했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하고 의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의심하는 마음을 갖고자 해서 의심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 아니라 저절로 저도 모른사이에 의심하는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어느 순간에 그런 의심의 생각들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어느 순간이 되니까 한 순간에 의심의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 뒤로는 의심의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조금이라도 생길 것 같지만 거짓말같아도 사실입니다. 그렇게 의심의 생각이 없어지니까 반대로 믿음이 견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의 선포를 하게 될 때 그 말에 불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단순한 선포가 아니라 불대포를 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은사가 그렇게 중요하구나를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성막기도를 통해서 믿음이 커져갑니다. 믿음이 커지면 막을 사람이 없습니다. 천하장사를 아무도 못 막듯이 큰믿음의 소유자는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그만큼 강력한 도구입니다.
교회의 성도들로 하여금 큰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 목사들은 여러가지로 고심하고 고심하여 어떤 훈련을 하기도 하고 프로그램을 통해 믿음을 키우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막기도를 드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성도의 믿음이 커져가기 때문에 교회에 믿음이 왕성해질 것입니다. 믿음이 왕성해지는데 교회가 부흥성장되지 않는다고요? 그럴리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무슨 일이든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잡음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겁낼 것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비로소 성경이 실체화가 되는 것입니다.
8. 성령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성막기도는 처음부터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고 하는 기도입니다. 성막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지성소까지의 과정을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에 성막기도를 드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성령님과의 동행도 이뤄집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성막기도를 드리게 되면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보다 훨씬 성령님과의 깊은 동행을 체험하게 됩니다만 성령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할지라도 충분히 성령님과의 동행을 할 수 있는 것은 성막기도반으로 함께 기도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성막기도는 본질적으로 혼자서 기도하는 골방기도와 같은 것이지만 혼자서 기도하는 것보다 함께 모여서 기도할 때 보다 큰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고 격려할 수 있기 때문에 기도에 낙오자가 생기지 않도록 돕습니다. 또한 성막기도반장의 인도에 따라 함께 기도를 드리기 때문에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훨씬 빨리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단계적으로 기도자를 인도합니다. 각 성물 단계만 제시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각 단계마다 구체적으로 성령님께서 기도에 개입하셔서 함께 기도자와 기도를 드려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막기도를 드리게 되면 성령님과의 보다 깊은 동행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성막기도를 통해 성령님과 보다 깊은 동행을 하게 될 때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이 생기며 하나님께서 나와 항상 함께 하고 계심을 실질적으로 느끼면서 생활에 임할 수 있기 때문에 삶 가운데 보다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교회를 다닌다 하면서도 세상에 나아가서는 맥을 못추는 기독교인이 많은데 이처럼 성막기도를 드리게 되면 성령하나님께서 항상 자신과 동행함을 느끼기 때문에 훨씬 사회생활을 힘있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9.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막기도를 통해 얻게 되는 유익함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인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이 불경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지성소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민 7:8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원망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모세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이가 없거늘 왜 너희가 모세를 향해 원망하느냐?"고 꾸지람을 할 정도로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었습니다. "[민 12:8]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모세는 매일같이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과 대면하였지만 누구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속죄일(7월 10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론은 대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속죄일에만 지성소에 들어오도록 명하셨습니다. "[레 16: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이처럼 지성소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도 산 길을 만드셨습니다.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휘장이 둘로 갈라졌습니다. "[마 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마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던 지성소의 휘장이 둘로 갈라짐으로인해 이제는 누구든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구속함으로 인해 누구든지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누구든지 모세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모든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라면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성경의 모든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또한 성경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결코 불경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막기도를 드릴 때 우리의 영이 열림으로 인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는 마치 라디오 전파가 공기 중에 있지만 주파수를 맞출 때에 저절로 라디오 방송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음성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우리가 아직 영이 열리지 않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지 누구든지 영이 열리기만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아버지로부터 보고 들은 것만을 행하셨고 우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요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10. 영이 활성화됩니다
성막기도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분향단에서 방언기도를 드리게 되는데 이 때 드리는 방언기도는 일반적인 방언기도와는 달리 세게, 빠르게, 크게 드려집니다. 이처럼 세게, 빠르게, 크게 방언기도가 드려질 때 아주 빠른 시간 내에 영이 활성화됩니다. 이렇듯 빨리 영이 활성화될 때에 보다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방언이 열리지 않는 사람의 경우엔 한국말로 세게, 빠르게, 크게 기도하면 됩니다. 이처럼 세게, 빠르게, 크게 기도하게 되면 비록 방언이 아닐지라도 영이 활성화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방언기도는 영으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 [고전 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이처럼 방언기도는 우리의 영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언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영이 보다 빨리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평소에도 이러한 방언기도를 드리게 될 때 아주 빨리 영이 활성화됩니다. 이는 일반적인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 방언으로 기도할 때 훨씬 영이 빨리 활성화되는 것을 봅니다. 우리의 영이 활성화되는 것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모든 것들은 모두 영으로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고전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우리의 영이 활성화되어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것들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이 활성화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예비하신 것들을 충만히 느끼지 못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영적인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영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방언기도가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방언이 열리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막기도를 드릴 때 세게, 빠르게, 크게 기도하게 되면 금새 방언이 열리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니 방언이 안 열렸다고 해서 성막기도반에서 제외를 시키거나 소외시키면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에서는 방언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도움을 줄 수 있는 훈련반을 만들어서 저들의 필요를 채워야 할 것입니다.
