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나쁜신앙)

[스크랩] 이요한구원파의 이단성

수호천사1 2013. 12. 22. 08:22

 이요한구원파의 이단성
글쓴이 : 이인규


필자는 이단들과 오랫동안 직접 토론을 하고 연구를 하여왔다.
그동안 직접 체험하며 느껴온 것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단들에 대한 정확한 이단성에 대한 정보와 자료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단들과 직접적인 토론을 하며, 이단에 빠진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 대고 상담을 해보았던 전문적인 사람들은 그 숫자가 실제로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은 때로는 법적인 고소를 당하면서, 때로는 위협을 당하면서, 이단들뿐 아니라 교회 안과 밖에서도 갖은 비난과 정치적인 모략을 감수하여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이단연구가들의 현주소인 것이다.


그동안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는 이단이라고 불리는 교회의 교리에 대해서 구체적인 자료가 매우 부족하다. 이단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많되, 실제로 이단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며 이단들의 교재나 책자를 연구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는 우리나라의 이단연구가를 한 손,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명백한 양태론적인 이단성을 가진 사람과 또 인간론에서 이단성을 주장하는 사람이 어느 교단에서 이단성이 풀리고, 어느 교단에서는 아직 이단으로 발표되어 있는 것이 우리나라 정통교단 이대위의 현실이다. 그 교단에서는 이단을 해제한 이유가 질의서를 보내고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단성이 있는 사람에게 질의서를 보내고 그 답변으로 이단을 발표한다면 우리나라에 이단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단을 이단이라고 할 수 있는 정확한 입장이 필요하며, 이단을 이단이라고 발표하지 못하는 어떠한 정치적인 이유도 없어져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단이라고 발표하는 이유는 우리 한국교회를 보호하려는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단이 아닌 사람을 이단이라고 발표하는 것과 그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도 한국교회를 망치는 행위가 될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는 은사주의가 남용되며 표적과 이적이 넘치는 뜨거운 부흥성회만을 강조할 뿐, 차가운 교리공부와 성경공부를 성도들에게 시키지 않는다. 교회를 20-30년 다닌 권사, 장로가 혹은 목사가 이단들을 만나면 한마디 대꾸조차 못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주소이다.
이번에 신천지의 추수꾼 수법을 보고 한국교회는 경악하였다.
그러나 교회에서 그 대응책은 무엇이었는가? 이단세미나 한 두 번하면 예방주사를 맞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 아니던가? 혹시나 신천지 명단을 구하여 그들을 교회에 나오지 못하도록 제명시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어떤 이단들은 정통교회의 교리와 신학에 대한 약점을 교회 자체적으로 모법답안을 만들어 모든 교인들이 관련된 성경구절을 외우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우리도 이제는 이단교리를 가르치고, 무엇이 틀렸으며 무엇이 옳은지 정통신학과 교리를 가르쳐야만 한다.

우리는 대부분 구원파에 대해서 다만 그들이 거듭나면 죄가 없으므로 단회적인 회개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는 것과 그들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깨달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이렇게 구원파의 이단성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서 그들을 대처할 수는 없다고 본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파 교회가 용어만이 조금 다를 뿐인데 왜 이단이냐고 반문을 하는 실정이다. 거듭난 사람이 죄씻음을 받았다는 것이 왜 이단이냐고 반문하는 사람조차 있었다.

아다시피 구원파는 박옥수계열의 기쁜소식선교회(IYF), 권신찬과 유병언계열의 삼각지 서울교회(기독교복음침례회), 이요한계열의 생명의말씀선교회(예수교복음침례회, 서울중앙교회)가 있다. 1980년대 말, 오대양사건으로 권신찬계열의 구원파가 세간에 널리 알려졌으며, 또한 박옥수계열의 구원파가 체육관집회의 성경세미나를 통하여 잘 알려져 있으나, 상대적으로 이요한계열의 구원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면서 그동안 다른 구원파 교회의 그늘에서 놀라운 발전을 하고 있었다.

구원파에 대해서, 특히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요한계열의 구원파에 대해서 그들의 이단성을 살펴보자.
권신찬은 장로교단의 목사였다가 제명을 당한다. 다시 말하여 권신찬계열의 구원파는 지방교회 교리와 유사하다. 그런데 이요한은 권신찬에게 구원파 교리를 배운다.
즉 권신찬과 이요한은 지방교회와 유사한 교리를 갖고 있다.
그것을 그들의 주장을 통하여 증명하여 보겠다.

