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나쁜신앙)

[스크랩] 신사도운동과 그 유사단체가 주장하는 신부운동

수호천사1 2014. 1. 21. 19:58

신사도운동과 그 유사단체가 주장하는 신부운동 

                                                                                                          

 

신사도운동과 그 유사단체들은 유난히 “신부”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어느 단체가 신부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면 그들이 신사도운동이라고 생각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신부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사용하는 신부라는 용어가 기독교의 용어와 같을까?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용어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반면에 신사도운동과 그 유사단체들이 주장하는 신부라는 용어는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에서 드러난다. 열처녀 모두가 그리스도인인데 그 중의 다섯은 열심히 교회에 다니지만 기름부음을 받지 못한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은 기름부음을 받아서 성령체험을 한 신사도운동의 교인들이라는 것이다.

 

성경의 열처녀는 신부가 아니라 들러리를 말한다. 신랑에게 동시에 10명의 처녀가 혼인을 하는가? 그들은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들러리 처녀인 것이다. 또 그들은 기름을 성령으로 해석하고 성령을 기름부음으로 해석하고 있다. 만약 기름을 성령이라고 직접 해석한다면 다섯처녀는 성령을 사러 갔는가?

본문의 초점은 열처녀의 비유에서 기름이 무엇인가 혹은 신부가 누구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간과하면 안되는 점은 열처녀들이 신부도 아니었으며 들러리 처녀였을 뿐이며, 본문에서 혼인잔치는 구원의 상징적인 개념이다.

이 본문의 교훈은 예수의 재림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하라는 교훈이 그 본질적인 의미가 된다. 왜냐하면 열처녀는 모두 졸았기 때문이다. 다섯처녀는 미리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였고, 다섯처녀도 분명히 기름은 갖고 있었지만 신랑이 늦게 왔기 때문에(더디 올새) 그 기름이 부족하였던 것이다. 만일 기름을 성령으로 단정한다면 다섯처녀도 성령을 갖고 있었으나 부족한 량의 성령이 되어버린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름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신랑이 늦게 온 것에 기인한다. 즉 재림이 늦게 오더라도 항상 준비를 하라는 교훈이 가장 중요한 멧세지가 된다.

 

거의 대부분의 이단들이 이 열처녀의 비유를 비슷하게 해석하고 있다. 구원을 받는 다섯처녀는 자신들의 교회라고 말하며, 기름이 부족한 다섯처녀를 일반 기독교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열처녀가 주는 본질적인 멧세지는 다섯처녀가 누구인가를 특정적으로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언제 올지 모르는 주님을 예비하라는 것일 뿐이다,

 

신부운동을 주장하는 단체를 살펴보면, 몇가지의 위험한 공통적인 주장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혼인잔치가 곧 가깝다고 하는 임박한 시한부종말론으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둘째는 이것을 신비적인 연합적 개념, 즉 이단적인 신인합일론으로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연합을 한 몸이 된다는 성적이며 관능적인 육체적인 결합으로 비유하고 상징하며, 특히 그들은 아가서를 풍유적인 해석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셋째는 신사도운동을 주장하는 단체만이 신부가 된다는 배타적이며 제한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구원을 받는 성도를 신부라고 상징적인 비유를 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그들은 왜 "마지막 신부운동"이라는 이상한 명칭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가?

 

신사도운동이 말하는 신부라는 용어는 일반기독교에서 뜻하는 ‘교회’의 보편적인 용어가 아니라, 기름부음을 받은 신사도운동을 하는 교회를 말한다. 그들이 해석하는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한 다섯처녀는 바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기독교의 교인을 뜻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물론 성경이 말하는 기름부음과 신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만약 준비하여야 하는 등잔의 기름이 기름부음을 의미한다면, 모든 열처녀가 기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오류적인 성경해석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어린양의 신부는 무엇을 말할까?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남자”로 교회를 “아내”로 비유하여,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5:22-25)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1)

 

예수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몸이 되시고, 또한 신랑이 되신다. 이러한 표현은 교회와 예수의 관계를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는 비유적인 상징이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성도들을 처녀로, 남편을 그리스도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이미 누구든지 아는 사실이지만 “교회”(에클레시아)는 성도들의 회중을 뜻한다.

즉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성경은 다음의 4가지로 비유하고 있는데, 남편과 아내의 비유는 그 중에 한가지가 된다.

 

(1) 교회는 주님이 머리가 되는 공동체이다.

(2) 교회는 주님이 몸이 되며, 우리는 그 몸의 지체가 된다.

(3)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가 된다,

(4) 교회는 주님이 모퉁이 돌이 된다

 

예를 들자면 어떤 단체들이 “지체 운동”만을 강조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주장이 될까? 또 그 용어를 종말적이며 배타적인 개념으로 해석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여야 할까?

마찬가지로, 교회와 그리스도의 비유적인 관계를 말하는 용어 하나만을 유난히 강조하고, 그것을 종말론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잘못된 해석이다. 특히 남편과 아내에 대한 비유는 신약에서만 표현된 내용이 아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을 남편, 이스라엘을 신부로 비유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사54: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사62:5)

 

다시 말하면 구약과 신약을 막론하고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 즉 에클레시아(교회)가 곧 신부로 표현된 것이며, 그래서 성경은 변절자나 배교자를 간음으로 비유하기도 한다(렘3:1-2, 호1:2). 어떤 경우는 이스라엘을 아이를 낳지 못하고 가정을 잃어버린 비참한 여자로 비유하기도 하며, 남편되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다시 영화롭게 만들어준다는 비유도 있다(사54:1-3, 겔16:8-14).

성경에서 비유는 무엇을 위한 멧세지인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목자와 양의 비유에서, 양은 목자가 인도하는대로 움직이는 짐승이라는 것과 외부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멧세지를 외면하고 양의 다리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양의 털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비유풀이를 한다면 그것은 성경의 기자가 전하려는 멧세지와 다른 것이 분명할 것이다.

 

신사도운동을 하는 일부 단체들은 이 그리스도의 신부운동을 신비주의적인 연합의 개념으로 비유하려고 한다. 소위 종말론적이며 이단적인 신인합일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단체들도 있다.

특히 ‘오순절, 은사주의 운동 백과사전’은 늦은비운동의 브란함의 새로운 계시를 이렇게 요약한다. “이브는 뱀과 성적관계를 맺는 죄악도 저질렀다. 어떤 사람은 뱀의 씨앗에서 출생하여 지옥에 갈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이 운명이 영원하지는 않다. 하나님의 씨앗, 즉 브란함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도록 예정되어 있다.”

늦은비 운동 브랜험의 이러한 주장이 신사도운동의 신부운동의 유래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더욱이 이단들의 성경해석적인 특징은 항상 성경의 보편적이며 비유적인 단어를 자신들에게만 배타적으로 적용시킨다는 것이다.

 

계 19:7-8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이인규

출처 : 물과피와성령(water and blood and the Holy Spirit)
글쓴이 : 새언약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