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영원한사명)

[스크랩] 이스라엘의 회복(구원)과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

수호천사1 2014. 3. 29. 20:48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 이스라엘을 향한 바른 자세 -

 

 

 

  

  2. 이스라엘의 회복(구원)과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


  하느님께서는 계획을 세우실 뿐만 아니라 그 계획을 이룩하시는 방법도 정하신다. 그것은 우리의 순종과 중보기도이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 사 62:6,7 -

  

On your walls, O Jerusalem, I have appointed watchman;

All day and all night they will never keep silent.

You who remind the Lord, take no rest for yourselves;

And give Him no rest until He establishes And makes Jerusalem a praise in the earth.

Isaiah 62:6-7


 

  “성벽 위의 파수꾼”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예루살렘의 재건을 위하여 기도하는 경건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곧 중보기도자들을 뜻한다. 하느님께서 세우신 이 파수꾼들의 의무는 예루살렘이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확고하게 서도록 “계속 기도하는 일”이다.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이라는 말은, 하느님으로 하여금 그 백성(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시도록 기억시키는 자들, 곧 기도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예루살렘을 세워”라는 말은, 바벨론에게 훼파되었던 예루살렘의 재건을 염두에 두었으나, 종말론적 이스라엘의 회복, 즉 유대 민족의 구원을 가리키는 것이다. 유대 민족이 메시아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아야 하느님께 찬송이 돌아간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스라엘이 구원받아야 교회는 충분히 발육되고 성장한 아름다운 처녀가 되어 신랑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들어오고, 최종적으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때 신약 교회가 완성되고 -충분히 성장한 처녀- 마침내 예수님이 재림하실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교회가 완성이 되어 신부가 예비 되었기 때문이다. 미숙한 어린 소녀는 신랑을 맞이할 수 없다. 

  

  이스라엘이 회개하여 하느님의 받아들여짐이 되지 아니하는 한 예수님은 재림하시지 않는다.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치 않는 한 우리는 주님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 때까지 예수님의 재림은 지연될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도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영접하지 아니하는 한 이 땅에 도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회복될 때, 즉 유대 민족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앞으로 돌아와 구원을 받을 때(롬 11:25-26), 하느님께 찬송이 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중보기도를 쉬지 아니하여야 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을 시기케 하여 능히 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수축해야 할 나라로 택함을 받은 제2의 선민인 만큼, 한국 교회 성도들은 더더욱 이스라엘의 회복과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목표로 하고 기도를 쉬지 아니하여야 한다. 우리가 기도를 쉬지 않을 때에 하느님도 쉬실 사이가 없으시다.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는 말이 그 뜻이다. 하느님이 “쉬지 못하시도록” 기도하라는 말씀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살전 5:17)과 같은 것이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것을 죄라고까지 생각하였다(삼상 12:23).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를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 마 23:37,38 -

 

  예수님은 이 땅에 거하실 때에 메시아를 배척하므로 하느님의 징계를 받아 멸망 받게 될 예루살렘 성과 유대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시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라고 예루살렘의 이름을 두 번이나 부르면서 예루살렘에 대한 애탄을 폭발하셨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향해 가까이 오셨을 때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시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눅 19:41~44).


  본문에 있는 ‘우시며’라는 말은 헬라여로 ‘에크라우센’(εκρυσεν)인바, 소리를 내어 통곡하는 것으로서, 요 11:35의 나사로의 무덤에서 예수님의 눈물을 흘리신 것, ‘에다크뤼센’(εδακρυσεν, 눈물을 흘림)보다 강한 표현이다.

  

  예루살렘은 그 전신인 살렘 때부터 ‘평화’의 성으로 알려 졌으나(히 7:2), 유대인들은 진정한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고 평화의 왕으로 오신 그들의 메시아를 배척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느님의 징벌을 받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 37년 후인 70년에 본문에 예수님께서 소리 내어 우시며 예언하신 바대로, 그들의 도성 예루살렘과 함께 멸망당하였다.

 

  당시 로마 장군 디도는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도성을 토성으로 완전히 가두었다. 이 토성은 3일 만에 급히 만들었기 때문에 때마침 유월절로 모인 1백만이 넘는 유대인들은 성 안에 갇혀 많은 사람들이 기근으로 죽었으며, 살아남은 자들은 불과 칼에 죽임을 당하였다. 또한 디도 장군은 아이를 메어치며 사람들을 학살하였고 성전과 성곽을 위시하여 전도시를 완전 파괴할 것을 명하였던 바 돌 하나도 첩 놓이지 아니하고(마 24:2) 완전히 무너졌다.

 


  

  지금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찾아가 기도를 드리는 이른바 ‘통곡의 벽’은, 당시 로마 군인들이 기념으로 남겨 둔 예루살렘 성의 서쪽 벽의 일부이다. 당시 유대 민족에게 이 같은 애절단장(哀切斷腸)의 환란과 멸망이 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이 “권고 받는 날”, 즉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셔서 유대 민족을 구원하시려고,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모으려 애쓰시던 구원의 때를 그들이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들의 멸망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예루살렘 입성을 목전에 둔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멀지 않아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될 것을 아시기에, 소리 내어 통곡하며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안타까이 우셨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통곡하며 우셨다. “예루살렘아!”하며 한없는 사랑과 연민을 나타내셨다. 그러나 유대 민족에게 빚진 자 된 구원받은 이방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하여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을 멸시하는 경향까지 있는 것이다.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의 구원과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영적 파수꾼이 되어 쉬지 않고 중보기도를 올려야 한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 시 122:6 -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야곱을 위하여 기뻐 노래하며

만국의 머리 된 자를 위하여 외쳐 전파하며 찬양하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 렘 31:7 -


 

 

 

 

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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