(1) 이원론적인 구원론

1. 구원의 의미
(5) 영혼의 구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영혼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죄성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2. 구원받은 사람은 죄에 거할 수 없다.
(1) 구원받은 사람도 죄를 짓는 이유: 사단은 공중권세를 가진 자이며 인간육체를 통해 역사합니다.
(2) 구원받은 사람이 범하는 죄의 유형 첫째는 부지 중에 짓는 죄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육신에 아직 죄성 가운데 있기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올라오는 죄입니다. (생명의말씀선교회 홈페이지- 신앙과 생활 - 주제별 성경연구 - 자백, 사랑과 용서, 발췌)
 http://www.jbch.org/newhome/guide/faith/faith_view.php?page=1&no=56

권신찬계열의 구원파는 재창조론(간극론)도 주장하며, 신론, 구원론, 교회론, 인간론, 종말론에서도 지방교회와 유사한 점이 발견되어진다.
또 권신찬과 이요한의 구원론과 인간론은 지방교회의 주장과 같이 육체와 물질을 죄악시하거나 사단이 거하는 장소로 생각하는 이원론을 주장한다.

첫째, 이요한구원파의 구원론은 이원론적이다.
즉 전인적인 인간을 살아서 육체와 영혼으로 분리하여 영혼만이 구원을 받은 것이고 육체에만 죄가 남아있어서 별도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분리시켜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은 구원을 “영혼의 구원”과 “생활(육신)의 구원”으로 분류하는데, 거듭나는 것은 구원을 받은 것이며, 육신은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 영혼과 육신과의 싸움 중에서 육신의 세력이 강해서 육신의 세력에 사로 잡혀가는 영혼의 고통을 표현한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주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은 기회만 있으면 성령을 거스리는 것이다. 육신은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육신은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 바울도 "내가 내 육체를 쳐서 복종시킨다."라고 했다. "종을 어려서부터 곱게 키우면 나중에는 자식인체 하리라" (잠29:21) 말씀의 종은 육신을 뜻하기도 한다. 육신을 자유롭게 두면 아니되며 육신은 엄히 통제해야 한다. (생명의말씀선교회, 구원의 세가지 의미)

소위 영성운동을 한다는 어느 목사도 전인적인 사람을 영과 육을 분리시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성경에서 특히 바울서신에서 육체와 영을 분리시키는 듯한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결과이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즉 위 성경본문은 인간의 육체와 인간의 영이 구별되고 대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인간과 "영"이신 성령하나님이 서로 구별되고 대조되어지는 것이다. 즉 “육신”은 영혼을 제외한 부분이 아니라 총체적인 인간 자체를 말한다. 이것을 잘못 해석하여 물질적인 육체와 비물질인 영혼으로 비교하여, 분리되어진 육체를 따르는 것은 죄악시하는 해석은 소위 헬라적인 이원론이라고 하는 잘못되어진 논리가 된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육체적인 사람”과 “성령적인 사람”으로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육신(인간)의 생각은 하나님(성령)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7-8)

육신의 생각이란 영을 제외한 일정한 부분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인간적인 생각을 뜻한다. 즉 육신에 있다는 표현은 성령이 거하지 않는 사람을 가르키는 것이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전8:9)

우리가 “육신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영에 있다”는 것은 곧 “육신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다시 말하여 성경에서 “육신에 거한다. 죄에 거한다.”는 표현은 영과 육을 분리시켜 한 부분에만 위치한다는 뜻이 아니라, “거듭나지 못한 상태, 성령을 거슬리는 상태”를 완곡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특히 박옥수계열의 구원론은 다른 구원파에 비하여 아주 단순하며 한마디로 신학적, 성경적으로 매우 무지하다. 거듭난 사람은 그냥 죄가 모두 없어졌다는 것이다. 죄성이 없어진 것인지 죄책이 없어진 것인지조차 구별을 하지 않는다. 원죄와 자범죄에 대한 구별도 하지 않는다.
거듭난 사람에게도 죄성은 남아 있다. 다만 죄책(죄에 대한 책임, 정죄함)이 면제되는 것이다. 그러나 박옥수목사는 “그냥 모든 죄가 없어졌다”고 말하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없어졌고 완전한 의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것이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의인이라고 불러주는 값없는 은혜”라는 것조차 모르는 모양이다. 이신칭의는 죄가 없어져서 온전한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인이라고 불러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칭의”는 죄가 있지만, 이미 대속금을 지불하였기에 죄책이 면제되어 무죄석방되는 법정용어를 가르킨다. 거듭난 자에게도 죄성은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하여 이요한구원파는 지방교회의 것과 유사하다.
즉 사람을 육체와 영, 혼으로 분류시켜 육체에는 사단이 거하며 죄가 있고, 영은 하나님이 거하며 죄가 없다는 그러한 이원론을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위트니스 리에게 나타나는 이원론적인 사상이다. 즉 거듭난 것은 육신을 제외한 영혼만이 거듭났다고 주장을 하는 것이다.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의 글을 보자.

