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스크랩] 상담의 주체로서의 `교회의 변증`

수호천사1 2014. 5. 28. 21:12

상담의 주체로서의 '교회의 변증'

 

 

 

 

      '변증'을 의미하는 '엘렝틱스'(elenctics)는 헬라어 동사 '엘렝코'에서 파생된 것으로 본래의 의미는 '논박하다', '부끄럽게 만든다' 라는 뜻이다. 이는 비기독교 종교에 대항하여 기독교 진리를 변증하고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바빙크가 이방종교를 기독교 신앙으로 대결하려는 선교적 변증학 언어로 만든 용어이다.

      '엘렝틱스'는 비 기독교의 위험한 세력에 대한 방어보다는 오히려 직접적인 공격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다. 바르넥은 비기독교의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파하는 것을 전쟁터에서 적을 대면하는 것으로 비유하고, 이 대면에는 종교에 따라 접촉점, 변증, 논쟁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교회는 이방인들이 기독교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종교를 알고 논증을 해야 승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논증과 대결을 가르켜 바르넥은 '선교변증학'이라고 하였으며, 선교변증학이 선교학을 보충하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비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를 믿도록 권유할 때 변증학에서 터득한 '변증의 방법'을 잘 활용한다면 그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믿도록 할 수 있기 때문에 변증학을 선교학의 한 형태로 이해할 수가 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비 기독교 세계에 대해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여 왔다. 복음주의 교회는 모든 비기독교 종교를 마귀와 우상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적대적인 자세를 일관해 왔다. 이러한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로 릿센 창(Lit-Sen Chang)은 "선교의 질식"(The Suffocation of Missions)으로 시멘즈(John T Seamands)는 "  정면 충돌의 방법"이라고 하였다.

     공격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것은 용기로는 100%이지만 지혜에는 0%이다. 복음전도는 사상은 강하게, 방법은 부드럽게 시행해야 한다. 흔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보다는, 무엇을 해서는 안된다는 "부정"의 복음을 전함으로 교회 스스로가 철조망을 치는 잘못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이러한 배타적 전도방법이 신중을 기해야 할 이유로서는 아세아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전통종교가 이데올로 기화되어졌기 때문이다. 이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150년 동안 일곱번이나 십자군 전쟁이 있었는데 이로 인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결과가 산출되었다.

     1) 회교의 교도들이 기독교를 심히 미워하게 되었다(원래 모하멧이 가르치는 내용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므로 철학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2)동쪽 종교의 교인들이 회교도한테 고생을 당했고 또 로마 천주교 교인들을 미워하게 되었다. 당시 서구에 있어서 큰 전쟁이 있었음에도 아름다운 큰 성전이 세워진 것을 보면 얼마만큼 열심과 헌신적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열심을 잘못 사용하였다.
     비 기독교 세계에 대한 또 다른 접근 방법은 혼합주의의 자세이다. 이 사상은 비 기독교 세계의 문화에도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이 있으므로 개종을 위한 전도보다는 인류 평화와 사회문제의 공동노력을 위한 목적으로 비 기독교 세계와의 대화를 하는 데서 의의를 찾는다.
 즉 기독교와 비 기독교 세계를 혼합하여 기독교 원리를 제시하는 잘못된 태도이다.
     시멘즈(Seamands)는 이러한 적용의 모델에는 다음과 같은 잘못된 '종교신학'이 기초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 시대의 어떤 신학적 용어는 예를들면 '만인구원론'과 '익명의 기독교' 같은 것은 적용(accomodation)의 방법을 채택하는 위험에 빠지기 쉽다. 이러한 신학은, 그리스도는 타종교에도 이미 내재한다.
 즉 그들도 이미 구원을 받았거나 신자이다. 다만 그들이 그것을 모를 뿐 이라고 주장하면서 회교, 힌두교, 불교 등이 기독교를 더 잘 받아들이도록 노력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그들이 믿는 종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할 필요가 없다. "고 말한다. 이러한 사상은 복음의 독특성을 부정하고 기독교를 여러 종교중의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입장에 동조할 수 없다.

