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신약

[스크랩] 환난 ․ 진노 ․ 휴거

수호천사1 2014. 5. 1. 21:54

환난 ․ 진노 ․ 휴거

 

유석근 목사

(알이랑코리아 대표, 알이랑교회 담임)

 

 


  신약시대 전체는 하나님(하느님)의 백성들이 환난 받는 기간이다. 즉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이 땅의 성도들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그 빈도와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언제나 환난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난이란 일상적인 것이며, 교회는 근본적인 성격에 있어서 항상 순교적인 교회라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교훈이다(행 14:22; 요 16:33; 롬 8:35; 살후 1:6~10; 요 15:20; 마 10:28,39; 눅 21:16~18; 계 13:7~10,15; 14:12).*


  그러므로 세대주의자들이 고안해 놓은 이른바 ‘7년 대환난’이라는 성경에 없는 기간을 놓고 ‘환난 전 휴거’냐 ‘환난 중간 휴거’냐 ‘환난 후 휴거’냐 라는 문제로 논쟁을 하는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휴거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환난으로 이어져 온 이 신약시대가 다 지난 후 역사의 끝에 이르러 단 한 번에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른바 ‘7년 대환난’이나 ‘환난 전 휴거’는 성경에 없는 다른 교훈이요 다른 복음이다. 성경은 재림과 휴거가 언제 어떻게 발생한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위의 성구가 밝힌 대로 교회의 휴거는 예수님이 공중에 재림하실 때 단 한 번 일어난다. 그런데 그 휴거의 발생 시기를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즉 환난 후)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즉 환난 후) 땅의 모든 족속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즉 휴거)”(마 24:29~31).


  예수님은 ‘환난 전 휴거’를 가르치셨는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환난 후’라고 하셨지, 환난 전에 택하신 자들을 모으신다고 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휴거는 ‘환난 전’의 것이 아니라 ‘환난 후’의 것이다. 마가도 이러한 계시를 분명히 기록했다.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즉 환난 후)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즉 환난 후)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즉 휴거)”(막 13:24~27). 

 

  

  세대주의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이른바 7년 대환난을 전후로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으로 구분해 놓고서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은 인간이 고안해 낸 픽션일 뿐 전혀 성경적 교훈이 아니다. 성경은 오직 환난 후의 단 1회적 재림만을 말하고 있으며, 휴거는 그 때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의 재림은 ‘호령’(shout)과 ‘천사장의 소리’(Voice)와 ‘하나님의 나팔’(trumpet)을 수반할 것이므로 휴거는 세대주의자들의 말처럼 은밀한 것이 아니라 극도로 ‘떠들썩한’ 승천이 될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이 비밀 공중 재림과 비밀 휴거의 근거로 삼고 있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 15~17절에는 비밀이 있을 여지가 없다. 래드(Ladd)의 말대로,


  “(살전 4:15~17). 이 성경구절에서 그리스도의 비밀 재림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호령’(shout)과 ‘천사장의 소리’(voice)와 ‘하나님의 나팔’(trumpet)을 수반할 것이다. 어떤 사람의 말처럼 그 호령과 나팔 소리는 죽은 사람도 깨울 만큼 큰 소리일 것이다.”(G. E. Ladd, 『The Blessed Hope』, Grand Rapids: W. B. Eerdmans Publishing Co., 1979, p.63)


  들리지 않는 호령은 호령이 아니고 소리 나지 않는 나팔은 나팔이 아니다(마 24:31). 죽은 의인들이 부활하고 살아있는 성도들이 변화되어 승천하는 일은 비밀리에 소리 없이 이루어질 일이 아니고 “나팔 소리”가 날 때 일어날 일들이다. 비밀 강림이 아니라 극도로 “떠들썩한” 재림이 될 것이며 비밀 휴거가 아니라 가장 떠들썩한 승천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파루시아)도 그러하리라”(마 24:27)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강림(파루시아)은 온 세상이 목도할 수 있는 공개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휴거 역시 결코 은밀한 휴거(Secret Rapture)가 아니라 온 세상이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당당히 이루어질 사건임이 분명한 것이다.