- 죄는 사단의 체현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체현이다. 이 두 체현들이 우리 안에 있다.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영 안에 있고, 사단의 체현인 죄는 우리 육신 안에 있다.(위트니스 리, 세부분의 사람의 생명이 되시는 삼일하나님, 73쪽)

- 우리는 우리 존재에 세부분이 있음을 알고 있다. 당신은 사단이 그의 거처를 당신의 몸, 즉 당신의 육체 속에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가? 그리고 당신은 주님께서 당신의 영을 그분의 거처로 삼으셨다는 것을 아는가?(위트니스 리, 왕국, 218쪽)

그렇다면 베뢰아 성락교회 김기동목사는 어떨까?
그도 지방교회의 주장과 유사하다.

- 우리의 심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졌기에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있지만 육체는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없습니다.(김기동, 마귀론 하 154쪽)

 - 귀신은 사람의 영혼 속에는 들어오지 못하지만 육체 안에는 들어올 수 있습니다.(김기동 마귀론 하 63쪽)

이요한의 주장은 지방교회보다 비교적 단순한 면이 있는데, 그는 거듭나는 것이 “영혼의 구원”이라고 주장을 한다. 그리고 그가 “생활의 구원”이라고 부르는 육신의 구원은 이원론적이다. 즉 거듭난 자가 죄를 짓는 것은 육신의 죄이며, 사탄이 육체를 통하여 역사하며, 영혼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요한은 사람이 고의적으로 짓지 않은 죄는 육체를 통한 죄 때문이므로 자기의 의지와 상관이 없다고 주장 한다.

(2) 양태론

필자는 이들의 교리가 지방교회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고 그들의 신론을 찾아 보았다. 베뢰아도 양태론이다. 예상하였듯이 구원파의 신론도 양태론이었다.
이요한의 동영상을 보자 이러한 주장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1. 아버지가 어떻게 아들이라고 불리는가?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 자신인데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이다.(이요한은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라고 반복하여 강조한다.)
2. 하나님과 동일하신 예수님은 원래 기도를 하실 필요가 없는데, 우리를 위해 기도를 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3. 예수님은 구약에서 하나님으로 나타나셨고, 33년은 말씀으로 오셨으며, 죽고 부활하여 성령으로 오신 것이다.
4. 나(이요한)는 사람은 하나인데 세 역할을 한다. 교회에서는 목사이고, 집에 가면 여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고 아버지도 된다. 이렇게 목사도 되고, 남편도 되고, 아버지도 되지만 사람은 몇사람인가? 한 사람인 것이다. 이런 것은 잘 모르면 그냥 놔두자......(이요한의 동영상. 예수님이 하나님인가?)
http://www.jbch.org /newhome/guide/faq/faq_view.php?f_id=20021016163700& target_1=category:중분류검색&FindButton=카테고리검색&Page=2& skeyword=10200&flag=0

- 삼위일체가 잘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쉽게 몇가지 비유를 들어보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 잎 클로버는 세 잎으로 구별되어 있지만 동시에 하나입니다.가로, 세로, 높이는 서로 구별되지만 체적 자체로는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나무는 뿌리, 줄기, 가지로 삼분되지만 결국 하나입니다. 또 이것을 전기에 비유해 보면 전기를 전구에 연결하면 빛이 나고, 전열기구에 연결하면 열이 나며, 동력에 연결하면 큰 힘이 나옵니다. 전혀 나타나는 모양이 다르지만 전기는 하나입니다. 물도 그렇습니다. 흘러가는 물이 겨울에 고체가 되고 이것을 다시 가열하면 기체가 되어 수증기로 날아갑니다.(이요한)

위의 비유는 전형적인 양태론적인 비유이다.
- 또, ;마태복음 28장19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고 하신 말씀에서 ‘이름들’이라는 복수형을 사용하지 않고, ‘이름’이라는 단수를 사용한 것도 삼위가 세 분이 아닌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삼위일체에 대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삼위가 동시에 나타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각각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면 그래도 우리의 이해의 범위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동시에 세 분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니까 이해하기도 어렵고 설명하기도 려워집니다.(이요한)

정통삼위일체는 본질에서는 한분이지만, 인격에 대해서는 상호 구별되는 세분이라고 말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요한은 한분이 삼위로 나타나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삼위의 동시존재가 설명하기 어렵다고 실토한다. 삼위가 인격적으로 구별된다는 정통삼위일체로서는 설명이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요한이 교리를 공부하고 배웠던 권신찬의 삼위일체론은 무엇일까?
이 자료도 권신찬 교회(기독교복음침례회)의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것이다.

