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나쁜신앙)

[스크랩] 666짐승의 표 베리칩과 휴거설은 세대주의자들의 작품

수호천사1 2013. 12. 22. 08:57

 

666짐승의 표 베리칩과 휴거설은 세대주의자들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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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주의의 기원과 문제점

기독교포털뉴스  |  unique44@naver.com

 

 

   ▲ 김명도 교수

 

한국교회에는 세대주의적 입장이 매우 뿌리 깊습니다. 특히 세대주의적 입장은 이장림 씨의 1992년 10월 28일 시한부 종말론을 전후해 한국교회를 강타했고, 그 악영향을 경험했음에도 세대주의 사상은 우리들 속에 아직도 잔재해 있습니다. 최근에는 ‘베리칩=666 짐승의 표’라고 주장을 하는 세대주의적 입장에 기초한 종말론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에 본 사이트 기독교포털뉴스(www.kportalnews.co.kr)는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김명도 교수(미국 칼빈신학대학(CTS) 및 국제개혁대학(IRUS) 변증학)가 정리한 내용을 게재합니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한국교회에 세대주의의가 기원하게 된 이유, 세대주의와 개혁주의의 차이, 개혁신학적 관점에서 본 세대주의의 문제점 등을 짧고 간결하게 정리했습니다. 원고 게재를 허락해 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편집자주>

 

1. 세대주의의 기원
 세대주의의 기원은 1820년대의 영국 Dublin 이라는 마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John Nelson Darby (1800-1882) 라는 사람은 기성교회에서 목사만이 안수 받은 특수층인 성직자만 설교하고 성례식을 집례하는 것이 종교개혁 사상인 “만인사제 (priesthood of all believers" 에 위배된다하여 교회를 박차고 나와서 따로 몇몇 모여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모든 잘못된 사람들은 기성교회를 비난하고 따로 모여서 새로 <성경공부> 라는 미명으로 모여서 정통적인 방법으로 성경을 가르치지 않고 나름대로 ”새로운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교파>를 만든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통일교나 모르몬교나, 지금은 활동이 약화되었지만 옛날 박태선의 전도관이나 ”영생교단“ 등이 모두 이렇게 시작되어 사람들을 오도해 간다. 세대주의를 이런 이단교파들과 대등시 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전에 기성 교회가 몰랐건 진리를 새로 발견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필연코 문제를 일으킨다는 말이다. 성경의 가르침 즉 기독교의 정통적 교리는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니케아 신경>이나 <아타나시우스 신경>이나 <콘스탄티노물 신경>이나 <갈게돈 신경>에 잘 정립되어 있고, 그 후 <벨직 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 <제2스위스 신앙고백>, <프랑스 신앙고백>, <도르트 신경>, <웨스트민스터 싱앙고백> 등에 모두 잘 정리되어 있고 현대에 와서는 <케임브릿지 선언 Cambridge Declaration, 1996>으로 더 이상 수정하거나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새로운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했다고 야단이지만 이는 크게 잘 못된 것이다. 이미 나타난 <역사적 신앙 고백서들>을 받아들이고 성경을 성경대로 믿으면 되는 것이며 <별도로 다른 진리>를 도입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John Nelson Darby 라는 <세대주의 창시자> 에 관하여 몇 마디 말한다면 그는 귀족의 집안에 태어나서 영국 Dublin 에 있는 명문 대학 Trinity College에서 수학했고 목사로 안수 받고 Church of Ireland 에서 다년간 목회하면서 기성교회의 <허점>들을 발견하고 기성교회의 잘못을 비난하는 「On the Nature and Unity of the Church of Christ」 라는 책을 1827년에 쓰고 나서 그해 그가 목회하던 교회를 사임하고 나름대로 그의 독특한 목회 스타일로 그의 추종자 몇 사람과 같이 개인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매주 한 번씩 성찬식을 거행했고 교인들이 돌아가면서 교대로 설교하면서 전혀 기도에 힘쓰며 그의 온화한 인품과 탁월한 교수 능력으로 나름대로 그 모임을 잘 인도해나갔다.

 

같이 동시 목회하던 B.W. Newton 과 결별하고, 영국 서남단 Plymouth 라는 항구에서 처음으로 생겨난 교단에 합류했다. Darby는 Newton을 <예언> 문제와 <교회론, 특히 성찬문제> 문제 등으로 그와 사상을 달리한다 하여 이단으로 규정하여 결국은 1848년에는 <개방파> 와 <폐쇄파> 로 교단이 둘로 분리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Darby는 어학지식이 대단하여 성경을 불어, 독어로 번역했다. 그는 <세대주의 신학의 창시자> 라고 불리운다.

 

이 세대주의는 미국에 상륙했다. 1900년도 초기에 미국의 Cyrus Ingerson Scofield(1843-1921)에게 전수되어 1909년 이른바 Scofield Reference Bible (스코필드 성경)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발행되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급속도로 세대주의가 전파되게 되었다 Scofield는 군인 출신 법률가로 성경 원어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었고 신학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나름대로 KJV(제임스왕판 성경, 1611)에 여기 저기 나름대로 생각해 낸 주석을 기입했다. 그래서 Scofield의 성경을 읽는 사람은 나중에 다른 사람과 토론할 때 어떤 구절을 놓고 그것이 성경 본문에 있는 말인지 아니면 스코필드가 한 말인지 혼동을 가져 올 때가 있다고 토로(吐露) 한다.