11. 영의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른다는 것은 믿는 자의 특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께 찬송을 부를 수 없습니다. 저들이 입을 열어 하나님께 찬송을 부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저들의 찬송을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찬송만 듣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부르는 찬송이 다 같은 찬송은 아닙니다. 찬송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어떤 찬송은 육적인 찬송이 있는가 하면 어떤 찬송은 혼적인 찬송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더 높은 경지의 영의 찬송도 있습니다. 바울은 찬송에도 여러 분류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 [고전 14: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바울은 '영으로 기도'하는 것과 '마음의 기도'하는 것이 다르게 존재하듯이 찬송도 '영의 찬송'이 있고 '마음의 찬송'이 있다고 하엿습니다. 영으로 기도하는 것은 영적인 기도이지만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다소 혼적인 기도에 속합니다. 혼적인 기도는 어린아이들이 부모에게 떼를 쓰는 것과 같은 육적인 기도 단계라고 볼 수 있지만 영적인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듯 동행하면서 기도하는 고차원적인 단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찬송은 마음의 찬송에 비해 훨씬 고차원적인 영적인 찬송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성막기도는 이러한 영의 찬송 단계를 체험하게 해 줍니다. 방언기도를 드리게 되면 영이 활성화됩니다. 영이 활성화되면 어느새 영의 찬양을 부르게 됩니다. 이러한 영의 찬양은 처음에는 방언찬양으로 나타납니다. 마치 방언기도처럼 방언찬양을 하게 됩니다. 평소에 노래를 못부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방언찬양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방언기도처럼 방언은 같으나 기도에는 음률이 없는데 찬양에는 음률이 있는 차이입니다. 그래서 방언기도와 방언찬양은 음률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언찬양의 단계를 지나면 보다 높은 영의 찬양 단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영의 찬양 단계는 의지적으로 부르는 단계가 아닙니다. 방언찬양은 의지적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방언기도를 우리의 의지적으로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보다 높은 영의 찬양 단계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온전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을 돕습니다. 내 스스로 노래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천사들의 찬송소리를 듣고서 따라 부르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음률을 만들어서 찬양하는 것과 천사들의 소리를 듣고서 부르는 것의 차이는 매우 다른 것입니다.
이렇듯 영의 찬양(방언찬양을 포함하여)을 드리게 되면 황홀함을 느끼게 됩니다.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집니다. 온 몸의 세포들이 생기를 얻습니다. 온 몸에 기운이 감돌게 됩니다. 이러한 영의 찬양을 해 본 사람과 전혀 하지 못한 사람과의 차이는 너무나 다릅니다. 이는 얘를 낳아본 사람과 낳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입니다.
평소에는 찬양에 전혀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막기도를 드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영의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에서 성막기도를 드리게 될 때 많은 성도들이 영의 찬양을 부르게 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찬양하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영의 찬양하는 사람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영의 찬양을 부른 사람들이 교회를 아름답게 꾸밀 것입니다. 저들을 통해 성도들이 아름답게 변할 것이고 세상 사람들이 아름다운 교회를 방문하게 될 것입니다.
