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리 문화
우리 한국인은 ‘우리’라는 단어를 가장 흔하게 쓰고 있으며 가장 좋아한다. ‘우리나라’ ‘우리 엄마’ ‘우리 언니’ ‘우리 교회’…. 이렇게 흔히 쓰이는 ‘우리’라는 말은 뭉쳐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기편과 남들을 구별해 배타적 원리로 작용한다. 그래서 ‘패거리’라는 부정적 개념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본적으로 ‘나’보다는 ‘전체’를 생각하는 다정한 말이다. 즉 ‘우리’는 말 자체가 ‘더불어 함께’라는 공동체적 의미를 강조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라는 개념의 본질이다. 그것은 ‘패거리’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굳이 가치개념으로 본다면 긍정적 개념이 훨씬 크다.
뿐만 아니라 ‘패거리’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창조주 하느님을 반역할 때 끝까지 순수한 하느님 신앙을 지키는 소수의 무리가 항상 있는데(남은 자, The Remnant) 그들은 ‘거룩한 패거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알이랑민족 한국인의 선조인 욕단 족속이 바로 그러한 ‘거룩한 패거리’였다.
한국인이 ‘우리’라는 말을 흔하게 쓰게 된 역사적 동기
앞서 살펴보았듯이(게시판 “알이랑 고개를 넘어 동방으로”에서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 3,4번 글) 모든 홍수 생존자들이 함족의 배역자 니므롯을 따라 서부의 시날 평원으로 갈 때 한국인의 직계 조상 욕단의 가계는 유일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알이랑 정신, 즉 ‘하느님과 함께’라는 ‘신본주의 정신 ․ 하느님 중심 사상’으로 그들과 분리되어 알이랑(with God)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방의 스발(새벌)로 천동했다. 그들은 셈족의 ‘거룩한 패거리’였다.
아마도 우리 한국인이 ‘우리’라는 말을 흔하게 쓰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라는 말은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너와 내가 한 뜻이요, 같은 처지임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인데, 당시 욕단의 가계는 ‘우리’ 안에서만 통하는 ‘알이랑 정신’, 곧 순수한 ‘하느님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우리’는 ‘알이랑 정신’으로 뭉친 제천민족(祭天民族), 곧 창조주 하느님을 섬기는 거룩한 신앙공동체였다.
다신숭배가 만연한 고대 세계에서 어찌 유일신 하느님만 섬기는 천손민족 그들에게 ‘우리’라는 말이 소중하지 않았겠는가! 한국인이 유별나게 ‘우리’라는 말을 흔하게 쓰게 된 까닭에는 이와 같이 우리 겨레의 거룩한 기원과 관련된 민족사적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우리’라는 말은 생래적으로 타고난 ‘천성’
‘우리’라는 말을 즐겨 쓰는 한국인의 말버릇과 관련해 놓쳐서는 안 될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한국인이 ‘우리’라는 말을 좋아하는 것은 천손민족(天孫民族) 우리 겨레가 생래적으로 타고난 천성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라는 말을 최초로 즐겨 사용하신 분이 하느님이셨기 때문이다. ‘우리’라는 말은 하늘에 기원을 둔 하느님의 언어다! 즉 한국인은 하느님의 백성 곧 천손민족이기 때문에 그 분의 성품을 가장 많이 닮아서 ‘우리’라는 말을 생래적으로 선호하며 흔하게 쓰고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여호와 하느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창 3:22).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 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8).
이상의 성경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하느님은 한 분이시지만 자기를 ‘우리’, 즉 공동체적 존재로 정의하신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우리’라는 말을 즐겨 쓰시는 것이다. 왜일까? ‘우리’라는 말은 하나의 울 안에서 너와 내가 뜻을 같이 하며 같은 처지임을 의식할 때 쓰이는 말이다. 그것은 너와 내가 ‘우리’, 곧 ‘하나’라는 뜻이다.