 


  비밀 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밤에 도적같이”(살전 5:2; 눅 12:39) 오신다는 말씀들을 비밀 재림과 비밀 휴거의 표현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벧후 3:10)라고 표현된 말씀에서 “도적같이”의 뜻이 “소리 없이” “아무도 모르게”의 뜻이 아니라 “갑자기”라는 뜻인 것을 알게 된다.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 알았다면”(마 24:43)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서도 그것이 시간에 관계된 표현임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성경에는 도적이 오는 것처럼 때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재림은 강조되었어도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비밀 재림이나 비밀 휴거는 언급된 적이 전혀 없다.

 

  그리고 들림을 받아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한 후엔 예수님과 성도들은 함께 곧바로 지상으로 강림하는 것이지 7년씩이나 허공에서 체류하지 않는다.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승천하실 때 그 광경을 자세히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올라 가신 이 예수는 너희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 하반절. 킹 제임스 성경).

 

HE WILL COME THE SAME WAY THAT HE LEFT

 

  당시 하늘로 들려올라 가신 예수님은 하느님의 보좌 우편으로 가시기까지 공중에서 7년간 체류하신 적이 없다. 그는 곧바로 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그러므로 주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기 때문에 재림하실 때도 들림 받은 성도들의 영접을 공중에서 받으신 후 곧장 지상으로 오시는 것이지 아무 것도 없는 공중에 절대로 7년씩이나 체류하지 않는다.


  그러나 ‘7년 대환난’과 환난 전의 ‘은밀한 휴거’를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은 여러 가지 성경을 인용하면서 그들의 환난 전 휴거설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여기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미혹되어 있다. 그들이 ‘환난 전 휴거설’을 옹호하기 위해 내세우고 있는 그 성경 구절들은 참으로 그들의 이론을 지지하는 구절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제 세대주의자들이 ‘환난 전 휴거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애용하고 있는 주요 구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그 구절의 실제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1. 요한계시록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이 말씀은 성도가 환난에서 면제된다는 의미가 아니고 ‘환난 중에서 보호하심’을 뜻하는 말이다. ‘면하게 하리니’의 원문은 ‘~으로부터 지키리니’로서, ‘~으로부터’는 어떤 사물의 통과를 뜻하는 ‘에크’(ek: from, out of)란 전치사로 되어 있고, 면제를 뜻하는 ‘아포’(apo)로 되어 있지 않다. 그리하여 영어성경 N.I.V(New International Version)는 아래와 같이 번역하였다.


 “Since you have keep(ετυρησας) my command to endure patiently, I will also keep(τηρησω) you from the hour of trial…”

 

  흠정역 역시 “… will keep thee from the hour of temptation”(시험의 때에 너를 지키리니)이라고 했다. 희랍어 표준 원문에서 직역한 한글 새성경 신약전서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기 때문에 나도 시험의 때에 너를 지키리니, 이는 전 세계에 임하여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는 때라.”


  그리고 표준 신약전서도 역시 아래와 같이 번역하였다.


 “네가 내 인내의 도리를 지켰으므로 나도 땅 위에 살고 있는 자들을 시험하려고, 온 세계에 닥칠 시험의 때에 너를 지킬 것이다.”


  또한 공동번역 성경도 이렇게 번역하였다.


 “참고 견디라는 내 명령을 너는 잘 지켰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기 위해서 앞으로 세계에 환난이 닥쳐 올 때에 너를 보호해 주겠다.”


  즉 본문은 우리가 환난을 피하도록 해주시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환난에서 견딜 수 있게 지켜주심을 말하는 것이다. 이 약속을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과 대조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2. 누가복음 21:34~36


  “너희가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라는 말씀은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로부터 당하는 모든 환난을 ‘피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행하여질 ‘심판들’을 피하라는 말씀이다. 그것은 26절의 사람들을 기절시킬 ‘세상에 임할 일’, 즉 그리스도의 심판을 피하라는 말씀이다. 주님의 심판은 온 세상에 임하며(26, 35절) 덫과 같이 임하는 것이다(34절).

 


  3. 데살로니가전서 1:10; 5:9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10).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살전 5:9).