       신자가 비 기독교 세계의 사람들에게 변증할 때 상대방과 공유 할 수 있는 접촉점에 근거하여서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불신자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공통된 성질이 있다. 그러나 한편 접촉점을 전혀 부정하는 자들도 있다.
 헨드릭 크래머는 그 이유로 첫째, 종교는 실존의 전체성을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광범위하고도 절망적인 노력이기  때문이며 둘째, 그리스도의 계시에 비추어보면 종교간의 모든 유   사성과 접촉점은 실제로 비유사성(dissimilarites)이다. 셋째, 접촉점은 기독교의 신 개념을 "상제"라는 중국 사상에 접붙일 수 있다는 진화론적 이며, 합리주의적 가설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이 접촉점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비교종교학적 방법으로 기독교를 변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이 방법은 적어도 다음의 3가지 이유로 적절한 방법은 아니다. 첫째, 이것은 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철학은 이성에 호소한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이성은 최후의 기준이 못된다. 둘째, 이 방법은 심리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앙을 변호하기 위해 어떤 이유들을 내세우지만 그 이유란 머리로써는 알 수 없는 마음의 문제이다. 셋째, 이 방법은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세계 종교간의 외형상 유사성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기독교의 변증은 비교종교학적 관점보다는 오히려 접촉점에서 출발하는 것이 타당하다. 변증을 위한 몇 가지 접촉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의식과 하나님의 형상이다.
      반틸에 의하면 인간은 타락하였으나 인간 마음 속 깊은 곳에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는 의식이 있다고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e Dei)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신 의식이 있다. 따라서 신의식과 하나님의 형상은 접촉점이 될 수 있다.
 중국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는 고대 중국인들은   유일신 사상에 근거하여 상제에게 절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접촉점으로 할 수 있다.
      윤성범 교수가 단군신화의 환인, 환웅, 단군을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결부시켜 토착화를 시도한 것은 신학적인 방법상 타당성이 없다. 그러나 이것을 전도에 이용할 때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신자든 불신자든 모두 하나님의 다스림, 그 권위, 그리고 그의 임재에 '관하여'about)
안다. 신자와 마찬가지로 불신자는 비록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기를 거부 하지만 하나님을 안다.
      둘째, 일반은총이다.
     바빙크는 선교사들이 원주민과 접촉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그들에게 베푸셨다고 하였다. R. B. 카이퍼는 중국인들이 조상을 숭배하는 효의 정신을 선교사들이 접촉점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접촉점으로 간주한다. 이것은 인간이 타락하였을지라도 어느 정도 악을 억제하고 약간의 선을 행할 수 있는 일반 은총의 교리에 속한 것임을 의미한다.
 우리는 타종교인들이나 종교가 없다고 하는 자들에게 자연을 통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할 수 있다.
     셋째, 비 기독교 세계의 개념과 언어 및 문화이다.
     우리는 비 기독교 세계에게 전도할 때 비 기독교 세계에서 사용하는 개념과 언어를 접촉점으로하여 접근을 해야 한다. 한부선 선교사는 전도집회에서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는 논어의 교훈을 직접 인용함으로써 전도하였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상과 개념으로 시작해야 관심을 가지게 된다. 성경에도 전도자들이 전도할 때 상대방의 사상과 언어로 시작하였지, 처음부터 새 사상이나 개념을 소개하지 않았다. 유대인을 상대로 한 마태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대표적인 실례이다.
 이와 같은 방법에서 보면 회교 신자들에게는 아브라함의 족보로부터 시작하는 마태복음을 통하여 접근하는 것이 용이하다. 바빙크도 새로운 사상을 즉시 제시하지 아니하고 점진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였다. 에드윈 어불류 스미스(Edin W Smith)의 말에 의하면 선교사들은 토착종교의 생리와 구조속에서 구약성경의 견해 및 배경과 유사한  요소들을 찾아내어 그 위에서 기독교 신앙을 지향하는 선교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유대인의 종교 경험과 선교지의  종교적 전통을 같은 것으로 볼 때 복음의 멧시지를 전할 수 있는 핵심적인 접촉점(Point of Contact)이나 그 기초를 마련해 준다는 것이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도 기독교와 비 기독교 세계간의 대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 대화의 목적은 인간의 공통 관심사인 사회 복지와 번영과 평화를 추구하는 데 있다. 비 기독교 세계의 사람들도 역시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생로병사와 인간의 삶의 고통 등을 접촉점으로 삼을 수 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메시지는 사랑과 동정으로 인간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문제를 언급하였다.
     복음은 인간 실존의 문제와는 상관없는 추상적 이론이 아니다. 화란에서 발행된 한 선교보고서는 사도들이 말씀을 전하던 세계는 하나님의 특별섭리로 준비되었지만 현재 우리가 일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그런 준비가 결코 되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의료적인 도움과 교육을 수단으로 하여 스스로 길을 열도록 애써야 한다고 하였다.

     넷째, 변증하는 자, 그 자신이다.
     지금까지 접촉점을 다루었지만 가장 좋은 접촉점은 변증자 그 자신이다. 종교와 종교간에는 항상 갈등과 대립과 오해가 불가피하게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순한 말과 겸손한 인격은 적대감을 해소한다. 앞에서 이미 헨드릭크래머의 사상을 인용하였지만 접촉점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크래머도 변증자 자신의 인격과 윤리가 가장 위대한 접촉점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성령이시다.
     변증학에서 중요한 것은 말씀 전파에서 성령을 의존하는 것이다. 바빙크는 "선교적 변증"이란 이성에 호소하는 태도로 접근하 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하여금 비 기독교 세계의 죄와 모순을 깨닫고 회개하게 하는 것이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선교할 때 성령이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듣게 하였다(행 16:14).
     일본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던 영(John. M. L. Young)도 성령을   의존하는 것이 "변증학의 원리"라고 하였다. 그는 성령의 확신케 하는 말씀과 이들의 화해를 공격의 출발점으로 한다. 변증학은 기독교의 진리를 확신을 가지고 전하되 성령의 역사를 확신하고  전하는 것이다.

      성령의 임의성에 대한 강조와 함께 성령께서 우리를 구체적으로 인도하신다는 성령의 내재성에 대한 강조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의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도록 하는 요소인 것이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성경에 있는 기적들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며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믿는다.

      즉, 신앙을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이해 한다. 이러한 기적을 강조하는 체험적 신앙은 질병이나 가난과 같은 낙망 가운데 있는 자들이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갖게 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이러한 기적을 기대하는 적극적 신앙은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게 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반면 기적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우리의 일상 경험과 상상을 초월한 사건만이 하나님의 역사인 것처럼 생각하는 센세이셔널리즘에 빠뜨릴 위험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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