여호와 하느님은 한 분이시지만 그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존재하신다. 그러나 각 위격 간에는 조금도 간격이 없다. 성삼위는 온전히 하나이다. 그렇기에 하느님은 자기를 ‘우리’라고 하신다(요 17:11: 21~22). 프란시스 쉐퍼는 이렇게 말했다:
“성부, 성자, 성령 사이에는 언제나 사랑과 대화와 우정이 존재한다.
성삼위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다.”
그렇다! 각 위격 간에는 갈등이나 경쟁심이 전혀 없으며, 성삼위는 사랑 안에서 언제나 하나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자기를 ‘우리’라고 표현하신다. 바로 이것이 삼태극 신학이다. 따라서 여호와 하느님께로부터 선택받은 족속인 천손민족 한국인은 당연히 하느님의 백성답게 그분의 성품을 닮아서 공동체 정신을 앞세워 ‘우리’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후천적 학습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느님을 부를 때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교훈하셨다(마 6:9). 한국인은 무남독녀 외딸도 ‘내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우리 아버지’라고 한다. 요즘엔 출산 억제 정책의 결과로 자녀를 하나만 낳아서 형제가 없이 외톨이로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 그런 아이들도 동무들과 다툴 때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으레 ‘우리 엄마한테 이를 거야!’ 라고 한다. 집에서 ‘엄마’라고 부를 아이는 자기 혼자일 텐데, 어찌 ‘우리 엄마’ 라고 하는가?
알이랑 민족 한국인은 누구나 그러한 말버릇을 생래적으로 타고 났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느님이 공동체를 앞세워 ‘우리’라는 말을 즐겨 쓰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천손민족인 그들도 공동체를 소중히 여겨 자기들의 하느님처럼 ‘우리’라는 말을 흔하게 쓰는 것이다. 그런즉 우리 겨레가 아이부터 어른까지 ‘우리’라는 말을 즐겨 쓰는 까닭은 하늘 백성(천손민족)으로서 생래적으로 타고난 천성이다.
하늘 백성이라는 나무가 맺는 열매 ‘우리’를 즐겨 쓰는 말버릇
실로 한국인에게 ‘우리’는 단순히 ‘나’의 복수형(複數形) 단어가 아니다. ‘우리’라는 말은 다른 나라에서 찾을 수 없는 한국인 고유의 심성과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특별한 단어인 것이다. 영어에서 비슷한 말을 찾는다면 ‘our’를 생각할 수 있으나, 본질적 의미는 다르다.
한국인이 ‘우리’라는 말을 자주 쓰는 이유가 우리 겨레의 정체성과 직결된 생래적 천성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심지어 사리분변(事理分辨)이 명확한 어른들조차 대화중에 ‘우리 신랑’, ‘우리 마누라’ 라는 말이 자연스레 튀어 나오는 것만 봐도 익히 알 수 있다. 따지고 들자면 여간 민망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아내와 남편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나? 어떻게 ‘남편’이나 ‘아내’라는 낱말 앞에 ‘우리’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가? 여러 사람들과 공동으로 데리고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문법을 몰라서 그런가? 아니다. 이치상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우리’라는 말이 입에서 불쑥 튀어 나오는 것을 어찌하랴. 이러한 말버릇은 생래적으로 타고난 ‘천성’이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왜 우리 겨레는 그러한 말버릇을 ‘천성’으로 타고 났는가? 알이랑민족 한국인은 욕단 계열의 ‘천손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품성을 가장 많이 닮아 나 혼자보다는 전체 곧 공동체를 앞세워 하느님처럼 ‘우리’라는 다정한 말을 즐겨 쓰는 것이다.
실로 이것은 한국인이 욕단의 직계 후손으로서, 이 땅위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선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분명한 증표이며 물증이다. 나무는 열매로 분변한다. 우리 예수님은 열매로 나무를 분변한다고 교훈하셨다(마 7:15~20).
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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