 

미국에서 이 성경이 급물살을 타고 빨리 펴져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이 미국에 상륙하여 이상한 비성경적 성경해석 바람이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건너온 “자연신교, Deism" 이나 독일에서 건너온 ”종교사학파, Religionsgeschichtliche Schule, 宗敎史學派" 등이 미국 Princeton 신학교에 상륙하면서 미국의 정통적 개혁주의 신학은 침식되었고 많은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신신학(新神學) 에 빠져들어 갔기 때문이다. 이런 암흑기에 Scofield의 성경은 새로운 oasis 로 받아져서 너도 나도 사서 읽었고, Darby의 신학을 전수 받은 Scofield는 그의 성경을 통해서 세대주의 신학을 널리 펴나갔으며 한국에 나와서 평양 신학교를 설립한 미국 북장로교 (UPCUSA)목사 Allen Clark (곽안련)도 이런 세대주의 신학자였으므로 그에게 지도 받은 문하생들이 모두 세대주의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한국의 세대주의 일변도의 신학이 <개혁주의> 로 돌아선 것은 해방되고 나서 특히 6.25 사변을 전후하여 화란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박윤선 목사님 같은 몇몇 학자들의 영향에 기인한다.

 

그러면 세대주의와 개혁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II. 세대주의와 개혁주의의 차이점
 세대주의와 오순절 계통의 교리가 전혀 다른 것처럼 세대주의와 개혁주의는 전혀 다르다. 개혁주의오순절 계통의 교리가 개혁주의와 다른 것은 “지금도 하나님이 계시가 온다” 고 믿는 오순절의 가르침을 개혁주의는 부인하기 때문이다. 는 종교개혁기의 신앙고백서인 Belgic Confession (1561), Heidelberg Catechism (1563), French Confession (1559), Second Helvetic Confession (1566) 과, 성경 히 1:1; 계 22:18-·19 등에 나타난 계시의 종결을 못 박고 있다.

 

세대주의와 개혁주의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세대주의 (Dispensationalism)는 역사의 시대를 7가지로 구분하여 그때그때 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이 다르다고 가르친다. 세대주의 신학은 인류역사를 7세대로 구분하는데 그 일곱 세대란:
1. 무죄시대 (Innocence, 창조부터 인류 타락 전까지)
2. 양심시대 (Conscience, 인류타락부터 노아까지)
3. 인간통치 시대 (Human Government, 노아부터 아브라함 까지)
4. 약속시대 (Promise, 아브라함부터 모세까지)
5. 율법시대 (Law, 모세부터 그리스도까지)
6. 은혜시대 (Grace, 교회시대)
7. 왕국시대 (Kingdom, 천년왕국)

 

이렇게 구분하여 그때그때 마다 하나님이 다르게 인간을 다스린다는 것이 세대주의자들의 신학이다. 모든 세대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을 하지만 율법과 은혜를 엄격히 구분한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7가지 세대에서 각각 인간에게는 다른 책임이 주어지며 하나님은 7시대에 각각 다르게 인간을 통치한다고 가르치며 우리는 지금 “은혜시대” 에 살고 있는데 율법인 십계명을 존중은 하지만 우리 생활과 신앙의 유일한 법칙으로 지킬 의무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 세대주의에 의하면 우리는 지금 은혜시대에 살고 있는데 우리는 십계명을 지키는 것 보다 “단지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는 것뿐” 이라고 가르친다. 여기에 대해서는 전에 세대주의를 따르다가 개혁주의로 돌아온 William Cox가 쓴 작은 소책자 (pamphlet) 인 「Why I Left Dispensationalism」 이나 그의 책 「An Examination of Dispensatinalism」(P&R 1961, 1963)을 참고할 것. 이 책자들은 지금도 New Jersey주 Phillipsburg 에 있는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약자로 P&R)에서 구입할 수 있다. 아니면 Christian Book Distributors (Lynn, MA) 혹은 online 으로 www.amazon.com 에서 구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오직 한 가지 방법 즉 하나님의 은혜로 인류를 구원해 주신다고 가르친다. 구약은 오실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예언하고 있고 신약은 그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예언대로 임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Immanuel) 그가 구약에서 예언한 그대로 그의 택하신 백성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대속의 죽음을 죽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다고 믿는다. 구약에서 행위계약에 실패한 아담과 그의 후손들을 위하여 “은혜계약”을 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는 것이 개혁주의 구원관이다. 세대주의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세대주의 신학은 두 번째로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구속사적 측면 (In the perspective of God's Redemptive History)에서 해석한다.

옛날 교부 Origen(Alexandria 에서 활동하던 Clement of Alexandria 의 제자)은 성경해석의 원칙을 말하면서 “모든 성경은 네 가지 방법으로 해석해야 한다” 고 주장했는데 그 네 가지란

 1. 문자적 해석

2 풍유적 해석,

 3. 도덕적 해석,

그리고 4, 신학적 해석 이렇게 네 가지로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오리겐의 4중 해석“ 이라고 한다.

 

그러나 Origen 자신도 교리사적 측면에서 볼 때 실수를 많이 한 분이었다. 성경의 해석은 항상 문맥을 통해서 바른 해석이 나온다. 성경의 해석의 원칙은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 (Scriptura Scripturae Interpres)>이다. 성경이 성경을 해석 한댜는 말이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항상 Historico-Grammatico-Theological Interpretation(역사적, 문법적, 신학적 해석)이 바른 해석 방법임을 알아두자.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되 역사적 배경을 알고 문법적으로 분석하고 그리고 신학적인 의미를 유도하는 방법이다.

 

세대주의자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주장하면 온갖 해석상 오류에 빠지게 된다. 가령 예를 들면, 요한복음 2장의 말씀 중 “성전을 헐라 삼일 만에 내가 다시 지으리라” 란 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문자 그대로 라면 46년간 걸려서 지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문자 그대로 단 3일 만에 재건한다는 말이니 예수님은 그런 의미로 말씀한 것이 아니다. 그 다음절 (요 2:21)에 보면 문자 그대로의 성전을 말함이 아니고,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말함이 분명하다. 이렇듯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면 큰 낭패를 당하며 진리에 도달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자.

 

세대주의 신학은 구약과 신약은 관계가 없고 구약은 이스라엘만 말한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말하기를 “이스라엘”은 어디까지나 <육적인 이스라엘> 나라(지금의 유대민족) 만을 말한다고 가르친다. 믿는 성도가 모두 영적인 이스라엘임을 그들은 부인한다.