12.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막기도의 특혜 중 으뜸은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입니다. 그토록 사모하는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떠한 기쁨보다 더 큰 것입니다.
비록 영으로 주님을 만나는 것이지만 실제로 주님을 만나는 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어떤 경우엔 실제의 육신으로 느낌을 갖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만큼 영이 활성화되면 될수록 주님과의 만남도 강해짐을 느낍니다.
주님과 만나게 되면 주님의 얼굴을 뵐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껴안아 주시기도 하고 우리의 얼굴을 만져주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시기도 합니다. 많은 시간을 주님과 함께 합니다. 주님과 해변을 걷기도 하고 천국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주님과의 이런 저런 추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다소 어떤 사람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의 경우엔 부모와 악수조차 하지 못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많습니다. 가부장적이고 매우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분들은 다소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껴안고 주님의 손을 잡고 여행하고 함께 오랜 시간을 대화하는 분위기가 매우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심지어는 이단적인 행위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천국에 올라가서 진짜로 주님을 만나게 되면 제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경 전체적으로도 주님께서 얼마나 친근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하시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막기도를 통해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는 사람은 너무나 행복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막기도를 드릴 때마다 주님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기계적으로 만나는 그런 만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전을 집어 넣으면 자판기에서 커피가 나오는 식의 만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완전한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때로는 내가 거부할 수도 있지만 주님께서도 우리의 만남을 거부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만나고 싶기 때문에 주님은 반드시 나를 만나야 한다는 식의 억지부림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성막기도 시간에 주님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시간입니다.
주님을 만날 수 있으려면 온전한 성막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적어도 1시간 이상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서 성막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혼자서 드릴 때 더욱 기회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서 만날 때 그 기쁨이 크듯이 주님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인격적인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13.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막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의 영광을 깊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성막 그 자체가 하나님나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라 명하셨을 때 하늘에 있는 성막대로 만들라 하셨습니다. "[히 8: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성막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의 영광을 매우 깊이 체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마치 입신(trance)하는 것과 같은 놀라운 영적 경지에 오르게 됩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이러한 영적 기도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놀라운 영적 높은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은 기도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통해 놀라운 영적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막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베드로와 바울의 기도를 보면 두 사람의 기도하는 장면에 '비몽사몽'이라는 단어가 씌였습니다. 먼저 베드로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겠습니다. "[행 10: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한글개정판에는 '황홀한 중에'라고 기록되었지만 한글개역판에는 '비몽사몽'이라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바울의 기도에도 같은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행 22: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이처럼 '비몽사몽'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엑스타스스>인데 이는 '무아지경', '황홀경', '환희의 절정'이란 뜻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입신(trance)'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황홀경'이나 '무아지경'이라는 뜻의 단어는 예수님의 기도 모습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변형의 산에 오르셨습니다. 이 때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거의 1주일 전입니다. 보통적으로 예수님은 혼자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와 동행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변형의 산에서 기도하신 후의 모습이 복음서에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누가복음과 마가복음 9장에서 동일하게 변형의 산에서의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음서 저자들의 기록은 모두 한결같이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변형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되셨습니다. "[눅 9: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눅 9: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되셨습니다. 이는 모세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었을 때 그의 용모가 변화된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출 34: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모세는 시내산에서 내려와 성막이 완성되기 이전에 기도하는 장막에 들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대화를 나눴는데 성경은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기도를 드릴 때마다 그의 용모에 빛이 났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출 34:34]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씀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며 [출 34: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성막기도를 드리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체험으로 인해 용모가 변화됩니다. 우울한 얼굴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어두워진 얼굴이 환해집니다. 찡그렸던 얼굴에 기쁨이 맴돕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있게 체험하는 것입니다. 성막기도는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체험을 갖게 하며 평강과 희락의 기쁨을 갖게 합니다.
14. 질병을 치유받습니다
성막기도를 통해 질병이 치유받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성막기도를 통해 질병이 치유되었습니다. 하나님께 헌신을 약속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할 때에 질병이 치유되기도 합니다. '간구기도-선포기도-감사기도'를 통해서도 질병이 치유됩니다. 하지만 더욱 확실한 질병치유는 언약궤 안에서 기도할 때입니다.