-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삼위일체 하나님)
물론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성경에 없다. 그러나 요한10:30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했고, 이사야9:6의 말씀(....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사도행전20:28(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했으니 예수님과 하나님이 한분이시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권신찬교회 홈페이지)

- 하나님과 성령과 예수님은 하시는 역할로는 세분(삼위)이지만, 근본은 한분(일체)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권신찬교회 홈페이지)

삼위는 역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삼위는 인격적으로 구별되어야만 한다.
삼위를 역할로 표현하는 것을 사역적삼위일체(경륜적삼위일체)라고 말하는데, 양태론을 뜻한다. 이요한도 역시 자기가 교회에서는 목사, 부인에게는 남편, 자녀에게는 아버지라고 삼위일체를 사역적으로 설명하며 물과 얼음과 수증기, 빛과 열과 해로 비유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사역적인 삼위일체는 한 인격의 세 양태이므로 양태론이다.

또 권신찬은 삼위일체를 인간의 영과 육과 혼으로 비유한다.

-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영과 혼과 몸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마치 3위의 하나님처럼(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래서 사람도 삼위로 되어 있습니다. 3위는 나눌 수 없습니다. 그 하는 기능은 각각 달라도 3위는 나눌 수 없습니다.(권신찬교회 홈페이지)

인간의 영과 혼과 육은 세 구별된 인격이 아니라, 한 인격의 세 요소를 말한다. 그래서 그러한 비유적인 삼위일체는 양태론의 대표적인 주장이었다.
양태론적인 삼위일체는 교회사에서 단 한번도 이단이 아닌 적이 없었다. 만일 양태론을 옳다고 한다면,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 성부하나님이 되며, 성경에서 나타나는 삼위의 인격적 구별, 상호교류, 동시존재에 대해서 설명을 할 수가 없으므로 이단적인 주장이 된다.
그렇다면 지방교회의 삼위일체에 대해서 알아보자. 권신찬은 지방교회에서 그 교리를 배웠고, 이요한은 권신찬에게 배웠다. 즉 인간론, 구원론, 이원론, 양태론까지 모두 동일한 것이다.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분리된 세 인격이나 세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은 한 하나님, 한 실제, 한 인격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이름으로 지칭된다. 이름은 그 인격을 지칭하며, 그 인격은 그 이름의 실제이다. 신성한 삼일성의 이름은 그 분의 인격과 동등한 신성한 존재의 총체이다. 하나님은 삼일, 즉 셋-하나이시다.(위트니스 리, 세부분의 사람의 생명되시는 삼일 하나님. 52쪽)

- 이 놀라우신 하나님은 그분의 분배를 성취하기 위해 친히 두 단계를 취하셨다. 성육신에 의해 그 분은 구속하는 어린양으로서의 사람, 마지막 아담이 되셨다. 그런 다음에 그분은 또 하나의 단계 인 부활을 취하셨다. 부활 안에서 그분은 더 전진된 어떤 것이 되셨다. 그분은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두가지 큰 비밀. 19-20쪽)

- 그러므로 요한복음 3장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을 주셨다. 이 아들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고 여기지 말라. 우리에게 주신 바 된 이 아들이 바로 다름아닌 그 "하나님 자신"이다. 당신이 아들을 영접할 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며, 당신의 기도에서 당신은 그분을 아들이라 부르지 않고 아버지라 부른다.(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두가지 큰 비밀. 18-19쪽)

구원파들이 지방교회와 구원론, 인간론과 양태론까지 유사한 것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3) 구원받은 날짜

이들은 대내적으로는 구원받은 날짜를 알아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구원받은 날짜는 자신들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깨달음에 의한 구원의 확신이다.
그러나 구원파는 대외적으로 자신들은 구원받은 날짜를 반드시 기억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고 변명하여 왔다. 물론 구원파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반드시 기억하라”고 가르친다고 배워왔다고 증언한다.

http://www.jbch.org /newhome/guide/faq/faq_view.php?f_id=20030120172434& target_1=category:소분류검색&FindButton=카테고리검색&Page=2& skeyword=10402&flag=0

구원받은 날짜를 알아야 하는가?

