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十一租, tithe)에 대한 이해
십일조에 대하여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꾸준히 논의된 주제였습니다. 주장을 살펴보면 율법의 의식법이 페기 되었으니 십일조를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과 십일조의 정신은 복음에도 계승된 것으로 하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본 카페에서도 이에 대하여 댓글로나마 서로의 견해를 드러내었습니다. 이에 십일조에 대한 이해 자료를 제공합니다.
1. 십일조의 어원(語源)
십일조는 히브리어로 마아세르(maaser)라고 하는데, '십일조를 내다’',‘'부과하다’라는 뜻이며(창28:22;신14:22;삼상8:15;느10:367), '70인역성서에서는 헬라어로 아포데카토오(apodekatoo) 또는 데카토오(dekatoo)라고 ‘십일조를 모으다’라는 뜻에서 나왔다. 신약성경에서는 ‘데카테’(dakate)로 ‘'십분의 일의 몫’ 이란 뜻이다. ‘'십일조’'(tithe)는 고대영어로 '10분의 1'이라는 뜻의 ‘'teogothian’'에서 유래하였다.
2. 십일조의 정의(定議)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창28:22;말3:10;마23:23;눅11:42). 모든 물질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신앙의 표시이다.
3. 십일조가 규정된 이유(理由)
1) 하나님은 애굽에 내린 10대 재앙 중 제 10번째 재앙은 짐승과 사람의 장자를 죽이는 형벌이었는데, 이 때에 이스라엘의 장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장자와 짐승의 초태생은 모두 하나님 것이므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하셨다(출13:1). 만일 장자를 드리지 못할 경우에는 그 대신 그 가치에 합당한 돈을 내야 했다.
2) 성막이 세워지게 되자, 각 가정의 장자들이 하나님께 드려져서 각 가정을 대표해서 성막의 일을 돌보아야만 했다. 그러나 각 가정에서 장자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경우 생업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하나님은 12지파 중에서 레위지파를 대표로 불러서 성막 일을 맡기셨다.
3) 레위지파의 경우 성막 일을 도맡아서 했기 때문에, 그들은 생계를 위한 직업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나머지 11지파가 수입의 1/10을 내서 레위지파의 생계비를 책임지라고 명하셨다. 이 경우 십일조는 각 가정의 장자를 대신해서 성막의 일을 담당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돈이었다(민18:21).
4. 십일조의 시초(始初)
고대에는 다른 종교와 문화 속에서도 널리 행해지던 관습이었다. 십일조는 율법에 의해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오기 오래 전부터 있었던 제도다. 구약성경에서 십일조가 처음 언급된 것은 아브라함이 살렘의 왕이자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10분의 1을 바쳤다는 기록이다(창14:17-20). 야곱도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을 가로챈 교활함 때문에 형 이삭에게 미움받아 도망갈 때 벧엘(하나님의 집)에서 제단을 쌓고 십일조를 약속했다(창28:18-22).
5. 십일조의 종류(種類)와 성전세(聖殿稅)
1) 제1의 십일조
레위인에게 쓰이는 십일조(레27:30-33;민18:21-32;신12:5-19,14:22-27;히7:5-9). 매년 토지 소산이나 가축이나 기타 수입의 1/10을 하나님께 바치는 규례이다. 이것은 토지의 분깃없이 오직 성막을 돌보는 일에만 헌신된 레위인들의 생계를 위해 사용되었다. 한편, 레위인들은 이때 받은 소득의 1/10을 다시금 제사장들에게 바쳤다(십일조의 십일조,민18:26;느10:38)).