언약궤에는 '구름, 빛, 불'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영광의 구름과 빛으로 임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름과 빛으로 임재하셨습니다. "[출 40: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구름은 우리의 모든 근심하고 염려스런 생각들을 제거합니다. 모든 더러운 생각들을 제거합니다. 모든 세포들이 숨을 쉬고 강건해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빛은 치유의 광선처럼 우리의 질병을 치유합니다. 때로는 레이저빔처럼 치유하시고 때로는 포근한 열기로 치유하십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치유하십니다. 죽을 병을 가지고서 마지막으로 기도원에서 기도나 하고 죽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이 기도원에서 치유함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치유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빛을 체험한 것입니다. 치유의 강력한 빛을 취하게 되면 그 어떠한 질병도 치유가 됩니다. 특별히 병원에 가지 않더라도 스스로 성막기도를 통해 질병이 치유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성막기도반을 형성하고 성도로 하여금 성막기도를 드리게 할 때에 성도들 스스로 질병이 치유함을 받고서 교회에 충성할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15. 세상의 정욕과 마귀의 공격에서 자유케 합니다
우리의 영은 영적인 것과 교류하게 됩니다. 영적인 것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습니다. 좋은 것은 하나님의 영이며 나쁜 것은 마귀의 영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는 성령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모든 믿는 자는 성령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령하나님과의 동행에는 성령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환상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우리의 영이 열려야 합니다. 아무리 성령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 할지라도 영이 막혀있으면 도무지 성령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영과 교통할 수 있듯이 악한 영과도 교통이 가능합니다. 만일 우리의 영이 정결하지 못하면 악한 영과의 교통은 너무나 쉽게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영은 늘 정결하고 거룩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영이 깨끗치 못할 때 악한 영은 우리의 영을 통해 우리 심령 안으로 스며 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은 곧 성령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였다 할지라도 우리와 함께 공존하시는 성령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지 못할 때 우리의 영은 악한 영의 지배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영은 항상 성령님과 함께 동행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은 무대와도 같아서 우리의 영 안에 성령 하나님으로 가득차 있지 않으면 비어있는 부분에 악한 영이 들어와 자리하게 됩니다. 우리의 영에 성령 하나님으로 가득차기 위해서 기도가 필요한 것이며 성막기도가 성령님과 동행하도록 돕는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16. 성막기도를 통해 영적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성막기도를 통해 우리는 영적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영은 곧 생명입니다. 우리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는 우리의 영이 살아있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우리에게서 영이 떠나면 인간은 죽게 됩니다. "[눅 8:54]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눅 8: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회당장 야이로의 12살 외동 딸이 죽은 것은 그의 영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그녀를 살리셨을 때 떠난 영이 그녀에게 다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에도 영이 떠났다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 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나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에 성경은 한결같이 '영이 떠났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때 사용된 '영(spirit)'이란 단어는 헬라어 <퓨뉴마>입니다. <퓨뉴마>는 육과 혼과는 다른 영(spirit)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영(spirit)과 혼(mind)과 육(body)로 이뤄졌습니다. 교단에 따라 영혼과 육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영,혼,육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볼 때 영과 혼과 육은 세 가지도 구분되고 있습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이렇듯 우리의 영이 살아있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의 영이 살아있기 위해서는 항상 영적인 예배를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영이 살아있을지라도 영적인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우리의 영에 활력이 없어지고 시들은 풀잎처럼 힘이 없어집니다. 그럴 때 악한 영의 공격을 받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됩니다. 