- 구원받았다는 말이나 거듭났다는 말이나 똑같은 말입니다. 다시 말해 육신이 어머니 태에서 한번 태어난 것같이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우리의 육체가 태어난 날이 확실히 있듯이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는 날도 확실히 있습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골1:6) 그러므로 자신이 언제 거듭났는지 모르면 안 됩니다. 물론 정확한 일시는 오래되었거나 아니면 특별히 그 날을 기억하지 않아서 모를 수도있습니다. 그러나 언제 자신의 모든 죄가다 사해졌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생명의 말씀 선교회의 자료)

-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알지 못하면 그것은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안에 성령이 들어오셨는지 모르는 것은 자기가 밥을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구원받았다는 말이나 거듭났다는 말이나 똑같은 말입니다. 다시 말해 육신이 어머니 태에서 한번 태어난 것같이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가 태어난 날이 확실히 있듯이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는 날도 확실히 있습니다.(이요한의 설교내용)

자기 자신이 자의적으로 몇년 몇월 몇일에 구원에 받았다고 주장하는 구원파는 그 날과 시간까지 반드시 기억하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그들은 대외적으로는 그 날을 몰라도 된다고 가르친다고 변명을 한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너무 오래되었거나 기억이 안나서 잊는 것을 제외하고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단들의 특징은 대외적과 대내적인 가르침이 항상 다르다.
구원을 하시는 분이 누구인가? 자기가 어떤 교리를 깨달으면 구원을 이미 받은 것인가?
구원이란 하나의 길이며 과정이다. 구원이 현재와 미래의 시제를 무시하며 과거시제의 구원만을 주장하는 것도 올바른 구원관이 아니다.
게다가 구원의 확신은 현재의 믿음의 확증이어야만 한다. 내가 10년 전에 한번 믿었던 적이 있었으므로 나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내가 20년 전에 교회를 다니다가 지금은 신천지교회나 통일교회를 다닌다고 하여도 나는 구원을 이미 받았는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고후13:5)

내가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다면 나는 분명히 구원을 받는다. 즉 그러한 믿음이 전제가 된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만 한다. 구원의 확신이란, 맹목적이고 주관적인 확신이 아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엡3:17)

(4) 회개와 자백

구원파들은 회개를 단회적이라고 말한다.
박옥수목사는 회개를 하면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대외적으로는 “우리도 회개하라고 가르친다”고 변명한다. 물론 그곳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회개는 일생에 한번만 한다고 배웠다고 증언한다.
그들이 말하는 반복적인 회개는 “회개”가 아니라 “자백”이다. 소위 말장난을 하는 것이다.

http://www.jbch.org/newhome/guide/faith/faith_view.php?page=1&no=75

- 구원받은 후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구원받은 사람은 지옥 갈까봐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예수님께서 영원히 용서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을 때 잘못한 것을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이는 평소에는 아버지가 퇴근해서 빨리 오시길 바랍니다. 아버지는 퇴근길에 종종 맛있는 것을 사 가지고 오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아버지에게 죄를 지으면 저녁에 아버지가 퇴근해 오시는 것이 두렵게 되고, 아버지와의 교제가 단절됩니다. 이와 같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의 교통(교제)이 되지 않고 구원받은 형제자매간에 교제도 단절됩니다. 사람에게 죄를 지었어도 죄는 하나님 앞에 가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죄를 지으면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죄를 지으면 자기 마음에서 하나님과 대화가 단절됩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 솔직하게 시인하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잘못해 놓고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양심을 속이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구원받고 나서 짓는 죄는 자백을 해야 합니다(생명의 말씀 선교회 자료)

- 회개와 자백
(1) 회개의 두가지 의미
첫째, 회개의 의미는 죄인이 죄악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삶의 전환을 가르킵니다. 일생에 단 한번뿐인 회개입니다.  두 번째, 회개는 자녀가 아버지에게로 잘못을 고하고 돌이키는 회개, 즉 자백을 말합니다.(생명의 말씀선교회)

