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종말

[스크랩] 민족과 세계

수호천사1 2014. 5. 16. 23:15

민족과 세계



  조국과 민족에 대해 심도 있게 논하면 편협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세계를 가슴에 품은 어떤 위대한 사람들은 ‘민족’을 주제로 말을 하면 즉각 “민족주의의 대두와 이로 말미암은 부작용이 우려 된다”고 소란을 떤다. 심지어 ‘민족해체’까지 주장한다.

 

  그들은 ‘국사’라는 말조차 국수적 용어라며 시비를 건다. ‘국사’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그렇게 극우적이며 국수적일까. ‘한국’이라는 나라는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하나이므로 ‘국사’라고 하지 말고 ‘한국사’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어’도 ‘한국어’라고 해야 하며, 그냥 ‘국어’라고 하는 것은 ‘국수적’ ‘극우적’ 표현방식이라고 비판한다. 지나치게 똑똑해서 탈이다.

  
  열방을 품고 있다는 이유로 ‘민족사’의 존재가치와 의미, 이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까지 부정할 필요가 있을까. 오랜 시간을 두고 지역과 혈연, 문화가 어우러지면서 형성된 ‘민족’이라는 실체를 굳이 부정하려는 이유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극단적인 주장을 일삼으며 이웃 나라나 민족과의 긴장과 갈등을 유발하는 국수적 민족주의는 배척되어야 하지만 민족이라는 엄연한 실체에 바탕을 둔 건전하고 개방적인 민족주의까지 해체와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곤란하지 않은가.

 

  나는 그런 위대한(?) 정신을 가진 일부 청년들도 2002년 월드컵 경기 때 거리로 나가 “~한민국”이라고 목이 쉴 정도로 소리치며 한국팀을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스페인을 위시한 축구 강국들을 줄줄이 물리치고 4강까지 갔을 때 “한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해 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뉴스를 통해 보았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때 왜 그랬나? 그러지 말아야지. 민족과 국가를 초월해야 한다며... 다시는 그렇게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

 

 

 

 

 

  민족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리고 단일민족은 더더욱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부끄럽다면 실은 잡종일수록 부끄러운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세계가 하나로 엮이는 이 지구촌 시대에 순혈주의를 고집하자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지적하려는 것은 단일민족이라는 것이 무슨 수치요, 큰 죄나 되는 양 호들갑을 떨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대단히 관대한 척 하며 그런 논조로 떠드는 호사가들이 눈에 자주 띈다.


  우리는 오히려 알게 모르게 우리의 현실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주의력을 흐트러뜨리는 세계화, 세계주의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강대국 중심의 세계화 정책이 우리의 생존과 충돌 할 소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실 강대국들은 모든 민족들을 지배하고 자기의 세력 밑에 두려고 하기 때문에 속성상 ‘민족’이라는 개념과 어휘 자체에 거부감이 있을 수밖에 없고, 세계전략상의 목적 때문에 필연적으로 ‘민족주의’를 배척하게 된다.


  특히 다민족으로 구성된 미국과 같은 나라는 ‘민족’이라는 것이 국가를 통합하는데 장애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은연 중 단일민족에 대한 열등감도 있어서 더욱 그렇다. 그 대신 ‘세계화(Globalization)’ 및 ‘세계주의(Cosmopolitanism)’ 확산에 주력한다. 그렇게 해야만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어 경제적 부를 극대화 할 수 있으며, 효율적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라가 위기를 만나면 미국 정부는 난국을 극복하려는 수단으로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애국 정신’에 간절히 호소한다. 그들은 우리나라처럼 단일민족국가가 아니므로 ‘애족 정신’에는 호소할 길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 나갈 때는 ‘애국 정신’ 한 가지보다는 기왕이면 ‘애국 애족 정신’이 훨씬 큰 자산이요 에너지가 될 것이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 특히 청년들에게는 ‘국사’는 낯설게 보이고, ‘민족’이나 ‘동포’라는 개념도 진부하고 편협하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마땅히 ‘탈북 동포’라고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탈북자’라고 쓰고, ‘재 중국 동포’라고 해야 할 것을 ‘조선족’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남인가? 아무리 세계화 시대라 해도 민족이라는 울타리를 허물어버릴 수는 없다. 시대가 변해도 겨레와 민족은 지켜야 할 가치이다. 민족은 낡은 개념이 아니다. 지켜야 할 가치까지 폐기해야 한다는 것은 신사대주의이다.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 시대를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남북이 통일을 하려는 이유도 민족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우리 겨레는 ‘우경화’ 혹은 ‘민족주의’ 때문에 타민족을 괴롭힌 적이 없다. 오히려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상실해서 이민족의 침략을 당하며 고통을 받아 왔을 뿐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얼 빠진 백성이 강한 나라를 이룰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특별계시)과 역사(일반계시) 속에 명확히 계시되어 있는 알이랑 민족의 정체성과 구원사적 사명을 적극적으로 증거하여 우리 겨레로 하여금 마지막 주자로 쓰임받을 또하나의 선민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을 확고히 정립하도록 힘써야 한다. 또 우리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자기 나라와 역사에 자부심(자부심과 자만심은 다르다)을 갖게 해야 한다.