이 십일조는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고 또 교회에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십일조의 용도이다. 십일조가 레위인의 생활비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오늘날 교회 사역을 위해 헌신한 전임 사역자들(지역 교회의 교역자)의 생활을 지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 제2의 십일조
축제에 쓰이 십일조(신12:5-19,14:22-27,16:16,17). 제1의 십일조를 바치고 남은 것 9/10중에서 다시금 1/10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 규례이다. 이것은 민족 절기 때에 감사의 축제용으로 주로 사용되었고, 그 성격상‘축제 십일조’(festival tithe)라고도 부른다. 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한다면 교회의 경상비에 해당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3) 제3의 십일조
구제비에 쓰이는 십일조(신14:28-29,26:12-15). 매 7년 주기의 안식년을 기준으로 하여, 제3년과 6년에는 둘째 십일조의 비용을 축제용으로 사용치 않고, 성(城) 중의 고아, 과부, 나그네,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구제하는 데 사용토록 규정한 십일조 규례이다. 따라서 제3의 십일조는 따로 드리는 십일조가 아니라, 둘째 십일조와 내용상으로 같은 것으로서, 다만 그 쓰이는 용도만 다르게 규정한 십일조일 뿐이다. 곧 ‘이웃 구제용’십일조이다. 그러나 역사가 요셉푸스(Josephus)는 다르게 해석했다. 첫째 십일조는 - 레위인을 위해, 둘째 십일조는 - 절기를 위해, 셋째 십일조는 - 레위인 중 궁핍한 자나 고아, 과부, 나그네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Antiquities 4권)
4) 십일조 외의 헌금
히브리인은 십일조 이외에는 다양한 형태의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다. 즉, 그들은 곡식과 과일은 물론 양털과 같은 다양한 소득의 처음 것을 당연히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바쳤으며 이를 ‘큰 예물’이라 불렀다. 율법 해설서인 ‘미쉬나’(Mishna)에 따르면 그것은 소득의 1/40∼1/60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율법은 전체 소득에서 먼저 큰 예물 (1/40∼1/60)을 제하고 그 가운데서 다시 제1의 십일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제한 가운데서 다시 제2의 십일조를 드릴 것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때에 따라 히브리인들은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등 여러 가지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별도의 예물을 바쳤으며 성막 건축 등 특별한 사업을 위해서도 헌금을 드렸다.
5) 성전세(聖殿稅, temple tax)
성전 유지를 위해서는 성전세가 있어서 그것으로 충당되었고, 건축을 할 때는 주로 자원하는 특별 헌금이나 헌물이 따로 드려졌다. 성전세는 성전을 위한 속전으로 20살 이상 된 성인 남자가 반 세겔을 드리도록 제정되었으며(출30:11-16), 거둬들인 성전세의 세목과 또 그 성전세가 성막 건축에 사용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출38;24-31;왕하22:4;느10:32).
6. 교회사 속의 십일조
1) 초대교회
초기 교회는 첫 번째 산물인 '맏물'을 바치는 풍습을 유지했고 이런 전통은 기독교가 공인된 서기 313년 이후에도 자발적 기부 모델로 이어졌는데 4세기 무렵부터 그리스도교가 유럽 전역에 보급되면서 의무적인 제도가 되었다. 6세기부터는 교회법에 수록되었고, 유럽에서는 8세기부터 세속법에 의해 강제되었다.
2) 중세교회
교권이 강력했던 중세는 십일조 외 구일조를 포함, 수입의 20%를 교회가 떼어갔는가 하면, 십자군 전쟁 당시 참전하지 않은 신자에게서 당시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슬람 수장의 이름을 딴 '살라딘 세'라는 특별 세금을 거뒀다. 십일조가 확대되어 대십일조와 소십일조가 구별된다. 대십일조는 성경에 따라 곡물과 큰 가축을 내는 것이다. 소십일조는 추가적으로 기타 아채, 과일, 채소 등의 농작물과 작은 가축을 내는 것이다. 무엇에 대하여 소십일조가 부과되는지는 지역에 따라 달랐다.
3) 근대교회
프랑스 혁명과 종교 개혁으로 사라지기 시작해 19세기에 이르러 유럽 모든 국가에서 법적으로 폐지됐으나 아직도 영향이 남아 오스트리아와 덴마크 등은 소득의 1%를 내야 하는 '교회세'를 도입해 운영 중이며 이탈리아는 소득의 0.8%를 종교단체나 사회복지기관에 기부하도록 하는 제도로 남았다.