이처럼 영에 활력이 없어질 때 나타나는 것이 우울증세나 절망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근심과 걱정으로 살아가게 될 때 육신이 병이 들고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인간의 삶이 영적전쟁과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매일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처럼 성령님과 함께 동행할 때는 악한 영의 세력을 무찌를 수 있지만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있을 때는 성령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영적인 예배를 통해 우리의 영을 강건케 해야 합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성막기도를 드리게 될 때 자연스럽게 영적인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성막기도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막기도를 드리게 되면 우선 성령님과 동행할 수 있게 되며 성막기도를 통해서 주님께 우리의 필요를 아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성령님의 안내로 주님을 만나게 될 때 참된 헌신과 참된 회개가 일어나며 하나님의 깊은 영광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의 세우심을 받았던 존귀한 왕이었지만 그가 영적 전쟁에서 마귀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악한 영이 그를 사로잡게 되었고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삼상 16: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이처럼 악한 영이 우리를 사로잡기 이전에 우리는 항상 영적예배를 통해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윗이 죄를 지은 후에 그토록 하나님께 성령을 거두지 말아달라고 간구한 이유가 바로 악한 영에게 사로잡히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시 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7. 하나님의 능력을 받습니다
언약궤에서의 '구름과 빛과 불' 중에서 '불'이 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받게 됩니다. 성막기도를 드리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특별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손에 전류가 흐르거나 머리에 아지랭이가 피어오르거나 온 몸에 열이 생기는 증상은 대부분 사람들이 느끼는 것입니다. 이전까지만해도 전혀 느낄 수 없었는데 성막기도를 드릴 때 그런 증상을 느끼지 시작했다는 분이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도대체 성막기도의 무엇때문에 사람들에게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언약궤에서 '성령의 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실제적인 불이 아닌 영적인 불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 몸에 증상으로 나타날 때 이런 사람들이 누군가 손을 얹고 기도하면 질병이 치유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손가락에 전류가 흐르거나 머리에 아지랭이가 피어오르거나 화관이 씌어지는 증상들은 신유은사가 임하였다는 가장 기본적인 증상입니다. 2-3개월 정도 열심히 성막기도를 드린 분들의 경우엔 대부분 사람들에게 신유은사가 임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분들이 특별히 안수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주로 가정 식구들이 안수 대상자입니다. 가족들이 아플 때 성막기도를 드린 분들이 안수를 합니다. 그러면 감쪽같이 아픔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매우 빈번한 질병은 두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통을 앓고 있습니다. 많은 스트레스때문입니다. 또한 치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치통으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관절통도 있습니다. 허리가 아픈 사람이 많습니다. 여자분들의 경우엔 생리통이나 하복부의 통증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성적으로 이런 통증을 느끼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성막기도를 드린 분들이 이런 통증을 느낀 분들에게 안수할 때 대부분 치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통증은 다시 재발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병은 재발됩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셨는데 어떻게 재발될 수 있느냐"며 따지는 사람이 있지만 모든 병은 재발됩니다. 재발되는 원인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재발되게 하는 당사자의 좋지 못한 행동과 죄악 때문에 재발되는 것입니다. 죄는 본인이 져놓고서 그 죄 값을 하나님께 물으면 옳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 하면 실명된 소경의 눈이 즉시로 치유되는 것을 생각합니다. 앉은뱅이가 갑자기 이소룡처럼 점프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거대한 홍해가 갈라진 것도 기적이지만 요단강이 갈라진 것도 기적인 것입니다. 암이 치유되는 것도 치유지만 마음의 근심걱정이 없어지는 것도 치유인 것입니다.
성막기도를 통해 이러한 신유은사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이미 우리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는 성령하나님이 거하십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성령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가지고 있는 다이나마이트에 불이 붙지 않은 것 뿐입니다. 이렇듯 가지고 있는 능력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곧 성막기도입니다. 성막기도 중에서 지성소의 기도는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이 열리게 합니다. 번제단이나 물두멍에서도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지만 지성소 내에서의 기도하는 시간 동안에 몸에 나타난 증상이 더욱 고조되는 것을 느낍니다.
18. 기름부음이 계속해서 지속됩니다
성막기도의 놀라운 유익은 기름부음이 평생토록 지속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영성사역처에서 안수를 받고나면 기름부음이 충만합니다. 하지만 받은 기름부음은 곧 사라지고 맙니다. 받았던 기름부음이 사라져버린 것은 기름부음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막기도는 이러한 성령의 기름부음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성막기도를 정기적으로 드리기만 하면 받은 기름부음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으며 기름부음은 점차적으로 더욱 강해집니다.
저의 경우는 성령님의 강권하심으로 집에만 틀어박혀 있습니다. 지금껏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삶은 7년이나 지속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저들을 안수했던 것은 5-6개월정도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집에서 드리는 성막기도입니다. 저는 성막기도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혼자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지금껏 성령의 기름부음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강해짐을 느낍니다.