  차이나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중화민족은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고 기술해 가르치고, 심지어 일제는 차이나의 저항 때문에 패망했다고 교과서로 가르치고 있다. 물론 다 거짓이다. 인구가 약 7억이나 되었지만 우리의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같이 목숨 걸고 일제에 저항해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인물이 단 한 사람도 없었던 나라가 바로 ‘차이나’라는 인구대국이다. 그런데도 일제가 차이나의 저항 때문에 항복했다고 역사를 조작해 가르친다. 섬나라 일본도 자국의 역사를 미화하여 교육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설명해도 즉각 의심부터 하며 ‘민족주의’ ‘우경화’가 우려된다고 태클을 거는 겉똑똑이들이 너무도 많다. 반만년의 긴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지만 우리가 언제 민족주의다운 민족주의를 한 번이라도 해보았는가. 해보기는커녕 동족끼리 갈라져서 다투고(지금도 그렇다) 이민족의 침략을 받으며 늘 고난만 당한 백성이 우리 한민족이다.

 


  얼마 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이 단일 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 땅에 사는 다양한 인종들 간의 이해와 관용, 우호 증진에 장애가 될 수 있으므로 현대 한국사회의 다인종적 성격을 인정하고 적절한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다. 이런 권고가 있는 후 일부 인사들에 의해 세계화의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우리도 탈민족주의로 나가야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민족이란 근대사회가 만들어 낸 허구적 신화며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바뀌는 세계화 시대에 민족주의는 무용지물이라고 말한다.


  일견 그럴듯한 이론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정당화되기 어렵다. 민족은 단순한 허구적 공동체가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장하듯이 민족이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면 팔레스타인 민족이나 쿠르드 민족이 온갖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자신의 민족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현실을 우리는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앞서 지적했듯이 우리는 왜 굳이 통일을 하려고 애쓰는가? 민족은 긴 세월 동안 우리의 정체성을 떠받치는 기반이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세계화의 시대라 해도 민족을 완전히 부정한다면 우리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가 없다. 정체성의 상실은 뿌리를 잘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욱이 우리는 제2의 성민인 “알이랑 민족”이므로 ‘민족’을 송두리째 내팽개치는 탈민족주의를 용인할 수 없다. “알이랑 민족”의 민족주의는 세계사의 흐름을 외면한 닫힌 민족주의가 아니다. 세계선교의 마지막 주자로서 열방에 정의를 펴며 복음을 전하려는 열린 민족주의다. 열린 민족주의가 새로운 우리의 이념적 좌표이다. 또한 열린 민족주의는 민족의 정체성을 배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틀 속에서가 아니라 인류 보편적 가치 위에서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화를 역사가 통합되어가는 불가피하고 거스를 수 없는 인류 보편사의 흐름으로 이해하고 세계 보편적 기준에 우리를 맞추면서 동시에 민족의 정체성을 나름대로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인의 숨은 자산이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가르쳐서 우리의 아들딸들이 민족적 자긍심 지니고 열방으로 나아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어디를 가든 주눅 들지 않고 가슴을 펴고 선교도, 비즈니스도, 스포츠도 더 잘 할 수 있다. 성경도 ‘민족’을 긍정한다. 사도 요한은 장차 각 나라와 민족이 “자기 영광”을 갖고 천국으로 들어 갈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원받은 자들의 민족들이 그 도성의 빛 가운데서 걷겠으며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과 존귀를 그 곳으로 가져오리라”(계 21:24* KJV)


  왕(여기서 왕은 왕국, 곧 나라와 동일시되는 개념이다)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들어간다는 것은 민족과 나라들마다 하느님께 받은바 은혜가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하여 ‘자기 영광’을 가지고 하느님 앞에 나아가 그것으로써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물론 여호와 하느님은 인종과 민족, 나라를 초월해서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차별 없이 구원하신다. 그러나 각 나라와 민족들을 향한 계획까지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마치 우리들 각 사람을 향한 하느님의 섭리와 계획이 다르듯, 나라와 민족들을 향한 주님의 섭리와 계획도 엄연히 다른 것이다(행 17:26). 우리나라를 향한 하느님의 계획과 일본을 향한 하느님의 계획은 분명히 같지 않으며, 미국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과 러시아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도 분명히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향한 하느님의 계획은 무엇일까? 그것은 복음의 제사장 나라가 되어 마지막 주자로 쓰임을 받는 것이다. 말세에 예루살렘 땅 끝까지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알이랑 민족 우리 겨레는 셈의 현손 욕단의 직계 후손으로서 하느님이 나중에 쓰시려고 동방의 땅 끝에 은닉해 두신 또하나의 선민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한국 교회 청년들이 취해야 할 위대한 비전이다. 가자! 알이랑 고개를 넘어 예루살렘 땅 끝까지!

 

 


 

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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