그렇다면 갈 3:29 말씀은 어떻게 해석하나?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란 말은 분명히 우리들 이방인들을 말하며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됨을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이는 로마서 2장 28절 말씀이 입증한다. 세대주의는 모든 예언의 말씀이 이스라엘 즉 육적인, 다시 말하면 지금의 이스라엘 나라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예언이라고 가르치면서 갈 3:29 말씀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세대주의 신학자인 Louis Sperry Chafer 가 쓴 조직신학 책 8권에는 로마서 4장에서 인용하는 글이 없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선지자가 예언한 예언은 이 땅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것이므로 이 세상에서 성취된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에스겔서 40장에서 48장에 나오는 <성전>은 문자 그대로 이 세상에서 유대인들을 위한 성전이며 이 세상에서 이뤄진다고 가르친다. 세대주의자는 계시록 22장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도 문자 그대로 <이 땅에서의 성전으로 앞으로 이 땅에 살게 될 성도들이 영원히 살게 될 곳> 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은 이스라엘이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음을 믿는다. 즉,

1. 유대민족,

2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

3. 솔로몬이 죽은 후 나라가 양분되어 10개 지파로 만들어진 여로보암 왕의 북국 (사마리아 중심) 이스라엘,

4. 영적 아브라함의 자녀 즉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믿는 모든 무리 (갈 3:29) 등 이렇게 이스라엘의 의미가 많은 것을 세대주의 신학은 부인한다. 이것은 그들의 맹점(盲點)이다.

 

세대주의 신학은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 관계를 부인하며 양자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말하기를 “구약에는 교회에 대한 예언은 한 마디도 없다” 고 주장하며 모든 예언은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 나라 백성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세대주의자들의 신학이다.

 

세대주의자는 말하기를 예수님이 말한 <하나님의 나라> 는 유대인들을 위함이었는데 유대인들을 위하여 영적이 아닌 이 지구위에서 이루어질 다윗의 왕국이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고 가르친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자 이 왕국은 장래 왕국시대가 되어야 이루어 질 것이라고 그들은 가르치며 그 어간에 하나님은 <괄호속> 에 “교회시대”를 임시로 주었다고 가르친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구약의 이스라엘이 신약의 교회임> 을 철저하게 부인한다. 여기에서 온갖 그릇된 그들의 신학이 나온다. 그러므로 세대주의는 말하기를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도래했다는 말을 믿지 않으며 그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 말대로라면 항상 미래에 되어질 일이며 현재와는 관계가 없다고 가르친다. 이에 반하여 개혁주의는 <구약의 이스라엘이 바로 교회> 라고 믿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도래 했고 그 마지막 완성은 미래에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세대주의는 주장하기를, 성도는 환난을 당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대 환란이 오기 전에 교회는 휴거되어 성도는 환란을 면하게 되고 (pre-tribulation rapture) 휴거(rapture)가 있은 후에는 유대인들중 남은 자 (remnant) 가 교회를 맡게 되며 이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와 이빙민족을 회심시키는 도구로 사용된다고 가르친다.

 

좀 더 여기에 관해 알고자하면 세대주의 신학자인 Charles C. Ryrie 가 쓴 Dispensationalism Today (Moody, 1965, pp.132-135를 참고할 수 있다.

성경은 분명히 성도들도 환난을 당한다고 말하며 마태복음 24장 22절 이하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세대주의와 개혁주의는 이상에서 보는 것처럼 매우 다르다.


가장 눈 여겨 보아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1.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는 것.


예를 들면, 다윗의 보좌가 영원하리라 (삼후 7:13)은 이 땅에서의 다윗의 나라가 부활된다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임한다는 말로 성경은 로마서 1:3 이나 행 2:29-32 등에서 말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항상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는 원칙은 무리가 있다.

 

2. 이스라엘 문제에 관하여, 누가 이스라엘인가? 성경은 <교회가 새로운 이스라엘> 이라고 가르친다.(롬 9:6; 갈 6;16). 세대주의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무조건 항상 이스라엘 나라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대나라를 말할 때도 있고, 영적인 이스라엘 즉 믿는 성도들을 말할 때도 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면, <예수의 피로 죄를 씻음 받은 자들이 새로운 12 지파가 되었다>고 야고보 1:1에 말하지 않는가?

 

3.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7 가지 시대로 나누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죄인은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다> 는 (엡 2:8) 말씀을 모르는 소치이다. 구약 노아 홍수 때도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었다고 (창 6:8)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한 결 같이 같다.

 

4. 세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와는 관계가 없고 항상 미래에 속하며 이 지구위에서 성취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를 통해서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지금 도래 했다 (마 12:28; 눅 17:21).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며 살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중심>이거늘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의 <이스라엘 나라 중심> 인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세대주의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있고 (눅 17장) 그 마지막 완성 (final consummation)은 미래에 속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개혁주의적 신국관 (view of the Kingdom of God)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도래했지만 아직도 미래에 속한다> 미래에 속한다는 말은 마지막 사탄이 불 못에 던져지는 대 심판날에 사탄이 완전히 제거되고 영원한 신천지가 도래할 것을 내다 본 것이다. 지금은 아직도 성도는 사탄의 유혹을 받으며 거듭난 영혼은 거듭나지 못한 육신 (sarks) 과 부단히 싸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현상을 잘 그린 것이 로마서 7장이다. 부활한 바울의 영혼이 아직 부활하지 못한 그의 육신의 생각과 싸우는 모습이며 그 모습은 바로 우리 성도들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5. 휴거에 관해서도 세대주의자는 <장차 다가올 “대 환란, Great Tribulation" 전에 믿는 성도는 모두 휴거 되어 절대로 환난을 당하지 않는다> 고 가르치지만 성경은 이 땅에서 환난을 당한다고 마태복음 (마24:21-22) 이나 베드로전서에 말한다.