구원파에게 회개란 일생에 단 한번 하는 단회적인 것이다. 이것은 구원파의 아주 중요한 교리이다.
“자백”은 자신이 죄를 고백하는 것으로서 방향수정을 뜻하는 회개와는 다르다. 이들이 자신들도 회개를 한다고 가르킨다고 변명하는 것은 “회개”가 아니라 “자백”이다.
“메타노에오”는 방향수정을 말하며, “믿음”이라는 뜻으로 사용될 때에는 당연히 단회적이지만, 죄에 대해서 사용될 때에 반복적이다. 
성경은 믿음에 대한 단회적인 회개가 아니라, 죄에 대하여 반복적인 회개를 분명히 말하고 있다, 또한 계시록2-3장의 소아시아 일곱교회에게도 회개하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성경에서 회개는 단회적이 아니다.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눅17:4)

일곱 번을 회개하라는 것이 단회적인가, 반복적인가? 성경에는 죄에 대해서도 “회개”(메타노에오)라는 단어가 분명히 사용되었다. 구원파가 주기도문을 부정하는 이유는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문이 반복적인 회개와 죄사함에 대한 교리와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가 일곱 번 죄 지은 자가 일곱 번 반복하여 회개하면 용서하여 주듯이 주님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는 것이 주기도문의 내용이다. 일생에 한번 회개하라는 구원파의 주장은 분명히 비성경적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회개와 자백이라는 용어를 구별하여 변명하지 말라.
회개는 단회적이고 자백은 반복적으로 하여도 좋다고 하였는데, 성경은 회개가 반복적이며, 자백은 죄가 있으니 자백을 하라는 것이 아닌가? 죄가 없는데 어떻게 자백을 하란 말인가?
죄가 없다고 하면 스스로 속이는 자이며 진리가 없는 자가 아닌가? 아래 성경본문이 육체에만 죄가 있다는 뜻인가? 사도요한은 “육체에만 죄가 있다”라고 말하지 않으며,“우리에게 죄가 없다면”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에게 죄가 있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8-10)

요한계시록2장-3장에서 소아시아 교회들에게 죄를 회개하라는 성령의 말씀은 무엇인가? 
이미 믿을 때에 한번을 회개하였으니 더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계시록2-3장에서 말하고 있는지 성경을 확인을 하여 보기 바란다.

(5) 임박한 시한부종말론

한때 극단적세대주의라고 불리는 일부 집단들 중에서 계시록을 임의로 해석하여 임박한 종말론을 주장하여 왔었다. 그들은 2000년이 가까워 오자 유럽연합의 출범이 곧 긴박한 종말인 것으로 주장하여 왔다.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를 임의적이며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동방”이 어디이고, “열뿔”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한다는 숱한 주장들은 그동안 너무나 많았다. 유럽연합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가 666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구원파도 역시 이러한 집단이었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이미 오래 전에 만들어 지고 2000년이 이미 지나갔으며, 10개국이 넘었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다. 로마가 유럽연합이라는 성경적인 증거는 없다.
재미있는 것은 권신찬의 종말론과 그에게 교리를 배운 이요한의 종말론이 서로 다르고, 박옥수는 종말론보다는 오로지 모든 죄가 없어졌다는 주장만 하고 있다.

http://www.jbch.org/kor/seminar/view.php?sCode=10r11r11r11r10&psId=911


이요한의 종말론

- 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기 위한 무대로써 유대인들은 통합유럽을 필요로 하는데, 이것은 사실상 로마제국이 부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적그리스도는 종교와 경제의 막강한 힘을 의지하여 세계적인 정치권력으로 나타날 것이고, 그 무대는 유럽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 유럽이 옛 로마제국이 부활하듯 하나의 세력이 되리라는 것은 몇십년 전 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성취되어 가는 것을 현실로 보고 있다. 그것은 2,600년전에 다니엘에 의해, 또 1,900년 전에 사도 요한에 의해 성경에 이미 예언되었던 것이다. 세계정부 수립을 위한 준비가 거의 다 되었다는 사실, 그 준비과정에 유럽통합이 이루어진 사실 등은 성경에 예언된 인류역사와 관련해 볼 때 대단히 중대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그 세력을 통해 세계연방정부의 통치자가 나타나기 때문인데, 성경은 그를 사탄의 앞잡이 "적그리스도(Antichrist)"라고 말씀하고 있다.

- 성경에는 짐승의 뿔이 열이라 했으니 열 나라가 되어야 할텐데 현재 EU는 나라수가 더 많지 않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아직은 환난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환난 시대에 틀림없이 열 개의 나라로 부활될 것이다. 어쨌든 결국 10개국이 뭉치는 것이며, 얼마 후 그중 세 지도자가 정복되고 결국 일곱의 지도 세력에 남게 될 것이다.