  “장래 노하심에서 건져 주신다”는 말씀이나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란 말씀은 휴거나 대환난과 관계된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최후 심판(진노)과 관련된 말씀이다. 즉 성도는 장차 하느님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환난’과 ‘진노’는 다르다. 환난은 성도들도 받지만 진노는 성도가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성도는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진노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상에서 대신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난은 성도들도 받는 것이다. 성도가 받는 환난은 구원의 목적에서 주어지나(연단의 차원에서), 불신자가 받는 환난은 심판의 목적에서(형벌의 차원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이 ‘환난’과 ‘진노’를 구분하지 않고 노아가 홍수 때에 방주에 들어간 것까지 성도가 환난을 당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환난 전 휴거의 모형’이라고 주장한다. 즉 노아가 홍수 때에 방주에 올라가 환난을 피했으니, 그와 같이 마지막 때에도 성도들은 들려올라가 환난을 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적용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노아의 홍수는 하나님께서 내리신 진노 즉 심판인 것이지, 세상이 성도들에게 주는 환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아는 방주를 짓기까지 120년간이나 전 인류의 끊임없는 조롱과 비웃음과 핍박과 환난을 당했음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노아가 피한 것은 하나님의 진노였지, 세상 사람들이 그에게 주는 환난이 아니었다. 40주야의 홍수 기간은 환난 기간이 아니고 진노와 심판의 기간이었던 것이다. 노아는 환난과 박해를 면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한 것이다.

 


  롯의 때도 역시 마찬가지다. 세대주의자들은 소돔 성에 불심판이 내리기 전에 롯이 소알 성으로 피신한 것을 ‘환난 전 휴거의 모형’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벧후 2:7). 의로운 사람 롯은 악인들로 가득 찬 음란한 소돔 성에서 큰 환난을 당했던 것이다(창 19:9). 즉 롯은 환난을 피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노(심판)을 피한 것이다.


  환난과 박해는 이 땅에서 성도가 겪어야 하는 일상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환난에서 피신하게 하는 구원이 아니라 환난 중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구원이다. 환난을 면하게 하는 구원이 아니라 이겨나가게 해주시는 구원인 것이다. 환난 도피사상은 마귀로부터 온 사상이다. 환난과 진노는 다르다.


  4. 마태복음 24:40~41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두 사람이 함께 있다가 한 사람이 상대방도 모르게 비밀리에 사라진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까지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아무 구분 없이 한데 어울려 살지만 홀연히 재림하실 때에는 준비 여부에 따라 운명을 달리하는 영원한 분리가 이루어짐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 말씀의 문맥이 시작되는 바로 앞 성경 구절과 끝난 다음의 성경 구절에서 그 뜻이 분명해진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37~39절). (40, 41절 본문).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42, 43절).


  이 모든 표현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노아 홍수의 유사점을 직접 비교하는 문맥에서 쓰였음을 쉽게 알게 된다. 믿음으로 준비되어 방주에 들어간 사람은 홍수에서 구원받았듯이, 믿음으로 재림을 준비한 사람도 마지막 파멸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준비 여부에 따라 주님의 재림 때에 운명을 달리하는 영원한 분리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 구절의 교훈인 것이다.


  5.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는 교회라는 말이 있으나 4장 이후에는 한 번도 없으니, 4장 이전에 교회는 휴거되고 4장 이후에 발견되는 성도는 이삭줍기에 해당하는 성도들이다.”


  그러나 계시록 4장 1절에서는 교회가 휴거하지 않았다. 단지 사도 요한 개인이 성령의 감동으로 육체는 밧모 섬에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그의 영으로 계시를 받기 위하여 ‘공중’이 아닌 ‘하늘 보좌’ 곁으로 올라간 것뿐이다. 그러므로 4장 이후에 나타나는 성도는 이른바 ‘이삭줍기’ 성도가 아니라 교회의 성도인 것이다. 4장 이후에는 교회가 없는 것이 아니라 교회 이름이 없는 것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삭줍기 구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경의 교훈과 상충하는 비성경적인 발상이다. 노아의 때(창세기 6장)와 롯의 때(창세기 19장)에 그리고 예수님의 열 처녀의 비유(마태복음 25장) 중에 이삭줍기 구원이 있는가? 없다! 노아의 홍수 때에 닫혔던 방주 문이 다시 열려 노아의 가족 외에 이른바 ‘이삭줍기’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롯의 때에도 소돔 성 사람들 중에 롯의 가족 외에 ‘이삭줍기’로 구원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방주를 바라보며 울부짖는 자들, 그러나 한번 닫힌 방주의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구원의 기회는 단 한 번뿐이요, 천국문은 한 번 닫히면 절대로 다시 열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다(롬 1:16; 3:22). 지금이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이며 이 은혜의 때에 전파되고 있는 복음으로 구원을 받지 않으면 유대인들도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아무런 소망이 없다.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마 25:10~12).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계 3:7).