7. 현대의 십일조
1) 신약 시대에 십일조에 대한 근거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신약시대에는 구약시대의 율법인 십일조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바라새인들이 헌물과 십일조는 잘 드리는 데, 공의와 자비와 믿음을 저버렸다고 책망하셨다. 이 때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눅11:42).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는 말은 십일조도 제대로 내야 하지만, 공의와 자비와 믿음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주님은 분명히 십일조를 이행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신약 시대 성도들은 성령 안에서 그것을 넘어서서 훨씬 더 큰 헌신을 할 수 있다. 주님께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셨다. 이 말은 복음을 가진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 율법을 받은 구약 시대의 사람들보다 헌신에 있어서 탁월한 것이 정상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복음은 십일조 규례를 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롬9:20,21).
2) 십일조와 헌금을 드려야 하는 이유(理由)
율법에 십일조가 규정된 이유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에도 교회를 지키고(경비), 청소하고(사찰), 설교하고(목회자), 교육하고 심방을 하는 일 등 교회가 올바르게 운영되기 위해 할 일이 많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을 전문적으로 담당할 사역자들을 새우고, 그 일을 담당하지 못하는 교인들이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아주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① 구약의 명령이며 지금도 그 명령은 계속 유효하기 때문이다.
② 믿음의 행위의 거룩한 부분이다.
③ 진실한 사랑의 표현이다.
④ 몸된 교회 곧 하나님 사업에 절대 필요한 기금이다.
⑤ 이 세상에 대한 탐심을 버리게 하는 하나님의 뜻이다.
⑥ 하늘에 쌓는 보물의 거룩한 부분이다.
⑦ 심고 거두는 법칙을 행하는 것이다.
3) 십일조의 정신(精神)
신약시대의 십일조는 구약의 언약적 의미와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고백적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즉, 만물의 소유주는 오직 하나님이시요 자신은 단지 주인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인식하에서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그리할 때 십일조는 단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물질의 1/10을 드리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바치는 신앙 고백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정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십일조의 정신인 것이다.
4) 교회에 드리는 헌금의 종류(種類)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의무적으로 드려야 하는 헌금으로, 십일조가 이에 속한다.
둘째, 자원해서 드리는 헌금으로, 감사헌금, 구제헌금, 선교헌금 등이 있다.
5) 헌금의 자세(姿勢)
교회에 하는 헌금은 결코 기부금이 아닙니다. 기부금이란 남을 위해 사용하는 돈을 의미하지만 헌금은 남을 위해 기부하는 돈이 아니라 자신이 포함된 거룩한 주님의 몸된 교회에 고백적으로 드려지는 돈이다. 예배시간에 헌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에 대한 성도들의 공동고백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드려야 한다.
② 사랑과 믿음으로 드려야 한다.
③ 미리 준비하여 드려야 한다.
④ 힘을 다해 드려야 한다.
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드리지 말고 자원함으로 드려야 한다.
⑥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⑦ 섬기는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7).
“내가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마16:18)
교회의 주인은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대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친히 자기 피로 값주고 성도들을 사서 이 땅에 거룩한 공동체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개인적 기득권을 주장한다면 주님의 뜻에 앞서고자 하는 오만한 자리에 앉게 됩니다.
십일조를 다른 교회에 드리고자 하는 마음의 동기가 진실로 ‘같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인지, 개척교회의 재정을 돕고자 하는 마음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개척교회의 재정을 돕고 싶다면 십일조는 성찬을 떼는 본 교회에 드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위해 허락하신 열의 아홉 중에서 구제헌금으로 드리는 것이 예물에 대한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십일조를 가지고 개인이 농촌교회지원이나 구제사업을 하는 것은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각종 지원 사업이나 구제사업은 교회에 십일조를 드림으로 그 십일조로서 교회가 그러한 사업을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만일 나의 십일조를 가지고 개인적으로 이런 일 저런 일을 도와줄 때 그러한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챌 위험이 있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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