- 열 뿔 곧 유럽에서 나타난 열 지도가 중에서 또 한 세력이 나타날 것이며, 세왕이 그 세력을 반대하다가 철저히 제거될 것이다. 그 세력이 곧 사단의 권세로 나오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이며, 온 세상을 보는 눈과 온 세상을 향해 말하는 큰 입을 받게 될 것이다. 부활한 로마제국, 곧 유럽공동체는 머잖아 유럽합중국을 만들고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경제대국을 이룰 것이다. 이로써 강력한 정치세력을 형성하여 드디어 전 세계를 다스릴 세계의 총통 적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이요한의 동영상을 보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중동평화조약이 오고 7년 후에 시작된다는 주장)
- 그리스도인들이 휴거되고 나서 7년환난이 시작되면 전 삼년반이 시작됩니다. 중동에 평화가 오고 7년간 시한부 평화조인식이 이루어질 때 시작될 것입니다.(이요한)

(EU 열 국가에서 한 세력이 적그리스도라는 주장)
- 열 뿔 곧 유럽에서 나타난 열 지도가 중에서 또 한 세력이 나타날 것이며, 세 왕이 그 세력을 반대하다가 철저히 제거될 것이다. 그 세력이 곧 사단의 권세로 나오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이며, 온 세상을 보는 눈과 온 세상을 향해 말하는 큰 입을 받게 될 것이다. (이요한)

(이스라엘 사람만이 144000명이고 이들은 3년반에 적그리스도에게 순교를 당한 후에 부활된다는 주장)
- 7년 환란 중 전 3년 반에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144,000명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후 3년 반에 적그리스도에 의해 다 순교를 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부활됩니다

(변화된 사람과 육신을 입은 두종류의 사람이 살게된다는 주장)
- 천년 끝에 마귀가 잠깐 풀어 놓여지게 되며 마귀는 천년 동안 태어난 자들에게 들어가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멸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화된 사람과 육신을 입은 사람의 두 종류가 살게 됩니다

모두 자의적이며 임의적인 해석이므로 일일이 반박할 필요가 없다. 로마가 유럽연합으로 부활한 적도 없고, 열뿔이 유럽연합국가 숫자인 근거도 없다. 더욱이 성경에서 “동방”은 우리나라도 중국도 아니며, 팔레스타인 동쪽방향을 말한다. 더욱이 변화된 사람과 육신을 입은 두 종류의 사람이 살게된다는 성경구절도 없으며, 이스라엘 144,000명이 순교를 당할 것이라는 성경구절은 전혀 없다.

재림이 임박하였다는 주장

- 예수님이 오신 후에 다시 재림할 때까지 이천년의 기간이 있습니다. 지금은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운 때입니다. (2005년 2월20일 이요한목사 설교)

- 다니엘서에서 나오는 4번째 짐승이 로마인데 그것이 현재의 유럽연합이라고 말한다. 다니엘이 우상꿈을 꾸었는데 두 다리는 로마제국, 동로마와 서로마를 말하며, 열발가락은 유럽연합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유럽연합은 10국가가 넘지만, 10은 완전수를 말하므로 EC 유럽연합을 가르킨다.  그리고 2000-3000년전에 기록된 성경의 예언의 말씀이 현재 기차의 마지막 역에 다다르고 있다 (권신찬 동영상, 세계정부와 그리스도)

권신찬은 계시록 13장에서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라고 해석하면서, 그 이스라엘 선지자(메시야)가 현재 실제로 이 땅에 존재하여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데, 그 선지자가 적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다. 즉 유럽연합과 적그리스도인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동맹을 맺고 중국과 아시아에서 오는 군대와 최후의 전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권신찬은 2000년 전의 예언된 말씀이 드디어 눈 앞에 와 있다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그 임박하고 곧 닥칠 종말이 권신찬 생전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구원파를 빠져나온 사람들은 교회에서 임박한 종말론을 강조함으로 그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고 증언한다. 특히 구원파교회에서 그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6) 예정론은 지옥에 간다는 이요한