 

그리고 몰래 ”휴거“ 한다는 말은 언어도단이다. 어떻게 예수님이 쥐도 새도 모르게 몰래 재림할 수 있는가? 물론 세대주의자는 베드로후서 3장10절을 근거로 말하지만 성경 한 군데만 보지 말고 다른 곳도 보아야 한다. 데살로니가 전서 5:4 에는 “결코 도적같이 올 수 없다” 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우리는 빛의 자녀로 옮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가르침은 빛 가운데 행치 아니하고 아직도 어두움 속에, 즉 예수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벧후 3:10 말씀처럼 도적같이 임할 것이지만 예수를 믿고 있는 성도에게는 도적같이 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늘 그날을 고대하며 살기 때문이다. 이 성경해석이 정확한 증거는 데살로니가 전서 4장에는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천사장의 호령소리로 주님이 강림>하시면 죽은 사람들이 그 나팔소리에 무덤에서 일어난다고 했는데 죽은 사람도 듣는 그 나팔 소리를 살아남은 우리가 못 듣겠는가?

 

주님의 재림은 몰래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온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속지 말자. <교회가 휴거한다>고 가르치는 이들의 이유는 <교회와 하나님의 구원을 분리하는> 데서 기인한다. 그들의 말은 이 땅에 다윗 왕국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임시 변통으로 주어젔던 교회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았듯, 세대주의는 성경의 무오성을 믿고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를 믿지만 그들의 구원관은 성경에서 벗어난 Darby 나 특히 Scofield 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교리> 에 기초를 둔 것으로 개혁주의 신학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세대주의는 상당히 많이 교회에 파급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목사들 80-90%가 세대주의를 신봉한다.

 

III. 어떤 분들이 세대주의를 믿는 지도자들인가?


이미 세상을 뜬 사람들로는 앞서 언급한 John Nelson Darby, Cyrus Ingerson Scofield, Louis Sperry Chafer(Dallas 신학교 창시자, 세대주의 신학인 조직신학 8권 저자), 등이 있고, 현존하는 인물로는 Charles C. Ryie, John Warvoord, Charles Swindol 등이 머리에 떠오르고, 세대주의 신학을 가르치는 신학교는 Dallas, Texas의 Dallas 신학교, Philadelphia, Pennsylvania 의 Philadelphia College of Bible, Winona Lake, Indiana 의 Grace Theological Seminary, 그리고 La Mirada, California 의 Talbot신학교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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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대주의 재림론

 

"기독교 이단 연구"를 저술한 탁명환 씨는 이단의 교리를 가려내는 방편으로 열한 개 조항을 제시했는데 그 중 하나가 정통 종말론에 의한 재림론이다."라고 하였다

그의 주장을 살펴보다

 

" 재림에는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의 두 단계가 있다. 먼저 예수께서 공중 재림을 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참된 성도들이 순식간에 영화(榮化)하여(고전15:50-54) 하늘로 들려 올리워진다.(살전4:16,17) 이것을 휴거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상은 7년간의 대 환난기에 접어들게 된다.

 

그 기간에 이스라엘 민족은 두 번 공격을 받는다.

 

첫째는 소련군과 연합군의 침공이다. ...

둘째로 부활한 로마제국이 10개국 동맹군을 이끌고 침공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휴거를 믿지 않는 재림파 신도들도 있다."

 

탁명환 씨의 주장은 유감스럽게도 성경적인 재림이 아니라 영국 성공회 성직자였던 다르비(John Nelson Darby) 1830년대부터 가르치기 시작하여 기존의 성경적 재림 신앙에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소위 "경륜주의(經綸主意 , Dispensatuonalism) 혹은 세대주의(世代主義) 재림설 이라는데 충격을 받는다.

 

이 세대주의는 다르비 자신이 1859년과 1871년 사이에 여섯 차례나 미국을 드나들며 열심히 보급한 결과 19세기말에는 미국에도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인데 1909년에는 열렬한 세대주의 자인 스코필드(Cyeus I, Scofield)가 편찬한 관주성경(The Scofield Refeoence Bible)까지 출판되어 세대주의를 한층 체계화했다.

 

1970년대에 50여 개국에서 31개 언어로 번역되어 3천만 권이나 팔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베스트셀러 "대 유성 지구의 종말" (the Late Great Planet Earth)도 저자인 할린지(Hal Lindsey)가 이러한 세대주의 종말론에 기초하여 쓴 공상 소설 같은 내용의 책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유대인들에게 할당된 다니엘서 925절의 70이레() 가운데 마지막 70번째 주일에 해당하는 1주일(이레) 7년을 사이에 두고 그리스도께서 각각 다른 모양으로 두 단계에 걸쳐 재림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땅 위에서는 부활한 로마 제국으로부터 정체 불명의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제사 제도의 회복과 함께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으로 자처하는 가증한 일을 행한다고 한다.

 

 

이에 자극 받은 아랍-아프리카 세력이 일어나고 러시아와 그 동맹 세력이 개입하여 대결한다 이렇게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유대인들이 회심하여 그리스도께 돌아오고 실제의 144천은 복음 전도자로 나아가 이방인을 돌이키는 대 역사가 전개되는 한편 로마 연합군과 동방 세력이 대결하는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 위기가 고조에 달하게 된다.

 

이 때에 예수께서 공개적으로 지상에 재림하셔서 전쟁을 끝내시고 다시 유대인 위주의 천년 왕국을 이 땅 위에 세우신다는 시나리오이다.

 

탁명환 씨는 이러한 세대주의 재림설을 이단을 판별하는 정통 신앙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 기준에 의하면 세대주의를 들어보지도 못한 루터, 낙스, 칼빈, 웨슬리 등 19세기 이전의 모든 개혁자들은 물론 세대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많은 현대의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도 모두 이단이 되고 만다.

 

비밀 휴거의 역사적 기원

 

[ 종교 개혁자들과 적 그리스도 ]

 

중세기의 로마교회가 성경을 신자들이 읽어서는 안 되는 금서목록에 포함시켜 소유는 물론 자국어로 번역하거나 전하는 행위일체를 화형 등 중벌로 다스렸음은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그러나 12세기에 알프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개혁자들인 왈덴스인들과 14세기 영국의 개혁자 위클립(John Wycliffe) 16세기 독일의 루터와 영국의 틴테일 등 목숨을 내건 개혁자들의 희생으로 마침내 성경이 영어, 독일어, 등 자국어로 번역되어 읽혀지면서 종교개혁의 불길은 세차게 번졌다.