특별한 치유집회가 아닐지라도 평상시에 아픈 사람에게 손을 얹고 안수를 하면 이내 낫습니다. 귀신들린 사람도 한 두 차례 안수에 의해 금방 귀신이 떠나갑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제게 기름부음이 간직되어 있는지 확인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은 기름부음을 유지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성막기도는 이렇듯 기름부음을 유지시켜 주는데 매우 큰 유익함이 있습니다. 모든 영성단체는 성막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성막기도는 단순히 국제성경연구원에서만 사용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막기도가 널리 보급될 필요가 있는 것은 전 세계에 기름부음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담임목사가 모든 성도의 기름부음을 유지시켜 줄 수 없습니다. 그 어떠한 강력한 성령사역자도 많은 무리의 기름부음을 유지시켜 줄 수 없습니다. 기름부음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역자를 통해 받을 수 있지만 그 받은 기름부음을 유지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성막기도를 드리게 된다면 성령의 기름부음을 잃게 될 위험은 없는 것입니다.
19.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언약궤 안에는 세 가지 성물이 들어 있습니다. 언약돌판과 싹난지팡이와 만나항아리가 들어 있습니다. 실제로는 돌판만 들어 있었고 싹난지팡이와 만나항아리는 그곳에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 그 이유는 싹난지팡이와 만나항아리가 언약궤 안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언약궤 안에 세 가지 성물이 들어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이렇게 세 가지 성물이 들어가 있다고 말한 것은 영적인 시각으로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막기도를 드릴 때 언약궤에서 세 가지 성물을 대하게 됩니다. 돌판은 '소망의 하나님'을 체험하게 합니다. 돌판은 하나님의 언약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갖기 때문입니다. 싹난지팡이는 '믿음의 하나님'을 체험하게 합니다. 죽은 나무에서 싹을 내는 하나님께서 모든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 가능케 만드는 믿음을 심어주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만나항아리는 '사랑의 하나님'을 체험하게 합니다. 40년 동안 만나로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의 쓸 것을 채우시고 공급하심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렇듯 세 가지 성물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게 됩니다. 천국에는 오직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 외에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오직 '믿음, 소망, 사랑' 뿐입니다. 성막기도를 통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충만한 삶으로 변화됩니다.
결론
이렇게 좋은 성막기도를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이미 성막기도는 많은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 드려졌습니다. 예수님도 성막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드리신 기도는 '골방기도'였습니다. "." 예수님은 항상 홀로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 그것이 곧 골방기도인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골방기도는 성막기도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어떻게 기도를 드리셨는지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골방기도의 핵심이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를 통해 은밀하게 드려지는 기도라고 한다면 오늘날 성막기도가 곧 예수님께서 드리신 기도와 거의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막기도의 방법에 대해서는 국제성경연구원에 올려져 있는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영상으로 보기 원하는 분은 https://www.youtube.com/watch?v=ZrZiCMGjy3U 을 참조하십시오. 성막기도는 감춰진 보물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껏 수없이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성막기도를 통해 영성을 키워왔지만 그 방법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세에 국제성경연구원을 통해 이렇듯 세상에 공개하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성막기도는 단순히 국제성경연구원의 것이 아니라 온 믿는 자를 위한 것입니다.
각 교회에서는 성막기도를 운영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성막기도반장을 배려하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것입니다. 저희가 LA에서 사역을 할 때에 성막기도반장을 준비하지 않았더니 훈련자들이 혼자서 성막기도를 드리다가 좀 지나니 그 열기가 식어져서 성막기도를 드리지 않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성막기도반장을 세워 성령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인도하고 관리했더니 훨씬 빨리 성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성막기도를 정착하고 성막기도를 통한 유익함을 얻으려면 성막기도반장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교회 사역을 혼자서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100명 정도는 거뜬히 혼자서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목사는 주님의 뜻을 잘 모르는 목사입니다. 예수께서 가장 중요시 여기신 것은 제자삼음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것 중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12명의 제자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 12명의 제자를 통해 오늘날 수십 억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만일 목사님 혼자서 100명을 관리하려고 생각한다면 100명은 여전할 수 있으나 그 이상으로 부흥되기는 힘들 것입니다. 성막기도반장을 세워서 10명 정도의 교인을 관리 성장토록 돕는다면 주님은 더욱 기뻐하실 것이고 당신의 교회도 더 큰 부흥성장이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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