- 그중 에베소서 1장을 잘못 해석하여 예정론의 가장 큰 기초로 만들었고, 수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 성경을 잘못 가르치면 영원히 멸망합니다. 예정론을 배우는 신학교 내에서도 ‘사람들이 미리 예정되어 있다면 무엇하러 전도를 하느냐? 전도할 필요가 없지않느냐?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는 말씀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냐?’ 등의 질문들과  ‘하나님이 절대 주권으로 예정하셨으니 사람들이 불평할 수 없다. 정 궁금하면 천국에서 물어보라.’라는 식의 대답으로 많은 변론이 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예정론은 어떤 말씀에서 나왔을까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이 말씀은 언뜻 보면 하나님이 택하고 예정한 사람이 구원받는 것처럼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예정한 것은 ‘각 개인’이 아니라 ‘우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정론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말이 없습니다. 거듭나야 천국에 간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위의 말씀을 붙잡고 예정론을 굳게 믿고 있어도 거듭나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질의와 응답, 자유의지와 예정론)

http://www.jbch.org /newhome/guide/faq/faq_view.php?f_id=20030120172351& target_1=category:소분류검색&FindButton=카테고리검색&Page=1& skeyword=10401&flag=0

예정론이 수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인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다른 교회에도 구원이 있다고 가르친다고 변명한다. 그 교회는 모두 그렇게 가르치는데 이요한목사만 다르게 가르치는 모양이다. 게다가 “우리”라고 되어 있으므로 “각 개인”이 아니라는 말을 보고 한참 웃었다. 그렇다면 그 성경구절 바로 다음(엡1:7)에 오는 성경의 “우리”는 무엇인가? 예수의 피로 구속받은 “우리”는 “각 개인”이 아닌가?

과연 이요한은 일반교회와 동일한 가르침을 가르칠까? 그들은 대외적으로는 일반교회와 같다고 주장하며, 일반교회에도 구원이 있다고 가르친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요한은 그 홈페이지의 동영상에서 기독교는 사단이 넣은 교회이며 거짓교회이고 생명의 씨가 없는 교회라고 말하고 있다.
이요한은 마13:31-33을 인용하며, 여자가 넣은 누룩은 거짓교회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완전히 엉터리이다. 누룩이라는 단어가 다른 곳에서 나쁘게 사용되었다고하여, 무조건 나쁜 의미로만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계시록에서 여자라는 단어가 나쁘게 사용되었다고 하여 다른 성경에서 여자도 모두 나쁜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는가? 누룩이라는 단어가 갖는 본래의 개념은 팽창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가루서말의 비유는 천국을 비유한 것이다. 
즉 천국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천국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이러한 의미는 모두 천국의 확장적인 개념을 말하는 것이다. 천국에 대한 비유가 거짓교회라면, 예수님은 천국이 거짓교회라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이요한목사의 이러한 답변이 있는 동영상은 2/3 정도를 넘어가면서 본론이 나온다. 이 누룩에 대해서 거짓교회라고 비난을 하더니, 이 누룩이 기독교라는 것이다. 그리고 겨자씨로 비유된 참교회는 물론 자신의 교회인데, 생명의 씨가 거하는 교회라는 것이다. 즉 기독교는 겉모양은 번드르하지만, 생명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지방교회는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어떻게 해석할까?

- 가라지들은 거짓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큰 나무는 오늘날의 기독교계를 의미한다. 누룩은 이교도의 모든 관습, 세상적인 것, 죄있는 것, 우상숭배를 의미한다. 여자는 로마 천주교, 심지어 기독교계까지도 의미하며, 악한 자는 사단 자신이다. (위트니스 리, 왕국, 265쪽)

- 많은 악한 영들이 오늘날 기독교계 안에 깃들이고 있다. 가지들은 귀신들의 깃들이는 곳이 되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단지 교리가 되어서는 안되며, 우리는 이것을 실질적으로 적용해야 한다.(위트니스 리, 왕국, 256쪽)

지방교회와 구원파의 교리는 매우 유사하다. 위에서 설명한 이것들 외에도 재창조론(간극론), 천국관, 알레고리적인 성경해석등 상당히 많은 부분이 유사하다. 그것은 권신찬이 지방교회 교리에 빠져서 장로교단으로부터 제명되었으며, 그 권신찬으로부터 이요한이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구원파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른 교회에는 구원이 없다고 배웠다고 증언한다.
이요한, 권신찬, 박옥수등 구원파들이 주장하는 것은 모두 "깨달음"이며 그 깨달음으로 거듭난다고 주장한다. 그 깨달음은 믿음이 아니다. 일반교회에서 수십년을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도 성경세미나를 통하여 깨달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각자의 구원파를 서로 비난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여 자신들의 교리를 깨달음만이 거듭난다는 것이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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