 

성경 연구를 통하여 영적인 시력을 회복하게 된 개혁자들은 중세 교회의 극도로 타락한 성직 제도와 면제부제도 고백성사와 고행에 의한 속죄, 공덕에 의한 구원, 연옥 교리와 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 성자 숭배, 성찬에서의 미신적인 화체설, 잔인 무도한 종교재판 등 온갖 제도가 그리스도교 신앙에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임을 성경에 비추어 확인했다.

 

종교 개혁자들은 이러한 배도를 주도한 중세 교황권이 다니엘서(7,8,11)와 요한계시록(12, 13, 17), 사도 바울의 데살로니가후서(2)에 일찌기 예언된 적 그리스도의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철저한 회개와 개혁을 촉구했다.

 

위클립을 비롯하여 루터의 동료 개혁자요 성경학자인 멜란히톤, 그리고 예언 연구에는 소극적이었던 칼빈도 교황권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하는 일에는 적극적이어서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밝혔다.

 

"다니엘과 바울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성전에 앉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서방 교회에 있어서 이 저주받은 가증한 왕국의 머리를 우리는 교황이라고 단언 한다."

 

최초로 원어에서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베포한 죄로 화형을 당한 옥스포드 출신의 학자인 틴데일도 적그리스를 교황이라고 지목을 하였다.

 

같은 때의 캠브리지 출신의 학자인 바안스(Robert Barnes)는 교황권을 성경에 예언된 적그리스도라고 선언하다가 두 동료와 함께 화형에 처해졌다.

 

이렇게 중세 교황권을 성경에 예언된 적그리스도라고 선언하는데 제일 앞장선 것은 역시 루터였다. 1534년에 출판된 "루터 성경"(The Luther Bible)에는 요한계시록 17장에 나오는 짐승을 탄 음녀에게 교황의 삼층관을 씌워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삽화로 드러냈다.

 

 

[ 루터 성경의 삽화(위) 와 교황 삼층 면류관(아래) ]

 

성례전이나 교회관 등에는 심각한 이견을 보여 논쟁을 거듭한 개혁자들이 이처럼 다니엘과 요한계시록 등 예언 해석에 놀라운 일치를 보인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들이 모두 예언 해석에 있어서 역사주의(歷史主義 . Historicist)라는 공통된 원칙을 따랐기 때문이다. 역사주의 예언 해석이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예언을 그것이 쓰여진 때로부터 세상 끝날까지의 역사에서 계속적으로 일어날 일련의 사건으로 해석하는 입장인데 그것은 이미 성경 전체에 걸쳐 적용되고 역사에서 타당성이 입증된 성경적인 원칙이다.

 

[ 종교 개혁자들과 초기 개신교회는 교황권을 어떻게 보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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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로마교회의 대응

 

유럽전역에 걸쳐 요원의 불길처럼 번진 종교개혁으로 다급해지고 안팎으로 궁지에 처하게 된 중세 로마 교회는 활로를 찾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다. 그리하여 1545년 트렌트 종교회의를 열어 세 차례의 회기를 가지며 18년간을 끌었다.

 

이탤리 출신의 성직자들과 1540년에 탄생한 제수이트(예수회) 신학자들이 주도한 이 회의에서 개혁을 촉구하는 강력한 소원은 오히려 거절되고 면죄부제도와 연옥의 교리를 비롯한 이전의 모든 교리를 그대로 옹호할 것을 재천명하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비롯한 루터와 칼빈 등 개혁자들의 가르침은 저주받을 이단의 교리로 정죄하였다.

 

그리고 로마교회와 교황의 절대적인 권위를 재확인하는 한편 종교개혁을 철저히 분쇄하는 반 종교개혁의 입장을 확정했다. 그리고 교회와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든 이단자들을 징벌하기 위해 1542년 악명 높은 종교재판을 부활시켰으며 마리아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과 로마교회와 교황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다짐한 스페인 출신 로욜라(lgnatius of Loyola)가 창설한 예수회(제수이트)에 반 종교개혁의 과업을 맡겼다.

 

금서목록을 제정했으며, 그때까지 정경으로 인정치 않았던 다수의 외경을 포함시킨 라틴어 성경(the Latin Vulgate)만을 공인하고 로마교회가 인정하는 성경 해석 외에는 일체 허용하지 않기로 재확인했다.

 

이러한 물리적 대응 외에 근본적인 대책으로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에 의거하여 교황권을 적그리스도로 선언한 개혁자들의 변명할 여지가 없는 논증을 침묵시키거나 전복시킬 방안을 찾아야 했다.

 

카톡릭 백과사전에도 고민이 아래와 같이 드러나 있다.

"개혁자들에게 있어서 특별히 요한계시록은 로마교회의 교권에 대해 퍼부을 수 있는 공격거리를 파내는 무진장의 원천이었다. 로마의 일곱 언덕들, 추기경의 자줏빛 복장, 그리고 교황청의 불운한 악습들은 그 적용을 쉽고 마음이 끌리는 것으로 만들었다."

 

“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17:3-4)

 

교황권을 예언에 명시된 적 그리스도로 끈질기게 적용하는 개혁자들의 일치된 논증을 피하거나 깨뜨리는 최선의 방편은 그들로 하여금 그러한 결론에 이르게 한 역사주의 예언 해석 방법을 전복시키는 것이었다. 이 일은 제수이트 신학자들에게 맡겨졌으며 곧이어 두 가지 대안이 제출되었다.