  “그가 헐으신즉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을 가두신즉 놓이지 못하느니라”(욥 12:14).

 


  재림 후에 ‘이삭줍기’에 해당하는 두 번째 구원의 기회는 없다. 재차 구원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기 위하여 불꽃 중에 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살후 1:8). 재림 후에 적어도 7년간은 구원받을 수 있는 은혜의 집행유예가 계속된다는 가르침은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는 철저한 거짓이다(고후 6:1,2).


  ‘7년 대환난’이란 없다. 따라서 예수님의 재림은 7년 환난 전 공중 재림과 7년 환난 후 지상 재림 같은 이중 재림이 아니며, 7년 환난 전의 이른바 ‘은밀한 휴거(Secret Rapture)’ 따위도 없는 것이다. 성도의 휴거는 세상 끝에 주님이 단 한번 강림하실 때 단 1회적으로 그 재림과 함께 동시에 공개적으로 발생하고 종결되는 것이다.

 

  주님의 초림 탄생도 1회

  십자가의 죽으심도 1회

  부활하심도 1회

  승천하심도 1회

  주님의 재림도 1회가 되리니

  성도의 휴거도 오직 1회로 끝날 것이다.

  떠들썩하게!

  공개적으로!


 결  어


  이상과 같이 살펴본 바대로, 세대주의자들이 그들의 ‘환난 전 휴거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하는 구절들은 한결같이 해석이 그릇되었고 잘못 적용된 것이다. 환난 전 휴거설은 성경의 교훈과 상충하는 전혀 다른 복음이다. ‘7년 환난’을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환난을 당하지 않는 휴거인 것인 바 그것은 성경의 메시지와 정반대인 것이다.


  성경의 최대의 관심사는 환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요한계시록이나 다니엘의 종말론의 핵심 주제는 “성도들의 환난 및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이다. 그러므로 특히 요한계시록에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씀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1:7; 2:7,11,17,26; 3:5,12,21; 2:10; 5:5; 7:17; 21:4; 8:4; 14:13; 20:4).


  이제 우리는 성경에서가 아닌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기발한 아이디어로 구성해 놓은 세대주의 종말론의 독소를 말끔히 씻어버리고, 성경적 종말론으로 무장하여 미혹당한 수많은 성도들을 바로 이끌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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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통개혁주의의 입장에서 휴거를 알기 위해서는 아래의 책을 참고하기 바람.

The Bible And The Future, Anthony A. Hoekema. chp. 13 "the Nature of the Second Coming"

1.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기 위해 신약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에서 두 단계 재림이론을 세울 수는 없다.

2. 대환란을 묘사하고 있는 신약의 구절들은 교회가 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땅에서 들림을 받을 것이라고 가리키지 않는다.

3. 휴거를 묘사하고 있는 중요한 신약 구절마저도 전환란기 휴거를 가르치지 않는다.

4.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의 백성과 함께 오심과 그의 백성들을 위한 오심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5. 두 단계 재림설을 주장한 어떠한 학설도 대환란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쏟아짐이 될 것이라는 가르침에서 추론되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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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는 ‘한 때, 두 때, 반 때’, ‘1260일’, ‘42개월’이라는 용어로 묘사된 특정한 환난의 기간이 있는데, 그것은 ‘작은 뿔’ 혹은 ‘짐승’이 성도들을 박해하는 기간으로서, 곧 중세 암흑시대 1260년간의 교황권에 의한 환난의 때를 말한다(자세한 것은 게시판 『666 적그리스도』에 올린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공부하십시오).


* 20세기 말엽 한국교회는 1992년 시한부 종말론으로 인해 몸살을 앓았는데, 무릇 ‘7년 대환난’을 신봉하고 가르치는 모든 자들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7년 대환난 시작점부터 정확히 7년 만에 재림과 종말이 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사실상 7년 시한부 종말론자들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역사적 시점에 서 있든지 주님의 재림과 종말의 때는 알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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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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