 

그것이 바로 현대교회들의 예언 해석을 주도하고 있는 과거주의(過去主義)와 미래주의(未來主義) 예언 해석의 기원이며 여기에 비밀 휴거사상을 탄생시킨 세대주의의 뿌리가 숨겨져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예언 해석의 과거주의와 미래주의

 

개혁자들에 의하여 일치하게 적그리스도로 지명된 중세 교황권이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리한 집중공격을 피하기 위해 이전에 존재했던 사상들을 참고하고 집대성하여 새롭게 창출한 두 가지 예언 해석 법이 제시되었는데 그 내용이 19세기 주석학자인 태너(Joseoh Tanner)에 의하여 아래와 같이 요약되어 있다.

 

"16세기말에 이르러 이러한 과업에 자신을 바친 로마카톨릭의 저명한 두 학자가 나타났는데 이들은 적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이 교황제도에서 성취되었다는 인식으로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하여 각자 목적은 같지만 방법이 다른 시도들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제수이트 학자인 알카자(Alcazar)는 과거주의 해석방법을 드러내는 일에 자신을 바쳤는데 ... 이로써 그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들은 교황이 로마를 다스리기 이전에 이미 이루어진 것이므로 교황권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보이려고 애썼다.

 

한편 다른 제수이트 학자 리베라(Ribera)는 미래주의 해석방법을 끌어들여 교황

권에 관한 예언의 적용을 빗나가게 하려고 시도했다. 미래주의 해석은 이러한 적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이 교황권의 행적에 관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어떤 초자연적인 개인이 할 일이며,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타나면 3년 반 동안 권세를 쓸 것이라고 주장한다. ...

 

그러므로 1580년경에 나타난 제수이트인 리베라는 현대의 미래주의 해석법의 창시자로 간주된다."

 

설명된 대로 제수이트의 나라 스페인 출신의 학자 리베라(Francisco Ribera) 1950 500쪽이나 되는 요한계시록 주석책을 출판하여 계시록의 적그리스도가 교황권이라는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그는 계시록의 첫 부분은 요한 당시에 해당되는 예언이지만 나머지는 재림 직전에 나타나 성도를 핍박하고 모욕할 무신론적인 인물인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활동하는 3년 반 동안 이루어질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간동안 그는 하나님처럼 행사하고 세상을 다스리며 예루살렘에 성전이 재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스페인의 제수이트 학자인 알카자(Luis De Akcazar)는 리베라의 미래주의 해석이 교황권을 옹호하는데 미흡하다고 생각하면서 40년에 걸쳐 연구 끝에 900쪽의 분량의 요한계시록 주석책을 썼다.

 

그는 계시록의 전반부를 유대인 거절과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것으로 후반부는 이교 로마의 멸망과 그리스도교의 개종에 관한 것으로 돌려 중세 로마교회와는 상관없는 예언으로 만들었다.

 

또한 계시록의 (11, 12) 1260일은 과거에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핍박한 기간으로 다니엘서의 같은 기간인 "한때 두때 반때"(7:25)는 과거에 시리아왕 안티오커스(Antiochus Epi-phanes)가 유대인을 핍박한 기간으로 돌려 교황권이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적그리스도로 해석될 시간적 소지를 없앴다. 이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다니엘서 주석에서 발견되는 과거주의 해석의 기원이다.

 

세대주의로 분장한 미래주의

 

위에 제시한 역사적 고증은 카톨릭 학자에 의해서도 아래와 같이 확인되고 있다.

"1591년 제수이트인 리베라에 의하여 설립된 미래주의 해석학파는 적그리스도, 바벨론,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그리스도교 시대 끝에서 찾고 잇다. ... 1614년 제수이트인 알카자에 의하여 설립된 과거주의 해석학파는 요한계시록을 예루살렘 멸망과 로마제국 멸망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기초를 놓고 종교 개혁자들이 발판을 삼은 역사주의 성경 해석은 제수이트 학자들이 창출한 미래주의와 과거주의에 의하여 끝임없는 도전을 받으며 17세기와 18세기를 경과했다.

 

19세기에 걸쳐 개신교 신학은 성경의 영감을 부인하는 고등비평에 문을 열었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대부분 과거주의로 돌아섰다. 그리고 복음주의 학자들마저도 미래주의에 관심을 고조시켰다.

 

이러한 신학의 조류에서 영국 성직자였던 다르비(John Nelson Da-rby)는 미래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고 1827년 성공회를 떠나 "플라머스 형제들"로 알려진 작은 그리스도인 집단의 지도자가 되어 개신교식 미래주의를 발전시켰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우신 은혜의 언약이 당연히 지니고 있는 일관된 통일성을 무시하였다.

그리고 구속의 역사를 구속의 경륜이 서로 다른 대략 일곱 세대로 나누어 각각 다른 구원의 조건을 제시하는 현대의 세대주의를 창시했다.

 

세대주의자들은 신약의 교회가 구약의 이스라엘을 대신하는 영적 이스라엘임은 부인하고 배도한 유대인이 마지막 때에 회심하여 그들의 본래의 세대로 돌아오기까지 막간을 채우는 이질적인 세대로 간주하였다.

 

비밀 휴거설의 연대적 배경

 

위에 설명된 세대주의자들의 경륜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써 일시 끊어진 다니엘서 924-27절의 69이레와 다시 연결되어 예언 상으로 1이레에 해당하는 7년간의 역사가 유대인을 위주로 마쳐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약의 이스라엘 세대에게 할당된 70주 가운데 69번째 주와 70번째 주 사이에 끼여들어 거의 2000년을 지낸 이방인 위주의 신약 교회가 유대인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기 위해 역사의 무대에서 조용히 퇴장하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비밀 휴거라는 기발한 신학적 발상인 것이다.

 

결국 세상 끝의 마지막 1주인 7년동안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적그리스도에 관한 여러 예언들이 암흑시대를 주도한 중세 로마 교황권의 역사와 행적은 예언에서 흔적도 없이 말소된 것이다.

 

참으로 성경에서 근거를 찾은 종교개혁에 부딪혀 곤궁에 빠졌던 로마교회가 적그리스도의 신분을 은폐하기 위해 파 놓은 신학적 함정에 개신교회가 여지없이 빠진 것이다. 적어도 20세기에 들어서 발간된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주석들을 살펴보라

거의 하나같이 과거주의나 미래주의(세대주의) 해석으로 일관돼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종교개혁 전후의 주석 책들과 또한 배교해 보라 어떤 일이 개신교 신앙에 일어났는지 알게 될 것이다.

 

다음은 19세기말 요한계시록 주석을 쓴 학자인 태너(Joseph Tanner)의 개탄이다.

"오늘날 미래주의 성경 해석법을 고수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개신교도들로서 로마교회의 손에 이용되어 교황권이 적그리스도로 탄로되는 것을 막아주는 일을 돕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래주의는 성령께서 교황권에 찍어 놓은 낙인은 말소시키는 일을 시중들고 있다." 는 말은 적절하다.

 

현대 미국 개신교계 신약학을 대표하는 학자인 풀러신학교의 레드(G. E. Ladd) 교수도 세대주의와 비밀휴거를 19세기에 발생한 비 성경적인 가르침으로 평하는 잘 알려진 책 "복된 소망"(The Blessed Hope)을 써서 20세기 신학계의 정평을 얻었다.

 

그는 이 책에서 스페인의 제수이트 학자인 리베라가 중세 교황권을 적그리스도라고 확인하는 개혁자들의 예언 해석에 대항하기 위하여 고대의 미래주의를 끌어들인 첫 번째 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현대의 많은 미래주의자(세대주의자)들은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러한 세대주의를 비셩경적이요 개신교 신앙에 전적으로 어긋나는 것으로 비평하는 점에서는 현대의 칼빈 신학을 대변하는 벌코프(Louis Berkhof)나 훼케마(Anthony Hoekema) 씨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보수적인 개신교의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 교회의 강단에 이러한 역사적 뿌리와 사연을 가진 세대주의 비밀 휴거설이 성경적인 재림신앙을 대신하여 난무하고 있다.

게다가 신자들을 성서 신앙으로 선도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는 개신교 신앙 연구기관 도서가 이러한 세대주의 비밀 휴거설을 그리스도교의 정통 재림론인 것처럼 공공연히 소개하고 있으니 도대체 어찌된 현실인가?

 

종교개혁의 역사를 망각한 개신교회는 개신교로서의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중세 로마교회가 엄청난 대가를 치른 종교개혁에도 불구하고 그 후 교리적으로 진보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대하여 개신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강권된 깊은 영적 부담을 느껴야 할 것이다.

 

두 단계의 재림설과 성경의 표현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이 말씀 속에 비밀"휴거"를 뒷받침한다는 "공중"이라는 표현과 휴거를 암시하는 "끌어올려"라는 말씀과 "강림"이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대주의자들에 의하여 새로운 뜻으로 쓰이는 "휴거"(rapture)라는 말은 성경의 용어가 아니라 중세 로마교회의 공인 성경인 라틴어 성경의 번역에서 유래했을 뿐이다.

 

"강림"이라는 말의 헬라 원어는 "파루시아"(parousia)인데 "오심"(coming), "도착"(arrival), "임재"(presence)를 뜻한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은 이 용어가 7년 환란기 직전에 있다는 휴거 때의 비밀 공중 재림만을 뜻하고 7년 환난기 끝에 있다는 공개적인 지상 재림은 다른 용어들인 "나타남"(reve-lation)을 뜻하는 "아포칼립시스"(apokalypsis) "출현"(manifestation)을 뜻하는 "에피파네이아"(epiphaneia)로 구별하여 쓴다는 무리한 주장을 하고 있다.

 

"강림"(파루시아)은 비밀 휴거시의 공중 재림을 "나타나심"(아포칼립시스) 7년 끝의 지상 재림을 가리킨다고 구분한다.

그러나 마태복음 2437절에서 우리는 "노아의 때와 인자의 임함(파루시아)도 그러하리라"는 말씀을 본다.그런데 똑같은 내용의 말씀이 누가복음1726,30절에는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 인자의 나타나는(아포칼립시스) 날에도 이러하리라"고 쓰여 있다

누가 보아도 같은 사건이며 "임함" "나타남" 사이에 7년 간격이 있을 수 없다.

 

세대주의자들에 의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다리고 소망으로 삼아야 할 것은 부활과 휴거가  있는 7년 환난기 전의 "강림"(파루시아)이다.

 

( 2:13, 킹흠정) 『저 복된 소망 즉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음이라.

그러나 디도서213절에 소개된 "복스러운 소망"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에피파네이아"이다.

디모데 전서6:14절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에피파네이아"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딤전 6:14)

그리고 고린도 전서 17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하셨는데 이곳의 "나타나심" "아포칼룹시스"이다.

 

또한 데살로니가 후서 28절에도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아포칼룹토(apokalupto-)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파루시아)하여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으로 폐하시리라"고 쓰여졌다.

 

즉 적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불법한 자"가 죽임을 당하는 것은 예수님이 "강림"하실 때라고 했는데 세대주의자들에 의하면 이런 일은

 

첫 번째의 비밀 강림(파루시아)때가 아니라

 

두 번째의 공개적 재림 때에 일어나야 한다. 뿐만 아니라 만약 이렇게 적그리스도가 예수께서 비밀리에 "강림"(파루시아"하실 때 죽게 된다면 그 다음에 오는 7년 환난기 동안 적그리스도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로 되어있는 세대주의 종말의 시나리오는 허구일 것이다.

 

게다가 같은 사건인 "강림(파루시아)하여와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 사이에 7년의 기간이 걸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사도 바울이 교회에 보낸 서신인 데살로니가 전서 313절에는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파루시아)하실 때에"로 쓰여 있어 "파루시아"가 오히려 그들이 말하는 7년 환난기 끝에 "성도들과 함께" 오시는 공개적 재림을 뜻하는데 쓰이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오늘날 모든 번역본들이 이 세대주의의 영향을 받았음을 이 성경절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살전 3:13, 개역)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Th 3:13, NIV) May he strengthen your hearts so that you will be blameless and holy in the presence of our God and Father when our Lord Jesus comes with all his holy ones.

 

영어 NIV 성경만 " 그의 모든 거룩한 함께"라고 번역을 바르게 하였다. 거룩한 자가 성도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때에 ”( 25:31)

( 25:31, 킹흠정)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 중에 모든 거룩한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의 영광의 왕좌에 앉으리니』

 

예수님께서는 모든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다시 오셔서 성도를 하늘로 데려 가시겠다고 약속하셨지 몰래 하늘로 데려갔다가 공개적으로 땅으로 데리고 오시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14:2-3)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살전 4:16)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1:7)

 

이 모든 예증에서 분명해진 사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표현하는데 쓰여진 이러한 세 가지 용어가 모두 동일한 재림을 묘사하는 동의어인 것이다. 절망에 빠진 인류의 하나밖에 없는 소망인 재림을 두 개로 쪼개어 초점을 흩어 놓는 것은 너무나 큰 신학적인 과오요 불행이다.

 

육신적 이스라엘과 영적 이스라엘

 

이렇게 성경에는 근거가 없는 두 단계 재림과 비밀 휴거 등 기상천외한 착상이 어떻게 나왔는가? 그것은 분명히 미래주의 예언 해석의 새순인 새대주의가 낳은 기형 신학으로 다음과 같은 성경 해석의 원칙을 알지 못했거나 이를 무시한 까닭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들은 그들의 순종을 조건으로 하는 조건적인 것이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19:5-6)

 

“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8:1)

 

순종의 축복

불순종의 저주

“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28:1-2)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28:15-16)

 

순종에 대한 축복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베풀어 너희를 치려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 길과 행위를 선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8:6-1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16)

 

“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6:26-27)

 

“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4:12)

 

고대의 이스라엘은 불손종함으로서 이러한 조건에 응하는데 실패하였으며, 예수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서 택하신 나라와 백성의 신분을 상실했다.(21:29,43; 23:38)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21:43)

 

그것이 유대인에게 배정된 마지막 은혜의 기간인 다니엘924절의 70이레의 의미였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 9:24)

 

누가 참 이스라엘인가?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1:47)

 

신약의 교회는 구약의 "육신적인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들어선 "영적 이스라엘"이 되어 구약의 모든 약속을 물려받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벧전2:9)가 된 것이다.(3:29; 9:6-8; 2:28,29)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3:26-29)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6-8)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9:27)

 

육신적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분은 영원히 없어졌으며(2:8-22: 3:28; 10:12) 이스라엘이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으나 국가적으로나 민족적으로는 더이상 택한 백성이 아니였다.(13:46; 4:13,16; 2:11; 3:3)

 

성경(구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0:11-13)

 

따라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이스라엘도 역시 영적 이스라엘인 신약의 교회를 가리킴이 분명해야 하는데 요한은 이 사실을 처음부터 인정하여 베드로나(벧전2:9) 바울처럼 당시의 교회들을 구약의 이스라엘의 개념으로 부르고 있다(1:6; 5:10)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9-10)

 

“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1:6)

 

또한 그것이 사도 교회의 통일된 원칙이었다.(2:16-22; 13:47; 15:13-17)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13:46-47)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24:14)

 

따라서 바벨론도 고대 바벨론이 아니라 영적 바벨론이 되었고(17:5) 바벨론이 그 위에 건설된 유프라테스강도 영적인 의미임을 확인하고 있다(16:12 ~17:1,5,15) 물론 예루살렘도 고대 예루살렘이 아니고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이 된 것이다.(21:2,30; 12:22,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주의자들은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의 모든 약속과 계획이 육신적인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신약시대에 끼여 들어온 이방인 중심의 교회는 돌아오는 유대인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비밀 휴거를 통하여 조용히 퇴장시키는 연출을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은 천년 왕국 기간은 물론 그 이후의 영원한 왕국에서도 존재한다고 하니 참으로 곤혹스럽다.

 

그리하여 고대 이스라엘에게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계획하셨던 약속들이 성격에 따라서 영적으로  혹은 실제적으로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통하여 어떤 것은 이 세상 역사에서 어떤 것은 다가올 세 땅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동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 유대인이 아니라 그 자리를 대신한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다.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교회의 재림 신앙에 일대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현대판 미래주의 예언 해석에 속하는 세대주의 재림론의 창작인 비밀 휴거설의 역사적 뿌리와 성경적 근거를 확인했다. 무엇보다도 의미가 분명하고 초점이 뚜렷해야 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인 그리스도의 재림이 어느 때 보다도 임박한 지금 이러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참으로 불행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렇게 될 상황에 대하여 미리 말씀하신 예수님의 경고와 진상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파루시아)도 그러하리라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24:25-31)

 

이것이 재림하실 예수께서 당신의 재림에 대하여 친히 하신 말씀이다.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비밀 휴거때의 임하심(파루시아)과 용어는 같지만 방식과 내용은 전혀 다른 재림이다. 믿지 말아야 할 거짓 재림이 있기 때문에 믿어야 할 참된 재림을 "미리 말씀"하신 것이다.

 

다음은 마지막에 사는 성도들이 환난을 겪은 후에 맞이하게 될 성경적인 재림의 진상이다.

 

승천하신 때처럼 실제로 개체를 가지고 오심(1:11; 14:3)

모두가 눈으로 볼 수 있게 공개적으로 오심(24:27: 1:7)

구름을 타고 공중에 임하심(살전4:17; 24:30)

갑자기 예기치 않았던 때 오심(살전5:4-6; 24:38,39,43)

하늘과 땅에 엄청난 격변을 일으키며 세계적으로 오심(6:14; 벧후3:10; 16:18)

 

어느 한곳 어느 한 표현에서도 비밀 휴거의 암시나 두 단계 재림의 개념이 깃들인 데가 없다. 비밀 휴거나 비밀리에 공중에 재림하신다는 주장은 성경에 발붙일 때가 없다

            

 

 출처-http://cafe.daum.net/jmsoo. (한국교회 회복과 개혁)

출처 :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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